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린 헌트 지음, 조한욱 옮김 / 새물결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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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하기 전, 조한욱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책은 다 읽던 시절에 읽었던 책이다. 한 십년 만에 다시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와 너무도 달라 나 자신이 어리둥절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약간 거부감을 가졌던 것 같다. )

 

이 책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토대로 프랑스 혁명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제 시간이 꽤 흘렀으니 새롭지 않게 되었지만)을 보여준다. 저자는 <토템과 터부>를 토대로 혁명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가부장적 존재로 여기던 국왕을 처형함으로써 어떻게 아버지 살해를 통해 형제애(박애, 라고 주로 번역되는)를 추구하고 왕비를 새로운 희생양으로 삼아 가족 구조를 복원하는가에 대해 고찰한다. 당시 프랑스 민중의 집단 무의식을 소설이나 포르노그라피 등의 인쇄물을 통해 분석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4장 나쁜 어머니'편에서 가족 로망스 차원에서 마리 앙트와네트에 대한 공격을 분석한 부분은 프랑스 혁명사나 여성사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절판인데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

 

공화파의 남성들이 마리 앙투와네트를 처형했을 때, 그들은 단순하게 반혁명의 지도자를 벌하는 데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캐롤 페이트먼이 논하듯 어머니들을 공적 행위로부터 분리시키면서 스스로가 새로운 정치적 조직을 탄생시키기를 원했던 것이다.  (중략) 요컨데 그들은 가부장적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버지의 살해에는 인격적인 중상비방이 거의 뒤따르지 않았다. (중략) 공화주의적 덕성이라는 이상은 남자들간의 형제애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여기서 여성은 가정의 영역으로 추방되었다. (중략) 마리 앙트와네트 및 공적으로 활발한 다른 여성들을 공격함으로써 공화파의 남성들은 서로간의 유대감을 강화시켰다.

- 본문 171 ~172쪽에서 인용

 

하지만 열 살 더 먹은 지금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사드의 텍스트는 포르노그라피와 정치 간의 나약한 연결고리를 파괴시키려고 위협하며, 이 과정에서 공화주의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위협한다(본문 190쪽에서 인용)"라는 사드 부분 분석은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가족 로망스'라는 개념이 새로운, 가부장적 권위에서 벗어난 정치 체제를 상상해보기 위한 창조적 노력이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아버지의 권위, 아버지의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에서 늘, 역사와 문학은 출발하는 법. 한 인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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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역사와 이야기는 같은 말이다
후지사와 마치오 지음, 임희선 옮김 / 일빛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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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독특한 역사 에세이책이다. 열 명의 인물을 뽑아서 각 시대의 모습을 횡으로 늘어 놓는다. 그런데 읽다보면 종으로 역사의 맥이 읽혀진다. 각 챕터에 이름이 등장한 그 인물의 삶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이 활약한 시대의 모습, 그 인물과 관계있는 사람들, 시대의 풍조, 대외 관계 등등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좀 주제의식이 없어보이고 맥락 없어보이는 면도  있기는 한데 읽다보면 독자의 머리 속에서 이탈리아의  한 시대, 나아가 전 시대 역사가 재구성되게 만든다. 허술한 책인데 이상한 매력이 있다. "그로부터 다시 100년이 세월이 흘렀다"는 식으로 시작되는 각 챕터의 담담한 서두문장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가을이라서 그런가?

 

