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그렇게 잘났어요
장영철 / 사회평론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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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교수의 <법정증언>을 통해 알게 된 탈북민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언론 인터뷰와 <법정증언>에서 인용된 문장은 "연변에서 온 동포 직업연수생들이 남한에서 얼마나 차별받고 멸시당했으면 집으로 돌아가며 '만약 전쟁이 다시 한 번 난다면 총을 들고 선참으로 한국에 와서 그놈들을 쏴 죽이겠다'는 악담을 퍼부었겠는가"였다. (기사 : “북한 붕괴,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이재봉)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9719&ref=twit)


 

이 책은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서독으로 가서 한국대 사관을 통해 망명한 저자가 귀순하기까지의 과정과 귀순후 서강대 학생으로 다시 시작했던 한국에서의 생활, 샐러리맨에서 평양냉면집을 계획하기까지 낯선 한국에서의 삶을 밝히고 있다.


 

저자 장영철은 1966년 황해남도 배천군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 아버지는 조선노동당 리당 비서였고, 인민학교 시절 아버지는 배천 자동차공업소 지배인이었다. 북한에서 일종의 중산층이자 주류에 속한 가정이었던 셈이다.

한국의 포항공대나 카이스트 정도로 보면 될 김책공업대학 지질학부를 다니다가 북한 당국의 지원으로 동독에 유학을 갔다. 북한 전역에서 20년 만에 파견되는 유학생으로 선발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미래 엘리트였던 셈이다.


 

장영철은 유학생활 초기부터 동독에서 문화적, 경제적 충격을 크게 받았다고 말한다. 생맥주, 남녀교제, 애정표현, 영화, 수세식 화장실, 마트의 상품진열 등 북한에서 배우고 알던 상황과 너무 달랐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만 먹었지 그런 방면에서 아직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었다. 애정표현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지내는 내 청춘이 억울했다.”(51쪽)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위상, 김일성 주석과 북한 체제에 대한 인식 등과 관련해서도 다른 국가의 유학생들과 충돌도 잦았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들은 그 후 나의 독일생활에서 비판적 시각을 갖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느새 김일성 배지는 문제를 일으키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것은 결코 북한을 선전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유가 없는 독재의 나라의 상징적 물건이 되었다.”(62쪽)


 

그렇게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 동독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장영철은 유학생활 3년이 지난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혼란 속에서 서독으로 도망갈 결심을 한다. 그는 도피자금 마련(2천 마르크)을 위해 유학생활 중 알게된 광산회사의 프로젝트 소프트웨어를 몰래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는 1989년 11월 베를린의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한다. 그와 함께 넘어 온 사람이 바로 코미디언으로 알려진 전철우씨다.


 

아무튼 장영철은 1991년 서강대에 입학했지만 대학과 학생들 속에 어울릴 수가 없었다. 학생들의 농남을 따라갈 수도 없었고 북한과 많이 다른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지기도 어려웠다. ‘자유대한(?)’에서 데모하는 대학생들 역시 납득하기 어려웠다. 특히 ‘북한 사람’이라는 선입관이 그를 괴롭혔다. “언제나 따라다니는 ‘북한 사람’이라는 꼬리표 때문이었다. 나는 어떠한 변화도 따라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이방인처럼 눈만 두리번거렸다.”(120쪽)

서강대 91학번이면 아직 노태우 정권 시절이다. 노태우 정권은 직선제라는 형식을 거쳤을 뿐, 전두환 군사독재체제의 연장이었고 박정희-전두환 체제에 편승하고 기생한 이들이 장악한 사회체제였다. 그리고 1992년에 당선된 김영삼 정권 역시 겉으로는 민간정부였지만 노태우의 민정당과 김종필의 공화당이 합당한 군사독재체제의 연장이었다. 북한체제의 폐쇄성과 독재체제에서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장영철이 그런 한국 사회체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아니러니다. 물론 장영철도 한국의 체제가 자신이 염원했던 ‘자유대한’에 가깝지 않아 스스로 혼란스러웠음을 고백한다.


