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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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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말이 들어간 제목의 책은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심한 경우에는 '(書)'자만 보여도, 어떨 때는 '독(讀)'자만 보여도 게걸스럽게 달려들곤 한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게다가 치료법도 없으니 평생 달고 살아야 할 불치병이 아닐 수 없다. 내 주변에서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담배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제 스스로 끊을 수 있는 의지가 없으니 그런 환경이라도 만들어진다면 좋겠다는 뜻일 게다. 나야 이제 담배는 끊었으니 그 말은 할 수 없고 '책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외쳐야 할까 모르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으로 끌어들인 책을 미처 다 읽지도 못하고 책장에 꽂는 경우가 다반사, 나중에는 읽지 않은 책만 모아도 수십 권에 이를 때가 있다. '구입한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다시는 책을 사지 않겠다' 결심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책에서 읽었던 권장도서나 누군가의 권유가 있을라치면 좀전에 했던 굳은 결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 당장 그 책을 사야 한다는 생각만 남는다. 팔랑귀도 그런 팔랑귀가 없다. 본디 책이란 게 물건이 없어 못 사는 경우가 드문 법인데 시간을 다투어 사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받는 이유가 뭔지 당최 알 길이 없다.

 

나는 오늘도 책과 관련된 책을 읽고 말았다. 제목은 <책이 좀 많습니다>. 책이 좋아서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헌책방 주인이 되었다는 저자의 얘기를 읽으며 혀를 '끌끌' 찼다. '뭐 묻은 돼지가 뭐 묻은 돼지 나무라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반쯤 읽은 후에야 비로소 나는 전에도 이 책의 저자인 윤성근 작가의 책을 읽었던 적이 있음을 기억해냈다. 책의 제목은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책의 제목에도 보란 듯이 '책'이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다. 헌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니 책을 좋아하고, 책에 대한 안목이 남다른 사람일 터, 이 책 <책이 좀 많습니다>에도 저자가 만났던 애서가들이 여럿 등장한다.

 

"헌책방에서 일을 하면서 평범한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애서가들이 있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유명인들 못지않은 거대한 서재를 가진 사람부터 책 없이는 못 사는 자타 공인 '책 바보'까지. 수의사, 번역가, 대학생, 회사원, 교사, 백수 등.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은 결코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있거나 책 많이 읽은 것 가지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자기가 있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p.8 '프롤로그' 중에서)

 

집에 물이 새면 살림은 제쳐두고 젖은 책을 다림질한다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 허섭 씨를 비롯하여 공장 한켠에 컨테이너 서재를 두고 있는 프리랜서 윤성일 씨,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번역가 이경아 씨, 사회학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탐색하려는 대학생 김바름 씨 등 우리 주변의 애서가 23인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고 있다. 애서가이자 장서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무지막지하게 책을 읽는 사람만 골라 인터뷰를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길을 가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들, 책에 빠져드는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직업적 이해득실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문학은 유용하다기보다 무용한 것이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거예요. 이를테면 '책 읽기'는 먹고 사는 문제에 관련된 다른 일이 생기면 우선순위에서 쉽게 밀려나죠. 그렇지만 바로 이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문학은 무용하다,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인다는 점을요. 출발점은 분명히 허세와 허영이에요. 정작 세계 문학을 쓴 위대한 작가들도 허세와 허영이 없었다면 작품을 쓰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쓰는 과정에서 뭔가 다른 가치를 창조했죠. 우리도 읽는 과정에서 뭔가 다른 걸 얻게 되고요. 아니, 뭔가를 '얻는다'는 표현보다는 우리 존재 자체가 '변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죠." (p.329)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인터뷰이의 근황을 소개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산다는 건 매번 달라지는 어떤 것을 수용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일 년 전의 나와 일 년 후의 나는 분명 다를 것이다. 나는 이따금 과거에 읽었던 어떤 책을 꺼내어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다. '그때는 이 재미없는 책에 어쩌면 그렇게 홀딱 빠질 수 있었을까' 궁금해지곤 한다. 사람도, 책도 변하는 건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책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직도 내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책을 끊었습니다'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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