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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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발소에 대한 기억이 그리 좋지 않다. 어릴 때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깎았다. 그런데 엄마가 억지로 끌고 가지 않으면 절대 가지 않았다. 이발소 아저씨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아 잠시 움직이는 것도 가만히 못 보는 그 사람은 내가 꼼지락거릴 때마다 역정을 내었다. 고약한 성미가 가위 질에도 들어가 마구 잘라내는 것 같아서 귓가에 들리는 탁탁 하는 소리가 자못 무서웠다. 조명도 그리 밝지 않은 데다 별로 깨끗하지도 않았던 이발소는 그 무렵 퇴락해가고 있던 동네 목욕탕과 더불어 내가 범접하지 말아야 할 공포의 2대 공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제목에서부터 이발소가 떡 하니 나와 있던 '무코다 이발소'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읽게 되었던 것은 작가가 '오쿠다 히데오'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가의 '남쪽으로 튀어'를 정말 좋아하고 그 작품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이후, 최근 '나오미와 가나코'까지 그의 작품을 자주 만나왔는데 아직 이렇다 할 실망을 별로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믿고 읽어 본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소설은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서 예리하게 사회 문제를 들춰내는 한 편, 그것에 보편적 공감마저 이끌어내고 있어 마음에 든다. '무코다 이발소'는 제목 그대로 이발소를 중심으로 그려가는 한 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마을의 이름은 도마자와. 도미자와는 겨울만 되면 눈이 지천으로 높이 쌓이는 훗카이도에 있다. 예전엔 광산이 있어 제법 흥했지만 오래 전에 광산이 모두 문들 닫은 지금은 마을의 활력이 많이 사라져, 좋지 않은 재정 여건 속에서 젊은이들은 대부분 근처 삿포로나 다른 대도시로 떠나고 노후를 보내는 늙은이들만 남아 고인 시간 속에서 조용히 쇠락해 가고 있는 중이다. 마을에 남은 청년들과 면의 관리들은 그래도 마을을 부흥시키려 이런 저런 노력을 해 보는 형편이지만 한 번 꺼져버린 심지는 쉽사리 타오르지 않는다.



 이런 마을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 있는 지라 읽다보면 소설 속 이야기가 결코 우리와 그렇게 먼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도마자와는 지금 우리나라 시골 마을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가끔 우연히 TV를 통해 그런 마을에 사는 사람들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그 때 도대체 저 곳의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보낼까 궁금했었다. 그 속마음을 이번 '무코다 이발소'를 통해 조금 이해하게 된 것도 같다. 물론 마을이 처한 보편적인 상황도. 어쨌든 무코다 이발소는 그런 마을에서 무려 60년 넘게 존속하면서 마을의 소통 공간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한 마디로 터줏대감이라 할 만하다. 그런 이발소를 꾸려가는 사람은 무코다 야스히코다. 그는 원래 도시에 직장을 얻어 마을을 떠났던 사람인데,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이발소 일을 못하게 되자 그대로 낙향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발소 일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자진해서 가업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낙향했던 것은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즉 그의 낙향은 한 마디로 도피였다. 할 수만 있었다면 그는 낙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유년 시절은 도마자와의 쇠퇴기와 그대로 겹쳐서 그에게 도마자와는 늘 종말을 향해가는 마을의 이미지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발소에 대한 애정도 그닥 없어서 그렇지 않아도 수입도 별로 없고 장래도 그리 없는 이발소를 그는 늘 정리하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뒷목을 잡는 일이 생겼다. 대도시에 직장을 가져 마을을 떠났던 아들이 마을을 다시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이발소 가업을 이어 받겠다며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당연히 그는 그런 아들이 못마땅하다. 아들은 자신과 다르게 넓은 세계로 나아가 잘 적응하며 살게 되길 바라건만 아들은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무코다 이발소'는 바로 이 야스히코를 중심으로 하여 모두 6개의 단편이 모여 있는 일종의 연작 소설이다.


 책 내용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마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 있었던 야스히코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마을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오쿠다 히데오 최고의 매력으로 생각하는 '넘치는 현실감'은 이 소설에도 여전하여서 일본 시골 마을의 문제점을 생생히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 두 번째 단편 '축제가 끝난 후'가 인상 깊었다. 친지나 친구들을 보면, 치매와 같은 환자가 발생하면 가족들이 정말 힘들어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 단편은 바로 그런 상황을 매우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단편은 우리보다 훨씬 빨리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 사회가 곧 직면하게 될 문제를 생생하고 깊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층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최근 유력한 대권 주자인 문재인이 치매는 개인이나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서울에 편중된 국공립 치매 전문 기관을 지방에도 늘리고 그 수도 대폭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는데, 이렇게 국가적인 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바로 이 단편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오쿠다 히데오도 아마 그런 식의 대응을 일본에게 바라는 마음에서 썼을 것이다. 이 소설은 어둡기 보다는 밝고,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인데 그렇다고 해서 오쿠다 히데오가 현재 일본이 가진 문제점을 꼬집는데 주저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세 번째 단편 '중국에서 온 신부'는 아직도 짙게 남아 있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정직하게 드러내며 그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도록 권유한다.


 이렇게 여섯 단편을 읽고 있으면 오쿠다 히데오가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조금 짐작하게 된다. 소설이 하고자 하는 말이 꼭 '시골 마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 오쿠다 히데오에게 도마자와는 일본 전체인 것 같다.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하고 쇠락해가고 있는 도마자와의 모습은 그대로 현재 일본과 겹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로 많은 젊은이들이 이제는 생존을 위해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 것 역시 별 것 없는 마을을 떠나는 도마자와의 젊은이들과 닮아있고 말이다. 근본적으로 '무코다 이발소'는 현재의 일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위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일본 국민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우려와 불안이 날로 증가해서인지 일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책, 드라마, TV 프로그램들이 잔뜩 늘어났다고 한다. 하나같이 일본의 좋은 점과 그들의 가능성을 자랑하며 내일이 매우 밝다는 것을 강조한다. 화려한 영광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고, 그것을 나타내는 심지는 언제든 불 붙일 수 있다고 말이다. '무코다 이발소'도 거기에 약간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약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무코다 이발소'는 그래도 냉정한 현실 인식과 문제점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걸 밝히기 위함이다. 이런 경향의 대부분의 책과 프로그램은 그런 것 없이 그저 장점과 가능성만 과장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예리한 현실 비판이 매력적이었던 오쿠다 히데오마저 이런 소설을 썼다면, 현재 일본인들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어둡고 불안한지 간접적으로 증명되는 것 같다. 소설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어두우면, 그 위안이랄까 응원이랄까 아무튼 그런 동기로 자신의 작품이 까만 어둠 속에서 반딧불처럼 작은 희망이 빛이라도 되어 사람들이 혼돈과 공포가 자신을 지배하도록 놔두지 않고 그래도 옳고 바른 것을 위해 노력하도록 만들기를 바랄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무코다 이발소'는 희망을 일구어내려는 소설이다. 영화 '판도라'가 잘 보여줬듯이, 지금의 일본이 결코 먼 얘기가 아닌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이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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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2017-01-31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어릴적 동네 이발소 주인아저씨가 무서워 아무말 못했더랬죠.
귀가에서 들리는 가위질 소리.
공포였습니다.
그땐 왜 그리 무서웠는지......

잘 읽었습니다.^^

ICE-9 2017-01-31 21:14   좋아요 0 | URL
아하, 쭈니님도 그러셨군요. 저도 이발소의 시간이 정말 공포 체험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