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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대학 시절, 어학연수차 갔던 호주에서 나는 1년을 살았다.  유학 알선 업체에 대행을 맡긴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호주에 친인척이 살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물설고 낯설은 그곳에 가고자 결심했던 것은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당시에는 호주로 가는 직항 노선이 없었다.  자카르타를 경유하여 시드니 공항에 내렸을 때, 막연했던 두려움이 공항 로비에 현실로 펼쳐진 모습을 보자 떠나기 전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되돌아 가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만 했다.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고, 광고지를 보며 집을 알아보고, 떠듬거리는 말로 집주인과 통화를 하고, 어찌어찌 약속을 잡아 집을 구경하고, 월세를 흥정하고...  지금 생각해도 그 숱한 난관을 뚫고 시드니 외곽에 세를 얻어 1년을 살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1년을 버텨야 했다.  시드니에서 차를 타고 가도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곳에 셋방을 얻고 보니 당장 급한 것이 교통편이었다.  국제면허를 취득하고 바퀴만 간신히 굴러가는 중고 자동차를 사서 통학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젊은 날의 낭만처럼 느껴지지만 그때는 살아서 한국에 갈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했다.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읽는 내내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호주에 다녀온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생경하고 이질적인 지명과 크기와 모양을 짐작할 수 없는 동식물에 반쯤 흥미를 잃고, 그곳에 펼쳐진 풍경과 거대한 고요는 더더구나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으리라.  몇 천 키로를 차로 여행한다는 것, 그 먼 거리를 달리면서도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여행 도중에 닥칠 수 있는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호주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익스트림 스포츠에 가깝다.

 

작가가 호주 전역을 둘러볼 생각을 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지만, 그가 20년 동안의 영국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미국에 돌아와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감행했던 것을 떠올리면 대단하다는 생각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이 책에서도 빌 브라이슨의 위트와 유머가 간간이 드러나지만 작가는 자신의 장점을 조금쯤 숨기고 그 대신에 미지의 영역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역사적 기록을 첨가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호주의 매력을 만끽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듯하다.  작가의 이러한 배려는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자칫 지루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세계의 배꼽'이라 불리는 울루루를 작가는 이렇게 묘사했다.

 

"본인도 이해할 수 없고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방식으로 그 바위를 알고 있다고 느낀다(친밀하지 않은 친밀함이라고나 할까).  존재의 깊은 내면 어딘가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원초적인 기억의 단편, 끊어진 DNA의 작은 꼬리가 꿈틀거렸다.  이해하거나 해석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움직임이지만 최면 상태에 빠진 듯한 거대한 존재가 종(種)의 단계에서 (어쩌면 올챙이 같은 수준의 단계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여러분이 이곳을 찾은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일종의 확신을 느낀다."  (P.344) 

 

뉴욕타임스는 이 책의 소개에 있어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기 전이나 향하는 도중에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 책이다."라고 썼지만 나는 그 반대다.  최소한 호주를 반쯤 둘러보았거나 호주 여행에서 돌아와 친구들과 떠들썩한 술자리를 갖은 다음날 화장실 바닥에 맘 속의 추억을 모두 토하여 검지 손가락 끝으로 하나하나 헤짚어 가며 혹시 잃어버린 기억이 없는지 찾아볼 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호주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를 읽어야 여행 전의 들뜨고 부푼 마음을 배가시키지 않을까 한다.

 

호주에서 어학 연수를 할 때 내가 자리를 잡고 일상의 쳇바퀴를 서툴게 돌리고 있을 즈음 퍼스로 어학 연수를 왔다는 대학 동기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반가운 마음을 최대한 표현하고자 퍼스까지 당장 달려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전화를 끊고 지도를 펼쳤을 때, 내가 한 약속이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시드니에서 장장 4000키로, 길이라도 잘못 들면 배가 될지도 모르는 그 길을 내 낡은 자가용을 타고 달려갈 생각을 했으니...  같은 집에 살던 모든 사람들(특히 주인집 아주머니)이 말렸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떠나는 날 아침 그들의 표정은 마치 장례식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그것처럼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 길에서 어이없는 실수와 자동차 고장으로 고생을 사서 한 셈이었지만 그 덕분에 친구와 함께 이 책의 마지막장에 나오는 샤크만도 구경할 수 있었다.  작가는 여행을 끝내는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큰 여행을 끝낼 때마다 나를 압도하는 우울한 심정으로 운전을 했다.  하루 이틀 후면 뉴햄프셔로 돌아가고, 이 모든 경험은 디즈니 영화에서처럼 내 머릿속의 먼지 나는 다락방으로 직행해 반세기 동안 혼란스러웠던 삶의 우스꽝스럽고 뒤죽박죽인 축적물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것이다."  (P.404)

 

책은 아웃백과 더불어 시드니와 캔버라, 멜버른 등의 여러 도시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산호 군락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등 다양한 여행 목적지들을 소개하고 있다.  낙천적인 그의 성격에 비해 책의 내용은 소심할 정도로 촘촘하고 세심하다.  호주를 여행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기 전에 한번쯤은 다시 찾고 싶은 꿈을 꿀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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