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 <흠흠신서>로 읽은 다산의 정의론
김호 지음 / 책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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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호 저 <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 [흠흠신서]로 읽은 다산의 정의론>을 읽고 / 2013. 5., 360쪽, 책문


최근 한국사회에서 '일당 5억'이라는 충격적인 이름으로 '만민평등'이라는 민주주의를 웃음거리로 만든 법원의 판결이 크게 논란이 되었다. 법과 법관이 형벌의 형평성 원리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400억원대의 벌금·세금을 내지 않고 출국한 뒤 뉴질랜드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모습이 포착된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의 구치소 노역 ‘일당’을 5억원으로 정하는 등 법원이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것은 ‘전관예우’와 지역법관(향판)제의 문제점이 맞물려 가능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08년 12월30일 광주지법 형사2부는 허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508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법관의 재량으로 형을 덜어주는 ‘작량감경’을 적용해 검찰이 구형한 벌금 1016억원을 절반으로 깎았다. 벌금 508억원을 내지 않을 경우 일당을 2억5000만원으로 계산해 203일 동안 구치소에서 일하게 했다."(관련기사 : "‘먹튀 회장님’ 노역 일당 5억 판결은 전관예우·향판제의 합작품"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29212.html)

신문기사는 '전관예우와 향판제'로 인해 '황제 노역'이 가능했다고 분석하지만, 허재호와 장병주 사이에 발생한 '법의 균형 상실'은 이미 과거에도 숱하게 발생한 바 있다.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하루 일당은 1억 1천만 원, 그리고 손길승 SK 명예회장은 벌금 400억원을 선고받았는데, 실제 노역비는 하루 1억 원이었습니다."(관련기사 : http://www.ytn.co.kr/_ln/0103_201403241135161476)

실제로 한국사회는 80년대 후반 헌법이 개정되고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도입된 이래 사법부의 '균형감을 상실한 판결'을 수차례 목도하여 왔고, 사법부가 민주공화국의 근간인 헌법을 임의대로 '해석'하면서 주권자들의 사법권력에 대한 불신을 키워 왔다. 주권자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인 셈이다.

물론 공공부서나 공직자의 '무소불위'와 '전횡'이라는 문제점은 사법부 뿐만은 아니다. 청와대, 경찰, 검찰, 국방부, 법원 등 주권자인 국민을 보호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 공공기관이 오히려 불의와 불법에 앞장서는 최근 몇 년을 겪으면서 이 책을 읽으니 대한민국의 공권력과 사법체계는 조선왕조보다 못한 것 같다.
"조선 왕조체제와 대한민국 체제는 껍데기만 다른 착취수탈 체제'라는 어떤 학자의 분석이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법률을 채택한 대한민국의 현재가 왕조와 사대부 세력이 갈등, 공존하며 지배세력을 형성했던 조선시대보다 나은 면이 있기나 할까?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인 1822년, 현대인들에게 '시대의 선각자'라 불리우는 다산 정약용은 백성들이 소송을 통해 억울함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촌백성들이 원통함을 호소하려고 해도, 그 일이 권세 있는 아전이나 간악한 향리와 관련되어 있을 경우에 노여움을 살까 봐 겁이 나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한결같이 앞뒤가 맞지 않게 들리니, 이것이 바로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게 되는 첫 번째 이유이다.”

다산이 보기에 스스로 억울함을 말하지 못하는 백성들은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병든 아이와 같았고, 그렇기 때문에 관리들은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의 호소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산은 소송을 통해서도 제대로 억울함을 해소하지 못한 백성들을 위해 형법서 한 권을 남겼는데 그게 바로 [흠흠신서]다. 
인명에 관한 일은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처리하라는 뜻에서 ‘흠흠신서’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책은, 다산이 지방관들을 위해 중국과 조선의 법전들과 재판 때 쓰던 조서 등을 모으고 정리한 뒤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만든 일종의 형법 참고서라 할 수 있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약 다산이 제시한 원칙과 방법으로라도 조선의 형법체계가 구성, 운영되었다면 조선 후기의 비극적인 상황이 변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산이 이런 형법서를 편찬했다고 해서 다산의 생각과 원칙대로 조선시대의 형법이 운영된 것은 아니다. 현대 역사학자들의 조선시대 후기에 대한 주된 평가가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표현되듯이 다산이 살았던 시대 전후로, 특히 19세기에는 조선의 국가 운영체제 자체가 기득권자들만의 이익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기에 그에 따른 민중(백성)들의 저항과 민란이 19세기 내내 끊이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다산이 [흠흠신서]에서 문제제기하는 여러 재판이나 형벌집행을 보면, 조선시대 후기에는 친분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관용을 남발하거나 사적인 감정이나 신분질서에 근거하여 엄한 형벌을 내리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검찰과 법원, 그리고 정치권과 재계와 언론과 학계가 결탁하는 모습은 19세기 초 조선왕조의 사법관리들과 별반 다를게 없는 것이다. 
저자가 풀이한 다산의 [흠흠신서]는 형법의 원리나 원칙의 측면에서 근대 사상과 일대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산의 사상은 토지와 권력을 소유하는 왕조-사대부 계급과 그들의 소유물이자 지배를 받는 평민-하층민이라는 지배-피지배 권력체제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다산은 "법의 수단에 기대기보다 덕의 교화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성리학적 유교이념의 원리"에 입각한 형법체계를 제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산의 [흠음신서]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의미있는 책이라 할 수있다.
헌법과 법률에 의거하여 주권자의 권력을 위임받아 일시적으로 행사하는 사법부와 검찰, 경찰의 일상적인 부정부패와 정치권과 재계의 전횡과 부정부패, 그리고 이를 감시, 감독, 비판하지 못하고 오히려 결탁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의 모습은 19세기 조선 왕조, 부패기득권 체제의 부활을 보는 듯 하기 때문이다.

서문에 [흠흠신서]를 번역한 저자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아져야 가능한 일이요,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는 행동이 늘어나야 가능하다. 다산의 절절한 마음이 오늘날까지 울리는 이유는 우리 모두 공정한 사회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폭력과 불의에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다산이 정의의 문제로 고민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다산은 백성들을 보살펴야 할 관리들이 이 땅에 진정한 정의의 마중물을 부어 주길 바랐다. 정의가 흐릿해지고 금권이 판을 치는 요즘 세상을 보면, 그가 꿈꾼 정의와 정의로운 나라의 모형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듯하다."

적어도 사법고시나 로스쿨을 졸업하여 법조계에 종사하는 이들은 다산의 [흠흠신서]를 읽으면서 자신의 이익보다 헌법과 정의와 양심을 되찾기를 바란다.
이 말은 검찰과 형사법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법조인이라고 주창하는 이들 중에서도 사적 감정이나 편견에 무릅을 꿇고 양심과 근거를 멀리하면서 정치논리나 이해관계에 얽매이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조인들이 서로의 잘못과 실수를 감싸고 자신들만의 성을 쌓으려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이 법조인으로서 이 사회에서 존중받으려면 '법조인'으로 대우하고 존중하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전문권력을 위임한 주권자들 편에 서야 할 것이다.

