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과 죄의식 -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
강준만.김환표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추천 [서평] 강준만, 김환표 저 <희생양과 죄의식 :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 >를 읽고/ 2004. 10., 296쪽, 개마고원

얼마 전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국회에서 "한국에 간첩 2만명”이 존재하며 "간첩에게 친절한 법관들” 때문에 공안사건 전담 재판부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인 황교안도 "크게 공감”했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1440) 21세기에 벌어진 이 어처구니 없는 발언에 대해 “때아닌 색깔론”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의 발언이 “때아닌 색깔론”일까? 매일 시간마다 종편에서 탈북자를 동원하여 방송하는 온갖 선동적인 것들도, 한 달에도 몇 번씩 언론에 보도되는 새누리당과 공안기관의 색깔론이 갑작스러운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의 서문을 보면 2004년 참여정부 집권기에도 ‘교과서 파동’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참여정부의 과거사진상위원회가 발족하기 전에 이미 한나라당은 ‘좌파 교과서’라는 프레임을 제기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1998년 이후 그 전까지 일방적으로 왜곡한 한국근현대사를 사실에 근거하여 수정한 내용을 문제삼아 정치적, 이념적 목적으로 색깔론을 편 것이다. 대통령 탄핵정국에 대한 역풍으로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희생양과 죄의식>에는 저자들이 담은 1940~90년대 60개의 사례는 ‘색깔론의 역사’가 과거에 끝난 역사가 아니며, 1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도 남는다.

저자들은 대한민국 반공사(反共史)에서 발생했던 60개의 에피소드로써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우리가 이런 야만의 세월을 살아왔단 말인가?” 하고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우리의 과거사가 아니라 2014년인 지금도 여전히 피 흘리는 살아 있는 상처임을 확인하면서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한반도에서 반공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였다. 1940년대의 반공 에피소드의 첫 번째는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독립투사들을 탄압하고 항일세력을 이간질시키기 위해 이들을 적색분자, 즉 빨갱이로 몰아 언어 테러를 가했던 사례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해방정국에서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들이 저지른 테러와 만행의 생생한 기록을 보여준다.
이어서 1950년대의 반공은 한국전쟁시 벌어진 '함정 학살'로, 1960년대의 반공은 공포의 중앙정보부로, 1970년대의 반공은 서승, 서준식 형제에 대한 간첩조작 사건으로, 1980년대의 반공은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의 5.18 용공조작 음모로, 1990년대의 반공은 한반도 전쟁위기설로 시작되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에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힘없는 민중들이 감당해야만 했던 수많은 공포와 절규와 슬픔과 한이 담겨 있다.

<희생양과 죄의식>의 개정증보판을 2014년에 발간했다면, 2000년대는 김대중 정부에 대해 "이북에 대한민국을 가져다바친 정권"으로 시작될 것이고, 2010년대는 "천안함은 이북 소행"으로 시작될 것이고, 마지막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일 것이다.
끊임없는 간첩조작,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색깔론, 시도때도 없이 반복되는 "종북세력 2만명, 종북좌파 200만명". 이명박 정권 집권 기간 내내 그리고 박근혜 정권 2년차까지 동일한 경험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 색깔론의 역사 즉, 대한민국 반공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은 ['희생양 만들기'와 '죄의식 털어내기']였다. 생존자들은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존경했던 사람을, 마을의 지도자급 인사를, 항일독립투사를, 아무런 죄가 없던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지만 생존자들은 인륜을 저버린 자신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개인과 집단은 부지불식 간에 '죄의식 털어내기'가 이루어진다. "그들은 죽어야만 했던 나쁜 사람들이었다"라는 합리화와 조작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희생양 만들기'와 '죄의식 털어내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지 못하고 합리화하게 되는 경우에 대한 심리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최근 10~20여 년 동안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주었다.

반공반북 세뇌교육과 이데올로기 압박은 한국인들을 어떻게 만들었나?
한국사회의 치열한 반공교육, 반북언론, 종북공세에 대해 홍세화씨는 “인간을 알기도 전에 이미 인간을 증오하게” 만들었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기 전에 증오부터 가르쳤다”고 말한 바 있다.
분단 체제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는 사회 구성원들의 개인적 자유를 확대하는 의미라는 교과서적 의미가 아니라 공산주의(1990년대부터는 북한)와 대적한다는 '반공'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자유'와 전혀 관계없는 집단과 단체들이 '자유'라는 단어를 독점하다시피 한다. 자유총연맹과 자유기업원, 자유주의연대, 자유학생연합 처럼. 그래서 이 땅에서는 '자유000'라는 단체의 단어를 들으면 자유가 연상되는 게 아니라 전쟁과 부자유가 연상되어 버린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반공은 지배집단의 억압체제로 인식되어 왔다. 지난 시절 권위주의 정권들이 국민들을 통제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공을 효율적, 억압적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런 분석에 대해 절반만 동의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공안정국'이라는 카드를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집권 기간 내내 색깔론에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나는 저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몇 년간 정치권력, 즉 행정부의 상층 일부를 장악했다고 해서 '한국사회의 지배집단'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지배집단'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세력은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 언론, 자본, 지식(학계), 문화 등 전반에 포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부의 경우에도 장차관 한두 명이 문제가 아니라 지난 군사독재 정권과 자본권력과 결탁한 적지 않은 수의 정치관료들이 지배집단의 하부구조를 장악하면서 지배집단의 상부로 진출하기 위해 결탁해 있는 게 아닐까?

