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술래 - 과자장수가 골목에서 만난 바삭 와삭 와락 왈칵하는 이야기
박명균 지음 / 헤르츠나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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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서평]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 <나는 언제나 술래>

박명균 저, 2016. 05., 367쪽, 헤르츠나인


 

“우리는 그저 놀면 되는 나이였다. 놀아도 되는 나이였다. 이곳은 묘지 위에 세워진 우리의 새고향이었다. 맹이의 고향이었다.”

“이제 동생도 마흔이 넘었다. 그 일 뒤로도 난 내가 바쁘고, 어려워서 동생에게 해준 게 없다. 부모님께도 잘한 게 없다. 여동생에게 30년 전에 미안하다고 말한 게 전부다. 예쁘다고 아니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500권의 책을 읽었다. 노가다를 하면서 또 500권을 읽었ㄷ가.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1000권의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누가다 아저씨들은 모두 이 힘든 노동에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수시로 한계를 만난다. 마음이 막힐 때가 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운다. 마음이 포기하는 지점에서 담배를 문다. 이렇게 번 돈으로 집에 가서 싸운다. 이걸로 어떻게 애들 공부시키느냐고.”

“내가 괜찮아도 아무거나 할 수가 없다. 나 혼자면 괜찮았던 일이 누구 남편으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아내를 통해서 사회적인 체면과 나를 다시 만난다. 나 자신을 위해서 뭔가 해야 되는데 지금까지 나는 뭘 한 걸까? 열심히 산다고 살았느데, 이게 뭘까? 왜 이렇게 꼼짝할 수가 없을까? 왜 이렇게 숨을 쉴 수가 없을까?”

“아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굶지는 않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제일 견디기 힘든 건, 날 사랑하는 사람한테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너무 없어서 견딜 수가 없다. 이렇게 초라한 놈을 신랑이라고 격려하고 위해주는 사람에게 입 맞추고 따뜻하게 안아줄 자신이 없어진다. 그런 나를 다시금 위로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차마 도망치고 싶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사람한테, 나한테 이렇게까지 중요한 문제인지 몰랐다. 굳어 있던 입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많이도 필요 없다. 딱 한 사람이라도 내 속을 알아주면 된다.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절대적인 무언가다.”

“밤에 일이 끝나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집에서는 들어오라고 성화다. 이제 막 태어난 아들 보느라 아내가 힘들어서 일찍 들어오라는데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들어갈 수가 없다. 아들이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다.”

“운이 좋아서 아들의 폭행사건을 무마되었다. 그날부터였다. 아들의 도끼눈이 풀린 것이. 그리고 받아들였다. 영어를, 수학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생과 무엇보다 자신을 받아들였다. 괜찮은 애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한 문장, 한 문장… 자신이 직접 겪고 느끼고 아파던 삶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고등학생운동은 아주 짧게 반짝였고 금방 사라졌다. 1980년대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뜨겁게 진행되었고, 90년대 중후반까지 지속되었다. 1991년 당시 민주주의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던진 6명의 학생 가운데, 3명이 고등학생운동 출신이고, 1명은 고등학생이었다.

또한 80년대 말 전교조 창립, 대규모 해직 과정에는 고등학생운동도 있었다. 학생들은 교육의 또 하나의 주체로 등장했고, 고등학생운동 활동가들은 전교조에 대한 전면적 지지투쟁을 벌였으며, 그로 인해 구속과 퇴학처분을 겪기도했다. 고등학생운동은 학교안과 밖에서, 공개 단체에서 비공개 단체에서 매일매일 조직하고 투쟁했다.

당시 고등학생운동을 했던 당시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특히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또는 못한 이들은?


 

당시 고등학생운동 활동가들이 후배들과 학습용으로 많이 읽었던 책 중에 <친구야 세상이 희망차 보인다>(1990, 동녘), <불량제품이 부르는 희망노래>(1989, 동녘)가 있었다. 비민주적인 사회와 교육 현실을 담고 있는 책이다. 둘 다 <나는 언제나 술래>의 저자 박명균이 10대 였던 고등학교 시절 단독저자, 공동저자로 펴낸 책이다.

90년대 중후반 고등학생 운동의 쇠퇴와 함께 그의 조직도 해산했고, 그는 생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뜨거웠던 그 시절,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던 10대 박명균은 이제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쫓겨나고 내몰리는 ‘헬(hell) 조선’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사는 영세자영업자가 되었다. 말이 자영업자이지 앵벌이 노동자와 다름 아니다. 그전에 그는 주로 ‘노가다’를 뛰었다. 그가 겪은 지난 30년의 삶도 ‘헬 조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박명균이 27년 만에 <나는 언제나 술래>를 세상에 내놓았다. 컴맹이라는 그가 독수리타법으로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출간했다. ‘글을 쓰지않고, 과자를 파는 자신이 서운했던’ 그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하명희 작가 덕분이라고 한다. 더 정확히는 하명희의 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2014, 사회평론) 때문이라고한다.

이 소설은 당시 고등학생운동을 면밀히 묘사한 소설로 <22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 했다. 하명희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당시 해직되었던 전교조 선생님들도 복권이 되었는데, 그때 학교에서 쫓겨났던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왜 아무도 그들의 삶을 물어주지 않는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박명균은 사회의 밑바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중년의 사내가 눈물을 훔친다. 1톤 탑차 트럭 운전석에 앉은 그는 문방구, 슈퍼, 골목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곤 자꾸 울어 버린다. 하루 12시간 동안 30여개의 가게를 돌며과자를 팔아야 한다.

한 가게에서 물건을 내리고, 흥정을 하고, 상품을 진열하고, 수금을 하기까지 쓸 수 있는 시간은 7,8분이다. 빨리 다음 가게까지 운전해서 이동해야하는데, 그 짧은 순간 누군가의 ‘마음 지문’을 만나 버렸다.

