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감기에 걸려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가계부를 보니 병원비와 약값 목록이 늘었다. 아프지 않고 겨울을 버틴다는 건 어려운 일이구나 실감했다. 겨우 감기를 다스리고 나니 이내 찾아온 건 몸살이었다. 아침마다 어긋난 뼈를 맞추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다행히 몸에는 뼈들이 어디 도망가지 않고 잘 붙어 있었다. 안녕, 척추뼈야 팔뼈야. 인사하고 정신을 차리고 물을 한 잔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남쪽 나라 도시에는 비가 내리고 미세 먼지가 찾아왔다. 우울해지다가도 한순간 마음이 밝아지는 시간이었다. 고독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마음은 그런 식이었다.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고 결별을 말하는 연인처럼 내내 알 수 없음의 마음 상태를 유지했다.


  고독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고 쓸 수 있던 건 그 와중에도 책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란 인간은 자주 불안에 시달리다가도 한 권의 책을 읽으면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는 것이다. 손홍규의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을 읽으며 한 주를 버텨 나갔다. 「문학은 소다」로 문을 여는 산문집은 성실한 소설가의 글쓰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살았던 시골에서 소는 위대한 유산이었다. 때 되면 사람 보다 밥을 먼저 챙겨 먹이는 식구였고 한 소년의 유년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나이가 들면 트럭에 실려 팔려 나가는 걸 묵묵히 받아들일 줄 아는 말 없는 천사였다. 소설가 손홍규의 문학의 시원을 찾아 들어가면 구석에는 소가 있었다.


  외아들이었던 그에게는 고모의 형제들과도 막역하게 지냈던 기억이 자리 잡는다. 고모의 부음을 받고 돌아간 시골에서 그는 고모의 형제들과 한 번 더 만난다. 죽음은 사람을 고향으로 불러온다. 누군가는 곡을 하고 누군가는 애써 그이의 죽음을 외면한다. 죽음이 너무 깊어서. 어떻게 이별을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얼굴을 돌려 버리는 것이다. 소설가가 겪은 최초의 죽음에의 경험은 한 방을 쓰던 할머니와의 이별이었다. 아홉 살 때 돌아가신 그이의 죽음 앞에서 그는 어렸다고 그래서 슬픔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이유로 죽음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고 쓴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에는 소설가 손홍규가 살아온 유년의 기억이 담겨 있다. 유년을 지나 청년의 기억도 애써 부려 놓는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그는 서울로 간다. 밤이 되면 돌아갈 집이 없는 운명의 시간을 그는 청년 시절 내내 겪어 낸다. 쥐가 새끼를 치는 소파에서 잠을 자고 토사물이 묻은 이불을 덮고 찬 기운을 이겨냈다. 이곳저곳을 떠도는 동안에도 그는 문학을 하겠다는 열망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후에 그는 이스탄불을 방문해 노 작가와 마주해 그가 문학을 해야 하는 당위를 받아들인다.


나는 그저 그의 서재에서 그와 비스듬히 마주 앉은 채 넓은 창 바깥으로 펼쳐진 보스포루스해협을 이따금 바라보았을 뿐이다. 귓가에 매달린 그의 목소리와 창을 통과하면서 부드러워진 오후의 햇살과 뱃고동 소리. 건너편 유럽 지역의 옛 건물들과 성이 아련했다. 나는 공산주의자다. 이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뭐가 무서워 감추겠느냐.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말라. 문학은 바로 네가 선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거다.

(손홍규,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中에서)


  어디에서든 문학을 하겠다는 마음을 놓지 않았던 청년은 소설가가 되었다. 어두운 저녁 동네 어른이 찾아와 아버지가 사고 났다는 소식을 알려온 그 시간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독자인 나는 해가 저물고 소가 울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던 그 저녁으로 소설가의 탄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탈곡기에 아버지의 손이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소년은 그게 무슨 사고인지 몰라 겁을 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 집안에 어른이 없을 때 해야 하는 행동을 했다. 할머니 상전에 밥을 해 김치와 함께 올렸다. 그리고 소가 울었다. 우는 소를 위해 여물을 쑤어 주었다. 기다렸다. 부모님이 돌아오시기를. 아버지는 한 손가락만을 잃었고 그 후로도 농사를 지었다. 장갑을 쓸 때는 손가락이 없는 쪽을 잘라서 썼다.


  아버지의 다친 손을 보며 문학은 시작되었다고 쓰면 과장일까.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에는 한 사람이 문학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꿈을 꾸고 이루어낸 과정이 담겨 있다. 그의 이상문학상 수상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의 제목처럼 그는 소설가가 된 꿈을 꾼 것일까. 그는 쓴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쓰러지고 슬퍼한 자리에서 문장은 시작된다고. 아버지의 잘린 손가락의 빈자리를 더듬으며 시작한 글쓰기는 그를 문학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내가 졸업한 대학에 소설을 가르치러 왔었다. 그때 나는 문학에 한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졸업은 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걸 내세우며 산다는 게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진작에 깨달은 상태였다. 일주일에 한 번 소설을 가르치기 위해 그는 버스를 갈아타고 기차를 타고 그렇게 물 건너 산 넘어왔다.


  그의 소설처럼 그는 성실한 선생이었다고 한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고 간절히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 멀리서 나는 그의 책을 사 모으고 그가 부디 소설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소설가가 되었으면 하고 응원했다. 소설가의 시간은 소설로써 증명된다. 그는 내가 문학과 다투고 토라져 있는 사이에도 부지런히 소설 쓰는 노동자로 살아갔다. 소설가임에도 소설을 쓰는 시간이 없어 황망해 하던 그는 소설을 쓰고 사이사이 산문을 쓴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와 짧은 만남을 가지고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약국으로 가면 된다. 꼬박꼬박 시간을 지켜 약을 먹고 밥을 먹는 동안 몸은 나아간다. 그렇다면 마음은?


  딸아이가 아픈 팔을 스스로 달래는 모습을 보는 아버지.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세상에는 몸이 아닌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 많아질 것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얼굴로 써 내려간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에는 우리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소설가의 위로가 담겨 있다. 얼굴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어도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독한 이 세계에는 고독한 우리가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으로 삶의 의무를 다하면 된다. 그곳에서 문학은 시작된다. 그래서 아픈 오늘은 괜찮은 내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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