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벌써 6월의 신간 추천이 도래했군요.
신간평가단을 해서 그런가 요즘 저의 시간 감각은 추천과 리뷰 마감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7월에 벗하고 싶은 신간들을 골라봅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이번의 강력 추천은 바로 이 작품입니다.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브로흐의 가장 대표작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적이 없었던 작품이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 중 하나로 드디어 번역되어 나왔네요.
유럽 모더니즘의 걸작이라 평가받는 이 작품은 '아이네이스'의 저자이자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를 인도하는 유령으로도 나왔었던 베르길리우스의 마지막 24시간을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스 여행 도중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베르길리우스는 돌연 자신에게 삶이 정말 얼마남지 않았음을 예감하고 이제 막 완성한 자신의 대표작인 '아이네이스'를 불태우려 합니다. 그러자 그 작품의 위대함을 알고 있는 동료 시인들이 그것을 제지하려 하고 황제 또한 로마의 정체성 자체가 담긴 아이네이스를 불태워서는 안된다고 설득합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베르길리우스의 마지막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이러한 논쟁들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논쟁의 주제 또한 다양해서 예술, 종교, 국가, 전체주의 등 거의 인간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사실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이스를 태워버리려 했듯이 브로흐 자신도 창작의 고통이 너무 커서 이 작품을 태워버리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작품 속의 베르길리우스는 그대로 브로흐의 페르소나인 것이며 무대는 비록 과거의 로마이지만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논쟁들은 사실 현대 문명 자체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죠.
독일 작가 브로흐는 나치에게 자유주의 작가로 찍혀 1938년, 그의 나이 52세 때 게슈타포에게 체포된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구체적 물증이 없었기에 풀려났는데 그 때문에 그는 바로 토마스 만과 아인슈타인의 도움을 얻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의지할 데 하나 없는 미국에서 친구의 집을 전전하면서 써내려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많은 논쟁들이 나오듯이 문체 또한 고정적이지 않고 마치 물이 흐르듯이 유동적인데 그것은 아마도 현실의 브로흐 역시 유랑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원래 브로흐의 작품들이 아주 독창적이지만 이것은 그 정수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경이로움인데 말로만 전해듣던 그 전설을 이 기회에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706/pimg_748481184772551.jpg)
앞서도 말했듯이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은 미국에 있는 동안 쓰여졌기 때문에 미국판이 독일어판 보다 먼저 나왔습니다. 옆에 있는 사진이 1944년에 미국에서 나온 초판본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나온 판본이 되겠군요. 그래서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1,700달러에 거래되고 있더군요.
이런 ㅠ ㅠ...
렌조 미키히코를 좋아하시나요?
네, 회귀천 정사, 저녁싸리 정사의 그 렌조입니다.
개인적으론 참 특이한 작가였습니다.
회귀천 정사나 저녁싸리 정사를 읽으면
마치 옛날 유행했다던 순애보를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서로에 대한 순수하고도 자상한 마음에
오이 피클 처럼 푹 절여있다보면
렌조란 작가는 참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왠 걸 그 순간 그는 솜씨좋은 외과의 처럼 매스를
들고 그 이면을 파헤쳐 보여 주죠.
"헤~ 과연 네가 보고 있던 것이 진실일까?" 하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표면과 이면을 능수능란하게 바꿀 수 있는 작가. 그가 바로 렌조 미키히코 입니다.
별로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도 그의 매스가 한 번 가해지면 기이한 일탈들로 가득한 공간이 되고 한없이 아름다운 순애보 역시도 증오와 복수라는 감정 위에 세워진 치밀한 계산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마술사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모자에서 토끼가 불쑥 튀어나오게 하는 마술사 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환영이고 정작 보이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실체임을 놀라움 가운데 가져오는 작가인 것이죠.
'조화의 꿀'은 유괴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괴'란 실체를 탈취하는 전형적인 행위입니다. 바로 그 실체를 전유하는 테마 위에서 렌조는 또 어떻게 실체를 환영으로 만들고 그 이면에 배여있는 진실을 펼쳐보일까요? '조화(造花)'에서 꿀이 나오도록 만드는 그의 마술이 진정 보고싶군요.
이미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자유'가 발간되었습니다만 사실 조너선 프랜즌의 대표작은 바로 이 '인생수정'이 아닐까 합니다. 조너선 프랜즌은 '로컬리티(locality)'의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보편 보다는 특수를 지향하는 작가죠. 이를테면 그는 일반이라는 틀에서 한 개인이나 가정을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바로 그 특수하고도 구체적인 개인과 가정을 통해서 보편을 담는 작가입니다. 그렇게 그는 찰스 테일러의 서사적 주체(즉 주체란 다름아닌 특수한 집단, 지역의 소속감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의 입장과 유사합니다.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처해 있는 특수한 장소, 상황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의식이란 그렇게 보편 보다는 언제나 특수한 맥락을 따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로컬리티란 바로 그러한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중요한 것으로 다룹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센델도 사실 이런 입장에서 정의로움을 고려하지요. 이렇게 지금에 와서 로컬리티가 중요해진 이유는 한 마디로 리오타르가 말하듯 거대 서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보편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그 보편이 장악하지 못했던 특수한 상황, 지역, 정체성들에 집중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다시금 '보편'을 사유하는 것이죠. 프랜즌은 바로 그러한 작가입니다. 그가 그려내는 가족의 이야기란 하나의 특수적 상황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그는 오히려 시대 전반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죠. '인생수정'은 그런 로컬리티적 소설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 그래서 저역시 꼭 벗해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1774/20/cover150/892554718x_1.jpg)
'우울과 몽상'의 번역에 실망해서 사실 포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번역을 기다려온 저이기에 이 책의 출간은 반갑기 그지 없군요. 포의 대표 단편 16개가 실려있는 이 작품은 새로운 번역이기 때문도 하지만 무엇보다 편집한 사람이 마이클 코넬리라는 점. 그리고 각 단편마다 유명 스릴러 작가들이 짤막한 감상평이 덤으로 실려있다는 점 때문에 골랐습니다. 서점에서 보니 실물의 외관도 상당히 근사하더군요. 이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
가나에의 작품은 모두 저의 관심대상입니다.
'왕복서간'에서 보여준 그녀의 변화가 흥미로웠는데
'N을 위하여'는 과연 어디로 나아갔는지 궁금하군요.
편혜영 작가를 저는 잘 모릅니다.
제가 한국 문학쪽 경험은 별로 없어서
많은 분들이 언급하시길래
조금은 공부를 한다는 기분으로 읽어보려
골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