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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을 기다리며 ㅣ 필립 K. 딕 걸작선 9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7월
평점 :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 봐...'
이건 커트 보네것의 말이지만 누군가 필립 K 딕의 1966년 작품, '작년을 기다리며'를 읽고난 뒤 들었던 기분을 딱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면 바로 이렇게 말하겠다. 그건 이 작품이 내게 무엇보다 '힐링'이었기 때문이다. 필립 K 딕이 이 책에서 추구하고 있었던 것은 비록 이 책이 66년에 나왔고 지금은 무려 47년이 지난 시점이긴 하지만 내게 딱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그런 힐링의 힘이 간직되어 있을 줄은 몰랐고 정말 우연히 읽게 된 것인데 마치 나에게 주려고 내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 양 얻게 되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궁금하실 것 같다. 그러므로 이 리뷰는 내가 받은 힐링의 느낌을 충실히 전하는데 바쳐야 할 것 같다. 때문에 아무튼 일단은 내 자의적으로 끌고 가고 싶다. 나는 무엇보다 필립 K 딕이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 에릭에게 왜 그런 결단을 하도록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솔직히 필립 K 딕의 소설을 즐겨 읽으면 알겠지만 딕은 언제나 자신의 소설 속에 쓰던 당시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기를 좋아한다. 딕의 소설의 묘사되는 부부관계가 대부분 그리 원만하지 못한 까닭이 바로 당시의 딕 자신이 그리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듯이 말이다. 또한 이 작품을 비롯하여 다른 작품 곳곳에 나오는 마약을 통한 기묘한 체험도 모두 자신이 직접 흡입한 LSD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때문에, 이건 필립 K 딕의 소설을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팁이기도 한데, 사실 필립 K 딕의 소설은 그것을 쓸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고 읽는 게 더 좋은 것이다. 아무튼 그 정도로 필립 K 딕의 자전적 체험이 소설 속에 눅진히 깔려 있기에 이런 표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필립 K 딕의 소설은 그가 상처받고 고통을 느끼고 있는 현재를 어떻게 관통해 나갈 것인가 그 해법을 스스로 찾아보는 여정이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쓸 때의 딕의 상황 때문에 더욱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 때의 딕 상황은 역자 김상훈의 후기에 그 상황이 잘 나와 있는데 그걸 여기에 다시 인용해 본다.
딕이 본서 '작년을 기다리며'를 집필한 것은 히피운동이 세계 청년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미국의 베트남 개입이 노골화되던 1963년의 일이었다. 사생활 면에서는 세 번째 아내인 앤과의 결혼 생활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약물 과용에서 비롯된 극심한 울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최악의 시기이기도 했다. 딕은 각성제인 암페타민을 '연료 삼아' 하루에 A4용지로 60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썼지만 워낙 박한 고료 탓에 생계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먹고 살기 위해 또다시 암페타민에 의존하며 글을 쓰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P. 402)
이 작품을 다 읽고 이 글을 읽으면 작품의 모든 내용이 바로 이러한 미국의 상황과 그 때의 딕 처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란 걸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 느껴지는 딕의 상황은 그야말로 '악순환' 혹은 '막다른 골목'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데 소설 '작년을 기다리며'의 주된 분위기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일단 소설의 모든 관계들은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
주인공 에릭은 아내 캐서린과 이혼할 지경에 이르고 지구는 현재 우주 전체를 두고 싸우는 지구 보다 훨씬 문명이 발전한 두 외계 종족간의 싸움에 휩쓸려 있다. 그 두 외계 종족이란, 하나는 인류의 먼 조상이 되는 릴리스타 종족이고 다른 하나는 곤충과 닮은 리그라는 종족이다. 물론 지구는 자신의 조상이 되는 릴리스타 편에 서서 리그인들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에릭이 아내 캐서린을 믿지 못하게 되듯이 지구 역시 자신의 우방인 릴리스타를 믿지 못하게 된다. 릴리스타가 전쟁에 미온적으로 참여하는 지구를 못마땅하게 여겨 틈을 보아 강제적으로 합병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계들은 모두 믿음을 잃고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 그래서 그 관계를 이어가야할 책임이 있는 존재들은 모두 병적으로 죽음에 집착한다. 관계를 완전히 없앨수도 없고 또 계속하다니 견딜수도 없고 해서 스스로를 파멸시켜서 그로 부터 해방되려는 것이다.
