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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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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창시절 시험을 코앞에 둔 학생이 공부할 양은 많고, 시간은 넉넉하지 않을 때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요점 정리'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저자도 그랬으리라.  책의 내용을 알차게 꾸미겠다는 욕심에 준비한 것은 많은데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꼭 넣겠다 생각했던 것을 뺄 수도 없는 처지이고...  이쯤 되면 저자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결국 저자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인용글을 과감히 삭제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겠다고 생각한다.  책은 저자가 처음에 의도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책이 인쇄되고 제본된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저자가 느꼈을 실망감과 아쉬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원고의 양은 계속 늘어났다.  욕심을 줄이고 초심을 되찾아야 했다.  그래서 원래 생각했던 대로 일단 가장 산뜻하고 기분 좋고 경쾌하고 재미있는 글들을 가려 뽑아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로 했다.  그렇게 추려지고 모인 글들이 이 책을 이루고 있다.  책을 쓰는 몇 년 동안 파리에서 찍은 책 읽는 사람과 책이 있는 장소의 사진들을 글과 함께 배치했다.  사진이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면 좋겠다."    (p.23) 

 

책을 읽는 시간과 공간, 책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의 제목은 그래서 <책인시공 冊人時空>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제1부 책을 읽는 시간, 제2부 집 안에서 책을 읽다, 제3부 집 밖에서 책을 읽다이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사진으로서 책의 배경 역할을 한다.  본문에 앞서 "독자 권리 장전"이란 제목으로 쓴 17개의 항목은 재미있다.  제1부는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된다.  책에 대한 저자의 주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니 빼먹을 수 없겠다.

 

"책의 면은 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행과 행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면의 가장자리에도 빈자리가 남아 있다.  종이 면 위에 인쇄된 글자가 목소리라면 행간과 가장자리의 여백은 침묵이다.  그렇다면 책의 본문 편집은 단순히 글자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고용함, 채움과 비움을 조합하여 책을 읽는 사람의 느낌과 생각이 물결처럼 순조롭게 흐르게 하는 고귀한 예술이다."    (p.31)

 

조금 딱딱한 인상을 주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이런 종류의 책은 늘 분주하게 움직이는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에게는 딱이겠다 싶었다.  시간에 쫓기고 공부해야 할 양은 많으니 학생들은 대부분 간략하게 줄인 '요점 정리'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길들여진 습관은 독서에서도 나타나는 듯하다.  비유와 은유가 포함된, 그러면서도 길게 이어지는 문학보다는 해야 할 말만 씌어있는 설명문이나 논설문을,  다 읽고도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시'보다는 산문을, 그도 저도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 만화나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체가 짧은 단락만으로 꾸며진 이런 종류의 책이 좋을 때가 있다.  진득하니 앉아 책을 읽지 못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독서를 나로서는 내용이 길게 이어지는 소설이나,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철학서의 경우에 앞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다시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하도 많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물론 그 횟수에 비례하여 시간도 많이 걸린다.  반면에 이런 책은 책장을 앞으로 되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뒷부분을 읽는 데 하등의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그것도 종이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에 관련된 신간 도서가 나올 때마다 읽고 싶은 유혹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살 때마다 모조리 다 읽고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어떤 때는 아직 읽지도 않은 새책이 여기 저기 굴러다니다 괜히 방만 어지럽히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과 관련된 책을 궁금해 한다.  그리고 저자도 그렇지만 나도 간혹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그 행복한 풍경을 놓치기 싫어서이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생각들을 상상해본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옆이나 앞에 앉은 사람이 책을 읽을 때 슬쩍 그 책의 제목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해본다.  그 순간 책 읽는 사람은 나에게 말을 거는 풍경이 되고 풍경화와 초상화 사이의 거리가 없어진다."    (p.292)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지금도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지 않던가.  많은 내용을 한 권의 책에 담으려 했던 저자의 욕심으로 인해 책의 내용은 오히려 빈약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덩달아 가독력도 떨어진다.  오히려 책을 읽는 시간이면 시간, 공간이면 공간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저자도 약간의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을 완성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하는 얘기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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