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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여린 마음을 위로하려는 듯 부드럽기 그지없는 비다.  나는 잠깐 산책을 했고, 속삭이는 빗소리를 들었고, 이따금씩 우산을 옆으로 젖힌 채 한두 방울의 비를 맞곤 했다.  겨울을 준비하는 모든 생명체의 바쁜 일상은 잿빛 어둠에 묻혀 가뭇하다.

10월에 출간된 에세이를 둘러본다.  반가운 이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윤기, 이외수, 잭 캔필드, 안셀름 그륀 신부님...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책'이라는 단어가 있는 책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나도 모르게 스르르 끌리는 것이다.  저자의 이름에 '잭 캔필드'가 보인다.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다.  물론 다른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지만, 나는 오직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저자인 잭 캔필드만 보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볼 수 있는 권리'가 내게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딱히 종교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나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안셀름 그륀 신부님을 사랑한다.  그의 따뜻함이 좋고, 밝고 투명한 그의 영혼이 좋다.  게다가 나는 한 때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던 그 순간에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책을 통하여 위로를 받았다.  <자기 자신 잘 대하기>를 비롯하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머물지 말고 흘러라>, <삶을 배우는 작은 학교>, <노년의 기술> 등 신부님이 쓴 주옥같은 책들을 지금도 가끔 들춰보곤 한다.  나는 그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이윤기 작가를 다시 평가할 수 있었던 계기는 그의 산문집 <무지개와 프리즘>을 읽은 직후였다.  나는 이제껏 무릇 작가라고 통칭되는 사람들에게 가장 결여된 것은 '일관성'이라고 여겨왔었고,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것을 확인하곤 했었다.  작가에게 있어 '변신'이란 '문학적 재능', 또는 '창의성'으로 과대포장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수시로 얼굴을 바꾸는 작가들의 행태에 나는 얼마 간의 역겨움을 느끼곤 했었다.  그러나 이윤기 작가의 일관성과 뚜렷한 주관, 그리고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빼어난 글솜씨는 금세 나를 사로잡았다. 

 

 

 

 

 

 

작품 속에서 작가의 진면목을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나 노련한 작가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세간에 떠도는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작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대담집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런 데 있다.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던(때로는 드러내는 것을 꺼렸던) 자신의 생각들을 과감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이외수의 생각을 소설가 하창수와의 대담에서 얼마나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물의 가족>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의외성'이었다.  그것은 '독창성'과는 구별되는, 당돌함이나 특이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책을 읽지 못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잊고 있었을 뿐이다.  에세이의 제목 또한 도발적이다.  삭발을 한 그의 얼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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