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희망, 사회주의
마이클 해링턴 지음, 김경락 옮김, 김민웅 감수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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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회주의는 여전히 자유와 정의를 이뤄내기 위한 희망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 : 과거와 미래>
마이클 해링턴 저, 김경락 역, 1989, 579쪽, 메디치미디어

이 책은 미국에서‘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사회 운동가, 작가, 교수였던 마이클 해링턴이 암으로 투병 중이던 기간에 쓴 마지막 노작이다.

저자는 한국인들에게 낯설다. 하지만 그는 이미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30대의 나이에 미국 진보운동에서 최고로 명석한 지식인이자 뛰어난 조직 운동가로 자리매김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에서 소수자의 고독을 오랫동안 겪기도 했다. 보수주의자에게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기존의 교조적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이단자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마이클 해링턴은 제1장에서 보수주의자와 기존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3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첫째, 그간의 사회주의 운동은 여러 오류를 드러냈고, 사회주의에 대한 열정도 많이 식었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움직여 온 힘은 앞으로도 여전히 자유와 정의를 이뤄내기 위한 주요한 희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는 여전히 자유와 정의를 이뤄내기 위한 희망이다. 사회주의는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한 논리적 대응이다."

둘째, 자유와 정의가 사회 경제적 구조의 지배를 받는다. 17세기 전후의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 경제적 변화가 오늘날의 정치적 현실을 만들어 낸 것처럼,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셋째, 사회 경제 구조가 민중에 의해 통제되지 못한다면, 지금 누리는 정도의 자유와 정의도 파괴될 수 있다. 

 

그런 가설 아래 헤링턴은 20세기의 사회주의가 왜 비틀거렸는지 원인을 찾아간다. 그는 사회주의가 비틀거린 이유를 마르크스부터 시작했던 사회주의에 대한 모호한 정의(특히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대한 모호한 정의), 단일한 노동 계급의 부재, 소련의 일당 독재 등’“가짜 사회주의’의 난립, 사회주의로의 이행 모델 부재,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자본의 국제화 등으로 제시한다.
 

그런 다음 제2장에서 해링턴은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유형의 사회주의와 운동들을 소개하고 비평한다. 먼저 푸리에와 생시몽 그리고 오언주의로 대표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를 소개한다. 유토피아주의는 실패했다.

두번째는 ‘마르크스주의 속의 유토피아주의’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를 정의할 때에는 유토피아주의자 같은 면모를 지녔지만 목적을 달성할 정치적 수단에 있어서는 유토피아주의자와 다른 길”을 선택하는 ‘모순’을 저질렀다고 평가한다. 그는 “오늘날 유토피아주의적인 목표는 어느 곳에서든지 민주적이고 의회적인 수단에 의해서 달성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다음 카우츠키의 독일형 사회주의 운동을 소개하며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에게 남아 있던 유토피아주의뿐만 아니라 투쟁 과정에서 강조된 인간의 창조성까지도 배척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3장에서는 레닌의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를 시작으로 하여 중국, 쿠바 등 제3세계로 확산된 사회주의 체제는 ‘가짜 사회주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한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들은 ‘권위주의적 집산주의’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주의 개념에 대한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해링턴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사회주의는 전체주의의 씨앗을 뿌릴 수밖에 없으며, 공화정의 전통과 철학이 함께 작동하지 못하는 사회주의는 시민사회의 주체적 성장보다는 국가주의와 기득권 정치에만 기대는 문제를 낳게 된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그는 4장에서 스웨덴의 노사가 서로의 실존 권력을 인정하고 타협해간 경험을 지적한다. 그는 사회민주적 대타협이 대번영을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런 체제를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독자들도 알고 있다시피 ‘대번영’은 아주 짧았다. 복지국가는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저자는 포드주의 등이 복지국가를 가져왔지만 복지국가와 경제의 세계화 속에 스스로 위기를 가져올 요인들을 잉태한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1980년대 들어서면서 자본의 반격이 시작되고 신자유주의 물결이 넘치기 시작했다.


 

해링턴은 5장에서 경제의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발전이 오늘날 단일한 계급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관심사도 경제 영역을 넘어서 성, 인권, 환경, 문화 등으로 확대되었다.

“새로운 기술과 작업의 조직은 훈련된 계층을 만들어 내고 있고, 공장과 사무실에서 이뤄지는 주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 진정한 참여라는 사회주의적 가능성이 열려 있다.”(326쪽)


 

6장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는 경제의 사회화에 대응하여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UN과 다른 국제기구를 설립하자는 등 1970년대 브란트의 ‘사회주의자 인터내셔널’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심화시키자는 것이다.

“이 작업에는 중요한 두 개의 원리가 있다. 먼저, 부와 자원을 북에 서 남으로 이전하는 것이 북과 남 모두에게 부와 자원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런 이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제 정치적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원리다. 그래서 브레턴우즈 체제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세계 경제를 통합하는 제도가 필요하다.”(401쪽)


 

해링턴은 7장에서 생산구조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사회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화가 사회적 소유권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사회 축적 구조도 바꿀 수 있다.

“앞으로의 사회화는 민주주의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421쪽)

“새로운 사회주의의 근본적 구상은 모든 경제적 결정 과정에 노동자 대표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426쪽)


 

8장에서 저자는 오히려 21세기에는 구성원들 간에 타협을 통해서 점진적인 개선을 해나가는 유토피아주의를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 가능성을 스웨덴에서 찾는다.

“기업에 기반한 성장이 대부분의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케인스주의에 입각한 사회 민주주의적 가정은 폐기되어야 한다. 목표는 사회 정의와 민주적 참여를 바탕으로 한 질적인 경제 성장이다.”(439쪽)

 

마지막 9장에서 해링턴은 새로운 사회주의의 방향을 ‘비전을 가진 점진주의’로 정의한다. 그는 지난 백 년간의 투쟁을 통해 급진적으로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점진적으로는 변화시켜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펼쳐질 사회주의자들의 운동 또한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그가 ‘점진주의’를 내세우는 중요한 근거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계급이 다양하게 분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노동 계급의 주도로 각 계급계층의 동맹을 구성하고 “공동의 목적을 내세워 복잡 다양한 힘을 결합해야” 한다. 또한 동맹은 “경제 사회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문화에서도 낡은 질서에 대응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의 ‘도덕적, 지적 개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이유들이 ‘점진주의’의 근거이다.
“이것은 사회주의로의 전환이 마르크스를 포함해 다른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훠씬 더 오래 걸리고 근본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528쪽)

“(교훈을 얻는다면)사회주의는 자유와 연대, 정의를 이룰 수 있는 체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을 가진 점진주의를 향한 노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느린 종말의 시대’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577쪽)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를 읽고 필자가 해링턴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그가 내린 결론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뿐더러 현실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가 지배한 지구는 빈부격차와 생태계 파괴, 전쟁 등 점점 지옥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주의 개념이 경제적일 뿐 아니라 비경제적인 내용을 포함해야 하며, 자유와 정의 그리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문화와, 심리 분야 등 사회 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던 소련 및 제3세계의 사회주의 체제가 ‘가짜 사회주의’라는 규정과 “왜 여전히 사회주의가 희망인가?”라는 이유에 대한 해링턴의 분석과 추론 과정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저자가 사회주의가 실패한 원인을 잘못 분석했기 때문이다. 원인을 잘못 찾았기 때문에 6장 이후 그가 제시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방향’ 역시 적절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해링턴은 사회주의가 실패한 첫번째 원인으로 마르크스의 ‘사회화’가 정치경제적인 특면에서 모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르크스가 “사회가 경제관계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에 대해 “루소가 주장한 ‘일반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단일한 형태의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마르크스의 주장을 반박한다. “사회는 대의 정부일 수도 있고 노동자 평의회의 연대 형태, 즉 코뮌일 수도 있으며, 그런 것들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이상은 59쪽)

하지만 해링턴은 “사회가 경제관계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마르크스가 도출해낸 이후 21세기 정치경제학자들과 사회주의자들 대다수가 인정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부정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저자 자신도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가 압도적으로 지배해버린 20세기 지구촌 현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회는 그 어떤 것일 수 있다”라는 ‘불가지론’ 비슷한 주장을 해버린 것이다. 마르크스는 어떤 사회가 특정한 경제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을 이야기했지, 특정한 경제관계가 사회 전체를 지배한다거나 동일하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외면한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지배하는 대다수 국가는 ‘대의 정부’ 형태이고,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지배하는 대다수 국가는 ‘당 주도의 자치국가’ 형태라는 것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 소련은 소련공산당 주도의 소비에트(꼬뮌) 연방공화국이었고, 중국 역시 중국공산당 주도의 자치국가이다.

