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가지 1
김태정 지음 / 현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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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김태정 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가지 1>를 읽고 / 2005. 9., 436쪽, 현암사

가끔은 사회학이나 철학, 소설 같은 사람과 관련이 없는 자연에 대한 책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현란한 문장이 가득한 책보다 눈과 마음이 즐거운 책을 읽는 것이다. '우리 꽃 백가지를 읽으며 공부하는 것은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며, 동시에 자연을 아는 것이었다. 한반도에서만 고유하게 자라는 '특산식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역시 이번에 알았다.
특산식물로는 인삼꽃, 개나리꽃, 지리산괴불, 오동나무꽃, 민민들레꽃, 금마타리꽃, 큰용담꽃, 거문도쑥부쟁이, 바위구절초꽃, 늘메기천담성꽃, 잔대꽃, 솔체꽃, 솜다리꽃 등이 있다.
그리고 한반도와 만주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를 한가지씩 아는 과정은 그대로 한반도와 한국인을 아는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소개해주는 내용 때문이다. 꽃의 용도는 결국 사람을 위한 '용도'이고, 꽃에 얽힌 전설은 조상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것이니...

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우리 꽃과 나무를 나 혼자만 알고 지나가는 게 아쉬워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100회에 걸쳐 페이스북에 우리 꽃 백가지를 소개했다. 처음 솜양지꽃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단풍나무꽃까지. 페이스북의 많은 친구들도 우리 꽃과 나무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고 즐거워하였다.  

물론 책 한 번 읽는다고, 꼬박꼬박 사진을 찾아보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고, 책에 보이는 꽃과 나무의 사진을 한두 번 본다고 하여 산과 들에서 꽃이나 나무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철쭉꽃과 진달래꽃을 구분하는 것 하나만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공부를 거듭해야 했다.
'삼천리 금수 강산'의 꽃 하나하나를 쉽게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책과 사진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고 책을 곁에 두다보면 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 생기고 잘 알게 되리라 생각해본다.

이 책은 2010년 입적하신 고 법정스님이 추천한 50개의 독후감을 모은 <내가 사랑한 책들>(2010, 문학의숲)에서 알게되었다. 한반도에서 나는 들꽃 백가지를 골라내어 시리즈로 엮은 첫째 권이다. 꽃의 유래, 전설, 분포 지역, 생김새의 특징에서부터 식용방법까지 술술 이야기하듯이 풀어낸 재미가 넘친다.
저자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우리 야생화를 찾아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마흔 해 넘게 진행했다. 2005년 현재 '한국야생화연구소' 소장이며, 젊은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 이름 모를 약초를 먹고 회복한 것을 계기로 야생화에 몰두했다고 한다.

가끔 기차나 버스를 타고 지방을 돌아디닐 때면 한반도 남단 곳곳에 굴착기와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아스팔트와 콘트리트가 도시를 넘어 시골 곳곳에 깔려 있고, 무슨 올림픽이 국제대회니 아니면 기업도시니 산업단지니 하면서 인간의 이익과 편리를 명분으로 수만 년을 이어온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앞으로도 수만 면, 수십 만년 후손들과 동식물들이 살아야  할 이 곳을. 인간의 탐욕과 폭력으로 이름없는 들꽃들은 밟히고 쓰러진다. 
하지만 그렇게 쓰러지고 사라진 연약한 들꽃들이 한겨울 동토보다 강하고 포크레인보다 숭고한 목숨이다.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백두산 정상에서도 개감체라는 연약한 풀은 단단한 얼음을 뚫고 피어난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섬 독도에서는 기린초, 섬초롱꽃, 섬노루기 등의 식물들이 모진 바람 속에서 흙만 보이면 뿌리를 내린다."

이 땅은 '우리의 땅'이 아니라 '우리 꽃들의 땅'이다. 
"꽃이 없으면 우리의 존재도 사라진다. 꽃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하는 소도구나 관상용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기반이다. 이 기반이 허물어지면 우리의 삶도 허공꽃이 되고 만다. 꽃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의 모습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아름다운 세상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볼 줄 몰라서 가까ㅏ지 않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세상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이렇게 마음껏 꽃을 피우는데, 과연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거듭거듭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꽃이나 약초 이야기를 들으면 절친한 후배 한 명이 생각난다. 사람보다 산을 사랑하고 꽃과 약초, 산나물을 좋아하는 후배가. 후배가 산에서 캐오는 나물과 더덕으로 지인들과 오손도손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내년 새봄이 기다려진다.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 가지에 대한 소개와 사진이 궁금하신 분은 http://blog.daum.net/hy2oxy/8691769를 참고하세요..^^

[ 2014년 10월 18일 ]



 
 
 
보이지 않는 식민지
김민웅 지음 / 삼인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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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평] 김민웅 저 < 보이지 않는 식민지 > 2001년, 294쪽, 삼인

목회자이자 언론인, 국제문제전문가로 알려진 김민웅 교수가 2001년 김대중 정부 집권 3년을 평가하며 출간한 책이다. 김 교수는 현재 성공회대 교수이자 '서울겨레하나'라는 통일운동단체의 대표로 알고 있다.

