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주인공 엠마 슈타인의 유년기 시절의 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린 엠마가 두려워하는 ‘아르투어’의 존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화를 자주 내고 항상 바쁘던 아버지로부터의 애정 결핍으로 인한 외로움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독자로 하여금 ‘아르투어’가 엠마의 단순한 상상으로부터 기인한 존재인지, 실존하는 존재인지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든다.

이후 <한번 거짓말을 한 사람의 말은, 설령 그가 진실을 말하더라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라는 독일 속담이 소개말처럼 나오고 소설의 흐름은 미래로 넘어간다. 28년 뒤 엠마는 정신과 의사가 되어 정신병 강제 치료에 관한 학회를 열고, 많은 청중들 앞에서 실험의 검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학회가 끝난 후 르젠 호텔 1904호에서 연쇄 살인마 ‘이발사’라고 불리는 사이코패스에게 성폭행 당한 뒤 그녀의 탐스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밀려 버리고 유산하게 되어버리는 엠마. 그 이후 그녀는 지독한 편집증과 일상에서 마주칠지도 모를 연쇄 살인마 ‘이발사’의 존재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아담한 이층집에서만 안정감을 느끼던 어느 날, 초인종 소리와 등장한 우편배달부에게 이웃집 소포를 대신 받게 되고, 사건 이후 애써 감추려 노력했던 트라우마를 눈앞에서 다시금 마주하게 되는데…. 소포를 받고 난 후 그녀에게 일어나는 상황들은 독자로 하여금 손에 땀이 날 정도의 긴장감과 자극을 주게 만든다. 소설은 주인공 엠마가 변호사 ‘콘라트’ 와 사건에 관한 독대를 나누며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소설의 흐름에서 엠마의 생각을 굵은 글씨로 달아 엠마가 겪는 생각과 불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편집증이라고 믿고 자신을 옭아매는 병과 사건의 트라우마로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그녀는, 소포의 주인이 연쇄 살인마 ‘이발사’라고 오해하게 된다. 이웃 남자와 사랑하는 남편 필리프를 살해하고 의도치 않게 살인자로 기소된 그녀.

이 숨 막히는 모든 사건들은 마지막 순간, 콘라트와 주인공 엠마의 면회 장면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건 이후 그녀의 치료를 위해 사건을 매듭지으려 콘라트를 찾아오게 되고, 엠마는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콘라트로부터 듣게 된다.

평생 엠마를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그녀를 마취시키고 강간 후 아이가 유산되고

그녀는 편집증에 걸린 미친 여자가 되어 있었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내가 후회하는 건 그 옛날에 훨씬 더 일찍 너에게 내 사랑을 고백하지 않은 것뿐이야. 그랬더라면 어쩌면 우리 둘에게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사랑해서 그랬어, 엠마. 오직 널 사랑해서 그 모든 일을 했어.

구제받을 길 없이 한 사람을 사랑하고야 만 남자. 이 모든 상황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설명되고 있었다. 사랑해서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하고 또 사랑하는 그녀를 평생토록 힘들게 만들고야 만다. 그토록 찬란하고 분명한 이유.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감정이 소설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오싹해지게 만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쓰는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