이렇게 남편 에릭은 도저히 캐서린으로 부터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아 자살을 원하고 지구의 최고 권력자 지노 몰리나리는 빠져나올길 없이 점점 악순환만 가중되는 지구 운명에 대해 책임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에릭과 몰리나리는 딕의 당시 모습을 고려한다면 그대로 딕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그건 애커드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현실의 고통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더욱 과거의 향수에 젖고 싶은 딕의 마음을 체현한 분신이라 할 수 있다.) 그 역시 에릭이나 몰리나리 못지않게 악순환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릭이 느끼는 결혼의 고통이나 몰리나리가 안고 있는 지속의 막중한 책임감은 당시 딕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어려움을 둘로 나누어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은 딕의 분신들이며 그들이 공통적으로 자살을 원하고 있음은 그 때의 딕역시도 죽음으로써 해방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작품 속 지구의 상황은 그대로 당시 미국과 베트남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딕은 릴리스타와 같은 미국의 개입이 순전히 베트남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님을 또한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작년을 기다리며'는 당시 자신의 처지와 미국의 당시 상황등 어디까지나 현재를 바탕으로 직조된 견직물이었다. 그러므로 소설 속에서 악순환에 빠져 막다른 골목에 처한 상황을 해결하려는 모든 노력은 사실 당시 그와 똑같은 악순환에 빠져 있던 딕이 당시의 곤경으로 부터 헤어나려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더욱 확실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한 번 흡입하기만 하면 바로 심각하게 중독되어 버리는 무서운 마약이지만 과거나 미래로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여 지금 지구가 처한 상황을 해결할 비책도 되는 약, JJ-180 이다.
왜 여기서 마약이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그 때의 딕이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유일하게 의지했던 것이 '암페타민'이라는 마약이었음을 볼 때 쉽게 이해된다. 이렇게 딕의 실제 삶을 알고 읽으면 설정의 많은 것들이 이해된다. 그가 암페타민을 통해 그래도 고료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듯이, JJ-180 은 처음엔 그저 무서운 무기였으나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처음 그저 죽기만을 바랐던 에릭은 그 약으로 이제 자신이 뭔가 타인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독자가 되는 걸 무릎쓰고서라도 그 약을 먹고 시간을 이리저리 오가며 지구를 구할 방도를 찾아 다닌다. 다시 말해 그 때의 에릭에겐 유일하게 그 약만이 삶을 계속하게 만드는 희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건 현실의 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오로지 암페타민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에릭이 JJ-180 에 걸었던 희망은 그대로 딕이 암페타민에 걸었던 희망이었다. 그는 간신히 버텼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베트남에게 개입했고 딕의 상황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JJ-180 역시도 이 악순환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에릭이 느꼈던 좌절은 그대로 딕의 좌절이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도 현재에서도 구원의 통로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막다른 골목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젖히기 위해 몰리나리는 스스로 죽는다. 그렇다면 에릭도 그래야할까? 소설의 마지막은 마치 점점 거세어지는 죽음의 유혹과 싸우는 딕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딕의 마음에 떠오르는 수많은 망설임들은 소설 속에서는 에릭이 분신으로 나타나서 이런 저런 선택을 강요한다. 거기엔 결국 마약 중독으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내 캐서린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분신도 있고 지구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다 벗어버리고 그저 자기 인생에만 열중해 살아가는 분신도 있다. 아마 이건 모두 그 때 딕에게 들렸던 유혹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끝내고 자유로워져라' 아니면 '미국이 베트남을 깽판치던 말던 무슨 상관이야? '네 인생이나 잘 챙겨!' 하는 등등의 육체의 죽음 혹은 영혼의 죽음을 부르짓는 목소리들 말이다. 이러한 수많은 유혹과 망설임은 더욱 그의 신경을 혹사시켰고 그래서 어서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끝내고 싶었을 것이다. 제목 '작년을 기다리며'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 안정된 생활로 돌아가고픈 딕의 염원을 절박하게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모든 구원의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남은 건 몰리나리가 선택했듯 죽음 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은 자살하지 않는다. 인생에 짐만 되니 제발 아내 캐서린을 포기해 버리라고 미래의 자신이 간곡하게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 역시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절망하지 않는다. 포기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 어디에도 희망은 없지만 그래도 싸워 나가리라 생각한다. 식물인간이 된 캐서린과 그녀와 다를 바 없는 지구지만 먼저 나서서 껴안으려 한다. 왜? 도대체 왜?