1997년 말 IMF 금융위기가 어떻게 한국경제를 난도질 했는지, 현재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1998년 금융위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김대중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김대중 정부의 경제통상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왜 한국에게는 경제주권이 없다"라는 푸념이 나오는지 공부하기 위해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1998년 미국과 IMF에 의해 신자유주의 정책과 제도가 강제된 지 16년. 한국은 미국 정부와 IMF에 의한 각종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과 제도를 받아들인 이후에도 한미FTA 체결 등 여러 국가와 FTA(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급기야 한국은 다국적 투기자본의 놀이터이자 미국을 중심으로한 외국자본의 투기장이자 '빨대'로 전락해 있는 상황이다.
IMF 금융위기와 동시에 집권한 김대중 정부의 경제통상 정책은 과연 적절했는가?

저자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면서 제1장 ‘세계화와 국가의 위기’를 시작한다. 그는 시장경제 자체를 파괴하는 자유시장 시장경제 자체의 문제점을 통해 국가가 자본통제 등 불가피하게 시장을 관리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즉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국가 기능의 무장해제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삶의 터전과 국가경제의 몰락을 가져오고 시장경제 자체의 붕괴까지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국가의 회복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는 1990년대에 들어서 사회주의권에 의해 제약되었던 자본주의의 카지노적 성격이 본격적으로 작동했음을 지적하면서 그동안 사회주의 블럭과 경쟁관계로 인해 감추고 있던 국제 투기자본과 다국적 기업들이 1990년대 후반에 드디어 탐욕스러운 발톱을 드러내었고, 그 직접적인 피해가 한국과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의 금융과 경제를 붕괴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며, 이에 따라  세계 금융 시장까지 동요했음을 주장한다.
결국 국적도 없고 사회 보호도 없고 개인적인 삶도 개의치 않는 자본을 통제할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또한 그는 1980년대 중남미에서 그리고 1990년대 말 이후 아시아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의 본질이 미국 정부와 국제 투기 자본의 아시아 경제 침탈임을 지적하며, 미국 정부와 IMF가 중남미와 아시아에서 취한 각종 정책과 제도적 강요가 중남미와 아시아 각국의 국민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쳤음을 비판한다.
특히 IMF 금융위기시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 정부와 한국의 김대중 정부가 IMF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해 취한 정책대응을 비교하면서 종속과 독자적 모델의 갈림길이 나뉘어졌음을 설명한다. 즉, 김대중 정부의 경제학인 DJ노믹스는 "예정된 실패와 위기의 심화"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IMF의 요구와 논리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전면적으로 수용한 한국경제는 결과적으로 세 가지 문제를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첫째, 투기적 국제 금융자본의 지배하에 한국 경제가 종속되는 강도가 심화되어 민족 경제의 자주적 기반이 유실될 지경에 이르렀고, 경제 체질이 카지노적 투기 성향으로 기울었다.
둘째,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함으로써 이에 의한 사회적 희생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적 양극화가 일상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셋째, 막대한 부채 경제에 의존해 온 재벌 소유 구조 개혁 등을 머뭇거림으로써 공적 자금 투입 방식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구가 채무를 비롯, 국민 1인당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IMF 경제위기 이후 3년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 온 경제정책의 모순과 지속되는 위기는 투기적 국제금융자본의 이해와 국내 대자본의 기득권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노동자를 비롯하여 국민 일반의 경제적 여력을 희생시켜 옴으로써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p.17)

저자는 미국 경제의 위기가 어디서 오는지, 그 모순과 전망을 살피면서 미국경제가 투기적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간격으로 인해 이상 착륙 가능성이 있으며 월스트리트와 재무부 그리고 IMF 삼각복합체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 그의 지적대로는 아니지만 미국 경제는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하여 거대한 위기에 봉착했고, 한국을 비롯한 상당수 국가의 국민경제가 다시 한 번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김민웅 교수는 이 책의 결론 내지 대안, 즉 한국경제의 나아갈 방향으로 '남북공동의 국제 전략'을 제시하며, 그 전략의 핵심으로 자주의 원칙과 민족 공조가 한-미공조의 상위 개념임을 역설한다.

