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푼도 용서없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86
제프리 아처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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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전, 집에 굴러다니던 <카인과 아벨>이란 책을 우연히 집어들었다. 그때가 저녁 7시쯤 되었을 텐데, 두권을 다 읽고나니 이미 동이 터 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지금까지도 읽어본 적이 없을 정도인데, 그날 이후 '제프리 아처'라는 이름을 한순간도 잊어 본 적은 없다.

알라딘에 있는 다른 분의 서재를 뒤지다가-탐방하다가 낫겠다. 뒤진다는 건 뭔가를 훔치는 느낌이라서-제프리 아처란 이름을 다시금 발견했다. <한푼도 용서없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는 걸 그래서 알았는데, 그의 솜씨를 아는지라 주저없이 시켰다.

그가 쓴 첫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적인 재미는 역시나 대단했다. 4명이서 100만달러를 찾기 위해 벌이는 사투가 귀엽기도 하고, 안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최소 몇십억이 아니면 좀처럼 놀라지 않게 되버린 내 감수성으로서는 100만달러를 위해 그토록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게 조금은 불만이었지만-특히 의사가 세운 계획은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겨우 8만달러를 벌었을 뿐이다-그건 그들이 지극히 양심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을게다. 한사람이 하나씩, 4개의 계획을 완수함으로써 주인공들은 잃었던 돈을 다시 찾는데, 제임스라는 귀족이 세운 마지막 계획은 '작전'이라고 하기에도 영 민망한 수준이다. 주인공은 귀족이 명예에 비해 무능하기 짝이 없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이 책에서 공감이 간 대목.
[일류 대가-여기서는 르느와르-의 실패작이 3만 파운드나 하는데, 특별히 유명한 화가는 아니더라도 걸작에 속하는 것이 단 수백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는 언제나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148쪽)]

뒤상인가 하는 사람이 미술작품 전시회에 변기를 출품한 적이 있다. 명성이 있는 사람이니 그것도 시대를 초월한 예술로 평가를 받았지만, 나같은 사람이 그런 짓을 하면 정신나간 사람으로 오인되어 병원에 끌려갈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예술작품 자체보다는 그걸 그린 예술가의 명성이 예술품의 가치를 돋보이게 해주는 게 아닐까?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루브르 박물관에 간다면 틀림없이 보게 될 [모나리자], 그 앞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단다. 하지만 그건 [모나리자]가 거기 걸린 그림들 중 사람들의 눈에 익은 몇 안되는 작품이라서 그러는 거지, 그들 중 그 그림의 예술적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게다. 난, 비록 복제품을 봤지만, 모나리자가 왜 그리 훌륭한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나 [밤의 카페], 뭉크의 [절규]가 명화라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말이다.

어느 스님이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고승 한분이 십년간 산에서 수양하다 나와서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오'라고 하자 사람들이 열광했다. 내가 그런다면 다들 '쟤 왜저래?'라고 할거다. 물론 뭔가를 깨달은 분이 하는 말이니 내가 하는 말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간에 억울하면 출세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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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혁명
손석춘 지음 / 월간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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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그래서다. 우리가 xx하는 까닭은. 진범은 누구인가]

이런 식의 비장한 말투와 더불어, '깜냥' '곰비임비' '가살피운다' '시나브로'같은 순 우리말이 도처에 등장하는 게 손석춘님이 쓰는 글의 두가지 특징이다. 한가지 특징이 더 있다면, 우리 사회에 대한 희망이 묻어난다는 것. 그는 특히 '젊은 벗'으로 지칭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품고 있는 듯한데, 난 거기에 별로 공감하지 못하겠다. 신자유주의의 광풍 아래 자기 스스로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 그래서 자신의 안위밖에 관심이 없는 듯한 우리 젊은이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담?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누가 이승만을, 누가 박정희를, 누가 전두환을, 저 피묻은 독재권력의 철옹성을 무너뜨렸는가? 민중이다. 민중은 더디지만...끊임없이 역사의 발걸음을 옮겨왔다(319쪽)]
모르겠다. 역사라는 게 크게 봐서 진보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런 속도로 가다간 우리가 바라는 그 날이 언제 올 것인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긴 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별반 노력도 안하면서 진보에 대한 희망마저 갖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럽긴 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노무현은 민중의 기대를 저버린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노무현의 당선에 기대를 가진 사람 중의 하나지만, 손석춘의 말은 기본적으로 옳다. 노무현이 서민의 대통령이 되리라는 희망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디제이도 그랬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면 자신의 지지층의 정서와 어긋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지지층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을 지지할 것이므로, 자신을 뽑지 않은 집단에게 영합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것이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그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증오에는 이유가 없다고, 소위 반노 세력은 노무현이 무슨 짓을 한다해도 좋게 보지 않게 마련이다. 노무현이 아무리 우향우를 한들, 수구세력의 눈에 그는 여전히 '빨갱이'에 불과하다. 반대 세력에의 영합은 오히려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와, 양측 모두로부터 욕을 먹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던가. 그가 후보 때인 작년 5월, 손석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노무현의) 바람이 사라진다면 책임은 누구에 있을까. 수구정당. 수구언론일까. 아니다. ...바람의 맨 앞에 자리한 정치인 노무현에 있다 (50쪽)'
노무현 바람의 실종이 노무현의 탓이듯, 취임 초 70%를 넘던 지지율이 지금의 25% 수준으로 추락한 것 역시 그의 책임이 가장 크다.

