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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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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는 동안'은 처음 접해보는 작가 윤성희의 '소설집'이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이사 준비를 해야했기에 제목 처럼 전혀 웃지 못하고 지냈다. 이사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할 일도 신경써야 할 것도 많다. 더구나 사람 상대하는 직업이 가장 힘든 직업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사를 위해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타전을 하고 타협을 하고 계약을 타결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다 세상엔 좋은 사람 배 이상으로 나쁜 사람도 많아서 받게되는 마음의 타격 또한 무시하지 못할 법이어서 하루가 멀다하고 스트레스 받을 일이 생기니 개그콘서트가 낙원으로 여겨질 만큼 이마에 내천자를 문신처럼 새기고 지냈다.

 

   주말 유일하게 챙겨보는 무한도전 역시 파업으로 한달 동안 결방이다 보니 도대체 이렇게 자꾸만 쌓이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지가 고민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술로 보내는 것도 한세월이지 주당도 아닌 내가 매일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 할 수 없이 틈나는 대로 윤성희의 소설집을 영화에서 경찰 서장들이 자주 그러듯 어딘가 숨겨놓은 위스키를 순간 순간 홀작이듯이 그렇게 읽었다. 제목이 '웃는 동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도 책을 통해 좀 웃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이 소설은 나를 위해 흔한 개그 하나 해 주지 않았다. 나는 지은이의 말을 가장 먼저 읽어야 했었다. 이 소설집의 제목이 '웃는 동안'인 이유가 지은이가 여기에 실린 모든 작품들에 한번만은 웃는 모습을 넣어주고 싶었다는 바람에서 나온 것이란 걸 미리 알았더라면...

 

  한번만이라도 '웃는 모습'을... 이라는 지은이의 말에서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니체가 언젠가의 글에서 왜 사람만 웃는 줄 아느냐고 말한적이 있다. 그것은 웃음을 발명해야 할 만큼 사람의 삶이 어렵고 슬프기 때문이라고... 니체의 이 말은 정말 윤성희의 이 소설집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하나같이 정말 웃음이 필요할 만큼, 외롭고 절망적이고 힘들기 때문이다.

윤성희는 이들 모두에게 이름을 하나도 지어주지 않았는데 (덕분에 등장인물들은 이름이라는 고유명사없이 별명으로만 불리거나 이니셜로만 지칭된다.) 그것은 이름이 상징하는 한 개인의 고유한 존재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별명이나 이니셜 같은 단순한 사물이 되기를 원할 정도로 외롭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정말 그들은 존재가 지워진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된다. 유령은 벽을 넘나들고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실체가 없기에 어디로든 이어지지 않는다. 유대는 오로지 자신의 기억만으로 가능할 뿐이고 때문에 유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대지를 떠받치는 아틀라스 처럼 저 홀로, 어디로든 이어지지 못한 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그 기억들이 하나같이 파편화된 관계들의 흔적이고 때로는 예전엔 좋았지만 지금은 바래어버린 유물들일지라도 자기마저 포기하면 자신의 존재는 물론이고 자기와 결부된, 그렇게 자신의 기억에 매어달린 존재들 또한 지워지는 것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제아무리 외롭고 나약하고 무기력한 일상에 처해있더라도 왠지 강해 보인다. 그들이 그런 일상에 짓눌러 있지 않다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들은 어쨌든 보살피고 먼 곳에 있는 할머니를 위해 일상을 기록하고 누군가가 듣게될 이야기를 짓는다. 매일 똑같이 늘 제자리로 돌아가는 바윗덩어리를 산 정상까지 밀고 올라가야할 시지프스의 일상이지만 윤성희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그래서 어쩌라고? 백번을 내려와 봐, 백 한 번 올려줄테니...'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관통한다. 그래서 강하다. 아마도 그래서 윤성희의 문체가 앞과 뒤가 뚝뚝 끊기는 단절의 느낌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그 하나하나가 마치 내지르는 주먹 혹은 안다리를 걸려는 다리로만 보인다.

 

  하지만 낙천적이지도 희망적이지도 않다. 윤성희의 이 소설들은 그냥 과정일 뿐이다. 삶이 그냥 지속이듯이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어떤 결과가 오든지 상관하지 말라고 하는 듯 하다. 중요한 것은 뭔가의 결과를 원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먼저 행동부터 하는 것이라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말하는 듯 하다. 어쨌든 행동 그 자체로서 구원이 된다. 이 소설집을 읽은 인상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것이 될 것인데 그래서 이사를 마치고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 뒷정리를 한 탓에 몸도 무너질듯 피곤하고 정신 역시 몸을 따라 혼미와 혼절을 왕복하고 있지만 리뷰를 썼다. 이 리뷰의 결과가 정신착란의 결과물이 되든 난삽의 사르갓소가 되든... 결과는 생각지 않고... 아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집중을 위해 마신 생맥주마저 한약을 달이듯 의식을 취기로 부채질 하고 있으니...

 

  아쉬운 것은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사 준비로 바쁘지 않고 좀 차분히 이 소설집을 벗할 수 있었다면 초반에 나에게 느꼈던 것들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었을 것인데... 하지만 기한은 이미 하루 넘겼고, 결국 어쨌든 끝은 보아야 하고... 그래서 이렇게 '웃는 동안'의 나의 리뷰는 미국 드라마 '24시' 처럼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쿵, 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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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3-0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제가 읽은 헤르메스님의 리뷰 중 가장 인간적인 리뷰였어요. 윤성희의 작품에는 위트가 없을지언정 헤르메스님의 글에서 유쾌함이 묻어나오면 그야말로 더 좋은것이죠.
저는 이 작품을 솔직히 말하자면 돈이 남아서 샀었습니다. 돈은 남고 사고 싶은 책은없고, 해서 마침 한국작품이 나와있기에 같이 주문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책이 오고 '어쩌면'의 첫 문단을 읽고는 덮었습니다.(요새는 책을 다 이렇게 대합니다... 하) 그런데 이 작가 참 특이한것이 문단도 나누질 않고 대화도 한 글로 치더군요. 그런데 이것이 또 부자연스럽지 않은것이 이 작가만의 매력인가봅니다ㅎㅎ

ICE-9 2012-03-01 23:26   좋아요 0 | URL
와! 얼마만에 보는 소이진님의 댓글인지^ ^ 혼미한 정신이 번쩍하고 듭니다. 저 역시 정말 아쉬웠어요. 뭔가 매력이 분명히 있는데 틈나는대로 읽어서 그걸 제대로 우려내기가 힘들더라구요. 결국 기한까지 넘겼으니 난을 바라보듯 관상만하고 있을 수도 없고, 윤성희님의 핵심은 '일단 저질러라!'이니 교주님의 손가락대로 행한 것이죠. 아무튼 체력 방전 정신 방전으로 거의 햇빛에 노출된 흡혈귀 같은 상태이지만 그래도 소이진님 너무 반가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