경제학자도 아닌 저자가 국제경제와 김대중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하는 내용은 여느 경제학자 못지 않게 논리적이고 명쾌하기도 하다.
다만, 저자의 분석과 진단 그리고 대안에서 아쉬운 점은 저자가 제시하는 각종 수치와 분석결과, 평가와 대안 제시에 대해 제3자가 검증하고 비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논리적인 주장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즉, 주석이나 인용이 크게 부족한 점이다.

[ 인상적인 문장 ]

○ "신자유주의의 국가론은 바로 이 자본의 사적 공간이 공적 영역을 지배하고 흡수해 버리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자본의 운동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거부, 배제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적대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국가의 회복이란 국가 기능 자체의 강화가 아니라, 자본의 이해에 앞서서 사회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국가의 기능을 복구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이러한 국가를 건설하고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의 진보적 역량이 성장해야 한다."(p.39)

○ "이들 국제 금융자본은 외환 위기를 이미 겪은 바 있던 중남미 시장에서 빠져나온 자본의 과잉을 처리하기 위해 아시아 경제에 투기성 자본을 그간 대량으로 투입했었고, 이 돈을 손쉽게 받아 쓸 수 있었던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향후 엄청난 외채 부담으로 되어 나갈 이 돈을 미리미리 관리하지 못한 채 방만한 자본 유입을 추구했던 것이다. 자본 출입에 대한 정부의 관리 태만이 낳은 결과였다."(p.67)

○ "현재와 같은 IMF의 정책은 결국 이들 나라에 부실 대출을 한 미국의 대규모 은행들이 보게 될 손해를 미국인들의 세금, 그리고 결국에는 한국 등 IMF 구제금융 수혜국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되는데 이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들의 부실 대출은 그토록 질타하면서도, 채권 은행들의 방만한 대출 행위는 책임 추궁도 없이 도리어 손해 보존을 해주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었다."(p.74)

○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는 과거 권위주의적 권력에 억압되어 있던 '시장'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매우 단순하고도 구시대적인 역사 논리에 과도하게 사로잡혀, 사실은 그 자체로서 이미 거대한 권력 기구인 세계 자본주의 시장 체제가 발휘하는, 그래서 그 내부에 자기 생존의 논리로 엄존하는 본질적인 야만성과 억압의 가능성에 대처하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데서 비롯되는 비극이다. 오늘의 시장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전체 사회의 이익을 고려한 국가 권력의 통제와 관리 대상이 되지 않으면 공동체적 복리르 파괴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p.152)

○ "노엄 촘스키는, 이러한 미국의 대외 정책과 관련해서 북한 등의 국가를 '깡패 국가' 또는 '불량 국가'로 규정하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나라는 미국이라고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 그는 2000년 8월 [르몽드 디플로마띠끄]에 기고한 글에서 제3세계의 약소국들이 자신의 자주적 주권을 방어하기 위한 움직임을 모두 미국에 대항하는 반역 행위로 평가하고 이들을 그러한 깡패 내지는 불량 국가으 범주에 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미국의 대북정책이 기초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인식과 그 결과는 북한의 자주적 권리를 훼손하고 미국에게 굴복할 것을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느 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미국 내 냉전 세력들이 남북간 화해를 방해하고 견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미국의 패권적 질서 안에 편입시키려고 한다는 점에 있음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p.225)

○ "우리에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극복은 한 마디로 압축해서 보자면 일차적으로 미국의 패권적 지배로부터 놓여나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가 미국 자본주의 체제의 식민지적 지배하에 있다"는 엄연한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는 작업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극복은 그 인식의 불철저함으로 말미암아 미국과 우리 사이에 위계 질서적으로 구조화된 힘의 관계를 해결하지 못한 채 타율적으로 끌려 가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p.265)


[ 2014년 10월 12일 ]




 
 
 
평양의 여름휴가 - 내가 본 북조선
유미리 지음, 이영화 옮김 / 615(육일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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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유미리 저 <평양 여름휴가 : 내가 본 북조선> - 

지난 8월 14일 여도에서 진행된 광복 69주년 815 평화통일한마당에 참석했을 때 구한 책이다. 예전에 신문 어디선가 연재를 읽은 기억이 떠올라 기행문 전체를 다시 읽고 싶어서…ㅎ

유미리 작가는 일본에서 재일동포로 태어나 힘들게 자랐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남편과 사별하고 대인공포증 같은 것도 있어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 결과 정신질환도 앓았고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전력도 있었다. 그나마 글을 쓰면서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 정실진환을 극복하는 중이었다. 글을 쓰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걸 보니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작가는 북한을 세 차례 방문하여 그곳에서 자신의 조국과 동포를 만나고 느끼면서 자신의 정신질환을 극복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음을 책 안 곳곳에서 밝힌다.