그 느낌을 글로 옮기고 싶다. 초조한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아 몇 줄, 아니 몇 개의 단어라도 수첩에 옮겨 놓는다. 다시 트럭을움직여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메모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트럭을 출발 시킨 날은 밤늦게 집에 돌아와 다시 수첩을 펼친다. 하지만 감정은 이미 날아가고 단어들만 헛헛하게 굴러다니는 걸 발견한다. 그런날은 그 단어들과 함께 잠자리에 눕는다.

점심은 늘 김밥 한 줄이니, 집에 돌아와 먹는 저녁은 늘 수북하다.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피로와 식곤증이 범벅이 되어 밀려오고, 내일12시간 쉼 없이 일하려면 빨리 잠들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한 날은 쉬이 잠들지 못하고 단어들과 함께 눕는다. 그렇게 몸으로 써 내려간 63개의 이야기가 <나는 언제나 술래>에 담겨있다.


 

‘대기업에 잠식당하는 골목 상권’이라는 짧은 말에 다 담기지 못하는 구체적 울분과 땀내 가득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더 이상 바닥으로 내려갈 곳 없는 이들이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 견디거나 견디지 못하는지, ‘그런 서로’를 어떻게 알아보고 침묵으로 위로 할 수 있는지 말해준다.

먹고 먹히는 현실에서 먹히는 쪽이 되지 않기 위해 ‘악마’가 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 죽을 때 까지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자신을 고백한다. 상대적 빈곤이 아니라 절대적 빈곤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삶에서 가난은 ‘손발이 묶인 나를 쥐새끼가 물어뜯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저자 박명균의 글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자주 울컥하게 만든다.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의 삶은 이론서적이나 소설처럼 마냥 아름답지만도 않고 긍정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며, 선과 악이 감정과 이성이 희망과 좌절이 분노와 체념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술래>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고작 남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의 치열한 삶만큼 나의 삶이 치열하지 못할 뿐이라고 반성하게 된다.

이 책은 글쓰는 후배에게 선물받은 것이다.


 

“노가다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바닥을 밟고 있어서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바닥에 뭐가 있든 우리는 그 바닥을 밟아야, 그 바닥을 밟고 걸어야 하루일당을 번다. 우리가 넘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124쪽)


 

“대한민국에서 노조 일을 하자면 매일 술을 먹어야 하고, 언제 해고될지 몰라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냥 공적인 업무를 보는 건데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상식으로 안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돌봐야 하고, 내가 힘들더라도 내색하지 않으면서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누군가의 마음을 끊임없이 일으켜 세워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을 다 안아주고 혼자 남아서 멍하게 힘들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나한테 웃으면서 투정부린 건데, 그런 친구에게 내 탓이 아니라고 발뺌을 해버렸다”(209쪽)


 

“사람은 얼마든지 사악해질 수 있다. 얼마든지 비굴해질 수도 있다. 삶에 각인된 고통 속에서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 사람의 가슴에 강제로 자기 마음을 꺼내는 고통을 감수하는 시기가 있다. 아버지가 되면서, 자식이 커가면서 서서히 마음을 꺼낸다. 그게 사람으로 고통인 줄도 모르고 자식이 웃으면 웃게 되고, 자식이 울면 울게 되면서 자신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험한 일이라도 저 아이를 지켜줄 수 있다면 받아들이겠다고, 감수하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한다.”(213쪽)


 

“부도라는 것이 현찰이 모자라서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 처음에 너무 가볍게 오기 때문에 손해로 막아내고, 두 번째는 빌리고, 세 번째는 회사를 걸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을 걸게 되기 때문에 중간에 물러나 지지 않는다. 살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덫에 걸린다. 무능해서, 무책임해서 처음부터 무너지면 되는데 10년 넘게 애쓰면서 살아온 사람에게 포기라는 건 어렵다.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 그 가족이 자기를 떠나도록 못나게 구는 게 부도다.”(281쪽)


 

“장사꾼들이 그 (뭉칫)돈을 세어보고 또 세어보는 그 이유를 안다. 경제용어로는 손익분기점을 따진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살아도 되는지, 죽어야 하는지 세어보고 있는 거다.”(295쪽)


 

“욕하고 싶은 순간을 쓴다. 절대 욕은 하지 않는다. 욕을 참고 그 상황이 만들어진 사회적인 배경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사회가 때리는 대로 얻어맞는 사람의 상처를 쓴다. 욕을 하는 순간 글이 사라진다. 욕이 나오는 순간에도 삶의 의미를 찾는 게 내 글의 목적이다.”(352쪽)


[2017년 3월 20일]

우습게 들리겠지만 누가다 아저씨들은 모두 이 힘든 노동에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수시로 한계를 만난다. 마음이 막힐 때가 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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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액션 - 영화로 보는 미국의 두 얼굴
최한욱 지음 / 615(육일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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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한욱 저 <할리우드 액션>을 읽고 / 2013. 11., 200쪽, 615출판


여러 종류의 영화를 즐겨보는 내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어린 시절 유일하게 접한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년에 한두 번 학교 전학생이 동원되어 관람하던 반공영화를 제외하고는.

방 한쪽 구석에 TV가 자리잡은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주말 저녁시간은 ‘타잔’이나 ‘홀쭉이와 뚱뚱이’ 그리고 ‘주말의 영화’에 몰입하곤 하였다.


허리우드 영화 속 세상은 중소도시에 살면서 보고 겪는 일상과 TV 뉴스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가끔 소설책과 위인전도 읽었지만 책에서 경험하거나 상상해볼 수 없는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헐리우드 영화의 기본적인 패턴이 내 무의식과 '상식' 속에 자리잡았다. 미국은 위대하고 선량한 국가이며, 미국인들은 성실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 아메리카 인디언은 잔인하고 무식하며 사기와 배신에 능하다는 이미지, 첨단기술과 상품은 무조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이미지 등을...


할리우드는 세계 영화 시장의 80-90%를 점유하고 있으며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매년 수 십 억 명의 지구인들이 한 편 이상의 할리우드 영화를 소비하게 된다. 지구상에서 할리우드가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지역은 아마도 북한 정도일 것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할리우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념과 문화전파자로써 할리우드의 정치적, 사회적 기능이다. 종종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핵무기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저자가 헐리우드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지구촌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미국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동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한다.


