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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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병모는 단편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에서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의 세계를 묘사했다면 장편 『네 이웃의 식탁』은 공동체의 선한 힘으로 가장한 모욕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저출산으로 인구 절벽으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에서 시골로 발령받은 젊은 부부는 아이를 낳기 위해 교통의 불편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한다. 『네 이웃의 식탁』은 저출산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흥미로운 정책을 가져온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자녀가 한 명 이상은 있어야 하는 가구를 대상으로 새로 지은 공동주택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정책이다. 입주 조건은 까다로워서 챙겨야 할 서류가 한 뭉치이다. 서울의 치솟는 전세가를 감당하지 못한 조효내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신청서를 냈다가 당첨되었다. 공동주택에 들어가기 전 쓴 자필 서약서에는 자녀를 최소 셋 이상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 명시되었다. 


  조건은 대략 이렇다. 자녀가 1인 이상 있어야 하는 인구 생산 능력이 증명된 만 42세 미만의 한국인 이성 부부. 부부 둘 중 한 사람만 직장에 다녀야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한 최적의 조건들로 제시된 공동주택의 입소 조건은 까다로운 듯 까다롭지 않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맞벌이로 해석하는 조항은 그렇다 치고 공동주택에 살면서 십 년 이내에 아이를 셋으로 만들어야 하는 조건에서는 고개를 흔들겠지만 신청률은 높았다. 무섭게 오르는 집값이 조항의 불합리함을 이겼다. 


  모두 열두 가구가 들어올 수 있는 공동주택에 이미 세 가구가 들어와 있다. 소설은 뒤뜰 식탁에 모여 새로운 부부 전은오, 서요진의 입주를 환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른 열여섯, 아이 예닐곱은 앉을 수 있는 거대한 식탁은 경비가 남아서 들인 게 아닌 목적이 분명한 것으로 보였다. 이미 입주해 들어와 있는 홍단희, 신재강 부부. 전날 그림 작업으로 빠진 조효내를 제외한 손상낙과 고여산, 강교원 부부가 새로 온 부부를 축하해 주고 있다. 


  준비하는 영화가 엎어지는 바람에 집에 있는 전은오. 사촌 언니의 약국에서 카운터 일을 봐주는 서요진. 사람들은 처음 만난 그들의 직업과 현재 사회적 포지션을 거리낌 없이 물어온다. 카운터에서 처방전을 입력하고 약을 찾아주는 일을 한다는 서요진의 일에 대해 자신들이 느끼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들에게서 서요진은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대체 내가 느끼지도 않은 감정을 어떻게 추출할 수 있단 말인가. 전은오와 서요진 부부는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서 꿈과 미래를 찾기 위한 실험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은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악의 없는 간섭과 희생을 조롱한다. 각자의 집에 살아가는 입주민인데 마치 한 집에 사는 가족처럼 대하는 홍단희. 쓰레기 분리수거 날에 내려와서 함께 하지 않는다고 초인종을 누르고 조효내를 찾아가는 대담성을 보이는 홍단희. 차가 고장 나 어쩌다 카풀을 함께 하는 것뿐인데 서요진에게 은근한 추파를 던지는 신재강. 우리가 남이 가라는 사상에 물든 그들은 아이를 모아 놓고 공동육아를 하자는 제안까지 하기에 이른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하는 요원한 사이인 친척보다 옆집, 앞집에 사는 이웃이 더 가깝다는 말인데 이웃이 가까워지는 순간 하우스 스릴러가 펼쳐진다. 부엌에 숟가락 몇 개까지 다 안다는 게 친밀함의 표현이긴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진다. 대체 싱크대 안에 넣어 두었던 숟가락을 언제 세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밥 먹으러 커피 마시러 올 때 도와주려고 제 집처럼 부엌살림을 눈여겨봤을 수도 있지만 그 집 싱크대에 물 때 낀 거 보니 여자가 게을러 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구병모의 단단한 문장과 함께 꿈과 미래를 위해 실험에 참가한 공동주택에 입주한 네 이웃의 일상을 촘촘하게 관찰할 수 있다. 사람들이 둘 이상 모이면 가질 수 있는 은근한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소설은 묘사한다. 직업이 뭐냐, 어디에서 일하냐. 애는 왜 하나냐 또는 왜 애는 없냐. 언제 낳을 거냐. 궁금하지도 않은 척 물어대는 질문의 끝에는 제멋대로 판단하고 정의 내리는 호기심으로 살아가는 홍단희들이 있다. 완장 하나를 차고서 자신이 만든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막무가내의 이웃들이. 


  네 이웃의 식탁에서 펼쳐지는 염탐 호기심 충만 스릴러의 세계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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