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려 합니다. 숲이 아님은물론이고, 정정한 상록수가 못 됨도 사실입니다. 비옥한 토양도 못 되고 거두어 줄 손길도 창백합니다. 염천과 폭우, 엄동한설을 어떻게 견뎌 나갈지 아직은 걱정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이 나무는 나의 내부에 심은 나무이지만 언젠가는 나의 가슴을 헤치고 외부를 향하여 가지 뻗어야 할 나무입니다.(「고성(古城)밑에서 띄우는 글, 사색18, 68)

무기징역을 시작하면서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동굴로들어서는 막막함에 좌절했습니다. 동굴의 길이는 얼마나 되는지, 동굴의 바닥은 어떤지, 그리고 동굴에는 어떤 유령들이 살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암담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우선 이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겠다는 체념이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일체의 망각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 마치 시체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마음 편했습니다. 시골의 폐가가 소멸해 가는 풍경이 떠올랐습니다.[담론, 2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오늘날 삶의 비극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신경증적으로과잉보호하듯, 원래는 우리 삶에 보탬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도리어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폐해를 입힐 때가 많다. 11탈레브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모두 눈여겨보라는 듯, 책 서두에
시적인 이미지를 하나 실어놓았다. 그 이미지에는 훅 불어오는 바람은 촛불을 꺼뜨리기도 하지만, 불꽃을 더욱 세차게 일으키는 힘이기도 하다는 말이 달려 있다. 결국 우리 자신이 촛불처럼 되지 말아야 하고, 아울러 우리 아이들도 촛불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탈레브의 조언이다. ˝여러분은 불이 되고 싶은 것이며, 따라서 어서 바람이 불어오기만을 바라고 있다.12이 단단함의 개념만 머리에 확실히 잡혀도 부모의 과잉보호가얼마나 어리석인 일인지 곧장 드러난다. 리스크와 스트레스 요인들이 삶의 자연스럽고 피치 못할 일부라면, 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이 그런 경험 속에서 더욱 성장하고 배워나갈 수 있게 아이들 본연의 능력을 키워주어야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전은 변치 않는근본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제공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 문제에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나은 통찰과 자극을 주기에 유의미하다. 그래서 하나의 고전을 성전으로 만드는 대신 지적 네크로필리아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다양한 양질의 자극을 찾아서 오늘도 역사의 바다로뛰어든다.
그들이 보기에 인간의 근본 문제는 일거에 대답할 수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혈압이나 피부 트러블처럼 평생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인생의 동반자이다. 어제 맛있는케이크를 먹음으로써 인생의 허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한 것 같았어도, 오늘 다시 배가 고파지면 그 문제는 아직해결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인생의 허무란 제거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할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보다 맛있는 케이크를 찾아 오늘도 새로 문을 연 제과점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다.

삶의 여러 국면에서 침묵이 늘 배려의 소산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열네 살』에서 중년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어느 날 가족을 홀연히 떠나버린다.
남겨진 열네 살 소년은 그로 인해 그 자신 아버지의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도대체 치유할 길이 없는, 어떤 상처를입게 된다.

˝고전의 지혜가 우리가 현대에 당면한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않는다고? 그렇다면 『논어』를 왜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가?
실로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 막거나, 우울증을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 문명의 병폐를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 찾거나, 환경 문제를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악과 시, 이 둘은 나란히 함께 간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작곡가들이 시에 선율을 붙이는 접근법에 매료된다. 올 한 해 존던, 프리드리히 실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폴 베를렌, 윌프레드 오언, 윌리엄 세익스피어,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많은 시를 들을 예정이다. 릴케의 시를 번역한 어느 번역가는 다음과 같이 적었 다. ˝장미 넝쿨이 릴케의 삶을 타고 오른다. 릴케가 장미 넝쿨을 떠받치는구조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미국의 현대 작곡가 모르텐 로리젠이 릴케의 팬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그가 어떻게 이 독일 시인의 빛나는 시 구절을 음악에 담아냈을지 듣고 싶었다.
로리젠은 장미의 노래〉의 시 말해주오‘에 나오는 시구, 특히 ˝사랑 을 주고 돌려받지 못하는 상태˝라는 릴케의 표현에서 크게 감동받았다고말한다.
로리젠이 이 시구에 붙인 선율은 달콤하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다 않은, 고요한 빛을 뿜는다. 그의 음악은 (최고의 가곡이 그렇듯이) 시에 부드러운 힘을 더해준다.

Quatuor pour la fin du temps5: Louange à l‘éternité de Jesusby Olivier Messiaen
영적 저항의 형식을 띤 음악을 또 한 곡 소개한다. 압도적인 감동에 꼼짝할 수 없는 작품이다.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은 이 곡을 쓸 당시 31세였고 전쟁 포로 신분이었다. 그는 1940년 프랑스 함락 당시 체드레스덴 동쪽 100여 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독일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다. 제8포로수용소 A동에 있던 동료 수감자 중에는 클라리넷 연주가 아리 아코카, 바이올린 연주자 장르 불레르, 그리고 첼로 연주자 에티에 파스키에가 있었다. 메시앙은 카를 에리히 브륄이라는 동정심 많은 독일군 경비병에게 종이와 작은 연필을 얻을 수 있었고, 상상하기조차 힘든어려운 상황에서 걸작으로 인정받는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이 곡은 익숙하지 않은 조합(클라리넷,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음색을 융합하고 음향의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을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메시앙이 수용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악기는 이것들뿐이었다. 1941년 1월 15일 저녁, 연주자들은 임시로 구한, 낡아서 음정도 제대로 맞지 않는 악기로 야외에서 이 곡을 초연했다. 비가 내렸고 바닥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그날 저녁 27호 막사 관객석에 있던 수감자는보고서마다 다르지만 대략 150명에서 400명 사이로 추정한다.
다양한 계급의 프랑스인, 독일인, 폴란드인, 체코인들이 전쟁 포로라는 뜻의 ‘K. G‘ 명찰이 붙은 허름한 수의를 입고 한데 모였다. 그중 누군가는 훗날 이렇게회상했다. ˝우리는 모두 형제였습니다.˝
메시앙은 종교적 믿음을 잃지 않았던 작곡가였고, 이 작품에도 구원의 언어와 정신이 담겨 있다. 내가 선택한 곡은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되는2악장 ‘예수 영원성에의 찬가‘다. 이 악장을 시작으로 작품을 모두 들어볼것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언제라도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나의 열정은 삶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나는 언제나 내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며 당장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해왔다. 삶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그 삶에 성실하다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아이러니도 아니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