[ 2014년 4월 08일 ]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동노 외 옮김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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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서평]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저, 한기욱 등 공역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Korea's Place in the Sun>를 읽고 / 2001. 10., 751쪽, 창비

박세길, 조성오, 한홍구, 강준만 등 국내 역사학자들의 한국 근현대사를 읽은 후, 미국인 역사학자로서는 드물게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전공으로 하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교수의 현대사 서적을 반갑게 읽는다. 그는 1986년에 첫 발간한 <한국전쟁(Korean War)의 기원>으로 한반도에서도 많이 알려진 편이다.(두 책 모두 '한국(인)'은 'Korea(n)'으로 남북을 아우르는 표현이며, 역자들이 번역상 편의 때문에 한국(인)으로 표기한 것 같다.)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발간한 이후,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불행하게 이끈 원인과 남북한의 문화적 역사적 전통이라는 과점에서 연구를 계속하여 1997년 이 책을 다시 발간했다. 한국어판을 위해서 특별히 원고지 150매 정도를 추가했다고 한다.

책의 원제목은 'Korea's Place in the Sun : a modern history'다. 저자는 원 제목이 '해 뜨는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실로 우리의 흥망성쇠와 주기적인 일식을 관장하는 세계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선진산업국들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산업시대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태양게에 한국은 이제 막 합류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제목에서 의미한 바이기도 하다."
커밍스 교수와 <한국현대사> 한국어판이 반가운 이유는 서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책을 발간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를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 문장으로 말한다. "이 책을 한국인(Korean)의 화해와 통일에 헌정하고 싶다."

몇 마디 문장이 아니라 실제 책을 읽은 후 국내 역사학자들의 역사서와 비교했을 때, 커밍스 교수의 한국현대사 연구에서 두드러진 차이는 한민족의 5천년 역사 전체에 연속적으로 이어져오는 사상이나 철학, 또는 사회문화적 흐름, 연관성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근대 이전의 한국사에서 '미덕'을 발굴하여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추진 과정에서 공통된 '미덕'을 발견했음을 주장한다. 또한 고려와 조선에서 형성된 파벌주의와 학벌주의가 현대의 남북한, 특히 남한에 뿌리깊게 잔존하는 모습과 고구려와 발해의 중국에 대한 저항이 북한의 자주독립 정신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신라가 외세를 끌여들여 백제와 고구려에 승리한 것이 고려 말기의 원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조선 중기 이후 명나라에 대해, 말기에 청나라에 대해 의존한 모습과 연관성이 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도 기득권층이 대부분 친일파로 변졀하였고 미군정이 들어오자 또다시 미국에 굴종하는 모습으로 이저졌다는 역사적 해석이 독특하면서도 시사점이 있다.(학문적 연구로서 타당성 검증과 별개로...)

저자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이 19세기 말부터 싹트고 자라온 내전이자 국제 전쟁이고, 짧게는 1948년 9월 미-소군의 한반도 점령 이후 자주독립과 통일 위한 전쟁이자 길게는 20세기 초에 시작된 제국주의의 침탈에 대한 자주독립 투쟁의 최종전이라는 성격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판단은 결코 바뀐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1950년 6월에 전쟁이 시작된 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에 대한 내 책의 전체적 강조점은 내전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가 그 복잡한 역사를 알고 있는 한, 수많은 요인으로 빚어지는 전쟁에 대해 어느 한쪽을 비난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p.08)
대부분 학자나 정치가, 언론은 "한국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두고 격렬하게 논쟁하지만, 저자는 미국의 남북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처럼 한국 전쟁 역시 "언제, 누가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쟁의 성격이 무엇"이며 어떤 결말을 맺었고 어떤 교훈을 얻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커밍스 교수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증하고자 하는 내용 중 하나로 독자들이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이 바로 위 인용문과 관련된 내용일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성격이 '내전'이며, 그 내전은 가깝게는 1945년 8~9월 미-소 양 강대국이 한민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의로 한반도를 군사점령하면서부터 자라났고, 길게는 20세기 초 미국-영국-중국-일본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군사적 전리품 나눠먹기식으로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합병시키는 것에서부터 자라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 <한국현대사>에서는 현대의 남북한 체제와 문화를 비롯하여 20세기 초중반 한반도를 격동으로 들끓게 한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가 어떤 특징과 장단점을 형성하고 있는지 분석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한민족의 사료와 문서들, 즉 고대사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와 조선에 대해 방대하게 연구했다. 서구인으로서 '미덕(美德)'이라는 한자와 '마음(心)'이라는 한글의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열정이 아름다웠다. 실제 그는 그런 노력을 통해 '미덕'과 '마음'이 한국인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거의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대 남한의 사회체제와 문화는 물론 북한의 사회체제와 문화도 지난 5천년 간 이어져온 한민족의 전통과 뿌리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전통과 뿌리가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국인을 비롯하여 서구 학자들 중에서 커밍스 교수만큼 한반도와 한민족에 대한 이해와 애정에 기초하여 한국(Korea)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적다는 것이 한민족으로서는 불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게 열 번이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냉전과 전쟁, 분단체제라는 민족사적 불행과 아픔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친일파 후예인 수구세력들이 삭제하고 감추어버린 한국 근현대사의 진실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수구세력이나 친일파 후예들이 아닌 모든 한국인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과 관계없이, 남북 갈등과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바라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읽을 것을 권유한다.
우리의 자식들, 후손들에게까지 분단의 아픔과 분단을 악용하여 부당하게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확대하려는 악당들에게 이 사회를 물려줄 수는 없으니...

마지막으로 커밍스 교수의 한국현대사 연구에서 아쉬운 점은  미국인으로서 학자적 입장에서 한반도에서 진행된 사건과 상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관련 자료도 한반도와 한민족에 관한 것들을 중심으로 수집하여 연구한 결과인 셈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입장 또는 미국의 국제관계사라는 관점에서 연구하지 않은 한계는 존재한다. 그것이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나 한홍구의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등 국내 역사학자들의 현대사 저술과 다른 부분이다. 일종의 당파성이나 주체적인 관점이 없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커밍스 교수와 이미 작고한 존슨 교수가 함께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같은 미국인 학자로서 찰머스 존슨 교수는 19세기 이후 미국의 군사외교적 정치경제적 역사를 다룬 <블로우 백>과 <제국의 슬픔>을 21세기 상반기에 출간했다. 그 책 안에는 제국주의 및 군국주의로서 미국이라는 국가 또는 지배집단이 19세기 이후 자국 내에서 어떻게 작동되어 왔으며, 한반도를 비롯한 제3세계를 상대로 어떤 전략과 행동을 취했는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각 장의 내용 소개와 평가는 아래와 같다.