저자들은 교과서 파동이나 정치적, 이념적, 사회적 갈등의 뿌리를 '폭압과 반발'에서 기인한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에서 찾는다. "한국사회 곳곳에서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숱한 상호 ‘적대 전선’들의 뿌리는 ‘해방정국의 이념 갈등’과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정권의 폭압과 그에 대한 반발’의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반세기가 넘게 지속되어온 '폭압과 반발'의 과정 속에 "집단최면이라 할 ‘세뇌’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의 악순환에 갇혀 있게 했다."는 것이다.  
민족화합을 외치고 교류협력을 말하면서도 남한 사회 내부에서조차 여전히 ‘타협과 화합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 이성(理性)적 차원에서 제어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러 있음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반공’의 상처가 짐작 이상으로 엄청나게 깊고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우리가 아직도 그 상처가 얼마만한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상처의 실체를 제대로 직시하여 아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상처의 깊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화해를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저자들에게 <희생양과 죄의식>은 실체를 직시하는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의 악순환"과 "상처의 실체에 대한 직시와 치유"라는 저자들의 결론에 일면 수긍하면서도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물론, 2003년 2월 출범한 참여정부의 인사들이 1년 반 넘게 보여온 언행이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으로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았음은 인정한다. 색깔론 공세를 펴는 사람과 이에 동조하는 국민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면서 그들에게 부정적인 딱지를 붙이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지금도 그런 정치인이나 시민들이 없지는 않다.) '독선과 오만'으로 비판받을만 했다. 참여정부 인사 뿐 아니라 진보진영의 일부 사람들 역시 독선과 오만인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저자가 '적대와 증오의 악순환'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당시 짧은 기간에 발현되었던 일부 인사들의 독선과 오만을 민주세력 전체나 진보진영 전체에게 일반화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적대와 증오의 악순환'을 한국인 전체로, 민중들에게로까지 확대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않은 진단이다.

<희생양과 죄의식>에 나오는 60개의 '반공 에피소드'에서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이 악순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당시의 7~8년 기간이라 할 수 있다. 1953년 정전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반공의 역사'는 독재정권과 기득권자들의 탐욕을 위한 무한질주였다. 군사독재정권이 폭압과 이에 대한 민중들의 반발 내지 저항은 필연적이었다. 그 반발 내지 저항도 폭압이 벌어질 때마다 일어난 게 아니라 한일회담 반대 시위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같이 일정한 기간동안 지속된 폭압에 대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발생하였다가 무자비한 군화발에 금새 사라지고 마는 그런 수준의 반발과 저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준에 불과한 민중들의 반발과 저항이 '집단최면이라 할 세뇌'로 작용하고 그것이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의 악순환을 가져왔다는 저자들의 평가는 동의하기 어렵다.

53년 이후 지난 60년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적대와 증오의 순환'이 아니라 일방적인 적대, 일방적인 증오가 지속되어 왔다. 가정에서 학교, 직장에서 사회, 정치경제 분야에서 사법, 언론, 문화까지 사회 전분야에서 반공과 반북 이데올로기 세뇌교육과 선전선동은 반복되었다. 친일과 독재를 비판하고, 강대국의 횡포와 정권의 폭압을 비판하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하면 곧장 빨갱이로 매도되었고 매장되었다.
그렇게 1997년 '빨갱이'로 알려졌던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과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반공과 반북은 한국인의 집단종교였고 불변의 진리였으며 법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였다.
그 과정에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는 민중-대중들을 억압하는 것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세뇌와 처벌, 경험 등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욕망하게 만들었다. 결국 민중-대중들 스스로가 자신의 언어와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했으며,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민중-대중들이 '적대와 증오의 악순환'을 반복한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짧게는 지난 60년, 길게는 과거 100년 동안 반공과 반북이라는 '적대와 증오의 패러다임' 사회에서 살면서 빨갱이로 매도되고 수없이 탄압을 받으면서도 한국민중들은 한국전쟁 전후 몇 년을 제외하고는 가해자들의 적대와 증오를 가해자들에 대한 적대와 증오로 되갚지 못했다. 아니 되갚을 기회를 단 한 번도 갖지 못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반공 반북은 한국인의 집단 트라우마가 되었고, 극우보수세력에 대한 공포 역시 집단 트라우마로 아직까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이 "치유와 해소를 위해 실체를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내린 결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공과 반북을 체화한 민중들-대중들이 스스로 변하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를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소위 진보적인 인사들, 즉 정치인, 종교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노동조합 간부, 언론인과 학자, 전문가와 법조계 인사, 지식인 등은 좀 더 성찰하고 분발해야 한다. 자신이 무의식 중에 내뱉는 말과 행동이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아닌지에 대해...