또한 저자가 마르크스의 ‘사회화’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하는 중에 왜 ‘사회’의 형태에 문제를 삼았는지 어리둥절하다. 그는 ‘팽창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적절한 관리’를 ‘사회화’로 이해하기도 한다. 아마 해링턴은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마르크스의 ‘사회화’ 개념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해링턴은 마르크스주의 ‘사회화’ 즉,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의 대안으로 7장에서 ‘사회화’를 “일상 경제에서 내려지는 각종 결정 과정을 민주화하는 것”(422쪽)이라고 정의한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근본적 구상은 모든 경제적 결정 과정에 노동자 대표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426쪽)고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생산수단의 소유권이라는 경제적 관계에서 제기한 ‘사회화’를 ‘정치적 의사결정권’이라는 정치적 관계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해링턴이 사회주의가 실패한 두 번째 이유로 제시한 것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이론적으로는 올바르지만 자신들의 감정과 신화, 기대를 제거하지 못해서 근본적인 오류를 끌고 갔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수일 수밖에 없고, 그런 다수가 하나로 뭉쳐지고 균일한데다 한가지 목적으로 결합한 것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었다”(61쪽)는 점을 문제제기 한다. 20세기 자본주의의 실상을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도래를 위해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행동하는 단일화되고 혁명적인 노동 계급은 이전에도 없었고 현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20세기 전반부 사회주의 운동이 실패하게 된 핵심 원인이다.”(64쪽)

하지만 해링턴은 마르크스가 규정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개념에 대해 교조적으로 또는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이며, 자본주의적 대량생산 방식이 지배한 20세기 초까지 프롤레타리아트는 급속하게 증가하였고,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계급의 존재나 규모, 혁명성이 아니었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이야기한 것처럼, 노동자 계급이 ‘대중’ 수준의 인식이나 각오가 아닌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혁명적 계급으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정당의 의식화와 지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은 제대로된 노동자 정당(볼셰비키당)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끌게 될 경우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자가 경험했거나 전해들은 유럽 대다수 국가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볼셰비키당 수준의 지도력과 조직성, 대중장악력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이다.


 

해링턴은 사회주의가 실패한 원인 중 가장 복잡한 세 번째로 제시한 것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놓여 있는 역사적 ‘공간’은 도대체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봉건주의 내에서 발전했듯이 사회주의도 자본주의 내에서 발전”할 수 있고, “부르주아들은 부르주아 혁명을 주도하지 않았”으며,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갑작스러운 봉기야말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전환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한 것은 ‘분명한 자가당착’”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생각으로는 “노동자는 권력을 쥘 수 있지만 복잡한 경제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이상 65쪽) 그리고 “어떤 경우에서든 대중은 갑작스러운 권력의 교체를 원하지 않는다. 단번에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한다는 이론과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서로 충돌했다.”(66쪽)

저자는 거의 대다수 좌우파 경제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부르주아 혁명’을 영국 등 일부 국가의 사례만을 인용해 부정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아주 특이하고 고집스럽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봉기’와 ‘노동자들의 경영 능력 부정’ 그리고 ‘갑작스러운 권력 교체에 대한 대중의 거부’와 같이 학문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않는 자신만의 ‘주장’이나 ‘주관적 판단’을 이론적 근거로 삼는 무리수를 둔다. ‘봉기’와 ‘전쟁’ 등 무력에 의한 방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회주의 체제로 이전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을 ‘가짜 사회주의 시대’라고 폄하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1917년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1918년부터 몇 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이 러시아 반동세력의 반혁명을 지원한 사실과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 등지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속속 들어서자 미국 등 자본주의 진영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무력으로 사회주의 진영을 공격한 사실에 대해 해링턴은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만약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해링턴이 ‘갑작스러운 봉기’와 ‘갑작스러운 권력 교체’라는 개념을 새로이 고안한 이유는 9장 ‘비전을 가진 점진주의’라는 자신의 주장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링턴은 사회주의가 실패한 네 번째 이유로, 사회주의 운동이 세계화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국가의 세계화를 과소평가”했고, “프롤레타리아트은 자연스럽게 세계화될 수 있다고 과대평가”한 것이 “마르크스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개별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세기 동안 세계화 문제를 풀지 못했다”고 비판한다.(73-74쪽)

하지만 마르크스가 과소평가한 것은 ‘국가의 세계화’가 아니라 ‘자본의 세계화’였으며,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연스럽게’ 세계화될 수 있다고 밝히지 않았다.(그리고 해링턴 본인이 밝혔듯이 ‘기업의 세계화’는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났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정당과 운동가들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화가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사회주의자들뿐 아니라 자본주의자들과 시장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개혁가도, 정치가도, 경제학자도 해결하지 못한채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링턴이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대응으로 참고한 사람이 이미 실패한 사민주의 정치가인 빌리 브란트와 오토 바우어이다. 저자는 6장에서 브란트와 바우어의 아이디어를 기초로 “순수한 도덕적인 연대와 더불어 자기 이익 확대라는 가치에 기반”을 둔 ‘국제 정치경제 기구’를 설립하자고 제안한다.(401쪽) 자본가들이 정치와 사회경제 전반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관료나 정치인이 ‘순수한 도덕적인 연대’라는 가치에 따라 국제협력에 나선다는 발상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를 지탱하고 있고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정당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는 것을 잊었나?


 

해링턴은 기존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사회주의’, ‘사회화’의 개념을 새로 제시한다. 여러 가지 개념이 제시되는데,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을 재해석하거나 독자적인 해석을 내린다.

사회주의는 여전히 자유와 정의를 이뤄내기 위한 희망이다. 사회주의는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한 논리적 대응이다."(49쪽)

“새로운 사회주의의 근본적 구상은 모든 경제적 결정 과정에 노동자 대표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426쪽)

“사람들이 경제적 압박에 종속되기보다는 자기 자신만의 계획과 욕망에 따라 쓸 수 있는 자유 시간을 늘리는 것은 새로운 사회주의의 핵심목표이다.“(453쪽)

“자유롭고 공동체주의적인 직접 생산자들의 연합이라는 사회주의의 두 번째 비전”(476쪽)

“사회화는 경제 문제를 넘어서 모든 사회 부문으로 확장되는 사안이다. 사회화는 문화적이고 심리적이며 개인들의 자아실현이란 의미까지 포괄한다.”(554쪽)


 

그런데 해링턴이 제시하는 ‘사회주의’ 개념과 ‘사회화’ 개념은, 과거와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 있고 다분히 추상적이다.

그가 제시한 ‘자유’와 ‘정의’라는 개념은 다분히 낭만주의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가 섞여 있다. 철학적으로 보면 ‘자유’는 근대적 자유이면서 사회경제적 관계가 배제된 ‘정치적’ ‘개인적’ 자유에 그칠 수 있으며, ‘정의’라는 개념 또한 사회경제적, 계급계층적 입장에 따라 상대적인 의미에 그칠 수 있다. 또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현대 사회가 다양한 계급계층으로 분화되었고 이에 따라 앞으로의 사회주의가 경제적인 요소뿐 아니라 문화,심리적인 다양한 요소까지 감안해야 한다면서도 “노동자 대표가 경제적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사회화’로 재규정하는 부분에서는 차라리 저자가 ‘사회화’라는 개념을 폐기하고 사회주의의 핵심 이념을 위해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회화’를 생산수단의 소유관계 등 사회경제적 관계를 뛰어넘어 ‘자아실현’으로까지 확장한 것도 사회주의의 ‘목표’ 내지 ‘목적’과 ‘사회화’라는 ‘수단’을 혼동한 결과일 것이다.