물론, 모든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을 비호하고 미국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인 <라스트 모히컨>과 <매트릭스>, <혹성탈출> 같은 경우는 다르다.

<라스트 모히컨> 속에는 미국인들의 선조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잔인한지 이야기해 준다. 반면에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물론 모든 인디언을 그렇게 설정하지는 않지만)은 선량하고 용감하고 지혜롭고 당당하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기본'이 허위와 허상으로 가득찬 역사이며 현실일 수 있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내가 영화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훈련도 덜 되었기에 저자가 비교,분석해주는 헐리우드 영화는 나에게 또다른 깨달음과 생각을 안겨 준다.

<대부> 시리즈와 <갱스 오브 뉴욕>를 비교하면서 저자는 "미국인들은 왜 조폭영화를 사랑할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역사이며 자신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큰 폭력조직은 미국,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저자가 "조직폭력은 미국인들의 삶"이라는 주장하는 이유는 실제 미국이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수사국 FBI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미국에서 발생한 범죄는 총 1,190만 건이고, 살인사건은 16,110건이었다. 미국이 폭력조직은 21,500개이며 조직원은 모두 104만 명에 달한다.


언젠가부터 TV와 극장가를 주름잡는 좀비영화를 '도살영화'라고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나 역시 아찔했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각도에서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대해 저자는 '미치광이 살인마'는 좀비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잔혹행위는 모두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비영화에서 영화의 관객들은 살인과 학살의 쾌락(?)을 공유하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제작된 시기(1968년)를 고려한다면 이 작품이 베트남전쟁의 은유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소개한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밀려드는 베트남 민중을 보며 미국인들이 '살아있는 시체', 즉 좀비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웜 바디스>를 분석하면서 좀비영화가 십대 취향의 로맨스영화와 좀비영화를 결합이지만, 혐오스러운 존재인 좀비를 호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좀비, 즉 유색인종과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저자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와 <링컨>, <더 레슬러>와 <부기 나이트>, <엘리시움>과 <식코>, <아르고>와 <계엄령>, <화씨 911>과 <세계무역센터>, <그린 존>과 <하트 로커>, <인디펜던스 데이>와 <디스트릭트 나인> 등을 비교한다.


헐리우드 영화, 즉 미국 문화와 한국의 관계는 다른 국가와는 크게 다르다. 1945년 9월 8일 인천으로 들어온 미군정은 일주일 뒤인 9월 15일 서울중앙방송국 등 남한의 10개 방송국을 모두 접수하여 미군정의 군정정책에 대한 홍보매체로 이용하였다. 이때부터 미군이 공급하는 뉴스와 헐리우드 영화가 한국에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TV와 영화관에서 여전하다. 미군정이 왜 방송국과 극장을 장악했는지, 신문과 라디오를 검열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미군정의 방송과 영상매체 장악은 이승만 정권 이후 김대중 정권이 수립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방식만 바뀌었을 뿐 영향력은 그대로다. 52년 동안 미국과 한국정부로 이어져온 방송과 영상매체의 편파적 운영은 아무런 반성도 평가도 없이 그대로 '미국이 천국인줄로만 아는' 재벌과 관료들, 역사의식 없는 사업자들과 기술자들에게 승계되었다.


그렇지만 저자가 헐리우드 영화를 전적으로 거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헐리우드의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이념과 가치, 정책을 세계로 전파하는 창의 역할을 하지만 역으로 우리는 그 창을 통해 미국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물론 할리우드의 창은 완전히 투명하지 않다. 그 창은 반투명 혹은 불투명한 유리로 가려져 있으며 외부로 수많은 커튼이 드리워져 내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부를 전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 깊게 할리우드영화를 관찰하면 그 속에서 진짜 미국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올바른 한미관계의 정립은 미국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자신은 물론 미국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의 변화는 어쩌면 우리의 변화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 인상 깊은 문장 ]


"할리우드는 미국의 ‘문화통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비공식공무기구이다. 헐리우드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보다 세련되고 유연한 방식으로 미국의 가치와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침투시킨다."


"우리는 할리우드의 영화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미국의 문화에 젖어들며 자연스럽게 미국식 사고와 생활방식을 받아드리게 된다. 또한 미국의 국가이념과 가치, 정책에 대해서도 학습하게 된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영향권에 있는 지구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에 동화되고 스스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혹자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누구나 미국의 이념과 가치, 생활방식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 정부와 헐리우드의 밀월관계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는 상항에서 헐리우드는 단지 오락을 제공할 뿐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우리를 헐리우드의 부정적인 영향에 무방비로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 2014년 11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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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
신은미 지음 / 네잎클로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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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서평] 신은미 저 <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 >을 읽고 / 2012. 11., 383쪽, 네잎클로버

