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자를 쓴 여자 새소설 9
권정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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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하민은 잠이 오지 않은 새벽 2시 무언가에 이끌려 베란다로 나갔다 헌옷수거함 옆에서 자신의 눈과 마주친 검은 모자를 기억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맥고모자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3층 베란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는 점이다.

 

새소설 시리즈의 아홉 번째이기도 한 소설은 현진건문학상과 혼불문학상을 수상하며 날카로운 상상력과 생생한 묘사로 흡입력 넘치는 작품 세계를 펼쳐온 권정현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은 짧지만 흡입력 있고 스릴이 넘친다. 이 소설을 주로 새벽에 읽었는데 베란다를 내다 본다는 생각만으로 무서운 생각이 든다.

 

삶은 제 꼬리를 문 우로보로스처럼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p198

 

민은 평범한 가정의 부모 밑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 후 도전한 공무원 시험에서 4년 연속 불합격을 하였다. 비오는 날 우연히 우산을 씌워준 인연으로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하고 이듬해 은수가 태어났다. 세 살이던 은수와 평소에 가던 약수터에서 자신의 부주의로 아이가 죽자 민은 자책하며 나쁜 존재가 아이를 앗아갔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부부는 무지라는 반려견을 입양하였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교회 앞에 바구니 안 담요에 싸인 아이와 까만 고양이를 발견하였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입양 절차가 까다로웠지만 아이와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한다. 아이는 동수가 되었고 고양이는 까망이라 불렀다.

 

무지가 눈을 다쳐 실명하는 일이 생기고 까망이의 행동이 불길하였다. 검은 모자의 환영을 자주 보게 된 것도 그즈음의 일이었다. 수년 동안 쌓여온 공포와 불안이 그녀의 내면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와 하나의 형태로 마침내 존재를 드러낸 것은 아닐까. 남편은 병원을 가보라고 했고 의사와 남편은 민이 겪고 있는 증상이 망상장애라고 단정 지었다. 남편은 민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여행을 떠난 사이 집을 봐주던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다. 민은 친구의 출판사에서 석 달동안 교정에 매달렸다. 자신이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 테고 동수를 입양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 텐데 더 나아가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 생각의 고리들로 민은 혼자만의 아픔이었다.

 

강박 장애가 심하고 그것이 망상을 만들어내고 자꾸 지우거나 잊으려고 하지 말고 현실을 인정하고 눈을 뜨고 바라보라고 했다. 가족을 잃는 것은 힘든일이다. 특히 아이를 잃었을 때의 부모 심정은 겪어보지 않고서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끝없이 의심케 하는 밀도 있는 전개는 읽는 독자들을 작품 속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범인이 누구이며 검은 모자의 실체는 무엇인지 모든 것이 주인공 민의 착각인 망상인지를 가리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책을 읽으면서 혼란이 오기는 했지만 나름 심리 환상극으로 최고이다.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 왼쪽과 오른쪽이, 위와 아래가,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고 동그라미 안에 뒤섞여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실과 정의, 시대와 역사, 슬픔과 기쁨, 잠깐 스치는 인연들, 나아가 우리 삶이 이럴 것이다. <저자의 말 중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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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로버트 판타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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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책은 몇 권 읽어봤지만 이 책을 받아보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나도 죽음을 생각할 때가 있다. 수술실에서 마취를 할 때인데 이렇게 죽는 것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을 감기 때문이다. 가까운 친구가 뇌종양을 앓고 있고 요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지 얼마 안되었을 때 책을 접하니 더 마음이 무거웠다.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의 저자는 삼십대 중반에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단편적인 사색을 일기 형식의 에세이를 기록하였다. 그의 노트북에서 발견되었고 데스크톱에 유일하게 저장되어 있던 문서다. 제목은 모든 것들의 끝에서 남긴 메모였다고 하였다.

 

저자는 두개골 통증을 느낄 때 불쑥 죽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것은 성상세포종이라고 불리며 뇌 자체에서 생긴 신경교종의 일종인 뇌종양이다. 그는 스물두 살, 매사추세츠 보스턴 대학교 학부 시절에 제출한 논문을 바탕으로 첫 책을 썼다. 스물여섯 살에는 [행운이라는 비극] 책을 발간했고 이듬해 이 책은 유명해졌다. 그 이후부터 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이해가 불가능한 두뇌 안에서 나온 생각을 이해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에서 진실 한 조각을 붙잡기 위해서, 나에게 아직 남아 있는 삶과 생명을 쥐어짜내어 가치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보기 위해서 나는 덧없는 시도를 또 해보려 한다. 나는 글을 쓰기로 한다.p27

 

