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순”의 <문근영은 위험해(은행나무/2012년 1월)>의 제목을 처음 듣고는 배우 “문근영”이 어떤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그런 뜻으로 알았다. 그런데 제목을 다시 한번 뜯어보니 문근영“이”가 아니라 문근영“은” 위험하다였다. 즉 문근영이 위험에 직면한 것이 아니라 문근영 존재 자체가 위험스럽다는 그런 뜻이었다. 지금이야 강력한 라이벌(?)인 “김연아”와 “아이유” 때문에 그 자리를 양보하고 말았지만 한때는 대한민국 모든 오빠들을 사로잡은 “국민 여동생” 이었을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한 장본인이었으니 이 책 제목처럼 나름 위험한 존재 - 여성들에게 말이다 - 로 볼 수 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나 또는 문근영으로 상징되는 연예 세태 풍자이야기 쯤이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아니 이런 이 책에 따르면 “문근영”은 제목 그대로 아주 위험한 존재였다. 그것도 지구 종말을 일으킬 정도로 말이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작가는 깨알 같은 글씨로 다음과 같은 주의사항을 적어놓는다.
이 소설에서는 이름만 대면 대체로 거의 모든 국민이 아는 한 여성과 동명이인이 나온다. 그 여배우는 절대 여러분이 아는 그 배우가 아니다. 무언가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절대 우연일 뿐이다.(중략). 이글은 소설일 뿐이다.
제목에 나와 있는 “문근영”이 단지 동명이인이란다. 거기에 비슷한 부분이 있더라도 절대 우연이란다. 그런데 책 본문에 들어가 보면 문근영이 출연했던 각종 CF와 드라마 속 대사를 버젓이 따다 써놓고는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 아마도 실제 문근영 양이 이 책 보고 명예훼손이라고 고발이라도 할까봐 미리 연막을 치는 그런 문구일 수 도 있겠다. 최근 웃자고 했더니 죽자고 덤비는 사례가 종종 있다 보니 지레 겁먹고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처럼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맙시다~”하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한때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웠던 여배우 “문근영”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중 전격 납치되는 천인공노할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바로 찌질이 “잉여남” 성순, 혜영, 승희. 그런데 납치 이유가 가관이다. 바로 지구 종말을 획책하고 있는 세력인 “회사”의 음모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한 것. 3일 후에 있을 생방송에서 문근영이 하는 말들은 9.11.테러사건과 같은 일대 사건을 일으킬 일종의 기폭 장치가 될 수 있으니 방송 출연을 막기 위해 그녀를 납치했다는 것이다. 우리 근영양도 참 딱한 처지에 놓인다. 화장실에서 안 터지는 휴대폰 안테나 신호, 이리저리 돌려가며 간신히 어머니께 전화 드렸건만 어머니는 딸의 목소리도 못 알아보고 보이스 피싱 전화인 줄 알고 면박을 주고는 끊어버리시고, 이 전화 한 통으로 간당간당하던 휴대폰 배터리도 다 닳아 버리고 말았으니 속절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한편 <컨설턴트(은행나무/2010년 6월)>로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 이 작품을 쓴 “임성순” 본인이다 - 는 축하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낯선 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유명 호텔 스위트룸에서 만난 의문의 남자는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으로 쓴 소설인 <컨설턴트> 속 “회사”가 실제로 존재하며, 작가의 책 때문에 “회사”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생겼다며 작가에게 독자들이 “회사”의 존재를 믿지 못하도록 속편을 쓰라고 협박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작가는 회사의 지시대로 “외계인”이 회사의 배후에 있다는 설정으로 글을 써서 출판사에 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 - 이유가 너무 수준이하여서 - 당하고 불면증과 어깨 걸림을 치료하러 병원에 들렸다가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고, “회사”의 존재를 그렇게 설명해도 모든 것이 작가의 과대망상 쯤으로 생각하는 의사 때문에 정신병자로 몰려 정신병동에 강제로 강금 당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도 “회사”의 음모가 개입되어 있으니 정신과 의사는 작가의 귀에 대고 “회사에서 치료 잘 받으시랍니다”라고 속삭인다.
