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힘]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베트남 전쟁은 미국에게 있어 최초의 패배였고 그래서 트라우마가 되었다.

건국 이후 미국은 70년대까지 타자들과는 모두 세번의 큰 전쟁을 치뤘다. 40년대의 2차세계대전 50년대의 한국전쟁 그리고 70년대의 베트남 전쟁. 40년대의 2차세계대전은 미국에게 지금과 같은 패권국가의 자리를 가져다주었다.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정한 브레턴 우즈 체제는 정치권력 뿐만아니라 경제권력까지 미국에게 넘어갔다는 증거에 다름아니었다. 50년대의 한국전쟁은 휴전선이라는 반쪽의 승리에 그쳤으나 그래도 적어도 패배는 아니었다. 하지만 70년대의 베트남 전쟁은 문자 그대로 완벽한 패배였다. 그토록 유례없는 군비를 투여하고 물량공세를 펼쳤지만 돌아온 것은 전면적 퇴각 밖에는 없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오만했던 콧대를 여지없이 주저앉게 만들었으며 그렇게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었던 미국이 처음으로 맞딱드린 그 한계는 지울 수 없는 얼룩, 치유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트라우마가 생겼다는데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그런 패배 한 번 겪어보지 않은 나라가 어디있겠는가? 어차피 정상에 있는 존재에게 남은 것이라곤 내리막길 뿐이다. 그러니 미국 역시도 언제고 한 번은 당해야만 하는 아픔이었다. 그래도 미국이 조금 다른 경우라면 당시의 미국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최고의 정점에 서 있는 나라였다는 데 있을 것이다. 자유세계를 마음대로 호령하는 팍스아메리카나! 그게 70년대의 미국이 아니었던가! 마치 소설 '개의 힘'에서 멕시코의 바레라 가문과 같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랬던 미국에게 베트남 전쟁의 패배는 마치 로마의 황제가 변방의 이름없는 부족에게 대패를 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스스로도 적수라 여기지 않았던 상대, 차마 질 것이라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상대에게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치욕 또한 컸었다. 바로 그 치욕이 오히려 마치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두고두고 곱씹을 수 밖에 없는 아픔을 가져왔던 것이다. 상처받은 자존심. 더구나 당시의 미국은 자유세계의 지도자적 국가. 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패배는 용납되지 않았다. 패배는 얕보이게 만든다. 미국이 두려워하던 것도 그것이었다. '어라! 미국도 별 거 아니네. 저렇게 큰 힘이 있어도 조그만 베트남 나라조차 이기지 못하잖아'하는 식으로 피식 웃으며 비웃듯 자기를 바라볼 다른 나라들의 시선이었다. 그래서 보스는 더욱 허세를 부리거나 잔인해지게 된다. 소설에서 바레라 가문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되었던 멘데스의 두 아이를 다리 아래로 집어 던졌던 것 처럼...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은 75년부터 2003년까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의 미국과 멕시코간의 마약전쟁을 다룬다. 압도적인 서사로 독자의 넋을 잃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윈슬로가 새삼 과거에 군림했던 멕시코의 마약카르텔에 천착하는 것은 그것이 비단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일이기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저기에 있다. 그러니까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안게 되어버린 미국의 트라우마. 비극이긴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보다 현명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계기가 되기도 했었을 그 사건이 어쩌다 미국을 더욱 더 나쁜 쪽으로 몰아가게 되었던가 하는 것을 살펴보는데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얘기다. 그 상처를 극복하는 데 있어 어떻게 '개의 힘'이라는 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을까 돈 윈슬로는 궁극적으로 그것을 묻고 싶어한다.

 

  

 물론 미국은 실패했다. '개의 힘'은 사실은 그러한 미국의 실패를 복기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그것은 이 소설이 하필이면 베트남 전쟁이 종전된 75년부터 시작되는 것에서 나타난다.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전쟁은 공식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 75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반은 미국 반은 멕시코인 주인공 아트 켈러는 이제 마약 단속 수사관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어 멕시코로 파견된다. 바로 그 때 거기서 30년간 피바람을 불러올 비극의 씨앗이 원죄처럼 잉태된다. 아트 켈러가 멕시코로 간 시기는 공교롭게도 미국이 더 이상 베트남에서와 같은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 더욱 철저하게 그래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개의 힘'에게마저 의지하여 (그러한 불법적은 간섭들은 모두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용인되었다.) 중앙아메리카의 공산화를 막으려고 개입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소설에서 아트 켈러의 이야기는 사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의 역사나 마찬가지다. 그가 티오의 힘을 빌려 처음 했었던 멕시코의 아편 산업에 대한 개입이 그대로 베트남 전쟁을 은유하는 것이라면 그 이후에 벌어지는 아트 켈러의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대한 막후 공작은 모두 미국의 중앙아메리카의 개입을 그대로 은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돈 윈슬로는 분명히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이 가져온 트라우마를 지워버리려고 그렇게 '개의 힘'을 빌렸던 미국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그렇게 아트 켈러를 통해 상징되듯이 그 한 발자욱도 나가지 못하고 여전히 제자리를 맴도는 성찰없는 미국의 반복된 과오가 무엇을 가져오는지 그는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생생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타인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개의 힘'에 의지하는 것은 그 저 더 큰 불행, 더 큰 지옥을 가져올 뿐임을 말이다.