'마땅히 국가에서 책임져야 할 일까지 가족으로 떠넘기는 것은 야만이다. 텔레비젼에서 연예인들이 소년소녀 가장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전화(ARS) 성금을 모으는 행태들이 대표적이다....가족주의나 온정주의가 아니라 제도적인 사회보장이 가족윤리의 진정한 복원을 위해 필요하다 (258쪽)'

이 말 역시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태풍 매미 때도, 지하철이 불탔을 때도 정부는 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태풍이나 재난에 대비할 시스템을 갖추는 대신, 일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에게 손을 내미는 정부가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뭐니뭐니해도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여기였다.
[저 많이 울었습니다...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권력자들)은 하나도 변함없음이 화가 나서...사실 정말 많이 울었던 것은...그들이 여전한 것이 꼭, 힘겨운 생활 내세우며 세상을 등지고 있던 내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161쪽)]
스스로 착하게, 남에게 폐 안끼치고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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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지승호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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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이 국민타자, 조용필이 국민가수라면, 인터뷰라는 척박한 분야에 뛰어들어 인터뷰를 예술로 승화시킨 지승호는 국민인터뷰어다. 홍세화 인터뷰를 보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참 대단하고, 이걸 끌어내는 사람도 대단하다'고 말한 김정란의 말처럼, 특정인이 쓴 글은 단편적으로만 그를 알리지만, 지승호의 인터뷰는 그 사람에 대해 내가 궁금했던 모든 것을 알게 해준다. 이 책은 인터뷰를 묶어서 낸 그의 세번째 저서인데, 읽고나니 머리속이 꽉 찬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지금까진 아웃사이더들에 치우친 감이 있는데, 언행일치가 전혀 안되는 인사이더들도 인터뷰해 줬으면, 하는 게 소박한 바람이다.

강준만의 말, '호남차별을 외면하거나 저지르면서 외치는 진보는 사기에요. 아주 몹쓸 사깁니다 (91쪽)'
진중권의 말, '호남차별이 있으면 메커니즘을 밝혀서 그것을 극복해야 되거든요....그런 시도를 강준만 교수가 하고 있느냐? 안하고 있어요. 남는 건 '그냥 민주당 찍으면 된다'는 거잖아요 (115쪽)'
김민수의 말, '한강 하면 자살하는 사람 얘기밖에 없잖아요...다리란 보는 것 이전에 건너면서 느끼는 구조물입니다...온몸으로 교감되어야 할 게 다리지요...천천히 걸어서 건너면서 정말 절로 노래가 나오는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306쪽)'

이분들 외에 홍세화, 노혜경 등 다른 분들의 인터뷰도 즐거운 맘으로 읽었다. 하지만 진중권의 인터뷰는 좀 짜증이 났다. 다른 분들이 자신의 지향이나 미래에 대한 비젼을 역설하는 데 비해, 진중권은 50쪽에 달하는 인터뷰 내내 남들 욕만 하고 앉았다. 그것도 남들의 발언을 자기 편할대로 왜곡해서 이루어진 거라 공감이 가지도 않았지만, 설사 그 비난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인터뷰 전부를 그런 식으로 채운 것은 정말이지 짜증스럽다. 난 진중권이 쓴 책은 무조건 사는 매니아지만, '본인은 논리적으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고 '자기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과도하게 평가한 부분이 있다(354쪽)'는 노혜경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란 책에서 진중권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동안 조선일보에서 수여하는 동인문학상을 거부한 문인들이 있었다. 공적인 이유가 아니라 어떤 사적인 이유에서 얼떨결에 거부한 것인지, 아니면 조선일보와 관계하기를 끈질기게 요구하는 대중들의 다분히 정치적인 독촉이 귀찮아서 거부한 것인지 그 속내야 알 수 없지만... 바람직한 일이다(325쪽)]

문인으로서 조선일보와 맞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있을 진씨가 '얼떨결에'같은 언어폭력을 버젓이 저지르는 장면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강준만의 말대로 '인터넷에서 싸움질만 하다가 심성이 피폐해진' 걸까. 그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존재이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감성에 치우친 그의 행보가 더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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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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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어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고 난 뒤, 책을 읽을수록 스스로 무지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걸 타개할 목적으로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있는데, 서양미술에 관해 공부를 하려니 신화를 모르고는 얘기가 안된다. 다행스럽게도 이윤기님이 쓴 책이 나와있어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방대한 스케일을 가진 그리스 신화를 읽으면서, 우리 신화의 빈약함에 기분이 상한다.

