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처음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건 영화 '비밀'을 보았을 때였다.




 그 영화는 1999년에 나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영화로 옮긴 것인데 엄마와 딸이 같이 버스 사고를 당해 엄마의 영혼이 딸의 몸에 들어가 버린 이야기였다. 딸의 영혼은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해 그 영혼이 들어간 엄마는 깨어나지 못하고 엄마의 영혼이 들어간 딸만 깨어나는데 이를 두고 남편이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워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흔히 말하는 '영혼 교환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원작자인 히가시노 게이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결국 그의 소설까지 읽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 작품의 결말이었다. 그게 너무도 의외였던 것이다. 대체로 '영혼 교환물'이란 결국엔 자기 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영혼 교환을 통해 촉발된 세상 질서의 혼란은 끝에 가서는 다시 안정되는 게 원칙이었다.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그것이 영혼 교환물의 정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밀'은 달랐다. 엄마는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혼돈은 그대로 혼돈으로 남는다. 교환으로 일어난 소동을 한 때의 해프닝이라 생각하고 다시 안심하고 섞여 살 수 있는 코스모스적 세계는 도래하지 않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남편은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어제의 내 모습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변화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영혼 교환물은 타인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많이 쓰여졌다. 영혼 교환물에서 자주 남자와 여자가 바뀌고, 엄마와 딸이 바뀐 것은 그 때문이다. 평소엔 가장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이 교환을 통해서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보다 잘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세계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 늘 있어왔던 익숙한 세계의 질서에 말이다. 우연히 초래된 혼돈은 사실 세계의 질서를 보다 항구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할 뿐이었다. 변화가 열어젖힌 '틈'은 새로운 바람이 들어올 창구라기 보다는 변화를 거부하는 세계가 두터운 시멘트를 바르기 위한 '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혀 다른 결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바뀐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카오스는 그에게 두려워해야 할 흠이 아니었다. 보다 새로운 나로 나아갈 수 있는 잠재된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에 있어선 세상이 똑같이 찍어내는 '익명화'된 개체가 아니라 고유의 피와 살 그리고 생각으로써 존재하는 온전한 의미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이었다. 생각해보라! 혼돈 앞에서 세계는 무력하다. 이전의 질서로 그것을 다스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아내의 영혼이 들어간 딸의 몸을 규정할 방법이 없다. 이 몸은 딸인가? 아내인가? 몸을 따라야 하는가? 영혼을 따라야 하는가? 그 물음 앞에서 세계는 답을 하지 못한다. 당황하며 갈팡질팡할 뿐이다. 거기서 단단하고 복잡하게만 여겨졌던 세계의 질서라는 게 의외로 허약하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이 세계란 그 자신이 규정한 질서가 조금이라도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이내 위태롭게 될 '카드로 만든 집'이라는 것을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것을 포착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한다. 우리는 그동안 세상이 우리를 규정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진짜 그 규정의 힘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보게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란 그 실재의 대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해석한 것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문제는 우리 스스로 그 세계를 해석할 선택의 순간을 빼앗겼다는 데 있었다. 우리는 내가 아니라 이미 남이 선택한 대로 그 세계를 보고 있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위축되고 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대한 세계와 대결해야 하는 개인을 다루는 영화들은 자주 결단을 통한 선택의 순간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영화 '매트릭스'처럼 말이다. 그 영화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 약을 먹을 것인가,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를 선택하도록 한다. 그건 네오에게 어떤 세계를 택할 것인가에 대한 결단의 촉구였다. 그리고 네오의 선택대로 세상은 형성되었다. 즉 네오의 손 끝에서 세계는 다시 태어났다. 그 네오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구세주다. 구세주란 세계를 근본부터 뒤엎는 존재다. 달리 말하면 매트릭스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있는 '단독자(모나드)'다. 결단은 그런 주체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이며, 이는 남의 눈이 아닌 오로지 자기의 눈으로 세계를 해석하고자 하는 의지의 상징과도 같다. 이와 똑같은 것을 히가시노 게이고도 한다. 스스로 자기 몸을 규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엔 두 번의 중요한 결단의 순간들이 등장하게 된다. 하나는 아내고 다른 하나는 남편이다. 특히 남편의 경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의미심장한 연출을 했다. 아내를 남의 아내로 보내기 직전, 아내의 고백을 통해 남편이 모든 비밀을 다 알도록 한 것이다. 그건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한 것과 똑같았다. 어떤 세계를 택할 것인지? 이전의 세계냐, 변화냐? 그 결단의 촉구였다. 그리고 남편의 결단에 의해 세계의 질서는 새롭게 수립되었다. 이것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말하는 세계에 있어 주체로 서는 방식이었다. 규정한 대로가 아닌 나만의 결단으로 새롭게 정체성을 창조하는 것.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다른 새둥지에 놓는다고 한다. 다른 새가 자기 알로 알고 키우도록. 그것을 '탁란'이라고 한다. 히가시고 게이고의 2010년 작,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는 제목 그대로 바로 그것을 소재로 써진 것이다. 시작부터 어쩌면 이 작품과 전혀 상관없을 지도 모를 '비밀' 이야기를 한 것은 이유가 있다. 벌써 짐작하셨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바로 이 작품이 '비밀'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혼 교환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 아버지가 있다. 예전에는 올림픽에 나갈 정도로 유명한 스키 선수였으나 딸의 출산과 동시에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이제는 스포츠 센터에서 일하며 조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딸을 낳은 아내는 그 뒤 사람이 좀 변한 것 같이 말수도 적어지고 이상해지더니 어느 순간 훌쩍 자살하고 말았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낙은 딸이다. 딸이 아버지처럼 스키에 재능이 있어 두각을 나타내었고 언젠가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어줄만큼 기대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딸의 스폰서를 맡고 있는 회사로부터 부탁이 하나 들어온다. 자신들이 스포츠에 자질을 나타내는 유전자형을 새롭게 발견했는데 이것이 과연 유전적인 것인지 자신과 딸의 유전자를 통해서 알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극구 거부한다.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그건 아내의 죽음 뒤 우연히 발견한, 아내가 숨겨놓은 것이 분명한 신생아 유괴에 대한 신문 기사로 인해 가지게 된 의혹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딸 카자미가 실은 아내가 어디에선가 유괴해 온 남의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의혹.

