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영웅들 - 필멸의 인간 영웅 아킬레우스에서 아고라의 지성 소크라테스까지
그레고리 나지 지음, 우진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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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대 그리스 영웅들>- 소크라테스가 왜 영웅인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은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이다.

그 중에서도 대상이 되고 있는 영웅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필멸의 인간 영웅 아킬레우스에서 아고라의 지성 소크라테스까지"

 

그 말을 읽고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은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타당하다 싶은데, 소크라테스를 영웅이라는 범주로 분류해도 되는 것일까?

 

그래서 영웅의 의미와 소크라테스를 그 안에 포함시킨 이유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이 책에서 '영웅'이라 함은?

 

이 책에서 영웅들의 속성들을 살펴보면, 그 안에 모험, 신성한 항해, 여정, 정신적 여정, 철학적 여정이 들어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그러한 속성을 구비한 자가 바로 영웅인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저자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신성한 항해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테오리아 가 은유적으로 철학적 관조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1012)

 

<따라서 철학적 관조라는 개념은 신성한 항해라는 의식뿐만 아니라 구원의 신화와도 관련이 있다. 게다가 우리가 살펴보려는 것처럼 플라톤이 소개하는 소크라테스는 심지어 신화 그 자체가 구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1012)

 

<23장에서 확인한 것처럼 아테나이의 배가 겪는 신성한 항해는 철학적 관조로서의 신성한 여정의 개념과 일치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의미하는 관조는 파이돈에서 극화된 대화의 살아있는 말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가 계속되어 심지어 소크라테스가 죽은 이후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마치 플라톤의 국가 마지막에서 에르의 신화가 구원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1042)

 

오이디푸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특별한 영웅들에 대한 신화에서 이와 유사한 이중적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결과를 그려내는 데는 많은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모든 것은 죽음 이후에 어떤 식이든지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기본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808)

 

<그 내용은 결국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 다시 살아오는 인간에 대한 특별한 영웅 추종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808)

 

이와 같은 이치는 헤라클레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헤라클레스는 죽음의 순간에 다시 의식을 되찾고 올림푸스 산 꼭대기에 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불멸의 산들 사이에서이다. 죽음에서 깨어난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제 올림푸스 산의 '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88)

 

이러한 생각은 저자가 18강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소포클레스에게 콜로누스의 사랑스러운 대지의 여신의 품에 안겨 그 안에 빠지게 된다는 개념은 진정한 '귀향'을 이루는 죽음이다. 이 귀향은 죽음 뒤에 나타나는 빛과 생명으로의 진정한 회귀다.> (817)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대미를 다음 말로 장식한다.

<고대 그리스 영웅들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웅이라는 개념이 살아있는 한, 영웅에 대한 말도 살아있는 말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말이 살아있다면 영웅도 그와 함께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다.> (1046)

 

소크라테스가 왜 영웅인가?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에서 소크라테스는 헤라클레스나 오디세우스와 같은 영웅으로 일컬어진다. 왜일까? 960 -961쪽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전 세계를 방랑하는 것을 그 노고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끝나지 않는 자신의 정신적 여정이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은 헤라클레스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는 여기 저기 안가본 곳 없이 방랑을 하며 끝없는 육지와 바다 전부를 여행했는데, 모두 국왕 에우리스테우스가 자신에게 내린 과업때문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수많은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으며, 그만큼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오디세우스

<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도시를 보았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는 바다를 건너며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고, 동료들과 자신의 무사귀환을 위해 애쓰면서 마음 속으로 수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런 진술은 솔론을 거론하는 23강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헤라클레스, 심지어 오디세우스조차 끝나지 않는 영적 여정속에서 전 세계를 '방랑'하는 소크라테스와 비교되는 영웅적 모범으로 보일 수 있으며, 이제는 솔론 역시 그와 같은 모범으로 볼 수 있다. 특별히 이 이상화된 입법자 자신의 영적 여정이 철학적 여정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970)

 

다시 이런 결론으로 이어진다.

