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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큼 시간이 흐른다는 게 무정하게 느껴진 적은 또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참사 앞에서 책 읽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래도 인류는 책을 햇불삼아 어두운 시대를 관통해 온 것 같다.
그런 책의 힘을 믿으며 6월에 읽고 싶은 인문 신간을 꼽아본다.
정약용 일대기에 대해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나 그래도 이 책을 지금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다음과 같은 책소개 때문이었다.
"다산은 자신이 살아가던 세상을 온통 부패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어느 것 하나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으며 세상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거듭 개탄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고 엄중한 경고까지 내렸다."
지금 우리의 마음이 정약용의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정약용이 개탄한 시대를 지금 우리 역시 살고 있다. 그러한 'synchronicity' 때문에 정약용의 평전이 읽고싶어진다. 그러한 개탄과 한없는 분노 속에서 정약용은 '가난하고 천한 백성들의 권익과 자유 확보를 위해 생애를 바쳐야겠다는 굳은 신념을 다졌다.'고 한다. 이왕이면 그 마음까지 닮았으면 좋겠다.
작년인가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시 인간성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 책은 재난 상황 속에 인간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를 추적한 책이었는데 보통의 우리 생각대로라면 그 때 인간들은 자기 혼자 살겠다고 여지없이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지만 진실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남을 위해 자신의 것과 목숨을 희생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이번 '세월호'에서도 남을 위해 희생한 이들이 많았던 것처럼. 솔닛에 따르면 모든 재난 상황에서 인간들은 그렇게 행동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릇된 편견이 남게 된 것은 재난 영화에서 흔히 그렇게 묘사했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은 사회 엘리트들이 대중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바랐기 때문이라고.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은 인간 사고와 행동의 근원에 '도덕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독일에선가 심리 실험을 했는데 자신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일수록 인간은 규범을 더욱 잘 따른다고 한다. 위기일 수록 인간은 윤리적이 되는데 그렇게 되는 이유를 이 책은 설명하고 있어 읽어보고 싶어진다.
내가 알기로 산책은 근대의 발명품이다. 그건 어쩌면 중세의 순례라는 집단적 행위가 근대로 들어와 개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중세에는 종교적 구원이 걸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근대에선 철학과 걸음이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다. 칸트는 언제나 같은 시간이면 산보를 하는 유명한 산책자였고 니체도, 루소도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그 시대의 소설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듯이(이를테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 같은 것.) 산책은 근대에 들어와 교양의 필수적인 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취급을 받았다. 프레데리코 그로의 이 책은 그렇게 근대 철학의 주요한 사유 통로가 되었던 '걷기'를 조망한다. 발터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보들레르'를 통해 지식인의 이상적인 태도로 삼았던 '산책자'와 어떤 접점을 가지는 책 같다. 지은이가 푸코 전문가이기에 더욱 흥미를 끄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