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말, 말, 말...


그해 구설수를 조심하라는 천공(千空) 스승의 말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얼떨결에 리더 멧돼지로 당선된 나는 한동안 그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고, 하루하루가, 어쩌면 매 시간이 온통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온종일 술만 마셔도 취하지 않을 듯했고, 서너 끼를 굶어도 배가 고프거나 허기가 지지 않을 듯했다. 세상이 온통 무지개 빛으로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들뜬 기분으로 해외 나들이를 갔던 나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멧돼지라는 '날리면'(혹은 바이든) 멧돼지와 만나 인사를 나눈 직후 곁에 있던 똘마니 멧돼지에게 "국회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하고 농담 삼아 했던 말이 화근이었다. 선천적으로 목소리가 큰 내가 딴에는 소리를 줄여서 한다고 했는데 주변에 있던 다른 멧돼지들의 귀에 선명하게 전달되었을 뿐 아니라 그 말이 온 나라에 토시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고스란히 퍼지고 말았다. 창피도 그런 창피가 없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진상조사 카드를 꺼내 어깃장을 놓았으나 나의 말을 믿어주는 멧돼지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라는 말을 썼다가 아내 멧돼지로부터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이 났다. 흉내도 낼 줄 모르는 내가 괜히 겉멋만 들어서 '날리면' 멧돼지의 말을 따라 했다는 것이 아내 멧돼지가 나를 혼낸 이유였다. 리더 멧돼지로서 가오가 서려면 세계 최강이라는 '날리면' 멧돼지를 모델로 삼아 그대로 따라 하는 게 다른 멧돼지들로부터 존경과 우러름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던 게 오판이었다. 나는 아내 멧돼지 앞에서 인간들처럼 두 발로 선 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한 시간 동안 부동자세(부동시는 아니고)로 서 있어야만 했었다. 그 바람에 나는 여왕 멧돼지의 상가에 늦게 도착하였고, 남들은 다 하는 조문도 결국 거르고야 말았다.


이런 나를 두고 북쪽의 여정 멧돼지는 '천치 바보'라며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들어 보니 맞는 말이긴 한데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학작품을 즐겨 읽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는 부친 멧돼지의 지시에 따라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 등을 읽었을 뿐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한동안 술과 유흥에 빠져 살았다. 그렇게 십수 년을 허비하는 동안 부친 멧돼지로부터 몇 차례의 엄한 꾸지람이 있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법전을 읽게 되었다. 부친 멧돼지의 도움 덕분에 나는 뒷골목 세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교과서와 법전만 읽었던 놈이 정치라는 생판 모르는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것 자체가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정치는 타인에 대한 공감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공감에 대해 전혀 배운 바가 없는 나로서는 정치판의 모든 게 맘에 들지 않았다. 선거 과정에서 나와 경쟁했던 놈과 그 패거리들이라도 실컷 두들겨주어야만 직성이 풀릴 듯했다. 리더로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간언도 있었지만 나는 다 무시해버렸다.


평생을 뒷골목 세계에서 보냈던 나로서는 그곳의 언어와 말버릇을 털어내는 게 무척이나 힘들고 어렵기만 하다. 지금은 그곳의 언어도 많이 순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과거에는 주로 욕설과 음담패설이 대화의 80~90%를 차지했었다. 그와 같은 모습은 거칠 것이 없는 그곳 세계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싶다는데 누가 제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일종의 힘의 과시가 그들로 하여금 지나친 욕설과 음담패설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왔던 내가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하는 존댓말은 여간 낯간지러운 게 아니다. 지금도 나는 그 시절이 가끔 그립다.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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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6 16: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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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8 16: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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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의 충복들