[ 목차 ]

1장 1940년대의 반공
'기생충 박멸 작업' / 유사 종교로서의 반공 / '악마와 천사 간의 전쟁' / '씨 말리기 전쟁' / '빨갱이는 흡혈귀' / '손가락 총'의 위력 / 산으로 간 사람들의 아내 / 피의 악순환 / 초콜렛의 유혹 / 보도연맹 20만 명 학살극

2장 1950년대의 반공
함정 학살 / 한글의 수난 / 줄서기의 고통 / '도강파'의 '잔류파' 처단 /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빨갱이' / '그 사람 빨갱이 예요' / '빨갱이 사냥군'으로 변신한 '부역자들' / '희생양 만들기'와 '죄의식 털어내기' / 광기에 전염된 아이들 / '작은 모스크바'의 추억 / '시민증이 없다는것은 죽은 목숨' / 누명을 벗기 위한 전쟁 참여 / 월나 피난민의 생존 방식 / 월북자 가족의 생존 방식 / 연좌제의 고통 / '전쟁이 교과서다!' / '조봉암이 왜 하필 우리 조씨인가'

3장 1960년대의 반공
4.19와 부역자의 가족의 자기검열 / 미국의 인정을 받기 위한 '빨갱이 만들기' / 공포의 중앙정보부 / '반공=바른생할=도덕=국민윤리' / 1963년 10.15 대선의 '색깔전쟁' / 막걸리 반공법 / 국가 테러리즘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4장 1970년대의 반공
서승.서준식 형제 '간첩' 조작사건 / 김추자가 간첩이라는 유언비어 / 반공이 만들어준 '대통령 종신제' / '박정희 사진을 이가 아프도록 씹었다' / 태극기를 보고 통곡한 여학생들 / 막걸리 보안법 / '똘이장군'의 탄생 / 삼척가족간첩단 사건

5장 1980년대의 반공
신군부의 5.18용공조작 음모 /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 '연좌제 폐지' 사기극 / 제자가 스승을 고발하는 세상 / 전두환정권의 '간첩만들기' / '간첩'을 대량생산한 국가보안법 / 빨갱이로 몰리지 않기 위한 몸부림 / 전교조 교사들의 시련

6장 1990년대의 반공
남북회담과 연좌제 자살 / 한반도 전쟁 위기설 / 박홍파동 / 50년 묵은 긴장감 / 권영길의 '레드 콤플렉스' / '통일 되면 거지 떼가 몰려올까봐 싫어요!' / 극우 반공주의의 주도권 교체 / '친북 좌익 400만 시대' / 트로츠키의 부활

[ 2014년 11월 17일 ]



 
 
 
할리우드 액션 - 영화로 보는 미국의 두 얼굴
최한욱 지음 / 615(육일오)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 최한욱 저 <할리우드 액션>을 읽고 / 2013. 11., 200쪽, 615출판

여러 종류의 영화를 즐겨보는 내가 헐리우드 영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어린 시절 유일하게 접한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년에 한두 번 학교 전학생이 동원되어 관람하던 반공영화를 제외하고는.
방 한쪽 구석에 TV가 자리잡은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주말 저녁시간은 ‘타잔’이나 ‘홀쭉이와 뚱뚱이’ 그리고 ‘주말의 영화’에 몰입하곤 하였다.

허리우드 영화 속 세상은 중소도시에 살면서 보고 겪는 일상과 TV 뉴스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세상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가끔 소설책과 위인전도 읽었지만 책에서 경험하거나 상상해볼 수 없는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헐리우드 영화의 기본적인 패턴이 내 무의식과 '상식' 속에 자리잡았다. 미국은 위대하고 선량한 국가이며, 미국인들은 성실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 아메리카 인디언은 잔인하고 무식하며 사기와 배신에 능하다는 이미지, 첨단기술과 상품은 무조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이미지 등을...

할리우드는 세계 영화 시장의 80-90%를 점유하고 있으며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인다. 매년 수 십 억 명의 지구인들이 한 편 이상의 할리우드 영화를 소비하게 된다. 지구상에서 할리우드가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지역은 아마도 북한 정도일 것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할리우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념과 문화전파자로써 할리우드의 정치적, 사회적 기능이다. 종종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핵무기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저자가 헐리우드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지구촌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미국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동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한다.

