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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평점 :
공선옥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 특히 남편과 시어머니는 대개 악인이다. 남편은 “술을 먹고 마누라를 후려치”는 사람이다. 여자(이름이 용자다)는 왜 그런 남자와 결혼했을까. 그 남자에게 겁탈을 당했기 때문. 그럴 줄 알았으면 “...사팔뜨기 박씨와 결혼을 했던 게 훨씬 나았을 것도 같았다” 그럼 남자 생각은 어떨까.
“남자는 어쩌다가 실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그 실수를 한번 했는데 용자가..바짓가랑이를 붙잡았던 통에 맘에는 들지 않지만 인정에 이끌려 결혼을 했”다. 물론 그건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실수”란다. 남자 자신은 ‘실수’지만 여자에게 있어 그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강간범보다 당한 여자를 오히려 손가락질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인정에 이끌려 결혼해 줬다는 식의 생각은 당장에 붙잡아 회를 쳐먹을 발상이다. 결국 매맞는 것에 진력이 난 용자는 집을 나가고, 남편은 열나게 그를 찾아다닌다. “한번 집 나간 여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 다음 시어머니. 아내가 죽은 후 종만(다른 남자다)은 다방 여자와 재혼을 한다. 27세인 계모에게 17살인 망나니 아들은 이년 저년 하면서 대드는데, 그걸 종만이 나무라니까 시어머니가 악을 쓴다.
“지집이 잘못 들어온 거야. 그 사이 좋은 애비 자식을 갈라논 것이 필시 저 지집이랑게”
자기 아들 자기가 가르친다면서, 왜 거기다 자기 아내를 갖다대냐는 종만의 항변에 시어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저년이 인자 어미 자식 간도 갈라놀라고 허는개비. 굿을 혀야 써, 굿을”
시어머니에게 있어서 모든 악의 근원은 새로 들어온 며느리다. 공선옥 소설에 나오는 시어머니는 대개가 이렇다.
이런 의문이 생길 법하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다 그렇게 나쁜 것일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지 않은가. 그건 아니다. 사람의 인간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도박을 해봐야 하듯이,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야 인간의 참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공선옥이 다루는 사람들은 언제나 입에 풀칠하기 급급한, 없는 사람들이기에 시어머니와 남편은 상대적 약자인 아내를 탄압하는 나쁜 사람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공선옥은 <말>지에 “나이 마흔에 길을 떠나다”는, 지방 탐방 시리즈를 연재한 적 있다. 이 연작소설의 주인공 ‘한’은 아마도 공선옥 자신일 테고, 그때 만난 사람들의 얘기가 이 소설의 모태가 되었으리라. 문학평론가 방민호의 말처럼 오늘날의 소설 독자들이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가 아니라 결코-좋아하지 않는지라, 공선옥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픈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사회 진보에 기여하는 게 바로 문학의 사명이니까. 난 공선옥이 좋다.
* 사족: 공선옥답지 않게 오자가 좀 있는 듯하다.
-129쪽: 영숙은 그저 남들이 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만 오는 반상회가 끝났다.
-141쪽: 경찰서 안이 난장판이라 여겨지는 건 담배를 권한 형사가 조사를 하고 있는 자의 역할이 크다.
-190쪽: 노인 때문이 아니라 한을 보고 김 선장을 뱃머리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