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의 위기 - 현대 중국의 경험과 도전, 1949~2009
원톄쥔 지음, 김진공 옮김 / 돌베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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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무라 사토시의 <새롭게 쓴 중국현대사>를 읽은 후, 뭔가 부족한 점이 많아 중국근현대사 과정 중에 전개된 세부적인 사회경제적 변동을 알아보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

저자 원톄쥔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21세기의 첫 번째 10년에 이르기까지 중국현대사의 전과정을 경제사의 시각으로 다시 정리한다.
중국현대사에 대한 그의 저서에 호감이 가는 이유는, 그가 대학 졸업 후 정책 연구에 20년 이상 종사하며 이론과 현장을 결합하는 실사구시의 실천적 태도를 견지하였고, 이를 토대로 이데올로기적 선입관 없이 중국 경제의 실상과 발전 경로를 통찰하였다는 출판사의 소개 때문이다.(실제 그의 책을 읽어보면 사회주의 사상이론의 흔적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저자는 중국 경제와 발전 방향에 대해 혁신적인 논의를 펼치면서도 농민과 민중의 삶에 뿌리내린 낮은 곳으로 향했기 때문에 나름 성찰의 결과를 내놓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톄쥔은 이 책에서 중국이 서구의 현대화 및 도시화로 대표되는 발전 경로로 설명될 수 없는 특징과 메커니즘을 지녔다고 보고, 그 경로를 똑같이 밟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와 논리가 <여덟 번의 위기>의 핵심 내용이다.

원톄쥔은 중국 건국 이후 60년 동안 중국에 '여덟 번의 위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는 당대 중국의 주요 사건들은 원톄쥔이 경제사의 시각으로 재구성해 놓은 현대사의 지평 위에 그 좌표를 찍어보면 대부분 이 '여덟 번의 위기'에 겹쳐진다.
1958년에 시작된 대약진과 그로 인한 파멸적 재난, 1966년부터 고조되어 1968년에 정점을 찍은 문화대혁명의 혼란과 그것에 이어진 대규모 상산하향(上山下鄕),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문혁의 종결과 개혁개방이라는 극단적 변화와 더불어 진행된 권력 교체, 1989년에 중국공산당의 집권 기반을 뒤흔든 천안문 사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원톄쥔은 1949년 이후 중국에서 발생한 경제적 위기를 크게 여덟 차례로 분석했고, 각 위기를 시기에 따라 분류했다.
그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1956~1976년 동안 외자와 외채로 인한 공업화 초기에 세 번의 위기가 있었다. 1958~60년에는 소련의 투자 중단으로 인해, 1968~70년에는 '삼선 건설' 중의 국가전략 조정에 따른 경제 위기가 일어났고 1974~76년에 세 번째 위기가 발생하여 이때 마지막 '상산하향'이 전개되었다.
1978~1997년 동안에는 개혁개방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내발적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1979~80년. 개혁개방에 따른 도시지역의 경제가 '경착륙'하였고 중국 지도부는 '잠농'에 의존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다. 1988~90년에는 내재적 메카니즘에 의한 다섯 번째 위기가 발생하여 또다시 '잠농'으로 비용을 전가하였고 이로 인해 '농민공'이 대거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3~94년 여섯 번째 경제 위기가 발생하였으나 도시와 농촌이 공동으로 위기 비용을 분담하였고 중국경제는 외향형 경제로 전화하게 된다.
1997~2009년 동안에는 세계 경제에 깊숙히 편입한 중국경제에 외래행 위기가 발생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 위기에는 중국정부에 적극 금융과 시장에 개입하여 위기를 극복하였다. 이때 제4차 외자도입이 실시되었고 중국 국내의 생산능력 과잉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쳐 여덟 번째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중국정부는 마지막 경제 위기마저 '연착륙'시켰다.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무려 여덟 차례의 경제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을까. 원톄쥔은 그 비결을 농촌에서 찾았다. 경제 위기가 여러 차례 발생하는 와중에 중국정부는 광대한 농촌 지역을 매개체로 이용하여 연착륙을 실현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중요한 원인은 농촌이 노동적령 인구 5억 명을 보유한 저수지 역할을 했고, 그 저수지의 근간인 농촌 토지재산 공유제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농촌의 기본 제도를 바꾸지 않은 덕분에, 2억 4,000만 농민 가구의 대부분은 여전히 손바닥만 한 땅이나마 위험 없는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300만 이상의 촌락공동체가 예비토지/촌락공동 체기업 및 기타 여러 사업체를 보유하여, 심각한 부정적 외부효과의 비용을 내부화하여 처리할 여력이 있었다.
따라서 일자리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농민공들은 단순히 농업노동에만 종사하지 않고, 능력이 되는 대로 각 가구나 촌락공동체 내부의 여러 공업 및 부업과 기타 각종 사업에 참여했다."(74쪽)

서구 역사가들이나 중국 관련 전문가들은 지금껏 대약진운동이든 문화대혁명이든 개혁개방이든 천안문사건이든 오로지 선정적인 정치적 시각으로 설명하는 데 익숙했다. 또는 좌우 냉전구도나 이념적 경쟁구도로 사고해 왔다. 국내외 독자들 역시 그런 설명의 결과물로 얻어진 이미지를 중국의 실상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원톄쥔이 '여덟 번의 위기'로 재구성한 중화인민공화국 60년을 살펴보면 서구 세계의 인식이 얼마나 편협하고 부실한 것이었는지 금방 깨닫게 된다. 편집증적인 독재 권력의 무모한 정책으로만 여겼던 대약진, 마오쩌둥에 대한 광신에 사로잡힌 젊은 폭도들의 난동으로 이해했던 홍위병 운동, 중국공산당 내 실용주의적 세력이 집권하여 정책을 합리적으로 전환한 데 따른 결과라고 여겼던 개혁개방, 독재적 권력에 항거한 대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로 규정했던 천안문사건 등은 모두 그 이면에 경제 위기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사건이었고, 그런 원인을 이해하고 해당 사건에 접근하면 각 사건의 실체는 지금껏 독자들이 생각한 것과는 크게 달라진다.

