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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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이라는 말과 생각이 있는 곳이라 하여 그것만으로 그곳에 ‘평등한 사회’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서울대학교 사상연구소 왜 우리는 모두 평등할 수 없는가? 누구나 그렇듯 우리는 기본적으로 불평등하게 대우받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며 차별받는 것에 대해 많은 투쟁을 했고, 기본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개선된 많은 것들이 있는 반면에 여성의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위한 많은 운동들은 이제 조금씩 시작돼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부계 혈통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남아 선호 사상, 남성 위주의 사회활동과 정치 참여를 토대로 여성의 인권이나 기본권은 무시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살면서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게“, ”여자니까“, ”여자라서“라는 말을 들어 본 여성분들이 많을 것이다. 크게 생각해보면 저렇게 생각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여성으로서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인식을 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오래도록 지속 되어온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가부장권 문화 속에서 살아온 여성은 17-18세기 독일에서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힘쓰고, 이탈리아에서도 여성교육의 평등을 주장했다. 프랑스는 여성참정권 운동이 시작되었고, 영국과 미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1945년 8.15광복을 계기로 1948년 제정 헌법에서 남녀의 평등한 참정권이 인정되었으니 세계의 흐름에서는 조금 늦은 발걸음을 뗀 것이다.

장류진 <새벽의 방문자들>

하유지 <룰루와 랄라>

정자향 <베이비 그루피>

박민정 <예의바른 악당>

김현 <유미의 기분>

김현진 <누구세요?>

걸쇠가 걸리며 문이 잠기는 차가운 쇳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멈췄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마치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야, 저 사람한테 내가 보일 리 없어. 아무리 되뇌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눈동자보다도 작은 렌즈가, 커다란 유리 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밖의 남자가 자신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는 뭔가 발견했다는 듯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동그랗게 뚫려 있는 여자의 시야에 남자의 상반신이, 어깨가, 얼굴이…… 그리고 마침내 새까만 눈동자가 가득 들어왔다. 남자가, 렌즈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벽의 방문자들」중에서

앳된 임신부가 누구를 기다리는 듯 정류장 주변을 서성이다가 벤치 끄트머리에 앉았다.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던 사람이 휴대폰 벨이 울리자 벤치 앞에 멈춰 섰다. 걸으면서 담배는 피워도 전화는 못 받는지. 바람이 담배 연기를 실어 날랐다. 임신부는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전화 통화는 길었고 담배 연기도 길었다. 나라도 한마디 할까, 아니면 아침부터 일 만들지 말고 참을까, 고민스러웠다. 룰루는 손과 다리를 움찔거렸다가, 엉덩이를 들었다가 놨다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더니 결심한 듯 일어난다.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아아, 룰루, 어쩌려고? 내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룰루와 랄라」중에서

방 안에서 P는 어쩐지 말이 줄었고, 그러다 문득 영화를 보자고 했고, 소파 베드에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돌연 몸을 붙여왔다. 처음엔 갑자기 자세를 바꾸는 것처럼 조금 내 쪽으로 기대거나 소파 헤드에 얹었던 손을 아래로 내려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문득 무릎에 눕고나 팔짱을 껴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놀랐고, P를 밀어내기보다는 그의 손이 더 넘어오지 않게 하는 데에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긴장감이 한참이나 이어진 끝에 P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신경질적으로 노트북 키보드를 눌러 영화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나면 데이트는 끝이었다. P는 내게 가달라고 말하는 대신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약속이 생겼다고 했다.

---「베이비 그루피」중에서

야, 오늘은 소라무침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보라의 얼굴이 굳어진다. 지나는 보라의 눈치를 살피며 그에게 말한다. 선배, 선배 여자 친구는 그거 먹기 싫은 것 같은데. 자기가 먹고 싶은 것보다 여자 친구가 먹고 싶은 걸 시켜야지. 그는 갸우뚱하며 보라의 옆구리를 찌른다. 너 먹기 싫어? 아니잖아. 그는 보라의 대답도 듣지 않고 지나에게 웃어 보인다. 괜찮아. 얘는 다 잘 먹어. 오늘 내가 특별히 쏘는 건데. 지나, 네가 먹기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지?

어린 시절 그것을 먹고 다 게워낸 이후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말을 보라는 할 수 없다. 지나는 한숨을 쉬며 보라의 얼굴을 살핀다. 지나가 너무 찬찬히 살펴보기에 보라는 어쩔 수 없이 소라무침을 주워 먹기 시작한다. 지나는 안도한 듯 그에게로 몸을 돌려 정신없이 깔깔대며 웃는다.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므로 보라는 더 많은 소라를 먹을 수밖에 없다. 지나가 수시로 보라에게 시선을 주며 보라 넌 어때, 묻는 바람에 잔뜩 긴장한 채였다. 그는 계속 지나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막상 소라무침을 먹는 사람은 개중 보라뿐이었다.

---「예의 바른 악당」중에서

그 종이 한 장 한 장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놈 한 놈을 떠올리게 했다. 그 노랗고 작은 것들이, 그 보잘것없는 종이 쪼가리가 한데 모이자 크고 넓고 거대한 것이 이루어졌다. 많은 여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그 네모난 세계에 연결됐다. 그것이 마치 자유로의 입구라도 되는 양 환호했다. 또한 많은 남학생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루어진 그 정체불명의 세계에서 눈을 돌렸다.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내면으로 향하는 입구라도 되는 양 헐, 존나, 대박, 메갈, 꼴펨, 진지충이라는 말을 내뱉고 사라졌다. 오직 그런 말을 들어본 사람만이 거기 남아서 손가락으로 포스트잇을 가리키며 말했다. -국어 -수학 -체육 -영어

---「유미의 기분」중에서

결혼은 닥쳐봐야 안다면서 그때 단호히 거절했어야 했다. 하지만 거의 범죄 수준으로 멍청했던 나는 그저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둘의 사랑이 담긴 공동 통장’이라는 말에 눈이 멀어 내가 들던 적금도 해약해 그놈의 ‘공동 통장’에 내놓았던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 계좌의 예금주는 바로 이재영! 원래부터 이럴 속셈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월급날마다 현금을 직접 인출해서 자신에게 주길 원했다. 그게 뭔가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줘서 정이 간다나? 그때는 그저 아 현금이 편해서 좋은가 보다, 하고 그냥 그 말을 들었던 과거의 내 뺨을 이 미친년, 하면서 사정없이 후려치고 싶다. ---「누구세요?」중에서

의 단편집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지만 사실도 되는 책이다. 우연히 ‘현남 오빠에게’를 읽고 난 뒤 서점에 가면 페미니즘 소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자연스럽게 여성의 기본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을 뿐인데 이렇게 작은 관심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한 작은 관심을 가진 나는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성 평등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페미니스트 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요즘에는 페미니즘을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운동으로 하시는 분들도 많다. 대게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즘도 많다고 본다. 이러한 페미니즘 운동으로 작게는 주류회사에서 나오던 반라 여성 모델의 ‘민망한 달력’도 2019년부터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 달력들이 여성의 성 상품화로 보는 소비자들이 많아지자 다른 사진으로 만든 달력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미투 #Me too 운동, 혜화역 시위까지 여성의 소리를 내는 많은 운동들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렇듯 페미니즘 도서를 구매하고 이러한 관행은 잘못되었구나. 이 상황에서 나는 성차별을 받아온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페미니즘 역사를 써가는 길에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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