작년 말 재미교포 신은미 씨의 북한 여행기를 읽었다.
신은미 씨가 2012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한 여행기를 간혹 읽기도 했지만 단편으로 출간된 사실은 몰랐다. 그런데 작년 10월경 부터인가 페이스북에 다시 신은미씨의 여행기가 올라오면서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신은미씨와 황선씨가 이 여행기를 토대로 독자들과 이야기를 진행하는 ‘통일 콘서트’를 종편 등 극우언론에서 빨간칠을 하고 익산에서 멋 모르는 청년이 그 영향을 받아 황산테러를 가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신은미씨의 여행기는 내용면에서 북한을 여행한 국내외 다른 여행객들의 여행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어쩌면 순진무구한 신은미씨의 심성과 세심한 글솜씨가 독자를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대구 출신으로 북한을 여행할 때까지 철저한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던 신은미씨에게는 자신의 편견이나 기존 지식으로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북한의 현실에 대한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을 뿐이었다.
한국이나 미국 주류 사회에서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주로 ‘폐쇄된 왕국’, ‘자유가 없는 나라’, ‘전쟁분위기로 물든 나라’, ‘일인교로 종교화된 사회’라는 부정적 인식이었기 때문에 신은미씨가 북한을 여행하면서 구체적으로 접하고 대화하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편견이 깨지면서 “북한도 같은 민족, 같은 동포가 사는 사회”를 새삼 깨닫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편견이 깨지는 경험은 이후 여행기에도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북한주민, ‘공개’ 연애를 하며 손을 잡고 평양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철전지 원쑤 미제국주의자 놈들’의 영어를 배우는 초등학생들, 북한에도 교회가 있다는 점 등을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아마 내 감춰둔 의식 세계에서 북한은 우주 밖, 외계인들이 사는 나라이길 기대했었나 보다. 아니면 속세와 단절돼 있어 그 어떤 평범한 상식도 통용되지 않는, 도깨비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신기한 나라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표현했다는 일부 언론의 표현은 글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가 쓴 글의 주요내용 중 하나가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다. 그는 “관광 봇물이 한 번만 더 터졌다가는 호텔 로비에 이불 펴고 자야 할 지경일 듯 싶었다”며 “수용 가능한 숙박 시설과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썼다. 이외에도 샴푸도 없고 비누도 하나밖에 없던 호텔, 오렌지 주스를 달라고 하니 오렌지맛 환타를 주었던 식당, 사막의 산들처럼 황량한 북한의 산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등에 나무를 지고 가는 모습, 농기구 없이 낫으로만 일하는 농부 등을 묘사하며 “내 입은 웃고 있었지만 가슴은 살 에듯 저리다”라고 썼다.
남한 사람들이 궁금해 할 만한 내용도 글에서 볼 수 있다. 탈북자, 천안함, 종교 등이다. 신씨의 남편은 ‘공산혁명의 수도’ 평양에 위치한 교회를 찾아 “목사님, 이 교회 진짜 교회 맞습니까? 혹시 가짜 교회 아닙니까?”라고 묻기도 하고, 여행 안내원과 천안함, 탈북자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북한의 유적지에서 똑같은 역사를 가진 같은 동포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어딜 가나 같은 동포라며 웃어주고 말걸어주는 사람들은 영락없이 정 많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모습이었다. 이렇듯 신은미씨는 북한 여행을 통해 ‘얼마나 다를까’가 아닌 ‘이토록 똑같을까’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분단된 조국의 현실이 눈에 들어오고, 갈라져 남의 나라 사람보다 못해진 민족의 비극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조국에, 동포에게 무심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여행기를 읽고나니 신은미 씨가 전하는 이북 사람들의 생활상은 종편에서 거창하게 떠들듯이 한국사회를 위험에 빠트리는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남북 동포들간의 민족동일성을 확인해주어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기여하도록 도와주는 내용입니다.
외세와 친일파에 의해 강제로 분단되고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은 남북 동포들이 서로에게 적대감을 갖는 것보다 동질감을 갖는 것이, 날이 갈수록 서로 변하고 차이가 많아지고 있음을 아는 것보다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을 알수록, 국영방송이나 주류매체가 선전하는 ‘보여주기식 생활상’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 만나고 살핀 여행기가 많을수록, 서로 자주 접하고 만나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이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북한 여행기 내용으로 재미교포를 강제로 출국시킨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이 책은 출간되기 전 이미 2012년부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30여 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연재된 글은 거의 매회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다른 연재 기사들에 비교해도 현격하게 차이가 날 정도다. 이뿐만 아니다. 저자에게 개인적으로 쪽지나 메일을 보내는 숫자도 조회수에 비례해 많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비난을 하는 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저자의 글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하는 글들이었다. 실향민, 이산가족 분들의 애절한 사연도 많았다. 분단의 비극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사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았다.
이미 인터넷으로 책으로 여행기를 읽은 독자들이 신은미씨와 황선씨의 북한 여행기를 직접 듣기 위해 조촐하게 모여든 것 뿐이었다.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읽을 사람은 다 읽었을 것이다. 오히려 ‘익산 황산 테러’와 ‘신은미 강제 출국’으로 인해 책 판매량이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왜 토크 콘서트를 방해하고 신은미씨를 강제출국시고 황선씨를 엉뚱하게 구속시킨 것일까?

신은미씨의 북한 여행은 남편의 권유로 시작됐다. 그는 “북한은 평소 여행을 아주 좋아하는 남편이 다음 여행지로 찾다 찾다 결정 내린 곳”이라며 “북한은 한국 국적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광을 허용하고 있었다.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우리 부부도 갈 수 있었다”고 썼다.
북한은 "세상에서 오직 한국인만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얼굴 생김새도, 피부색도, 언어도 똑같지만 한국 국적의 사람들에게만은 허락되지 않은 땅이다. 북한이 허가하지 않기도 한다지만 허가한다 해도 (남)한국인은 갈 수 없다. 정부는 정치적 목적으로만 방북을 승인한다. 승인이 없으면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이라는 살벌한 죄목으로 처벌한다. 가진 자들만이 남북대화와 교류, 협상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외국 국적을 가진 동포에겐 관광을 허용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긴 너무 슬픈 현실이다.

신은미씨는 책을 출간하며 자신의 바람이 있다면 "자신의 북한 여행기를 읽고 단 한 사람만이라도 민족과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과 북의 어린 아이들이 자라서 더 이상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이 제발 끝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첫걸음이, 남과 북이 소통할 수 있는 첫 계기가 되어줄 것으로 믿는다. 어차피 한국의 민주화도 80년대 중반 이후 주권자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권력이나 언론은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주의도 평화도 통일도 반대하고 있다.

[ 2015년 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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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GO발뉴스 - 지승호 이상호의 위험한 인터뷰
지승호.이상호 지음 / 동아시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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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추천 [서평] 이상호 저 < 이상호 GO발뉴스, 지승호 & 이상호의 위험한 인터뷰 >를 읽고 / 2012. 11, 302쪽, 동아시아


2012년 ‘기자생활에 대한 반성문’이라는 말과 함께 이상호 기자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와 출간한 책이다.