단적인 예로, 문혁 시기 홍위병들의 무정부적 폭력 행위의 주요 원인은 겉으로 보이는 어떤 광기나 광신이나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당시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른 재정적자와 도시공업 위기로 인해 최악으로 떨어진 청년 취업률로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그렇다면 권력이 선택한 해결책은 현실에 대한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하는 청년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는 상산하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우리가 괴물처럼 여기는 홍위병 청년들의 심리가 오늘날 월스트리트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나 편의점 알바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420쪽)

원톄쥔이 제시한 중국의 경제 위기 극복에 대한 이론은 중국공산당과 학계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 추이를 예상하면서 중국 경제가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을 몇 가지 대안을 책의 초반에 제시한다.
중국은 20세기에 10%를 넘나들던 경제성장률이 몇 년 전부터 한 자릿수에 멈춰 섰고,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추동력도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저자의 분석과 대안이 중국경제의 양적 질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농촌과 농업경제가 떠올랐다. 한국의 농촌과 농민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도시와 공업의 성장을 위해 저곡가와 저투자로 희생되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롯한 한국의 역대 위정자들이 미국정부의 조언만을 받아 서구 경제에서 성과를 보인 '수출공업 중심의 경제개발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70년간 밀어붙인 도시 만능, 수출 만능, 공업 만능, 재벌만능, 세계화 만능, 성장 만능의 사회경제 시스템의 결과는 농민 뿐 아니라 도시민에게까지 도달했다.(정권이 바뀌어도 정책기조는 변함이 없다.) 부동산값과 저임금, 빈부격차와 자살률 등 수많은 나쁜 통계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2017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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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쓴 중국 현대사 - 전쟁과 사회주의의 변주곡
오쿠무라 사토시 지음, 박선영 옮김 / 소나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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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탄생한 이래 지난 수천 년 내지 수만 년 동안 한반도와 접해 있던 중국은 음으로 양으로 한반도의 한민족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2017년 현재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현재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고 있으며, 근대 조선(한민족)의 두 후예 중 하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영토의 동북 방면을 접하고 있다. 중국과 조선은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는 혈맹 관계라 할 수 있다. 또한 발해만과 황해를 사이로 대한민국과 접해 있으면서 국교 관계를 체결하고 있다.

 

현재의 중국 국가체제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시점에 반식민지 처지에서 독립한 후 국민당과의 내전을 거쳐 1949년 사회주의 혁명과 인민공화국을 선포한 사회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실제 중국의 영토(토지)는 대부분 국유 및 집체 소유이며, 국가경제의 주요 기간 산업 역시 상당 부분 국가 소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기준으로 할 때, 중국의 국가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라 할 수 있다.(사회주의 체제를 정의하는 학자에 따라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사회주의 체제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국가사회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로 정의하기도 한다.)

 

오쿠무라 사토시는 중국의 사회주의를 기존에 다수를 차지한 이론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이론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토시는 전통 중국 사회의 해체기에서부터 국민국가의 형성기의 좌절,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성격과 정책, 중일 전쟁의 주·객관적인 조건과 전쟁 수행 과정에서의 중국 국민당의 기본 노선과 공산당의 노선, 공산당의 중국 통일과 한국 전쟁, 그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의 대응 방식 및 이후 냉전 체제 속에서 취했던 여러 정책과 그 과정에서 빚어진 실패와 실책을 지적한다.

또한 대약진 정책과 그 실패 후의 조정 정책, 마오저똥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했던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의 신사고와 개혁·개방 그리고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대내외적인 정세 변화와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대후방 정책을 폈던 국민당의 항일 전쟁기의 전략이 중국 사회주의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 국가에서 치러졌던 대 자본주의 열강과의 전쟁이 사회주의의 건설을 왜곡시키고 국제적 냉전이 이러한 일시적 왜곡을 체제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사토시는 사회주의를 "공업화가 상대적으로 지체된 지역에서 파시즘적인 전체주의 국가의 침략을 역사적으로 경험하면서, 그에 대응하기 위하여 파시즘보다 더 철저하게 전체주의적인 국가 방위 형태로 취해진 극단적인 총력전 태세, 바로 그것"이라고 정의한다.

1949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사회주의화되었던 현대 중국의 경우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강하게 주장한다.

 

사토시는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국공 내전에서 발전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을 계승하여 사회주의 체제가 확립되는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이후에도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는 국제 정세의 부침에 따라 변화해 갔으며, 국제적인 긴장 완화에 따라 붕괴되었다.

그의 시각은 소련이나 동구 사회주의, 베트남이나 북한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소련이나 베트남 역시 전쟁 시기 또는 그 직후에 사회주의 체제가 형성되었으며, 냉전이 종결된 오늘날에는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를 다르게 보면 중국과 북한에 대한 일본의 침략과 지배가 중국과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형성했다고 주장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사토시는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기에 앞서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이 수립한 ‘사상으로서의 사회주의’와 ‘실재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구분한다. 또한 “사상으로서의 사회주의는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무언가 시도하는 것이 사회주의”(26쪽)이며 “인간이 시장 원리에 종속되어 움직이는 것이 자본주의”(25쪽)이라고 구분한다.

그러면서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의 현실은 1) 사회적 소유라는 명분 속에서 이루어진 당의 생산 수단 소유, 2) 계획 경제라는 명분 속에서 이루어진 극단적 통제 경제, 3) 국가에 의한 착취와 형식적인 평등 분배, 4) 공산당의 일당 독재, 5) 비자율적인 일원적 통합을 주요 특징으로 규정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이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수립한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정의한다.

 

사토시의 “전쟁과 사회주의의 부침”이라는 관점은 사회주의 체제의 형성과 확산, 그리고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저자의 사회주의에 대한 정의, 사회주의 혁명 이전의 중국의 현실에 대한 분석과 평가, 자본주의 체제의 관점,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등 자신의 관점과 이론을 전개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여러 개념과 주장이 엉성하고 부실하며 논리적, 종합적이지 않다.

 

사토시는 자신의 정의와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중국 전통사회에 대한 분석, 국민국가로의 지향, 국민당과 공산당의 분열과 갈등, 일본의 침략과정, 미국의 대립과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 순으로 중국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과정을 짚어본다. 여기서 그는 주로 일본 안에서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논문을 이용한다.

그는 중국의 전통사회가 ‘개별주의적 사회’이며 ‘느슨한 통제와 다원적 지배’ 체제라고 분석한다. 중국 전통사회의 ‘공동체’ 전통과 ‘봉건적 유교적 통제’를 완전히 무시해버린 셈이다.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토지와 농업 중심의 경제체제인 중국 전통사회는 당연히 대가족 제도, 마을 단위 공동체가 대다수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국의 사회 현실과 체제에 대한 사토시의 여러 가지 분석과 평가는 부실한 편이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사토시의 정의를 각각 비판해 보면 아래와 같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소유’는 개념적인 이론일 뿐 현실에서 구현된 바가 없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 이후 구체적인 현실에서 시도해보아야 한다. 먼저, ‘사회적 소유’는 국가적 소유일 수도 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하는 공산당(노동당, 사회당 등 집권정당)의 소유가 될 수도 있다.(실제 토지 중 중국의 주요 생산수단은 공산당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의 소유다.) ‘사회적 소유’에 대한 문제제기의 핵심은 ‘사적 소유의 집중에 의한 노동의 소외과 빈곤’이다. 생산수단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 계급에게 집중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대안인 셈이다. 따라서 중국공산당 또는 중국이라는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이 ‘사회적 소유’에 배치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참고로 사회주의 국가는 군대가 국가나 정부에 속하지 않고 당의 통제를 받는다. 중국도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는 당이 국가의 주요 활동을 ‘지도’하는 체제이다. 저자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공산당 독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체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이데올로기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그의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계획 경제’의 취지는 생산과 소비가 예측되지 않는 무한 경쟁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과잉생산과 과소생산이 반복되어 경제가 붕괴되고 노동자와 인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계획 경제’는 곧 ‘집행 경제’이다. 사회주의는 국가가 경제계획을 수립하게 되면 그에 따라 국가와 정부, 협동농장과 공장이 집행하는 시스템이다. 당연히 기본적인 지도와 통제는 수반될 수밖에 없다. ‘자유방임’을 거부하는 체제가 계획 경제의 집행을 ‘방임’할 수는 없지 않는가.

