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11.겨울 - 34호
청어람M&B 편집부 엮음 / 청어람M&B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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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어릴 적에는 추리 소설 뿐만 아니라 <계간 추리문학>과 <월간 미스터리 매거진>와 같은 “추리소설 잡지”들도 구입해서 읽었는데, 두 잡지 모두 추리 소설 애독자들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그런 잡지들이었지만 아쉽게도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금세 절판된 걸로 기억난다. 지금이야 추리소설 관련 정보나 서평(書評)들은 인터넷 추리소설 동호회나 추리소설 전문 블로거 글 등 온라인을 통해 접하곤 하지만 종이 잡지로는 근 20 년이 넘어서야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바로 국내 유일의 미스터리 전문잡지인 <계간 미스터리 34호 2011년 겨울호(한국추리작가협회/청어람/2012년 1월)>로 지난 2002년에 창간되어 벌써 34호에 이를 정도인데 이제야 만나게 되다니 - 솔직히 이런 잡지가 있었다는 것도 작년 가을에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 어디 가서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명함 내밀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끄러움마저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추리소설 전문 잡지, 책을 받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표지를 펼쳐 들었다.

 

 잡지에는 연시(年始)에 출간되는 “겨울호”답게 “특집1 2011년 추리소설 결산”부터 시작한다. “2011년 국내추리소설 총결산”은 몇몇 독자들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오류가 좀 많았지만 국내 추리소설의 경향을 통계자료들을 통해 알아볼 수 있어서 좋았던 기사였다 . 특집 1 기사 중 가장 흥미로웠던 기사는 '추리소설 전문 출판사 설문 조사' 부분인데 우리나라 추리소설 대표 출판사라 할 수 있는 여섯 곳의 출판사에서 '만족스러웠던 작품 / 아쉬웠던 작품 / 2012년 기대작 및 출간 예정작 / 2011년 회고와 2012년 전망'이라는 질문에 답을 해놓은 기사인데, 작년에 내가 읽은 추리소설이 권수로 “49권”이 되다 보니 읽은 작품들이 꽤 있어 반가웠고, 출판사들이 야심차게 내놓을 2012년 신작들은 올 한해 내 위시리스트를 장식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이어지는 특집기사인 “특집2 식민지 시기 아동문학가의 탐정소설” 편도 흥미로운데,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이 “북극성”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3편의 작품과 연성흠, 최병화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아동문학가이자 어린이 보호 운동의 선구자인 방정환 선생이 썼다는 추리소설 - 물론 순수 창작물보다 번안물이 대부분이지만 - 을 이 잡지를 통해서 처음 접해보는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칠칠단의 비밀> - 최근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라는 아동용 탐정소설로 만나본 기억이 났다. 책에 수록되어 있는 7편은 지금 시각으로 보면 어법도 이상하고, 구성이 허술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추리소설 초창기 원형(原型)을 만나볼 수 있었던 귀한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잡지에는 신인작가의 단편소설인 <파탄(김주동)>과 <프레첼 독사(조동신)>와 원로 추리 작가이신 “노원” 선생의 연재 장편 <시몬느와 테러리스트들(최종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앞서 두 작품들은 단편 추리소설의 압축미를 적절히 살린 재미있는 작품이었고, 노원 선생 작품은 <위험한 외출(1998)> 이후 근 10여 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 이 책은 초판이 “해냄출판사”에서 1988년에 출간되었고, 1998년에는 “고려원미디어”에서 “한국미스터리컬렉션 8”로 다시 출간되었는데, 나는 1998년판을 읽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이 작품 이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으신 데 외람되게도 단편 모음집에서 선생의 몇몇 단편들은 만나봤지만 장편은 <위험한 외출> 한 권 밖에 읽어보지 못했다 - , 그분의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던 참 반가운 작품이었다. 그런데 연재소설이기 때문에 앞의 내용을 모르고 결말만 읽어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추측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작품 시작할 때 전편들의 줄거리라도 요약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책으로 출간된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이 외에도 “2011년 해외 추리문학상 수상작”, “해외 추리문학계 소식”, “특집3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신간안내”, “권말부록 2011년 발간 추리소설 총목록” - 읽은 책 확인해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 등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기사들이 깨알같이 담겨져 있다.