"기자질이 제 직업입니다. 질문하는 걸로 밥 먹고 살아왔습니다. 남에게 대답하게 하고 저는 운 좋게 곤경을 피해왔답니다. 그러다 이번에 임자를 만났습니다. 상대는 대한민국 대표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였습니다. 근 20년 동안 남에게 던진 질문을 한꺼번에 되돌려받은 느낌입니다. 
이 책은 지난 기자생활에 대한 반성문입니다. 곤란한 질문도 피하지 않고 답했습니다. 답변을 강제해 한 권의 책으로 뽑아내는 기술, 대단하더군요. 지승호 작가의 탁월한 준비와 배려가 아니었다면 아마 견뎌내지 못했을 겁니다.”(p.05)


이 기자는, 이제는 꺼진 불에 불과한 전두환을 뒤?i는 이해 못할 행각 뒤의 숨겨진 사연,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과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에 대해, 공중파 최초로 방송된 BBK 고발보도 이후 웃지 못할 뒷이야기 등을 책 속에 담았다. 


“의심해야 돼요. 전쟁위협을 강조하는 사람들 그 배후에 전두환이 있고 안보위협을 강화해서 기득권을 키워나가는 신군부체제의 정점에 전두환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중략) 전두환 해외 비자금을 담당했었다는 사람에게서도 연락이 왔어요. 중동 건설현장 회계 책임자였는데, 자신이 그때 자기 회사에 할당된 전두환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거에요. 진술이 아주 구체적이었어요. 취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직은 도와줄 수 없다는 거에요. 이유가 뭐였는지 아세요? 아직 아니라는 거에요. 아직도 전두환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는 거에요. 참여정부 때였는데 말이죠.”(p.23)


“군부는 인사, 정보와 작전, 군납과 획득 이렇게 세 개로 나뉘어있잖아요. YS 때 하나회를 철폐한 것은 따지고 보면 1/3 개혁에 불과했던 겁니다. 단지 인사 부분만을 없앤 거에요. 그래서 DJ 때 정보 및 작전과 관련된 군 개혁을 했죠. 마지막으로 노무현 정부 때 제일 힘든 개혁을 했습니다. 군 획득과 관련한 적폐를 청산했죠. 그렇게 3개 정권을 거치면서 하나회를 약화시켰지만, 완전히 근절하지는 못한 겁니다. 수구냉전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MB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잘려나간 조직들이 급속도로 재건되고 있다는 보도나 첩보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어요. 그 결과 안보위협에 대한 과장이 시작됐어요. MB의 대표적 악행이 바로 신군부라는 곰팡이가 다시 번식할 수 있는 눅눅하고 축축하고 불온한 생태계를 부활시켰다는 점입니다.”(p.30)


이명박 정권에게 장악된 방송문회진흥회는 부정하고 부당한 방식으로 정연주 사장을 내?i고, MBC 사장에 김재철을 앉혔고, 그 김재철은 정권의 입맛대로 방송을 장악하고 이상호 기자에게서 기자수첩과 마이크를 빼앗았다.

이 기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회와 권력을 고발하기 위해 자회사에서 ‘손바닥 뉴스’를 만들었고 회사에서 완전하게 ?i겨난 뒤에는 스스로 ‘고발뉴스’를 만들어 지금 순간에도 기자로서의 한 길을 달리고 있다.

또한 이상호 기자는 비록 기자이지만 정치와 민심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지니고 있다.


“(총선에서 MB심판론이 잘 먹혀들지 않은 이유는?) MB의 무엇을 누가 왜 심판하는 지가 빠져있어요. 목적어도 없고, 주어도 없고, 이유도 없어요. 이렇게 허망한 슬로건을 처음 봤어요. MB를 심판해도 그 이전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데, MB를 심판해도 누가 어떻게 집권한다는 청사진이 보이지 않았아요. MB의 실정만 이야기했지 지난 정부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거죠. 비판이 기준점이 없는 비판, 허무한 거죠. MB가 왜 집권했는지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한 이해와 반성이 없다는 겁니다.”(p.66)


“(문재인의 저서 <운명>에 대해) 노무현 정부 전체를 재벌이라든가 기득권층에 이롭게 보이도록 하는 정책을 쓴 이유가 크게 보면 삼성의 경제관을 따랐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어떻게 그걸 이야기하지 안히고서 노무현 정부를 평가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돼죠. 그건 유시민의 책에서도 대체로 마찬가지고요. 그러면서 입으로는 경제민주화를 운운하죠.”(p.72)


“촛불싸움이 지나치게 일찍 번지면서 참여정부의 어떤 패인을 좀 더 분석하고 반성해야 되는 시간이 없어졌어요. 바로 대정부 투쟁으로 전환이 돼버린 것 같아요.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면서 친노세력이 대선 패배를 통해서 반성할 시간을 빼앗겨버린 것이 아닌가, 정권퇴진 요구를 그들 또한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빨리 반성의 길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됐고, 그것이 오늘날 여전히 노무현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민들에게 일반적으로 MB 심판만을 강요하는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까 누가 왜 무엇을 심판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p.73)


그는 기자생활 중 자신의 가장 나빴던 기사로 주차관리요원 고발 기사, 서울대공원 녹용 고발 기사, 김광석 변사사건과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분신자살, 그리고 검찰 출입기자 시절의 모습을 '워스트 기사 5’라고 고백하며 스스로 반성한다. 
철없던 기자의 무심한 기사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아이들 교육비를 마련하지 못해 발을 구르던 주차안내원 노동자에 대한 때늦은 죄송함도 담겨있고, 출입처의 일방적 자료를 죄의식 없이 대필해주던 나팔수 기자 시절의 뼈아픈 기억도 되살렸다. 특종이라는 팡파르와 함께 보도해 세인의 관심을 요란스레 끌어모았던 기사들도...

그리고 자신이 자부심을 느끼는 기사로 'Best 10’을 꼽았는데, 삼성 X파일 고발 기사를 시작으로 국회의사당 아래로 지나가는 9호선 고발 기사, 자유총연맹 고발 기사, 하남 국제환경박람회 기사, 연예인 노예계약&상납 비리 탐사 기사, 병역비리 고발, 병역특례 기사, 군납비리 기사, 최규선 게이트 기사, 그리고 김현철 비리 기사를 꼽았다.

