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산지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뿐이고,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뿐이죠.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바로 아빠예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까먹은 걸까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요. 아빠 말대로 속이 시원할까요.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새끼 가시고기들이 떠난 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 가시고기 말이에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슬프고 또 슬퍼서, 정말로 아빠가 사고기처럼 될지도 몰라요. 만일 내가 엄마를 따라가게 된대도 아빠가 쪼금만 슬퍼했으면 좋겠어요.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까요.

p. 333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그에 대한 추억조차 없는 작가는 유년시절부터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비난과 동정을 받으며 아버지에 대한 존재를 지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부정에 대한 소설을 썼다. 가시고기 아빠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가시고기>는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가족에 대한 소중함,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숭고함을 상기시키는 기회를 주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이가 급성임파구성 백혈병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다움이 아빠의 시점과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아빠를 사랑하는 다움이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서로의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어 더욱 몰입되고 가슴 아픈 이야기.



모든 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엄마가 자기 인생을 찾아 아빠와 이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엄마가 떠난 뒤 매일을 술로 지새웠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나 ‘다움’이가 아프기 전까지의 일이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치료를 거부하는 아이를 나무라며 모질게 구는 성호 엄마와 다움이 아빠. 아이가 병을 이기는 것. 단 하나의 간절한 소망으로 모든 것을 버티고 있는 순간이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감당하기 어려워진 병원비까지 그를 괴롭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돈을 빌려달라는…. 목구멍에서 맴도는 말을 자존심 버려가며 친구에게 부탁하고 거절당한 뒤의 막막함은 다움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의 외로움과 처절한 현실을 보여준다.



돈이 된다면 그의 진정성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하기를 원하는 그의 모습을 옛 친구는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지만, 밥을 굶으면서 막노동을 하면서, 고깃배를 타면서 산을 타면서 사모은 시집을 기꺼이 팔 생각을 한다. 그게 현실이었다.

골수이식의 희망이 물거품으로 남자, 기존의 치료도 거부하고 퇴원을 하기로 결심한 그.

아이의 소원대로 항암제와 방사선치료가 없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 다다를 수 있는,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다른 세상을 향해 떠나게 된다.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데로 여행을 하다가 한 노인을 만나 사락골의 방 한 칸에서 정착을 하며 아이에 대해 눈에 띄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그의 희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순간이 착각이었던 것처럼 다움이는 다시 이상 조짐이 보이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놓기 위해 병원을 떠나왔지만 예정된 수순처럼 찾아온 백혈병의 재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이었지만 다움이를 놓을 순 없었다.



다움이의 골수에 맞는 공여자를 찾게 되고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기꺼이 자신의 장기를 매매하기로 하고, 장기 거래 전 검사에서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아이의 투병, 재발, 치료비, 이혼, 종내에는 자신이 간암이라는 진단.

그는 벼랑 끝까지 자신을 몰고 가는 지독한 고통을 느끼며 다움이가 여린 몸으로 이 고통을 어떻게 견뎠는지 마음 아파했다. 대신 아팠으면 했던 마음이 애석해지도록 그 작은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병. 나는 감히 그들의 고통과 마음을 가늠하지도 못한 채 물밀듯 밀려오는 부성애와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책이든 영화든 보고 나면 며칠 동안 가슴이 먹먹해지고 유난히 여운이 오래가는 작품이 있다. 이 <가시고기> 책이 내게 그랬다. 내가 다움이 나이 또래였을 때 아버지께서 사주셨던 가시고기 책이 최근 흐름에 맞게 개정판으로 출간되었고, 이제 나이 서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니 그때는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던 감정들이 크게 다가왔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책 몇 권을 읽고 읽고 또 읽다가 내용이 다 외워질 때쯤 또 다른 책을 사다 주시곤 했다. 이 책을 열어 다시금 글을 써보는 순간에도 나는 아버지 생각이 났다. 이 글이 마무리될 때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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