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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 마이어 : 컴퓨터 게임과 함께한 인생
시드 마이어.제니퍼 리 누넌 지음, 이미령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1년 6월
평점 :
최근에 읽은 시드 마이어 : 컴퓨터 게임과 함께한 인생!
이라는 오묘한 제목의 책이다. 중간에 콜론과 마지막에 느낌표까지...독특하다 못해 기묘한 느낌까지 들 정도의 제목이다. 과연 '폐인 양성 게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게임 문명 시리즈를 개발한 시드마이어의 전기답다.' 라고 할 수 있겠다.
책 표지가 참 예쁘다.
홀로그램으로 박이 들어가 있는데(일명 홀박) 고대와 중세와 현대와 미래까지 아우르는 듯한 이미지의 연결이 상징성도 있고 무엇보다 예쁘다.
내가 요새 집착 수준으로 홀로그램 앓이 중이라서 사진을 수십장을 찍어봤는데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의 1/100000도 담아내지 못해서 아쉬웠다.
두께도 꽤 두껍고 종잇장이 얇아서 내용이 꽤나 튼실하게 담겨 있었는데, 특히 시드마이어가 직접 써서 그런지 내용도 쓸데없는 부분 하나 없이 알차게 기록되어 있어서 좋았다. (시드마이어씨도 하고 싶었던 말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다)
게이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게임을 잘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문명> 이라는 게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현재 6편까지 나온 역사기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고대에서부터 미래까지 전세계의 국가들의 지도자가 되어 문명을 발전시키는 게임이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 중 단 한편 문명5를 플레이한 시간이 무려 10억 시간이라는 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드마이어가 게이머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문명 시리즈 전체도 아니고 단 한 개의 시리즈의 플레이 시간이라니!)
다른 건 차치하고 이 게임의 중독성이 어마어마해서 게임을 붙잡는 순간 몇 시간, 몇 십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3대 악마의 게임, 이혼 제조기, 타임머신 등으로 불리고 있다.
나도 문명 시리즈와 상당한 악연이 있는데 대학교 1~2학년 때 문명2에 빠져서 학사경고를 맞았으며 문명5를 하느라 한달 동안 직장을 결근했던 경험이 있다.(...)
(악마의 게임 중 나머지 2개는 피파매니저 시리즈,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로... 역시 푹빠졌었음)
당연히 재미있고, 훌륭한 게임이며 기존의 게임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제작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게임이라서 게이머들과 평론가들에게 항상 화제거리가 됐었던 게임이다.
그리고 문명을 즐겼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지만 나는 특히 이 게임을 만든 시드 마이어 에게 굉장한 관심이 있었는데 시드마이어야말로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로써 궁극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닌가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고 자신의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굉장히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대부분 해소되었고,
최근 몇 년간 '좋아하는 것들을 일의 영역에서 접근해야 할 때 어떻게 하면 처음의 설레임과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라는 부분에 대해 고민 중이었는데 시드 마이어의 이야기가 마치 모범답안처럼 다가와서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자기계발서나 위인전기보다 훨씬 배울 점이 많았던 책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서문에서부터 느껴지는 시드마이어의 위트.
짧은 단어들로 구성된 목차, 왠지 이런 부분에서도 시드마이어 특유의 감성(?)이 전달되는 듯 하다.
중간 중간 게임의 튜토리얼 설명창 같은 부분이 있는 것도 유쾌하다.
게임과 평생을 함께한 시드 마이어의 인생을 그가 개발한 게임들을 곁들여 자세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문명 시리즈 뿐 아니라 그가 개발했던 다양한 게임들도 소개되고 있다. 사실 미국의 1990년대의 게임들을 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올드 게이머들 뿐일텐데, 나 같은 사람들도 플레이 해보기 쉽지 않았던 희귀한 게임들도 실려 있다.
지금은 문명의 아버지로 불리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 시드마이어지만 초기에는 부족한 자금과 적은 인원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초기의 마이크로프로즈는 개발자 1명(시드마이어)과 판매원 1명(빌)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제품 패키지도 디스크를 사다가 직접 복사해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이런 초창기 뒷얘기들이 특히 재미있고 어릴 때 게임 잡지에서 봤었던 90년대의 게임 패키지 사진이나 게임 기사들을 보니 추억도 생각났다. (내가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도 플로피 디스크 조차 상용화되기 전이라 OMR 카드 같은 곳에 천공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곤 했다)
그리고 게임을 개발하고 사업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흥미로웠는데, 부드럽고 위트있게 풀어내는 이야기들 중에 송곳처럼 찔러오는 시드마이어의 일에 대한 철학들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특히 이 부분
게임 디자이너는 그런 결정 과정을 즐겁게 만들 책임이 있다.
어떤 대상이든 어딘가 매력을 감추고 있으므로 무언가를 재밌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미를 찾아내는 것이 게임 디자이너의 주된 임무다.
이런 부분은 게임 디자이너 뿐 아니라 창작활동을 하는 모든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라서 크게 와 닿았다. 나도 그 동안 항상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야한다는 부담이 많았는데 시드마이어의 말처럼 반대로 이미 존재하는 매력을 찾아내고, 나만의 방식으로 드러내서 재미있고 보기 좋게 만들면 되는 것이구나 라는 식으로 일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되었다.
나의 학창 시절과 젊음의 시간 중 상당한 부분을 가져가버린 게임의 개발자 시드마이어.
하지만 그가 남긴 인생관과 일에 대한 철학들은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 있어서 그가 가져가 버린 시간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게임에서도 역사적 사실외에도 전략적 사고같은 많은 것을 배웠다.)
시드마이어를 기리는 마음으로(안죽음) 최근에 할 게 너무 많아서 봉인해놨던 문명 시리즈의 최신작 문명6를 오랫만에 다시 플레이 했다.
아참,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게임이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문명 6편은 5편만큼 중독성이 강하지 않아서 살짝 아쉽기도 하고 안심하기도 했다.
문명7은 다시금 악마의 게임으로 돌아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