 

장영철이 대학을 졸업한 것은 1995년이다. 그 이후 그는 방송사 PD, 작가의 꿈을 깨고 포스코에 입사해 자재관리부에서 샐러리맨으로 살았다. 후배들은 그의 회사자랑 소리가 듣기 싫어 그를 만나기를 꺼려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이 책이 출간되기 얼마 전 친구의 꼬임(?)에 빠져 남들이 부러워 하는 대기업 직장을 때려치웠다. 갑자기 방송인 전철우씨와 일산 자유로변에 평양식 냉면집을 차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서른 살 총각사장이 된다.

그가 이 책을 출간했을 때에는,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다른 샐러리맨들처럼 한 달에 몇 천만 원의 수익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꿈꾸고 있었다.


 

장영철이 이 책을 출간한 가장 큰 이유는 책의 제목 “당신들이 그렇게 잘났어요?”에 나타나 있다. 장영철이 책의 초반에 자신이 한국으로 탈출한 이유와 과정을 밝혔지만, 그가 책을 통해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남쪽 사람들의 북쪽에 대한 이해’와 ‘민족동질성 회복’에 관한 것이었다. 제2부 ‘남한 사람이 북한을 이해 못하는 이유’와 제3부 ‘김책 공대 82학번, 서강대 91학번’에 걸쳐 장영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남한 대학생들은 북한 노래를 ‘촌스럽다’고 느끼고 평가한다. 북한 사람들은 술자리를 하다가  남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남한 노래가 꽤 알려져 있다.

“귀순 직접 동기 80%가 여성과 얽힌 문제 해결”이라는 <월간 중앙>의 제목. “티눈 만한 사실을 전체로 확대 해석하여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남의 삶을 마구 헤집어 놓는 회포성, 상업적 가치만 있다면 자기 아버지라도 팔아 넘길 듯한 그 살벌함, 그저 자본주의의 병폐라고 보아 넘기에는 우리들이 받은 상처가 너무 크다.”(158쪽)

코메디나 교양 프로에서 나오는 북한사람들의 의상과 언행으로 이미지화되는 ‘북한의 촌스러움’ “북한의 주민들은 한없이 바보로 만들고, 또 그들 위에서 군림하는 고위층들은 끝없이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한국의 매스컴이다.”(162쪽)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네 삶의 처지에 맞는 상황을 이해할 뿐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배고프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이 미국 식민지로 고통받고 남조선 어린이들이 굶고 있다는 당국의 선전을 곧잘 이해하지만, 남한 어린이들은 ‘배고프면 라면 먹지’라며 굶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167쪽)

“과거 귀순자들이 하던 역할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 구태여 귀순자들을 등장시켜 북에 대한 남의 우월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미미한 가치는 남아 있다. 그러나 한둘이 와서는 더 이상 흥미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단위의 집단이 오거나 북의 고위층이라야 받아준다. 선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338쪽)


 

대체로 위와 같은 내용들이, 장영철이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을 이해하도록 설득하는 대목들이며, ‘민족동일성 회복’을 위한 그의 노력이다.

이 책의 가치는, 탈북자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편견과 폄하를 고발하는 것이다. 탈북 후 제대로된 교육과 일자리 기회를 준비하지 않은 채 정부와 탈북단체에서 탈북을 기획하고 부추기는 행태도 비판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당신들이 그렇게 잘났어요?>를 읽은 독자들이 책을 통해 받을 느낌은 오히려 ‘북한에 대한 부정적 혐오적 시각’과 ‘북한 인민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될 것이다. 장영철이 애초에 의도했던  ‘남쪽 사람들의 북쪽에 대한 이해’와 ‘민족동질성 회복’은 이 책을 통해서는 여의치 않다.

그는 책의 머리말부터 마지막 단락에 이르기까지 북한 체제와 지도부, 북한의 사회문화, 북한 인민들의 태도와 생활에 대해 부정적이고 동정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컴플렉스도 극복하지 못했다. 말로는 남한 언론과 사람들이 ‘북한의 촌스러움’과 ‘북한의 주민들은 한없이 바보로 만들고, 또 그들 위에서 군림하는 고위층들은 끝없이 영웅으로 만든’다고 주장하면서도 초지일관 북한 인민들의 장점과 살아가는 동력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사회”이고, 남한과 비슷한 명절을 쇠고 비슷한 놀이와 문화를 갖고 있으며, 순박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산다는 점을 강조하지 못한다. 결국 장영철도 국내외에 존재하는 극우적이고 일방적 냉전적 사고방식인 ‘흡수통일’이라는 망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대북비방 전단 살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추구했던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과 교류 시기에 장영철의 소감과 움직임이 궁금했지만,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었다.)