작가는, 게르만족과의 갈등으로 고대 로마제국이 붕괴되던 4,5세기의 이탈리아는 로마황녀 갈라 플라키디아의 삶으로 그린다. 600년 후, 황제와 교황의 권력다툼이 절정에 이르는 11세기 이탈리아는 토스카나 백작 마틸다가 중심이다. 이 주제는12세기의 성자 프란키스쿠스와 13세기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데리코 2세를 중심으로 계속 이어진다. 세 챕터를 연달아 읽다보니 이탈리아의 황제와 교황 갈등과 전쟁이 자연스레 정리된다. 작가는 이어서 이탈리아 도시국가와 르네상스 쪽 역사를 14세기의 보카치오와 15세기의 코시모 데 메디치, 15 ~16세기에 활약한 미켈란젤로를 통해 보여준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멸망은 카사노바 편을 통해, 그리고 통일 이탈리아 왕국 형성 과정은 18세기 피에몬테의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와 19세기 작곡가 베르디와 그 주변 상황으로 묘사한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리소르지멘토의 뜨거운 기분을 표현하고 대표했던 베르디의 죽음은 하나의 시대가 완전하게 막을 내렸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이다. 이야기가 역사가 되는, 흥미로운 서술이다.

 

기본적 통사에서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부분의 서술이 그 시대 연대기 등을 바탕으로 상세히 나와 있다. 그래서 좀 독서량이 있는 독자에게 적합한 책이다. 단점은 번역. 일본식 외래어 표기를 무성의하게 옮긴 부분이 많다.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한번 읽을 만한 책이다. 절판되어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지금 갖고 싶어서 미치겠다. 나처럼 대중 역사서 쓰기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구석구석 배울 점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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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 카이에 소바주 1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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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발행 중인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야생적 사고의 산책)' 시리즈 중 첫 번째 권이다.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종교학, 인류학, 양자물리학을 넘나드는 인문학자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대학 비교 종교학과 강의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기에 깊이 있는 내용이 어렵지 않게 담겨 있다.

 

저자는 새집 뒤지기, 연석, 가구야 아가씨, 콩의 의미,,,, 등등 익숙하지만 지나쳤던 이야기나 풍습을 통해 신화적 사고로 우리를 이끈다. 곧이어 전 세계의 신데렐라 형 이야기를 분석해 들려준다. 저자는 페로의 신데렐라 말고 그야말로 전세계의 신데렐라들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횡무진 다루는데, 설렁설렁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때그때 읽는 내 입을 딱딱 벌어지게 만드는 예를 들고 분석해 준다. 읽는 동안 턱을 붙잡고 읽어야 할 정도였다. 3년 전에 주경철 선생님의 <신데렐라 천 년의 여행>에 이 책이 언급된 것을 보고 한번 대강 읽었는데 그 때는 이 책이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다. 신데렐라 등 외짝신을 신고 절룩이며 걷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신이치 교수가 소개하는 레비 스트로스의 추론과 진즈부르그의 연구까지 접하고 나니 놀라워서 잠이 안 올 지경이다. (여기에다 우리 민담 <반쪽이>를 결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책의 제목에서 신화를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이라 강조한 이유는 서문에, 그리고 여러 이야기의 예를 들면서 본문 곳곳에 나와 있다. 저자는 대략 3만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에 신화적 사고방식이 인류 최초의 철학으로 자리잡았기에 고대 그리스 이후 겨우 2500년의 역사를 가진 철학에 비해 신화의 역사가 더 오래된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후 일신교 성립에 의해 그 이전의 철학인 신화는 대규모로 부정당하고 억압당한다. 그러기에 저자는 일신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후기 구석기 시절의 사고 방식대로 최근까지 살았던 수렵민들의 신화에 주목한다. 신화가 종교에 흡수되면 신화 자체의 성격을 읽고 변화를 일으켜 본래의 야생적 사고 방식을 잃고 현실과의 관계를 상실하게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독자들이 신화는 비현실적이고 황당하고 미신적이고 아이들 동화의 한 종류라고 보는 것은 편견이다. 본래의 신화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둘을 중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이다. 마지막 소마 버섯 부분에서 저자는 이런 본래 신화의 역할을 강조하며 책을 마친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 하나하나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잃어버린 고리'가 저절로 날아와 딱딱 맞물리는 이런 느낌, 독서하면서 자주 드는 경험이 아니다. 아아, 이런 분은 평생 스토킹해야 한다. 저자의 말대로 '신화를 배우지 않는 것은 인간을 배우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인간과 이야기와 역사에 관심있는 내게, 이런 입문서는 아주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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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을 꿈꾸며 - 19세기 서구 여인들이 찾아 떠난 동방의 매력
바바라 호지슨 지음, 조혜진 옮김 / 말글빛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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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동방에 대한 환상을 품고 동방을 여행했던 여성들에 대한 책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동방에 대해 환상과 낭만을 품고, 혹은 직업적이나 학구적 이유로, 혹은 남성 동반자를 따라 동방을 여행했던 서구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시각 자료와 함께 담겨있다. 읽다보면 그녀들의 진취성도 놀랍지만, 서구 여성들의 오리엔탈리즘이 당시 이런 형태였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비슷한 다른 종류의 책과 비교해 보았을 때, 여성들이 여행했던 이유를 깊이 파고든 점이 맘에 든다.