제1장 '미덕'에서 저자는 근대 한국의 배경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으로 서기 1년부터 1860년대까지를 망라한다. 그는 이 장에서 한국의 과거 중 동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건져내려고 한다. 그는 조선을 봉건국가가 아니라 '농업관료제' 사회라 새롭게 규정한다. 타당한 분석이라 공감이 된다.
이 장은 미국인들, 미국 정치가들이나 행정가, 언론인, 학자,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언어, 장단점, 특징과 고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어권 독자들이 한반도와 한민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포함시킨 단락이다.

제2장 '이익'은 1860년에서 1904년까지를 다루는 근대사의 첫 장으로, 이 시기의 한국은 열강의 출현에 의해 근대의 인장이 찍힌다.
왕조와 사대부들의 기득권 정치와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삶. 사회 전분야에서 변화의 흐름이 일어나지만 이를 제도적 문화적 행정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지배계층. 살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항쟁을 일으키거나 만주로 중국으로 탈출하는 민중들. 제국주의 열강들의 제3세계 침탈과정에서 한반도에 들어닥치는 군사력과 한반도 내 전체 민족과 민중의 삶과 국가를 보호하지 못한 채 좌충추돌하는 지배계층. 민중들의 최대 저항인 갑오농민전쟁과 외세를 등에 엎고 지키지도 못할 기득권을 지키려는 특권층들.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 제도교육 과정의 국사 시간에 수능과 시험만을 위한 역사교육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커밍스 교수가 인용하거나 분석하는 내용 중에 처음 보는 정보나 처음 접하는 설명구가 많아 유익한 장이다.

제3장 '망국'은 1905년에서 1945년을 다루는 데, 일본의 한국합병, 즉 한국보다 더 빨리 산업시대에 적응한 일본이 한동안 이웃나라를 올라탈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설명이다.
일제 식민지 강점 기간 동안 한국인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처절하게 저항하는 한국인과 일제에 머리 숙이고 기득권을 나누어 가지려는 친일파 매국노들, 그리고 이도저도 나서지 못하고 하루하루 생존을 영위해가며 버티는 민중들이다. 저자는 국내 언론이나 역사책에 누락되어 있는 친일파 매국노와 항일무장투쟁 등 민족지사들을 이름과 사실 행적과 활동에 대해 상당한 정보와 자료를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이후 해방때까지 일제의 필요에 의해 친일파 매국노 한국인들이 대거 식민지 관료체계에 편입되어 5~8년 동안 집중적으로 동족을 착취, 수탈, 탄압,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제4장 '열정'은 1945년에서 1948년까지, 제5장 '충돌'은 1948년에서 1953년까지를 다루는데, 일본 패배의 잿더미에서 시작해 하나의 반도 내에 자리잡은 두 개의 완전한 분단국으로 끝이 난 한국의 결정적인 위기를 탐사한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동일한 장이다. 커밍스 교수는 미-소 양대 강국이, 특히 미국이 애초에 한반도를 군사점령하지 않았다면 한국인들이 스스로 친일파 매국노를 처단하고 자주독립국가를 세웠을 것이며 한국이 미래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 평가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일부 친일파들이 처단되었다 하더라도 1945년~1953년에 이르는 수백 만명의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고 내전과 분단도 없었을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해방 후 북한사회이 전개과정을 복기하면서 한반도 전체가 사회주의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비록 한반도가 일시적으로 사회주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민족이 판단하여 선택할 문제이고, 마찬가지로 내전을 통해 수백 만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설사 사회주의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몇십 년 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결국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되돌아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점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이 장들에서 그는 미국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 군사적 강제점령과 친일파 매국노에게 남한의 권력을 안겨주고 남한을 군사경제적으로 종속시킨 것 등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비판을 가한다.

제6장 '한국의 일출(1953~1997)'과 제7장 미덕 II (1960~현재의 민주주의 운동)'은 끊임없이 쑤셔대는 독재적이고 간섭주의적인 남한 정부 아래에서 산업적 힘으로의 도약과, 상대적으로 산업화되고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국가를 궁극적으로 창출해낸 힘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바라본다.
6장과 7장은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관련된 장이다. 커밍스 교수는 남한의 경제적 성장과 민주주의 정착이 일부 지배계층의 능력이 아니라 남한 민중들의 피와 땀이 서려 일구어진 성과물임을 강조한다.
남한 지배계층의 외세의존적 태도와 군사경제적으로 미국 등 서구에 종속되어 있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신라의 지배계층이 당나라를 끌여들여 삼국을 통일한 선례와 그 이후 지속된 외세의존적, 사대주의적 경향과 문화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제8장 '태양왕의 나라, 북한(1953~현재)은 김일성의 북한을 탐구한다.
커밍스 교수는 북한의 정치외교 체제나 문화가 한편으로는 고구려에서 시작된 북방민족의 자주적 독립적 성향과 문화에서 비롯된 측면과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말기에 나타난 척사파의 노선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북한이 주체사상과 정치체제 및 문화가 고려 및 조선의 사상문화 중 일부를 승계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저자는 정보와 자료 상의 한계로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솔직하게 전제한다.)

제9장 '미국의 한일들'은 처음 미국 영토에 도착한 조선인들을 시작으로 그 이후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미국인이자 한국인으로, 중간자로 자리잡은 재미교포 이야기를 다룬다.

제10장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는 김정일의 권력에의 접근에서 시작해, 1990년 한미 관계의 위기, 한국의 통일전망 등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에서 커밍스 교수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막을 내린 직후인 1990년대를 전후하여 남과 북의 정치외교군사적 변화를 분석하고 특히 냉전체제 해체에 상응하는 북한의 변화와 이에 맞서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 지배집단의 갈등을 살펴본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탄 개발이 사회주의 진영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북한의 자위이자 자구책임을 보여주고, 미국이 냉전체제 해체에 맞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평화적인 환경으로 변화시켜야 함에도 미국의 내부적인 사정과 목적으로 북한을 계속 군사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위협하여 결국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개발을 강제한 책임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 제가 개인 블로그에 이 책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소감을 밝혀놓은 게 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사 연구에서 인상 깊은 대목"이라는 제목으로... 64회로 나누어 정리하였으니 궁금하신 분은 링크(http://blog.daum.net/hy2oxy/8691691)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 2014년 3월 24일 ]



 
 
 
혁명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마크 스틸 지음, 박유안 옮김 / 바람구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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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마크 스틸(Mark Steel) 저,  < 혁명 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를 읽고 / 2008. 12, 349쪽, 바람구두

2년 전 후배에게 선물받은 책인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프랑스혁명'에 대해 공부하는 기회에 책꽂이에서 꺼냈다. 작년 초에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지 생각했다가 또 미뤘는데 이제야 겨우 읽었다.