‘국가에 의한 착취’는 더욱 불가능하고 비논리적인 개념이다. 국가는 인격체가 아니다. 중국공산당이 생산과 투자와 분배에 실패할 수는 있지만, 중국이라는 국가가 노동자와 인민을 착취한 후 그 착취한 부를 소유할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 착복할 수도 없다. 다만, 국가의 관료나 공산당의 관료의 부패는 가능하다. 중국 공산당과 중국 정부 역시 정부와 당 관료의 부패 때문에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고 있다.

‘공산당 일당 독재’는 자본주의식 정치시스템과 개념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사회주의 체제는 ‘일당 독재’를 수단이자 목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자농민의 독재를 위해 공산당을 설립하고 공산당에 의해 국가 전체가 지도되는 시스템이니 당연히 공산당이 주요 의사결정을 행환다. 중국은 중국공산당이라는 당적 체계와 전국/지방인민대표자대회라는 대의(입법)기구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공산당 간부와 인민대표자들은 선거로 선출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와 정당 체계처럼 정치인이 직업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홍보비를 쏟아부어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자본가와 기득권 집단의 광고에 기반을 둔 상업언론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정치체제는 자본이 투입되고 자본 증식에 이용되는 일종의 ‘연극’이자 ‘드라마’일 뿐이다. 돈이 없는 개인이나 집단(계급)은 정치권에 진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는 양당체제든 다당제든 자본가들과 기득권자들이 서로 정치권력을 다투는 수준의 기득권 정치체제일 뿐이다. 따라서 공산당이 "아무런 제도적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공산당이 전체(모든 인민)의 의지를 대표한다는 것은 허울 좋은  간판”이라는 사토시의 주장은 단지 비난하고 싶은 시각일 뿐이다.

‘비자율적인 일원적 통합’은 사회주의 정치와 사회문화 활동에 대한 몰이해와 비난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생존과 정치혐오로 인해 50%도 안 되는 투표율로 당선되는 자본주의 정치체제가 90%가 넘는 인민들의 정치참여를 ‘정치활동을 하지 않을 자유’라는 억지스런 문장을 꺼낸 것이다.

 

사토시의 접근이나 이론 전개에 동의하기 어려웠음에도 그의 결론 중에서 필자가 공감한 대목이 있다. 전쟁이나 제국주의적인 위협이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 즉 중국이나 북한, 쿠바 등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온존시킨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이 제국주의 개입,공격 정책에서 벗어나고 일본이 군국주의(제국주의) 부활을 포기하게 되면 중국과 북한, 쿠바 등의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명확하게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자의 예상은 정반대이지만, 사토시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조속히 폐기하기를 바란다. (물론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은 부당하고 불의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사토시의 섣부른 규정과 낙인은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초반부에 사회주의에 대한 저자의 사상적, 철학적, 이론적 표현이 80년대 반공주의 교과서와 뉴라이트 세계관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어 읽어내기가 불편하기도 했다.

중국 전통사회에 대한 그릇된 평가도 그렇지만 ‘전쟁과 사회주의’라는 관점도 마찬가지이다. 사토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갈등과 투쟁 과정을 배제해버렸다. 일제 식민지에 대한 항일투쟁 과정과 일제의 패망 이후 중국의 정치권력에 대한 경쟁에서 공산당과 국민당을 경합했다. 공산당은 노동자와 농민(소농 및 빈농)이 주축이었고, 국민당은 자본가와 대지주가 중심이었다. 국민당 뒤에는 미국의 지원이 있었다.

결국 두 계급간의 대결, 두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간의 쟁투에서 공산당이 국민당을 이긴 것이다. 만일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이겼으면 사토시가 “전쟁과 자본주의”라는 관점으로 중국 근현대사를 썼을지.

사토시는 일제와의 전쟁시기에 국민당과 공산당이 연합하였고, 일제 패망 이후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이 있었음을 간과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사토시의 관점이 간과한 점은, 중국 전통사회와 근현대사 과정 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목숨을 던져 저항하며 투쟁했던 수많은 인민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공산당원들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토시는 중국의 인민과 중국사회가 일제의 침략이나 전쟁 그리고 미제의 간섭과 개입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총력전’을 벌이고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사토시는 100년의 중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지지해줄 일본 내 중국학자의 관련 논문을 인용하기만 했을 뿐, 반대의 관점과 논리 또는 공산당과 인민들의 주체적인 노력을 들여다볼 의사도 의지도 없었다.

역사는 ‘인간과 자연의 투쟁’이고 ‘현재를 고집하는 세력과 미래를 추구하는 세력의 투쟁’이라는 기본적인 관점마저 버렸다.

 

필자는 공부모임 때문에 읽었던 이 책, <새롭게 쓴 중국현대사>를 헌책방에 되팔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아파트 단지의 폐지재활용 용기에 버렸다.

 

[2017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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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기계 - 대니얼 힐리스가 들려주는 컴퓨터 과학의 세계 사이언스 마스터스 14
대니얼 힐리스 지음, 노태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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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얼 힐리스 저, 노태복 역, 2006, 270쪽, 사이언스북스
부제 : 대니얼 힐리스가 들려주는 컴퓨터 과학의 세계

그렇지 않아도 작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게임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바 있기에 ‘생각하는 기계, 컴퓨터’인 ‘인공지능’ 이야기가 담겨 있는 <생각하는 기계>를 몇 년 만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은 컴퓨터의 근본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출간된 것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대니얼은 컴퓨터의 원리가 한없이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그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고 말한다.

“컴퓨터 한 대에 들어 있는 부품의 개수는 라디오에 비하면 훨씬 많지만, 부품들이 함께 작동하는 방식은 훨씬 더 단순 하다.”(12쪽)

 

저자는 ‘기술’보다는 ‘아이디어’가 ‘컴퓨터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아이디어는 컴퓨터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전자 기술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고까지 말한다. 보통은 컴퓨터를 트랜지스터와 전기 회로로 만들지만, 컴퓨터 구성 원리에 따르기만 하면, “밸브나 수도관 심지어 막대와 줄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컴퓨터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 원리다! 컴퓨터에 관한 가장 놀라운 점은 기 술보다는 핵심 원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원리에 관한 책이다.”(12쪽)

 

<생각하는 기계>는 대니얼의 설명처럼 아이디어에 관한 책이다. 따라서 컴퓨터 활용법 내지는 컴퓨터를 만드는 기술(롬, 램 디스크 드라이버 등)에 관한 대다수의 책들과는 다르다. 이 책에서는 컴퓨터 과학 분야의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설명하거나 적어도 간략히 소개한다.