리더 멧돼지가 되고 보니 다 좋은데 하나 아쉬운 건 마음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점이었다. 똘마니들을 데리고 뒷골목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어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무시로 술을 마실 수 있었는데 리더 멧돼지가 되자 나의 신변을 보호하는 경호 멧돼지며 비서 멧돼지 등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동행하는 멧돼지가 어찌나 많은지 매번 떼를 지어 이동하는 통에 그들의 눈을 피해 예전의 똘마니들과 호젓하게 술을 마신다는 건 꿈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나는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인데 꽐라가 된 내 모습이 소문을 타고 일반 멧돼지들에게 알려지는 바람에 아내 멧돼지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받았고,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극도로 조심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바로 아내 멧돼지였기 때문이다. 결혼 전, 그러니까 내가 술과 여자에 빠져 살면서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처럼 행동하던 시절, 종종 나의 술시중을 들었던 아내 멧돼지는 자신의 집안에 가득 쟁여 둔 곡식과 고기 등 다른 멧돼지들이 탐낼 만한 풍족한 재산을 보여주며 자신과의 결혼을 생각해보라며 넌지시 유혹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 멧돼지의 생각은 변함이 없는 듯했다. 자신과 친인척들에게는 없는 권력, 그것이 나를 유혹했던 유일한 이유였고 지금도 아내 멧돼지는 내가 소유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만 있다면 내가 어떤 짓을 하든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내가 다른 여자 멧돼지와 관계를 맺든, 싸움질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다만 관계를 맺기 전 그에 합당한 돈을 지불하여 소문만 나지 않게 해 달라는 게 유일한 조건이었다. 그런 쿨한 태도가 맘에 들었던 나는 아내 멧돼지의 천박한 품행에 대한 여러 소문을 무시한 채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충복이 된 아내 멧돼지보다 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멧돼지가 두 마리나 더 있다. 멧돼지계에서는 같은 배에서 출산하는 멧돼지 숫자가 워낙 많고 흔하다 보니 쌍둥이라는 개념은 없다. 대신에 하는 짓이나 생각 등이 비슷한 두 멧돼지를 일러 '동운(同韻)'이라고 하는데, 뒷골목 생활을 하던 시절 나의 똘마니 중 한 마리였던, 그러나 다른 멧돼지들보다 영민하고 나의 말을 잘 들었던, 그럼에도 이름조차 없었던 멧돼지에게 나는 '동운(同韻)'이라는 이름을 하사했고, 그는 나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결혼 후 아내 멧돼지 역시 작은 분란만 있어도 '동운' 멧돼지에게 그 사실을 알려 해결을 부탁하곤 했으며, 그럴 때마다 '동운' 멧돼지는 만사를 제쳐둔 채 전력을 다해 아내 멧돼지를 도와주곤 하였다.


'상민(常民)' 멧돼지는 '동운' 멧돼지에 비하면 성격도 하는 짓도 판이하게 달랐다. 그도 역시 나의 똘마니 멧돼지들 중 일원이었으며 이름이 없었던 건 '동운' 멧돼지와 같았다. 어느 날 여러 멧돼지들과 거나하게 취해 있을 때 '상민' 멧돼지가 헐레벌떡 술판으로 뛰어들었고, 그의 계급이 상민(常民)이었던 까닭에 "어이, 상민(常民) 왔는가?" 하고 반갑게 물었던 것이 인연이 돼서 '상민' 멧돼지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행동은 좀 굼뜨지만 나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해서 나는 사실 그가 웬만한 실수를 저질러도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편이었다. 얼마 전에도 젊은 멧돼지들이 좁은 골목에서 서로 먼저 가겠다고 우격다짐으로 서로 밀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가 나왔고, 이에 분개한 전국의 멧돼지들이 치안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상민 멧돼지의 책임을 물어 경질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어깨를 두드려주며 그의 노고를 격려했었다. 멧돼지들이란 그저 잠시 동안 눈물을 보이는 척하고 아랫것들을 적당히 벌을 주는 시늉만 해도 그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 수 있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충성을 다하는 '동운' 멧돼지와 '상민' 멧돼지가 있고, 몇몇 멧핵관들이 존재하지만 나의 퇴진을 주장하는 멧돼지들의 행진이 주말마다 이어지고 있고, 소위 학자 멧돼지들도 나의 리더십에 반기를 드는 추세가 뚜렷하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조만간 전투 멧돼지를 동원하여 무섭게 겁을 주어야만 사그라들 듯하다. 리더 멧돼지가 되면 마음껏 술이나 퍼먹고 원하는 여자 멧돼지를 언제든 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골치 아픈 일들이 끝없이 이어질 줄이야...


*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히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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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19: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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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3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냉정하게 따져볼 일이 있다. 예컨대 나훈아의 무료 콘서트가 열렸고 그곳에 갔던 다수의 노인들이 압사당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우에도 위패와 영정 사진도 없이 국화꽃만 가득한 분향소를 설치할 것인지... 그분들의 이름이나 사진을 공개하면 패륜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이를 공개한 언론들을 고발할 것인지... 내 생각에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번 '10.29 참사' 희생자들은 왜 그런 식으로 대접했을까? 여기에는 정부와 여당의 분명한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강력하고도 확실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에이, 이름이나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정부에 유리한 게 뭐 있겠어?' 하고 의심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음모가 음모다워지기 위한 전제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내가 서두에서 제시했던 가정으로 돌아가 보자.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모든 언론을 통하여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발표하고 약간의 위선이 섞였을지언정 진심 어린 애도 분위기를 조성하려 애쓸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발생한 '10.29 참사'와 무엇이 다른 것이기에 이런 추측이 가능한가? 단지 희생자의 나이만 다를 뿐인데...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와 지자체 또는 행안부와 경찰, 소방 등의 책임은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단지 희생자의 나이가 젊고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대하는 대우가 이토록 달라진다는 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노인들이 왜 쓸데없이 그런 곳에 가서 그런 사달을 일으켰느냐고 말한다면 그 사람을 오히려 패륜이니 망언이니 하고 나무랄 게 분명하다.


