삶은 빠르게 변한다.
삶은 순간에 변한다.
저녁을 먹으러 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알던 삶이 끝난다.
자기 연민이라는 문제

직감했다.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해도, 우리 나이가 몇 살이건 간에, 부모님의 죽음은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들고 뜻밖의 반응을 일으켜 아주 오래전에 묻어 놓은 줄 알았던 기억과 감정을 헤집어 내지요. 우리는 애도라고 하는 그불특정한 기간에, 바다 밑 잠수함 속에서 지내는지도 모릅니다. 심연의 고요 속에 머물며, 때론 가까이에서 때론 멀리서 회상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뒤흔드는 폭뢰의 존재를 느끼면서 말이지요."

비애는 다르다. 비애는 거리가 없다. 비애는 파도처럼,
발작처럼 닥쳐오고 급작스러운 불안을 일으켜,
무릎에 힘을 빼고 눈앞을 보이지 않게 하며,
일상을 까맣게 지워버린다.

비애에 잠긴 사람한테는 억지로 다가가려고 하면 안 되고, 지나치게 감정적인사람은 아무리 가깝고 절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친구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슬퍼한다는 것을 알면 큰 위안이 되긴 하나, 망자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은 신경이 이미 위험한 상태일 것이므로, 신경을 과도하게 자극할 만한 사람이나 상황으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 누구든 설령
‘필요 없다‘라거나 ‘만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들었더라도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된다. 이런 시기에어떤 사람은 누가 곁에 있어 주면 위안을 받는 한편, 어떤 사람은 가장 가까운 친구라도 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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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세상을 구하기위한 여정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구함으로써 세상도 함께 구할 수있습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 Joseph Campbell의 말처럼 나는그가 자신을 먼저 구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너무 많이 희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미 충분히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내려놓았으니까. 그런데 그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그 길에 뛰어들어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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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 삶의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서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 니케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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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려 하기보다 스스로 ‘배우려는‘ 태도를 간직할 때 정말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 이런 기본 태도가 학생에게 옮아가기때문이다. 학생들이 계속 경탄하게 하고 질문으로 이끈다는 것도뮐러 선생님의 강점이었다. 그와 더불어 탐구하며, 궁금했던 질문에 ‘아하‘ 하고 깨닫는 경험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었다. 깨닫는 기쁨을 누리는 건 상당히 소중했다. 학생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유머없이 거의 주입식으로 떠먹여주는 수업이 아니었다. 언젠가 뮐러가 교사는 사실 학생보다 단 한 시간만 앞서면 된다며, 그거면 충분할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그의 연구소의 물리학자들, 엔지니어들과 함께하는 금요일 오후의 토론회에서 나는물론 그때 나는 지적으로 토론을따라가기조차 버거웠다-그동안 몰랐던 훌륭한 학자로서 뮐러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늘 질문자의 눈높이에 맞춰 답변했다. 한번은 그에게 우리같이 전문지식이 없는 바이올린 제작학교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약간 계면쩍은 미소를 지으며, 어떤내용을 ‘쉽게‘ 표현할 수 없으면 기본적으로 그 내용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가 그에게 내용을 이해하도록 강요했던 셈이라고 할까?

무력함과 권능은 공명을 이룬다. 체념만 있거나 능력만 있는곳에서 상호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힘겨운 시간들을 오히려 기회로 보고자 한다. 예수의 길을 따라가며, 예수의 무력함을닮는 기회로 말이다. 그런 시간에 나는 받는 자로서 하늘을 향해손바닥을 열고자 한다. 그렇게 성령의 탄식에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자 한다.

정말로 영리한 사람은 삶이 방해받고 빗나갈 수 있는 여지를허락한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이 확신하는 바만 고집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 뜻밖의 일을 통해서도 좋은 일이 일어날 수있다. 우리는 때때로 커다란 지혜가 뜻밖의 길로 인도하는 것에놀라곤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돌아보며 ‘아, 정말 좋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런 경험이 종종 불운해 보이는 일을 통해적어도 예기치 않았던 일을 통해 당장은 참고 견뎌야 하는형태로 다가온다 해도 말이다.

뜻밖의 것에 놀라거나 방해받거나 때로 좌절할 용기가 없을때, 우리는 가능성에 못 미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럴 때 큰 지혜는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의 최대 실수는 네가 그르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시도한 일이 너무 적었음을 보여준다." 용기가 없는 자는 은혜의 길을 갈 수 없다. 우리는 확실한것만 취한다는 말로 우리의 용기 없음을 변호한다. 하지만 자신이확신하는 것만 부여잡고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을 때 진리에는 얼마나 많은 먼지가 앉을까. 막스 프리슈Max Frisch는 이렇게 말한다.
"전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선조들이 당대의 문제에 맞섰던 그용기로 자기 시대의 과제를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그 외 모든 것은 모방이요, 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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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는 안단테 - 김형석 에세이
김형석.스토리베리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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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졸업할 때 은사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창작의 영역에서 스승이란, 제자의 손을 잡고 만리장성 앞까지 와서 제자가 스승의 등을 밟고 올라가 만리장성을 넘어가게 해주는 사람이다. 제자가 그 만리장성을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그의 세상이다."
은사님이 내게 해주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안내하고받쳐주는 스승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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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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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의 원서는 ‘인간답다Umana‘라는 단어로 시작한다고 하는데,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의미심장하다. ‘인간답다‘ 함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덕목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지만, 신과 달리 재난과 운명에 취약하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이런 불운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감, 연민, 예의 바른 태도, 다정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 정원이 기적을 행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14세기 피렌체에 살았던 열 명의 남녀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잠시나마 함께 웃고 울며, 기쁨을 주고 위안을주는 곳이 될 수는 있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식의 탐구와 실천 자체는 무해하지만, 방향성을 잃은 탐색은 이렇게 위험하다. 여기에는 정원 일도 포함되는데, 어디 허리라도 다치기 전에 끝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려나. 모든 것에 실패하고 인생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된 이들이 다시 필경을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하지만 장담컨대 이들은 머지않아 또 정원 일을 시작할 것이다. 정원은 그런 것이다.

소설은 낙원과 같던 핀치콘티니 가문의 세계가 인종법과 파시즘, 홀로코스트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몰락 직전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담히 보여준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와 동시에 금방 닥칠 겨울의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눈부신 가을은 그 이후의 역사를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더욱더 비극으로 다가온다.

조르조는 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아 핀치콘티니가의정원과 그곳에 있던 이들을 기억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기도 한 작가 엘리 위젤Elie Wiesel은 글쓰기란 "묻히지 못한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보이지 않는 비석"이라고 했다. 하나의 단어가 한 사람의 얼굴, 하나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 홀로코스트와 같은 수많은 죽음을 수긍하는 일은 이를 부인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억하고 기록하면 이들은 그저 숫자로 추상화되는 익명의 망자로 지워지지 않고, 이름이 있는, "언젠가 산적이 있는 사람들"이 된다. 이들의 눈부신 시절을 기억하고, 또 기록하여,
이를 다시 역사 속에 놓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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