불 논리, 유한 상태 기계, 프로그램, 컴파일러와 인터프리터, 튜링 보편 기계, 정보 이론, 알고리듬과 알고리듬의 복잡성, 휴리스틱, 계산불능 문제, 병렬 컴퓨터, 양자컴퓨터, 신경 네트워크, 기계어, 자기 조직화시스템 등을 말이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책에 나오는 아이디어들을 이 전에 접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컴퓨터 과학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이상, 각각의 아이디어를 전체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컴퓨터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아볼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연결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위치 1개를 켜고 끄는 물리적인 동작에서부터 자기 인식 병렬 컴퓨터가 행하는 학습과 적응능력까지 컴퓨터 과학에서 다루는 아이디어를 연결한다.

 

대니얼은 블록 쌓기놀이의 일종인 ‘팅커토이’라는조립용 완구로 어린 시절 오목게임과 비슷한 간단한 게임을 하는 ‘팅커토이 컴퓨터’를 만들었다. 어떻게 어린 아이가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어린 대니얼이 컴퓨터의 근본원리를 훤히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 대니얼이 컴퓨터를 제작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그 근본 원리는 바로 ‘보편 구성 블록’과 ‘불 논리 (boolean logic)’다.

 

역자는 이 근본 원리를 적용하면, “재료나 제작 수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굳이 전자 장치가 아니어도, 기계 장치나 장난감 완구, 물놀이 기구 그리고 생체 분자로도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어떤 형태의 컴퓨터든 컴퓨터를 컴퓨터가되도록 만든 이 근본 원리를 이 책을통해 손에 넣을수 있다. 어쩌면 컴퓨터를 만들어낸 근본 원리가 세상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만물의 근본원리와 통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근본은 근본끼리 통하니까 말이다."(6쪽)

 

<생각하는 기계>의 1장에서는 컴퓨터의 근본원리와 이를 어떻게 손에 잡히듯이 구현할 수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1장과 2장에서는 불 논리(boolean operations), 비트, ‘유한 상태 기계 (finite-state machine, FSM)’, ‘보편 구성 블록’의 개념을 다룬다. 3장이 끝날 무렵에는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 논리 : AND, OR, XOR 와 NOT 연산자. 한 개의 비트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정보의 최소 단위량이다. 그런데 이것은 예, 아니오, 활성화와 비활성화, 참, 거짓 등… 두 가지의 가능한 값 중 하나만을 표시하는 것과 같이 단지 1과 0만을 저장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연산에서 다른 비트들과 또는 스스로와 결합하는 비트 연산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연산을 이 분야에 공헌을 한 수학자 George Boole(1815-1864)의 이름을 따서 불 연산-논리-이라고 부른다.)

(유한 상태 기계 :  컴퓨터 프로그램과 전자 논리 회로를 설계하는데에 쓰이는 수학적 모델이다. 간단히 ‘상태 기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한 상태 기계는 유한한 개수의 상태를 가질 수 있는 오토마타, 즉 추상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계는 한 번에 오로지 하나의 상태만을 가지게 되며, 현재 상태(Current State)란 임의의 주어진 시간의 상태를 칭한다)

(보편 구성 블록 : 논리 함수와 논리 블럭 그리고 유한 상태 기계의 집합. 이 요소들을 이용하면 컴퓨터를 쉽게 만들 수 있다.)

 

4장 에서부터 6장 메모리에서는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핵심 요소들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다. 특히 4장에서 소개한 ‘튜링 기계’의 보편성과 ‘양자컴퓨터’의 가능성도 주목할 만하다.

(튜링 기계 : 수학적 모형의 일종으로, 특수한 테이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기계이다. 튜링 기계가 사용하는 테이프 위에는 테이프 머릿기호를 바탕으로 기계가 인식하거나 기록할 수 있는 기호들이 있다. 작동 방식은, “42번째 상태에서 0이라는 기호가 있다면 1을 쓴다. 1이라는 기호가 있다면 17번째 상태로 간다. 17번째 상태에서 0이라는 기호가 있다면 1을 쓰고, 1이라는 기호가 있다면 6번째 상태로 간다”와 같이 유한한 개수의 기초적 지시문으로 이루어진다.)

(양자 컴퓨터 : 얽힘(entanglement)이나 중첩(superposition) 같은 양자역학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자료를 처리하는 계산 기계이다. 고전적인(전통적인) 컴퓨터에서 자료의 양은 비트로 측정된다. 양자 컴퓨터에서 자료의 양은 큐비트로 측정된다. 양자 계산의 기본적인 원칙은 입자의 양자적 특성이 자료를 나타내고 구조화할 수 있다는 것과 양자적 메카니즘이 고안되어 이러한 자료들에 대한 연산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에 기한다. 양자 컴퓨터가 기존 컴퓨터보다 빠를 수는 있지만, 기존 컴퓨터로 풀 수 없는 문제는 양자 컴퓨터 역시 풀 수 없다. 충분한 시간과 메모리가 주어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7장과 8장에서는 ‘병렬 컴퓨터’와 ‘학습형 컴퓨터’에 대해 논의 한다. 실제 컴퓨터 과학자로서 수많은 컴퓨터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한 컴퓨터 과학의 현재와 미래가 생생히 조망되어 있다.

(병렬 컴퓨터 : 동시에 많은 계산을 하는 연산의 한 방법이다. 크고 복잡한 문제를 작게 나눠 동시에 병렬적으로 해결하는 데에 주로 사용되며, 병렬 컴퓨팅에는 여러 방법과 종류가 존재한다. 그 예로, 비트 수준, 명령어 수준, 데이터, 작업 병렬 처리 방식 등이 있다. 병렬 컴퓨팅은 오래전부터 주로 고성능 연산에 이용되어 왔)

(학습형 컴퓨터 : 되먹임 시스템과 뉴런 네트워크, 자기 조직화 시스템 등을 이용하여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이 부여된 컴퓨터로서 병렬 컴퓨터로 가능하다. 자동 항법 장치나 복구 매카니즘 등은 학습형 컴퓨터의 사례다.)

“컴퓨터의 능력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킬 이 연구들이 어떠한 마인드를 바탕으로 어떻게 실제로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실제로 이러한 연구와 관련된 독자라면 이 장에서 나름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7쪽)

마지막장은 1장과 더불어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컴퓨터는 더 이상 인간이라는 주인이 명령하는 지시만을 묵묵히 수행하는 하인이 아니다. 컴퓨터도 생각하는 능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명체처럼 진화할 수도 있다고 대니얼은 말한다.