여러 장에 걸쳐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개념도 등장하는데, ‘민주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거의 사용되지 않듯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정치와 경제처럼 영역이 다른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인민주권’과 같은 개념으로 ‘인민이 사회와 국가의 주인이고 결정의 주체’라는 뜻이다. 대규모 주권자로 구성된 국가에서 엄밀한 의미의 민주주의, 특히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한 국가는 없다. 다만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은 다당제와 삼권분립 체제도 있고 직접정치체제도 있으며, 꼬뮌연합 자치체제도 있고 일당독재와 자치가 결합된 체제 등이 존재할 것이다. 
 

[2017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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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성의 공동체
이병창 지음 / 먼빛으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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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서평] 21세기 사회변혁을 위한 철학적 무기 <자주성의 공동체>

이병창 저, 2071. 3., 430쪽, 먼빛으로


 

이병창 전 교수는 동서양 철학을 함께 연구한다. 국내에 드문 경우라 한다. 특히 그는 대다수 철학계 학자들과 달리 현실과 유리된 철학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에 나서는 제반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규명하려 노력한다. 그만큼 마음이 따뜻한 철학자다. 또한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후에 오히려 본격적으로 ‘현실’에 대한 철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 교수는 <청년이 묻고 철학자가 답하다>(2015 도서출판 말)와 <현대철학 아는 척하기>(2016 팬덤북스)에 이어 2017년에 이 책 <자주성의 공동체>를 출간했다. 대학에서 못다한 철학 연구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출간한 책과 마찬가지로 <자주성의 공동체> 역시 연구의 출발점은 현실이었다.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자조할 정도로 한국의 사회경제적인 현실은 처참하다. 그 처참한 현실의 실체는 ‘빈익빈부익부’라 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분열, 자산과 소득의 ‘빈부격차’다. 이 교수는 사회경제적인 분열 못지 않게 마음의 분열 즉, 정치사상적인 분열도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나는 최근 마음이 아팠다. 우리 사회의 분열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경제적인 양극화로 등장한 사회적 분열이다. 그에 못지않게 정치 영역에서도 분열이 극심하다. 보수도 진보도 어김없이 분열을 겪고 있다. 분열은 창조의 원천이 되기보다 극심한 파쟁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분열이 어느덧 우리 마음속까지 파고든 것이 아닌가 걱정한다.”

““분열의 원인은 무엇인가? 분열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나는 스스로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면 분열을 극복할 수 있을까? 분열의 출발점은 신자유주의라는 사회 체제에 있을 것이다. 분열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특징인 파편화 때문이다.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라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먼저 우리 마음속의 분열부터 극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9쪽)


 

이병창 교수는 정치사상적 분열의 원인을 탐구했다. <자주성의 공동체>는 한국사회의 정치사상적 분열의 원인을 철학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연구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그는 한국인들의 마음이 분열된 원인을 21세기 한국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서 찾았다. 그리고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극복하고 미래의 한국사회를 위한 철학적 방향을 모색한다. 그가 최근 연구하는 철학의 방향은 책의 제목 그대로 ‘자주성의 공동체’ 철학이다.


 

<자주성의 공동체>는 1부 ‘자주성의 의미’에서 이 교수는 우선 자주적 의지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여기서 자주성의 정치적 의미와 윤리적 의지가 구분되며, 자주적 의지를 욕망과 대비하여 서술한다. 욕망과 자주적 의지의 대비 속에서 자유주의의 자유 개념이 비판된다.

이어서 2부 ‘자주성의 역사적 형태’에서는 자주적 의지의 다양한 역사적 형태가 다루어진다. 여기서 운명과 의무감(자율성) 개념 그리고 낭만주의적 양심(자발성) 개념이 다루어지면서 그 한계가 지적된다.

마지막으로 3부 ‘자주성의 공동체’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자주적 의지로서 사랑의 정신을 살펴본다. 바울의 사상 그리고 동학의 사상이 다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이런 종교적 공동체 정신을 극복하고 자주성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학적인 길, 유물론적인 길을 모색한다.


 

2017년 현재 한국사회에 가장 만연되어 있는 철학 사조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미국 등 서구 주류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확대된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1990년대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의 학계와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계와 경제계 그리고 법조계와 시민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역을 점령했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에 대한 자세한 철학적 이론은 <청년이 묻고 철학자가 답하다>와 <현대철학 아는 척하기>를 참고하면 좋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핵심 개념은 ‘자유’와 ‘욕망’, ‘선택’과 합의’, ‘보편’과 ‘평화’ 등이다.


 

이병창 교수는 먼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핵심 개념과 주요 논리를 비판한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가 지배했던 1980년대 중반 이후 30년 간 미국과 서구사회는 지구 전역에 폭력과 침략전쟁, 총기난사와 테러, 의심과 배제, 이주민과 갈등을 증폭시켰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자유’를 입에 달고 다니지만, 그 자유는 진짜 자유가 아니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에 그친다. 그 결과 자유는 다만 상상에만 머물며 실제로 의지를 지배하는 것은 ‘욕망의 힘’이다. 즉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욕망의 제한 없는 해방’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발생적인 힘이지만 외적인 자극이나 내적인 충동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사회적 현실이 이리저리 변동함에 따라서 욕망도 춤추니, 개인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가조차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기초하여 ‘합의의 공정성’을 소리 높여 떠들지만, 공정성이란 말로만 그칠 뿐이다. 공정성이라는 것은 자기의 욕망을 감추는 구실에 불과하다. 서로 불신하는 가운데 어제 합의했던 것도 오늘 깨어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평화’와 ‘상호존중’이라는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 다니지만 그것은 ‘폭력’을 감추는 장식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배제하면서 급기야 폭력을 행사하니, 미국사회에서 난무한 무차별 총기 난사가 이를 입증한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 ‘보편적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제국주의적 침략이 모든 폭력의 원조다. 이로부터 전쟁 이주민과 노동 이민에 대한 유럽 인종주의자의 ‘테러’가 나온다.”(10쪽)


 

포스트모던 자유주의가 환영하고 편승했던 서구의 철학자들은 포스트모던 자유주의가 폭력과 전쟁과 테러만을 가져오자 이를 극복하려고 시도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1세기에 등장한 들뢰즈와 데리다, 라캉과 지젝 등이 제기한 ‘생명력’의 철학 개념이다. 그러나 이병창 교수는 ‘생명력’ 개념을 비판한다. ‘생명력’ 개념이 수동적인 의지인 ‘정념’의 수준에 머무르며, ‘개인’ 차원의 의지에 그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는 한때 억압과 차별을 제거하자는 아름다운 말이었으나 신자유주의 시대, 현실의 파편화가 극단화되자 자기의 내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자유는 말뿐이었으며 실제로는 욕망이었다. 그 결과 전 세계에 걸쳐서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철학적 시도가 등장했다.

최근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 20세기 초 모더니즘으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 등장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은 근대 계몽주의를 비판하면서 과학과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관과 감수성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 결과 본질을 직관하는 계시, 꿈, 무의식, 환상 등에 기초한 다양한 모더니즘이 발전했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들뢰즈의 철학과 라캉-지젝의 철학은 모더니즘의 부활이라 간주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들뢰즈의 철학을 보자. 거슬러 올라가자면 19세기 초 셸링은 칸트의 의무 개념을 극복하고자 생명력 개념을 제시했다. 칸트는 도덕법칙을 그 자체로서 따르는 의지를 순수의 지라 했다. 그는 순수의지(자유의지)를 의무 또는 자율적 의지라고 보았다. 그러나 순수의 지는 강제적이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셸링은 칸트를 비판하면서 순수의지 대신 양심의 개념을 제시했다. 양심은 도덕법칙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며 동시에 도덕법칙을 즉각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양심이 인간에게 가능한가가 문제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셸링은 미분 기하학에 나오는 미분적(differential) 힘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생명체에도 미분적 힘이 내재하며 이를 ‘생명력’이라 했다. 생명력은 스스로 실행하는 자발적 능력이다. 셸링은 이를 통해 양심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셸링이 제시한 생명력 개념은 20세기 초 베르그송의 철학에 영향을 주었고 20세기 후반에는 들뢰즈의 철학을 통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부활했다. 들뢰즈 역시 생명에 내재하는 미분적 힘을 핵심적인 개념으로 삼는다. 생명력은 사유에 머무르지 않고 자발적으로 실행될 수 있으므로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의 자유 개념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들뢰즈 철학 연구자가 부쩍 많아졌다.

