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 나무의마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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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행복 강박 시대다. 작년에 한 신문이 젊은층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세 명 중 한 명(33.9%)이 기쁨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에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과장해서 표현한 적이 있다고 했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남에게 뒤쳐지는 것이 싫어서라고 대답했다. 행복도 이제 경쟁 대상이다. 그만큼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러는 이유가 뭘까? ‘뒤쳐지기 싫다’는 말을 근거로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현실 도피 심리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가져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여기엔 개인적인 원인만은 아닌, 사회적인 원인도 있다. 학창시절, 나는 문제를 풀 때 내가 아는 것이 맞는지 틀린지 확실하지 않아서 불안한 문제일수록 빨리 정답을 확인하고 싶었었다. 해답을 향한 욕망의 크기는 내가 지금 느끼는 불안의 강도에 비례했다. 행복 강박도 동일하다. 불안할수록 집착하게 된다. 불안이 소멸된 상태로써의 행복에 대한 희구가 갈수록 절박해지는 탓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지금 우리 사회를 불안의 시대라 일컫는다. 북한은 연일 핵도발을 하고 있고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비정규직 비율은 날로 높아지고 있으며 가계 부채 비율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이 2017년에 우리나라에 커다란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 경고한다. 여기저기서 불길한 지표와 예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판이니 아무래도 가느다란 막대 위에서 위태롭게 돌고 있는 접시와도 같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행복에 대한 천착도 높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떤 행복이어야 할까? 너무도 불안한 우리는 그저 어서 빨리 안정을 얻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해야 내가 정말 행복할 수 있는지 따져 볼 여유가 없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파시즘은 언제나 사회가 한창 불안할 때 도래했다. 그처럼 우리는 커다란 불안 앞에서 쉽게 자유를 포기하는 경향이 짙다. 선택에 뒤따르는 위험 보다는 모방을 통한 안정을 취하려든다. 때문에 막연히 남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의 모델로 여기고 뒤쫓는다. 그것은 또한 타인의 인정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해서 더욱 견고해진다. 행복은 결국 기성품 같은 것이 된다. 치수는 미리 정해져있고 우리는 이제 자신의 기준을 그것에다 억지로 맞춰야 한다. 그런 우리들은 마네킹과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는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의지로 선택된 것이며 외모는 근사해 보일지라도 내면은 공허하다.


 우리는 성공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타인의 기준에 맞추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타인으로부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지는 몰라도 자기 삶이 피폐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었을 때 과거에 자신이 한 일이 보람 있었다고 느끼기 보다 허망함을 느끼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p. 189)


 자전거를 탈 때, 우리 몸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스스로 느끼지는 못해도 흔들리는 자전거 위에서 계속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불안과 행복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불안할수록 우리가 정말 해야 할 것은 행복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에 대한 숙고일 것이다. ‘법륜스님의 행복’은 그런 균형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30년간 법문을 강의한 내공으로 부드럽고 친절하게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며 사회와 가족 내에서 만나는 모든 갈등에 있어서 내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관조하는 것이 왜 보다 현명한 방법이 되는지 그리고 현재에 충실할 것과 자신의 처지를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조언한다. 그런 조언들이 이 책엔 참으로 넉넉하다. 때문에 실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여기에 의탁해 풀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게도 특별히 와닿는 조언이 있었다.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바탕에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거나 아니면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가 깔려 있어요. 또 이런 자기의 자아상에 집착해서 자기를 우월하게 여겨요. 그런데 현실의 자기가 그만큼 따라주지 않으니 답답해하는 것이지요.(p. 34)


 그런 것이었나? 내 부족함의 감각이 실은 내 우월함의 반영이었다니! 난 늘 자신을 겸손하다 여겼는데 실은 그것도 우월이 굴절된 잔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졌다. 법륜스님의 조언이 균형점을 옮긴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이제까지 전혀 서보지 못했던 자리에서 나와 관계 그리고 삶을 응시토록 하는 것이다. 기성품화된 행복은 불안의 부정에 따른 반향으로써 성립한다. 품고 헤아리기 보다는 배척하기에 급급하다보니 행복마저 브랜드(brand)가 되어 버린다. 즐김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일뿐이고 실체도 없는 기호. 유토피아란 인간 실존이 가진 부정성을 부정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라는 찰스 틸리히의 말을 믿는다면 유토피아란 브랜드화한 행복의 극대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비롯하여 많은 유토피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디에서나 늘 폭력적인 배제와 억압이 항존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슬라보예 지젝은 나치의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이 유태인을 생산했다고도 말한 바 있다. 즉 유토피아는 배제와 억압의 폭력으로 성립되고 지탱되는 것이다. 