한낱 기계장치가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단순한 공상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현장 설계자의 관점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니얼은 컴퓨터의 본질을 잘 나타내는 일반적인 주제 몇 가지 있다고 설명한다. 그 첫째가 ‘기능적 추상화(functional abstraction)’의 원리다.

“이는 원인과 결과의 계층 구조와 관련이 있다. 이 원리가 여러 단계에 걸쳐 반복적으로 적용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하위 단계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세세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계층구조의 어느 특정 단계의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컴퓨터는 이해하기 쉽다. 기능적 추상화의 원리로 인해 아이디어와 기술은 별개가 될 수 있다.”
두번째 주제는 ‘보편 컴퓨터’의 원리다. 이는 세상에는 오직 한 종류의 컴퓨터만 존재함을 뜻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컴퓨터가 수행할 수 있는 일의 관점으로 볼 때, 모든 종류의 컴퓨터가 동일하다는 뜻이다. 컴퓨터 장치는 트랜지스터, 막대 , 줄, 신경 세포 등 무엇으로 만들든 하나의 보편 컴퓨터로 환원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가정이다. 왜냐하면 프로그램만 제대로 짜면 인간의 뇌처럼 생각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도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세 번째 주제는 첫 번째 원리와는 어떤 의미에서 반대라고 할 수도 있다.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 설계와 프로그램 작성법, 즉 기존에 표준으로 여겨졌던 공학적 접근법과는 동떨어진 전혀 새로운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지면 정상적인 설계 방법이 소용없어진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방법은 매우 흥미롭다. 컴퓨터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준 ‘기능적 추상화’의 원리가 결국에는 취약성과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만다. 이 약점은 정보처리 기계의 어떤 근본적인 한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계층 구조의 설계 방법이 갖고 있는 한계일 뿐이다.

그 대신에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한 설계 방식을사용하면 어떨까? 즉 하향식 제어(top-down control) 구조가 아니라 많은 단순한 상호작용들의 축적을 통하여 시스템 특성이 창발적으로 출현하도록 하는 방식은 어떨까? 그처럼 진화된 방식으로 설계된 컴퓨터는 생물이 가진 견고성과 융통성을 동시에 가질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러한 희망을 품어 볼 수는 있다. 이 접근방식은 아직 제대로 정의조차 되어 있지 않고, 어쩌면 끝내 실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최근에 연구하고 있는 주제다.”

 

<생각하는 기계>를 읽다 보면, 대니얼이 2006년에 이미 10년 후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 게임에서 승리할 것을 예언한 셈이다. 그러나 알파고가 바둑 게임에서 이세돌을 이기기는 했어도 <생각하는 기계>의 출간 당시 대니얼이 연구하고 있던 주제인 ‘생물이 가진 견고성과 융통성을 동시에 가진 컴퓨터’는 아직 요원한 상태로 보인다.

그리고 역자가 지적하듯이 ‘생각하고 스스로 발전하는 컴퓨터’의 출현이 인류에게 던진 질문인 ‘인간 또는 인간의 정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도 궁리 중일 뿐이다.

“현재 뇌과학 연구의 발전, 인공지능 연구의 가속화와 시뮬레이션 기술의 심화, 생명 진화의 이론 등이 컴퓨터라는 실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동향을 볼 때, 머지 않아 실현될지도 모를 ‘생각하고 스스로 발전하는 컴퓨터’의 출현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바로 ‘인간 또는 인간의 정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저자는 이에 관해서도 나름의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단순히 컴퓨터 사용법이나 컴퓨터의 구성 장치를 설명하는 책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한 컴퓨터의 원리나 기능에 대한 전문서적들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컴퓨터의 근본원리와 그 기능을 손에 잡힐 듯이 다룬 책은 참으로 드물다. 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스스로 발전하는 컴퓨터’의 현재와 미래를 현장 개발자의 시각으로 생생히 탐구한 점도 경이롭다."(8쪽)


대니얼은 마지막 장인 9장 ‘생각하는 기계의 진화’에서 과학자 또는 인류가 ‘인공 지능’을 만들어낼 가능성과 현실성을 굳게 믿었다.

“나는 우리가 지능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전이라도 인공지능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 는다. 내 생각에는 지능의 창조는 아마도 자세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일련의 상호 작용을 통해 지능이 출현하도록 여건을 마련 해주면 되는 것 같다. 즉 그 과정은 기계를 공학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케이크를 굽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에 좀 더 가까울 듯하다. 인공 지능을 공학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지능이 출현할 올바른 조건들을 마련하면 된다.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기술상의 성취는 공학의 한계를 뛰어 넘는 도구의 발명, 즉 이해가능한 것 이상을 창 조하게 해주는 도구의 발명이라고 해도 좋으리라."(327쪽)

 

하지만 <생각하는 기계>를 읽은 후 필자는 대니얼의 예측과 기대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지능’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인류의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창조’나 ‘발명’이라고 주장해온 중요한 것들, 즉 원자, 광자, 양자, 유전자 등 물리적, 화학적 요소와 현상들은 ‘만들어진’ 게 아니라 ‘태초부터’ 원래 존재하던’ 것이었다. 인류는 ‘존재하던’ 것을 ‘발명’이 아니라 ‘발견’했을 뿐이다.(이것은 ‘창조자’나 ‘신’과 관련된 이야기도 아니다.)

물론 인간의 ‘지능’이 ‘태초부터’ 존재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이 작동하는 물리적, 화학적 바탕은 마찬가지로 ‘태초부터’ 존재하던 물질에 기반하며, 더욱 결정적인 것은 ‘인간의 지능’은 현재 인류가 직접 볼 수 없는 ‘원소’ 물질에서 시작하여 수십 억년의 진화를 거쳐 발달해왔고 앞으로도 발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간의 지능’ ‘인류의 진화’는 대니얼과 같은 과학자들이 아직 바라보지 못하는 특성이 다수 존재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생명체’와 ‘우주적,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의 특징, 그리고 ‘인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라는 특징이다.

컴퓨터나 기계와 달리 동식물과 인간은 모두 ‘살아 숨쉬는 생명체’이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이다. 살아 숨쉬는 것과 죽음은 생명체에게는 동시에 존재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 시작되는 셈이다. 무생물체인 기계와 컴퓨터에게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부분이다.(그래서 작가와 영화감독들이 상상한 것이 바로 그런 생명체를 숙주로 하여 미래에 존재할 것 같은 공상영화 ‘매트릭스’다.)