그러나 생명력 개념이 포스트모던 자유주의와 그로부터 유래된 분열을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점을 회의한다. 왜냐하면 생명력 개념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력 개념은 수동적인 의지인 ‘정념’의 수준에 머무르며, ‘개인’ 차원의 의지에 그친다. 정념의 수준에 머무르기에 생명력은 자기도 어쩔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행동한다. 또한 생명력을 아무리 고양하더라도 개인의 차원에 그치는 한, 개인의 힘으로 시대의 어둠을 극복할 수는 없다. 개인의 생명력은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서 절망과 도피 또는 자학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11~12쪽)


 

이병창 교수는 자유주의의 문제는 ‘자유’라는 개념이 철저하지 못한 데 있었으니, 포스트모던 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유’라는 개념을 더 철저하게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이 교수는 ‘자주성’이라는 개념을 발견하게 되었다.

‘욕망의 선택’인 ‘자유’는 ‘도덕적 결과주의’에 빠지지만 ‘행위를 실행하는 즐거움’이 목적인 자주적 의지는 ‘도덕적 행위주의’에 기반한다.


 

“자유는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것을 자기의 것으로 선택한다. 그러나 자유는 마음속의 가능성이다. ‘자주적 의지’는 마음 속에 선택된 욕망 즉 ‘가치’를 실제 행위로 실행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자주적 의지의 방식은 욕망의 방식과 다르다. 자유주의가 결국 복귀하고 마는 욕망은 충동적이다. 즉 욕망은 항상 최종 결과를 얻는 것 또는 이를 통해 얻는 쾌락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욕망은 결과를 향해 충동적으로 달려간다. 이와 달리 자주적 의지는 자신이 선택한 가치에 충실하고자 한다. 자주적 의지는 가치에 충실한 행위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 결과의 만족이 아니라 ‘행위를 실행하는 즐거움’이 자주적 의지의 목적이다. 욕망은 ‘도덕적 결과주의'라 할 수 있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결과만 도달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주적 의지는 ‘도덕적 행위주의'라 볼 수 있다. 행위를 하는 과정, 하나하나의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13쪽)


 

이병창 교수는 넓게 보면 칸트의 ‘순수의지’ 개념이나 셸링의 ‘생명력’ 개념도 자주성의 한 형태라고 설명한다. 모두 결과보다는 행위를 강조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의지나 생명력은 개인적 차원의 의지, 정념에 머무르는 의지이다. 이런 의지로는 자유주의의 자유 개념을 극복하기에 한계가 있으므로 이 교수는 자주성의 더 고차적인 형태를 모색한다.

그는 이런 더 고차적인 자주성은 정념을 극복하는 ‘능동적 의지’이어야 하며 또한 개인의 의지를 넘어선 ‘공동체 정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직 공동체의 힘을 통해서만 역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지렛대의 받침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념을 넘어선 능동적 의지만이 흔들림이 없이 새로운 역사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공동체 정신의 단초를 기독교의 ‘성령’의 개념과 동학사상의 ‘모심’의 개념에서 찾았다.


 

“이런 공동체 정신은 우선 기독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의 사랑 정신은 종교적 사유에 지배되고 있다. 종교적 사유의 기초는 창조주라는 신 개념이다. 마르키온은 이런 창조주 개념을 부정하면서 그에 대치되는 ‘성령’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이를 통해 기독교의 사랑 정신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바울은 율법을 비판한다. 율법은 도덕적 규범을 실행하는 데서 ‘훈육’의 방식을 사용한다. 훈육은 행위를 처벌하거나 보상해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방식이다. 훈육이 의존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나 훈육을 강화할수록 욕망도 강화하고 강화된 욕망은 도덕을 더욱 자주 위반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이 오히려 죄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반면 바울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믿음이란 곧 ‘성령과의 합일’이다. 성령이 사랑의 정신이므로 믿음이란 사랑의 정신을 온몸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가 죽음으로 실천한 사랑의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다.

사랑은 흔히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라 말한다. 사랑의 정신은 무엇이든 스스로 실행하는 가운데서 즐거움을 얻는 정신이다. 이런 점에서 사랑의 정신은 자주적인 의지이며, 자발적인 생명력보다 더 탁월한 능동적인 자주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율성이나 자발성은 어디까 지나 개인의 의지에 머무르는 것이다. 반면 사랑의 정신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정신은 흔히 말하는 정념의 사랑과 구별된다. 정념의 사랑은 대가를 기대하는 사랑이며 한 개인, 한 가족, 한 민족에 대한 사랑에 그친다. 그러나 성령의 정신인 사랑은 한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동체 정신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정신은 자신이 곧 공동체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공동체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짊어지는 정신이다.

자주적 의지의 최고 형태는 ‘사랑의 정신’이다. 사랑의 정신을 통해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 이런 사랑의 정신은 사도 바울의 삶 속에서 구현되어 있다. 사도 바울의 삶은 한마디로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시도였다. 그가 「로마서」를 쓴 이유는 로마 교회에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고린도서」를 쓴 이유도 고린도 교회에 베드로파와 바울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었다.”(14~15쪽)


 

이병창 교수는 사도 바울의 사상을 통해 동학사상을 재발견하게 된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새로운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열어 나가고 있었다. 바울의 ‘믿음’ 개념은 동학사상에 ‘수심정기(守心正氣)’라는 개념으로 나타난다. 바울의 ‘사랑의 정신’은 동학사상에서 모든 사람을 천주로 모시라는 ‘모심의 사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바울의 사상과 동학사상에 차이도 있다. 바울의 믿음이 ‘성령과의 합일’을 우선시하는 것이라면 동학사상에서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이웃을 통해 천주를 발견한다. 전자가 수직적 관점이라면 후자는 수평적 관점이다.

이 교수는 그렇지만 사도 바울의 사랑 정신이나 동학사상에서 모심의 정신은 역사적으로 망각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렇게 망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성령과의 합일’ 또는 ‘수심정기’라는 믿음 개념이 수동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믿음 개념은 다시 창조주 개념을 불러들인다. 이 신은 처벌하고 구원하는 신이니 이를 통해 율법과 구원이라는 개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독교의 사랑이나 동학사상에서 모심은 개인적인 차원에 그치고, 사회적 실천을 결여한다. 기독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너무나도 모호하고 비역사적이다. 동학의 ‘후천개벽(後天開闢)’이라는 개념 역시 신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공동체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창조주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능동적으로 나오는 것에 의존해야 한다. 또한 사랑의 정신으로 결합할 공동체는 막연한 이웃 사랑이 아니라 현실적인 역사 속에서 객관적으로 실현되는 역사의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가능성은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이 글이 목표로 하는 지점은 바로 이런 물음에 있다.”(16쪽)

이병창 교수는 결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함을 통해 그런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지만, 마르크스는 역사과학을 통해 객관적인 역사의 법칙을 발견했다. 이런 역사 법칙에 기초하여 그는 새로운 역사의 이념을 발견했다. 그것은 ‘프롤 레타리아의 해방’이라는 이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실천의 문제에 부딪혔다. 마르크스주의도 ‘욕망’과 ‘자유에만’ 기초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는 인간의 욕망에 기초하여 역사의 이념을 실천하려 했다. 그것이 레닌의 ‘전위(前衛) 정당’ 개념이며, 이 정당 개념은 부르주아 정당을 모방했다. 하지만 이런 전위 정당은 역사적 실천을 통해 드러났듯이 종파주의와 관료주의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다. 이런 종파주의와 관료주의는 아방가드르 정당이 욕망에 기초하고 유기적인 구성을 강조하는 한 불가피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를 역사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실천의 원리가 나와야 했다. 이는 과학적으로 인식된 역사의 이념을 실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이념 공동체를 의미한다. 어디에서 이런 실천의 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마르크스주의에서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욕망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욕망이 사회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가장 근본적인 주장이 아닌가?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인간론은 자주적 공동체 정신과 충돌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해서 이병창 교수는 세 가지 차원에서 대답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자주적 공동체 정신과 결합했던 역사적 실천 사례와 자주성의 이념 공동체에 이르는 이론적인 가능성 그리고 ‘유적 존재’라는 마르크스의 인간론이다.

“하나는 이미 역사적인 실천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자주적 공동체 정신과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의 노농혁명군인 ‘홍군(红军)’이 ‘만리장정(萬里長程)’에서 보여주었다. 1930년대 동만에서 전개된 항일 유격대의 투쟁 역시 이런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입증한다.