우리들은 일본에서 조선인 또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데, 힘든 이유 중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것도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사회는 특이한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상존하고 섬나라의 일부 폐쇄성 극우 반공적 정서의 소유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남북한 전체에 대하여 식민지 시대의 차별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고, 작가는 증언한다.
그런 일본인들로부터 작가 유미리씨는 평생 수시로 갖은 협박과 야유와 멸시와 비난을 당했기에 ‘조국’이란 술어가 주는 느낌은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작가의 국적이 대한민국이면서도 실감하지 못했던 핏줄의 의미, 그 ‘마음이 조국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자각하는 과정이 감동적이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작가는 2008년 10월과 2010년 4월 그리고 2010년 8월에 북한을 방문했다.
작가가 첫 번째로 방문하던 2008년 4월은 국제 정세가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어머니와 남동생에게는 방북을 알리지 않은 채 아홉 살이 된 아들을 맡게 된 동거인에게만 알렸다. ‘만약의 사태’까지 논의할 정도였다 한다. 체재기간은 열흘이었다. 
책의 제1장은 첫 번째 방북기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특히 북한의 현대사를 일별할 수 있도록 중요한 관광지를 두루 돌며 한국전쟁 이후의 북한주민 생활사와 역사의식이 소박하고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다. 북한에 웬만큼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다 아는 내용들이지만 그런 사실을 재일 동포 인기 여류작가의 시선으로 재확인한다는 점이 다르게 새삼 느껴진다.
작가는 열흘이 다가올수록 단 한 번의 방문으로 북한과 북한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할 생각이 없고 더욱 알고 싶기에 재방북을 결심한다. 그 이유는 “나에게 있어서, 이 나라는 내 조국이니까.”

첫 번째 방문에서 작가는 방북 목적을 ‘조국 방문’이라고 썼다. 작가는 자신의 국적은 한국인데 방문 목적을 ‘조국 방문’이라 한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자신의 가족사를 설명한다.
“왜냐하면 조부가 일본으로 건너왔던 그때 조선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지 않았고, 장거리 주자로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던 조부가 달리는 걸 그만 두고 조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사건(해방 후 조부는 공산주의자 혐의를 뒤집어쓰고 투옥됐다. 인민군이 남하하면 투옥되었던 사람들이 인민군에 가담할 게 뻔하다며, 유치장을 통째로 불태우려고 가솔린을 뿌리고 수류탄으로 폭파하려 했으나 조부는 그 직전에 탈옥했다.-한국전쟁 초기에 이승만 정권의 교도소 학살 사건을 말하는 듯..- 조부의 남동생도 남로당 청년조직인 민주애국청년동맹의 간부가 되어, 장거리 주자로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남한 군인들에게 사살당했다.)을 생각했을 때, 조부의 남동생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형제가 모두 북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p.14)

2010년 4월 작가는 북한을 두 번째로 방문했다. 평양마라톤대회와 태양절(4.15) 기간에 맞추었다. 두 번째 방문을 다룬 제3장에서 인상 깊게 남은 대목은 재인 한국인과 재일 조선인들의 일본으로의 귀화 상황과 작가의 입장이었다.
"1980년대부터 연간 5천 명 정도로 추이하고 있던 일본 귀화자 수는, 서울 올림픽ㅇ이 개최된 1988년을 계기로 7,8천 명으로 급증했고, 납치문제가 크게 보도된 2003년에는 11,778명으로 절정에 달했다. 나 자신은 귀화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본에서 받는 ‘부자유’, ‘불편함’,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귀화할 수는 없다. ‘부자유’, ‘불편함’, ‘불평등’ 입장을 계속 강요당하는 한, 일본은 내게 있어 ‘고향’이 아닌 ‘태어난 토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p.93)
이 문장을 읽으면서 한반도 남단에서 친일파 후예들이 설치고 군사독재정권의 후예들이 온국민을 부자유스럽고, 불편하고, 불평등하게 만드는 한국을 고향이 아닌 ‘태어난 토지’로 생각하도록 강요하여 작가와 같은 ‘유랑민’을 늘리지 않나 싶다.