‘현재진행형’ ‘우주적 사회적 존재’라 함은, 인간은 홀로 존재하고 진화하고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지구-달이라는 태양계 시스템 속에서 태어나고 죽는 존재이며 태양계는 거대한 은하계 시스템 속에 존재하고 있다. 또한 인간은 집단을 이루며 서로 소통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보다 월등(?)하게 진화할 수 있었고 끊임없이 발달하고 있다. 이러 부분 역시 기계나 컴퓨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대니얼이 <생각하는 기계>에서 다룬 불 논리, 유한 상태 기계, 프로그램, 컴파일러와 인터프리터, 튜링 보편 기계, 정보 이론, 알고리듬, 휴리스틱, 병렬 컴퓨터, 양자컴퓨터, 신경 네트워크, 자기 조직화시스템 등은 인간이 ‘사회적, 조직적’으로 컴퓨터에게 입력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기계>는 오랜만에 읽는 과학도서다. 보관 중인 책과 서평을 정리하다가 2010년 경 읽은 것으로 분류해 놓았던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중에서 <생각하는 기계>의 서평이 누락된 것을 발견했다.
출판사 사이언스북스가 2000년대 중반에 시리즈로 출간한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21권 중 14번째 도서였다.

 

[2017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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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종말
자크 사피르 지음, 유승경 옮김 / 올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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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


이 책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연구자로 일하는 선배에게 선물받은 책(번역자가 그 선배)이다. 공부모임에서 폴 크레이그 로버츠의 <제1세계 중산층의 몰락>을 교재로 세미나하면서 제라르 뒤메닐 공저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 추천받았다.


자크 사피르는 이 책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이 글로벌리즘이라는 ‘신경제’를 받들고 있는 동안, 신경제의 동력인 ‘규제철폐’와 ‘역외이전’이 제1세계에는 중산층의 몰락을, 제3세계에는 환경파괴와 빈부격차를 가져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나아가 그는 지금의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고 유럽이 나아가야 할 길은 지금의 실패한 경제학을 버리고 새로운 경제학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길을 제안하고 있다.


“세계화는 결코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사피르는, 오늘날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세계 경제의 신조처럼 자리 잡은 자유무역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며, 오래 전부터 열강은 시장을 열기 위해 항상 무력을 사용했고, 자신에게 유리한 교역조건을 위해 어떤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19세기 후반 한반도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지적한 셈이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렇지 않아도 불평등하게 체결된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다시금 개정해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2017년 현재 시점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저자는 2008년 이후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 신흥 경제국의 금융버블, 아시아 국가들의 사회적·환경적 위기 그리고 유럽의 재정위기 등 최근 드러난 일련의 세계적 위기의 뿌리에는 동일한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바로 불과 25년 전에 나타나서 지구촌의 대부분을 장악해버린 ‘세계화’가 작금의 총체적인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세계화’로 불리는 현상을 ‘자유무역의 확대’와 ‘자본이동 자유화’ 두 갈래의 흐름이 빚어낸 결과라고 규정한다. 특히 세계 경제가 자본 자유화로 인해 크게 변화했는데, 내적으로는 임금 하락과 고용 불안, 사회보장의 후퇴, 환경 파괴와 같은 현상이, 외적으로는 위기에 대한 취약성이 강화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분석했다.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국가들의 경제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결국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하나의 위기이며,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물신숭배는 이득을 보는 자들이 만들어낸 헛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자연자원의 무분별한 개발을 초래하여 15억 명이 넘는 지구촌 사람들이 환경 재난 속에서 나날이 피폐해져 가고 있으며, 사회적 유대마저 파괴되는 나라가 속출하면서 수많은 민중들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현란한 불빛 아래 광적인 개인주의의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선진국으로 하여금 노동비용이 저렴하면서도 최신 기술의 활용이 가능한 개발도상국의 생산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개도국 노동자의 건강 악화, 환경 파괴와 같이 당장 금액으로 추산할 수 없는 보건환경 부문의 역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GDP 수치의 증가와는 반대로 개도국 민중의 삶이 피폐해지고 말았다고 분석한다. 1960~80년대 미국과 일본의 사양산업을 받아들인 한국의 노동자들의 건강이 훼손되고 전국에서 환경파괴가 일어났고 20세기 후반부터 중국에서 비슷한 퇴행이 벌어지는 현상의 공통점은 결국 ‘세계화’인 것이다.

그렇다고 개발도상국의 민중만 고통을 받은 것은 아니었는데, 선진국에서도 자본 이동을 통해 해당 국가 노동자의 임금 하락과 사회보장의 후퇴가 야기되었고, 뉴욕에서 발생한 “월가를 점령하라”와 프랑스 파리 외곽의 실직 청년들의 소요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다수 국민의 삶 또한 피폐해져만 갔다고 지적한다.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대외무역에 의존하는 경제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무한정 수입을 할 수 있는 나라도 없으며, 모든 나라가 무역 흑자를 누릴 수도 없다. 상업 그 자체는 스스로 부를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정치경제학의 진실을 저자는 구체적인 통계 수치들과 함께 다시금 상기시킨다. ‘세계화’의 가장 큰 핵심은 ‘무역의 세계화’와 ‘금융의 세계화’다.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가 진행되어 온 각각의 단계에서 폭력과 전쟁의 씨앗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바로 경제와 사회의 전면적 퇴행이다. 이 퇴행은 부유한 나라들을 먼저 강타했다. 그렇다고 신흥 개발도상국들을 관대하게 다룬 것도 아니다.”(17쪽)


사피르가 제시하는 현재의 세계경제 위기의 이유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무역의 세계화와 금융의 세계화)와 달러본위제도, 유로존 체제의 내적 결함이 맞물린 결과이다. 신자유주의 경제논리 아래 추진된 자본 자유화는 총이윤 중에서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으며, 이와 함께 경제의 부채의존도를 급격히 상승시키고, 제조업이 감소하는 탈산업화를 진행시키면서 고용의 불안정, 소득불균형, 사회복지의 후퇴라는 오늘날의 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의 세계화가 초래한 위기는 무역의 세계화에 의해 야기된 위기를 가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는 오늘날의 세계금융의 위기의 모태로 국제통화체제를 지목한다. 1970년대 브레턴우즈 체제가 해체되면서 국제통화질서는 혼란을 거듭하게 되었고, 이런 가운데 시작된 금융의 세계화는 통제할 수 없는 금융체제와 맞물려 실물 경제의 블랙홀이 되고 말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현재를 ‘세계화라 불리는 세계경제의 통합 물결이 역류하는 시점’이라고 보았다. 전능하다고 여겨져 왔던 시장이 후퇴하고, 무능하다고 질타 받아 온 국가가 다시금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래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세계금융위기는 물론이고, 한국과 말레이시아 등이 겪어야 했던 1997년의 금융위기 또한 미국과 IMF가 만든 통화의 무질서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는 저자는 건전성 규제는 전혀 해법이 되지 못하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책을 찾아야만 할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유로 단일통화의 한계에 직면한 유로존 금융체제 위기가 다시금 미국 금융시스템과 세계경제 전반에 걸친 위협의 증폭 요인으로 다시금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결국 달러 헤게모니는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며, 해결책은 현재의 IMF·WTO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금융통화시스템(지역통화체제와 공동통화제도)의 출현으로만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사피르의 전망이다.


