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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 명작을 모방한 명작들의 이야기
카롤린 라로슈 지음, 김성희 옮김, 김진희 감수 / 윌컴퍼니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미술 관련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번씩 해본다. 과연 이런 방법 말고는 없는 것일까? 커다란 그림 몇장이 나오고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형식의 책은 꽤나 좋은 구성이겠지만 나처럼 그림보다는 그 그림이 그려진 배경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구성이다. 그림 몇장 넘겨보면 어느새 책이 끝나기 때문이다.
미술책의 한계인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찌되었던 이 책이 주인을 잘못 찾은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 이 책이 보고 싶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 이 책은 그렇게 유의미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대가들의 그름을 베끼면서 표현방법을 배우기 때문이 아닐까? 위대한 화가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고 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도 위대한 작가들의 작푸믈 베껴쓰거나 모방하면서부터 글쓰기 연습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책들은 그렇게 서로 닮은 그림을 모아 놓았다. 그 사람이 분명 이 그림을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음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사기에서 복사해낸 듯이 똑같은 그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그림이다. 자기 그림의 원본이 되는 그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자기 나름대로 비틀어 본다. 그들의 비틈은 꽤나 유쾌하기도 하고, 때론 불편하기도 하고, 때론 난해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그림을 베낀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모방과 창조의 바람직한 관계가 아닐까? 이 책을 보면서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특허권에 관한 내용들이다. 특히 몇 년전에 그리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과회사와 세별의 싸움 말이다. 이놈이 저놈이고, 저놈이 이놈이다. 서로 닮아 있고, 아식플은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소프트 웨어야 워낙 차이가 나지만 그들이 다투는 것은 소프트 웨어보다는 하드 웨어니 가운데 버튼이 동그라미냐 네모냐, 그리고 버튼이 하나냐 세개냐 뭐 이런 차이가 있지만 멀리서 보면 같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미친듯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쪼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이 책에 나오는 그림의 작가들이 한 시대를 살았다면, 이 시대에 다빈치와 뒤샹, 앤디 워홀이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서로 특허권을 주장하면서 법정 다툼까지 갔을까? 법정다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특허권보다는 자기 그림을 모독했다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까?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은 어쩌면 원작자들이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아야 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이 책을 표현하자면 "림은 좋지만 텍스트는 부족하다. 그래서 주인을 잘못 찾은 책 같다."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