 

 잡지에 대한 서평은 처음 써보는 터라 이 잡지의 매력이나 재미, 정보를 제대로 소개하고 있는지 영 의심스럽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잡지, “참 재미있다”. 기대했던 것 만큼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신 분들도 있을 테고, 여느 잡지들처럼 화보(畵報)들이 없어 아쉬운 분들도 있겠지만 이 잡지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하고 소중한 그런 잡지라 할 수 있겠다. 지난 잡지들을 읽어보고 싶어 온라인으로도 서비스를 하고 있지 않을까 검색해봤더니 찾아볼 수 가 없어 일견 아쉬움이 들다가도 이 잡지는 온라인 서비스보다 이렇게 종이 잡지로 만나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앞으로도 50호, 100호 계속 이어지기를, 그래서 재능 있는 신인작가들을 발굴하는 등용문으로, 그리고 한국 추리소설의 발전을 위한 견인차로써 그 역할을 계속 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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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 풍경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모스 오즈 지음, 최정수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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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과거 역사와 문화, 종교, 그리고 현대 정치·사회 정세에 대한 책들은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문학 작품으로는 이번에 읽은 “아모스 오즈(Amos Oz)”의 <시골생활 풍경(원제 Scenes from a village life/ 비채 / 2012년 1월)>이 첫 작품이다. 그래서 출판사 홍보글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모스 오즈”, 현대 이스라엘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최근 십여 년간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이스라엘 문학상을 비롯해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작가이며, 국내에도 <나의 미카엘>, <여자를 안다는 것> 이라는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의 최근작인 이 책의 제목인 <시골생활 풍경>만 보면 목가적(牧歌的)인 전원(田園)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짐작이 되는데, 종교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이자 세계의 화약고(火藥庫)이다 보니 전국토가 전장(戰場) 쯤으로 여겨지는 이스라엘에서 과연 한가로운 전원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제목에 왠지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책의 표지를 열어 들었다.

 

그런데 작가는 나처럼 생각하는 독자들을 예상이라도 한 듯 본문에 들어서기 전 초입부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흔히 분쟁 지역의 문학은 세계의 다른 한편에서 알레고리로 읽히곤 한다.

그렇지만 내 작품은 알레고리가 아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인간 실존을 담고 있을 뿐이다.

사랑, 상실, 외로움, 갈망, 죽음, 그리고 황량감 등..........

내 작품은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 아모스 오즈

 

즉 이 작품은 분쟁 지역 문학들이 그러하듯 “전쟁”이 주는 잔인함과 공포를 주제로 한 것이 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다양한 변주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 변주에는 사랑도 포함되어 있지만 사랑으로 인해 행복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인해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상실감을 그리고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렇다 보니 이 책에 실려 있는 8편의 단편 소설의 배경은 지금 현재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아직 건국(1948년)전인 개척자들이 세운 가공의 마을 “텔일란”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다 전 시대의 가상 공간이라면 현재에도 아직 진행 중인 아랍과의 분쟁은 저절로 배제할 수 있을 테고 그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올곳이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건국 전이라면 아직 전 세계 유태인들이 이천년 전 잃어버린 “약속”의 땅 “가나안”을 되찾겠다고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을 혹독하게 몰아내기 전인 유태인과 팔레스타인들이 어울려 살았던 시기였을 테니 유태인과 아랍인들의 민족, 종교 갈등도 굳이 담아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불안함”만큼은 그때도 여전했겠지만 말이다.

 

텔일란은 여느 중동(中東)의 시골 마을처럼 포도밭과 과수원에 둘러싸여 생활하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그곳에서 한가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사소한 듯 하면서도 일상에 작은 균열을 일으킬 만한 일들이 한가지 씩 일어난다. 먼저 아내가 삼 년 전 샌디에이고에 사는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간 뒤 돌아오지 않으면서 헤어지게 된 후 늙은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던 “아리에 젤니크”에게 법률회사에 다닌다는 낯선 남자 “울프 마프치르”가 찾아와 친척이라고 주장하면서 모친의 명의로 되어 있는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주변 농장을 개발할 테니 동의해달라고 한다. 마을 유일의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중년의 미혼여성 “길리 스타이너”는 어릴 적부터 자주 만나온 언니의 아들 “기드온”이 군대에서 얻은 신장질환을 요양하기 위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음식을 준비해놓고 기다리지만 자꾸 늦어지자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선다. 한때 국회의원이었지만 지금은 마을의 교사인 딸 “라헬”과 함께 살고 있는 “페사크 케뎀”은 밤마다 땅 속에서 들려오는 괴소리에 잠을 깨곤 한다. 딸은 잘못 들었을 거라고 타박을 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아랍인 청년 “아텔”도 그 소리를 들었다니 잘 못 들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외에도 마을의 오래된 저택을 사들여 새로 집을 지어 파는 부동산업자 “요시 새슨”, 쪽지 한 장을 다른 사람을 통해 건네주고는 가출해 버린 아내를 찾아 나선 면장 “베니 아브니”, 30세의 이혼녀를 사랑하는 17세 소년 “코비 에즈라”, 십대의 아들이 자살하자 그 죽음을 애써 잊고 싶어서인지 노래모임과 같은 가외(家外)활동을 더욱 열심히 하는, 그러면서도 그 노래모임에서 아들이 좋아했던 노래를 부르는 서글프기까지 한 “달리아”와 “아브라함 레빈 부부” 이야기가 차례대로 펼쳐지고 마지막에는 텔일란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역시 처음 짐작과 작가의 말처럼 한적하고 여유로운 전원생활과는 전혀 거리가 먼 뭔가 한가지 씩 잃어버린 사람들의 외롭고 쓸쓸한, 그리고 낯선 이야기였다. 그렇다 보니 읽는 내내 편하지 만은 않은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왜냐 하면 이 책의 이야기들이 이국(異國)의 다른 시간대에서 벌어진, 현대의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침저녁 출퇴근 길에, 그리고 길거리를 오고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평온하고 일상적인 모습 속에는 저마다의 가슴 속에 담고 있는 작은 비밀 때문에 일상에 균열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르며, 세월의 더깨가 내려앉은 노인들 얼굴의 주름에도 어쩌면 나이 들면 절로 생기는 “세월의 훈장”만이 아니라 과거에 잃어버린 돈, 명예, 사랑, 가족에 대한 상실감 때문에 개수도 더 늘고 그 깊이도 더욱 깊어졌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 숨어 있는 불안감과 상실감을 시골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려내려고 한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에서 시골이라는 이미지 특유의 짙푸름이 아니라 회색빛 쓸쓸함이 느껴진 것이.