 

적지 않은 국내외 학자들과 정치인들도 북한 체제와 지도력 성립의 역사, 냉전과 체제봉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했던 북한의 노력, 북한 지도부와 인민들의 관계, 북한 내 사상철학의 장점과 단점을 거론하면서 남북관계 회복과 동북아 평화를 위한 대화를 통한 평화회복을 주장한다.

장영철이 아무리 북한체제를 버리고 남한으로 귀순한 처지라고 해도, 남북관계 회복과 민족동일성 회복을 위한 진심이 있었더라면 자신만은 북한사회와 인민들의 입장에서 변호하면서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부정적이고 폄하할 내용보다 자랑하고 긍정할 만한 내용을 담아야 했다.


 

물론 그의 곤혹스러운 입장도 이해한다. 장영철은 1989년 11월 귀순(?) 후, 서울에서 서강대학 91학번으로 대학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는 1년 동안 국정원(안기부?)과 관련 기관에서 탈북에 대해 조사 받고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이후 지금까지 국정원과 공안기관의 감시와 보고 틀 속에서 생활해야 했을 것이다.

이 책 내용 중에서 탈북에 따른 공안기관의 수사와 교육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것도 밝히지 않는다.(그래서 이 책 내용도 미리 공안기관에게 검증받았을 것이라 감안해서 읽는다.)


 

한국살이 7년은 장영철에게 냉혹한 자본주의, 한국식 신자유주의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는 정부에서 제공한 정착금 1억원을 주식투자로 날리기도 했다.

“한국살이 7년 동안 느낀 것은 냉혹한 현실의 벽이었다. 이질적 문화의 벽, 학문의 벽, 언어의 벽, 인맥의 벽이 겹겹이 나의 앞길을 막아섰다. 간신히 하나를 넘고 나니 또 다른 벽이 막아섰고 그 높이는 전의 것보다 곱으로 높았다.

이 땅에서 나의 삶을 돌이켜 보건대 ‘좋구나’ 또는 ‘자유스럽구나’를 느낀 것은 순간이요, 낮설음과 혼란 속에 헤메이며 좌절과 실패의 쓰라림을 맛본 나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첩첩산중 넘어가야 할 길 또한 걸어온 것보다 더 멀 것이다.”(230쪽)


 

장영철은 탈북자 중에서 그나마 정부에서 가치를 인정한 축에 속하여 지원도 많이 받았고 개인적인 능력이 있어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19년 동안 서서히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한때 정부와 탈북자단체, 공안기관에 의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기획 탈북’을 하게된 수천, 수만 명의 탈북자들 중 장영철 만큼의 지원도 못받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살아남을 능력도 부족한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최근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기자회견한 탈북자들과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제3국으로 망명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한 탈북자들이, 2017년 탈북자들의 처지를 보여준다. 여전히 정치권에게, 권력에게, 공안기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장영철 관련 기사-


 

[이사람] 두고 온 고향에 ‘마음의 짐’ 갚고파 (2007년)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0601.html


 

<탈북자들 "봉사로 하나되고 싶습니다"> - 작성자 연합뉴스 (2013년)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SNS/r.aspx?c=AKR20131118071500065


[2017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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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의 법정 증언 PEACE by PEACE
이재봉 지음 / 들녘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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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한다.”

이 문장은 대한민국 법원의 증언대에 서는 모든 사람이 판사 앞에서 맹세해야 하는 ‘증인 선서’다. 저자 이재봉 교수는 재판의 증언자로 나서게 되면, 대한민국 사법부의 ‘증인 선서’의 보호 아래 ‘양심에 따라 숨김고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증언한다.

‘증인 선서’가 이재봉 교수를 ‘보호’해주는 이유는, 이 교수가 증언자로 나서는 소송 사건이 대부분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10여차례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에서 전문가증언을 해왔다. 주로 통일운동을 하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걸려든 사람들의 재판이었다. 이재봉교수는 통일과 북에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증언을 그치지 않아 왔다. 그 이유는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여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검찰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 그의 증언이 조선, 중아, 동아일보나 종편 등 극우언론에서 왜곡되어 보도되는 것을 보고, 이 교수는 그의 법정증언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칼럼을 연재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재봉의 법정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이 교수는 법정에서 ‘증인 선서’를 바탕으로 북한의 국가자격, 김일성 주석, 주체사상, 북핵과 미사일 개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연방제 통일방안, 정전협정, 주한미군, 반미운동 등 한국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까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증언한다.