물론, 모든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을 비호하고 미국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인 <라스트 모히컨>과 <매트릭스>, <혹성탈출> 같은 경우는 다르다.
<라스트 모히컨> 속에는 미국인들의 선조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잔인한지 이야기해 준다. 반면에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물론 모든 인디언을 그렇게 설정하지는 않지만)은 선량하고 용감하고 지혜롭고 당당하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기본'이 허위와 허상으로 가득찬 역사이며 현실일 수 있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내가 영화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훈련도 덜 되었기에 저자가 비교,분석해주는 헐리우드 영화는 나에게 또다른 깨달음과 생각을 안겨 준다.
<대부> 시리즈와 <갱스 오브 뉴욕>를 비교하면서 저자는 "미국인들은 왜 조폭영화를 사랑할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역사이며 자신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큰 폭력조직은 미국,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저자가 "조직폭력은 미국인들의 삶"이라는 주장하는 이유는 실제 미국이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수사국 FBI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미국에서 발생한 범죄는 총 1,190만 건이고, 살인사건은 16,110건이었다. 미국이 폭력조직은 21,500개이며 조직원은 모두 104만 명에 달한다.

언젠가부터 TV와 극장가를 주름잡는 좀비영화를 '도살영화'라고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나 역시 아찔했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각도에서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대해 저자는 '미치광이 살인마'는 좀비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잔혹행위는 모두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비영화에서 영화의 관객들은 살인과 학살의 쾌락(?)을 공유하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제작된 시기(1968년)를 고려한다면 이 작품이 베트남전쟁의 은유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소개한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밀려드는 베트남 민중을 보며 미국인들이 '살아있는 시체', 즉 좀비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웜 바디스>를 분석하면서 좀비영화가 십대 취향의 로맨스영화와 좀비영화를 결합이지만, 혐오스러운 존재인 좀비를 호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좀비, 즉 유색인종과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저자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와 <링컨>, <더 레슬러>와 <부기 나이트>, <엘리시움>과 <식코>, <아르고>와 <계엄령>, <화씨 911>과 <세계무역센터>, <그린 존>과 <하트 로커>, <인디펜던스 데이>와 <디스트릭트 나인> 등을 비교한다.

헐리우드 영화, 즉 미국 문화와 한국의 관계는 다른 국가와는 크게 다르다. 1945년 9월 8일 인천으로 들어온 미군정은 일주일 뒤인 9월 15일 서울중앙방송국 등 남한의 10개 방송국을 모두 접수하여 미군정의 군정정책에 대한 홍보매체로 이용하였다. 이때부터 미군이 공급하는 뉴스와 헐리우드 영화가 한국에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TV와 영화관에서 여전하다. 미군정이 왜 방송국과 극장을 장악했는지, 신문과 라디오를 검열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미군정의 방송과 영상매체 장악은 이승만 정권 이후 김대중 정권이 수립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방식만 바뀌었을 뿐 영향력은 그대로다. 52년 동안 미국과 한국정부로 이어져온 방송과 영상매체의 편파적 운영은 아무런 반성도 평가도 없이 그대로 '미국이 천국인줄로만 아는' 재벌과 관료들, 역사의식 없는 사업자들과 기술자들에게 승계되었다.

그렇지만 저자가 헐리우드 영화를 전적으로 거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헐리우드의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이념과 가치, 정책을 세계로 전파하는 창의 역할을 하지만 역으로 우리는 그 창을 통해 미국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물론 할리우드의 창은 완전히 투명하지 않다. 그 창은 반투명 혹은 불투명한 유리로 가려져 있으며 외부로 수많은 커튼이 드리워져 내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부를 전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 깊게 할리우드영화를 관찰하면 그 속에서 진짜 미국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올바른 한미관계의 정립은 미국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자신은 물론 미국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의 변화는 어쩌면 우리의 변화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 인상 깊은 문장 ]

"할리우드는 미국의 ‘문화통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비공식공무기구이다. 헐리우드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보다 세련되고 유연한 방식으로 미국의 가치와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침투시킨다."

"우리는 할리우드의 영화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미국의 문화에 젖어들며 자연스럽게 미국식 사고와 생활방식을 받아드리게 된다. 또한 미국의 국가이념과 가치, 정책에 대해서도 학습하게 된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영향권에 있는 지구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에 동화되고 스스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혹자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누구나 미국의 이념과 가치, 생활방식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 정부와 헐리우드의 밀월관계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는 상항에서 헐리우드는 단지 오락을 제공할 뿐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우리를 헐리우드의 부정적인 영향에 무방비로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 2014년 11월 12일 ]



 
 
 
한국주거복지정책 - 과제와 전망
하성규 외 지음 / 박영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서평] 하성규 등 공저 <한국 주거복지 정책 : 과제와 전망>을 읽고 / 2012. 08., 504쪽, 박영사