<소크라테스는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에 반응하고 구원을 해 준다. 이 은유는 군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호메로스적 서사시에서 볼 수 있는 영웅적 행동이다. ......파이돈은 마치 헤라클레스의 숭배자들이 영웅을 부르듯 그렇게 소크라테스를 부르길 원한다. 이렇게 불멸화에 대한 주장은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1003 1004)

 

그래서 이 책에서는 소크라테스를 영웅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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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수업
수산나 타마로 지음, 이현경 옮김 / 판미동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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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비한 마력이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책

 

궁금증과 함께 시작한 소설

 

소설속의 화자는 누구일까?

그게 맨 처음 들었던 궁금증이었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증은 더 많아졌다. 이 사람의 정체는 누구일까? 왜 산에서 사는 것일까? 그리고 가족은? 과거의 직업은? 등등.

 

그렇게 궁금증을 유발하는게 많으면 많을수록 더 흥미진진한 소설이 아닐까? 거기에 문장의 흡입력이 더해진다면? 그 소설은 좋은(?) 소설, 읽을만한 소설이다,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소설이 바로 이 <영원의 수업>이다. 서두에 언급한 궁금증은 이 책의 제목과 어울려 상승작용을 거듭한다. 무언가 있다. 이 책 안에 분명 무언가 있다는 기대감이 충만한 가운데 이 책을 읽었다.

 

 

줄거리

 

이 책은 줄거리를 먼저 알고 읽으면 책 읽는 재미가 반감이 되니, 줄거리는 말하지 말자. 단지 화자인 마테오가 의사였던 것, 그리고 상실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만 말하자. 그런 간단한 정보만 가지고 이 책을 읽어보라. 책장을 넘길수록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책 제목이 영원의 수업인 이유는?

 

영원과 대화하면 절대 시간낭비란 없어.” (155)

 

화자인 마테오의 아내 (이름 역시 말하지 말자. 아내의 이름이 언제 등장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이다) 가 마테오에게 한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마테오의 아내는 매일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침실로 들어가 거기서 삼십 분가량 아무런 방해도 맏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어했.(154)

그게 의아했던 마테오는 왜 그러는지 몇 번이나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 소풍을 갔을 때에 그녀는 앞쪽에서 반짝이는 파란 바다와 하늘의 구름 그리고 그들을 에워싼 바위들을 가키며 말한 것이 바로 위에 인용한 말이다.

 

그렇게 영원과 대화하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바로 이 소설이다.

화자인 마테오는 그렇게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떻게 자기가 영원의 시간으로 들어갔는지를 차분한 필체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 편지글의 대미에 그는 이렇게 영원으로부터 받은 수업의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잠에서 깨자 난 이상하게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어. 숲 바깥쪽에서는 정오의 햇살이 빛났지.>(279)

 

영원의 수업을 듣고 가슴에 새겨둔 구절들

 

그런 영원의 수업을 치르고 있는 화자로부터 나도 많이 듣고 배웠다. 다음은 그런 배움의 과정애서 내가 특별히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다.

 

<처음에는 나에 대해 지속적으로 정의를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형용사 또는 명사가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익숙해졌다. 그러한 분류가 인간 본성의 일부분임을 알았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어떻게든 정의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정의가 우리를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13 - 14)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쉽게 유혹당하지. 겉으로는 확실해 보이니까. 우리는 사물을 보면서 외형이 바로 실재라고 확신해서 의문을 품지않아.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만족해서 더는 앞으로 나가지 않지.

아버지는 종종 말씀하셨어.

눈이 보이는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55-56)

 

<엄마 체온을 느끼지 못하면 아기는 가장 먼저 이 세상이 두려운 곳이고, 무서운 짐승이 와서 지금까지 자라 온 따뜻한 곳에서 자신을 강제로 끌어낸다고 생각할 거야. ....태어나서의 며칠을 망치는 건 평생을 망치는 것과 같아. >(76)

 

<모든 비극에는 만일이라는 비가 쏟아져 내리지.>(94)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나는 적어도 인간을 이해해보려고 했지. 세상의 고통이 내게 계속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면 적어도 그 고통을 완화해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테니 말이지.> (123)

 

<어떤 일들을 서로 비난하게 되면 우리 관계는 둘이 아니라 셋이 돼 버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이야기를 갉아먹기 시작한 나무좀.> (169)

 

 

상실의 의미

 

그가 겪은 상실은 어떻게 그의 삶에 나타나는가?