“탈세계화를 질서정연하게 추진하기 위 해서는 분명히 관련 국가들이 협력기구를 만들어 공동으로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탈세계화가 반드시 질서 정연한 방식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는 다른 나라들이 무기력에 빠져 있거나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 자국의 상황을 먼저 고려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어떤 나라가 일련의 주도권을 쥐고 상대국을 궁지로 몰아 애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거나 복종을 요구할 수도 있다. 국제적 차원의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매우 상투적이고 아주 맥빠진 주장을 핑계로 내세우며, 자국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금융의 세계화와 관련해서는 이 책의 1부에서 다뤘던 '무역의 세계화’ 경우보다는 한 국가가 주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한 국가가 주도권을 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190쪽)


그리고 전세계적인 국가부채와 가계부채에 대한 사피르의 해결책은 고성장이다.

“고성장을 회복하는 것만이 대량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 고성장을 이루려면 공정한 무역을 위한 보호주의적 수단과 통화의 자주권이 필요하다. 통화의 자주권은 자본 이동을 엄격히 통제할 때만 가능하다. 글로벌 자본 이동 중 해외직접투자(FDI)는 5%도 되지 않는다. 이 정도 자본을 유치하려 자본시장을 완전히 열 필요는 없다.”(198쪽)


오늘날 세계 경제는 근래에 경험하지 못한 크나큰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사라져버렸다. 지금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금융과 무역의 탈세계화를 위한 실천’이라고 분석하는 저자는 지금의 세계화를 이끌어 오며 간신히 수면 위에 떠 있는 난파선의 선원들에게 의존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용기와 상상력, 나아가 격렬한 투쟁까지도 발휘할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사피르는 한국도 외환통제체제 도입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본다. 한국 정치권은 요즘 외환거래세인 토빈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피르의 말대로 환율과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체제를 확립하는 것은 미국과 직접 부딪칠 것이다.

결국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주한미군의 보호 아래에 안주하여 미국식 경제시스템에 편입한 채 뻔히 예상되는 길고 고통스러운 퇴행으로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독일이나 중국처럼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여 자립적이고 경쟁력 있는 경제체제를 추진하면서 세계경제의 주요 거점들과 공정한 교류에 나설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한국에게는 미국식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북한이라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각 정부는 긴장을 완화하고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눈 앞에 두고 있는 바,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남북의 경제협력을 통해 해외시장과 거래하되 크게 휘둘리지 않는 경제시스템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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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평화를 상상하다
최진섭 지음 / 역사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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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작가는, 사진작가가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가’로 알고 있던 필자에게,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먼저 오랜기간 조사하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는 걸 일께워준 예술가이자 운동가이자 학자이다.

 

그는 <자본론>을 사진 주제로 잡은 1998년 이후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2년 동안 통신강의로 <자본론>을 공부했다. 사진집과 출판물인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한강하구>, <민통선 평화기행> 등을 작엽했던 10년 넘는 기간 공부를 하고 현장을 방문하고 연구를 거듭했다. 2008년부터 촬영과 편집을 시작한 <제주 오키나와 평화기행>의 경우 2014년 하반기에나 출간됐다.

그동안 목숨을 걸고 지뢰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홀로 유엔사 철폐를 주장하며 3천 리 길을 걷고, 국가보안법에 맞서 48일간 단식하고, 한겨울에 여의도에서 임진각까지 삼보일배를 했다.

 

<사진, 평화를 상상하다>는 월간 《말》 편집국장, 《좋은엄마》 편집인을 역임한 최진섭 〈도서출판 말〉대표가 이시우 작가와의 역사기행에서 3년간 나눈 대화를 정리한 대담집이다.

최 대표는 2011년부터 기회가 날 때마다 이시우 작가가 해설을 맡은 파주, 철원, 양구, 강화, 제주 등의 기행에 동행했다. 이시우 작가의 이야기는 한반도의 분단문제, 미군의 군사전략, 유엔사, 유라시아 체계, 독립운동사, 양명학 등을 넘나드는 내용이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사진 작업을 한 비무장지대, 미군, 유엔사, 한강하구, 국가보안법, 제주도 등에는 하나같이 한국현대사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내포돼 있다.

최 대표는 해박한 지식에 기초한 이시우 작가의 해설을 들으며, 기행에 참가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과 그의 미학, 사진관, 세계관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바람에서 대담집을 엮었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공부를 하는지, 한 사람의 의식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그리고 이론과 실천이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세상에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야 얼마나 많은가? 이시우 작가의 남다른 점은 지행합일(知行合一)에 있었다.”(대담자의 서문 중에서)  

 

이시우 작가의 작품활동은 ‘인터넷’과 ‘첨단’과 ‘과학’에 의존하는 21세기 예술가들과 작가들을 무색하게 한다. 명색이 사진작가인데 그에게는 그 흔한 DSLR 카메라 한 대 없다. 오래된 필름카메라와 누군가 안쓰러운 마음에 전해줬다는 소형 콤팩트(똑딱이) 카메라 한 대가 있을 뿐이다.

최진섭 대표는 “이시우 작가는 사진을 발바닥(그는 발가슴이라 말한다)으로 찍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 민통선 지역 구석구석을 걸어 다녔고, 미군을 주제로 사진 작업 할 때는 남한의 미군기지뿐만 아니라 일본과 독일의 거의 모든 미군기지를 탐사하고 다녔다. 강화에 있는 집에서 작업실까지 오고갈 때도 왕복 서너 시간의 거리를 항상 걸어 다닌다. 걸으면서 사색하고, 공부하고, 사진을 찍는 그를 ‘길 위의 도인’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며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아픈 것을 껴안은 채 작업하는 사진작가, 고독할수록 ‘주인으로서 성장해가는’ 이시우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 책에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시우 작가는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뢰 그리고 유엔사령부와 유엔체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는 비무장지대가 한반도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비무장지대가 남한의 관점으로 보면 변방에 불과하지만 세계체제의 관점으로 넓혀보면 비무장지대가 한반도의 중심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위치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체계 차원에서 그렇죠. 비무장지대와 인근 지 역은 한반도 차원에서 보면 분단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지만, 세계 차원에서 보면 2차 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유엔체계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죠. … 그런데 38선은 한반도의 분단선일 뿐만 아니라 세계체계의 균열선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다음날 38선 문제는 한반도 문제가 아닌 세계 문제가 되어버리죠. 이것이 김일성을 곤란에 빠뜨린 구조였습니다. 남북교류의 확대를 통해 비무장지대를 무너뜨리겠다는 구상은 한반도 차원에서만 보는 단견이죠. 세계 차원이나 유엔 체계에서 보았을 때 비무장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는 유엔군사령부 해체입니다.”(36쪽)라고 설명한다.