 

이런 글들은 작가의 말대로 아직 인생의 상처와 회한을 맛보지 못한 젊은 작가들은 쓸 수 없는, 많은 작품을 써온 오랜 경력의 작가로서도 인생에 어느 정도 내공이 생겨 삶을 관조(觀照)할 수 있는 나이 -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10년이었으니 작가(1939년생)가 일흔이 넘어서 쓴 작품이다 - 가 되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삶에 대한 애정과 연민 어린 시선, 그리고 통찰력은 엿볼 수 있었지만 올곧이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그처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감상을 가지기에는 아직은 내가 어린 나이일 수 도 있겠고, 내가 바라보는 삶의 방향이 그와는 다를 수 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후 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다른 느낌이 들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낯설었지만 그래도 곱씹어 볼 만한 생각꺼리를 던져 주는 책이었다. 요즈음 장르소설들을 즐겨 읽다 보니 갈수록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책들만 찾게 되는데, 가끔씩은 이 책처럼 순문학 특유의 감상과 사유를 느껴보는 것도 독서 생활에 있어서 한결 여유로움과 색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뭏튼 “아모스 오즈”, 이 작품만으로 이런 작가다 평가 내리기에는 너무 성급할 것 같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본 후에야 그를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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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을 향해 쏴라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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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하면 끔찍하고 잔인한 연쇄살인을 주 소재로 하고 있다 보니 음험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고, 심지어 몇몇 대목에서는 낄낄거리는 웃음마저 터져 나오게 하는, 또한 트릭과 플롯만큼은 여느 추리소설 못지 않게 치밀하고 진지하기까지 한 이상한(?) 추리 소설이 있다. 바로 “유머 미스터리”의 창시자라고 평가받고 있다는 “히가시가와 도쿠야(東川篤哉)”의 작품들이 그러하다. 그간 읽어온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와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두 편 모두 유머스러운 캐릭터들과 기발하고 우스꽝스러운 대화들과 사건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트릭만큼은 책 표지 문구대로 “치밀하고 대담한” 재미있는 추리소설이었다. 이번에 만난 <밀실을 향해 쏴라(원제 密室に向かって擊て!/지식여행/2012년 1월)>은 “이카가와” 시리즈 전작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보다 유머는 한층 더 강화되고 트릭은 더욱 정교해진 재미있는 추리소설이었다.

 

때는 아직 이른 봄인 3월 10일 평범한 저녁, 이카가와 시(市) 경찰서 소속 스나가와 경부와 시키 형사는 술집에서 난투극을 벌이다가 건달 두 명을 때려눕히고 도망친 “나카야마 쇼지”를 체포하러 갔다가 그만 낭패를 당하고 만다. 그저 영장을 내밀고 - 시키 형사는 멋들어지게 내밀기 위해 몇 번을 연습을 했건만 실제에서는 처음부터 혀가 꼬이고 만다 - 체포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 나카야마는 자신이 만든 사제(私製) 권총 때문에 온 줄 알고 형사들을 향해 총질을 해대고는 도망치기 위해 4층 창문을 뛰어 내렸다가 그만 추락사하고야 만다. 경부와 형사는 허겁지겁 현장으로 내려 가보지만 이런 나카야마가 들고 있던 권총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어느새 누군가가 그 권총을 집어간 것이다. 8연발 권총이었으니 둘에게 쏜 2발을 빼면 아직도 여섯 발이나 남은 권총을 집어간 사람이 무슨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골치가 아프고 노심초사했던 둘에게 우마노세 해안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2주 후인 3월 25일이었다. 감식 결과 총알은 바로 도난당한 그 권총과 같은 것으로 판명되고, 시신도 알고 보니 전 사건인 연립주택 밀실살인사건 -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에서 만난, 두 형사와는 영 궁합이 맞지 않은 얄미운 탐정 “우카이 모리오”와 친분이 있던 노숙자로 밝혀지게 된다. 역시 전 사건에서 범인으로 몰렸다가 가까스로 누명을 풀었던 “도무라 류헤이”는 매형인 우카이 탐정과 우마노세 해안으로 조문(弔問)을 갔다가 우연히 이카가와 시에서 유명한 식품 회사 회장인 “주죠지 죠지”의 손녀이자 해변가 “토리노미사키(새의 곶)”라는 벼랑 끝에 위치한 대저택에 살고 있는 “사쿠라”를 만나게 되고, 엉겁결에 그녀의 집까지 따라가 자신이 겪었던 살인사건을 명탐정(?) 우카이와 그의 제자인 자신의 활약으로 해결한 것 마냥 떠들어댄다.

