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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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이라는 말과 생각이 있는 곳이라 하여 그것만으로 그곳에 ‘평등한 사회’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서울대학교 사상연구소 왜 우리는 모두 평등할 수 없는가? 누구나 그렇듯 우리는 기본적으로 불평등하게 대우받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며 차별받는 것에 대해 많은 투쟁을 했고, 기본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개선된 많은 것들이 있는 반면에 여성의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위한 많은 운동들은 이제 조금씩 시작돼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부계 혈통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남아 선호 사상, 남성 위주의 사회활동과 정치 참여를 토대로 여성의 인권이나 기본권은 무시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살면서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여자니까“, ”여자라서“라는 말을 들어 본 여성분들이 많을 것이다. 크게 생각해보면 저렇게 생각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여성으로서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인식을 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오래도록 지속 되어온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가부장권 문화 속에서 살아온 여성은 17-18세기 독일에서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힘쓰고, 이탈리아에서도 여성교육의 평등을 주장했다. 프랑스는 여성참정권 운동이 시작되었고, 영국과 미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1945년 8.15광복을 계기로 1948년 제정 헌법에서 남녀의 평등한 참정권이 인정되었으니 세계의 흐름에서는 조금 늦은 발걸음을 뗀 것이다.

장류진 <새벽의 방문자들>

하유지 <룰루와 랄라>

정자향 <베이비 그루피>

박민정 <예의바른 악당>

김현 <유미의 기분>

김현진 <누구세요?>

걸쇠가 걸리며 문이 잠기는 차가운 쇳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멈췄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마치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야, 저 사람한테 내가 보일 리 없어. 아무리 되뇌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눈동자보다도 작은 렌즈가, 커다란 유리 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밖의 남자가 자신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는 뭔가 발견했다는 듯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동그랗게 뚫려 있는 여자의 시야에 남자의 상반신이, 어깨가, 얼굴이…… 그리고 마침내 새까만 눈동자가 가득 들어왔다. 남자가, 렌즈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벽의 방문자들」중에서

앳된 임신부가 누구를 기다리는 듯 정류장 주변을 서성이다가 벤치 끄트머리에 앉았다.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던 사람이 휴대폰 벨이 울리자 벤치 앞에 멈춰 섰다. 걸으면서 담배는 피워도 전화는 못 받는지. 바람이 담배 연기를 실어 날랐다. 임신부는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전화 통화는 길었고 담배 연기도 길었다. 나라도 한마디 할까, 아니면 아침부터 일 만들지 말고 참을까, 고민스러웠다. 룰루는 손과 다리를 움찔거렸다가, 엉덩이를 들었다가 놨다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더니 결심한 듯 일어난다.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아아, 룰루, 어쩌려고? 내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룰루와 랄라」중에서

방 안에서 P는 어쩐지 말이 줄었고, 그러다 문득 영화를 보자고 했고, 소파 베드에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돌연 몸을 붙여왔다. 처음엔 갑자기 자세를 바꾸는 것처럼 조금 내 쪽으로 기대거나 소파 헤드에 얹었던 손을 아래로 내려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문득 무릎에 눕고나 팔짱을 껴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놀랐고, P를 밀어내기보다는 그의 손이 더 넘어오지 않게 하는 데에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긴장감이 한참이나 이어진 끝에 P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신경질적으로 노트북 키보드를 눌러 영화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나면 데이트는 끝이었다. P는 내게 가달라고 말하는 대신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약속이 생겼다고 했다.

---「베이비 그루피」중에서

야, 오늘은 소라무침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보라의 얼굴이 굳어진다. 지나는 보라의 눈치를 살피며 그에게 말한다. 선배, 선배 여자 친구는 그거 먹기 싫은 것 같은데. 자기가 먹고 싶은 것보다 여자 친구가 먹고 싶은 걸 시켜야지. 그는 갸우뚱하며 보라의 옆구리를 찌른다. 너 먹기 싫어? 아니잖아. 그는 보라의 대답도 듣지 않고 지나에게 웃어 보인다. 괜찮아. 얘는 다 잘 먹어. 오늘 내가 특별히 쏘는 건데. 지나, 네가 먹기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지?

어린 시절 그것을 먹고 다 게워낸 이후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말을 보라는 할 수 없다. 지나는 한숨을 쉬며 보라의 얼굴을 살핀다. 지나가 너무 찬찬히 살펴보기에 보라는 어쩔 수 없이 소라무침을 주워 먹기 시작한다. 지나는 안도한 듯 그에게로 몸을 돌려 정신없이 깔깔대며 웃는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므로 보라는 더 많은 소라를 먹을 수밖에 없다. 지나가 수시로 보라에게 시선을 주며 보라 넌 어때, 묻는 바람에 잔뜩 긴장한 채였다. 그는 계속 지나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막상 소라무침을 먹는 사람은 개중 보라뿐이었다.

