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
테스 샤프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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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모금한 돈을 입금하려고 은행에 갔다 생각지도 못하게 은행강도를 만났다.

그런데 이 은행강도들이 하는 행동이 범상치 않다.

그들은 왜 여느 은행강도들처럼 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해서 예금된 돈을 뺏지 않고 은행장을 찾는 걸까?

게다가 더 무서운 건...

그들이 복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앞에서 느닷없이 은행강도로 돌변한 남자들을 보고 단숨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소녀는 이놈들이 여느 은행강도와 다를 뿐 아니라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단박에 파악한다.

게다가 이 소녀 역시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

소녀는 그들의 행동과 말을 눈여겨보면서 두 사람의 상하관계나 누가 위험한 인물인지를 재빠르게 간파하고 자신만의 작전을 개시한다.

우선 자신과 친구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소지품 중 무기가 될 수 있는 걸 파악한다.

다음은 보기에도 헐렁해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를 흔들어 놓는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침착하면서도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그다음 플랜을 계획해서 착착 진행시키는 사람은 놀랍게도 아직 미성년자인 소녀 노라 오말리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노라와 잔인하기 그지없는 은행강도와의 치열한 두뇌싸움과 심리전을 긴박하게 그리고 있다.

불과 하루의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책 한 권에 그린만큼 자칫하면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초반의 긴박했던 순간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 늘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주인공 노라라는 놀라운 소녀가 가진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노라에게는 어릴 적부터 범죄에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범죄에 가담한 이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 과거로 인해 언제나 뒤를 돌아보고 조심하며 살아야 했던 만큼 은행강도에 인질로 잡히는 건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냉정을 잃지 않고 오랫동안 잠재워두려고 노력했던 과거의 자신들을 불러 모아 범인들과 대치하는 위험을 감수한 건 자신의 곁에서 함께 인질로 잡힌 가족 같은 친구와 사랑하는 연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노라 역시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했을 때 늘 모든 걸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남으로써 위험을 회피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정면으로 마주한다.

늘 자신의 과거로 인해 죄책감을 안고 있던 노라가 더 이상 회피하거나 숨지 않고 맞서기로 결심하면서 진정한 자신을 찾는 모습 또한 멋지다.

마치 오래전 우리를 열광시켰던 외화 속 주인공인 맥가이버같이 주어진 상황에 맞춰 전략을 짜고 마침내 원하는 걸 성취해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던 완벽한 딸들의 완벽한 범죄

스토리도 흥미로웠고 전개 방식 또한 지루할 틈이 없었으며 적절한 긴장감과 액션까지... 모든 게 잘 갖춰진 작품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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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은 노래한다
엘리 라킨 지음, 김현수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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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을 학대하고 방임하는 무책임한 부모가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책임질 수 없으면서 왜 아이를 낳았나 하는 마음에 분노를 느낀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성장한 아이들은 쉽게 범죄의 길로 빠지거나 자신 역시 부모가 되어서도 제대로 부모의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이 책 에이프릴은 노래한다에서도 그런 무책임한 부모가 등장한다.

아직 열여섯에 불과한 에이프릴은 버려진 것 같은 낡은 캠핑카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닌 에이프릴이 왜 이런 처지가 되었나 하면 엄마는 기억도 안날 오래전에 가족의 곁을 홀연히 떠나버렸고 아빠 역시 새로운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딸아이를 혼자서 생활하도록 모른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에이프릴은 어릴 적부터 자신의 몫을 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에이프릴의 곁에는 영혼의 동반자와 같은 음악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에이프릴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기타를 아빠가 부숴버린 날... 더 이상은 그런 아빠와 함께 할 수 없어 집을 나와버린다.

그리고 길 위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에이프릴의 재능을 알아봐 노래로 성공하거나 아니면 그토록 원하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동화 같은 결말을 원했지만 이 책에선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사실 제대로 된 학벌도 없고 보호해 줄 어른도 없는 어린 소녀에게 삶이 쉽게 흘러가길 바라는 건 그야말로 동화 속에서 나 가능한 일인 것도 사실이다.

에이프릴 역시 엄청난 성공을 바라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음악을 사랑하고 온전히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평범한 삶을 원했던 소녀의 꿈은 이뤄질듯 하면서도 쉽사리 이뤄지지 않아 읽는 사람을 애타게 한다.

