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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문고본) ㅣ 요네하라 마리 특별 문고 시리즈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1월
평점 :
이 작품은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여성 중 하나인 저자의 프라하에서의 어린 시절을 담아낸 것이다. 저자는 일ㆍ러 통역가이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저자가 다닌, 체코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배경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196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소녀 시절, 일본 공산당 간부인 아버지를 따라 체코에서 살게 되면서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4년간 다녔다. 그녀의 아버지가 공산주의 운동 이론지인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편집위원회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사무실이 프라하에 위치해 있었다.
프라하 소재 소비에트 학교는 세계 각국의 대사관이나 외교관, 공산당 간부들의 자녀가 수학하는 국제 학교였다. 1960년대이니 만큼 소비에트 학교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컸다고 한다.
프라하로부터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 요네하라는 프라하의 친구들과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그 연결고리는 차츰 헐거워졌다. 저자 자신이 일본의 교육제도와 인간관계에 적응하느라 지쳐갔고 또 현실의 비중이 점차 커져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추억의 옥석을 가리면서 옛 친구들의 모습과 그들에 대한 기억은 더욱 또렷해졌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동유럽에 크고작은 격동적인 사건이 동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뒤, 요네하라는 그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수행 통역을 하기로 했던 러시아 주요 인사의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자 옛 친구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단서는 1964년 소비에트 학교에서 헤어질 때 친구들이 이별의 메시지와 주소를 적어준 ‘추억의 노트’뿐이었다. 그리하여 1995년 11월, 프라하 - 부쿠레슈티 - 신 베오그라드를 가로지르는 2주간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두 가지 이야기로 엮여 있다. 한 가지는 요네하라가 1960년대 초반 소비에트 학교에 다니면서 겪었던 학교 생활과 친구들과의 일화이다. 특히 가장 절친했던 3명에 대한 추억이 중심이다. 소련의 영향력하에 있던 시절, 체코의 소비에트 학교라는 공간적 배경에서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두 번째는 1995년 그녀가 친구들을 찾아가고 만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30년이 지난 세월과 사회주의 체제 해체라는 격동의 세월을 견뎌낸 친구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조국의 운명에 휩쓸려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맞닥뜨리고만 저자의 동유럽 친구들의 모습은 20세기 후반, 동유럽의 격동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해 온 사회주의를 들여다봄으로써, 현재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자본주의 사회제체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프라하 시절 요네하라가 친했던 친구 3명은 그리스인 리차와 루마니아인 아냐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인 야스나였다. 이들과 함께 보낸 프라하에서의 5년은 그 후 40여 년 동안 그녀에게 깊고 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조국’이나 ‘민족’에 대한 그녀의 경험은 인상 깊었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접하고서야 사람은 자기를 자기답게 하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 자신과 관련된 조상, 문화를 이끈 자연조건, 그밖에 다른 여러 가지 것에 갑자기 친근감을 품게 된다고. 이것은 식욕이나 성욕과도 같은 줄에 세울 만한, 일종의 자기보전 보능이랄까. 자기긍정 본능이 아닐까.”(112쪽)
그녀가 기억해 내는 1960년대 소비에트 학교의 모습은 이데올로기적인 교과 이외에는 필자가 자라난 1970년대 대한민국의 의무교육과는 천지 차이였다. 학생들을 존중하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은 21세기 한국의 교육 현실보다 앞서 있는 듯 느껴진다.
“소비에트 학교 선생님들은 제자의 재능을 발견하면 과장될 정도로 법석을 피우는 버릇이 있다. 너무 좋아서 그 기쁨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동료와 반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 서구로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 이것 만큼은 러시아가 뛰어났다고 절실하게 느낀 게 있어요. 그건 재능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죠. 서구에선 재능이 자기 개인에 속하는 것이지만, 러시아에선 모든 이의 재산이랍니다. 그러니 이곳에선 재능 있는 자를 시기해서 어떻게 하면 끌어내릴까 안달이죠. 러시아에선 재능 있는 자는 무조건 사랑받고 모두가 받쳐주는데….”(179~180쪽)
친구 리차는 한 번도 봤을 리 없는 그리스의 파란 하늘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그건 말야. 정말 쨍하고 깨질 듯이 파래.’라며 자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긴 눈썹으로 테 두른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였다.”
“단 한 점의 구름도 없는 새파란 하늘이, 또 새파란 바다에 비쳐서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거야. 파도는 방금 빨아 넌 냅킨처럼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정말이지 마리한테도 보여주고 싶어.”
리차는 그리스 군사정권의 탄압에서 벗어나 동유럽 곳곳을 전전하다가 체코슬로바키아로 망명한 공산주의자의 딸로, 외모에 관심이 많았고 성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빠삭한 아이였다. <레닌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계몽영화를 보면서는 “마리, 레닌은 꽤나 잘살았나봐”라고 꿰뚫어볼 정도로 냉철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리차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명문 대학인 카렐 대학에 입학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지만, 믿기 힘들 정도로 공부를 못하고 언제나 낙제의 위기를 맞던 친구였기에 요네하라는 그 소문을 믿을 수 없었다.
