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범죄신호 - 모든 범죄에서 당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법
가빈 드 베커 지음, 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시절, 이른 아침에 친구집을 가는데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무시하고 계속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모자에 마스크를 쓴 아저씨가 날 따라오고 있다.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유괴범이다!' 어머님께 배운대로 큰길로 나가 소리를 지르는 대신, 난 친구집이 있는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었다. 난 뛰고 그는 걸었지만 차이는 점점 좁혀졌다. 친구집이 보였다. 난 있는 힘껏 대문을 밀었고, 거짓말처럼 대문이 열렸다. 난 유괴범이라고 소리치며 친구를 불렀는데, 그놈은 대문을 열고 들어와 잠깐동안 날 째려보다 돌아갔다. 그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편안히 앉아 글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섬뜩한 기분이 든 이유는 무엇일까? 눈은 정확히 보지 못했지만, 내 동물적인 감각이 그의 존재를 파악했던거다. 푹 눌러쓴 모자에 마스크, 체크무늬 잠바, 손에 든 멍키 스패너, 게다가 귀티가 나는 내 모습까지. 내 육감은 이런 것들을 종합해 내게 위험신호를 보냈지만, 내 뇌는 그걸 무시한 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던 거다.
<범죄신호>를 쓴 가빈 드 베커는 일관되게 말한다. 직관을 믿으라고. 모든 인간에게는 위험을 감지하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고 말이다. 예컨대, 편의점에 들어갔다 예감이 안좋아 곧바로 나온 한 남자는 뒤이어 벌어진 총격사건을 피할 수 있었는데, 그는 처음에 예감이 안좋은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지만, 나중에야 그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직관은 편의점에 있는 한 남자의 존재를 파악했는데, 그 남자는 크고 무거운 재킷을 입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 재킷이라, 물론 그건 총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고, 본능을 믿은 그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베커의 말이다. '직관을 믿으면 생명을 구할 수 있고, 그게 틀렸다 해도 손해볼 것은 없지 않는가?'라고.
우리는 늘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만, 실제 범죄의 대부분은 아는 사람으로부터 저질러진다. 늑대가 사람을 물어죽이기라도 하면 늑대 공포증이 전국을 휩쓸어 밖에 나가는 것조차 삼가지만, 대부분의 범죄는 집 안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전조가 없는 범죄는 없다. 살인이 일어나면 '그렇게 순하던 사람이...'라며 너스레를 떨지만, 살인의 신호들은 계속 있었고, 희생자는 그 신호를 무시한 거다. 우리가 우리 내부의 위험신호들에 좀더 귀를 기울인다면 혹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베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범죄예방에 있어 최고의 전문가인 베커의 <범죄신호>는 이런 것 말고도 스토킹 등 다양한 범죄들을 예방하는 노하우를 기술해 놓고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책이다. 특히 스토킹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여성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남자의 경우 일생동안 살아오면서 생명의 위협을 겪은 경험이 손으로 꼽을 정도지만, 여성들의 경우에는 상시적으로 위험을 느끼며 살아가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