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의 원서는 ‘인간답다Umana‘라는 단어로 시작한다고 하는데,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의미심장하다. ‘인간답다‘ 함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덕목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지만, 신과 달리 재난과 운명에 취약하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이런 불운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감, 연민, 예의 바른 태도, 다정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 정원이 기적을 행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14세기 피렌체에 살았던 열 명의 남녀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잠시나마 함께 웃고 울며, 기쁨을 주고 위안을주는 곳이 될 수는 있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식의 탐구와 실천 자체는 무해하지만, 방향성을 잃은 탐색은 이렇게 위험하다. 여기에는 정원 일도 포함되는데, 어디 허리라도 다치기 전에 끝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려나. 모든 것에 실패하고 인생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된 이들이 다시 필경을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하지만 장담컨대 이들은 머지않아 또 정원 일을 시작할 것이다. 정원은 그런 것이다.
소설은 낙원과 같던 핀치콘티니 가문의 세계가 인종법과 파시즘, 홀로코스트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몰락 직전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담히 보여준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와 동시에 금방 닥칠 겨울의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눈부신 가을은 그 이후의 역사를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더욱더 비극으로 다가온다.
조르조는 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아 핀치콘티니가의정원과 그곳에 있던 이들을 기억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기도 한 작가 엘리 위젤Elie Wiesel은 글쓰기란 "묻히지 못한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보이지 않는 비석"이라고 했다. 하나의 단어가 한 사람의 얼굴, 하나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 홀로코스트와 같은 수많은 죽음을 수긍하는 일은 이를 부인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억하고 기록하면 이들은 그저 숫자로 추상화되는 익명의 망자로 지워지지 않고, 이름이 있는, "언젠가 산적이 있는 사람들"이 된다. 이들의 눈부신 시절을 기억하고, 또 기록하여, 이를 다시 역사 속에 놓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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