 

 일단 악이 활동을 시작하고 나면 그 움직임을 멈출 힘이 없다는 사실을 티오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악과 결탁하기를 멀리하는 일이며 지속하다가 멈추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2권 p. 125)

 

 그 다리 위에서 멘데스의 두 아이를 던져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새로운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보스 아단은 문득 이렇게 느낀다. 그와 똑같이 아무리 선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그 힘을 빌렸더라도 한 번 빠져버린 '개의 힘'은 마약과 똑같이 그저 더 한 중독만이 있을 뿐이며 오로지 더 강한 자극의 집착만을 가속화시키는 그 중독이 결국에는 가져오고야 말 파멸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돈 윈슬로가 아트 켈러를 통해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는 바다. 자신이 마약 수사관으로서의 경력이 끝장날 것을 두려워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아단의 삼촌인 티오와 하게 된 하나의 작은 타협이, 그렇게 '개의 힘'에로의 가벼운 입맞춤이 과연 어떤한 것들을 불러왔던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멕시코의 막강한 마약 카르텔을 완성시켰을 뿐 아니라 그 카르텔로 인해 '멕시코 트램펄린'이라는 중앙아메리카의 자유화 바람을 조기에 억제하는 미국 정부의 은밀한 작전까지 가져와 중앙아메리카의 자유와 평등을 염원하는 시민들을 케르베로스 혹은 레드미스트 작전으로 무자비하게 짓밟도록 도왔다. 더하여 그렇게 유입된 마약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지켜야 하는 자국의 미국 빈민계층들의 삶마저 파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트 켈러가 바레라 카르텔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인 어니의 죽음 또한 그 자신 고백했듯이 자신이 초래한 것은 둘째치고라도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돈 윈슬로우가 어니의 죽음을 베트남 전쟁의 패배로 인한 트라우마의 상징으로 만들고 있는 것임을 본다. 결국 그 어니의 죽음으로 아트는 완전히 '개의 힘'에게 지배당해 버렸고 결국 그가 불러온 것은 아단 카르텔의 성장이며 그로 인해 라헬이나 파비안과 같은 괴물들이 몰고 오는 더 큰 고통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커다란 고통이 바로 가장 순결한 영혼이라 할만한 후안 신부의 죽음일 것이다. 돈 윈슬로우의 '개의 힘'은 사소한 타협에서 무자비하고도 광대한 학살로 이어지는 고통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적 궤도를 재현한다.)

 

 근데, 돈 윈슬로는 왜 새삼 베트남 전쟁이 가져온 트라우마로 인해 미국이 가장 불법적으로 정치적 혹은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한 그 시기의 이야기를 지금 가져오려 한 것일까?  그건 지금도 여전히 그 '개의 힘'이 미국에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001년의 9.11 사태 이후에 그 보복으로 감행된 이라크 침략 전쟁이 미국이 아직도 그 '개의 힘'에 빠져있음을 증명한다. 그렇게 돈 윈슬로는 보았을 것이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여전히 타인에게 가하는 고통으로만 위안 받으려는 미국을. 그렇게 베트남 전쟁 이후로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미국을. 해서 그는 우려했던 것이 아닐까? 단 한 번도 자성의 시간을 가지지 않았던 미국을. 그래서 자꾸만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는 미국을. 그리하여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그 반성하지 않음에서 오는 반복으로 점철된역사적 잘못이 언젠가의 미래에 또 다시 불러올 지 모르는 비극을... 소설에서 아트의 비극이 칼란의 비극으로 반복되었듯이(아트가 어니로 인해 그렇게 되었듯이 칼란 역시 오밥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개의 힘'에 빠져들게 되지 않았던가? 그렇게 돈 윈슬로는 반복을 통해 아무리 사람을 살리기 위한 길이라 하더라도 불법적인 방법이 가져오는 것은 오로지 비극 밖에는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은 그래서 보다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소설이다. 미국에게 더 이상 '개의 힘'에 의지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그렇게 더 이상 예전의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그런 목소리! 그래서 그는 과거에 일어난 미국의 실패를 이리도 충실히 복원하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그 과오가 얼마나 엄청난 비극을 가져왔는지 제대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 또한 진정한 성찰이란 무엇보다도 현실을 온전히 인식하는 가운데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그는 장장 5년이라는 시간을 집필에 들이면서까지 사건과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러한 돈 윈슬로우의 시도는 보기좋게 성공했다.