대한민국 헌법 제34조에는 주권자인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행정부인 박근혜 정부와 입법부인 국회, 그리고 사법부인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삶에 필요한 '의,식,주' 뿐만 아니라 교육, 보건, 취업, 환경, 휴식, 그리고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복지'라 함은 바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조금씩 나아지던 국민들의 '인간다운 생활'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급격하게 추락하기 시작했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2013년 이후에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 즉 주거문제 또는 주거복지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개선되지 않은 채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주거문제, 주거복지는 어떤 면으로 보아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자가보유율은 끝없이 추락하여 2000년대 후반 이후 50대 초반에서 정체되어 있다. 2가구 중 1가구가 여전히 전월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주거빈곤층이 열악한 주거수준이다. 2010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전체가구수 중 10%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한다. 최저주거기준이란 정부 스스로가 주택법에 명시한 기준이다.
주택의 양적 문제도 남아 있다. 단순히 주택공급율을 보면 100%를 넘지만, 선진외국의 도시들과 비교해보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2010년 기준 인구 1천명당 주택수의 경우 선진국은 대부분 400~500호 수준인데, 한국은 363호이다. 특히 수도권과 대도시 지역의 주택공급율은 100%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하고, 일인당 GDP가 2만 달러(년간 2,200만원)가 넘는다고 하지만, 빈곤층의 주거권 확보는 요원한 상황이고 절반 가까운 전월세 가구는 매년 폭등하는 전세금과 월세에 고통받고 있다.
겉만 번지르르한 주택정책은 오히려 약자들을 자신의 주거지에서 내?i고 있다. 도시빈민들이 거주하는 열악한 동네의 재개발 혹은 뉴타운 사업은 그 곳에 오래 거주한 가난한 원주님을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새로 지은 재개발, 재건축 아파트에 거주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주민들, 특히 세입자들은 ?i겨나가 해당 도시주변이 저렴한 주택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생색내는 수준으로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은 수혜대상이 제한적이고 배분적 형평성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사회의 주거문제가 지속적으로 심각한 상태로 몰리는 이유를 알아보고, 주거복지정책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저자들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그리고 언론과 학자들에게 있어 주거복지정책의 발상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주거복지정책이 과제와 대안을 제시한다.

제1장과 2장은 주거복지의 개념과 발전과정 등 이론적 논의를 다룬다. 3장은 역대 한국정부의 주거복지정책을 개관하고 4장은 미국과 캐나다의 주거복지정책을, 그리고 5장은 유럽의 주거복지정책을 소개한다.
6장부터 12장까지는 개별 주거복지정책이 주요 이슈를 다룬다. 6장은 한국사회에서 주거복지의 핵심 과제로 등장한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논의, 7장은 노숙자의 주거문제, 8장은 노인주거문제, 9장은 장애인, 10장은 재개발 원주민, 11장은 농어촌 주거빈곤문제, 그리고 12장에서는 지역사회의 주거복지를 다룬다.
그리고 13장에서 한국사회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사회적 배제' 문제를 공공주택단지에서의 사례로 분석한다.

주거복지 프로그램으로서 소비자 지원형 주거복지로 바우처 제도는 14장에서 다루고, 15장은 많은 서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소위 '반값아파트' 논쟁과 연관되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다룬다.
마지막 장인 16장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공공주택정책을 평가하고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이며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논의한다.

책에 대한 관심이 있기를 바라며 '목차'와 저자를 소개한다.
제1장 사회적 약자와 주거빈곤- 하성규 
제2장 주거복지: 개념과 발전배경 - 하성규 
제3장 한국의 주거복지정책 - 이성우 · 황재희 
제4장 북미국가의 주거복지정책: 미국, 캐나다 - 전희정 
제5장 유럽국가의 주택 및 주거복지 정책 - 서원석 
제6장 주택에 살지 못하는 주거취약계층 - 서종균 
제7장 노숙인과 주거복지 - 김수현 
제8장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노인주거복지 - 조덕호 
제9장 장애인의 주거복지 - 강미나 
제10장 재개발 원주민과 주거복지 - 김태섭 
제11장 농어촌 주거실채와 주거복지 - 박윤호 · 윤원근 
제12장 사회적 약자의 주거복지와 지역사회 역할 - 임경수 
제13장 공공임대주택과 사회적 배제 - 하성규 · 서종녀 
제14장 주택바우처 프로그램 - 박미선 
제15장 주거복지정책과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 배문호 
제16장 한국의 공공주택정책 평가와 과제 - 김성연 · 한봉수 