 

이를 인연으로 사쿠라의 신랑감들의 뒷조사를 맡게 된 우카이는 잠복과 미행, 도청까지 이어지는 지루한 조사를 완수하고 류헤이와 함께 주죠지 저택으로 향하는데, 저택에는 마침 사쿠라의 신랑감 후보 세 명 모두가 와 있었다. 우카이와 류헤이는 주죠지 회장이 대접하는 비싼 술에 만취해 거실 쇼파에서 곯아 떨어져 자게 되는데, 류헤이는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한발의 총성에 번쩍 깨어나게 된다. 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 보니 거실 베란다에 총을 들고 있는 하얀 복면의 남자가 달아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우카이는 남자가 쏜 총에 그만 다리를 다치고야 만다. 뒤이어 집안 모든 사람들이 총성에 놀라 거실로 모여들게 되고, 연이어 세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사라진 범인을 쫓아 나가 보니 사쿠라의 신랑 후보 한 명이 가슴에 총을 맞아 죽어 있었고, 총소리를 듣고 저택으로 달려오다 범인을 발견하고 격투를 벌이던 주죠지 회장의 보디가드는 팔에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벼랑 끝에는 범인이 버리고 간 총과 옷가지가 발견된다. 그런데 이 곳, 범인이 벼랑을 내려 가려면 총성 때문에 모여 있는 저택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달아날 곳이라고는 벼랑에서 투신할 수 밖에 없는 일종의 “밀실(密室)” 인 곳이었다. 범인이 사용한 총은 역시나 스나가와 경부 콤비가 놓쳤던 그 총이자 노숙자를 살해했던 그 총으로 밝혀지게 되고, 벼랑 아래를 이 잡듯 뒤졌지만 범인의 시신은 결국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범인은 집안 사람 중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상황, 범인의 트릭을 깨기 위한 스나가와 경부 콤비와 우카이 탐정 콤비의 불꽃(?) 튀는 두뇌 대결이 시작된다.

 

전작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에서 악연(?)을 맺은 스나가와 경부 콤비와 우카이 탐정 콤비가 다시 등장해서 역시나 해결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밀실” 살인을 해결한다는 이 책은 전작보다 유머와 트릭 면에서 모두 한층 업그레이드된 그런 소설이었다. 먼저 캐릭터들을 본다면 여전히 형사와 탐정 두 콤비들의 엉뚱하면서도 심지어 찌질하기까지 한 모습들은 여전함을 넘어 그 정도가 한층 더 심각해졌는데, 이들보다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캐릭터는 전편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맨션 주인이자 열심히 오토바이를 고치고 있었던 - 자기는 고치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형사들과 우카이는 망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실제로도 망쳐버렸단다 - 미모의 여인 “아케미”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대목은 우카이 탐정 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는 건물을 인수하여 건물주의 신분이 된 아케미가 일 년이나 월세가 밀린 우카이와 입씨름을 벌이는 장면이었는데, 둘이 월세 때문에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마치 “만담(漫談)”을 듣는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고 재미있었다. 거기에 탐정 사무소를 찾아온 “주죠지” 회장 때문에 졸지에 울며 겨자 먹기로 탐정 조수가 되어 버리게 된 아케미가 밀린 월세를 받겠다는 투철한 일념 하에 뒷조사라면 질색을 하는 우카이를 협박(?)해서 주죠지 회장의 의뢰를 받아들이게 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우카이와 아케미 사이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형성 - 아케미의 똑 부러진 성격이라면 집세나 밀리고 있는 무능력자 우카이를 거들 떠 보지도 않는 게 더 맞을 텐데 유머를 표방하고 있는 이상 둘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될 만도 알았는데 오히려 주죠지 회장의 금지옥엽 손녀딸 사쿠라와 류헤이 사이에서 조성되는 것 또한 꽤나 엉뚱하면서도 재미있다. 전 편에서 애인과 헤어지고 난 후 술 마시고 난동을 피운 탓에 범인으로 몰렸던 류헤이, 이번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사쿠라의 하트 모양의 눈빛을 영 알아채지 못하고 결말 부분에 이르러 뭔가 눈치를 채지만 설마 하는 것을 보면 영 눈치가 젬병인 그런 친구이다. 다음 편에 류헤이와 사쿠라의 사랑이 이어진다고 해도 류헤이의 눈치 없음 병은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여전할 것만 같다.