 

<“왜 날 사랑하는 거지? 난 사랑받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야

그녀가 고개를 저었어.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지.

난 당신이 보지 못하는 마테오를 볼 수 있어요.”

어떤 마테오?”

절망하기 이전에 존재하던 마테오요.”> (208)

 

절망으로 나타난다. 상실은 절망으로, 그리고 그 절망은 그가 그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런 그를 보다못한 마테오의 아버지는 편지에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마테오, 제발 부탁이다. 본래의 너로 돌아오너라.”(239)

   

그러다가 그는 드디어 발견한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그 상실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당신은 내 삶에 나타났다가 갑가지 사라져버렸어. 그리고 나는 여러 해 동안 미친 듯이 내가 잃은 것을 쫓아다녔어. 내게 없는 것에 나를 집중했지. 그 잃어버린 것이 내 일상의 나날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른 채.

당신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사라진 거야.

그 사실을 내가 알기 전까지 당신의 희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지.> (266)

 

<당신은 내 마음 속에 있던 텅 빈 공간을 당신의 사랑으로 다시 가득 채웠지.>(267)

 

현실은 어떻게 직시할 수 있는가?

 

<쓸데없고 지나친 생각들을 모두 머리에서 지울 수 있었어. 생각이 자유로워지자 그 때까지 내가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았고, 내가 본 현실을 직시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다만 내가 보고자 했던 그게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268)

 

줄거리 이해를 돕기 위한 몇가지

 

저자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저자는 아들의 이름을 의미 있게 지었고, 그 이름으로 뭔가 말하려는 것 같다. 그 이름은 나단이다. 나단은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죄악을 저지르자 그에게 가서 책망을 했던 선지자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인데, 여기에서도 그가 찾아와서 아버지에게 책망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단은 마테오가 아이를 임신시키고 버린 여인 라리사가 낳은 아들이다. 그 아들이 찾아오게 스토리를 이어간 것 자체가 주인공 마테오로 하여금 인생의 회심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회심은 영원의 수업을 지속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으므로저자가 아들의 이름을 '나단'으로 지은 것이 아닌가 짐작하는 것이다.

 

그 아들 나단(선지자)은 아버지 마테오(다윗)에게 무슨 말- 책망의 말- 을 하는가?

<돌아온 탕아 이야기예요. 거기서는 아들이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고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잖아요. 여기선 반대로 아버지가 집을 떠났고, 아들이 아버지를 찾으려고 흔적을 따라 산과 바다를 돌아다니니까요.>(277)

 

<내가 말했지 " 나를 용서해 다오."

(중략)...

"벌써 용서했어요. 당신은 비겁하게 행동했지만 벌써 용서했어요.">(278 쪽)

 

여기 아들 나단이 말하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역시 성경에 등장하는 것으로, 예수가 언급한 비유의 이야기 중 하나이다.

 

그렇게 해서 아들로부터 용서받은 마테오는 그가 겪고 있는 상실을 극복한다. 이런 극복을 통해 그가 수행하고 있는 영원의 수업이 의미있음을 독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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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김경주 지음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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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헤맬 때, 내 곁엔 누가? 무엇이?

 

시극(詩劇)이란?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읽었다. 시극이라고 한다. 내 상식으로는 시극(詩劇)이란 극의 내용이 시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시로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읽었다, 한 번. 그런데 인물들 사이에 오고가는 대사가 시 같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대화, 산문체 대화로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게 시극? 그런 의문이 먼저 들었다.

 

내가 헤맬 때,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읽었다. 그런데 내용마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의문은 물론이거니와, 등장인물간의 관계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든 생각은 자괴감, 내가 글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일까,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이 있는 책인가?

 

그렇게 헤맸다. 그렇게 헤매며 한 번 읽고나서 다시 읽으려 했다. 두 번쯤 읽으면 이해가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번 읽으려다가 해설이 첨부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해설을 읽어볼까 말까, 순간적인 망설임이 일었다. 문학에 전문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해설이란 항목은 대부분 젠 체 하는 평론가의 놀이터에 불과했다. 요령부득으로 전문용어들이 난무하고, 현학적인 문장의 뒤엉킴, 그래서 어떤 경우는 더욱 난해한 미로로 끌려가기 일쑤였기에, 이 책의 경우도 혹시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하는 기우가 또한 일었다.