그쪽 애들이 '지구를 짊어지고 있는 아틀라스'라든지 '헤라를 속여 남의 말을 따라할 수밖에 없게 된 에코 요정', '에로스를 사랑한 프시케' 같이 장황하면서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신화를 만드는 동안, 우리 선조들은 도대체 뭘 한걸까? 호랑이와 곰이 마늘을 먹는데, 호랑이는 중간에 포기하고 곰이 사람이 되어 환웅의 부인이 되었다는, 어릴 적에 들어도 재미없는 신화가 고작이지 않는가? 물론 그 신화 말고도 전해내려오는 신화가 없는 게 아니며, 기록에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특성을 고려할 때 중간에 없어진 신화들도 꽤 많을 테지만, 현존하는 신화들 중 '매일같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태양마차를 끄는 헬리오스'같은 방대한 스케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윤기는 '우리 민족으로서의 '우리'보다는 인류의 한갈래로서의 '우리'라는 관점을 갖자'고 하지만, 그게 맘같이 잘 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웅장한 신화의 세계를 창조한 비결이 도대체 뭘까? 그들이라고 특별히 상상력이 뛰어난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들의 발달한 정치체제가 신화의 융성을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여자와 노예가 제외된 반쪽짜리이긴 해도, 그들이 꽃피운 민주주의는 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자신의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가 평등하게 보장되는 환경에서 그들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편 게 아닐까?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이 상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전제 군주의 학정에 시달리던 우리 선조들이 이렇다할 신화를 만들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긴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창조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요소들은 여전히 많다. 다양한 의견이 '무질서'로 인식되는, 획일적 사고에 길들여진 사회 분위기도 그렇지만, '다름'이 곧 '차별'로 이어지도록 제도화된 국가보안법의 존재가 사회 구성원들의 상상력을 질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름에 대한 존중,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웅대한 서사시를 우리 스스로 써나가기 위한 필수 조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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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고전편 환상문학전집 12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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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청룡열차가 참 무서웠던 적이 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롯데월드에 있는 자이로드롭도 무섭지 않다. 무서운 얘기도 마찬가지다. 중1 때만 해도 그림 속의 농부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의 얘기-'글쎄, 농부가 들고 있는 낫에 피가 묻어 있었대!'-를 듣고 한숨도 못잤고, 머리길고 흰옷입은 여인이 출연하는 [전설의 고향]을 덜덜 떨면서 봤지만, 지금은 웬만한 얘기엔 눈하나 깜짝 안한다. 공포에 대한 역치는 사람이 자라면서, 또한 시대가 바뀌면서 상승하기 마련이다.

카프카, 에밀 졸라, 엘런 포, 발자크, 조지 웰스 등 문단의 기라성같은 스타들이 쓴 단편들을 읽으면서 '이게 뭐야' '하나도 안무섭잖아' '이런이런' 같은 탄식만 연발했던 것은 시대가 바뀌면서 공포에 대한 역치도 한없이 치솟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살았던 그 당시에는 몇몇 사람들을 무섭게 만들 수 있었겠지만, 요즘이라면 애들도 이런 이야기에는 무서워하지 않을거다. 개미떼와 싸우는 얘기, 하도 우려먹어서 식상한 흡혈귀 얘기, 심해에 사는 바다괴물 얘기, 이게 도대체 뭐가 무서운가?

[이제 이야기는 독자들 모두가 너무 놀라워서 도저히 믿지 못할 부분에 이른 것 같다. 하지만 그저 이야기를 해 나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46쪽, 발드마르 씨 사례, 엘런 포)]

이 대목을 읽고 난 뭔가 엄청난 게 나올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막상 나온 것은 지극히 당연해서 그렇게 되리라고 충분히 예측했던 거였다. 웃음도 그렇지만 공포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전복적 요소가 있어야 무서운 법인데, 여기 실린 단편들은 그런 점에서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검은 고양이>로 유명한 에드가 엘런 포야 워낙 공포 소설을 많이 썼지만, '나는 고발한다'로 유명한 에밀 졸라나, 중학교 때 중요 부분만 읽은 <여자의 일생>의 작가 모파상, <변신>을 썼던 카프카 등이 이런 류의 소설을 썼다는 것은 좀 뜻밖이다. 여기 실린 작가들이 그 뒤에는 공포소설을 더이상 쓰지 않은 걸 보면, 그 당시 사람들도 이들의 업종전환에 냉담했기 때문이 아닐까?

무섭진 않지만 걔중에는 소설적으로 훌륭한 것들이 많이 있는지라 공포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유명 작가들의 단편소설집이라는 생각으로 읽는다면 차라리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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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lackdgus 2005-12-2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를 느끼는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겠져
유형지에서 다시 한번 보시길..변신에 버금가는 소름끼침을 느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