또 한국현대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공산주의 성향의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며, 공산주의가 항일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분단과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를 처음 접한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한반도에서 공산주의운동은 일제치하에서부터 시작됐고, 평양보다 서울에서 훨씬 활발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한반도역사에 준 영향이 적지 않지만, 반공주의에 갇힌 역사교육으로는 배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어느 이념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평가와 합리적인 비판을 통해 사안을 다루는 태도는 ‘한미동맹’의 상대방인 미국을 대할 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친미반공의 사회구조안에서 말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미국이 한반도의 분단을 주도했다는 아주 기본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남사회 내에서 ‘종북’으로 받아들여져 국가보안법의 처벌받을 수 있는 반미운동에 대한 기원과 성질을 짚어본다.

반미운동은 1945년 미군이 한반도에 착륙하자마자 자생적으로 시작됐다. 일본 식민통치구조의 연장에 불과한 미군정으로 인해 반미감정이 생겨났던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반미감정은 1980년 광주학살과 전두환 독재정권의 배후에 있었던 미국의 행보로 인해 폭발하고,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됐다. 민주화운동이 반미운동으로 발전하며 외세의 간섭 없이 민족통일을 실현하자는 반외세 민족자주운동이 전개됐고, 미국은 통일의 걸림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교수는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남한으로의 핵무기 배치와 핵공격 위협이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라 지적한다. 북한은 핵을 가진 주변국들과 주한미군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재래식 무기와 인력을 축소하여 돈을 아끼기 위해, 미국과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핵개발에 매진해왔다.

저자는 ‘북핵문제’를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발상의 전환’으로 풀어나가지 않는 이상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두단계에 걸친 핵문제해결방안을 제안한다. 최근 급속히 악화해 가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회복하려면, 1단계로 북의 핵 동결 선언과 북미 평화협정 등을 먼저 추진하고 그 이후 북핵 완전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추진하자는 현실적인 2단계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 세력에 의해 '빨갱이'로 묘사되고 있는 사상인 공산주의가 사실 이념적으로는 이상형에 가까울 만큼 바람직하며 이를 추진하기 위한 중간 단계인 사회주의 체제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아 1990년대 소련 붕괴를 시작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반해 자본주의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오히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견제해왔기 때문에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이른바 '시장민주주의'나 ‘국가 개입’ 등을 통해 부단히 변화해 왔지만, 사회주의는 사상의 변화는 곧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변화를 거부한 탓에 몰락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생각을 북한에도 적용하고 있다. 사상으로서의 '주체사상'은 사람의 자주성을 강조하고 철학적으로도 의미 있는 사상이지만, 이것이 김일성주의의 '수령론'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이나, 이 과정에서 등장한 '선군정치'의 배경이나 의미를 지적한다.

그리고 최근 이른바 군사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북한의 '병진노선'까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적시한다. 이렇게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북한이 발겨 벗겨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른바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체를 보게 된다.

남한의 이른바 공안 정국 상황에서도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 통일 방안을 "바람직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통일 방안"이라고 강도 높게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학자적 양심마저도 읽힌다.

그리고 북한의 이러한 연방제 제안이 변화해온 과정을 일일이 추적하며, 최근에는 이른바 남한에 흡수될까 하는 우려마저 보이고 있는 '수세적 연방제안'으로 바뀌었다고 통찰하고 있다.

이 교수는 남북 간에 충돌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이른바 '북방한계선'이 등장한 배경을 설명하며, 남북 모두가 실질적인 피해자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이 북방한계선을 평화지대로 만들고자 북한과 협의한 내용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남북한의 갈등을 불려오고 있는 것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이 교수는 자신을 이른바 '친북주의자'라고 단호히 말한다. 통일을 위해서 어떻게 북한과 친하지 않고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의 아주 상식적인 논리이다. 하지만 저자는 왜 이러한 상식이 한국에서는 이른바 '종북'으로 매도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도, 친일파의 등장에서 최근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학자의 양심으로 갈파하고 있다.