2010년 8월 작가는 아들과 함께 세 번째로 북한을 방문한다. 그녀는 아들에게 대동강변, 모란봉, 을밀대, 백두산, 개선문, 아리랑공연, 푸에블로호 전시관, 판문점 등을 함께 다니고 경험하도록 한다. 아들을 북한에 데리고 간 이유에 대해 작가는 “최초로 조선을 방문하고 나서부터 2년간, 나는 아들과 손을 잡고 대동강 강변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것은, 혈육을 나눈 아들에게 조국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은 엄마로서의 마음이기도 했지만, 나와 아들의 개인사를 조국에 대면시키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라 말한다.

작가는 북한의 현실적인 여러 정황에 대하여 구태여 이해하고자 하지 않은 채 그냥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사실 그대로를 르포화 한다. 독자들이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하기 보다는 일본사회에서 자란 자유주의자답게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그대로 담아낸다. 이런 점이 오늘의 북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국가보안법’이 상존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더 이상 적이 아닌 적이 북한이요, 한 핏줄이라는 큰 깨달음으로 그의 아들에게까지 모국을 일깨워준 작가에게 존경을 보낸다.

“서울에서 판문점과 개성을 가보았던 그가 다시 평양에 가보고, 그 두 가지 체험 속에서 진정한 조국과 민족이 무엇인가 깨달아가는 모습은, 아직도 미지수이지만 현재 보다 ‘미래’에 속해 있는 젊은이들에게 참다운 민족적 화두 모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문병란 후기)

[ 2014년 10월 03일 ]



 
 
 
지역균형발전론의 재구성 - 성찰과 대안 모색
강현수 외 지음 / 사회평론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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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강현수 외 8인 저 < 지역균형발전론의 재구성 : 성찰과 대안 모색>을 읽고 / 2013. 05., 385쪽, 사회평론

지역(패권)주의와 지역불균형 발전의 이유와 해결방안에 대해 공부하는 중에 소개받아 읽게 된 책이다.
작년 강준만 교수의 <전라도 죽이기>와 <대한민국입시잔혹사> 등을 읽고 지역불균형과 수도권 집중과 곤련하여 경제수치와 역대 정권의 정책 그리고 정책대안이 궁금했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지역(패권)주의나 지역균형발전과 관련하여 학계에 관련 연구 논문은 많은 지 모르겠지만, 실제 인터넷에서 찾아본 결과 시중에 출판된 서적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몇 개 출판된 서적 중에는 강준만 교수의 책이 가장 많은 편이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강준만 교수의 저서 <전라도 죽이기>의 경우 출간 당시 폭발적인 인기와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도서관에 거의 구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고서적을 찾기도 어려웠다.(저도 <전라도 죽이기>를 공식가격보다 2.5배 주고 인터넷에서 주문한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이 정책과제가 되는 현실은 실제로 국내 각 지역의 발전이 불균형하게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1960년대 산업화 과정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농촌과 도시 간, 중소도시와 대도시 간, 경부축 지역과 나머지 지역 간, 서울과 나머지 지방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에 경제·사회·문화적 격차가 발생하였고, 이러한 격차로 인해 차별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지방에서 서울로, 그리고 서울이 포화가 되자 그 주변 수도권으로 이주하였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90% 가량이 도시에, 그리고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또한 전체 인구의 약 20%가 수도 서울 한 도시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화 현상은 산업화가 성숙된 다른 선진 국가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한 지역에만 집중하는 일극 집중 현상은, 도시 국가도 아닌 우리나라 정도의 국토 면적을 가진 나라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매우 특수한 현상이다.
너무 지나친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하여, 그리고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가의 의무인 국토 균형개발과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하여 역대 정부는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수도권에 인구와 산업의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수도권 규제 정책을 펼쳐왔으며, 낙후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재정 투자를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도권 집중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농촌을 포함한 낙후지역은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이 거의 대부분 떠나고 노령층만 남아서 미래의 희망이 없는 곳이 되어 가고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소도시 역시 수도권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도시 경제가 침체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지역 간 격차가 심화되면 낙후지역 주민들의 삶의 기회 박탈과 소외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지역 간 갈등을 유발시켜 국민 통합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발전지역의 성장만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 일극의 성장만으로 국가 전체의 성장을 이끄는 것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 과정에서 정계와 재계 그리고 권력층에서 일부 지역출신들의 특정 지역 편애와 홀대가 노골적으로 또는 암암리에 추진되어 왔음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지역패권주의'와 '지역차별'이라는 용어가 한국현대사를 특징짓는 단어로 자리잡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그리고 비수도권 내에서 경부축과 비경부축 격차는 역대 정권이, 특히 박정희 정권 이후 수십 년 동안 집권세력이 국가정책과 국토이용을 합리적,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보다 정치적, 정략적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IMF 이후 한국사회는 지역간 불균형의 문제점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그리고 지역 중심도시와 비중심도시간의 격차가 더 커져버렸다. '서울공화국'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서울과 수도권이 지방을 지배해버리는 이중적인 불균형이 발생된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그동안 별 실효성이 없었던 균형발전 정책을 포기하고, 세계 경쟁력을 갖춘 수도권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 우리나라 경제 성장과 국가 발전에 더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지역정책으로부터 촉발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선, 균형발전의 의미에 대한 논쟁이 있다. 즉, ‘균형’의 의미에 대한 논쟁이다. 균형발전을 경제학적 균형으로 보는 논자들은 균형발전이 불가능한 목표이며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고 본다. 반면 균형발전론자들은 균형발전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입법, 행정, 사법부가 견제를 통한 ‘균형’을 이루듯이 각 지역이 각자의 역사, 문화, 산업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밖에 균형발전 당위성을 둘러싼 논쟁,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균형발전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논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설사 균형발전의 필요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간 선후문제,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공간 단위 설정 문제, 다핵형 국토 공간구조 전략의 실효성 문제, 지방분권에서의 행정구역 개편 문제, 지역균형발전에서의 수도권의 역할 문제, 지역 내생적 발전전략의 유효성 문제 등 많은 논쟁거리가 산적해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지역균형발전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심각한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자 기획되었다. 
우선 역대 정부의 정책을 돌아보고 평가하는데, 이른바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에 기댄 지역 정책을 비판한다. 이 기조는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낙수 효과”는 미미했고, 지역 불균형은 심화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서 지역의 균형적 발전이 국가 발전의 원천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책의 실행 부분에서는 그간의 중앙집권적 방식이 갖는 한계를 지적한 후, 각 지역이 권한과 재원을 이양 받아 지역 발전을 주도하는 지역분권적 방식을 강조한다. 이러한 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분야별 정책 방향을 두루 고찰하고 있다. 