문제는 그런 자주성의 이념 공동체에 이르는 이론적인 가능성이다. 다행히 헤겔의 절대정신 개념이 이런 가능성을 밝혀 주었다. 헤겔은 주체라는개념을 통해 개인적인 의지 속에 이미 공동체 정신이 내재한다고 보면서 이를 ‘절대정신(絶對情神, absoluter Geist)’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성령 개념에 해당된다. 헤겔은 절대정신이 소외되면서 신 개념이 출현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마르크스 역시 청년기에 헤겔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으니 그의 인간론 가운데서도 헤겔의 절대정신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인간론 가운데 ‘유적(類的) 존재(Gattungswesen)’라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마르크스에게 두 인간론이 있다. 하나는 사회관계 속에서 욕망하는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유적 존재 즉 ‘자주적 공동체 정신’이다. 이 두 인간론은 하나로 통합된다.”(17~18쪽)


 

이병창 교수는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역사 인식’의 측면과 ‘역사적 실천’의 측면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개념과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지닌 인간’ 개념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 인식의 측면에서는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다. 역사를 만드는 다수 대중은 욕망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이념을 실현하는 혁명적 실천은 이념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은 자각된 소수이며, 이들은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 이런 자주적 공동체 정신에서 나오는 이념 공동체만이 역사의 이념을 실현할 힘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이론적 인식에서 인간론과 실천적 차원에서 인간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구분을 통해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개념과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지닌 인간’ 개념이 공존할 수 있으며, 이론적으로 인식된 역사적 이념과 실천적으로 파악된 자주적 공동체 정신이 결합될 수 있다.”


 

이병창 교수는 마지막으로 인간이 자주적 공동체 정신에 이르는 길은 역사적 실천을 통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진정으로 갈망하는 사람이 ‘인민에 대한 믿음’을 통해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얻을 수 있으며, ‘인민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짊어지는 혁명가가 탄생한다.

“진정으로 절망한 자만이 간절하 게 바란다. 이런 간절한 바람은 창조주나 메시아의 힘에 의존하게 하지 않는다. 이 간절한 바람은 오직 ‘인민의 힘’을 철저하게 믿게 한다. 인민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자주적 공동체 정신을 얻는다. 바울이 사도는 신 앞에서 무한 책임을 지는 존재라고 주장하듯, 혁명가 역시 인민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짊어지는 존재이다.”(18쪽)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면서 전세계의 ‘가진 것 없는’ 대다수 인민들의 희망도 사라지는 듯 했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가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한 ‘혁명적 철학’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실패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기에 태동한 자본주의 체제가 21세기 자본주의 체제와 다르듯이, 19세기 중반에 마르크스에 의해 태어나고 20세기 초반에 레닌에 의해 상종가를 쳤던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를 그대로 고수한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도 사회체제의 역사에서도 적합하지 않다.

소련과 동구뿐 아니라 현존하는 사회주의 체제와 이념(사회주의를 표방하거나 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관계없이)은 과거의 혁명 사상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면 안된다.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모택동주의, 게바라주의, 볼리바리아니즘은 당시 시대와 현실에 적합할 수 있지만, 변화하는 인류와 사회경제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자주성의 공동체>는 새로운 사상을 찾지 못해 혼란스럽과 좌절하는 철학자들과 혁명가들에게 작은 선물이 될 수 있다. 그만큼 마르크스와 레닌, 모택동과 체 게바라 이후 세상과 사회를 바꿀, 소외되고 빼앗긴 전세계 인민들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혁명 사상을 위해 이병창 교수의 ‘자주성의 철학’은 시사하는 점이 많을 수 있다. 사회변혁을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주성의 공동체>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출발했지만 보편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 이병창 교수는 국내 철학사상이나 철학자만 다룬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철학도서’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철학이라면 떠오르는 ‘개념’과 ‘이론’과 ‘철학자’와 각종 ‘철학사조’를 상당수 다룬다. 따라서 평소 철학에 관심이 없었거나 기초지식이 없는 일반 독자는 저자의 문제제기와 논리를 따라잡기가 매우 어렵다.

필자 역시 이미 이병창 교수의 저서를 여러 권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각 책의 논리와 주제의식과 철학이론을 따라잡기가 여의치 않다. 여러 번 읽어야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자주성의 공동체> 서문을 읽어보면, 이병창 교수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비판에서 자주성의 공동체 철학에 이르는 논리적 과정이 잘 요약하여 정리되어 있다. 서문과 비교하면서 본문을 읽으면 철학적 논의 비판의 중심을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주성의 공동체>에 대한 필자의 세부적인 학습내용은 http://blog.daum.net/hy2oxy/8693661 를 참고


 

[2017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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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 유엔군 사령부
이시우 지음 / 들녘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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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유엔군사령부는 거대한 사기 <유엔군사령부, UNC>

이시우 저, 2013년, 841쪽, 들녘


 

이시우 작가는 2006년 가을 버시바우(Alexander Ver- shbow) 주한 미국 대사와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는 그 자리에서 질문 하나를 던졌다.

“1975년 유엔총회에서 유엔사 해체 결의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유엔사 해체를 약속하고도 이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유엔사 해체는 유엔안보리 결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1950년 10월 7일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38선 북쪽 지역에 대한 점령 주체가 유엔사라는 주장은 접지 않고 있다. 둘 다 유엔총회 결의인데, 왜 하나는 유효하고 다른 하나는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당시 버시바우는 “나중에 알아보고 답변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대사관 직원을 통해 차일피일 미루었고 결국 오늘 현재까지 답변은 없다. 대신 2007년 4월 검찰은 이시우 작가를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시켰다.


 

1948년부터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별개의 국가와 정부가 존재한다. 남쪽의 국가인 대한민국에는 1950년 한국전쟁 때부터 외국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 당사자는 외국군(유엔군)이었다. 그 외국군은 주한미군으로 불리기도 하고 유엔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대한민국의 군대의 작전권을 가지고 있다. 현재 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그 작전권을 ‘빠른 시일 내에’ 회수하겠다고 주권자들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이시우 작가는 유엔군의 존재와 역할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단순히 군작전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어느 개인이나 단체도 휴전선(군사분계선)을 넘어가려면 유엔군사령부(사령관)의 허가가 필요하다.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올라갔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유엔군사령관의 허가를 받은 후 군사분계선을 지날 수 있었다.

남북교류를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든 정부관료, 정치인, 기업인, 개인 단체들도 개성공단, 경의선, 동해선 남북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공사과정에서도 빠짐없이 유엔군사령관의 허가가 필요하다.

-관련기사 : 남북 직항로와 유엔군사령부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3

59년 ‘금단의 선’ 넘은 한걸음, 평화의 이정표로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240112.html


 

또한 만의 하나, 북쪽(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붕괴하거나 전쟁, 기타 이유로 북쪽을 일부가 권력 내지 통제의 공백상태가 발생할 경우, 대한민국의 정부나 군대가 아닌 유엔군사령부가 그 지역을 관할하게 된다. 남북간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거나 북-미간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여 한국군이 자동 개입되면 한국군의 작전권까지 유엔군(미군)이 지휘하기 때문에 비상계엄이 내려지고 계엄사령관이 임명되더라도 그 사령관은 마찬가지로 유엔사령부(주한미군연합사령부)의 지휘통제를 받아야 한다.


 

“1954년 11월 17일, 38선 이북과 비무장지대 사이에 위치한 소위 수복지역에 대해 유엔사령관은 한국 정부로 행정권을 이양했다. 이양 직전인 8월 유엔사령관이 이 승만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엔사령관은 이 지역이 유엔사의 군사점령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1962년 비무장지대 내 민간인 마을인 대성동에 대한 행정권 이양 문서에서도 역시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은 유엔사령관의 군사점령지역임을 확인했다. 정전협정문에 중복 등장하는 군사분계선 이남에 대한 유엔사령관의 군사통제(military control)란 곧 점령을 의미함이 확인된 것이다. 유엔사가 현행 헌법상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제약한다는 혐의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자주국방이나 주권과 통치 차원에서라도 정부는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 있다.”(14쪽)


 

그 이유는 유엔(군)사령부와 정전협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이 존재한다는 이유는 아직 한반도가 전시(전쟁)상태라는 것이며, 전쟁상태에서는 유엔군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통치하는 ‘점령군’으로서 기능한다. 유엔군(미군)은 한국정부의 동의 없이 언제든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즉,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는 한반도 북쪽에 대한 통제권 또는 관할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정전협정이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으로 대체되고 유엔군(미군)의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이 반환되어야 가능하다.