대선을 코 앞에 둔 민감한 시기에 참여정부와 삼성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고 말한다.


이상호 기자가 10년 넘게 추적했던 각종 이슈와 사건은 그의 진심과 열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오로지 진실을 추구하는, 대다수 민중의 이익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진실이 무엇인지 추적하는 ‘인민의 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은 생각의 공장입니다. 기자는 새로운 생각을 끌어오는 사람입니다. 찬물과 뜨거운 물이 섞여 목욕물을 만들 듯, 오래된 생각이 덥혀지며 세상은 미래로 굴러갑니다. 새로운 생각, 뜨거운 물이 탕 속에 들어오면 유입구 쪽으로 손님들은 뜨겁다고 때밀이 총각을 나무랍니다. 그렇다고 새 물을 잠가버리면 목욕물은 금새 냉탕이 돼버립니다. 때밀이나 기자나 욕먹을 수밖에 없는 직업입니다.”(p.06)


침구사 구당 선생에 대한 취재 사유서는 처음 알게된 내용이고 인상 깊게 읽었다. 이 기자는 당초 영리병원 반대를 위한 대안으로 취재를 시작했지만, 의료계와 한의사 단체 양쪽의 조직적 반대에 직면해 참 많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몸이 자본주의의 마지막 금맥이 된 현실에 구당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자의 본심이 느껴진다. 시간을 내서 이 기자와 구당 선생의 저서를 읽어봐야겠다.


이상호 기자의 박사 전공이 정치학이고 박사학위 논문이 한미관계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논문 제목은 ‘미국의 공공외교와 한미관계, 1953~1990’이다. 그는 한미동맹을 미디어와 인식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기 위해 논문을 썼다고 밝힌다.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까 미국이 한국인의 인식을 조정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했더라고. 이를테면 국무부와 국무부 산하의 지역 조직, 그리고 한국 내 대사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한국인들의 인식을 동맹의 유지, 강화라고 하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분석하고 기획하고 조작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른바 한국인에 대한 인식조종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래서 매년 한국인의 심리학적 목표를 설정해놓고 그 심리학적 목표, 즉 미국은 우방으로서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줄 것이다. 미국이랑 친하면 경제발전을 도와줄 것이다. 이렇게 매년 10가지나 되는 목표를 그때그때 새롭게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이행 플랜과 이행프로젝트별로 예산 수요를 정교하게 작성한 가죠. 그리고 이 프로젝트 이행을 위해 사회 각 분야의 주도세력을, 이를테면 교육계 500명, 문화계 500명, 학계 500명, 정계 50명, 재계 50명, 이런 식으로 수천, 수만 명을 조직하고 그 사람들한테 한미동맹의 특혜의 과실을 나눠주는 식으로 테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관리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삼성이 대한민국을 손아귀에 넣은 방법과 똑같아요. 그 결과 한미동맹이 군사동맹이지만, 본질적으로 적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인식동맹’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죠.”(p.280)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일주일 뒤인 작년 4월 진도에 내려갔을 때, 팽목항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있는 해수부 장관과 해양경찰청장을 향해 부석부서한 머리를 한 채 마이크를 들고 세월호 유가족을 대신하여 날카로운 질문과 성토를 하던 사람, 즉 이상호 기자를 처음 보았고 그때 인상이 깊게 각인되어 나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 2015년 3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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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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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저 < 금요일엔 돌아오렴 >을 읽고 / 348쪽, 2015. 01., 창비


학생들은 3박 4일의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에 갇힌 일반인 승객들과 더불어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가족들은 가닿을 수 없는 수많은 금요일을 보내고 있고,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자신의 모두를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아이들을 빼앗긴 세월호 유가족 열 세분의 사연이 담겨 있는 책. 

한 가족 한 가족의 사연을 대할 때마다 감정이 복받치고 빰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그해 12월까지 240일 동안 단원고 희생학생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하며 그중 부모 열 세명을 인터뷰하여 이 책을 펴냈다. 유가족들의 증언과 고백을 모아낸 가족대책위 차원의 공식 인터뷰집이라는 점에서, 또한 그 기록들이 객관적이고 간결한 기억으로 재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증언록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 작업은 부모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과정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세상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삶의 진실이 있었다."


“우리가 포기한 어떤 지점들을 부모들은 그대로 뛰어넘었다. 부모들은 예단하지도 속단하지도 않으면서 유연하게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무릎도 꿇었다. 고통 앞에 솔직했고 자신들의 바람 앞에 명확했다. 그리고 지혜롭고 현명했다. 부모들의 이 지혜로움과 현명함은 자식을 위해 당신들의 온 마음을 낸 결과라는 걸 느낄 수 있었기에, 슬프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이 책은 기존의 언론매체가 보도하지 못한 유가족들의 애타는 마음, 힘없는 개인이 느끼는 국가에 대한 격정적인 분노와 무력감, 사건 이후 대다수 가족들이 시달리고 있는 극심한 트라우마 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참사가 있고난 뒤 9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사건 당일의 일분일초를 또렷하게 기억해내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전대미문의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뛰어난 기록문학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인터뷰를 하고 글을 정리한 작가기록단과 더불어, 8명의 대표적인 만화가가 총 13편의 삽화와 표지화를 그리는 일에 동참하여 그림으로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깨우침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제1부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록'은 희생자들을 추억하는 가족들의 여러 모습을 담았다. 공황장애 때문에 집안에서 주로 생활해온 김건우 학생 어머니는, 진상규명 활동을 위해 광화문광장에 나올 결심을 하곤 한발 한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스로 걸음을 내딛는다. 인터뷰 내내 속내를 내비치지 않다가 결국에 듣는 이 모두를 울려버린 유미지 학생 아버지 편은 오래전 딸이 맹세한 약속이 죽은 뒤에나 지켜졌다며 한탄하는 부정(父情)을 담았다. 신승희 학생의 언니가 수능을 앞두고도 매일같이 동생을 추억하며 2학년 동생들을 모두 살려내고자 밤마다 꾸는 꿈 이야기는 그 간절함만큼 비애감도 크다. 단 하나의 혈육을 잃고 혈혈단신이 된, 김소연 학생 아버지 편은 한부모 가정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상황이 그의 사투리에 실려 애잔하게 전달된다.