이 의혹을 강하게 만든 사실이 있었다. 아내에게 출산 기록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걸 평생 가슴 속에 지녀왔다. 카자미가 뻐꾸기 새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런 그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중견 기업가라는 그 사람은 어떤 여자의 부탁으로 그녀의 친족을 찾으려고 왔는데 하나의 혈흔을 보여주고는 그녀의 피라고 하면서 친족인지 아닌지 딸의 유전자와 검사해보고 싶다고 한다. '드디어 진짜 부모가 나타난 것인가?'하고 두려워하고 있던 차에, 그를 만나러왔던 그 남자는 딸의 숙소에까지 찾아갔다가 그만 사고를 당한다. 문제는 이게 보통의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 저지른 범죄였다는 것. 경찰은 원래 딸이 함께 타려던 버스였고 그 전에 딸에게로 날아온 협박장도 있고 해서 그 쪽으로 수사한다. 이러한 아버지의 갈등과 미스터리를 주축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이 정도의 소개만으로도 '비밀'의 설정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혼 교환이 둥지의 교환으로 일어났을 뿐이다. 대부분의 서술이 '바꾼 주체'가 아니라 '바뀌어진 것을 확인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 소설의 핵심이 되는 아버지의 갈등은 사실 '비밀'에서의 남편의 갈등인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그 '비밀'의 단순한 재탕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조금의 변화, 어쩌면 중요할지도 모를 차이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건 자리바꿈이다. 즉 '아내의 남편'이 아닌 '딸의 아버지'의 자리로 이동했다는 그것이다.


 이로써 이 소설에는 앞서 말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주체화' 측면과 관련하여 결단과 더불어 하나가 더 들어가게 되는데, 그건 바로 '책임'이다. 단순히 세상의 변화를 결단으로서 받아들이는 것만은 아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에 중심을 두고 이 소설은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곁가지로 병행되는 카자미와 똑같이 연구 대상으로 발탁되어 본인의 꿈과는 상관없이 크로스컨트리 훈련을 받고 있는 고등학생 신고와 그 아버지의 이야기는 바로 이 때문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아들 신고가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꿈을 접는 것은 아버지 때문이다. 또 그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주인공 아버지는 어떠한가? 그가 그토록 감춰왔던 비밀을 밝히려고 하는 것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다. 그렇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결단들은 모두 책임과 결부되어 제시된다. 이것이 이 작품이 '비밀'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면 나아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타인에 대한 책임의 통감이 진정한 주체가 되는 길이라고 했던 임마누엘 레비나스의 말도 생각난다. '비밀'은 남의 결정이 아닌 자신의 결단으로 새로이 만들어지는 세계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것 자체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나가이 고의 유명한 만화 '마징가Z'는 다음과 같은 첫구절로 시작된다. '너에게 세상을 멸망시킬만한 강대한 힘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세상을 지옥으로 바꿀 것인가 아니면 평화롭게 지킬 것인가?'


 이 또한 결단의 촉구다. 아시다시피 히틀러는 이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유태인 말살이라는 결단을 내렸고 그 때 세상은 지옥이 되어버렸다. 이런 건 곤란하지 않을까? 결단 자체로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는 누빔점이 필요한 것이다. 동물처럼 즉자적 욕망으로 움직이는 주체가 아닌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집중하기 위한 누빔점. 바로 그 누빔점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책임'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아버지가 주인공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미 그는 이 아버지라는 존재를 통해 책임을 이야기한 적이 있기도 하다. 바로 이보다 2년 전에 나온 '방황하는 칼날'이 그것이다. 딸의 복수를 위해 나선 아버지의 이야기였던 그 소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아버지로서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 바 있다. 바로 그 연장선 상에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는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딸에게 의탁한 아버지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듯, 소설은 자녀가 정말 바라는 것과는 상관없이 '부모가 멋대로 장래를 결정해도 좋으냐?' 하는 것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설령 그 자녀에게 재능이 있다고 해도 과연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재능을 꽃 피울 수 있는 꿈을 강요해도 되는 것인지까지 이 소설은 묻고 있는 것이다.


 "재능의 유전자라는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의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P.395)


 요즘 한 방송에서 하고 있는 '부모와 학부모'란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말로 자녀를 위한다면 부모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 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데, 이 소설 역시도 부모로서 자녀에 대해 가지는 진정한 책임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4-02-15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비밀)에서는 아내가 말을 하는가요 책에서는 남편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딸이 아닌 아내일지도 모른다고... 그전에 딸로 돌아왔다는 말을 하거든요 제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비밀>은 드라마로도 만들었죠

자신이 가진 재능과는 다른 일이 하고 싶어지는 것도 괴로울 것 같습니다 하고 싶어하는 일에 재능도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글을 보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