 축소판인 맹목적 행복도 그러하다. 뒤쳐지기 싫어서 행복을 과장해서 표현했다고 많은 이들이 대답했듯이, 여기에도 서열을 매개로 한 배제는 그대로 통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법륜스님은 내 행복을 위해 희생된 타인을 먼저 고려하라고 말한다. 불안의 공포로 자신의 시야를 가리기 전에 함께 떨고 있는, 나보다 못한 타인을 먼저 보라고 하는 것이다. 외면이 아닌 직시, 배제가 아닌 배려의 요청이다. 그리고 참된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는 시작이다. 불안이 전염시킨 오늘날 행복의 행태를 볼 때, 이런 법륜스님의 ‘낯선 자리’로의 인도는 내게 적절해 보인다. 낯선 자리로 가는 것은 스스로를 다양한 삶의 맥락 속으로 삽입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을 산포하여 천변만화 하는 것이다. 어디든 서 있을 수 있는 이런 자에게 행복은 더 이상 어딘가에 있는 지점이 아닌, 지금이라도 당장 결심만 하면 되는 선택 사항일 것이다. 결과의 중시로 무시되었던 과정이 복원되고 미래 역시 현재 앞에 꼬리를 내릴 것이다. 이 비전을 법륜스님은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어떤 순간이라도 우리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


 정녕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법륜스님의 조언 옆에 나를 놓고 비교해 보니 솎아낼 것도 많고 용기도 아주 많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도 지금 당장 나의 바깥으로 첫 발을 내밀어 보려 한다. 법륜스님이 '자꾸 “내일부터” “모레부터” 하면서 미루지 말라(p.25)'고도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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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6-03-1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 강박..... 그러게요. 진짜 그래요.

만나는 많은 분들의 목표가 행복한 삶이라고 하는데, 저는 굳이 행복해야 하나? 라고 반문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전 이 책을 구매하지 않았어요, 제목에 행복이라고 쓰여있는 부분이 조금 불편했어요. 아하하.

행복한 기분이 즐거운 기분, 무엇인가 잘 되는 상태를 말한다면
그 반대의 균형점도 중요한 게 아닐가 싶었어요. 괴롭더라도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 말이죠.

헤르메스님, 그런데 균형이요, 너무 어려워요... ㅠㅠ

ICE-9 2016-03-13 23:22   좋아요 0 | URL
와아, 마녀고양이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정말 반가워요^^ 마녀고양이님은 저랑 통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네요. 저 역시 행복해야 하는 것에 대해 반감이 있습니다. 실은 어떤 상태가 정말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구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행복 때문이 아니라 정청래 의원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리뷰도 사실 그것을 중심으로 썼었는데 너무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것 같아 다시 썼어요. 저는 이 책, 정청래 의원 컷오프 되는 날 너무 상처를 받아 치유 용으로 찾아 읽었어요. 들끓는 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쉽고 차분한 어조가 필요했거든요. 원래 리뷰엔 정말 엄청 분노도 쏟아냈었는데^^ 어쨌든 지금 전 완전 절망 상태입니다. 더불어 민주당에 과연 미래가 있는지조차 의심할 정도로... 그런 가운데 행복을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어떤 정해진 상태가 아니라 지금 현재 자체가 어떤 모습이든 얼마든지 행복이 될 수 있다는 법륜스님의 말을 믿고 싶어졌어요. 그거라도 있어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무튼 현재 저는 그러네요. 어쨌든 마녀고양이님 정말 정말 반갑습니다^^

마녀고양이 2016-03-14 21:14   좋아요 0 | URL
이렇게 격하게 반가와해주시다니! ^^

저도 정청래 의원 컷오프로 엄청나게 상심하고, 오늘 이해찬 의원 컷오프로 민주당을 계속 지지해야 하나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표를 믿고 있고, 그 분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동안은 그냥 따르려고 합니다. 선거 때 보면 알겠지요.... 김종인 대표의 능력인지, 오만인지 여부를요.

2016-03-15 0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6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