이 책을 통해 한국의 주거문제가 양적, 질적 그리고 정책이슈별로 산적하게 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역대 정권, 정부가 수없이 남발한 주택공급과 주택문제해결이 '공염불'이자 '공언'임을 또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동시에 한국사회의 주거문제는 '주거복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어쩌면 '복지'는 수동적이고 시혜적인 개념이며, 오히려 '주거권'이라는 개념이 헌법의 취지에 맞을 수 있다.
한국사회의 주거문제와 주거복지정책에 대해 궁금한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이명박 정부 때까지의 국내 주거관련 각종 정책과 현황, 그리고 논점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은 주거문제를 사회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하지 못하는 것과 주거복지정책을 정부와 정치권의 복지정책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하지 못하는(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이후 부동산 가격과 전월세의 급격한 상승 그리고 자가보유율의 정체와 전세의 월세 전환 현상은 주택공급이나 주거복지정책이 미진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러가지 요인 중 결정적인 것 중 하나는 바로 수출대기업과 금융산업을 위해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고집했고, 주택보유세와 전월세 이자소득세를 제대로 징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1960년대 이후 주택가격의 꾸준한 상승은 단순히 주택공급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역대 정권이 자립적이고 균형잡힌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대신 도시와 수출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경제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입, 직접세 감세와 간접세 증세, 금리와 환율정책, 일방적인 재벌육성, 정경유착, 부동산 폭등에 대한 방치와 편승, 저임금과 실업의 만연, 개인주의와 소가족주의의 확산은 주거문제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주거문제에만 국한하여 주거복지정책을 펴는 것은 아무래도 정책의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거 그리고 현재 존재하는 주거복지 관련 정부관료나 정치권 다수의 동향과 구조를 고려할 때, 한참이나 후진 국내 주거복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정부와 정치권에게 맡겨 해결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즉, 80%가 넘는 일가구 소유자와 절반에 이르는 '집 없는 주권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지 않고서는 한동안 개선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직접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소비자단체를 구성하거나 협동조합처럼 조직화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고, 정부나 지자체 그리고 국회를 상대로 법 개정과 주거복지 예산을 요구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필자는 부동산과 주거복지정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책을 상당히 꼼꼼하게 읽고 요약했으며, 나름대로 분석하고 평가하려 애썼다. 사진이나 도표도 옮겨놓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개인블로그에 올려 놓았다. 
개인블로그를 읽어보려면 http://blog.daum.net/hy2oxy/8691864를 참고…^^

[인상 깊은 문장]

"그러나 한국의 주거복지정책은 주택가격과 공급중심의 정책으로부터 주거권, 주거복지와 관련된 근본적인 철학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거복지의 선행요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주택의 공공재적 성격을 강조해 나가는 주거복지정책으 공고화 과정을 선행하여, 주거권 개념을 정착시키는 과정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주거복지의 개념, 정의, 제도를 명확히 규정할 수 있도록 주거권을 현행 법령에 명문화하고,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를 더욱 확장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숙인 정책의 대상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자신의 비용을 내면서 주거를 해결하더라도, 형편이 안 되면 언제든 거리로 나올 수 있는 경우는 정책대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는 더 나아가 넓은 의미의 주거불안정까지도 노숙인의 범위에 넣어야 한다는 논으ㅢ로 발전하게 된다.
결국 노숙인은 그 사회가 노숙문제를 보는 태도, 정부 정책의 범위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학자들은 이를 경험이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판단을 요하는 정치적인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연금 및 공적부조, 주거급여가 완전히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노인인구의 가파른 증가와 함게 빠른 고령화는 향후 사회적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도시와 농촌노인 가구의 주거복지특성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획일적인 주거복지정책보다는 농촌지역은 물리적인 시설 중심으로, 도시지역은 가처분 소득 및 빈곤해결 등 경제적인 정책 중심으로 주거복지정책이 세분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 주거복지정책에 대한 장기계획은 주거복지와 사회복지 분야 계획의 내용을 포괄하면서 장애인 주거복지정책에 대한 세부적인 전략을 담을 수 있는 계획이 되어야 함.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의 법적, 제도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장애인 주거복지의 목표와 전략이 중앙부처, 지자체, 장애인 단체 간에 공유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주거취약계층의 주거복지 증진을 위해서는 정부, 지자체, 시민단체, 비영리단체 및 사회적기업 등 관련 주체 간 협력적 거버넌스 구현을 위한 핵심적인 주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데, 주거복지센터의 역할 정립과 이를 통한 협력체계 구축이 가능하다고 판단됨. 주거복지센터는 공공영역 전달체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민간영역의 다양한 전문자원 및 인적/물적자원의 적절한 투입을 통해 전문적인 주거복지사업을 수행하고 공공 및 민간영역의 네트워크 구축과 체계적인 운용을 통해 주거복지 전달 체계의 효율성 제고, 효과적인 주거복지서비스 지원 및 주거문제 해소와 발전적인 주거복지 서비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음.”