---「예의 바른 악당」중에서

그 종이 한 장 한 장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놈 한 놈을 떠올리게 했다. 그 노랗고 작은 것들이, 그 보잘것없는 종이 쪼가리가 한데 모이자 크고 넓고 거대한 것이 이루어졌다. 많은 여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그 네모난 세계에 연결됐다. 그것이 마치 자유로의 입구라도 되는 양 환호했다. 또한 많은 남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그 정체불명의 세계에서 눈을 돌렸다.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내면으로 향하는 입구라도 되는 양 헐, 존나, 대박, 메갈, 꼴펨, 진지충이라는 말을 내뱉고 사라졌다. 오직 그런 말을 들어본 사람만이 거기 남아서 손가락으로 포스트잇을 가리키며 말했다. -국어 -수학 -체육 -영어

---「유미의 기분」중에서

결혼은 닥쳐봐야 안다면서 그때 단호히 거절했어야 했다. 하지만 거의 범죄 수준으로 멍청했던 나는 그저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둘의 사랑이 담긴 공동 통장’이라는 말에 눈이 멀어 내가 들던 적금도 해약해 그놈의 ‘공동 통장’에 내놓았던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 계좌의 예금주는 바로 이재영! 원래부터 이럴 속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월급날마다 현금을 직접 인출해서 자신에게 주길 원했다. 그게 뭔가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줘서 정이 간다나? 그때는 그저 아 현금이 편해서 좋은가 보다, 하고 그냥 그 말을 들었던 과거의 내 뺨을 이 미친년, 하면서 사정없이 후려치고 싶다. ---「누구세요?」중에서

의 단편집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지만 사실도 되는 책이다. 우연히 ‘현남 오빠에게’를 읽고 난 뒤 서점에 가면 페미니즘 소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자연스럽게 여성의 기본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을 뿐인데 이렇게 작은 관심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한 작은 관심을 가진 나는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성 평등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페미니스트 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요즘에는 페미니즘을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운동으로 하시는 분들도 많다. 대게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즘도 많다고 본다. 이러한 페미니즘 운동으로 작게는 주류회사에서 나오던 반라 여성 모델의 ‘민망한 달력’도 2019년부터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 달력들이 여성의 성 상품화로 보는 소비자들이 많아지자 다른 사진으로 만든 달력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미투 #Me too 운동, 혜화역 시위까지 여성의 소리를 내는 많은 운동들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렇듯 페미니즘 도서를 구매하고 이러한 관행은 잘못되었구나. 이 상황에서 나는 성차별을 받아온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페미니즘 역사를 써가는 길에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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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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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문제에서 역사보다 완벽한 해설서는 없다고 말하는 저자 최태성의 이야기가 담긴 책 역사의 쓸모는 삶을 살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선택의 순간 조금 더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 할수 있는 좋은 본보기를 역사에서 찾고 있다. 과거를 통해 현실을 살고 미래를 본다, 꽤나 그럴 듯 하게 다가온다. <역사의 쓸모> 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한국의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배워왔고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오직 이론적인 정보를 얻고 단순 암기하는 교육방식은 학생들로 하여금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온다. 물론 나도 그랬다. 하지만 저자는 삶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역사의 인물을 선정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사건 중심으로 풀어가는 현대 교육과정과는 다른 역사 속 인물과 가상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얻는다. 예를 들면 역사 속 인물과 소통하면 지금 직면한 문제들을 한걸음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정약용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답은 무엇일까? 그가 직면했던 문제의 핵심은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것과는 다를지 몰라도 의미를 알고 나면 답이 보일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떠한 도전이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어도 마음가짐을 화목하고 평온하게 유지하는 관계를 이루다보면 언젠가는 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져 오리라고 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쓸모있는 것들은 첫째, 역사의 인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고 둘째 역사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다.