1장 '우리나라 지역 불균형의 전개과정과 실태'에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경부축과 비경부축 간의 불균형을 조사하여 공식 통계에서 잘 포착되지 않는 질적인 불균형, 즉 권력, 기회, 자산의 불균형이 더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2장 '지역 간 경제적 격차의 실상과 원인'에서는 박정희 정권 이후 정치적 동원기제로 지역을 활용함으로써 벌어졌으며, 소득과 고용을 중심으로 지역 간 경제적 측면의 격차를 자세히 분석한다. 특히 경제적 측면의 지역 간 격차가 2000년대 이후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대기업 주도의 수출주도형 산업화의 경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3장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과 쟁점들'에서는 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균형발전의 당위성과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을 정리한 후, 지역균형발전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느 가치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이나 사회적 통합성 측면에서 필요한 과제라고 결론을 내린다. 아울러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선후 관계, 균형발전을 위한 공간적 단위, 다핵형 국토 공간구조 전략의 실효성, 행정구역 개편, 수도권의 역할 및 수도권 집적경제 허용 범위, 내생적 발전전략의 유효성 들에 대해 검토한다.
4장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 미완의 도전'에서는 역대 정부의 지역균혀발전 정책을 개관하고, 참여정부가 수행했던 균형발전 정책의 기조와 방향, 신행정수도 및 혁신도시 건설 정책을 위시해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몇 가지 핵심 정책들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한다. 위상으로서의 장점은 있되, 실질적 성과는 크게 부족했다는 평가다. '원래 목적했던 바를 달성하지 못한 미완의 도전'이라 할 수 있다.
5장 '이명박 정부의 지역 정책: 균형발전 정책의 퇴보'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지역 정책을 광역경제권 정책 및 4대강 사업 등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균형발전 정책의 퇴보라 할 수 있다.
6장 '새로운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의 방향과 과제'에서는 중앙정부 주도에서 지방정부 주도로, 지역 간 결쟁과 갈등에서 지역 간 상생과 협력으로, 부문별 분산적 접근에서 장소에 기반한 통합적 접근으로 균형발전 정책의 기조가 전환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7장에서 14장까지는 각 분야별로 기존 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비판 제기 및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과제를 제안하고 있다.
7장 '지역 산업 정책 방향과 과제'에서는 그동안 지역 산업 정책이 너무 기술 공급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과 각 지역이 수동적 역할에 머물렀음을 비판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대안으로 광역경제권이 지역에 적합한 산업 전략을 수립하는 거버넌스 단위가 되어야 하며, 광역경제권 내 고등교육기관, 정부 출연연구소가 지역 산업에 필요한 지식의 창출과 공급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8장 '지역 과학기술 정책 방향과 과제'에서는 기존에 구축된 지역의 기술혁신 인프라와 역량을 토대로 지역 기업들에게 핵심 기술력을 제공하여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장 '지역개발 및 지역재생 정책 방향과 과제'에서는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수행되고 있는 대규모 개발 사업의 한계를 비판하고, 저성장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 환경에 맞는 대안적 개발사업 방식들을 제안한다.
10장 '내발적 지역발전 정책 방향과 과제'에서는 지금까지의 주된 지역 발전 전략이었던 외부 자원에 의존하는 외생적 발전 전략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지역 내 자산들을 이용한 지속가능한 내발적 발전 전략을 제안한다. 
11장 '낙후지역 발전 정책 방향과 과제'에서는 역대 정부가 시행해 왔던 낙후지역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낙후지역 정책의 방향이 종래와 같은 인프라 위주의 정책 대신 지역 주민의 행복과 지결되는 소득과 일자리 창출 및 생활안전망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12장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 정책 방향과 과제'에서는 심각한 수도권 집중 상황 속에서 수도권 문제를 수도권 내부의 문제로 보기보다 지역균형발전과 연계하여 보아야 함을 강조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합의에 바탕을 둔 상생 정책들을 제시한다.
13장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재정지원제도 방향과 과제에서는 낙후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재정 지원 전략 마련과 함께, 중앙-지방 간 재정관계의 재정립, 지방세입의 확충을 통한 재정 분권의 확대, 광역-지역 발전특별회계의 구조개편 등을 제안한다.
14장 '지역균형발전 추진체계 및 거버넌스의 형성'에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역발전정책 컨트롤 타워의 강화와 현재의 시도를 공간계획의 핵심적인 단위로 전환시키는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지금과 같은 중앙집권적인 추진체계가 아니라 지방분권적 지역발전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추진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필자들은 지금까지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를 중앙집권적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지역 발전을 위한 권한과 재원을 중앙정부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 지역은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사업 및 예산 지원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이 결과 중앙정부의 지역 발전 사업 선정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과 지역주의 발생, 여기에 편승한 정치권의 무분별한 대규모 국책사업 남발, 이로 인한 지역 사업의 성과 부진과 예산 낭비, 지방정부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지향해야 할 새로운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권한과 재원을 이양 받은 각 지역이 스스로의 책임하에 지역 발전을 주도하는 지방분권적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저자들의 정책대안이 실현되면 수도권 집중과 지역간 격차가 해소될 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전에 나서는 문제는 현재의 정치권이나 행정관료들의 의식이나 행태를 볼 때, 저자들의 정책대안이 제대로 집행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왜 지역균형발전이 절실한지 밝히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다양한 논의와 쟁점을 정리하며,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연구, 검토할 만한 정책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지역차별이나 균형발전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2014년 9월 29일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현종 옮김 / 물병자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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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 저, 정현종 역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읽고 / 2002. 4., 196쪽, 물병자리