프랑스에서는 18세기 말부터 약 100여년 간 부르조아지와 소작농민, 빈민들이 살인적인 봉건왕조와 악덕지주의 예속과 수탈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과 자유와 평등을 향해 프랑스혁명을 전개했다. 
저자는 프랑스혁명을 이 책 안에 흥미롭게 담아 냈다. 이 책은 딱딱하고 어려운 사회과학 논문도 아니고 지루하게 사실을 나열하는 역사서도 아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벌어진 사람들의 힘든 삶과 문화, 혁명을 결심하고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 왕조와 귀족과 부르조아지와 상퀼로트와 빈민들과 농민의 이야기를 책의 부제처럼 '걸쭉한 넉살'과 '삐딱한 불온함'과 '끝내 가슴 뭉클'하게 엮어냈다.

직전에 읽은, 피에르 세르나(Pierre Serna) 등이 펴낸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를 보면 프랑스 내에서도 기득권 우익세력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폄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마크 스틸은 영국에서도 프랑스혁명에 대한 왜곡과 폄하가 대대적으로 벌어져 왔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1970년대 후반 BBC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 <블루 피터>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화려한 옷과 보석에 대한 취향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라고, 그리고 프랑스혁명을 '곱게 봐줄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끔찍한 이야기'라고 설명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런 식으로 영국에서는 소설, 다큐멘터리, 영화 등 여러 매체들이 다루는 프랑스혁명 이야기는 제대로 된 평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마크 스틸을 말한다.

마크 스틸은 영국 내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왜곡과 평가절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영국이 엘리자베스 왕족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 문화가 지속되어 있는 현실과 영국 내 기득권층들이 자본과 언론, 문화계를 장악하여 프랑스혁명에 대한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프랑스에 대한 영국인의 감정을 이용한 비합리적인 폄하를 유도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학자나 지식인들 역시 프랑스혁명에 대한 진실을 전하고 혁명에 대한 평가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1789년 프랑스대혁명 전야의 앙시앙레짐(구체제)의 모습에서부터 나폴레옹이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공화주의가 무너지는 1799년까지의 프랑스대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때로는 재미있게 전개한다.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귀족의 특권, 국내 관세, 무역의 독점 따위를 없애버렸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게 되었다. 프랑스인은 반란을 일으킬 권리가 있다는 게 헌법에 의해 보장되었고, 단두대가 물레바퀴를 대신해 처형 도구로 쓰이게 되었다. 이참에 아예 사형 자체를 없애자는 시민대표도 한 명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로베스피에르였다."(p.111)

마크 스틸의 위 문장은 프랑스혁명의 특징 몇 가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귀족의 특권, 국내 관세, 무역의 독점'을 폐기한 것은 프랑스혁명의 시작이 부르조아지들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반란을 일으킬 권리'는 주권자인 인민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천부적인 권리가 국가나 정부보다 앞선다는 것을 의미한다.(프랑스와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다.) 
기요틴 박사가 발명했다는 단두대는 자유주으적 조치로서 도입되었다. 그 전까지의 인기 처형법은 물레바퀴에 매달아 척추가 부러져 죽을 때까지 돌려대는 방법이었는데, 그에 비하여 한결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형 자체를 아예 폐지하자는 로베스피에르는 현재에도 '극악한 통치자'라고 오명을 받고 있는 1793~1794년 시기 공화국의 공포정치를 주도한 산악파의 핵심 정치인이었다.

"그렇지만 당통은 이용당한 자유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아늑한 혁명만을 꿈꾸면서 미치광이들에 맞서 혁명을 지키고자 애쓴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제2차 혁명과 국왕 타도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핵심 장본인이었다. 법무장관으로서 그는 9월 대학살에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그는 왕의 처형을 위해 동분서주한 로비스트였고, 혁명군대의 창설을 주도한 핵심인물이었으며, 자신의 체포 직전까지도 거의 모든 혁명 조치들을 적극 지지한 혁명가였다.
오늘날 그가 주장한 내용의 절반 정도를 외치는 인물이 있다면 아마 '미친 개같은 맑스주의 무정부주의자로서 탈레반을 지지하는 똘아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가 체포된 이유는 혁명력 제2년의 진보 프로그램을 지켜내기 위해 여러 기구들을 해체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이들 기구의 유지를 주장했다. 그랬다가가는 혁명력 제2년의 진보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와해될 게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온갖 욕을 먹는 반면 당통이 한껏 대접 받는 또 다른 이유로는 그가 혁명가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전형이란 건 원래 일부분만의 진실만을 담아낼 뿐이다. 어떤 운동, 어떤 캠페인에든, 단호하고 유머를 모르는 로베스피에르형 인물이 있고, 피켓을 들고오기로 했으면서 두 시간씩이나 늦게 빈 위스키병 들고 비틀비틀 나타나는 당통형 인물들도 있는 법이다. 
눈여겨볼 만한 가치를 지닌 어떤 사회운동이든 이 두 가치를 모두 포용해야만 한다. 한쪽이 다른 쪽 머리를 잘라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면 정말 곤란한다."(p.273)

위 문장은 프랑스혁명 과정을 주도한 두 가지 유형의 혁명가들의 모습과 그에 대한 간략한 평가, 두 유형의 혁명가들의 포용과 연대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혁명이 성사되려면 수백만도 넘는 사람들이 옛 질서에 맞서 일어서야 한다. 혁명의 성패는 이런 이들이 얼마나 힘차게 맞서느냐에 달렸다. 그러니까 텔레비전 뉴스에서 이런 멘트가 흘러나올 리는 만무한 것이다. '오늘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결과는 수백만이 넘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흥, 대통령 그 양반 정말 밥맛 아니니?'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오로지 이런 생각들이 힘찬 행동으로 가시화될 때라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머리 맞대고 격론을 벌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자신들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고, 목수네 가게로 튀어가 널빤지를 얻어와 근처 향수가게 지붕에 올라가 들러올린 다리의 쇠사슬을 끊으려고 드는 실행의 힘이 있어야, 시큰둥한 분노들이 비로소 혁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열정이 식어, 새 사회가 기능하겠다는 희망과 믿음이 다시 의문스러워지면, 혁명의 걸음걸이는 덜컹대고 자빠진다."(p.280)

위 문장은 혁명에 대한 마크 스틸의 탁월한 해석이다. 술집에 모여 독재자를 비웃고 조롱하고 정치인을 싸잡아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으로는 천만 명이 있어도 혁명은 불가능한 것이다.