 

트릭 면에서는 어떨까? 이 책에 등장하는 트릭 중 먼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발생한 “밀실” 트릭은 총성으로 사건의 순서를 착각하게 만드는 트릭이 사용되었는 데,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밀실이 만들어지는 트릭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쥐덫>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이미 널리 알려진 트릭이니 새로울 것은 없으며 범인은 고립된 인물 중에 한 명일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이 가능 그런 트릭이고, 실제로 책에서도 범인의 정체는 사건 수사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된다. 오히려 기발한 것은 범인의 살인 방법에 사용된 트릭, 즉 총성을 이용해서 사건의 순서를 착각하게 만드는 트릭인데, 이 트릭을 먼저 눈치 챈 독자들이 드물었을 것만 같은 꽤나 복잡하고 치밀하다. 작가는 여기에 “중인환시(衆人幻視)”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는데 엄밀하게는 총소리가 트릭의 도구였으니 “중인환시(衆人幻廳)”이 맞는 표현이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계산해서 살인을 저질렀어야 싶은 생각도 든다. 특히 총소리 트릭과 함께 사용된 절벽 위에 놓여진 옷가지나 시신 옆에서 깨어나는 또 다른 신랑감 후보 등 범인은 나름 치밀하게 짰다고 했겠지만 누가 봐도 어설프기만 하고 괜히 사서 고생만 한 그런 트릭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추리소설 특성상 범인은 고생고생해서 예측 불허의 기상천외한 트릭을 만들어내지만 능력이 영 의심스러운 탐정과 심지어 어리 버리한 조수에게까지 간파되고 말다니 범인이 불쌍 - 물론 이런 점도 이 책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겠지만 - 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아뭏튼 어설픈 트릭 속에 복잡하고 정교한 트릭을 숨겨 놓은 작가의 솜씨를 보면 이 책이 단순히 웃기고 재미있는 글만이 아니라 추리 소설로써의 장르적 재미도 한껏 살려 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앞서 두 작품을 읽고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역시나 계속 만나게 되는 것을 보니 내 예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예감은 나 뿐 만은 아니었는지 2011년에 일본 추리소설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4권)이 번역된 작가였다고 한다. 작가와 독자의 두뇌 싸움이라는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꼭 무겁고 어렵기만 한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담 없이 웃음 지으며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점이 “히가시가와 도쿠야” 작품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매력 때문에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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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위험해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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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의 <문근영은 위험해(은행나무/2012년 1월)>의 제목을 처음 듣고는 배우 “문근영”이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그런 뜻으로 알았다. 그런데 제목을 다시 한번 뜯어보니 문근영“이”가 아니라 문근영“은” 위험하다였다. 즉 문근영이 위험에 직면한 것이 아니라 문근영 존재 자체가 위험스럽다는 그런 뜻이었다. 지금이야 강력한 라이벌(?)인 “김연아”와 “아이유” 때문에 그 자리를 양보하고 말았지만 한때는 대한민국 모든 오빠들을 사로잡은 “국민 여동생” 이었을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한 장본인이었으니 이 책 제목처럼 나름 위험한 존재 - 여성들에게 말이다 - 로 볼 수 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나 또는 문근영으로 상징되는 연예 세태 풍자이야기 쯤이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아니 이런 이 책에 따르면 “문근영”은 제목 그대로 아주 위험한 존재였다. 그것도 지구 종말을 일으킬 정도로 말이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작가는 깨알 같은 글씨로 다음과 같은 주의사항을 적어놓는다.

 

 

이 소설에서는 이름만 대면 대체로 거의 모든 국민이 아는 한 여성과 동명이인이 나온다. 그 여배우는 절대 여러분이 아는 그 배우가 아니다. 무언가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절대 우연일 뿐이다.(중략). 이글은 소설일 뿐이다.

 

 