이와 같은 논지에서 젊다는 건 하나의 '죄'이자 유족들에겐 '천형'일 수밖에 없다. 사실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임이 분명한데 모든 잘못을 희생자 본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유족들 또한 자신의 아들, 딸들이 하필이면 그날, 쓸데없이 그곳에 가서 값싼 죽음을 당한 것일 뿐 누군가에게 억울함을 주장할 것도, 그렇다고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 떠벌릴 일도 아니라는 의식을 갖게 한다. 말하자면 희생자의 신분이 밝혀짐으로써 인터넷상에 떠돌게 될 여러 가짜 뉴스와 악성 댓글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인식은 희생자의 이름이 익명으로 처리됨으로써 더욱 공고하게 유지되거나 강화된다. 희생자의 신분이 밝혀지고 여러 가짜 뉴스가 떠돌 경우 그것은 정부가 앞장서서 지켜주고 보호할 일이지 유족들이 떠안을 고통이 아님에도 현 정부의 태도로 보아하니 그럴 것 같지 않은 것이다. 유족들은 그게 두려운 것이다. 어차피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닌데 조용히 덮어두는 게 그들로서는 최상의 방책인 듯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정부와 지자체는 면죄부를 얻고 지지율 하락이나 국민들의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고맙게도 말이다. 물론 희생자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국민들 역시 희생자들을 쉽게 잊을 수 있을 테고.  이처럼 강력한 효과가 있는데 굳이 희생자의 신분을 노출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입장에서는 어떤 협박이나 핑계를 대서라도 막아야 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오늘은 대입 수능일. 연말이면 다시 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예비 성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테다. 우리는 그들에게 죄책감을 담아 충고할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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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2-11-18 0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길가다 이런 어이없는 죽임을 당해도 죽었다 말 할수없고 책임 지지도 않으며 알아서 살아가야하는 독재의 나라를 6개월만에 만들어내는 똥멍청한능력은 세계최고네요.
아직 1567일남았어요. 제발 이 날짜가 빨리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꼼쥐 2022-11-19 16:26   좋아요 1 | URL
그렇게 긴 시간을 견딜 수나 있을지 걱정입니다. 차라리 그 전에 뭔 수를 내지 않으면 국민들이 먼저 죽지 않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1. 소심한 멧돼지의 복수


그해 나는 리더 멧돼지가 되었다. 나를 지지하는 뒷골목 똘마니들의 단합과 응원 덕분에 어찌어찌 뒷골목을 통솔하는 총장 멧돼지에 오르기는 했었지만 나의 출세는 거기에서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스승인 천공(千空) 멧돼지의 적극적인 출마 권유가 나와 아내 멧돼지의 마음을 움직였고, '설마 되겠어?'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일단 출마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게다가 천공이 누구던가! 건강 관리를 잘하는 멧돼지의 평균 수명이 17~20년인 걸 감안할 때 평생 천 개의 구멍(空)을 판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는데 15세인 천공 멧돼지는 이미 950공(空)을 넘어 천공(千空)을 목전에 둔, 가히 멧돼지계의 전설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멧돼지의 습성상 눈만 뜨면 땅을 파는 여느 멧돼지와는 달리 그를 찾는 많은 멧돼지들을 상대하면서도 구멍을 뚫는 성과면에서는 다른 멧돼지들을 월등히 앞서가는 걸 보면서 우리와 같은 보통의 멧돼지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많은 멧돼지들이 그를 칭하여 "가히 천공(千空)이로고!" 하는 감탄을 쏟아냈던 것이다. 그런 분이 나의 출마를 권유했을 뿐만 아니라 리더 후보들이 등장하는 토론장에 나갈 때면 친히 나의 네 발에 왕(王) 자를 써주기까지 했으니 나로서는 감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상대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치고 리더 멧돼지가 되는 데 성공했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지났다.