"자코뱅은 몰락 이후 단두대에서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에 의해서도 '선택적 탄식 신드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태에 바진 사람들은 어떤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엄청난 공포를 느끼면서도 다른 곳에서 벌어진 엇비슷한 사건에 대해서는 희한하게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타가 무너지는 걸 보고 비탄에 잠긴 수많은 정치가와 언론인들이 실은 체첸에서 5만의 민간인이 죽어도, 니카라과에서 수만이 희생되어도, 레바논 수용소에서 1,800명이 살육된 사건에 대해서도, 꿋꿋이 평상심을 유지하던 이들이었다.
프랑스대혁명 기 공포정치야말로 가장 고전적인 사례다. 역사학자, 영화제작자, 교과서 집필자 등은 로베스피에르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왕당파 군대에 의해 살해되거나 자코뱅을 타도하고 집권한 세력들에게 희생된 더 많은 사람들은, 소설에서건 영화에서건 전면적 취급은 고사하고 자잘한 관심도 받지 못했다."(p.291)

위의 문장은 단순히 '신드롬'이라는 식으로 넘겨버릴 게 아니라 오히려 방송과 신문, 영화와 소설, 교육과 교과서 등을 장악한 기득권 문화권력의 의식적 무의식적 결탁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에게 프랑스대혁명은 개인성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으며, 오스트리아 주재 프랑스 대사가 그의 3번 교향곡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라고 제안하자 아주 기뻐했다. 혁명군의 승리를 담아내고 옛 가치의 몰락을 예찬하는 장송곡 등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초의 작품이었다. (중략)
어쨎든 그 교향곡은 작곡되었고 완성된 악보를 막 인쇄소로 넘기려는 찰라 한 친구가 들어와 나폴레옹이 공화국을 허물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태를 파악한 베토벤은 분노에 찬 나머지 헌정 페이지를 찢어내버리고 '보나파르트'란 말을 어찌나 박박 긁어냈는지 종이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p.320)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이 나폴레옹 개인이 아니라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혁명의 모든 영웅들을 위한 교향곡이었음을, 나폴레옹이 군사독재자가 되었을 때 베토벤은 나폴레옹 이름을 짖이겼음을 이번에 알았다.

저자는 영국 연예인이다. 그쪽에서는 '삐딱한' 코미디언으로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마크 스틸의 사례를 보면 영국사회가 한국사회보다 '열려'있고, '이성적' '지성적'이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인 것 같다.

그 이유는 마크 스틸이 TV에서 오로지 걸쭉한 입담으로만 '혁명 6부작'을 진행할 정도로 인문학과 코미디를 접목시키는 일에 열심이라고 출판사가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혁명, 성혁명, 러시아혁명, 산업혁명, 미국혁명, 진화의 혁명이 그 6부작의 면면인데, 마크 스틸 특유의 새로운 역사교육 장르가 형성되고 있다는 영국 언론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마크 스틸은 진보정당 후보로서 런던시의원에 출마한 경력까지 있을 정도로 정치활동에도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영국 방송계나 연예계에서 아무런 출연거부나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것이 한국 헌법이 말하는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직업의 자유, 정치의 자유라 할 것이다.

한국은 진보정당은 커녕 보수정당인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정부정책에 대해 호불호만 표현해도 방송국에서 퇴출시킨다. 시그렇게 보면 한국은 자유 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도 아닌 것이다.
또한 한국 방송계나 예술계의 특성상 인문학과 사회과학, 철학적인 수준을 갖추고서 공중파에서 연예인이나 예술가 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제동 등 몇몇 정도일 것이다. 실제 인문학과 사회과학, 철학, 역사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 관료들에게서도 그런 기초 수준이 보이지 않는데 연예인이나 예술인에게 바란다는 것이 내 잘못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지성' 대신 유흥이나 접대, 뇌물, 조작, 거짓말, 폭탄주의 전문가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주권자가 어떤 정치를 원하느냐는 주권자가 정치에 얼마나 참여하고 어떤 인물을 대리인으로 선출하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처지의 계급계층이 아닌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을 위해 정치와 정당에 개입하는 이들은 이익과 권력의 화신들이 장악하는 정치, 정당에 대해 불평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그런 정치와 정당을 만들었으니...

프랑스 인민들이 대혁명을 일으키던 때, 한반도에서는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집권하여 일부 개혁적인 사대부들과 함께 왕조, 봉건제 또는 농업관료제를 개혁하려고 시도하다가 좌절되었으며, 그후 약 100년간 세도정치와 부정부패로 인해 인민들의 삶이 극한까지 파괴되었다. 인민항쟁(반란)은 끝없이 일어났으나 무능하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들은 끝내 인민들을 외면했다.
2014년 대한민국은 19세기 ~ 20세기 중순의 조선을 반복하느냐 아니면 18세기 후반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되살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책임과 역할이 운동가들과 지식인, 깨어있는 인민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들이 무능하고 탐욕스럽고 기회주의적일 때 역사는 반동으로 귀결될 것이다. 200년 넘게 잃어버린 혁명을, 혁명정신을, 혁명의지를 되살려 내야 앙시앙레짐을 벗어 던질 것이다.

- 마지막 문장 :

"마오쩌둥의 참모였던 저우언라이는 프랑스대혁명에 대해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혁명의 파급효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애기하기엔 너무 일러요."
그럴듯하지 않은가? 당시 혁명가들이 맞서 싸웠던 것들과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의 물결은 그 후 100년이 넘도록 퍼져나갔다.

오늘날의 기득권 집단에게 있어 프랑스대혁명은 평등을 떠들어대는 무리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어떤 혼란이 펼쳐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본보기와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은연중에 대혁명에 대해 썩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살육의 아수라장만 부각시키면서 대혁명을 소개하는 데는 뭔가를 경고하려는 저의가 확실히 배어 있다. "지금 그대로가 좋은 겁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저항하라고 하는 사람들의 꼬드김이 참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 말대로 했다가는 쇼핑센터 한복판에서 창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머리통들을 구경하게 될 겁니다."

기득권층은 무엇에 기대고 사는가? 그건 바로 수동성이다. 혁명의 정반대인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지상의 온갖 부당한 일들에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을 이유야 끝도 없이 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설령 이에 맞서 싸우는 경우에도 사람들의 생각은 대개 이렇다. "대통령이 바뀌면, 혹은 세계은행 총재가 바뀌면 좀 더 공평해지겠지..."
어느 누구도 본인 스스로 사회를 운영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5년 동안은 그렇지 않았다.

이 일, 즉 수백만의 사람들을 한번도 가능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 속으로 적극 뛰어들게 한 이 사건으로부터 당신이 어떤 결론을 끄집어내건, 이 프랑스대혁명의 이야기는 인간이 빚어낸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스펙터클한 이야기이다. 희망과 저항, 희극과 비극의 이야기이다.
혁명은 놀라운 등장인물들을 수십 명이나 탄생시켰고, 또 거의 그 전부를 궤멸시켰다. 그 젊은 목숨들을 대가로 수백 년 동안 지속될 혁명의 명성이 쌓이게 된 것이다.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 마라, 생쥐스트, 브리소, 롤랑 부부, 바뵈프, 프바, 구통 등...
거의 모든 주요 인물들이 자신들이 쓰던 드라마 속에서 죽어갔다. 겨우 미국으로 건너간 토머스 페인조차도 필라델피아의 알거지 신세로 최후를 맞았다.

왕당파 희생자들도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왕족은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들이 그토록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드문 일을 해치웠기 때문이 아닐까?
보다 공정한 사회를 그리면서 이들은 그런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했다.
진보주의의 대변자였던 이들은, 잘 차려입은 지역 정치가로 잽싸게 변신하여 지역 텔레비전에서 상공인들과 악수나 나누는 장면 따위는 연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들은 공격 받을 때마다 무장한 인민들의 힘을 총동원하여 적들에 맞서는 길을 택했다.