 

“1950년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의한 참전 결정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이 유엔사의 논리다. 현재 한반도는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로 여전히 1950년 이래의 전시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삼는 듯하다. 때문에 이라크전처럼 골치 아프게 유엔안보리 결의를 끌어내기 위한 외교전을 펼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한국 대통령이 전쟁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기회는 이미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2013년 현재까지도 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사사령관이 행사한다. 형식적으로는 군통수권자인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합의하여 한미연합사사령관에게 지시를 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는 1978년 유엔사 해체에 대비하여 창설된 한 미연합사 창설 공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공문에 의하면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권은 유엔군사령관직을 겸임함으로써만 그 효력이 발생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직 작전통제권 환수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단정하긴 어렵지만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대신 유엔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미국은 지휘구조를 변환해갈 것이다. 이미 그러한 절차는 오래전부터 가동되어왔다. 몇 년 동안 유엔사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것과 관계없이 북에 대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유엔사의 권한은 여전히 유효하다. 결국 유엔사 존재만으로도 유엔안보리 결의 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15쪽)


 

그렇지만 이시우 작가의 <유엔군사령부 UNC>는 정전협정의 문제까지도 넘어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유엔군사령부’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존재 자체에 대한 것이다. 2006년 가을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에게 질의했던 것에 대해 저자 자신이 대신 대답한 셈이다.

<유엔군사령부>는 북한의 정치선전이라는 틀에 갇혀 있던 ‘유엔군사령부의 불법성’을 학문적으로 조망한 책으로 유엔군사령부에 대한 최초의 통합학문적 연구서이다. 어이없게도 국내 군사학, 정치외교학, 행정학, 법학 어느 분야에서도 ‘유엔’과 ‘유엔군사령부’에 대해 제대로 연구한 논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과 주권자들의 생존과 재산을 좌우하는, 국가와 정부와 군대의 존립근거에 대한 것임에도 거의 대부분 연구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유엔군사령부에 국한되지 않고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유엔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고 한국전쟁에 대한 전통적 접근법인 발발 책임을 묻는 집요한 연구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당시 국내문제인 내전적 충돌이 국제문제인 전쟁으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집중하였다.

총 2부로 구성되어진 이 책은 1부에서 ‘유엔체계’를 분석한다.


 

“국가에 비해 국가간체계는 여전히 역동적인 변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이제 국가나 개 인도 국가간체계에서 완전히 무관하거나 고립될 수는 없다. 국가간체계는 국가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도 오히려 요구된다. 국가간체계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대립관계와 균열과 분극이야말로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체계가 발전하는 데서 핵심 요인이다. 1부는 현 국가간체계에 내재한 적대모순과 균열이 생성·발전되고 구조화된 과정을 추적한다. 그럼으로써 근대 국가간체계의 하위 체계를 이루는 유엔체계가 미국패권체계에 의해 어떻게 자기제약, 자기배제 되는지를 밝힌다”(30쪽)


 

2부에선 유엔군사령부 창설과정을 분석한다. 미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되기까지 한 달간을 시간적 범위로 보여주며 한국전쟁 중 창설된 유엔군사령부의 합법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미군사령부는 유엔의 군대인것처럼 행세하며 ‘통합군사령부’ 대신 ‘유엔사령부’란 작명을 통해 현실을 은폐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2부에서의 연구는 미국이 유엔의 이름으로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되기까지 정확히 한 달간을 시간적 범위로 한다. 이 시간은 유엔체계 전체의 시간과 비교해볼 때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은 역사적 시간이기도 했다. 하나의 체계가 생성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역사란 체계의 관점에서 보면 체계의 발생·발전과정이다. 새로 탄생한 체계란 새로운 의미의 틀이기도 하고, 새로운 실존의 틀이기도 하다. 또한 체계는 내용의 구조란 점에서 형식이다. 따라서 하나의 역사적 체계는 역사적 형식인 것이다.”(30쪽)


 

이시우 작가는 한국인 대다수가 들어 왔던 ‘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가 유엔에서(유엔총회 결의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든) 창설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정부와 미군은 의해 유엔총회에서 결의한 미국 산하의 ‘통합군사령부(Unified Command un the US)’라는 명칭을 교묘하게 바꾼 후 지금까지 부당하고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엔체계에 내재된 적대모순과 그 발현으로서의 균열은 봉합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개입을 결정하면서 유엔체계 내에 봉합되어 있던 적대와 균열이 폭발했다. 그 뒤로 이 순간은 지금까지 유엔체계의 외상으로 남아 있다. 그리하여 상처가 건드려질 때마다 체계를 가로지르는 적대와 균열은 꿈틀댄다. 봉합할 순 있으나 치유될 순 없는 상처인 것이다.

한국전쟁 중에 창설되는 유엔군사령부는 합법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역사는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된 적이 없음을 보여준다. 1950년 7월 7일 유엔 안보리를 통과한 것은 ‘미국의 통합군사령부’ 창설 권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미군사령부는 유엔의 군대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속임수다. 유엔안보리에서는 유엔군사령부의 창설을 권고한 적도 없고 유엔사령부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유엔의 조직도 아니다. 그런데도 통합군사령부는 유엔군사령부라는 작명을 통해 이러한 현실의 균열을 은폐하는 데 성공했으며, 많은 논쟁이 제출되었고 갈등과 충돌이 빚어졌지만 이 또한 봉합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통합군사령부 대신 사용된 유엔사령부란 이름 하나가 이런 거대한 환각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가장 탁월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이다.”(31쪽)


 

이시우 작가는 이 이외에 유엔군사령부가 사용하는 유엔깃발이 유엔에서 공식 결의된 적이 없다는 것과 유엔군사령부라는 이름으로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 등 한국인 대다수가 모르는 채 한국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는 유엔군/미군 체계의 부당한 모습을 <유엔군사령부 UNC> 곳곳에서 고발하고 있다.

기타 한국전쟁 당시 남북 상황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정리 내용은 아래와 같다.


 

'1950년 유엔체계와 미국의 패권' http://blog.daum.net/hy2oxy/8693790

'이승만의 군작전권 양도 과정에 관한 새로운 증언과 기록' http://blog.daum.net/hy2oxy/8693624

'정전협정은 문재인 정부를 한방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 http://blog.daum.net/hy2oxy/8693648

'유엔체계의 구성과 속성' http://blog.daum.net/hy2oxy/8693789

'한국전쟁 당시 유엔안보리 결의의 문제점' http://blog.daum.net/hy2oxy/8693651

'모택동과 김일성에 대한 소련, 스탈린의 배신(?)' http://blog.daum.net/hy2oxy/8693655

현재 유엔군은 '유엔의 군대'가 아니라 '미군 주도의 통합군' http://blog.daum.net/hy2oxy/8693788


 

[2017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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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문고본) 요네하라 마리 특별 문고 시리즈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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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제  : Usotsuki Anya No Markka Na Shinjitsu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


 

이 작품은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여성 중 하나인 저자의 프라하에서의 어린 시절을 담아낸 것이다. 저자는 일ㆍ러 통역가이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저자가 다닌, 체코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배경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196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소녀 시절, 일본 공산당 간부인 아버지를 따라 체코에서 살게 되면서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4년간 다녔다. 그녀의 아버지가 공산주의 운동 이론지인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편집위원회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사무실이 프라하에 위치해 있었다.

프라하 소재 소비에트 학교는 세계 각국의 대사관이나 외교관, 공산당 간부들의 자녀가 수학하는 국제 학교였다. 1960년대이니 만큼 소비에트 학교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컸다고 한다.