 

 그러므로 '개의 힘'을 그저 단순히 재미를 위한 스릴러로 생각하고 읽는 것은 큰 오산이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숙연한 자세로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 소설에 나타난 돈 윈슬로우의 어조는 어떻게 보면 안토누치 추기경 앞에서 대답하는 후안 신부의 어조와 닮았다.

 "저의 주요 관심사는 복음이 현재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굶어 죽은 다음이 아니고(2권 p.57)"

 

 또는 아단이 티오 삼촌을 도와달라고 찾아왔을 때 했던 후조의 어조와도 비슷하다.

 "난 운명의 장난이 소리소문없이 지나가도록 놔둘거야. 인과응보라는 개념은 알지?"

 "진심으로 참회하며 자신의 길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영혼일 경우에나 그렇지. 삼촌이 그러신가?:(2권 p.67)

 

 그러니까 경청해야 한다는 것은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이 바로 저 두 가지를 독자에게 전해주기 위해 들려주는 미국에 대한 고해성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도움이 되기 위해 다른 하나는 너무 늦기 전에 반성을 촉구하고 경고가 되기 위해. 지금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면 아직도 '개의 힘'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잘 알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물리기만 해도 감염되는 광견병을 닮았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자본주의의 위기는 여전히 심화중이고 그리스의 재정 위기로 드러난 유로의 위기 또한 가속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가중되고 있는 고통이 곳곳에서 갈등과 저항을 부르고 노르웨이에서의 이민자 청소년 학살 같은 무시무시한 범죄마저 양산하고 있다. 한 마디로 파멸을 가져오는 광견병이 언제 범람하게 될 지 모르는 판국이다. 증오와 공격만을 불러오는 광견병의 가장 좋은 특효약은 예방이다. 자신에게 전가된 고통의 의미를 제대로 되새기고 그 속에서 가장 현명한 해결 방법을 찾는 것. 그것만이 파멸로 치달을 고통의 연쇄를 끊는 유일한 길이다. 즉, 내가 지금 안고 있는 고통에 대한 성찰만이 진정한 예방이다. 그런 의미에서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은 거기에 대한 진정한 백신이다. 언제 물들게되어 버릴지 모를 파멸의 광견병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돈 윈슬로의 이 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2-05-14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요, 에세르님의 서재에서 <개의 힘> 리뷰를 읽었거든요.
그리고 그 서재에서 헤르메스님을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같은 책에 대한 리뷰를
연이어 읽으니 사람마다 다른 관점이 굉장히 흥미롭네요.....

제목이 하두 강렬해서, <개의 힘>의 의미가 뭘까 생각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다가왔습니다. 네, 광견병, 악의 힘, 비단 미국까지 갈 것도 없겠는데요.
요즘 우리나라 정치 정세를 보면 말입니다. 머, 사회도 나을 것도 없지요, 교육두요. ^^

어떤 형태이든, 중독은 무섭습니다. 다양한 중독이 있죠,
비단 물질 중독-마약, 알콜, 음식- 등만 중독이라고 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권력이나 힘도 중독인거 같아요...

ICE-9 2012-05-20 21:13   좋아요 0 | URL
정말 우리나라 정치 정세를 보면 '개의 힘'에 어느정도나 중독되어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리뷰를 썼더 날이 하필이면 통진당 중앙위원회 회의를 하고 있던 날이었죠. 오후 2시 부터 시작된 회의를 10시간 넘게 지켜보면서 정말 중독된 '개의 힘'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민주적으로 회의를 진행했던 심상정이나 유시민 그리고 그 오랜시간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자신의 한 표를 끝까지 행사할 것을 결의했던 나머지 중앙위 사람들을 보면서 결국 그것을 치유하는 길도 우리에게 열려있으며 그 무엇보다 옳은 것을 선택할 우리의 결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남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란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계기가 아니었던가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