 

여성의 폐경은 여성에게 있어 중요한 자극제가 되면서도 여성의 약점을 없애주었을지도 모른다. 노후에 여행한 많은 여성들이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여행을 했는지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폐경에 관한 이야기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버드가 페르시아를 여행했을 때의 나이는 거의 60이었다.

- 87쪽에서 인용

 

프레야 스타크는 30대 후반에 이라크를 여행했는데, 왜 여성들이 정조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중년이었을 때 정조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매우 철없는 생각이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혹은 그 이상 되는 영국 여성들은 저녁 때 혼자 10m 밖으로 걸어가면 성폭행이라도 당하는 줄 안다!”

- 88 ~ 89쪽에서 인용

 

이사벨라 버드에 대한 부분이 궁금해서 읽은 책인데 역시 그녀에 대한 부분은 거의 새롭게 얻은 지식이 없다.  하지만 의외로 더 큰 소득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제국주의 묘사한 그림 등을 보고 (예를 들자면 영-일 동맹을 보도한 영국 신문의 삽화는 영국군인 제복을 입은 서양 남자가 게이샤로 보이는 동양 여성을 껴안고 키스하는 장면)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남성들만의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은 내 편견이었다. 서구 여성에게도 왜곡된 동양관은 있었다. 이 점이 이 책을 읽은 후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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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못 갈 곳은 없다 - 시대에 맞선 여성들의 위대한 도전사
바바라 호지슨 지음, 곽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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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에서 19세기까지의 여성 여행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유럽, 러시아, 중동, 이집트, 아프리카, 인도, 오세아니아, 중국, 일본, 티베트,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등등 각 여행지별로 꼭지를 구성했다. 각 인물 별로 온전히 한 꼭지를 할애해 쓴 것이 아니다. 한 여행가에 대해 깊이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좀 산만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내 경우에는 도대체 주제가 뭔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여성의 여행이나 한 인물을 평가하는 독특한 시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럭 저럭 읽어가다보니 내겐 이런 문제의식이 생긴다. 보통 이 여성 여행가들은 어떤 방향으로든 자신이 살던 환경과 현실에 부조리함이나 억압을 느끼고  (말하자면 을의 위치에서 갑의 세상에 항거하여) 다른 세상을 여행하게 된다.그런데 그녀 자신이 간 여행지(대개 모국어를 쓸 수 있는 식민지)에서는 그녀가 살던 곳의 남성들이 갖는 시각을 갖고 (말하자면 갑의 입장에서) 그곳을 평가하는 경우가 보인다. 이런 경우는 도대체 뭘까? 자신의 현실적 이익과 상관없는,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각성하는 것은 힘든 것일까? 또 어찌되든 이 당시 활약한 여성 여행가들은 영국이나 프랑스 국적을 가진 여성들이 많다. 그녀들의 활동 범위가 이렇게 다른 나라 여성들의 활동범위보다 넓은 것은, 아무래도 그녀들의 모국이 식민지 종주국이었기때문이다. 이 사실을 제외하고, 이들 여성들의 개인적인 위대성만 평가한다는 것이 나는 꺼림칙하다.

 

이사벨라 버드에 대한 평가가 궁금해 사 본 책인데 여러 곳에 조금씩 서술되어 있어서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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