법정스님의 추천 도서 서른 다섯 번째인 이 책은 '세계적인 현대사상가'로 알려진 자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저서 중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에 가장 훌륭한 철학가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간주되는 명상가이자 인도철학자"라고 출판사가 소개한 크리슈나무르티. 그는 권위자로서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정(assumptions)을 의심하며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관찰자로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출판사는 그가 이룬 업적은 실로 대단하며, "그는 60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였다. 그동안 그가 사용한 단어는 약 억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죽은 해인 1986년 크리슈나무르티 재단은 그의 강연 내용을 전 세계에 내놓았다. 그의 연설과 대화 내용은 60여 권이 넘는 책으로 출간되었고, 세계 다른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로 소개한다.
"과연 그럴까?"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문제제기는 '첫 번째 이야기'의 요점인 "오랜 세월 우리는 선생들에 의해, 권위자들에 의해, 책과 성인들에 의해 마치 숟가락으로 떠먹여지듯 양육되었다. 우리 안에는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 독창적이고도 원래 모습 그대로인, 그리고 명징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라 할 수 있으며, 그는 열 여섯 가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한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독자) 여러분은 어떤 기관이나 신념, 교리, 성직자, 제례를 통해서, 철학적 지식이나 심리학적 기술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관계의 거울 속에서, 지적인 분석이나 자기반성적 해체가 아닌 오직 관찰을 통해서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라 할 수 있다.