이름도 알 길 없는 수백만의 혁명 참가자들에게 있어 거창한 대의명분과 작디작은 과제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다음 달에 먹을 걸 어떻게 든든히 장만해둘 것인가?"라는 문제는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야 할까, 우리는 어떤 권리를 타고 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따위의 문제들과 서로 얽혀있는 것이었다.
이웃들을 이끌고서 가게를 점거함으로써 가격 인하를 꾀했던 시민들과, 여성 인권의 신장을 주장하는 팸플릿을 찍어낸 시민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발미의 언덕을 굳게 지켰던 사람들, 혹은 베르사이유궁으로 왕족들을 잡으러 가며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키던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천문학의 역할이나 가장 효율적인 영농기업, 혹은 혁명 후에도 스포츠가 있을까 없을까를 두고 밤새도록 토론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게 대혁명의 가장 꾸준한 파급효과가 아닐까 싶다. 한 예를 들자면, 1840년대에 이르러 대혁명의 영웅들이 초창기 노동운동의 영웅으로 다시 떠올랐다.
머서티드빌의 역사를 다룬 1860년대의 어느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인권론]과 [이성의 시대]를 높이 평가하던 몇몇이 산속의 모처에 모여 큰 돌 밑에 감추어두었던 그 책들을 꺼내 아주 뜨겁게 함께 읽곤 했다"
아주 뜨겁게는 고사하고, 조금이나마 뜨겁게라도 읽으신 분이 대체 있을까/ 최근에 나온 영국 정치인이 쓴 글들을?

어느 인터뷰어가 토니 블레어에게 뭘 꿈꾸는지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 블레어의 대답은 21세기 초 주류 정치가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잘 요약해 보여준다. "요즘 전 잠 잘 시간도 없어요. 꿈꿀 시간은 더 없지요."
꿈도 못 꾸는 게 무슨 자랑거리란 말인가. 게다가, 꿈꾸는 시간 때문에 잠 자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도대체 말이 안 된다. 10분짜리 꿈을 꾼다고 10분 더 늦게 일어나 이렇게 외치진 안는다 이 말이다. "으악, 안 돼. 그 망할 놈의 꿈 때문에 기차를 놓쳤네."

프랑스대혁명은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쪽을 응시하도록 만들었다. 무제한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혁명은 또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원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만물은 서로 얽혀 있다는 것,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이제 모든 개념을 의심해볼 수 있게 되었다. 상상력의 나래가 펴지고, 인간의 창조성의 모든 잠재력이 활짝 펼쳐지게 되었다. 프랑스대혁명은 이런 인식이 모든 대륙으로, 모든 노예들의 땅으로, 혁명의 소식이 전파된 곳 구석구석 퍼지게 했다.
꿈꾸는 법을 까먹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이쪽 끝이라면, 프랑스대혁명은 저쪽 끝이다.

그 모든 핏빛 공포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부유층 360명이 극빈층 20억 인구와 같은 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사회의 구성 방식이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혁명은 농부나 노예, 우체부나 세탁부 여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럼으로써 자신들도 바꿀 수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증거가 되었다. 귀족이나 성직자, 왕보다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p.328~331)

[ 2014년 3월 15일 ]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
노명식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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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노명식 저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를 읽고 / 2011. 06., 446쪽, 책과함께

이 책은 1789년 프랑스혁명과 복고 왕정, 1848년 2월 혁명과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 그리고 파리 코뮌의 발발과 실패까지 100년에 가까운 프랑스 혁명사를 알기 쉽게 풀어쓴 입문서다. 특히 저자는 프랑스 근대사가 영국이나 미국과 다른 노정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추적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혁명과 그후 100년사는 늘 언젠가 한 번 공부하고 싶었던 역사였다. 프랑스와 조선은 비슷한 시대에 봉건제 절대왕조라는 엇비슷한 사회체제였는데, 프랑스에서는 18헤기 말 시민혁명 또는 사회혁명이 발생한 후 100년간 혁명과 반혁명이 이어지면서 근대국가로 이어졌고, 조선에서는 19세기 초부터 세도정치가 100년간 이어지다가 급기야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미나 교재로 채택된 이 책과 피에르 세르나 등이 발간한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 : 끝나지 않은 프랑스혁명>, 마크 스틸의 < 혁명 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 그리고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이 영감을 얻은 책인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연달아 읽었다.
루소와 더불어 프랑스혁명의 주역들에게 영향을 끼친 토머스 페인의 <상식>과 <인권>은 한두 달 전에 이미 읽었고...

제1장 ~ 제4장은 프랑스대혁명을 불러일으킨 18세기 프랑스의 사회경제적 토대과 사상적 배경, 대혁명의 직접적인 원인과 국민의회, 공화정의 수립과 루이 16세의 처형을 가져온 입법의회와 국민공회, 데르미도르파의 반동과 로베스피에르의 실각, 그리고
부르주아 공화국이 흔들리는 과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프랑스 혁명의 궁극적인 원인은 "번영 속에서 불거진 계급 간의 불균형"이었다. 프랑스혁명의 배경과 원인에서 한국사회의 소위 지도층과 재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난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 역시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와 마찬가지로 "번영 속에서 불거진 계급 간의 불균형"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역시 재벌과 기득권들의 번영과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소득악화의 연속이었다는 것이다.

1장 ~ 4장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흥미로운 사실은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점거나 프랑스 혁명 직후 처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루이 16세는 혁명 후 3년 6개월 후인 1793년 1월 20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 혁명 직후 국민의회와 인민들은 루이 16세가 공화정을 인정하고 따르면 입헌군주제로 정착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겉으로는 헌법을 존중하고 공화정 수립을 인정하는 채 했지만, 뒤로는 왕당파와 외국 왕조와 결탁하여 반혁명을 추진하다가 발각되었고, 그에 따라 의회에서 '공화국의 적'으로 판결되어 처형된 것이다.

제5장 ~ 제9장은 나폴레옹 시대의 개막과 몰락(15년), 제1/2차 복고 왕정(15년)과 7월 왕정(19년), 제2공화국의 탄생과 좌절(5개월), 제2제국의 탄생(23년)과 프로이센 대 프랑스의 전쟁, 그리고 코뮌 혁명의 발발과 실패를 서술하고 평가한다. 프랑스 역사에서는 파리코뮌의 좌절과 함께 프랑스의 3공화국이 시작된다.

프랑스 혁명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고 반혁명 - 쿠테타 - 군사독재 - 왕정복고 - 제2공화국 - 제2제국 - 파리코뮌이라는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데 있어 큰 분기점은 혁명가 마라의 암살과 당통파의 실각,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와 산악파의 실각이었다.
저자는 로베스피에르의 산악파에 대한 데르미도르의 반동을 "프랑스의 민주 공화주의를 100년간 후퇴시킨 반혁명"으로 규정한다.