제목에 나와 있는 “문근영”이 단지 동명이인이란다. 거기에 비슷한 부분이 있더라도 절대 우연이란다. 그런데 책 본문에 들어가 보면 문근영이 출연했던 각종 CF와 드라마 속 대사를 버젓이 따다 써놓고는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 아마도 실제 문근영 양이 이 책 보고 명예훼손이라고 고발이라도 할까봐 미리 연막을 치는 그런 문구일 수 도 있겠다. 최근 웃자고 했더니 죽자고 덤비는 사례가 종종 있다 보니 지레 겁먹고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처럼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맙시다~”하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한때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웠던 여배우 “문근영”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중 전격 납치되는 천인공노할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바로 찌질이 “잉여남” 성순, 혜영, 승희. 그런데 납치 이유가 가관이다. 바로 지구 종말을 획책하고 있는 세력인 “회사”의 음모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한 것. 3일 후에 있을 생방송에서 문근영이 하는 말들은 9.11.테러사건과 같은 일대 사건을 일으킬 일종의 기폭 장치가 될 수 있으니 방송 출연을 막기 위해 그녀를 납치했다는 것이다. 우리 근영양도 참 딱한 처지에 놓인다. 화장실에서 안 터지는 휴대폰 안테나 신호, 이리저리 돌려가며 간신히 어머니께 전화 드렸건만 어머니는 딸의 목소리도 못 알아보고 보이스 피싱 전화인 줄 알고 면박을 주고는 끊어버리시고, 이 전화 한 통으로 간당간당하던 휴대폰 배터리도 다 닳아 버리고 말았으니 속절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한편 <컨설턴트(은행나무/2010년 6월)>로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 이 작품을 쓴 “임성순” 본인이다 - 는 축하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낯선 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유명 호텔 스위트룸에서 만난 의문의 남자는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으로 쓴 소설인 <컨설턴트> 속 “회사”가 실제로 존재하며, 작가의 책 때문에 “회사”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생겼다며 작가에게 독자들이 “회사”의 존재를 믿지 못하도록 속편을 쓰라고 협박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작가는 회사의 지시대로 “외계인”이 회사의 배후에 있다는 설정으로 글을 써서 출판사에 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 - 이유가 너무 수준이하여서 - 당하고 불면증과 어깨 걸림을 치료하러 병원에 들렸다가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고, “회사”의 존재를 그렇게 설명해도 모든 것이 작가의 과대망상 쯤으로 생각하는 의사 때문에 정신병자로 몰려 정신병동에 강제로 강금 당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도 “회사”의 음모가 개입되어 있으니 정신과 의사는 작가의 귀에 대고 “회사에서 치료 잘 받으시랍니다”라고 속삭인다.

 

 

우리의 국민여동생 문근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잉여남 세 남자는 국민 여동생을 납치했으니 모든 언론이 시끌벅적 떠들어댈 만도 한데 너무나도 조용한 것이 영 이상하지만 여기에 “회사”가 개입했을 거라고 멋대로 추측하고는 방송 날까지 기다린다. 마침내 생방송 시간이 다가오고, 방송이 취소되거나 또는 다른 연예인으로 대체될 줄 알았던 문근영과 세 남자는 깜짝 놀라고 만다. 문근영이 그 방송에 버젓이 출연한 것이다! 분명 문근영은 세 남자에게 붙잡혀 있는데도 말이다. 그때 납치된 문근영이 자신의 정체에 대해 “각성(覺性)”을 하게 되면서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다. 이 책 제목 그대로 문근영은 “정말”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저 문근영 납치 사건 쯤으로 알았던 책의 이야기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결말 - 시쳇말로 결말이 참 “안드로메다”스러운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 로 치닫는다.

 

 

책 띠지에는 “만화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성찰의 크로스오버”라고 되어 있는데, 내가 과문한 탓인지 인문학적 성찰은 그다지 잘 못 느끼겠다. 책에는 인터넷 통신체 문구나 “오덕후”, “병맛”, “잉여” 등의 신조어들과 디씨인사이드, 연예인 팬클럽, 각종 음모론들과 “나꼼수”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정치 풍자 등등 오늘날 여러 매체들과 인터넷 등에서 유행하고 있는 온갖 사회 현상들이 책 속 문구로, 대화로, 그리고 지금까지 본 책들 중 가장 특이한 방식의 각주(脚註) - 각주들만 꼼꼼히 챙겨 읽어봐도 왠만한 인터넷 유행어들이나 현상들은 모두 공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로 쉴새 없이 등장하는데 과연 이런 것들을 “성찰”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출판사 소개글에는 책의 복합적이며 파격적인 시도는 미디어에 의해 지배당하는 현대소비사회의 군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기 위한 방편이며. 소설 속에서 미디어에 의한 지배는 곧 자본주의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고, 이 작품은 하나의 상품으로서 소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회구조를 논하고 싶어 하는 텍스트라고 해설하고 있는데 굳이 이 책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너무 과한 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책, 굳이 이렇게 의미를 찾고자 종이가 뚫어져라 쳐다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화적 상상력 만큼은 그 어떤 책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심지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 기발하고 재미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가 회사의 협박 때문에 쓰게 된 <컨설턴트>의 속편이 바로 세 잉여남의 문근영 납치 사건 이야기일 수 도 있고, “작가”와 문근영 납치 사건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지는 별개의 사건 -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와 동명이인인 잉여남 성순의 은신처에 작가가 찾아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 일 수 도 있는 독특한 구성을 띠고 있는데 그 구성이 참 기발하다. 이처럼 소설과 소설 밖의 세계의 경계가 모호한 구성의 작품은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와 “최제훈”의 <일곱개의 고양이 눈> 등이 있는데 이 작품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그런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독특하고 기발한 구성 뿐만 아니라 도저히 예측을 불허하는, 가히 “안드로메다”급 결말은 어찌나 기가 막히는지 이 책대로라면 귀엽기만 한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지구 종말을 일으킬 정도로 위험할 수 있겠구나 하는 묘한 설득력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힌다는 “나스카 지상화”의 기원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참 기막히고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먼저 읽으신 분들의 서평들을 읽어보니 기발하고 재미있다는 평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너무 유치해서 실망스럽다는 평들도 만만치 않은 것을 보면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나뉘는 그런 책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실제 “문근영”이 출연하는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아마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 이상의 걸작(?) - 이 작품도 졸작이니 숨겨진 걸작이니 하면서 평가가 엇갈리는데 나는 이 영화도 참 재미있게 봤다 - 이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뭏튼 작품의 수준이나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차치하고 나서라도 “임성순” 작가,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력만큼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희귀한” 작가라고 평하고 싶다. 읽는다 읽는다 하면서도 아직도 읽지 못하고 책장 한 켠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이 책의 전작(前作)인 <컨설턴트>도 이참에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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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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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형서점들과 인터넷 서점 장르 소설 - 추리, 판타지, SF 등 - 코너를 “점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 장르 소설 열풍이 거세지만, 일본 문학계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두 명 -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오엔 겐자부로(1994)” - 이나 배출했을 정도로 “순문학(純文學)” 분야에서도 그 성취가 뛰어나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일본 순문학 작품들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 그나마도 “무라카미 하루키”, “아사다 지로” 등 현대에 활동하고 있는 작가 작품들 정도일 뿐 일본 근현대 문학계를 이끌어온 유명 작가 작품들은 거의 접해본 적이 없어 늘 아쉬움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아쉬움을 달래줄 멋진 작품을 만났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릴 정도로 확고한 문학적 위치에 있는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문(원제 門(1910) / 비채 / 2012년 1월)>이 바로 그 작품이다. 이제는 고전(古典)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작품이지만 100 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시대와 공간에 대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작품이었다.