[ 2014년 11월 09일 ]




 
 
 
우리사회분석 1 : 정치군사 편 - 종미사회를 해부한다
우리사회연구소 엮음 / 615(육일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추!! [서평] 우리사회연구소 저 <우리사회 분석 1 정치,군사편 : 종미사회를 해부한다 >을 읽고 / 2014. 05., 194쪽, 도서출판 615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 양도하는 것은 군사주권 문제가 아니다.”라고 오늘 국방부 장관이라는 자가 국회에 출석하여 주장했다.(한민구 국방장관 “전작권 전환, 군사주권 문제 아냐” @newsvop http://www.vop.co.kr/A00000807785.html)
한 언론인은 이런 장교들에 대해 '식민지 군대'라 비난했는데, 이런 말을 들어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식민지 군대의 '똥별'들 / 김의겸 | Daum 뉴스"http://m.media.daum.net/m/media/newsview/20141026185008981

영토와 주권을 가진 어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가 내외의 문제에 대해 독립적, 자립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기본적인 상식이자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이다. 그렇다면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요소는 바로 군사주권과 정치외교 주권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군사가 어떻게 미국(미군)에 종속되어 있는지에 대한 책을 찾아보려다 구했다. 국뻥부나 외교부 등 한국정부가 큰소리만 뻥뻥치면서 겉으로만 주권국가인 척하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오늘 국방부 장관의 말이나 어제 “별 문제가 아니다”라는 청와대 대변인이나 여당의 발언은 120년 전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을 주장하던 이완용 등 친일파가 생각나게 한다.

저자인 우리사회연구소는 책의 제1부 '정치'편에서 '미국의 노골적인 한국정치 개입 역사', '미국으로 뻗은 정치의 뿌리', '국민을 외면한 정부 정책', '국적을 상실한 정치제도와 기구' 등 4개의 장으로 나누어 정치외교의 주권이 어떻게 종속되어 있는지 그리고 미국이 그동안 한국의 정치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분석한다.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을 제거하려고 계획했던 미군사령관의 ‘상비작전’, 박정희 일당의 5.16 군사쿠테타와 전두환 일당의 12.12 구테타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시민에 대한 학살에 개입한 주한미군과 CIA의 정체를 폭로한다.
그리고 미국 정부와 정보기관이 어떻게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공식, 비공식적으로 개입해 왔는지, 한국의 정치인과 관료들이 어떻게 한국인의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게 되어 가는지 등에 대해 파헤친다.

제2부 '군사'편에는 '미국에게 통째로 맡겨진 우리의 국방', '주한미군의 세 가지 특권', '주한미군의 한반도 전략', '미군의 그늘에 가린 국군', '왜곡된 병영문화' 등 5개 장으로 나누어 역시 군사주권의 유린과 그에 따른 폐해를 다루고 있다.
주한미군과 관련한 문제는 군작전권뿐 아니다. 주한미군은 한국의 영토를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고,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미군이 주둔한 세계 여러 국가 중 가장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으며, 그 이외에도 각종 특권을 누리고 전횡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전세계적 군사패권전략이 매년 한미군사합동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고, 허황된 정보와 위기감 조성으로 미국 군산복합체의 무기판매장이 되었으며, 군사주권이 없는 국방부와 한국군대가 어떻게 부정부패와 폭력적 군대문화로 망가지고 있는지 파헤치고 있다.

사실 조금만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굳이 책으로 ‘주권국가’에 대해 읽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주권국가 아님'이 단순명료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국방부와 여당은 군작전권을 주한미군에게 바치지 못해서 안달해 왔고, 한국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예외 없이 가장 먼저 미국에 ?i아가서 미 대통령을 알현하며, 매년 한미연례협의회나 외교협의회니 하는 꼬락서니가 고려와 조선의 왕이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승인(인정)받고 매년 진상품을 잔뜩 마차에 실어 보내던 게 생각나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 왕조나 일제 친일파들보다 대한민국 정부가 더 사대주의에 쩔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상 깊은 문장]

“1994년의 ‘평시 작전권 환수’도 국민을 기만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미국은 ‘평시 작전권’을 한국에 이양하더라도, 평시 위기관리 권한을 비롯해 작전계획을 수립, 합동훈련 계획 및 실시, 정보관리 등으로 이루어진 64개항의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을 한미연합사령관인 주한미군 사령관의 권한으로 남겨둠으로써, 이전과 다름없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였다."

"‘전시’라는 개념은 휴전선 전역에서 총포탄이 쏟아지는 ‘전면전’을 상정한 것이 아니다.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고도 경계상태인 데프콤 3 상태에만 접어들어도 청와대로부터 한미연합사령부, 즉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자동 인계된다. 문제는 테프콘 상태를 청와대가 아니라 한미연합사령부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한국 정부가 가진 평시 작전통제권도 그 권한이 매우 미약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합의되었던 ‘전시작전권 환수’도 속을 들여다보면 기만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방부가 발표한 ‘전작권 전환 추진’ 설명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대신, 미국 주도의 ‘연례안보협의회(SCM)’와 ‘한미군사위원회(MC)’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맹군군사협조본부(AMCC)’를 새로 만들어 전략적 측면에서 한미 간 협조를 더욱 긴밀하게 유지하기로 하였다. 또한 군사협조본부 아래에 ‘연합공군사령부’를 만들어 미국 제7공군 사령관의 관할 하에 한국 공군을 두기로 하였다. 이로써 한국 공군을 미국 제7공군의 직속 하위부대로 전락시킨 것이다. 결국 ‘적전통제권’은 상징적으로 환수되지만, 오히려 한국군의 대미 예속은 더욱 강화되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p.128~129)