<이재봉의 법정 증언>은 저자의 말대로, 특히 보수 언론의 왜곡으로 북한을 두둔하거나 사회주의 사상에 빠진 책이라는 왜곡된 편견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처럼 매우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기준으로 남북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관해 쓴 드문 책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북한과 관련하여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는” 학자나 언론인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이종석, 정창현, 김진향, 박노자 등 정말이지 열 손가락을 넘기기 어렵다. 일부 극우선동가들이 이 교수를 ‘쳐 죽여야 할 빨갱이’라고 매도하곤 하지만, 오히려 ‘존경스러운 노교수’라 평가해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종북몰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집권한 기간 동안 제대로 청산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야권과 진보진영을 공격하고 분열시키는 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갇히고 생계를 박탈당하고 사회정치적으로 매장당했다. 분단을 정권유지 및 강화에 악용해온 ‘분단 기득권 세력’이 한국사회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라도 국가보안법으로 박해받는 양심수들을 위해 ‘증언’하는 이 교수의 양심과 노력에 감사드린다.


[2017년 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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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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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오빠가 돌아왔다. 못생긴 여자애 하나를 달고서였다.”로 시작되는 소설가 김영하의 소설집이다.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는 열네살 하층민 동네에서 자란 아이 다운 소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열네살 소녀의 가족은 술주정뱅이에 ‘고발꾼(사소한 범법행위를 관공서에 고발하여 보상금을 받는다)’인 아빠, 미성년자 동거녀와 집에 돌아온 오빠, 아빠와 헤어지고 함바집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이다.

열여섯 살때까지 아버지에게 늘상 두들겨 맞던 오빠는 가출한 후 4년 만에 군에서 제대하여 집에 돌아왔다. 동거녀와 함께 오빠가 집에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란이 가족에 대한 소녀의 냉소적인 시각에 담겨 거침없이 그려진다. 소녀의 냉소주의는 가족의 사랑을 표현하는 반어적 화법이다.


 

그밖에도 일상의 평범한 사건 속에 숨겨진 헤아릴 수 없는 긴장을 예리한 감성으로 포착한 「이사」와 「마지막 손님」, 기발한 상상력이 아이러니와 조롱에 섞여드는 번뜩이는 순간들을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로 풀어낸 「너의 의미」와 「보물선」(황순원문학상 수상작) 등에서는 새로운 감수성과 다양한 소재로 동시대 한국문학을 갱신하고 있는 작가 김영하의 역량이 잘 드러난다.


 

우리 일상 속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질 듯한 사건사고가 통쾌한 유머와 섬뜩한 아이러니를 업고 짜임새 있게 펼쳐지고 있다. 특히 가치 파괴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그려내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특히 「오빠가 돌아왔다」는 8편의 작품 중에서 압권이다.


 

일자는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 중에 「오빠가 돌아왔다」를 종종 인용하곤 한다.  「오빠가 돌아왔다」에 등장하는 가정과 ‘오빠’의 캐릭터가 유별나게 보이지만 실제 한국현대사가 각 가정에 각인시켰던 여러 굴곡점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성들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렸을 때는 프로이트 심리학처럼 ‘어머니’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일지 몰라도 나이들어서는 성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어떤 존재’라 할 수 있다. 아버지와 관계가 특별하면 특별할수록 그런 필요성은 커진다.

아버지와의 관계와 별개로, 전세계적으로 드물게 ‘국방의 의무’가 부여되는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은 대부분 ‘군대’라는 관문을 거쳐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질풍노도의 시대’라는 청소년기를 막 지나면서 군에 입대하게 되면 많은 남성들이 변화를 겪게 된다. 군대라는 조직의 경험이 남성들에게 여러가지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집단 속에 홀로 견디는 2~3년은 개인을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중요한 계기와 과정이 된다.(물론 연간 150명이 넘는 군대 내 사망자와 수많은 폭력, 학대 사건은 국방부의 무책임한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전히 위험한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오빠가 돌아왔다」의 ‘오빠’의 경우에는, 군대라는 경험을 통해 체격과 힘이라는 면에서 성인으로 당당하게 성장하여 ‘폭군’ 아버지를 제압한 경우에 해당한다.