셋째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과거의 인물들이 역사속으로 살아졌듯이 현재의 우리도 언젠가는 역사속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후손들이 ‘나’를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 것 인가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갈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역사 속에 남겨질 <모습>을 위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을 정할 수 있고, 또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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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간호사 월드
최원진 지음 / 북샵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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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의료인이란 국가고시 시험을 치르고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를 말한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는 환자의 관찰, 자료수집, 간호 판단, 요양을 위한 간호와 진료의 보조, 교육 및 상담 등 광범위한 보건 활동 등이 있다. 의료인과는 다르지만 나는 의사의 지도 아래 진료나 의화학적 검사를 다루는 의료 기사로 병리학·미생물학·생화학·기생충학·혈액학·혈청학·법의학·요화학(尿化學)·세포병리학의 분야,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한 가검물(可檢物) 등의 검사 및 생리학적 검사(심전도·뇌파·심폐기능·기초대사나 그 밖의 생리 기능에 관한 검사)의 분야에서 임상 병리 검사에 필요한 기계·기구·시약 등의 보관·관리·사용, 가검물 등의 채취·검사, 검사용 시약의 조제(調劑), 혈액의 채혈·제제(製劑)·제조·조작·보존·공급, 그 밖의 임상 병리 검사 업무를 수행하는 임상병리사로 일을 하고 있다. 크게 간호사와는 비슷한 과목이나 공통된 과목을 배우지만 세부 전공은 다르게 나눠진다. 실제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각각의 부서들이 협업을 해가며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간호사들의 고충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바 지독하게 힘들어 보였다.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 어디 하나 힘들지 않은 직업이 있겠냐마는 3교대 근무를 하는 병동이나 응급실 간호사분들은 정말이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마침 <리얼 간호사 월드>라는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저자 최원진은 현직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병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들을 통해 겪었던 오해, 분노, 슬픔 같은 다양한 감정을 만화로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나 사실적으로 그려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직설적인 감정을 표출하는데,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태움’을 당하는 신임 간호사의 모습이었다. ‘태움’이란 간호사들 사이에서 쓰이는 용어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인 괴롭힘을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간호사뿐만 아니라 어느 직장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괴롭힘은 만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터넷 기사로도 종종 접하기도 했었던 태움을 이렇게 그림으로 마주하게 되니 내가 당하는 사람인 것처럼 마음이 씁쓸해졌다. 간호사는 물론이고 의료인, 의료 기사 등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은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감정, 기분과는 상관없이 내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로 대해야 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마주해야 하는 것이 고역 일 때 가 많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옛말이 있다. 직업에는 귀함과 천함이 없이 다 똑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간호사는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의 머리글자인 3D 업종이라고들 한다. 보통 교대 근무가 많고, 사고 현장이나 응급 상황, 수술실, 혹은 진료실에서 타인의 외상이나 내상을 보고 만져야 한다거나, 처치 시 감염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만큼 그들의 직업은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등한시되는 그들의 인권은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 등의 폭언과 폭행에서 무방비하다.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존감과 감정을 갉아먹는 일이라니. 역설적으로 아이러니하다. 짧고 간결한 그림책이었지만 참 많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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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산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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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뿐이고,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뿐이죠.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바로 아빠예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까먹은 걸까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요. 아빠 말대로 속이 시원할까요.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새끼 가시고기들이 떠난 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 가시고기 말이에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슬프고 또 슬퍼서, 정말로 아빠가 사고기처럼 될지도 몰라요. 만일 내가 엄마를 따라가게 된대도 아빠가 쪼금만 슬퍼했으면 좋겠어요.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까요.

p. 333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그에 대한 추억조차 없는 작가는 유년시절부터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비난과 동정을 받으며 아버지에 대한 존재를 지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정에 대한 소설을 썼다. 가시고기 아빠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가시고기>는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가족에 대한 소중함,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숭고함을 상기시키는 기회를 주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이가 급성임파구성 백혈병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다움이 아빠의 시점과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아빠를 사랑하는 다움이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서로의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어 더욱 몰입되고 가슴 아픈 이야기.



모든 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엄마가 자기 인생을 찾아 아빠와 이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엄마가 떠난 뒤 매일을 술로 지새웠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나 ‘다움’이가 아프기 전까지의 일이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치료를 거부하는 아이를 나무라며 모질게 구는 성호 엄마와 다움이 아빠. 아이가 병을 이기는 것. 단 하나의 간절한 소망으로 모든 것을 버티고 있는 순간이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감당하기 어려워진 병원비까지 그를 괴롭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돈을 빌려달라는…. 목구멍에서 맴도는 말을 자존심 버려가며 친구에게 부탁하고 거절당한 뒤의 막막함은 다움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의 외로움과 처절한 현실을 보여준다.



돈이 된다면 그의 진정성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하기를 원하는 그의 모습을 옛 친구는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지만, 밥을 굶으면서 막노동을 하면서, 고깃배를 타면서 산을 타면서 사모은 시집을 기꺼이 팔 생각을 한다. 그게 현실이었다.

골수이식의 희망이 물거품으로 남자, 기존의 치료도 거부하고 퇴원을 하기로 결심한 그.

아이의 소원대로 항암제와 방사선치료가 없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 다다를 수 있는,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게 된다.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데로 여행을 하다가 한 노인을 만나 사락골의 방 한 칸에서 정착을 하며 아이에 대해 눈에 띄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그의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순간이 착각이었던 것처럼 다움이는 다시 이상 조짐이 보이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놓기 위해 병원을 떠나왔지만 예정된 수순처럼 찾아온 백혈병의 재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이었지만 다움이를 놓을 순 없었다.