 

그래도,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니 이 해설 역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별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체념을 반넘어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 제목을 패러디해서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헤맬 때,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있었다. - 의문, 자괴감, 기우 말끔히 해소해주는 해설

 

그렇게 생각하고 읽었던 해설, 읽기 잘했다. 해설을 읽고 나니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들인지, 심지어 유령인 것도 알게 되었고, 그들 간의 관계도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러니 나의 독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 해설 읽기를 잘 했다.

 

그러니 내가 가장 헤맬 때 나를 도와줄 무언가가 이미 예비되어 있었는데, 나는 자라 보고 놀란 토끼처럼 지레 짐작으로 '해설' 읽기를 저어하고 있었으니, 그걸 읽지 않았더라면 이 책의 진면목을 놓치고 말 뻔했다.

 

그렇게 나의 부족한 독해력을 도와줄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나의 의문, 자괴감, 기우를 모두 말끔하게 해소해주었다,

 

들어있는 뜻 깊은 의미들

 

그래서 나는 해설을 읽고 본내용을 다시 한번 읽었다.

거둔 수확은 의외로 많다. 뜻 깊은 의미들이다. 그냥 열거하기로 하자.

 

인생은 다른 인생의 삶에 있어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타자와의 공감대는 어떻게 형성이 되는가?

눈을 바라보며, 귀 기울여 듣고, 진심으로 답하는 가운데 상대방과의 접점이 생긴다.

대화는 정보교환에 머무르지 않고 시적교류로 이루어지면 어떨까?

 

빛나는 아포리즘

 

사랑하는 이가 떠나도 슬픔마저 떠나지는 않는 법이니까 (60)

 

사람들은 벌레가 징그럽다고 생각할 뿐, 벌레의 날개에는 관심이 없죠. (105)

 

눈은 세상에 자신의 고요를 조금씩 쌓고 있는 거예요.

곧 저 눈은 다 고요가 될 거예요. 깊고 아득한 것들로 돌아가기 위해서. (108)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어둠 속에서 손을 꼭 잡고 이렇게 조금만 있자....하는 거요.

멋져

또 말해줘. 사랑이 뭐야?

이불 속에서 지느러미를 부비며 노는 거. (118)

 

그래서 이 책, 시극(詩劇) 맞다.

 

이런 아포리즘을 찾아 읽으며, 나는 이 책이 왜 시극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대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대사들이 리듬을 타고 있으며,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에서도 리듬을 타고 있었다.

해설을 쓴 평론가 허희는 리듬을 재발명해야 한다(149) 했는데, 그것은 작가의 몫이고, 독자인 나로서는 이 책에서 시극의 요체인 리듬을 재발견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간의 관계도 리듬을 타고 소통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이런 책 처음이다. 좋은 느낌으로 - 비록 등장인물들은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하지만 - 책을 접었다.

 

다시 질문 - 내가 가장 헤맬 때, 내 곁엔 누가? 무엇이?

 

이 책의 해설이야기가 아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헤맬 때 과연 내 옆에 누가 있을까? 내가 그 헤맴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애쓸 때 누가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을까? 책을 덮으며 든 또 하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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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인문학 - 하루를 가장 풍요롭게 시작하는 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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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맞이하는 인문학적 풍경들

 

     새벽이 언제 올지 몰라

     문이란 문은 다 연다.

     새처럼 깃털 달고 날아올까,

     아니면 바닷가 파도처럼 밀려올까?

          - 에밀리 디킨슨,  <새벽의 인문학> 95쪽에서 인용.

 

작가의 눈은 우리와 다르다.

 

이 작가의 눈은 신비하다. 경이롭다. 작가의 눈은 현미경으로 또는 망원경으로 작동한다. 아니 그보다 더 치밀한 광학적 프리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언제 새벽에 새들의 첫 노래 소리도 숨죽인 듯 낯설’(139)은 것을 느껴 보았던가? 그리고 그러고 나면 한 마리 한 마리씩 노래를 받아 부른다’(139)는 것을 생각이라도 한 적이 있던가?