며칠 전에는 리더 멧돼지 관사로 이사를 했다. 남산 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곳이지만 식구라고는 아내 멧돼지와 비상식량이자 도시락 대용으로 키우고 있는 강아지 몇 마리가 전부이니 이전 리더가 살았던 북악산 밑의 관저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리더 멧돼지를 보호하기 위해 상주하는 많은 멧돼지들의 북적거림으로 인해 그곳에서는 적어도 지금과 같은 정적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머리를 맴돌았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아내 멧돼지의 히스테리성 발작이 점점 더 심해지는 걸 보면 이곳으로의 이사는 나에게나 아내 멧돼지에게나 결코 이롭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진작 천공 스승을 찾아뵙고 상의를 드릴 걸...'


나는 사실 겁도 많고 소심하며 누구보다도 이기적이며 속 좁은 멧돼지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런 성격이 형성된 데에는 아버지 멧돼지의 영향이 컸다. 유년 시절 나는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모든 것을 아버지 멧돼지의 계획에 따라야만 했었는데 이런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멧돼지에게 대들거나 반항하지 못했다. 그것은 순전히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리더 멧돼지가 된 후 내가 했던 모든 연설에서 '자유'를 역설했다. 그것은 어쩌면 자유를 누리지 못한 어느 멧돼지의 분노이자 넋두리였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약간의 분노조절장애가 있던 나는 나약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선공(先攻)이라고 믿게 되었다.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나는 일명 '선빵'을 통하여 나를 증명했고, 내 편에 서는 멧돼지는 누구나 진심을 다해 애정을 쏟았다. 그것이 어쩌면 적자생존의 멧돼지계에서 겁 많고 소심했던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생존전략이었는지도 모른다. 리더 멧돼지가 된 뒤에도 나는 나의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멧돼지란 멧돼지는 모두 제거해버렸다. 전임 정권에서 뒷골목의 총장(총대장이라는 의미)을 지냈던 나는 당시 차기 리더로 지목되었던 한 인물을 잔인하게 도륙했고, 그 결과 그의 가족 전체가 재기불능의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에도 일부 멧돼지들은 너무 잔인하다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반대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걸 나는 일찌감치 어둠의 세계에서 배워 익혔었다. 그것을 일부 소문 멧돼지들이 나의 행동을 두고 정의롭다며 추켜세웠고 나의 이미지는 그렇게 굳어졌다. 집요함은 끈질기다로, 잔인함은 정의롭다로...


겁 많고 소심한 성격인지라 만성 변비와 소화불량을 달고 사는 통에 아무데서나 방귀를 뿡뿡 뀌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다른 멧돼지들은 내가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까닭에 어린 인간들이나 하는 도리도리를 따라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껴왔던 나로서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하여 사방을 훑어보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던 것인데 남 말 하기 좋아하는 멧돼지들이 도리도리로 표현했을 뿐이다.


일기를 처음 쓰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다음 일기에서는 나의 영역인 용산에서의 일상을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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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니 문득(이라고 말하면 너무 가식적일 테고 아무튼) 소설이 쓰고 싶어 졌다. 소설을 써본 경험은커녕 짧디 짧은 리뷰 한 편도 쩔쩔매면서 갑자기 웬 소설? 하고 뜬금없어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이 개판을 넘어 돼지판으로 흐르는 실정이다 보니 사람이 아닌 멧돼지를 주인공으로 삼아 우화를 한 편 써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용산 시민공원을 어슬렁거리는 멧돼지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현실을 조금 과장되거나 부풀려서 혹은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다른 멧돼지 무리를 등장시켜 풍자적으로 그려보는 것은 요즘처럼 웃을 일 없는 시기에 개인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차원에서라도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우화의 배경은 주로 용산 시민공원으로 하고 멧돼지 무리를 지휘하는 리더 멧돼지와 그의 아내 멧돼지 그리고 리더 멧돼지의 지시를 따르는 몇몇 멧핵관(일명 멧돼지 핵심 관계자)들을 등장시켜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동물의 차원에서 해석해보고자 함이다. 그렇다고 특정 정치인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해야 하겠지만).


물론 내가 소설이나 우화를 쓸 깜냥이 되지 못한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공모전에 출품할 것도 아니고, 판매를 위한 상업용 목적도 숫제 없으니 단순한 오락이나 도락의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 듯싶은 것이다. 마감일자가 있어 빨리 쓰라고 들볶일 일도 없을 테고 말이다. 쓰고 싶을 때 쓰고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을 테니 못할 것도 없겠다 싶은 만용이 불끈 솟는 게 아닌가. <멧돼지의 일기>(물론 정해진 건 아니고 가제에 불과하지만)라는 제목으로 아주 천천히... 그에 필요한 소재는 어느 정치인이 무한정으로 제공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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