다움이의 골수에 맞는 공여자를 찾게 되고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기꺼이 자신의 장기를 매매하기로 하고, 장기 거래 전 검사에서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아이의 투병, 재발, 치료비, 이혼, 종내에는 자신이 간암이라는 진단.

그는 벼랑 끝까지 자신을 몰고 가는 지독한 고통을 느끼며 다움이가 여린 몸으로 이 고통을 어떻게 견뎠는지 마음 아파했다. 대신 아팠으면 했던 마음이 애석해지도록 그 작은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병. 나는 감히 그들의 고통과 마음을 가늠하지도 못한 채 물밀듯 밀려오는 부성애와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책이든 영화든 보고 나면 며칠 동안 가슴이 먹먹해지고 유난히 여운이 오래가는 작품이 있다. 이 <가시고기> 책이 내게 그랬다. 내가 다움이 나이 또래였을 때 아버지께서 사주셨던 가시고기 책이 최근 흐름에 맞게 개정판으로 출간되었고, 이제 나이 서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그때는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던 감정들이 크게 다가왔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책 몇 권을 읽고 읽고 또 읽다가 내용이 다 외워질 때쯤 또 다른 책을 사다 주시곤 했다. 이 책을 열어 다시금 글을 써보는 순간에도 나는 아버지 생각이 났다. 이 글이 마무리될 때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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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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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은 주인공 엠마 슈타인의 유년기 시절의 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린 엠마가 두려워하는 ‘아르투어’의 존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화를 자주 내고 항상 바쁘던 아버지로부터의 애정 결핍으로 인한 외로움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독자로 하여금 ‘아르투어’가 엠마의 단순한 상상으로부터 기인한 존재인지, 실존하는 존재인지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든다.

이후 <한번 거짓말을 한 사람의 말은, 설령 그가 진실을 말하더라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라는 독일 속담이 소개말처럼 나오고 소설의 흐름은 미래로 넘어간다. 28년 뒤 엠마는 정신과 의사가 되어 정신병 강제 치료에 관한 학회를 열고, 많은 청중들 앞에서 실험의 검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학회가 끝난 후 르젠 호텔 1904호에서 연쇄 살인마 ‘이발사’라고 불리는 사이코패스에게 성폭행 당한 뒤 그녀의 탐스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밀려 버리고 유산하게 되어버리는 엠마. 그 이후 그녀는 지독한 편집증과 일상에서 마주칠지도 모를 연쇄 살인마 ‘이발사’의 존재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아담한 이층집에서만 안정감을 느끼던 어느 날, 초인종 소리와 등장한 우편배달부에게 이웃집 소포를 대신 받게 되고, 사건 이후 애써 감추려 노력했던 트라우마를 눈앞에서 다시금 마주하게 되는데…. 소포를 받고 난 후 그녀에게 일어나는 상황들은 독자로 하여금 손에 땀이 날 정도의 긴장감과 자극을 주게 만든다. 소설은 주인공 엠마가 변호사 ‘콘라트’ 와 사건에 관한 독대를 나누며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소설의 흐름에서 엠마의 생각을 굵은 글씨로 달아 엠마가 겪는 생각과 불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편집증이라고 믿고 자신을 옭아매는 병과 사건의 트라우마로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그녀는, 소포의 주인이 연쇄 살인마 ‘이발사’라고 오해하게 된다. 이웃 남자와 사랑하는 남편 필리프를 살해하고 의도치 않게 살인자로 기소된 그녀.

이 숨 막히는 모든 사건들은 마지막 순간, 콘라트와 주인공 엠마의 면회 장면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건 이후 그녀의 치료를 위해 사건을 매듭지으려 콘라트를 찾아오게 되고, 엠마는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콘라트로부터 듣게 된다.

평생 엠마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그녀를 마취시키고 강간 후 아이가 유산되고

그녀는 편집증에 걸린 미친 여자가 되어 있었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내가 후회하는 건 그 옛날에 훨씬 더 일찍 너에게 내 사랑을 고백하지 않은 것뿐이야. 그랬더라면 어쩌면 우리 둘에게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사랑해서 그랬어, 엠마. 오직 널 사랑해서 그 모든 일을 했어.

구제받을 길 없이 한 사람을 사랑하고야 만 남자. 이 모든 상황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설명되고 있었다. 사랑해서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하고 또 사랑하는 그녀를 평생토록 힘들게 만들고야 만다. 그토록 찬란하고 분명한 이유.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감정이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오싹해지게 만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쓰는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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