 

프라하로부터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 요네하라는 프라하의 친구들과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그 연결고리는 차츰 헐거워졌다. 저자 자신이 일본의 교육제도와 인간관계에 적응하느라 지쳐갔고 또 현실의 비중이 점차 커져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추억의 옥석을 가리면서 옛 친구들의 모습과 그들에 대한 기억은 더욱 또렷해졌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동유럽에 크고작은 격동적인 사건이 동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뒤, 요네하라는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수행 통역을 하기로 했던 러시아 주요 인사의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자 옛 친구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단서는 1964년 소비에트 학교에서 헤어질 때 친구들이 이별의 메시지와 주소를 적어준 ‘추억의 노트’뿐이었다. 그리하여 1995년 11월, 프라하 - 부쿠레슈티 - 신 베오그라드를 가로지르는 2주간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두 가지 이야기로 엮여 있다. 한 가지는 요네하라가 1960년대 초반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면서 겪었던 학교 생활과 친구들과의 일화이다. 특히 가장 절친했던 3명에 대한 추억이 중심이다. 소련의 영향력하에 있던 시절, 체코의 소비에트 학교라는 공간적 배경에서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두 번째는 1995년 그녀가 친구들을 찾아가고 만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30년이 지난 세월과 사회주의 체제 해체라는 격동의 세월을 견뎌낸 친구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조국의 운명에 휩쓸려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맞닥뜨리고만 저자의 동유럽 친구들의 모습은 20세기 후반, 동유럽의 격동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해 온 사회주의를 들여다봄으로써, 현재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자본주의 사회제체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프라하 시절 요네하라가 친했던 친구 3명은 그리스인 리차와 루마니아인 아냐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인 야스나였다. 이들과 함께 보낸 프라하에서의 5년은 그 후 40여 년 동안 그녀에게 깊고 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조국’이나 ‘민족’에 대한 그녀의 경험은 인상 깊었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접하고서야 사람은 자기를 자기답게 하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 자신과 관련된 조상, 문화를 이끈 자연조건, 그밖에 다른 여러 가지 것에 갑자기 친근감을 품게 된다고. 이것은 식욕이나 성욕과도 같은 줄에 세울 만한, 일종의 자기보전 보능이랄까. 자기긍정 본능이 아닐까.”(112쪽)


 

그녀가 기억해 내는 1960년대 소비에트 학교의 모습은 이데올로기적인 교과 이외에는 필자가 자라난 1970년대 대한민국의 의무교육과는 천지 차이였다. 학생들을 존중하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은 21세기 한국의 교육 현실보다 앞서 있는 듯 느껴진다.

“소비에트 학교 선생님들은 제자의 재능을 발견하면 과장될 정도로 법석을 피우는 버릇이 있다. 너무 좋아서 그 기쁨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동료와 반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 서구로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 이것 만큼은 러시아가 뛰어났다고 절실하게 느낀 게 있어요. 그건 재능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죠. 서구에선 재능이 자기 개인에 속하는 것이지만, 러시아에선 모든 이의 재산이랍니다. 그러니 이곳에선 재능 있는 자를 시기해서 어떻게 하면 끌어내릴까 안달이죠. 러시아에선 재능 있는 자는 무조건 사랑받고 모두가 받쳐주는데….”(179~180쪽)


 

친구 리차는 한 번도 봤을 리 없는 그리스의 파란 하늘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그건 말야. 정말 쨍하고 깨질 듯이 파래.’라며 자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긴 눈썹으로 테 두른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였다.”

“단 한 점의 구름도 없는 새파란 하늘이, 또 새파란 바다에 비쳐서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거야. 파도는 방금 빨아 넌 냅킨처럼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정말이지 마리한테도 보여주고 싶어.”

리차는 그리스 군사정권의 탄압에서 벗어나 동유럽 곳곳을 전전하다가 체코슬로바키아로 망명한 공산주의자의 딸로, 외모에 관심이 많았고 성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빠삭한 아이였다. <레닌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계몽영화를 보면서는 “마리, 레닌은 꽤나 잘살았나봐”라고 꿰뚫어볼 정도로 냉철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리차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명문 대학인 카렐 대학에 입학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지만, 믿기 힘들 정도로 공부를 못하고 언제나 낙제의 위기를 맞던 친구였기에 요네하라는 그 소문을 믿을 수 없었다.

헤어질 때 적어준 주소지에도 리차의 흔적은 없다. 요네하라는 현 소비에트 학교의 교장이 일러준 그리스인 민단民團을 통해 리차의 소식을 묻기로 한다. 리차의 본명을 알게 된 곳은 카렐 대학 입학생 명단이었다. 리차는 몇 번이나 재시험과 추가시험을 보고 두 번의 낙제를 겪으면서도 의대생으로 무사히 졸업해 독일에서 이주민들을 돌보는 ‘봉사하는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외교관이었던 아냐의 아버지는 루마니아 공산당을 대표해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편집위원으로 프라하에 오게 됐다. 인도 델리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자란 아냐는 남다른 언어감각으로 소련 본국 아이들을 제외하면 가장 러시아어를 잘했고 이야기 솜씨도 빼어난, 사랑스러운 몽상가 타입이었다. 다만 심심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흠이었다. 어린 시절의 마리로서는 일종의 병이라고밖에, 절대로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짓말들이었다.

성인이 된 아냐는 영국 유학중 사귄 영국 남자와 결혼해 영국에서 살고 있었다. 조국 루마니아에 대한 마음이 깊어, 절대로 루마니아를 떠나지 않겠다던 아냐였지만, 이제는 자신을 90%의 영국인으로 믿는 국제인으로 성장했다. 아니, 루마니아인이었던 과거의 모습은 버리고 최선을 다해 서구문명에 적응했다. 귀족 대접을 받으며 성장한 특권층이었음에도 루마니아인으로서의 자신보다 자본주의 사회의 중상류층으로 지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만족해하는 아냐를 보며 요네하라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씁쓸함을 느낀다.

 

야스민카가 본명인 야스나는 ‘명쾌하다’라는 뜻을 가진 애칭 그대로였다. 모든 과목에 천재성을 보이는 총명한 친구로 유치한 장난에 초연하고 아이답지 않게 객관적이었다. 아버지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우스타시에 대항한 파르티잔 출신이었다. 야스나가 일본 중세의 호쿠사이 판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급속도로 친해진 마리와 야스나는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1년간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지냈다.

요네하라가 야스나를 찾는 일은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구 유고슬라비아가 민족분쟁으로 분열되면서 보스니아에서는 끊임없이 내전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녀는 야스나가 어느 민족인지 알지 못했다.

분란의 와중에 수소문한 바에 의하면 야스나는 무슬림이었다. 자신이 무슬림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야스나였지만 이 때문에 함께 투쟁해온 친구들과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다. 구 유고슬라비아의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한 야스나의 아버지는 탈출을 거부한 채, 언제 폭격당할지 알 수 없는 사라예보의 방공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요네하라의 소비에트 학교 친구들의 인생은 운명이 뒤바뀌는 고난 그 자체였다. 그들이 겪은 운명의 배후에는 1968년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탄압으로 짓밟힌 ‘프라하의 봄’과 1990년대 초 동구 사회주의권 격변시 벌어진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의 붕괴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독립선언이 발단이 된 유고 다민족 전쟁이었다.

역사와 민족이라는 화두,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운명에 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화법은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지만 가슴을 두드리는 울림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데올로기가 개인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상당히 날카롭다. 저자는 “소비에트 학교 아이들은 모두 자국에 대한 애정과 동경을 가지고 있는데, 빈곤과 혼란 상태에 빠진 나라의 아이들일수록 애국심이 강했다”고 평하고 있다.

 

작품을 읽고서 필자가 느낀 점은, 1950년대 ~ 1990년대 동서 냉전이었던 기간 동안 서구 사회에서 과도하게 선전하고 폄하했던 사회주의 사회의 모습과 그 체제와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서구 사회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나 사회주의 체제 모두 장점과 단점이 존재했다. 자본주의는 ‘돈이 만능’이지만 사회주의는 ‘가난한 대신 사람들이 사는’ 사회였다. 특히 동유럽 사회주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도 공기처럼 문화가 숨 쉬고 있었다.”고 독일 의사 리차는 말한다.