한국의 대다수 교과서나 책, 그리고 인터넷의 기록에 의하여 한국인들은 로베스피에르라고 하면 당연히 '공포정치'와 '독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혁명정파인 산악파가 집권했을 때의 프랑스 현실은 프랑스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했다.
5장을 통해 처음 알게된 사실은 로베스피에르가 세상에 알려진 소문과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를 "냉철한 성격과 대담한 용기, 예리한 통찰력과 사람들을 압도하는 웅변, 탁월한 조직력과 완전한 공평무사"하다고 평가한다. 로베스피에르의 예리한 통찰력은 1792년 독일 군주들에 대한 혁명정부의 전쟁을 반대한 것으로 나타난다. 로베스피에르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군사독재자가 나타나서 프랑스를 반혁명과 패전으로 이끌고 갈 것"이라며 전쟁을 반대함으로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출현(1799년)을 예고했던 것이다.
또한 로베스피에르와 산악파의 혁명정책은 "빈민에게 토지를 분배하여 시민의 경제적 사회적 독립을 성취하고 그 독립을 기반으로 하여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세우려던 평등과 덕의 공화국 프로그램"이었다. 그들이 실각한 이후 그런 정책이 프랑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100년 이상이 더 필요했다.(소설 <장발장>과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은 1829년 7월 혁명 후 설립된 7월 왕정 기간 중인 1832년 6월 봉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만을 근대국가로 전환시킨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프랑스혁명은 낡은 전제주의 유럽 여러 나라에 자유와 평등, 국민주의와 자유주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새 씨앗을 뿌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프랑스 혁명은 그 자체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입헌 군주주의의 시도도, 민주 공화주의의 실험도, 심지어 나폴레옹 제국마저도 다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데이비드 톰슨과 뷔리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프랑스대혁명 100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파리 코뮌의 실패를 프랑스의 "공화적, 혁명적 전통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20세기 사회혁명의 모델로 보았던 마르크스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평가에 무게를 두고 있다. 파리 꼬뮌의 처절한 경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에 의한 혁명의 기도를 포기하게 하여 제3공화국 체제라는 평화적 타결과 화해의 길을 열게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어째서 영국이나 미국처럼 순조롭게 시민혁명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피로 얼룩진 혁명과 반혁명을 되풀이해야 했을까?"라는 저자의 질문에 어떤 해답을 내릴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을 모두 읽은 다음에도 쉽사리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과연 저자의 질문은 타당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영국 시민혁명은 왕권과 지주권력의 타협이 1차 혁명이고 부르주아와 왕권-지주권력의 타협이 2차 혁명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영국에서 진짜 "일하는 사람들"인 인민의 권력에 대한 타협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시민혁명이라 주장하기에는 영국 등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1천만 명이 훨씬 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차지했다는 점에서 원초적으로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미국의 시민혁명은 고작 영국이라는 식민지 본국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독립투쟁일 뿐이었다고 폄하할 수도 있다.
또한 미국과 영국의 시민혁명의 주요 주체인 부르주아 세력의 경우 해외에 광범위한 식민지를 개쳑(?)한 후에 식민지에서 수탈한 부를 통해 정치권력을 분배받고자 하는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정당성이 결여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소위 '신식민지' 방식으로 군사 경제적 수탈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말까지의 한국현대사도 거칠게 표현하면 혁명과 반혁명이 반복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1894년 갑오농민혁명에서부터 1997년 IMF까지... 그 사이에는 1910년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 굴욕과 1919년 기미인민항쟁(3.1운동), 1928년 원산총파업과 1929년 광주학생항쟁, 1948년 4.3항쟁과 5.10 단독선거, 1950~53년 한국전쟁, 1960년 4월 혁명과 61년 반혁명 군사쿠테타와 1972년 유신 친위쿠테타, 1979년 부마항쟁과 12.12 반혁명 쿠테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 6월항쟁, 1995년 전두환 구속과 1997년 IMF 경제붕괴까지 프랑스만큼 파란만장한 100년이었고 그 과정에서 민중들의 피와 땀이 물들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선거를 통한 혁명을 시도한 것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선거를 통한 반혁명을 시도한 것이라면 너무 과도한 규정일까??

비록 시대가 다르고 조건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기 때문에 프랑스혁명 이후 100년사를 한국현대사를 일대일로 맞대응하거나 비교할 수는 없어도 프랑스혁명 후 100년사에서 우리 역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인상 깊은 문장 :

"8월 10일 사건은 파리 시의회 즉 파리 코뮌을 프랑스의 실권자로 만들었다. 입법의회는 파리 코뮌의 요구대로 왕권의 일시 정지를 선언하고 보통선거에 의한 새 국회인 국민공회의 소집을 가결했다. 왕권은 우선 잠정적으로 정지되었지만 결국 영원히 폐지될 터였다. 왕은 탕플에 유폐되었다. 그는 거기서 다섯 달을 더 살다가 처형되고 만다. 라파예트는 8월 10일 사건에 반격을 시도하여 일선 군대를 파리로 회군시키려다 실패하여 벨기에로 도망했다. 왕정을 수호하여 입헌군주 체제의 테두리에서 혁명을 성취하려던 사람들은 이제 라파예트와 함께 몰락하였다. 8월 10일 사건의 주동 세력은 온건한 부르조아가 아니라 파리의 노동자와 빈민과 영세 상인이었다. 이들이 앞으로 혁명을 한결 더 과격하게 만든다. 이들은 귀족이 입는 퀼로트라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고 하여 '상퀼로트'라 불렸는데, 이제 이 상퀼로트가 파리 코뮌의 실권자로 나타났다."(p.126~127)

"돌격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무장 군인이 의사당을 점령하였다. 총검이 500인회 의원들을 쫓아냈다. 저녁 7시경 원로원은 앞서 500인회가 결의한 나폴레옹의 추방을 취소하는 조건으로 보나파르트, 시에예스, 뒤코스의 3인으로 구성되는 임시 통령정부의 조직을 공포하였다. 총재정부는 폐지되고 새 통령들에게 행정권이 위임되었다. 루시앵은 30~40명의 500인회 의원들을 긁어 모아놓고, 원로원의 결정을 승인하고 62명의 자코뱅파 의원을 제명하고 12월 22일까지 6주일간의 휴회를 결의하였다. 밤 2시, 세 사람의 통령이 의회에서 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선서하였다.
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라고 한다. 지난 1792년에, 혁명정부가 전쟁을 시작하면 혁명은 결국 군인 독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리라던 로베스피에르의 말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10년간의 혁명은 이제 한 군사 모험가의 지배로 그
막을 내렸다.(p.207)