 

그런 - 우리는 결코 상상도 하지 못했던 - 새벽을 저자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새벽을, 우리가 잠자느라 또는 잠이 깨어서도 전혀 보지 못했던 순간들을 그만의 특이한 눈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새벽의 <파브르 곤충기>, <시튼의 동물기>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곤충기, 동물기가 있다. 시튼의 동물기, 파브르의 곤충기이다.

그러데 그런 것들보다도 더 치밀하게 관찰한 기록이 여기 이 책에서 전개된다.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워 대충 그 항목만 소개하련다

 

나는 청설모가 꼬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즐겁다로 시작하는 청설모 이야기. (161)

푸른가슴왜가리의 옆모습은 이곳에서 아침에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로 시작하는 왜가리 이야기.(162)

굴뚝새 한 마리가 현관문 근처에 달아놓은 베고니아 화분으로 뛰어든다, 라는 굴뚝새 이야기. (165)

 

어디 그뿐인가, 그림도 시도 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 <남풍, 맑은 하늘>을 주제로 한 산 이야기, 더 나아가 파도이야기 (170)

 

그리고 모네가 우연히 호쿠사이의 작품을 접한 일화도 우리를 새벽으로 인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171)

 

모네에 대한 찬사는 비단 여기뿐만이 아니다. 모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77쪽부터 한 장에 걸쳐 이어진다. 고딕 성당을 그리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창가에 이젤을 놓는 모네, 바로 루앙성당을 대상으로 서른 한 장을 그린 일화를 설명해준다. 그것은 새벽에 빛이 역동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그리기 위한 모네의 노력이었다.

 

신선한 시각 - 저자는 우리를 툭 친다. '저 새벽 빛을 보라'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새벽에 뜨는 태양의 빛이 어떻게 우리 사람의 눈에 인식이 되는가, 시간이 변함에 따라 어떻게 빛이 변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신선한 시각”, “우리의 지각은 늘 레이다망을 피해 다니다가 모네 같은 화가가 우리를 툭 치며 외칠 때에야 깨어난다.”(79)

 

모네만 그런 것인가? 아니! 이 책의 저자가 우리를 툭 치는 바람에 우리는 비로소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우리를 깨우게 하는 방법이다

 

 

 

 

 

뜻밖의 소득 -영화 <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던 소녀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야생 기러기들과 함께 생활하고 이들과 함께 비행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다.

원제는 <Fly Away Home>.우리 말 번역은 <아름다운 비행>이다.

  

그런데 영화의 내용에 모티브를 준 실제 일화가 있다. 캐나다의 빌 리시먼이 1993년 자신이 제작한 초경량 항공기를 타고 기러기들을 캐나다에서 미국 버지니아 주 까지 이주시킨 적이 있다. 리시먼은 영화에 직접 항공기 스턴트 더블로 참가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아내를 사고로 잃었다거나 딸과 함께 비행했다는 내용 등은 영화만의 픽션.

 

그런데 이 일화가 실제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기는 했는데, 이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된 것이 의외의 소득이었다.

 

<리시먼은 새와 함께 비행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1988년 온타리오 근방에서 초경량 비행기로 캐나다 기러기떼를 이끌고 비행한 경험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 42쪽 이하를 참조하시라.

 

http://movie.phinf.naver.net/20111222_42/1324560152872Xczmx_JPEG/movie_image.jpg?width=100%

 

경탄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다음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우물에서 맑은 물을 길어내듯이 건져낸 글들이다. 이런 표현들을 이 책 말고 어디에서 읽을 수 있을까?

 

<새들은 노래로 주변 경치 속으로 파고들어 사방을 누빈다.> 97

 

이런 표현은 어떤가?

<아주 단순한 소리라도 내려면 목구멍을 부풀리는데 그럴 때면 흰 목덜미에서 조그만 깃털 두 개가 삐죽 솟는다.> (102)

 

이런 표현, 거짓말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표현을 접하면 독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 일 것이다. 하나는 아니 어떻게 그런 관찰이 가능한가? 어떻게 그렇게 세밀한 관찰이 가능했을까? 그냥 지어낸 말 아닐까? 조그만 깃털 두 개가 솟았다니? 세 개도 아니고 한 개도 아닌 두 개가? 그런 의구심이 그 하나요.

 

또 다른 반응은 경탄!