[ 2014년 10월 27일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가지 1
김태정 지음 / 현암사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서평] 김태정 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가지 1>를 읽고 / 2005. 9., 436쪽, 현암사

가끔은 사회학이나 철학, 소설 같은 사람과 관련이 없는 자연에 대한 책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현란한 문장이 가득한 책보다 눈과 마음이 즐거운 책을 읽는 것이다. '우리 꽃 백가지를 읽으며 공부하는 것은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며, 동시에 자연을 아는 것이었다. 한반도에서만 고유하게 자라는 '특산식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역시 이번에 알았다.
특산식물로는 인삼꽃, 개나리꽃, 지리산괴불, 오동나무꽃, 민민들레꽃, 금마타리꽃, 큰용담꽃, 거문도쑥부쟁이, 바위구절초꽃, 늘메기천담성꽃, 잔대꽃, 솔체꽃, 솜다리꽃 등이 있다.
그리고 한반도와 만주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를 한가지씩 아는 과정은 그대로 한반도와 한국인을 아는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소개해주는 내용 때문이다. 꽃의 용도는 결국 사람을 위한 '용도'이고, 꽃에 얽힌 전설은 조상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것이니...

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우리 꽃과 나무를 나 혼자만 알고 지나가는 게 아쉬워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100회에 걸쳐 페이스북에 우리 꽃 백가지를 소개했다. 처음 솜양지꽃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단풍나무꽃까지. 페이스북의 많은 친구들도 우리 꽃과 나무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고 즐거워하였다.  

물론 책 한 번 읽는다고, 꼬박꼬박 사진을 찾아보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고, 책에 보이는 꽃과 나무의 사진을 한두 번 본다고 하여 산과 들에서 꽃이나 나무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철쭉꽃과 진달래꽃을 구분하는 것 하나만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공부를 거듭해야 했다.
'삼천리 금수 강산'의 꽃 하나하나를 쉽게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책과 사진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고 책을 곁에 두다보면 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 생기고 잘 알게 되리라 생각해본다.

이 책은 2010년 입적하신 고 법정스님이 추천한 50개의 독후감을 모은 <내가 사랑한 책들>(2010, 문학의숲)에서 알게되었다. 한반도에서 나는 들꽃 백가지를 골라내어 시리즈로 엮은 첫째 권이다. 꽃의 유래, 전설, 분포 지역, 생김새의 특징에서부터 식용방법까지 술술 이야기하듯이 풀어낸 재미가 넘친다.
저자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우리 야생화를 찾아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마흔 해 넘게 진행했다. 2005년 현재 '한국야생화연구소' 소장이며, 젊은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 이름 모를 약초를 먹고 회복한 것을 계기로 야생화에 몰두했다고 한다.

가끔 기차나 버스를 타고 지방을 돌아디닐 때면 한반도 남단 곳곳에 굴착기와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아스팔트와 콘트리트가 도시를 넘어 시골 곳곳에 깔려 있고, 무슨 올림픽이 국제대회니 아니면 기업도시니 산업단지니 하면서 인간의 이익과 편리를 명분으로 수만 년을 이어온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앞으로도 수만 면, 수십 만년 후손들과 동식물들이 살아야  할 이 곳을. 인간의 탐욕과 폭력으로 이름없는 들꽃들은 밟히고 쓰러진다. 
하지만 그렇게 쓰러지고 사라진 연약한 들꽃들이 한겨울 동토보다 강하고 포크레인보다 숭고한 목숨이다.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백두산 정상에서도 개감체라는 연약한 풀은 단단한 얼음을 뚫고 피어난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섬 독도에서는 기린초, 섬초롱꽃, 섬노루기 등의 식물들이 모진 바람 속에서 흙만 보이면 뿌리를 내린다."

이 땅은 '우리의 땅'이 아니라 '우리 꽃들의 땅'이다. 
"꽃이 없으면 우리의 존재도 사라진다. 꽃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하는 소도구나 관상용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기반이다. 이 기반이 허물어지면 우리의 삶도 허공꽃이 되고 만다. 꽃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의 모습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아름다운 세상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볼 줄 몰라서 가까ㅏ지 않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세상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이렇게 마음껏 꽃을 피우는데, 과연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거듭거듭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꽃이나 약초 이야기를 들으면 절친한 후배 한 명이 생각난다. 사람보다 산을 사랑하고 꽃과 약초, 산나물을 좋아하는 후배가. 후배가 산에서 캐오는 나물과 더덕으로 지인들과 오손도손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내년 새봄이 기다려진다.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 가지에 대한 소개와 사진이 궁금하신 분은 http://blog.daum.net/hy2oxy/8691769를 참고하세요..^^

[ 2014년 10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