보호자가 없는 그녀를 보고 누군가는 그녀에게 성적인 목적을 가지고 접근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대견하게도 에이프릴은 쉽게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길을 떠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나는 과정을 통해 마침내 그토록 원했던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기까지의 긴 여정을 그리고 있는 에이프릴은 노래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랑조차 받지 못해 늘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던 소녀가 마음을 열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기쁨을 알게 되기까지의 모습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놓았다.

늘 곁에 있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던 에이프릴이 마침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린 에이프릴은 노래한다는 한편의 성장 드라마이자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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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의 저주받은 둘째 딸들
로리 넬슨 스필먼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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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선인들은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고들 했다.

그래서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면 소리 내어 빌고 또 빌면 그 소원이 하늘에 닿아 반드시 이뤄진다고...

그렇다면 저주의 말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될까?

저주를 믿는 사람이거나 안 믿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그걸 말로 자꾸 되뇌거나 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 언어의 힘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자기개발 책에서 간절히 원하는 걸 노트나 수첩에 적고 그걸 말로 자꾸 되뇌고 마음속에 염두에 두라고들 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사실 제목을 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이거나 블랙 유머가 가득한 그런 유의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든 순간부터 단숨에 몰입해서 읽을 만큼 매력적이고 책 속 주인공들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살아있었을 뿐 아니라 어느샌가 내 눈에 눈물이 흐를 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가족이 운영하는 베이커리에서 일하고 있는 에밀리아는 스물아홉 살이나 되었음에도 독립할 생각도 결혼할 생각도 없을 뿐 아니라 연애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그야말로 세상 다 산듯한 지루한 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사정이란 게 있다.

에밀리아의 집안에서는 대대로 둘째 딸은 사랑을 할 수도 결혼을 할 수도 없다는 저주에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세상에 저주라니...

누가 그런 걸 믿을까 하지만 에밀리아의 집안에서는 모두가 이 저주를 믿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대가 흐르는 동안 둘째 딸 중 그 누구도 사랑에 빠져 결혼에 성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안의 아웃사이더이자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 이모할머니 포피가 자신의 여든 번째 생일을 위한 여행에 에밀리아를 초대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할머니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었던 그녀가 반대를 무릅쓰고 포피와의 이탈리아 여행을 택했고 그 여행에서 이제까지 자신을 속박하고 있었던 것들에서 하나하나 벗어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새 저주의 덫에 걸려 연애도 포기하고 모든 걸 포기한 채 숨죽이며 살았던 에밀리아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싸움도 불사하는 전사로 변해간다.

책에는 조금씩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 에밀리아의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포피가 그토록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탈리아 여행의 동반자로 에밀리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도 포피의 사연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냉전시대 서로 사랑하면서도 함께 할 수 없었던 어린 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고... 그토록 오랜 세월 떨어져 있었음에도 서로를 향한 강력한 믿음은 사랑의 본질과 그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집안 전체를 휘감았던 집안의 저주를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마침내 스스로 운명에 맞서게 되는 에밀리아의 이야기도 매력적이었지만 누구보다 강렬한 사랑을 했던 포피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잡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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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귀 살인사건
안티 투오마이넨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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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게 꼬아놓은 문제라도 반드시 정해진 정답이 있다는 점... 그 명확성을 이유로 드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불안한 건 어쩌면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아 이런저런 요소에 따라 변하는 불안정한 상태가 아닐까 싶다.

여기 늘 수학을 생각하고 심지어 일상생활조차 수학적으로 풀어가는 남자가 있다.

만약 모든 걸 염두에 두고 심지어는 일어날 수 있는 변수까지 함께 묶어 플랜을 짰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해 이제까지 계산해 둔 게 전부 쓸모가 없어졌다면... 그런 상황을 이 남자는 견딜 수 있을까?

이 책 토끼 귀 살인사건 속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그렇다.

보험 계리사 핸리는 생각지도 못하게 회사에서 잘린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형의 부고장을 받고 심지어 그 형이 자신에게 놀이공원을 유산으로 남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운영상태가 엉망이었을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빚마저 떠안게 되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인데 직원들은 형이 책임지지도 못할 정도로 남발한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핸리가 들어주길 바라고 있다.