특히 시간을 기록하면서 새벽을 묘사한 새가 내는 모든 소리”(95쪽 이하)는 경탄 그 자체이다.

이런 기록은 그냥 카메라나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리기는 오히려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런 식으로 글로 옮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누가 할 수 있으랴?

이 책의 저자 밖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래서 매 페이지마다 경탄하며 읽었다. 저자는 새벽을 맞이하는 독자들에게 풍경을 인문학적으로 보여주는데, 모든 것이 경탄할 만 것들이다. 그렇게 새벽을 경탄하며 맞이하면 하루가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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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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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억은 하나만 있어도 족하다.

 

이야기의 흐름 파악을 위하여

 

다른 소설 못지않게 등장인물들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드러난다. 그래서 그 관계를 파악하기 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줄거리 장악을 위해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파악해 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화자의 이름을 알기까지 글 내용을 헷갈려하며 읽었기 때문이다.

 

이랬다. 우선 화자인 가 있다. 그런데 의 이름은 무엇일까?

118쪽에 이르기까지 여러번 등장한 이름이지만, 앙투안, 이 이름이 ''의 이름인줄 몰랐다. 이게 누구 이름일까, 궁금했는데, 어머니를 찾아간 ''를 어머니가 부를 때에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앙투안"(118)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그제서야 그 앞의 문장이 이해되었다.

 

<배신자, 그래서 문자메시지고 뭐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어. 앙투안 너한테만 얘기했을뿐이라고.>(99)

이것은 친구 스프프가 에게 한 말인데, 99쪽을 읽을 때에는 앙투안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줄거리 흐름이 파악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 소설(1, 2)은 앙투완이 아들 레옹을 상대방으로 하고 쓴 편지글인데, 그 내용 중에 누군가 앙투안을 부르거나 대상으로 한 말이 있다는 것, 그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다니!!!

 

그래서 알게된 것 - 이 책의 등장인물들

 

아버지, 어머니, 새어머니 (콜레트, 137) (20)

동생들 (쌍둥이 -안과 안나) - 그 중 ''이 죽음(38)

부인 - 나탈리 (51,74)

- 조세핀 (61)

아들 - 레옹(32)

친구 - 프레데리크 프로망 (별명 - 스프프) (16,35)

 

그렇게 이런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불행은 여기, 행복은 저 멀리에

 

이야기의 1부 끝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터진다. 앙투안이 딸 조세핀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다. 죽이려 했지만, 부상을 입히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 후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불행과 행복에 관한 변주곡을 연주한다.

 

그리고 2부에서 역시 화자는 인데, 무언가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이 벌어질만 한데, 그래야 이야기가 해피엔딩은 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추고 끝날 것인데, 작가는 그런 독자의 바람을 무시한 채, ‘의 도피생활을 오히려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그것이 행복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니 독자로서는 무슨 일이 생겨야 하는데, 그래서 가 개과천선해서 문제해결에 앞장 서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 하지 않고 아르히날도라는 아이와 공이나 차고 있으니, 그래서 이 책 169쪽까지 읽어오는 동안 조마조마 했다. 무슨 일이 생겨야 하는데, 생겨야 하는데, 가슴을 졸였다.

 

그런데 이윽고 일은 터졌고, 독자를 안심하게 하는 의 심경의 변화가 보이는 것이다.

<난 웃다가 울다가 했다. 그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몸이 떨렸다. 갑자기 약속을 하고 싶었다. 이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169)

 

이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이 말이 전기가 되어, 이야기는 서서히 해결되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 무슨 큰 역할을 하거나, 갑자기 사람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야기의 전개상 이야기가 바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그 일은? 다른 곳에서, 바로 상처입은 조세핀에게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회복하려는 의지 또는 과정

 

조세핀에게 그 사건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일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쏘다니?

이 책의 3부에서는 화자가 에서 조세핀으로 바뀐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녀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해석하고, 더 나아가 해결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어느 정도 상처에서 회복된 조세핀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오늘 아침의 데생시험에서 17점을 맞았다. 특정한 화가의 화풍으로 자화상을 그리는 시험이었다. 나는 (프란시스) 베이컨을 택했다.> (240)

 

여기 이 문장에 대한 각주가 달려있다.