"3월 28일 정식으로 파리 코뮌이 선포되었다. 약 2만 명의 방위대와 수만 명의 시민이 운집한 시청 광장에서 의원으로 선출된 방위대 중앙위원회의 랑비에가 “인민의 이름으로 코뮌을 선언한다”고 외치자 “공화국 만세! 코뮌 만세!”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방위대의 행렬이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의 주악에 맞추어 의원들의 사열대 앞을 보무도 당당히 행진하면 민중의 미친 듯한 갈채가 우뢰처럼 터져 나왔다. ……
분명히 파리의 민중은 이제 자신이 자신의 생활과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감동과 의욕에 넘쳐서 코뮌 선포의 날을 축제의 날로 지샜다. 민중의 소박하고 약동하는 해방감이 코뮌의 파리를 뒤덮었다."(p.417~418)

[ 2014년 2월 28일 ]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1
김세준 지음, 소희 그림 / 615(육일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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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김세준 저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를 읽고 / 2011. 12., 261쪽, 도서출판615

이 책은 20년 이상 후배에게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관점에 대해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해주기 위해 지인에게 추천받아 읽은 것이다. 칸트나 헤겔, 니체나 플라톤의 책은 읽어보라고 소개하기에는 노력 대비 얻을 게 많지 않을 것 같아서 큰 틀에서 철학 또는 세계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기 위해 선택했다.

덕분에 나 역시 오래간 만에 철학, 세계관 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천명을 앞 둔 나이에...^^

저자는 "왜 철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함께 철학이야기를 시작한다. 특히 저자는 21세기 들면서 한국사회의 젊은 세대들의 정신적 혼란과 무기력, 일베나 자살(절망)과 같은 극단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철학의 빈곤'에서 찾는다.
"대한민국을 '자살공화국'으로 만든 1차적 원인은 물론 경제적 빈곤이다. 하지만 철학적 빈곤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이다"(p.04)

한국에서 청년과 청소년들의 자살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한국은 현재 정신과를 찾는 인구 역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죠) 가운데, 자살이 늘어나는 경제적 빈곤과 빈부격차, 불공정 사회를 바꾸어 희망과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이 젊은이들의 자살행진을 멈출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은 그냥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하며, 자신이 바꾸기 위해서는 저자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철학은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지적 무기입니다."(p.06)

저자는 고대사회에서 철학이 출현한 배경과 소크라테스 등 유명 고대철학자, 햄릿이나 오이디푸스 등 그리스 희곡, 중국의 사상가에서부터 칸트, 니체와 같은 근대 철학자의 철학이론을 소개하면서 지금까지 인류가 다루어 온 철학이 어떤 사회적 배경이나 계급계층의 필요에 의해 나타났는지 살펴본 후, 철학이 다루는 근본적인 문제를 정리한다.
그가 제기하는 대표적인 철학의 근본문제는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었고 어떻게 움직이는가"라 할 수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물질과 정신의 문제 또는 존재와 의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물질과 정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철학을 분류하면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근대 이후 엄청난 진전을 만들어낸 자연과학의 성과로 인해 물질과 존재가 정신이나 의식에 앞서고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과 세계는 끝없이 변한다는 것이 철학의 근본임을 지적한다.
물론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철학을 모두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간단하게 분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류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개인들과 사회집단,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지구상에서는 유물론과 관념론 뿐 아니라 그 이외에 유물론과 관념론의 중간 어디엔가 위치한 철학도 존재할 것이다. 또한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과 정신의 관계, 존재와 의식의 관계, 또는 세계의 인식가능성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제기하는 철학사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점차 진화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철학은, 철학이라는 단어의 유래인 '진리에 대한 사랑' 즉 세계에 대한, 세상에 대한, 진리에 대한 추구임에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철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그리고 각 개인에게 여전히 남는 문제는 철학적 물음의 시작인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철학의 답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사람과 세상과의 관계, 사람이 사회나 공동체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는 각 개인에게는 행복과 생존을 다투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철학이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철학들이 사람 개개인의 판단과 의사결정, 행위와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판단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철학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는 서론과 본론의 중간쯤 가다가 멈추었다는 느낌이다. 예상대로 저자가 애초부터 2부작이나 3부작으로 책을 준비했다는 것이고 서점에는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2>가 출판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나니 2부도 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이 책은 철학의 기원과 개념, 철학의 탄생과 변천, 철학이 다루는 문제, 철학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해 독자가 가져야 하는 관점, 기존 철학이 해결한 문제와 남긴 문제, 개인의 판단과 행위에서 철학이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20대 젊은이에게는 많은 정보와 관심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플라톤이나 칸트, 니체, 헤겔, 마르크스 등 철학을 이끌어온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저서를 읽게되었을 때, 독자들이 철학이라는 중심 주제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작은 토대를 마련해줄 것이다.

○ 인상 깊은 문장 :
-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와 소비지상주의, 자유주의와 쾌락주의 등 온갖 비인간적 가치를 주입하고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주입된 자본주의의 가치들을 마치 영원불변의 진리처럼 맹신하여 자본의 노리개가 되어 서로를 적대하고 경계하며 삶을 소비하고 있습니다."(p.38)

- "자연과 세계에 대한 사람의 무지와 그로부터 비롯된 공포가 종교를 틴생시켰습니다. 원시적인 종교적 관념은 세계를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지만 미지의 공포로부터 원시인류를 구원해 주었습니다."(p.46)

-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자신보다 신을 더 믿었기 때문에 성립됩니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신탁을 따랐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은 운명을 거부한 자의 비극이 아니라 운명의 노예가 된 자의 비극입니다"(p.75)

- "유대인대학살은 니체의 철학적 상상력과 히틀러의 정치적 실천력이 빚어낸 인류 역사의 훙측한 괴물입니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유대인들이 신의 이름으로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범죄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p.93)

- "사람은 물질적 존재이지만 자체에 의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의식의 세계는 오직 사람과 사람의 실천을 통패서만 현실로 나타납니다. 때문에 세계를 물질과 의식의 두 측면으로 나누면 사람과 사람의 실천을 위치가 애매해집니다."(p.119)

-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물질뿐입니다. 세계에는 물질 이외에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물질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의식은 물질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물질운동의 특수한 결과일 뿐입니다. 의식은 사람의 두뇌작용에 의해서만 발생합니다."(p.150)

- "지구는 시속 1,670km의 속도로 자전하면서 동시에 시속 108,000km의 놀라운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지구 위에 지구보다 빠른 물체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양계는 우리 은하계의 중심을 초속 230km로 돌고 있습니다. 지구는 적어도 3가지의 회전운동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지난 45억년 동안 단 1초도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 50억 년 동안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지구가 운동을 멈춘다면 그 순간 지구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운동은 지구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p.197)

- "영화뿐 아니라 사람의 모든 창조물은, 그것이 전적으로 사적인 노동의 결과물일지라도,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입니다. 그 어떤 뛰어난 개인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천재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새로운 발견도, 획기적인 발명도, 천재적인 창작도 인류가 차려놓은 밥상에 그저 숟가락만 얹은 것 뿐입니다."(p.245)

[ 2014년 2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