‘폭군’ 아버지가 보호나 애정은 커녕 어머니를 내쫒고 청소년 시절까지 자신울 폭행한 경험을 가진 남자 아이가 무엇을 배웠겠는가. 가정뿐 아니라 사회나 국가 어디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남자 아이일텐데. 그가 4년 만에 십대 소녀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 ‘폭력’으로 아버지를 제압한다는 설정은, 한국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필자가 아는 지인 중에도 「오빠가 돌아왔다」의 가정과 비슷한 경우가 여럿 있다. 그 중 두 곳의 가정은 아버지가 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 세대다. 각 아들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폭력성에 시달리면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지만 아직이다. 경제적인 독립이 여의치 않고 한 명은 정신적으로도 아직 독립하지 못했다. 공통적인 특징은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가정을 경험한 아버지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동일한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들이 특이한 점은, 바깥에서는 ‘호인’이나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밖에서 다른 이들에게 자상하고 배려심도 보인다는 것이다. 일종의 이중인격일텐데 정신장애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필자는 사회생활 중에 ‘호인’으로 평가되고 지인들을 자상하게 배려하는 남성들을 보이는 그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한국사회는 이중인격이 가능한 사회구조이자 인간관계가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2017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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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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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 <대리사회>

김민섭 저, 2016. 11.. 255쪽, 와이즈베리


저자의 전작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대학에서 보낸 8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지었고, 기업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인 대학의 노동력 착취 실태를 고발했다. 그 책을 출간하고서 홀연 대학을 떠난 저자는 대리운전 기사로 변신했다.

대학을 박차고 나와서야 그는 대학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대학은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괴물'이었고, 자신은 괴물 같은 대학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다.


저자는 대학원생, 박사과정, 시간강사였던 스스로를 대학의 구성원이자 주체로서 믿었지만 그 환상은 강요된 것이었고, 그는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강의실과 연구실에만 존재했다. 강의하고 연구하고 행정 노동을 하는 동안 그는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 받을 수 없었고 재직증명서 발급 대상조차 아니었다.

이후 대학에서 나온 그는 그 시간이 ‘대리의 시간’이었음을 알았다.


저자는 1년간 대리기사로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거리에서 때로는 책상에서 기록해 <대리사회>라는 책을 냈다.


저자가 전하는 대리운전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대리운전에 필요 없는 모든 행위는 계약에 의해 또는 무의식적으로 금지된다. 내 차가 아니기에 의자의 기울기를 조절할 수도 없고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 수도 없었다.

손님이 먼저 말을 건네기 전까지 먼저 말하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손님이 던지는 말에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만 할 뿐이다.


주체적으로 행위하고 말할 수 없게 되니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사유의 통제다.

저자는 대리기사가 겪는 이런 주체성의 통제가 단지 대리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대리기사의 삶을 한국사회에 투영한다. 바로 이 사회가 거대한 대리사회라는 것이다.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자신의 의자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7쪽)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인 것처럼 좌석에 앉아 도로를 질주하지만 이미 조수석에 누군가가 앉아 있다.

이 타자의 욕망은 내비게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고 우리는 내비게이션의 들려주는 길 안내에 따라 운전한다.


‘대리운전’이라는 ‘주체성의 통제’,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사회’를 사회 전분야로 확대적용하여 ‘대리사회’로 규정하는 저자의 논리에 일부 수긍한다. 그렇지만 수긍은 일부일 뿐이다.

‘주체성의 통제’나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사회’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만 개인을 대상화시키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의 특성이고, 언론에 의해 이미지화된 ‘주어진 정당과 후보’에게만 투표하는 것으로 ‘정치의 주인’으로서의 지위를 가로막는 자유민주주의체제(대의민주주의체제)의 특성이지 않을까 싶다. 권력과 자본이 ‘통제’와 ‘상품의 판매’를 위해 시민과 소비자를 획일화시키고 세뇌시키고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체제의 문제가 본질적이다.