문제는 한 푼의 돈도 없고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것

이럴 때 사람을 예사로 죽이는 사채업자까지 나타나 그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불 꺼진 놀이공원에 혼자 남아 있는 그를 찾아온 사람을 사고로 죽여버리면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된 핸리는 일단 사체를 처리하고 그들에게 혹 할 만한 제안을 함으로써 위기를 잠시 벗어나지만 모든 일이 그가 계산한 대로 되지는 않는 법

누군가가 놀이공원의 돈을 횡령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목숨마저 위험한 그는 과연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과의 소통은 물론이고 일상생활까지 감정을 배제한 채 모든 걸 수학적으로 계산하던 핸리는 자신이 왜 보험회사에서 잘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이 없는지를 궁금해한 적도 없던 그는 누가 뭐래도 혼자서 조용하고 고독하게 생활하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놀이공원을 책임지면서 직원들과 상담을 하고 그들의 사정을 들으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특히 그의 모든 걸 뒤흔드는 존재인 라우라와 만나면서 이제까지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해간다.

물론 그로 인해 자신의 요구사항만 주장할 줄 알던 직원들도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져간다.

작가의 전작도 그렇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서울 내용을 특유의 위트와 살짝 비튼 블랙 유머로 무겁지 않게 가벼운 듯 경쾌하게 풀어가고 있는 토끼 귀 살인사건

혼돈이 가득한 아이들의 놀이공원에 떨어진 게 하필이면 모든 걸 명확하게 계산해야 되는 수학자라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그가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세운 계획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가는지를 보는 것도 재밌었다.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독특하고 흥미로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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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타 이슬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남진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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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유명한 스파이 영화가 있고 그 영화 속 캐릭터의 활약이 눈부시게 멋져 많은 사람들에게 스파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세련됨과 쿨함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받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간첩은 비슷한 일을 하지만 어딘지 불온한 냄새와 함께 부정적인 인식이 대부분인 것에 비하면 스파이는 어쩌면 언어유희나 마케팅의 덕분에 부정적인 인식보다 상당히 긍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려지는 스파이의 면면은 우리가 막연히 영화나 드라마 혹은 기존의 스파이 소설에서의 역할보다 상당히 부정적에 가깝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그게 더 사실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국과 스페인 반반의 피가 섞인 자유로운 영혼 토마스는 어린 나이에 베르타와 한눈에 운명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서로 함께 하게 될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으며 성장했던 둘은 학업 때문에 토마스가 옥스퍼드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의 모든 인생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사건을 겪는다.

원치 않았지만 언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토마스는 비밀 정보부의 일을 하게 되면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하게 되고 그런 토마스를 곁에서 지켜본 베르타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다.

가슴에 커다란 비밀을 품은 사람은 얼마나 고독해지고 황폐해질 수 있는가는 토마스의 변모를 보면서 여실히 드러난다.

영혼의 짝인 토마스가 언젠가부터 비밀스럽고 은밀해졌으며 말없이 사람들 곁을 떠도는 유령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베르타에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택했던 일이 알고 보니 그를 원했던 측에서 꾸민 함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이미 수많은 세월이 흘렀을 뿐만 아니라 살기 위해 죽은 사람으로 위장한 채 가족과의 연을 끊은 뒤였다는 내용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그가 느꼈을 엄청난 배신감과 허탈함이 와닿았다.

어느 날부터 변해버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 베르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어쩌면 좀 더 차분하게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토마스가 유린되는 과정을 객관성을 유지하며 지켜보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타지에서 대의를 내세워 위험한 일에 직면해있는 동안 베르타 역시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조금씩 전통적인 아내로서의 삶이 아닌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게 된 건 삶의 아이러니한 부분이었다.

어쩌면 그런 변화가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변화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의 모든 걸을 알 수 있다 생각했던 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그러고 보면 그를 바라보면서 독백처럼 처리된 대사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가 어떤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없었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각자 만의 내밀한 슬픔을 안고 있다`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에서 국가에 의해 도구처럼 쓰이고 버려진 비운의 남자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가장 가깝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부라 할지라도 상대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 초반의 진입장벽이 존재했지만 토마스가 위기 상황에 빠지면서부터는 속도가 붙어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젊어서 찬란하게 빛났던 두 사람의 삶이 국가에 의해 비틀어지고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은 왜 그토록 많은 찬사를 받았는지를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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