이런 것들조차도 살려는 굳건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브루스의 말이 옳았다. 이것들에게도 그럴 권리가 있다. 태양과 하늘 아래에서 미미하게나마 자기 자신만의 조그만 삶을 영위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뿐이며, 생각해보면 그리 거창한 요구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이 수레들이 하는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한 자리에 머물러서 티화나의 쓰레기가 널린 골목에서 자기 힘만으로 살아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저 양동이 속으로 피신한 존재에게는 아내도, 직업도, 아파트도, 돈도 없고, 그런 것들과 조우할 가능성조차도 아예 없지만, 여전히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에서, 저 수레가 자기 존재에 부여하는 가치는 나보다 훨씬 더 높다.(P. 391)
바로 여기서 에릭이 왜 다시금 삶을 적극적으로 껴안으려 하는지 잘 드러나고 있다. 우연히 발견한 브루스의 작은 수레 장난감을 보면서 에릭이 깨달은 것은 '저렇게 작은 것도 살려고 하는데 왜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진 내가 포기하려고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결국 에릭은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지속이야말로 생명이 가진 모든 것의 의무라는 걸 깨닫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가진 존재의 자기 증명임을 믿는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조금 싱겁다. 그동안 보여준 절망의 크기에 비해 여기서 가지게 된 삶의 의지는 다소 미미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의 삶은 그냥 사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냥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딕이 말하는 삶은 일종의 감각이다. 그것도 고통과 대면하며 시련과 싸움으로서 얻어지는 감각이다.
무엇을 해도 합법이고 무엇을 해도 가치 있는 일은 생겨나지 않는 도시. 에릭은 생각했다. 그런 도시에서는 인간은 어린 시절로 억지로 끌려가게 된다. 블록 쌓기 완구나 다른 장난감 따위에 둘러싸인 채로, 전 우주가 손에 닿는 곳에 있었던 시절로. 이런 자유의 대가는 크다. 성숙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P.371)
아내를 저버린다는 행위는, 나는 그런 현실을 견딜 수가 없어. 나만의 특별히 쉬운 상황이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어, 하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P. 395)
그가 말하는 삶의 진정한 모습은 바로 여기서 잘 나타난다. 그는 오히려 삶은 시련과 불안정 속에 처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를 통해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실 속 화초가 되기보단 들판의 잡초가 되는 것. 그것이 딕이 바라보는 삶이고 그런 삶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생명을 가진 존재의 자기 증명이라 믿는 것이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도 싸우는 가운데,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닥쳐진 죽음 앞에서 끝까지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진정한 삶은 도래할 것이라 그는 믿는다. '작년을 기다리며'는 그런 책이다. 어려울 수록 더 환영하라는 책이다. 왜냐하면 더 치열하게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투쟁을 통해 스스로를 더욱 성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언뜻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딕의 솔직한 내면이 짙게 투영된 소설이었기에 마지막에 찾은 이 각오가 그래서 더 마음 찡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의 힐링 또한 그렇체 찾아왔다. 당시의 현실에서 딕이 느꼈던 절망, 소설 속에서 에릭이 느꼈던 좌절감을 나 역시 지금 내가 처한 현실에서 느끼고 있었다. 딕과 에릭이 방황했듯이 나 역시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 다녔다. 딕과 에릭이 가장 많이 떠올렸던게 죽음 혹은 회피였듯이 나 역시 포기나 타협 이런 말들을 떠올리고 살았다. 그런데 그렇게 비슷한 마음, 비슷한 경로를 보여준 딕이 오히려 이래서 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있었다. 지금의 이 상황이 왜 더욱 즐길만한 상황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힐링이 찾아온 것이다. 이제 나는 그러한 나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생각되는 에릭의 말을 인용하련다. 맨 앞의 문장만큼이나 진실인 이 문장을...
묘한 기분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소름 끼치는 사건이어야 할 이 전쟁 한 복판에서 뭔가 의미있는 것을 찾아내다니 (...) 그 아연 도금된 양동이 안에 숨어있던 레이지 브라운 도그 수레가 갖추고 있는 것과 동일한 욕구가 내게 생의 활기를 불어 넣다니. 아마 나도 마침내 그것의 동포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곁에 서서 내 자리를 지키고 그것처럼 행동하고 그것처럼 싸우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싸우고 때로는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기쁨을 느끼기 위해. (P. 393)
Thank you, D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