책을 읽은 소감은, 크리슈나무르티의 유명세에 비해 문장과 논리가 관념적으로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해, 기쁨과 쾌락, 공포, 자유, 폭력, 관계, 시간, 사랑, 생각, 명상, 혁명에 대해 '관찰'을 통해 진정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자신의 의견을 전개하지만, 그의 의견을 쉽사리 공감하거나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그가 주장하는 근본적인 성찰 방식을 따르게 되면 그의 책과 그의 주장마저도 나에게는 '권위자의 지식'에 불과해버리기 때문이었다.

또한 크리슈나무르티의 최초 문제제기에서부터 나는 문제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수십만 년전 인간종이 탄생한 이래 인류 역사가 계속되어 오는 동안, 인류의 지식과 지혜는 꾸준히 쌓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지목하는 선생들, 권위자들, 책들, 성인들 그리고 크리슈나무르티까지도 지난 인류의 진화사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그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문장 속의 단어와 개념과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즉, 지난 인류 역사의 '지식의 창고'를 우리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는 선조들의 지식과 지혜를 답습하고, 그것들에 의해 양육될 것이냐 아니면 과거의 지식과 지혜를 토대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새롭게 연구하고 발견하고 개발하고 개선하고 혁신하고 창조할 것이냐를 두고 끊임 없는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주장에서 공감하고 배울 수 있는 부분은 "인간은 관계의 거울 속에서, 오직 관찰을 통해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관점이다. 권위와 전통에 얽매이기 쉽거나 당장 얽매여 있는 사람들의 경우, 그의 책을 통해 선입관이나 의존성을 탈피하고 자신만의 관점과 논리를 갖추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 중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은 "지적인 분석이나 자기반성적 해체"를 부정하는 그의 지적 논리의 전개방식이다.  지적인 분석이나 자기반성적 해체는 기존 선생이나 권위자, 종교나 이데올로기에 몰입되지 않는 이상, 개인의 지적인 도약이나 정반합의 변증법 모델 통해 진리를 찾거나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관찰을 통해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문장에서, 관찰을 통해 개념이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축적된 정보와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남의 주장이나 이론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인 관점을 통해 재해석해내는 능력이 필요할 뿐이다.

이 한 권을 읽고 내가 크리슈나무르티의 사상이나 철학을 전부 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책만 읽었을 때에는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나누어질 뿐이다.
기회가 되어 크리슈나무르티의 다른 책을 읽게 되면 이 책과 더불어 그의 사상과 주장을 다시금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 1895. 5. 12 ~ 1986. 2. 17)는 1895년 인도 남동부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철인(哲人)으로서 인도 마다나팔레의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떠한 계급, 국적, 종교 그리고 전통에도 얽매이지 말라고 말하며, 학습된 정신이 가져온 파괴적 한계로부터 인류를 완벽히 자유롭게 해방시키고자 했다. 죽을 때까지 60여 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강연을 했다.
그가 영구적으로 머물렀던 주거지는 없었지만, 주로 캘리포니아의 오하이(Ojai), 잉글랜드의 브록우드 파크(brockwood park) 그리고 인도의 첸나이(Chennai)에 머물렀다. 그는 일상에서 자신이 바라보고 느끼는 예민한 인식을 통해 스스로 변화해야 하며, 이는 관계의 거울을 통해 관찰될 수 있다고 말한다.

1910년 크리슈나무르티는 인도의 한 해변에서 신지학자들에게 발견된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열세 살이었다. 당시 신지학협회 대표였던 애니 베산트(Annie Besant)는 그와 그의 동생을 영국으로 데려가 교육했다.
그 이후로 크리슈나무르티는 "세계의 스승(World Teacher)"이라는 궤도에 오르지만, 돌연 방향을 바꾼다. 1929년 그의 나이 서른두 살이 되던 해, 그는 네덜란드(Holland)에서 열린 거대한 유럽 신지론자 연중모임에서 ‘세계의 스승’으로서 어떠한 공식적 역할도 하지 않을 것이며, 신지학 수장으로서 사임한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모든 종교적 관념과 종교적(spiritual) 단체와의 관계도 끊어버린다.
그의 핵심 가르침은 "진리는 길이 없는 곳(Truth Is A Pathless Land)"이라는 그의 연설문에 잘 나와 있다. "(출판사 소개글)

[ 2014년 9월 2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