"아들을 혼자서라도 끝까지 기억하기 위해 백살까지 살겠다” (1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

“딸의 생일이 3월 16일. 사고난 날이 4월 16일. 아이가 발견되어 찾은 날이 5월 16일. 16일은 부모가 맞이하고 싶지 않은 숫자" "아빠와 함께 하늘여행을 하겠다는 약속을, 딸이 죽은 뒤에 지켰다” (1반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유해종 씨)

"진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 후 나중에 후회를 안 만들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자식을 위해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 (3반 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전민주 씨)

"세상에 딸하고 자신, 둘만 남겨졌는데 그 아이를 잃었다” (3반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 씨)


제2부 '기억하는 사람들, 기록하는 사람들'에는 전국 각지에서 유가족을 대표해 활동하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주로 실려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이들이 어떤 계기로 진상규명 활동에 앞장서게 되었는지가 드러난다. 신호성, 이창현, 문지성, 박수현 학생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진상규명 활동을, 억울하게 떠나보낸 아들딸에 대한 의리이자 그들이 자신들에게 내준 숙제이며 결국 스스로를 위한 치유라고 말한다. 대통령과 통화한 5분간 사적인 청을 자제하며 자기 아이를 살려달라고 호소하지 못해 끝내 아쉬워하는 애끓는 마음, 본인이 암 말기에 접어들어 어떤 활동에도 나서지 못하는 한 어머니가 다른 유가족들에게 미안해하는 장면 등이 읽는 이의 코끝을 시리게 한다. 참사의 기억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가능한지를 묻는 이들에게 유가족들이 스스로 내린 답이 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호성이 가고 나서 호성이 엄마는 만능이 됐다고. 이상한 병에 걸렸어요. 뭐라도 해야 편해요. 애가 힘들게 갔는데 부모가 편하면 안 되지 싶어서. 그래야 애한테 덜 미안하고 죄가 좀 가시는 거 같아서 정신없이 돌아다녀요. 아마 평생 갈 것 같아요.” (6반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씨)

“맨날 잔소리해서 가깝게 못 지낸 게 제일 후회스럽지” “앞으로는 두려울 게 없다고나 할까요.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숨기는 게 없으면 두려울 게 없을 거 같아요. 지금은 욕도 많이 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솔직해지고 남들이 보는 누도 그렇게 두렵지 않고 대담해졌다고 할까.” “어쨌든 진실이라는 목표 하나 보고 달려가다보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거에요. 전에는 저쪽 길로 갔다면 지금은 방향을 틀어서 이 길로 가는 건데, 그냥 끝까지 갈 뿐이지요.” (5반 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최순화 씨)

"대통령과 5분간 통화했는데 그후로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아이를 찾았는데 얼굴이 없었어요.” “진상규명을 위해 섬들을 찾아헤맸어요.” “무슨 보상을 해주려면 그동안 우리가 일한 것 다 쳐서 제대로 해줘야 해. 보상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계산을 못하겠으니 당신들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 어떻게 계산이 돼. 자식 잃은 게 게산이 돼? 정신 없이 쫓아다니면서 하는 우리들 이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건강 잃으면서 하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안전법과 그걸 위해 하는 우리들의 모든 행동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1반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 씨)


“그 동영상이 휴대전화 안에 들어 있었던 건 아빠가 나서서 어떤 형식으로든지 진상규명을 담당하라는 의미라고요. 동영상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저는 그랬어요. 그건 우리 아들이 내준 숙제인데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진상규명이 끝나고 나면, 희생된 304명의 모든 유가족과 국민, 그리고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하나 올릴 거에요. 이 사건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마무리가 됐는지. … 우리 수현이에게도 보여주어야죠. 숙제검사는 꼭 받아야 하니까.” (4반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 씨)

"암과 씨름하던 인생에 난데없이 딸의 죽음이 먼저 찾아왔다. 그날 이후 세상에는 지독한 슬품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찼다.” “이번 일로 정말 잔인하고 몹쓸 세상도 경험했짐나, 사회를 지탱해주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됐어요. 국민들 다수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언론이 다 조절하고 검열하니까. 그런데도 잠깐잠깐 분향소든 ‘이웃’이든 시국미사든 가보면 소수는 알고 있고 움직이더라구요. 아, 소수라도 이렇게 힘써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덜 억울하구나, 내가 덜 바보구나, 내가 덜 외롭구나 싶어요.” (2반 길채원 학생의 어머니 허영무 씨)


제3부 '사람의 시간, 416'은 아픔을 딛고 자신의 처지를 용감히 직시하고 성찰해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준우 학생의 어머니는 수학여행에 가기 싫어한 아이를 굳이 떠밀어 보내곤 이를 죄스럽고 슬프게 회고하면서도 아이의 생전 친구 부모들과 모임을 만들어 서로 힘을 북돋우며 마음을 추스르고자 한다. 21년 전 서해페리호 사건 당시 의경으로서 모든 과정을 지켜봤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는 구조의 면면에서부터 법의 현황까지 하나도 바뀌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이번에는 반드시 미래의 안전을 위한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야 함을 몇번이고 당부한다. 이번 참사로 단 한명만 살아 돌아온 2학년 10반의 가족대표를 맡은,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가 말하는 ‘부모들의 공동체’의 소중함, 분노와 슬픔을 넘어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밝은 얼굴로 전해주는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등의 말들은 도리어 우리 어깨를 도닥인다. 가슴이 미어질 듯한 글들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힘을 좀체 잃지 않는다. 