 

책은 1910년 어느 일요일 한가로운 일상에서 시작한다. 도쿄 시내에 있는 관청에 다니고 있는 하급 공무원인 “소스케”는 매사에 심드렁한 그런 사람이다. 선친의 유산인 집과 골동품 처리를 숙부에게 일임하면서 동생인 “고로쿠”를 맡겼지만, 숙부가 돌아가신 후 더 이상 돌봐줄 수 없다는 숙모와 동생 학비와 거취 문제, 그리고 숙부의 석연치 않은 유산 처리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지만 미적대며 그저 편지만 보내고는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를 유유자적하며 보낸다. 아내인 “오요네”도 그런 그에게 몇 번 숙부네로 가보라고 말을 건네긴 하지만 재촉하지는 않는, 말 그대로 “부창부수(夫唱婦隨)”인 그런 아내이다. 고로쿠는 그런 형 내외가 못내 답답하기만 하다. 소스케와 오요네는 함께 살면서 지금까지 6년 동안 한 번도 반나절 이상 어색한 기분으로 지내본 적이 없었고, 말다툼으로 얼굴을 붉힌 적은 더욱 없었던 금실이 좋은 부부다. 둘에게 사회는 그저 일상생활의 필수품을 공급해 주는 곳 이상이 아닌 그런 곳으로,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서로뿐이었고, 또 그것으로 충분한,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산속에 살고 있는 듯한 심정으로 살고 있는 부부다. 한때 그 누구보다도 활기차고 전도유망한 대학생이었던 소스케가 이렇게 사회와 동떨어져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숨겨둔 사연이 있었다. 아내인 오요네는 사실 교토대학 재학 시절 가장 친한 친구인 “야스이”의 부인 - 책에서는 야스이와 요오네가 동거 생활하는 걸로 나오는데, 실제 부부였는지 아니면 애인이었는지 명확하게 언급하진 않는다 - 이었는데 그만 친구였던 소스케와 사랑에 빠져 버리면서 야스이를 버리고 그를 따라나서 버린다.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숨어 살다시피 시작한 결혼 생활이었기에 행복했지만 그 행복 이면에는 세 번에 걸친 임신 실패라는 커다란 아픔과 슬픔 또한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유일하게 서로의 집을 왕래할 정도로 친해진 집주인 남자에게서 옛 친구인 야스이의 소식과 함께 그와 만나는 자리에 초대를 받게 된다. 거절하기 어려운 자리이지만 결코 만나서는 안되는 사이였기에 소스케는 야스이를 피하기 위해 회사에 휴가를 신청하고 산사(山寺)로 도피해 버린다. 그곳에서 소스케는 참선(參禪)으로 자신의 번민을 잊어 보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다시 돌아온다. 다행히 야스이는 자신이 없는 동안 다녀가는 바람에 다시금 평온한 일상이 반복된다. 그런데 그의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하다. 새봄이 왔다고 좋아하는 오요네에게 다시 또 겨울이 올 거라고 불퉁거리는 그의 마지막 말을 들어보면 말이다.

