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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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카 고타로도 아베 정부에 대해 어지간히 화가 났나 봅니다. 이런 소설을 쓴 걸 보면.

 어떤 소설이냐구요? 이번에 나온, 2015년 작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란 소설입니다. 놀랍게도 자경단인 히어로 물이에요. 표지에 점잖게 앉아 있는 인물이 바로 정의의 히어로입니다. 눈만 내 놓은 스키마스크를 쓰고 검은 라이더 복장을 입은 채 목검과 수수께끼의 작고 둥근 물체를 던지며 싸우죠(그 물체의 정체에 대해서는 함구하겠습니다. 이건 읽으면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라서^^) 그것도 북한의 '5호 감시제'나 다를 바 없는 감시와 숙청이 마구 자행될 정도로 한 순간에 비민주주의 국가가 되어버린 일본을 상대로 말이죠.



 소설 속 일본에 대해 보다 자세히 말한다면 이렇습니다. 갑자기 테러를 막는다며 '평화 경찰'이라는 게 창설됩니다. 이 아이디어를 낸 것은 야쿠시지 경시장(일본 경찰 계급 중 서열 4위). 그가 '평화경찰'을 만든 장본인이죠. 이름을 '야쿠자'에서 살짝 빌려왔는데 거기서 이 평화경찰이 정말은 어떤 조직인지 힌트를 주고 있네요. 이들은 실제 테러를 일으킨 사람들을 잡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테러를 일으킬 만한 인물들을 잡아들이는 게 목적입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왔던 범죄 예방 시스템과 비슷한 역할이죠. 그러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선 틀림없이 이뤄지는 예언이라는 근거라도 있었지, 이들의 예방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아무나 닥치는 대로 잡아들일 뿐입니다. 일단 잡아들이고 나서 온갖 비인도적인 고문을 통해 죄를 자백하게 하고 또 다른 이들을 고발하게 만든 다음 광장으로 데려가 시민들이 다 지켜보는 자리에서 길로틴으로 참수시키죠. 그리고 참수된 이의 입에서 나온 사람을 또 잡아들이고. 그런 과정의 무한 반복입니다. 이쯤 되면 '허걱!' 하지 않을 수 없겠죠?


 뭔가 데자뷔가 느껴지신다구요? 어디선가 한 번 본 것 같다구요? 네, 맞습니다. 안타깝게도 여기엔 많은 역사의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중세의 마녀사냥이 그랬고, 스탈린 체제에서의 소련이 그랬으며, 50년대 미국의 메카시즘이 그랬죠. 물론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 시절 서북 청년단에 의해 자행된 '빨갱이 사냥'이나 무려 30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군인과 경찰에 의해 학살된 '보도 연맹'사건이 그것이죠. 이 압도적이며 남다른 희생자 규모를 보면 이승만과 그의 위세를 등에 입은 친일파들이 얼마나 악질적인 놈들인지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승만을 국부로 받들자고 하는 사람들은 스탈린을 국부로 받들자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괴물을 국부로 만들자굽쇼? 국격을 '똥격'으로 내팽개치고 싶은 겁니까?


 앗,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런 미친 놈들이 설치던 나라에 살아서 저도 모르게 그만 이사카 고타로에게 빙의해 버렸네요. 얼른 퇴마의 주문을 외우고 제 정신을 회복한 다음 본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이런 일본을 그리고 있으니, 그러면서 히어로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잘못이라는 걸 드러내고 있으니, 분명 이사카 고타로가 아베 정부를 향한 분노에 차서 이런 소설을 썼구나 생각하는 거죠. 왜냐하면 소설 속 일본은 현재 아베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것의 핵심을 조금 극단적으로 드러낸 것일 따름이니까요. 경찰 이름이 하필이면 '평화 경찰'이라는 것에서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 이름을 다른 무엇도 아닌, 아베가 정권을 잡고 나서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기 위해 내내 수정하려 했던 '평화 헌법'에서 차용한 걸 보면.


 이 소설이 2015년에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 해 아베는 일련의 법안들을 패키지로 통과시켰습니다. 무려 과반수의 국민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흔히 '안보 법안'이라 부르는 그 것은 한 마디로 자위대가 외국에서 수시로 PKO(평화유지활동)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법입니다. 이처럼 그들의 PKO가, 일본은 평화유지활동이라고 하지만 실은 평화가 아니라 자신의 전쟁 야욕을 위한 활동이듯, 소설 속 '평화경찰'도 사회의 평화를 유지한다고 주창하지만 모두의 평화가 아니라 그들의 평화만 지킬 뿐이죠. 네, 맞습니다. 소설 속 '평화경찰'은 실은 아베가 상시화 하려는 PKO 입니다. 그 '평화경찰'이 소설에서 완전 싸이코패스에다 가학적 성향으로 가득한 악당으로 설정되었으니 이보더 더 PKO에 대한 비판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게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반골 기질이 강한 '이사카 고타로'로서는 시쳇말로 빡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아마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목검을 들고 내려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보다 심하게 내려친 곳은 그것을 자행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런 짓을 뻔히 보고도 가만히 있는 국민들의 정수리가 아닐까 해요.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알고는 있지만 아직은 내게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이토록 비민주적인 작태를 내버려 두는 사람들. 바로 그런 청맹과니와 같은 시야와 무심함이 결국엔 소설 속 같은 비극적인 파국을 낳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보자면, 이 소설은 작가에게 문학이라기 보다는 죽비와 같은 것이겠네요. 자신의 삶과 직결된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수동적인 독자들의 정신을 세차게 일깨워 보다 관심을 갖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만들기 위한.


 저도 참 달게 받았고 덕분에 잠시 졸음에 빠지듯 놓아버렸던 관심과 참여의 결기를 다시 벼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목인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도 이제 달리 보이네요. 소설에서 이 제목은 저항하려는 이들에게 시대의 순리에 따르라는 말로 사용되는데, 지금은 전혀 반대의 의미로 보입니다. 이렇게 말이죠.

 '시대가 이렇게 망가지고 있는데, 네 일 아니라고 내버려 둘 거야? 넌 화성에서 살 수 있는 모양이지? 그게 아니라면 살기 좋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 당장 너부터 뛰어들어."


 저도 화성에서 살 수 없으니 당연히 이사카 고타로가 내어주는 목검을 받아야 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어떤 것이 과연 더 현명하게 대처하는 태도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라도 한 번 읽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자꾸 이런 말을 하는 바람에 혹시 소설이 지루할 것 같은 인상을 받으셨다면 결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야기는 492페이지를 한달음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밌습니다. 히어로 물에서 기대하는 활극도 넘치구요. 깊이와 재미가 모두 잘 우러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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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04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켄 로치가 은퇴 선언했다가 영국의 보수 정권이 득세하자 다시 영화 만드는 것처럼^^

ICE-9 2017-09-06 14:44   좋아요 1 | URL
그런 시기에 켄 로치가 더 좋은 영화를 만든 것을 보면 나쁜 정치 환경이 예술가들에겐 때로 순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사카 고타로도 그렇게 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