서른다섯 살의 저자는 동원할 수 있는 솔직함을 모두 가져오고 싶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했다. 소설가라는 특성상 새벽에 잠이 들어 오후 1시에 일어난다. 자신의 인생을 규격화된 표준에 맞춰야 한다는 지속적인 압박이 과연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종양이 재발하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변이를 일으킨 건지 진화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현재 그가 받은 진단명은 교모세포종 사기다. 다수의 치료법에 반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년 이상 생존할 확률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모든 사람에게는 조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세상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감추고 있는 조언 즉, 어떻게 살고 죽어야 하는가. 생각을 많이 해 볼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다른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그사이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만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그는 자녀가 있었다면, 아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지 않길 바란다. 이런 바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수히 많은 행동, 생각, 신념 안에 좋지 하는 인지 부조화다. 아프면서 글을 쓰는 그의 심정은 글보다 더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산다면, 오늘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까지 빨리 죽게 될 줄 미리 알았다면 다르게 살았을까? 어쩌면 아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니면 그렇게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번 주말, 호스피스 병동에 가기로 했다. 나머지 나날은 그곳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중략) 앞으로도 이런 글을 더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노트북을 가져가서 할 수만 있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짧은 글들을 남겨보려고 할 것이다.”(p259) 책을 덮었지만 감정이 울컥해진다. 이렇게 끝까지 글쓰기를 놓지 않은 저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부디 그곳에서 고통 없이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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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개정판 잭 매커보이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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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임 스릴러의 대가 마이클 코넬리 최고의 역작 [시인] 개정판이다. 작가의 책은 배심원단이 처음이었고, [시인]은 두 번째로 읽은 작품이다. 추리소설을 오랜만에 읽기도 하였고 병원 신세를 지다 보니 일주일 동안 읽은 것 같다. 책을 덮고 난 후 충격에 헤어나지 못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고 할까. 스티븐 킹은 소설을 보고 좀처럼 놀라는 일이 없는데 [시인]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충격이었다고 한다.

 

나는 죽음 담당이다. 죽음이 내 생업의 기반이다. 내 직업적인 명성의 기반도 죽음이다. 나는 장의사처럼 정확하고 열정적으로 죽음을 다룬다.p12

 

살인사건 전문기자 34살 잭 매커보이는 쌍둥이 형 션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형사였던 션은 테레사 로프턴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괴로워하다. 자신의 자동차에서 자살을 선택했다. ‘공간을 넘고, 시간을 넘어라는 유서 한 줄을 남겼다. 유서는 에드거 앨런 포의 시구였다. 잭은 다른 경찰관 자살사건에서도 포의 시가 발견됐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것은 자살을 가장한 연쇄살인범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형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내기로 마음먹는다. 션은 악몽을 꾸었고 심리치료도 받게 되었고, 션이 죽은 장소가 20년 전 새라 누나가 죽은 곳이기도 하였다. 3년 전부터 살인 전담 형사를 일곱 명이나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FBI가 추적하고 나섰다.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현장에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서 따온 시 구절을 남긴다는 이유로 시인이라고 명명된 범인은 피해자들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하려고 시도했다. 잭은 당분간 기사를 쓰지 않는 조건으로 사건에 합류시켜 주었고 첫눈에 반한 요원 레이철과 함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몰래 찍고 있는 글래든은 매표원의 신고로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글래든은 아동성애자였고 그가 나올때는 3인칭으로 쓰였다. 10살 미만의 아이들을 좋아하고, 자신도 어릴 때 성적 학대를 당했는데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죽였다고 했다. 벨트런이 최고의 친구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많은 사내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거기서부터 조사해 볼 생각이고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열쇠가 바로 아이들이다. 글래든도 벨트런의 피해자인 한 명이었다.

 

내가 선택한 사냥감이 바로 너였어.p666

 

691페이지 되는 분량인데 끝으로 갈수록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범인을 지정해났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대놓고 범인은 글래든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짜릿한 반전에 반전인 소설 오랜만이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포는 바람둥이에 술꾼 마흔 살에 죽었고 볼티모어에서 한참 동안 술을 마신 뒤에..글에 에드거 앨런 포의 책도 궁금해진다. [시인]을 읽고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죽어 마땅하지만 그 뒤에는 나쁜 어른이 있다는 것이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시월이지만 여름처럼 더운 날씨가 계속 되는 요즘 짜임새 있고 줄거리도 흥미진진한 [시인]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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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나, 예리! 특서 청소년문학 22
탁경은 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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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서재에서 다섯 명의 작가들이 스포츠를 주제로 청소년 문학 단편집 [달고나, 예리!]를 출간했다. 스키, 야구, 축구, 달리기, 수영 총 다섯가지의 스포츠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섯 작품 중 표제작인 <달고나, 예리> 달리는 고등학생 나예리를 줄인 말이다. 작품 한편이 끝날때마다 작가의 말이 실려 있어서 작품의 배경도 알 수 있다.

 

[스키를 타고 싶어 탁경은]

민아는 스키를 그만두었다. 제대로 실력을 갖추기전에 재능이 없는지 있는지부터 따지니 국가대표 후보군이 될 수 없다면 아무리 스키를 좋아하고 잘 타도 소용도 없는 거라고 확신했다. 세상이 온통 하얬다. 눈이 얼마나 많이 온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엄마는 할머니가 전화를 안 받으신다고 발을 동동 구르셨다. 주택에 사시는 할머니가 고립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민아는 이때다 싶어 스키 플레이트, , 헬멧을 꺼내고 고글, 미니 눈삽을 찾았다. 할머니 한테 가기로 했다. 그때 눈의 신이 속삭였다. 웰컴, 민아. 너를 기다렸어.