우리의 국민여동생 문근영은 어떻게 되었을까? 잉여남 세 남자는 국민 여동생을 납치했으니 모든 언론이 시끌벅적 떠들어댈 만도 한데 너무나도 조용한 것이 영 이상하지만 여기에 “회사”가 개입했을 거라고 멋대로 추측하고는 방송 날까지 기다린다. 마침내 생방송 시간이 다가오고, 방송이 취소되거나 또는 다른 연예인으로 대체될 줄 알았던 문근영과 세 남자는 깜짝 놀라고 만다. 문근영이 그 방송에 버젓이 출연한 것이다! 분명 문근영은 세 남자에게 붙잡혀 있는데도 말이다. 그때 납치된 문근영이 자신의 정체에 대해 “각성(覺性)”을 하게 되면서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다. 이 책 제목 그대로 문근영은 “정말”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저 문근영 납치 사건 쯤으로 알았던 책의 이야기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결말 - 시쳇말로 결말이 참 “안드로메다”스러운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한다 - 로 치닫는다.
책 띠지에는 “만화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성찰의 크로스오버”라고 되어 있는데, 내가 과문한 탓인지 인문학적 성찰은 그다지 잘 못 느끼겠다. 책에는 인터넷 통신체 문구나 “오덕후”, “병맛”, “잉여” 등의 신조어들과 디씨인사이드, 연예인 팬클럽, 각종 음모론들과 “나꼼수”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정치 풍자 등등 오늘날 여러 매체들과 인터넷 등에서 유행하고 있는 온갖 사회 현상들이 책 속 문구로, 대화로, 그리고 지금까지 본 책들 중 가장 특이한 방식의 각주(脚註) - 각주들만 꼼꼼히 챙겨 읽어봐도 왠만한 인터넷 유행어들이나 현상들은 모두 공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로 쉴새 없이 등장하는데 과연 이런 것들을 “성찰”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출판사 소개글에는 책의 복합적이며 파격적인 시도는 미디어에 의해 지배당하는 현대소비사회의 군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기 위한 방편이며. 소설 속에서 미디어에 의한 지배는 곧 자본주의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고, 이 작품은 하나의 상품으로서 소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회구조를 논하고 싶어 하는 텍스트라고 해설하고 있는데 굳이 이 책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너무 과한 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책, 굳이 이렇게 의미를 찾고자 종이가 뚫어져라 쳐다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화적 상상력 만큼은 그 어떤 책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심지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 기발하고 재미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가 회사의 협박 때문에 쓰게 된 <컨설턴트>의 속편이 바로 세 잉여남의 문근영 납치 사건 이야기일 수 도 있고, “작가”와 문근영 납치 사건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지는 별개의 사건 -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와 동명이인인 잉여남 성순의 은신처에 작가가 찾아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 일 수 도 있는 독특한 구성을 띠고 있는데 그 구성이 참 기발하다. 이처럼 소설과 소설 밖의 세계의 경계가 모호한 구성의 작품은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와 “최제훈”의 <일곱개의 고양이 눈> 등이 있는데 이 작품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그런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독특하고 기발한 구성 뿐만 아니라 도저히 예측을 불허하는, 가히 “안드로메다”급 결말은 어찌나 기가 막히는지 이 책대로라면 귀엽기만 한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지구 종말을 일으킬 정도로 위험할 수 있겠구나 하는 묘한 설득력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힌다는 “나스카 지상화”의 기원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참 기막히고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먼저 읽으신 분들의 서평들을 읽어보니 기발하고 재미있다는 평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너무 유치해서 실망스럽다는 평들도 만만치 않은 것을 보면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나뉘는 그런 책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실제 “문근영”이 출연하는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아마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 이상의 걸작(?) - 이 작품도 졸작이니 숨겨진 걸작이니 하면서 평가가 엇갈리는데 나는 이 영화도 참 재미있게 봤다 - 이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뭏튼 작품의 수준이나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차치하고 나서라도 “임성순” 작가,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력만큼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희귀한” 작가라고 평하고 싶다. 읽는다 읽는다 하면서도 아직도 읽지 못하고 책장 한 켠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이 책의 전작(前作)인 <컨설턴트>도 이참에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