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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평점 :
흔히 미학적 재능이라고 부르는 이 능력은 둔중한 것에서 날카로운 것을 발견하고 단단한 것에서 무른것을 발견하며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의 질서를 바꾸는 힘이다p38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시가 참 어렵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장르의 문학이 있어 고르는 즐거움과 읽는 즐거움이 있지만 그중에서 시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기도 하다. 시인 랭보의 말을 빌어 시인들이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투사시켜 내놓은 언어들인지라 그 견고한 함축성 또 그 기호학적인 난해한 언어들을 풀어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갖곤 했다. 간혹 읽게되는 현대의 시들은 도통 어떤 의미로써 이야기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때가 많았다. 그렇기에 내게 시는 탐스럽지만 먹을 수 없는 황금의 열매와도 같았다.
처음 황현산 저자의 <우물에서 하늘 보기>라는 제목을 들었을때 그 적절한 표현력에 절로 무릎을치게 되었다. 물론 모든 읽는 행위가 개인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일일테지만, 시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과 감성이 만나야만이, 다시말해 독자와 시인의 감성이 교차되는 그 지점에서만이 열리는 문이기 때문에 우물이라는 개인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게 시의 영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역시 내 자의적인 해석일뿐이지만.
문학평론가이자 '낭만가객'이라 불리우는 황현산 저자를 처음 접하며 이육사의<광야>부터 익숙한 백석, 만해, 황진희의 이야기속에는 영화와 문학 그리고 철학적인 장르를 아우르는 저자의 깊은 내공을 즐겁게 읽어내릴 수 있었지만, 유독 내 마음을 톡톡 건드렸던건 이 부분에서 한참을 멈춰 읽고 또 읽었다.
시인들은 속절없이 시를 썼다. 아들딸을 잃고 시를 썼고, 때로는 불행한 부모들을 대신해서도 시를 썼다.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애의 극한이 잊힐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유리창」을 썼고, 김현승은 「눈물」을 썼다. 김종삼은 더 많은 시를 썼다. 「음악」과 「배음」이, 「무슨 요일일까」가 모두 죽은 아이를 위한 시이며, 두 편의「아우스뷔츠」에도 그 중심에는 어린 생명의 죽음이 있다. 가장 처절한 시 「민간인」은 그의 사후 광릉 근처에 세운 그의 시비에 새겨졌다.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p93
노래 가삿말 같은 시구들을 읽을 때면 때론 애통하고 절망적이며 때론 분노의 고함소리 같아 한 편의 고해성사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마음 속 오물같은 고통들을 쏟아내면 이해받고 위로받으며 삭막한 타인의 마음을 두드리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아픔들이, 그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차마 잊혀질까 두려워 시를 쓴다던 글귀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그렇기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던 저 깊고 깊은 바다를 향한 저자의 애통함을 필사하고 또 필사해보기도 했다.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으면서 어린 학생을 비롯한 300여명의 생명이 다른 세상으로 떠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들은 어떻게 보낼 것이며, 그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떤 말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인가. 이 처참한 죽음을 어떻게 다른 죽음과 구분할 것인가. 질문에는 답이 없다. 함께 울자고 말할 수도 없고 편히 가라고 말할 수도 없다. 가슴에 묻자니 가슴이 좁고 하늘에 묻자니 하늘이 공허하다. 이 언어의 무능함과 마음의 무능함이 대 낮에 두 눈을뜨고 그 수 많은 생명을 잃어버린 한 나라의 무능함과 같다. 잘가라. 아니. 잘가지 말라. 이렇게 쓰는 만사(輓詞)가 참으로 무능하다. p112
아픈 마음이 아프게 다가오고 절망적인 마음이 절망적인 마음으로 다가오는게 시구일테지만, 저자의 길을 따라 차분하게 걸어간 길 끝머리에서도 나는 아직 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날들의 기록이자, 아픔이자 절망이자 슬픔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이 길위의 학교라면 시는 인생을 배우는 학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국일보에 실었던 칼럼 27편을 엮어놓은 책인지라 2014년 시기의 일들이 예고없이 드러나 마음을 참 아프게도 하지만, 점점 희미해져가는 마음에 두는 단단한 버팀목이 아닐런지 하는 생각이 들게하는 한 권의 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