소련과 동구권의 해체는 단순한 이념의 대결 문제가 아니었다. 요네하라의 친구 중에는 소비에트 학교 졸업 후에 기쁨에 들떠 귀국했지만 동란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도 있었고 조국에 실망해 다시 외국으로 떠난 아이도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20세기 후반 동유럽의 격동의 현실을 보여준다. 동유럽의 현대사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기득권층과 자본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이 책은 몇 달 전 여자 후배가 꼭 읽으라며 선물해주었다. 그 후배는 필자에게 “추상적인 인류의 일원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도 존재할 수 없어”라는 요네하라의 고백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소개해준 후배가 고맙다.


 

“파랑, 하양, 빨강. 그러고 보니 이는 자유, 평등, 박애의 색깔이 아닌가. 이것이 인류의 지고한 표어가 되기까지, 또 인류가 이를 지향하게 된 이후에도 수많은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인간은 언제쯤이나 사고방식 하나로 서로를 죽이려는 것을 그만두려는지 많이 걱정스럽다.”(옮긴이의 말)


 

[2017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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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의 위기 - 현대 중국의 경험과 도전, 1949~2009
원톄쥔 지음, 김진공 옮김 / 돌베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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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무라 사토시의 <새롭게 쓴 중국현대사>를 읽은 후, 뭔가 부족한 점이 많아 중국근현대사 과정 중에 전개된 세부적인 사회경제적 변동을 알아보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

저자 원톄쥔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21세기의 첫 번째 10년에 이르기까지 중국현대사의 전과정을 경제사의 시각으로 다시 정리한다.
중국현대사에 대한 그의 저서에 호감이 가는 이유는, 그가 대학 졸업 후 정책 연구에 20년 이상 종사하며 이론과 현장을 결합하는 실사구시의 실천적 태도를 견지하였고, 이를 토대로 이데올로기적 선입관 없이 중국 경제의 실상과 발전 경로를 통찰하였다는 출판사의 소개 때문이다.(실제 그의 책을 읽어보면 사회주의 사상이론의 흔적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저자는 중국 경제와 발전 방향에 대해 혁신적인 논의를 펼치면서도 농민과 민중의 삶에 뿌리내린 낮은 곳으로 향했기 때문에 나름 성찰의 결과를 내놓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톄쥔은 이 책에서 중국이 서구의 현대화 및 도시화로 대표되는 발전 경로로 설명될 수 없는 특징과 메커니즘을 지녔다고 보고, 그 경로를 똑같이 밟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와 논리가 <여덟 번의 위기>의 핵심 내용이다.

원톄쥔은 중국 건국 이후 60년 동안 중국에 '여덟 번의 위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는 당대 중국의 주요 사건들은 원톄쥔이 경제사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놓은 현대사의 지평 위에 그 좌표를 찍어보면 대부분 이 '여덟 번의 위기'에 겹쳐진다.
1958년에 시작된 대약진과 그로 인한 파멸적 재난, 1966년부터 고조되어 1968년에 정점을 찍은 문화대혁명의 혼란과 그것에 이어진 대규모 상산하향(上山下鄕),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문혁의 종결과 개혁개방이라는 극단적 변화와 더불어 진행된 권력 교체, 1989년에 중국공산당의 집권 기반을 뒤흔든 천안문 사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원톄쥔은 1949년 이후 중국에서 발생한 경제적 위기를 크게 여덟 차례로 분석했고, 각 위기를 시기에 따라 분류했다.
그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1956~1976년 동안 외자와 외채로 인한 공업화 초기에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 1958~60년에는 소련의 투자 중단으로 인해, 1968~70년에는 '삼선 건설' 중의 국가전략 조정에 따른 경제 위기가 일어났고 1974~76년에 세 번째 위기가 발생하여 이때 마지막 '상산하향'이 전개되었다.
1978~1997년 동안에는 개혁개방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내발적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1979~80년. 개혁개방에 따른 도시지역의 경제가 '경착륙'하였고 중국 지도부는 '잠농'에 의존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다. 1988~90년에는 내재적 메카니즘에 의한 다섯 번째 위기가 발생하여 또다시 '잠농'으로 비용을 전가하였고 이로 인해 '농민공'이 대거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3~94년 여섯 번째 경제 위기가 발생하였으나 도시와 농촌이 공동으로 위기 비용을 분담하였고 중국경제는 외향형 경제로 전화하게 된다.
1997~2009년 동안에는 세계 경제에 깊숙히 편입한 중국경제에 외래행 위기가 발생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 위기에는 중국정부에 적극 금융과 시장에 개입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다. 이때 제4차 외자도입이 실시되었고 중국 국내의 생산능력 과잉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쳐 여덟 번째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중국정부는 마지막 경제 위기마저 '연착륙'시켰다.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무려 여덟 차례의 경제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을까. 원톄쥔은 그 비결을 농촌에서 찾았다. 경제 위기가 여러 차례 발생하는 와중에 중국정부는 광대한 농촌 지역을 매개체로 이용하여 연착륙을 실현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중요한 원인은 농촌이 노동적령 인구 5억 명을 보유한 저수지 역할을 했고, 그 저수지의 근간인 농촌 토지재산 공유제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농촌의 기본 제도를 바꾸지 않은 덕분에, 2억 4,000만 농민 가구의 대부분은 여전히 손바닥만 한 땅이나마 위험 없는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300만 이상의 촌락공동체가 예비토지/촌락공동 체기업 및 기타 여러 사업체를 보유하여, 심각한 부정적 외부효과의 비용을 내부화하여 처리할 여력이 있었다.
따라서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농민공들은 단순히 농업노동에만 종사하지 않고, 능력이 되는 대로 각 가구나 촌락공동체 내부의 여러 공업 및 부업과 기타 각종 사업에 참여했다."(74쪽)

서구 역사가들이나 중국 관련 전문가들은 지금껏 대약진운동이든 문화대혁명이든 개혁개방이든 천안문사건이든 오로지 선정적인 정치적 시각으로 설명하는 데 익숙했다. 또는 좌우 냉전구도나 이념적 경쟁구도로 사고해 왔다. 국내외 독자들 역시 그런 설명의 결과물로 얻어진 이미지를 중국의 실상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원톄쥔이 '여덟 번의 위기'로 재구성한 중화인민공화국 60년을 살펴보면 서구 세계의 인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부실한 것이었는지 금방 깨닫게 된다. 편집증적인 독재 권력의 무모한 정책으로만 여겼던 대약진, 마오쩌둥에 대한 광신에 사로잡힌 젊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이해했던 홍위병 운동, 중국공산당 내 실용주의적 세력이 집권하여 정책을 합리적으로 전환한 데 따른 결과라고 여겼던 개혁개방, 독재적 권력에 항거한 대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로 규정했던 천안문사건 등은 모두 그 이면에 경제 위기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사건이었고, 그런 원인을 이해하고 해당 사건에 접근하면 각 사건의 실체는 지금껏 독자들이 생각한 것과는 크게 달라진다.

단적인 예로, 문혁 시기 홍위병들의 무정부적 폭력 행위의 주요 원인은 겉으로 보이는 어떤 광기나 광신이나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당시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른 재정적자와 도시공업 위기로 인해 최악으로 떨어진 청년 취업률로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렇다면 권력이 선택한 해결책은 현실에 대한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하는 청년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상산하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우리가 괴물처럼 여기는 홍위병 청년들의 심리가 오늘날 월스트리트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나 편의점 알바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420쪽)

원톄쥔이 제시한 중국의 경제 위기 극복에 대한 이론은 중국공산당과 학계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 추이를 예상하면서 중국 경제가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을 몇 가지 대안을 책의 초반에 제시한다.
중국은 20세기에 10%를 넘나들던 경제성장률이 몇 년 전부터 한 자릿수에 멈춰 섰고,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추동력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저자의 분석과 대안이 중국경제의 양적 질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농촌과 농업경제가 떠올랐다. 한국의 농촌과 농민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도시와 공업의 성장을 위해 저곡가와 저투자로 희생되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롯한 한국의 역대 위정자들이 미국정부의 조언만을 받아 서구 경제에서 성과를 보인 '수출공업 중심의 경제개발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70년간 밀어붙인 도시 만능, 수출 만능, 공업 만능, 재벌만능, 세계화 만능, 성장 만능의 사회경제 시스템의 결과는 농민 뿐 아니라 도시민에게까지 도달했다.(정권이 바뀌어도 정책기조는 변함이 없다.) 부동산값과 저임금, 빈부격차와 자살률 등 수많은 나쁜 통계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2017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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