필자는 오히려 대리운전이 음주문화와 연관된 특수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로 유지되는 전세계 국가 중에서 대리운전이 얼마나 보편적일지 모르겠지만(언론에 따르면 중국 정도가 대리운전 사업이 폭발적 성장세임), 음주문화가 한국과 비슷한 국가에서 시장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전망이나 자본주의 상품화의 특성상 ‘욕망의 대리경험’과 관련한 기술이나 산업이 성장할 수는 있겠지만, 저자가 의미하는 ‘대리사회’의 개념과는 다를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관계에서 학교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이런 '을의 공간'에 순응하는 법을 체화했기에 우리는 남의 운전석에 앉아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 공간에서 다른 대리인간에 의해 밀려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라고 충고한다. 그래야만 조수석에 앉아 있는 타자의 존재, 즉 자기 욕망을 대리시켜온 대리사회의 괴물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즐거움을 보며 대리로서 즐거워야 한다면, 역설적으로 나 우리는 지금 그만큼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이 만족스럽다면 남들이 먹고 노래 부르는 것에 지금처럼 필요 이상으로 열광할 이유 는 없다. 결국 많은 이들이 새벽에 연구실에 앉아서 기약 없는 논문을 써 내려가는것만큼이나 외롭거나, 아니면 절박한 심정이라는 이야기 가된다."(212쪽)


저자는 그때부터 '사유하는 주체'가 되고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그 누구도 가르쳐준 바 없지만, 결국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한다. 밀려나기는 쉽지만 스스로 물러서기는 어렵다. 그것은 공간의 주체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고 절대로 패배가 아니다. 그러고 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그 균열의 확장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대리시켜 온 대리사회의 괴물과 마주할 수 있다. 그때부터는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여전히 행동과 언어는 통제될지라도, 정의로움을 판단하고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키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 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는다.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다만, 한 걸음만 물러설 용기를 가지면 된다. 대리인간으로 밀려날 것인지, 스스로 물러서고 다시 나아오는 주체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252쪽)


‘사유하는 주체’, ‘거부할 수 있는 용기’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대리사회’라는 개념보다 이반 일리히의 <학교없는 사회>나 <병원이 병을 만든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와 <그림자 노동>, 그리고 <성장을 멈춰라>가 자본주의 체제나 근대사회체제를 비판하고 세계와 자신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문제의식에 적합하다고 본다.


[2017년 4월 20일]

(다른 책에 대한 리뷰가 궁금하신 분은 블로그 http://book.interpark.com/blog/connan 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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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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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서평] 대학은 기업화된 ‘괴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저, 20153 10., 은행나무


2009년 현재 전국 405개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4년제 대학 157곳, 전문대학 129곳, 대학원대학 18곳 등 305곳에서 강의하고 있는 시간강사는 총 84,797명으로 조사됐다.(405개 전체로 환산하면 약 11만명) 이중 국·공립대가 14,290명, 사립대가 70,507명이다. 석사학위가 44,188명이고 박사학위 소지자는 30,966명이며, 그중 전업강사가 35,477명이라 한다. 하지만 전업강사 중 법정 수업시간 수인 주당 9시간 이상을 강의하는 실제 시간강사는 16,536명에 불과하다.([교수신문] 시간강사, 6시간 미만 강의가 50% 넘어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9012)


인용처인 [교수신문]에 따르면 전국 대학교수는 2013년 현재 73,400명이라 하니 한국의 대학은 교수보다 시간강사가 더 많은 셈이다. 교수보다 시간강사에게 지불하는 임금과 복지비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수와 시간강사의 실제 수업시간 등 내용은 다르겠지만, 대학의 핵심 역할(서비스)가 강의이므로 강의에 대해 시간 당 책정하는 비용이 다르다.

즉 대학, 학교법인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학생들에게 그것도 매년 등록금을 올려받았지만, 대학운영비의 절감을 목적으로 교수의 정원을 늘리지 않고 시간강사만 땜빵시키면서 ‘학위 장사’를 한 것이다.


그렇게 대학으로부터 착취당한 시간강사, 그중에서 가장 처우가 열악한 지방대학교 시간강사가 직접 시간강사들의 애환을 이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필자는, 대학이 시간강사의 노동과 열정을 착취하여 시간강사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대학교육을 망가뜨리며 대학을 기업화시킨다는 일반적인 내용을 이미 몇 년 전에 김동춘의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1999)>와 이정규의 <한국사회의 학력,학벌주의(2003)> 등 몇 개의 책을 통해 알았다. 하지만 시간강사들의 구체적인 삶과 애환을 느낄 수는 없었다.