 

[마구 주원규]

김민호는 투수외에 다른 포지션을 생각해본 적이 없을만큼 재능이 있다. 유명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아버지가 야구부 감독이어서 뒷말이 나왔다. 민호의 공이 어디로 움직일지 몰라 포수가 제대로 공을 받아낼 수 없는 게 문제였고 마구가 되어버렸다. 악마의 재능을 가진 준빈에게 밀리지만 민호는 경기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아버지 김감독은 너처럼 던지라고. 마구처럼.

 

[나는 스트라이커! -정명섭]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된 혜지는 둥치가 크고 힘이 세다고 시골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놀림을 받는다. 감독의 권유로 축구부에 들어가 스포츠만큼은 순수하게 경쟁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이 힘들어질수록 스포츠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달고나, 예리 임지형]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예리는 이유 없는 자퇴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중학교 동창이던 환희는 은따였지만 달리기로 극복하였고 마라톤을 권유 받는다. 생전 집 앞에서도 뛰어본 적이 없던 내가 마라톤 대회 10킬로미터를 준비한다고? 엄마는 달리다 그만둘 생각이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예리는 무사히 통과했다. 자퇴를 안 하겠다는 결심은 장담 못하겠지만 다음번에 하프코스를 뛰어보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지금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LIFEGUARD 마윤제]

유지는 엄마를 따라 낯선 도시로 자주 이사를 한다. 어느 해변 마을에서 중년 남자와 여자아이와 함께 살게 된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운 유지는 진희에게 수영을 가르쳐준다. 여름이 끝나 갈 무렵 진희의 죽음을 맞이한다. 읽으면서 마음이 아픈 장면이었다.

 

[달고나, 예리!] 스포츠라는 주제로 모인 다섯 작가들은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한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잠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면 된다고. 다양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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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사람 - 개정보급판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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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여덟 살 네레오 코르소가 퓨마를 잡기 위해 길을 떠난다. 푸엘체가 불어오기 직전은 퓨마들의 먹이사냥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질 무렵 퓨마에게 공격을 당해 정신을 잃고 만다. 무서운 바람 푸엘체의 전조가 울려 펴지는 지평선을 바라보던 노인 네레오는 아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에 의해 가우초에 팔려간 여덟 살 소년, 네레오는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휘몰아쳐오자 몇날 며칠을 울었다. 그런 소년을 달래기 위해 늙은 가우초는 소년에게 전설로 전해지는 바람을 만드는 남자 웨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날 이후 웨나는 매일 밤 소년의 꿈속에 나타났다. 웨나의 흔적을 찾아 길을 떠나면서 늘 책을 읽고 있는 후안을 웨나라고 믿기도 하였다. 여덟 살에 낯선 사내의 손에 이끌려 고원의 목동이 된 네레오 코르소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되어 노새를 타고 올라왔던 길을 돌아내려갔다.

 

칠로에 섬 출신인 아버지의 조상들은 매년 봄이면 국경을 넘어 파타고니아로 들어와서 양과 소를 키우다 날이 추워지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계절성 가우초들이었다. 아버지가 말에서 떨어지자 네레오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절대 가우초가 되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지만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네레오는 여정에서 웨나의 초상에 부합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아나라는 여자에게 가진 돈 절반을 주었지만 웨나를 찾지 못했다. 어느날은 구두를 수선하는 노인을 만났다. 네레오는 지금까지 좇아온 것은 허위였고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길 위의 고단했던 여정은 그 실체 없는 환상을 좇아간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믿었다.

 

네레오는 여인 루이사를 만나서 건강도 되찾고 아들도 낳았다. 그녀에게 웨나를 찾아 세상을 떠돌아다녔다는 사실은 비밀이었다. 그때부터 네레오가 하는 이야기는 긴장과 감동을 주지 못했고 루이사는 흥미를 잃어갔다. 세상 모든 길이 시작되는 출발점에 선 네레오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초상은 웨나였다. 소설은 예순여덟 살이 된 네레오 자신이 지난 1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고 형장으로 이송되어 가던 중 산사태로 전복한 호송차에서 탈출했다는 사실도 잊어갔다.

 

[바람을 만드는 사람]의 저자는 <슈피겔>지의 기자가 아르헨티나 남부의 파타고니아 고원에 서 양을 키우며 살아가는 목동들의 일상을 취재한 르포를 본 10년 뒤 장편소설 한 권을 발표하였고, 종교행사에 동행한 곳에서 한 노인의 온화한 얼굴이 떠올라 파타고니아 평원으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을 상상하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니 작가님의 상상력이 대단하고 감동적이다. 이 소설을 나는 오랫동안 읽었다. 몸이 좋지 않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해야 하나. 책을 들어도 도저히 읽혀지지 않은 때가 더 많았다.

 

이 책은 바람을 만드는 남자 웨나의 전설을 들은 한 소년이 평생을 떠돌며 웨나를 찾아 떠돌며 사람들을 만나고 인간의 삶을 돌아본다. 네레오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으며 네레오의 여정을 좇아가다 보니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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