 

이시우 작가가 지뢰 사진 작업에 초점을 맞추게 된 계기는 한 외국인 때문이었다.

“결정적 계기는 199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대인지뢰 금지캠페인(ICBL)의 조디 윌리엄스를 알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조디 윌리엄스가 수상 후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해서 왔습니다. 한국 비무장지대의 지뢰가 세계 무대에서 최대쟁점이 되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노벨상수상자는 대사급 대우를 받는다고 해요. 조디는 지뢰피해자를 꼭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민통선 사진 찍으면서 지뢰피해자가 어디 사는지 알고 있어서 안내를 맡게 됐죠. 조디는 강연료로 전부 의족을 사서 지뢰피해자들에게 선물했어요. 한국의 지뢰피해자가 최초로 한국 언론에 노출된 날이었죠. 부끄러웠습니다. 우리의 이웃을 외국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요. 빚진 느낌으로 그때부터 지뢰 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44쪽)

 

[관련기사] “대인지뢰금지 캠페인 돌입, 조디 윌리엄스 방한…국내 여론 형성
관심”

http://sarangbang.or.kr/kr/info/hrinput/hr_content.html?seqnum=5515&page=247&key=publishday+between+880815600+and+949244400&order=1

 

이시우 작가에게 비무장지대와 지뢰, 민통선과 유엔사령부는 한반도와 한민족의 ‘현재’를 옥죄는 분단체제가 드러난 장면들이다. 분단체제가 마음에 들어오면 지뢰피해자로, 민통선 주민들의 고통으로, 미군범죄로 발생하는 한국인에게 상처와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치열하게 조사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으며, 국내외 학계에서 부실한 연구상황을 넘어 스스로 자신의 연구결과물을 출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철원평야의 철새’를 촬영했고, 비무장지대의 지뢰밭에 들어가 ‘철원 월정리역 못’과 ‘지뢰꽃’ 등을 촬영했다. 비무장지대로 시작한 그의 연구는 체계와 구조를 따라 한강하구와 유라시아, 주한미군과 정전협정, 국가보안법과 분단체제, 유엔사령부와 유엔체제, 그리고 오키나와와 한미일군사동맹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최진섭 대표의 말에 따르면, 그의 연구 결과는 관련분야에 종사하는 보통의 박사급이나 교수급을 몇 단계 초월한다.

"그의 책에는 웬만한 학술논문보다도 많은 수백, 수천 개의 각주가 달려 있다. 큰 결심을 하지 않으면 독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대담집은 이시우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미학 강의록인 동시에 그의 저작과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는 입문서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아픈 것을 껴안은 채 작업하는 사진작가, 고독할수록 ‘주인으로서 성장해가는’ 이시우 작가의 작품세계가 이 책에 담겨있는 셈이다."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라는 이시우 작가의 사진 작품과 연구활동의 세계는 ‘어둠의 미학’ ‘가슴의 미학’을 향한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 철학, 그리고 실천은 어려우면서도 가슴 속에 깊이 남는 무언가가 있다.

서구 학계에서 들여온 국내의 ‘미학’ 개념이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죠. 몸의 중심이 아픈 곳이듯, 이 사회의 중심도 아프고 소외된 곳이며, 또한 세계의 중심도 전쟁과 기아의 고통이 끊이지 않는 곳이 아닐까요. 아픔이 있는 곳이야말로 사회와 세계의 문제가 집중된 곳이고, 그곳의 문제가 풀릴 때 사회와 세계의 모순이 해결될 것입니다. 몸의 중심이 심장이나 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의 중심은 청와대나 국회이고, 세계의 중심도 백악관이나 미국이라고 생각할지 몰라요. 그 또한 나름대로 중심의 이유가 충분하지만, 어느 자리에 자신의 입장을 세우는가에 따라 미학관은 크게 달라질 거예요. 아픔과 소외, 낯선 것을 미학적으로 통합한 개념으로 어둠이란 개념을 선택했죠.”(279쪽)

 

-인상 깊은 문장-

 

“1920년대 독립운동가들은 세계혁명이 이루어져야 조선의 독립도 달성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빨치산부대들이 중국과 러시아에 가서 싸웁니다. 분단과 함께 대륙을 무대로 한 운동의 감각이 소멸되고 말았어요.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에 의해 생겼고, 정전협정은 한국 전쟁의 산물이며, 한국전쟁은 유엔이 유엔헌장을 왜곡하면서까지 개입한 최초의 전쟁이에요. 유엔체계의 모순이 가장 집약된 사건 중의 하나가
한국전쟁시 유엔군사령부입니다. 따라서 비무장지대를 파면 세계체계의 모순이라는 광맥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지역. 분단, 세계라는 틀로 비무장지대를 봐야 좀 더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35쪽)

 

"한국전쟁 때 지뢰를 우리나라에 들여와서 처음 매설한 장본인이 미군이거든요. 당시 기록에 따르면 지뢰를 계획에 따라 매설하고 지도를 작성하여 나중에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급박한 전쟁 상황과 공포가 작동하여 지뢰를 뿌리면서 후퇴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시 반격하며 그 길을 통과하다가 과거에 살포했던 지뢰에 미군 스스로 사고를 당하기도 하죠. 그리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와 전혀 관계도 없는 민통선 지역에 대거 지뢰가 매설됩니다. 대소봉쇄전략이란 것이 한반도 지뢰매설작전으로 적용된 것이죠. 그리고 미군 나이키 미사일부대가 있던 후방 40여 개의 산정상 방공포대에도 기지 방어용으로 지뢰가 매설되었는데, 홍수로 유실되어 산 아래 주민들이 사고를 당하기도 했죠."(51쪽)

 

“수평적으로 보면,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항쟁이 시작되었죠. 그 해 4월 9일 예루살렘 서쪽 야신 마을에 이스라엘 지하테러조직인 이르군의 기습으로 아랍주민 250명이 사살됩니다. 콜롬비아에서는 민중지도자 가이딴이 4월 19일 암살되면서 내전상황으로 돌입하고요. 지구의 반대편에서 일어난 이런 일들은 1947년 트루먼독트린으로부터 준비된 사건들입니다. 수직적으로 보면 오키나와에서 만들어진 미군정 교범은 제주도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까지 그대로 적용이 됐죠,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콜롬비아 등 유엔참전국들의 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역사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합니다. 오키나와 역시 마찬가지였죠. 세계차원의 냉전이 각국의 내전과 겹쳐 진행되다가 한국전쟁이란 꼭짓점으로 수렴되는 형상을 보여요. 제주 4.3은 제주만이 아닌 세계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던 냉전의 단면이었죠."(236쪽)

 

[ 2017년 6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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