“동생 태준이도 중2인데 저한테 자기가 공부할 필요 없다고, 열심히 살아도 허망할 거 같다고 말해요. 자긴 영어문제 푸는 데 오래 걸리는데 형은 영어 단어 5분이면 100개를 외울 정도로 잘났었는데, 그런 형이 갑자기 그렇게 됐는데 공부는 왜 하느냐고. 아빠도 회사 다니며 훌륭한 사람 돼야 한다고 떵떵 호령했는데 지금 저리 됐지 않느냐고. 그러면 할 말이 없어요.” “내 마음을 자꾸 키워가려고 해요" (7반 이준우 학생의 어머니 장순복 씨)

“진도에 빈자리가 많아지니 더 못 떠나겠더라고요.” “진도에 내려가서도 내 자식 보고 싶고 그리워 울고 싶어도 실종자 가족 앞에서는 못 울어요. 몰래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울고 오지. 우리도 실종자 가족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새해 페리호 사고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에요. 그런데 21년 후 세월호 사건을 또 겪은 거지, 내가. 그 애기를 하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바뀐 게 없어서야. 아무 것도.” “배 타기 싫다는 딸에게 내가 큰 배는 빨리 가라않지 않고 통제에만 잘 따르면 된다고 애기해서 보냈어. 우리 딸이 내 말을 잘 듣는데. 세희가 살면서 터득한 게 항상 나중에 가면 아빠가 했던 말이 맞는다는 거여서 내 말을 잘 들었거든. 그것 때문에 너무나 가슴이 아픈 거야.” (9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 씨)


“바지선을 직접 구해 사고해역으로 나가봤어요. 사람은 많은데 어느 놈 하나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질 않는 거에요. 조명탄만 터뜨리고, 배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어요. 시간만 끌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진도군청에 있었던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는 계속 언론플레이를 했어요.” “부모들은 여당과 야당이 야합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도 정치권의 한계를 깨닫고, 그럴수록 더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결국 국민의 힘이 있어야 진실규명이 가능하다다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부모들이 깡다구가 생기는 것 같아요.” “87년 6월 항쟁부터 거의 30년이 지났는데도 세상은 그때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더 나빠진 것 같아요. 사회의 모순은 더 고착되고 견고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허울만 좋은 민주주의에 국민들이 완전히 속았어요. 내 딸을 잃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우리가 꼭 진실을 밝힐 거에요. 이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30년 후에 나 같은 사람이 또 가족을 잃고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겠어요?” (10반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 김현동 씨)


“가만히 멍하게 있으면 아이들이 생각나고 거기에 끝없이 빠져들어요.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듣지도 않으면서 하루종일 텔레비젼을 그냥 틀어 놔요. 집에 떠드는 소리가 없으니까 마음이 너무 허전해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이 인생이 너무 아까운 거에요. 얘가 앨범 두 개도 못 채우는 인생을 살았구나. 얼마나 꽃다운 나이에, 엄마 아빠하고 겨우 이제 대화가 되기 시작하는 때에…” “목 디스크를 오래도록 앓고 있었는데 사고나서 진도에 갔다온 후에 목이 하나도 안 아픈 거에요. 통증이 사라진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한테 아들이 엄마를 많이 사랑해서 엄마 병을 가져갔나 보다고 그렇게 애기를 해요.” “우리 애들이 그렇게 괴롭게 갔느데 그만큼 기다리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는 건 엄마 아빠의 도리가 아닌 거 같아요. 몇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내가 눈 뜨고 있을 때까지는, 눈 감기 전까지는 진실을 알아냈으면 좋겠어요." (8반 김제훈 학생의 어머니 이지연 씨)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빼앗긴 아빠 엄마들에게 이제 4월 16일은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한 이후 유가족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이 어둠 속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부실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그 거리에는 유가족들이 믿어왔던 상식이 없었다. 국가도, 정부도, 국회도, 언론도 없었다. 다만 일부 선량하고 정의로운 시민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이 책에는 13명의 단원고 학생의 부모들의 사연이 기록되어 있지만 304명에 달하는 세월호 희생자 역시 각각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어느 가족의 사연이 안타깝지 않고 슬프지 않겠는가마는, 304명의 희생자는 304개의 우주만큼의 행복과 사랑과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이다. 304개의 가정과 304개의 가족이 저마다의 일상생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당했을 것이고, 각각의 가족의 살아왔던 기억과 가족관계 속에서 가정의 삶이 붕괴되고 해체되고 유지되고 이어나갈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지배계층의 모습과 언론의 행태와 사회시스템은, 유가족들이 당한 피해와 희생이 언제 어디서라도 다른 가정에 닥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사회의 문제와 구조에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가족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세월호 진상규명에 온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 남단이라는 공간 속에서 한민족의 역사 속에 함께 살아왔다. 우리는 서로가 몇 다리만 걸쳐도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록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직접 닥친 피해가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학생들과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의 속살인 것이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갖고, 유가족의 사연에 공감을 하고, 진실을 밝히고 재방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이다.


“한 고통이 떠나기도 전에 또 다른 고통들이 닥쳐와 부모들의 상처를 후벼파기도 했다. 아팠다. 아파서 또 울었다. 시민들의 마음이 어떻게 순식간에 절대적인 호의에서 절대적인 반감으로 바뀌는지, 그분들은 어리둥절해댔다. 세상이 참으로 교활했다. 언론이, 정치인이, 일부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선장보다 해경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되어갔다. 가족들을 조롱하고, 보상금으로 공격했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벽을 만들고 서로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었다. 이 비정상적인 현상은 한국사회를 뒤흔들었고,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숨겨진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그래도 부모들은 천천히 또 길을 갔다.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기이하고, 많은 고통을 준다 해도, 그들은 없던 길들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자신들을 내동댕이친 것도 사람이지만 자신들을 다시 일으키는 것도 사람인 것을 알기에 그들은 원망하지 않았다."


“이번 인터뷰는 유가족들뿐 아니라 이 사회이 평범한 이들을 위한 작업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토록 쉽게 또다른 ‘유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유가족들의 삶을 깊게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아이들은 가고 없지만 유가족들의 몸부림이 헛된 기다림만은 아니었음을 약속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 2015년 4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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