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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교전 1 ㅣ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2012년 12월 30일 밤 11시,
난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안읽은 책이 놓인 책꽂이를 훑었다.
그때 내 눈에 띈 책이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
<신세계에서>를 읽고 난 뒤 그의 책을 마구 사들일 때 같이 산 책인 듯했다.
영화를 볼 때나 책을 볼 때나 난 사전설명 없이 보는 걸 선호하는데,
이 책 역시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기 시작했다.
바르고 성실한 고교교사 하스미 선생이 까마귀 한 마리를 감전시켜 죽일 때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하스미가 훌륭한 선생으로 묘사되는 대목이 이어지자 “역시 그렇군”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목이 ‘악의 교전’인데 ‘악’은 도대체 언제쯤 나오냐며 책장을 넘기던 중
다음 장면에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여고생 한 명이 자기를 위기에서 구해준 하스미에게 매달렸을 때 하스미는 이렇게 한다.
“위로를 바라는 야스하라(여고생)를 뿌리치기가 망설여졌다...하스미는 바로 역발상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야스하라를 꽉 끌어안고 적극적으로 키스하는 자세를 취했다.”(126쪽)
이, 이 장면은 도대체 뭐지?
그제야 책의 제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책장은 숨가쁘게 넘어갔다.
새벽 한시가 됐을 때 아내가 말했다.
“한시다. 지금 자야지 내일 출근하지!”
조금 버텨보려 했지만 아내는 완강했다.
안되겠다 싶어 불을 껐지만, 잠이 올 턱이 없었다.
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쓴 채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책을 읽었다.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에 아내가 눈치를 챌까봐 조심하면서.
아내가 방향을 돌려 내 쪽을 향하는지 이따금씩 확인하면서.
그러다보니 시간은 새벽 4시를 넘어섰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억지로 잠을 청했고,
다음날 퇴근하자마자 다시금 책을 집어들었다.
2012년의 마지막 순간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책을 다 읽고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2013년 1월 1일, 새벽 3시였다.
내 몸안에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 느낌이었다.
얼마 전 기시 유스케에 대해 비난했던 게 미안했다.
폭풍에 몸을 맡기고 싶다면 <악의 교전>을 펼치시라.
*제목을 낚시성으로 달았더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래서 인터넷 신문들이 제목을 그렇게 다는구나,는 걸 이해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