 

이 책, 중반까지는 참 평온한 느낌이었다. 갈등이라고는 숙부와 얽힌 유산 문제가 있지만 자꾸만 피하려는 소스케와 오요네 부부 때문이지 그다지 긴장감이 들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중반 이후 소스케 부부의 숨겨진 사연이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갈등이 고개를 든다. 특히 세 번에 걸친 유산의 아픔과 두려움에 눈물 흘리는 오요네와 자신도 가슴 아프지만 그런 아내에게 내색하지 못하는 - 심지어 건강이 나빠진 아내에게 임신한 것이 아니냐며 반색하기까지 한다 - 소스케의 모습에 짠한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종반에 이르러 두 부부를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가게 만든 장본인 - 물론 두 부부가 가해자이고 야스이는 피해자이니 장본인이라고 지칭하면 억울해할 것 같지만 -이자 결코 마주쳐서는 안 될 사람인 옛 친구 야스이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긴장감은 극에 달하게 되고, 일견 소스케와 야스이가 만나서 파국(破局)으로 치닫거나 또는 화해(和解)를 하는 결말을 기대해보기도 했지만, 숨어 버리고 마는 소스케의 소심한 모습에서 오히려 작위적이지 않은 현실감을 느껴볼 수 있었고, 나또한 그런 상황이었다면 그처럼 도망가 버리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이입이 되어 버렸다. 결국 다시 찾은 평온, 이런 상황을 알지 못했던 아내는 봄이 온다고 기뻐하지만 마음 고생을 단단히 했던 소스케가 겨울이 올 거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마지막 대목에서 그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기에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 이 책이 과연 100 여 년 전에 씌여진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시대를 알 수 있는 몇 몇 단어 - 이토 히로부미, 조선총독부 등 - 만 고친다면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부부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글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1910년대 격변기의 시대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았던 어느 소시민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렇기에 당시 가장 화제가 된 사건인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도 이 부부에게는 그저 신문이나 라디오에서만 떠들어 대는 하나의 뉴스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선거철을 맞아 쇄신에 통합에 요란 법석을 떠는 정치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는 “남”의 이야기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그 시대 소설 특유의 과장되거나 또는 격정적인 필치가 아니라 밋밋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담백하면서도 두 부부를 곁에서 직접 관찰하면서 글을 썼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세세한 면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또한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춰진 슬픔과 아픔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도 역시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어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그렇기에 작가의 글솜씨에 취해 책을 읽노라면 어느새 주인공이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바로 우리들 이야기라는 느낌을 들게 만들어 버리는, 제대로 감정이입이 되어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 절로 탄식이 터져 나오고 안타까워하며, 다시 찾은 평온함에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게 만든다. 이처럼 100년 전 이야기이지만 전혀 옛날이야기 같지 않다니 참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도 전혀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가히 기적이다"이라는 어느 일본 소설가의 평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여기서 제목이기도 한 <문>은 어떤 의미일까? 작품 해설에서는 “구원받지 못하는 자기 내면의 '문”을 의미한다고 말하는데 좀 어렵다. 또한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는데 역시 어렵다. 작가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문은 소스케가 산사(山寺)를 찾아갔을 때 듣게 되는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 오너라" 라는 대목인데, 열어 달라고 소리쳐도 결코 열리지 않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직접 열어야 만하는 그런 문이다. 소스케에게 그 “문”은 사회와 단절하게 만든 야스이와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도 없는, 오직 소스케 스스로가 해결해야 되는 그런 문이지만 소스케는 결국 그 문을 열어 제치지 못하고 그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다보지만 도저히 왔던 길로는 되돌아갈 용기가 없어 다시 가로막고 서 있는 육중한 문짝을 바라보게 되고, 결국 그 문 아래에 꼼짝달싹 못하고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그렇다고 날이 저문다고 해서 결코 열리지 않을 문을 바라보고만 서 있는 “불행한” 사람이 바로 주인공 소스케인 셈이다. 그런데 그가 꼭 불행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문 앞 계단에 앉아서도 편하지는 않겠지만 쉴 수 있을 그런 사람 같아서 말이다. 열어 제치고 들어가는 것도, 여는 것을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것도, 미련이 남아 계속 머뭇거리는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라고 한다면 결국 작가는 “문”이라는 존재를 반드시 부수거나 통과해야만 하는 장애(障碍)가 아니라, 때로는 멈춰 서게 하고, 때로는 쉴 수 있게 하며 때로는 뒤를 돌아보게 하는 다중(多重)적인 의미로써의 “문”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란스러울 정도로 극적인 전개나 반전, 충격적인 결말은 없었지만 읽은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묘한 여운이 가슴 속에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처음에는 욕설을 연상케 하는 그의 이름 때문에 잊혀지지 않겠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엉뚱한 생각을 말끔하게 가셔준 담백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이 책 때문이라도 오래 기억될 그런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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