'프랑스 고등학교의 성적은 보통 20점 만점이며, 16점부터 우리나라의 A에 해당한다.'

그런데 정작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다.

그가 자화상을 어떻게 그렸는지를 설명해줘야, 조세핀이 왜 17점을 맞았는지 이해할 수 있을텐데...

 

프란시스 베이컨의 자화상!

 

 

프란시스 베이컨,자화상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렇게 상처와 직면하기 시작한 조세핀은 아버지가 자신을 총격한 그 사건에 대한 해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저자는 그런 해석과정을 조세핀의 '끔찍한 질문'에 대한 자문자답으로 보여준다.

 

조세핀은 알고 싶다. 그래서 묻는다.

"왜 아빠는 나를 먼저 쏘았을까요?" (193, 283)

 

이에 대한 일차 답은 앙투안에서 나온다. 고모인 안나는 앙투안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그 질문 이야기를 하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283)

 

다음은 조세핀의 자문자답이다.

 

- 첫 번째 답

"단지 정면을 향해 쏘았다."(237)

 

- 두 번째 답

"레옹을 먼저 쏘고 그 소리에 내가 깰까 봐 무서워서. 내가 그 모습을 목격하고 더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까 두려워서."(242)

 

- 세 번째 답

' 여자들은 자기를 두렵게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250)

 

-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답

'마지막 순간에 생각을 바꾼 거라면 아무래도 레옹을 자기 곁에 두는 게 좋아서.

내가 동생보다 좀 더 오래 살았으니까. 동생이 좀 더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날 지나치게 사랑해서.'(259)

 

- 일곱 번째 답

'나는 그 사람한테 멋진 아빠라는 얘기를 하지 않아서.'(267)

 

좋은 기억은 하나만 있어도 족하다.

 

이렇게 치열한 자문자답을 통하여 조세핀은 한걸음 한걸음 아버지와의 화해를 위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럼 그 화해를 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기억이다. 아버지와의 좋았던 기억 - 다만 한토막일지라도 - 이 그녀를 화해의 자리로 인도한다.

 

<정말 당신 목소리였어요. ‘핸젤과 그레텔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스스르 깊은 잠에 빠졌어요.>(263)

 

세상의 두려움과의 대면

 

그래서 그런 기억이 조세핀을 앙투안에게로 가게 만든다. 화해의 여행이다.

그 과정에서 이런 생각을 조세핀은 하게 된다.

<두 사람(노부부)은 영화도 보지 않고, 책도 읽지 않고, 서로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저 손만 맞잡고 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손을 저렇게 잡고 있겠지. 그땐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겠지, 언젠가는.> 290

 

그래서 그 여행의 의미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여행은 그 자체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 (290)

 

결국, 부녀는 화해한다. 그게 행복이다.

 

고통과 행복에 관한 보고서

 

그래서 이 소설은 고통과 행복에 관한 보고서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아니 안다는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가령 이런 말을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지나고 나서야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고통과는 달리 행복하게 사는 순간에는 결코 그 행복을 깨닫지 못한다.> (277)

 

그러니 이 순간, 우리 주변에서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행복은 없는지, 그래서 행복이 어디 다른 데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공연히 쓸데없이 시간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 이 소설 <행복만을 보았다>이다.

 

사족 1 - 더하여, 친구가 되는 법

 

조세핀의 경우이다.

<친구를 한 명 사귀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사샤. 그 친구는 자기 이름이 싫다고 했다.......

내가 조세핀이라는 이름도 정말 별로라고, 괜히 겉 멋만 잔뜩 들어간 이름이라고 했더니 사샤는 아니라고 했다. 엄청 멋진 이름인데 왜 그래, 사샤가 말했다. 너처럼. '너처럼'이라는 이 말 한마디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238)

 

사족 2 - 향수를 일깨우는 여러 사건들

 

이 책을 읽다가 <러브 스토리>의 알리 맥그로우를 떠올리는 일도 있었다.

"순간 알리맥그로가 떠오르더군. 스케이트를 타고, 모차르트와 바흐와 비틀스 그리고 나를 사랑했던 여자"(49 

 

예전, 예전에 읽었던 <러브 스토리>의 첫 대목이라 생각된다. 남자 주인공 올리버가 회상에 잠겨 읊조리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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