헤어질 때 적어준 주소지에도 리차의 흔적은 없다. 요네하라는 현 소비에트 학교의 교장이 일러준 그리스인 민단民團을 통해 리차의 소식을 묻기로 한다. 리차의 본명을 알게 된 곳은 카렐 대학 입학생 명단이었다. 리차는 몇 번이나 재시험과 추가시험을 보고 두 번의 낙제를 겪으면서도 의대생으로 무사히 졸업해 독일에서 이주민들을 돌보는 ‘봉사하는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외교관이었던 아냐의 아버지는 루마니아 공산당을 대표해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의 편집위원으로 프라하에 오게 됐다. 인도 델리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자란 아냐는 남다른 언어감각으로 소련 본국 아이들을 제외하면 가장 러시아어를 잘했고 이야기 솜씨도 빼어난, 사랑스러운 몽상가 타입이었다. 다만 심심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흠이었다. 어린 시절의 마리로서는 일종의 병이라고밖에, 절대로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짓말들이었다.
성인이 된 아냐는 영국 유학중 사귄 영국 남자와 결혼해 영국에서 살고 있었다. 조국 루마니아에 대한 마음이 깊어, 절대로 루마니아를 떠나지 않겠다던 아냐였지만, 이제는 자신을 90%의 영국인으로 믿는 국제인으로 성장했다. 아니, 루마니아인이었던 과거의 모습은 버리고 최선을 다해 서구문명에 적응했다. 귀족 대접을 받으며 성장한 특권층이었음에도 루마니아인으로서의 자신보다 자본주의 사회의 중상류층으로 지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만족해하는 아냐를 보며 요네하라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씁쓸함을 느낀다.
야스민카가 본명인 야스나는 ‘명쾌하다’라는 뜻을 가진 애칭 그대로였다. 모든 과목에 천재성을 보이는 총명한 친구로 유치한 장난에 초연하고 아이답지 않게 객관적이었다. 아버지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우스타시에 대항한 파르티잔 출신이었다. 야스나가 일본 중세의 호쿠사이 판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급속도로 친해진 마리와 야스나는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1년간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지냈다.
요네하라가 야스나를 찾는 일은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구 유고슬라비아가 민족분쟁으로 분열되면서 보스니아에서는 끊임없이 내전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녀는 야스나가 어느 민족인지 알지 못했다.
분란의 와중에 수소문한 바에 의하면 야스나는 무슬림이었다. 자신이 무슬림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야스나였지만 이 때문에 함께 투쟁해온 친구들과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다. 구 유고슬라비아의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한 야스나의 아버지는 탈출을 거부한 채, 언제 폭격당할지 알 수 없는 사라예보의 방공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요네하라의 소비에트 학교 친구들의 인생은 운명이 뒤바뀌는 고난 그 자체였다. 그들이 겪은 운명의 배후에는 1968년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탄압으로 짓밟힌 ‘프라하의 봄’과 1990년대 초 동구 사회주의권 격변시 벌어진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의 붕괴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독립선언이 발단이 된 유고 다민족 전쟁이었다.
역사와 민족이라는 화두,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운명에 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화법은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지만 가슴을 두드리는 울림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데올로기가 개인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상당히 날카롭다. 저자는 “소비에트 학교 아이들은 모두 자국에 대한 애정과 동경을 가지고 있는데, 빈곤과 혼란 상태에 빠진 나라의 아이들일수록 애국심이 강했다”고 평하고 있다.
작품을 읽고서 필자가 느낀 점은, 1950년대 ~ 1990년대 동서 냉전이었던 기간 동안 서구 사회에서 과도하게 선전하고 폄하했던 사회주의 사회의 모습과 그 체제와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은 서구 사회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나 사회주의 체제 모두 장점과 단점이 존재했다. 자본주의는 ‘돈이 만능’이지만 사회주의는 ‘가난한 대신 사람들이 사는’ 사회였다. 특히 동유럽 사회주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도 공기처럼 문화가 숨 쉬고 있었다.”고 독일 의사 리차는 말한다.
소련과 동구권의 해체는 단순한 이념의 대결 문제가 아니었다. 요네하라의 친구 중에는 소비에트 학교 졸업 후에 기쁨에 들떠 귀국했지만 동란으로 목숨을 잃은 아이도 있었고 조국에 실망해 다시 외국으로 떠난 아이도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20세기 후반 동유럽의 격동의 현실을 보여준다. 동유럽의 현대사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기득권층과 자본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이 책은 몇 달 전 여자 후배가 꼭 읽으라며 선물해주었다. 그 후배는 필자에게 “추상적인 인류의 일원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도 존재할 수 없어”라는 요네하라의 고백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소개해준 후배가 고맙다.
“파랑, 하양, 빨강. 그러고 보니 이는 자유, 평등, 박애의 색깔이 아닌가. 이것이 인류의 지고한 표어가 되기까지, 또 인류가 이를 지향하게 된 이후에도 수많은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인간은 언제쯤이나 사고방식 하나로 서로를 죽이려는 것을 그만두려는지 많이 걱정스럽다.”(옮긴이의 말)
[2017년 7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