드디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통해 뒤늦게 그들의 고통과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너무 늦게 책을 통해 체험한 ‘애환’은 막막하고 쓰릴 뿐이다. ‘지방시(지방대학교시간강사)’라는 단어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소설 쓰는 것을 좋아했고 지도교수가 말한 학문의 즐거움이 궁금해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는 “대학이란 지성진리학문의 총체라고 생각했고, 강의실과 연구실은 내게 가장 가치있는 공간이었다. 대학의 합리성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괴물로서 대학의 맨얼굴을 보게 된 계기는 “본업인 연구와 강의로는 도저히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논문을 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글을 어딘가에 투고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회 가입비와 연회비, 그리고 심사에 대해 고맙다는 의미의 심사비 등 도리어 20만원 가까이를 학회에 내야 해요. 최근에는 6-8학점을 강의했는데, 그러면 1년에 1000만원 내외를 버는 수준이에요. 그리고 건강보험 등 4대보험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결혼을 했고 아들이 태어났다. 기쁜 일인데도 막막한 마음이 앞섰다. 아들과 아내를 산후조리원에 두고 정처 없이 거리를 걷다가, 문득 맥도날드 앞에 붙은 구인공고를 봤다. 새벽에 나가 몸을 써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한달에 60시간 이상 일하면 직장가입자로서 4대보험을 보장해준다는 말을 듣고, 덜 컥 일을 시작했다. 고된 일이었지만 최저시급 5580원은 생계에 쏠쏠한 도움이 됐고, 직장 가입자로 건강보험에 가입해 부모님까지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었다.


“대학과 맥도날드를 비교해봤어요. 맥도날드는 신자유주의의 표상이지만, 그곳에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제도나 매뉴얼이 꼼꼼하게 갖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합리성의 표상이라는 대학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어요. 시간강사부터 조교, 학부 아르바이트생까지 ‘학문의 길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가혹한 착취를 하고 있는 '괴물'로 서 대학의 맨얼굴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나 사회인'이 아닌, 대학을 배회하는 유령으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새롭게 깨닫게 됐죠.”


이렇듯 저자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동안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겪은 실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펼쳐내고 있다. 제도권의 삶이 비루하다고 불평하지도, “내가 이렇게 힘드니 좀 봐달라”고 징징대지도, “이러한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그저 한 청년이 이렇게 꿋꿋이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고 있다고 보여줄 뿐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젊을 땐 좀 아파도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불평만 한다”는 식의 기성세대의 일갈에 대한 답으로서, 꿈을 가진 한 청년이 얼마나 ‘노오력’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 꿈 때문에 현재를 얼마나 처절히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지 잘 말해준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 이때에 제도권에서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고, 그래서 8090세대 청년들에 대한 세대성의 가슴 서늘한 기록이 된다. 그 세대들이 기성세대와 현 정치권, 기득권에 대해 불신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셈이다.


저자는 대학이라는, 제도권이라는 ‘괴물’(요즘 회자되는 ‘헬조선’의 대학)에서 혼자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꿈을 찾아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처럼 ‘괴물’에서 벗어나는 시간강사는 전체 11만 명 중 얼마나 될까. 저자 혼자서, 저자처럼 깨닫고 용기를 내어 벗어나는 강사들이 얼마나 될까. 즉 저자의 용기와 탈출은 개인적인 결단일 것이다.

저자와 조금 다른 이유로, 조금 다른 처지로 인해 아직도 대학이라는 ‘괴물’ ‘헬조선’에 갇힌 사람들은 못나서, ‘노오력’이 부족한 것일까. ‘글쓰기’가 전공이 아닌 강사들은 어떻게 ‘괴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필자는 저자가 비슷한 처지의 강사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머리와 어깨를 맞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헬조선’에서는 ‘지방시’ 시간강사들이 혼자만의 노력과 용기로 탈출하여 안착할 만한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지성, 진리, 학문’을 대학이 만들어내지 못할 때, 비슷한 처지의 강사들(노동자들)이 대학으로부터 착취당하는 대학 내 노동자, 학생, 교직원 그리고 해고위협에 시달리는 교수들과 어깨 걸고 나서지 않는 한, 정부나 정치권이 결코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7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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