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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 - 힘들고 아픈 나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
게오르크 피퍼 지음, 유영미 옮김 / 부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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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으로 우리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쏟아진 옷장들을 정리하며>를 읽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현재진행중인 트라우마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이 침리치료를 거쳐 다시 평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당위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자면 우리가 실상과 그 치유법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그러한 당위 - “치료해야 하는데” -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책이다.

그것 역시 구호나 일방적인 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풍부한 사례와 그 사례를 뒷받침하는 이론의 제시로 아주 설득력 있게 그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비단 전문가나 심리상담 및 치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읽어야 할 책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를 온전하게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신문기사 한토막을 읽어보자.

 

<세월호 트라우마, 외상가 아닌 아직도 외상’>이란 기사중 일부이다.

<세월호 생존자들에게는 빠른 심리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전형적인 PTSD 상태예요. 트라우마의 본질은 죽음을 목전에서 경험한 사람에게 화인(火印)처럼 새겨지는 죽음 각인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생한 실감은 인간의 어떤 경험보다 강렬해서 그 기억은 일생 동안 집요하게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치유되지 않으면 그 기억에서 도망치려고 사투를 벌이거나 죽은 이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일생이 다 소모될 수 있어요. 단원고 생존 학생뿐 아니라 모든 생존자의 치유는 바로 시작돼야 해요. 주검 수색에 참여한 잠수사들도요.>

 

전문가들은 그렇게 우려한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참사에서, 심리치료가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이 책은 그러한 사건을 만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다.

반드시 거쳤어야 할 단계, 그리고 치료의 단계, 심리 치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설명하되, 단지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상황을 들어 말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이론들은 저자의 풍부한 임상을 거쳐 나온, 실제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이론이다. 그래서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그가 거론하는 케이스는 우리가 신문지상을 통하여 들었던 케이스들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들. 그 사건들은 이제 시간이 흘러 우리들 기억에서는 사라졌지만 사건의 당사자들에게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다른 제 3자는 잊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이기에 그들은 매일 매일 그 트라우마를 맞딱드리며 살아간다, 그러한 사건들의 후속 이야기를 저자는 말해주고 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게 되는지를. 

2011년에 일어난 노르웨이 우토야 섬의 총기난사 사건의 경과를 이 책을 통해 살펴보자.(239쪽 이하 

사건이 일어난 직후, 전국에서 화합을 촉구하는 모임과 침묵시위, 폭력반대 집회가 이어졌다.

그런 과정을 통해 유가족들은 힘을 얻어 끔찍한 사건의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생존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기할만 것은 총기 난사 1주년 기념일에 노르웨이 총리의 발언이다.

우리의 약속은 이것입니다. 죽은 자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누립시다.”

이 발언은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트라우마는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아주 모범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런 식으로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극복했는가, 하는 풍부한 사례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책을 읽고 나서, 이제는 주변에서 벌어진 트라우마 사건들을 그냥 무심하게 넘기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 치유의 손길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 아니 그저 손길을 보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나마 가지게 되었으니, 고맙다. 그렇다면, 설령 우리의 손길이 전문가적인 단계는 아니어서 미흡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잊어버려라하며, 그 희생자들을 백안시 하는 태도에서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러면 우리 사회가 온전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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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재필
고승철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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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고난 소회를 어떻게 표현할까?

아쉽다? 안타깝다? 아니 슬프다?

아니다. 그 정도가 아니다. 슬픔을 넘어서는 어떤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를 천번 만번 되뇌고 싶다. 그 단어가 무엇인지? 내 사전에는 없는지?

그러니 아쉽지만 슬프다는 말로 가름하자.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슬펐다’.

 

왜 슬펐을까?

이 책을 통해 역사의 아프고 슬픈 그것을 목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슬프고 슬픈 것은 우리가 그런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역사의 교훈을 전혀 생각지 않는 것이다. 이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를 보고도 거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역사를 대체 왜 읽는가?

아니 대체 우리 앞에 역사는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읽을만한 제대로 된 역사책이 있기는 한 것일까?

그렇다면, 읽어서 제 나라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될만한 그런 역사는 기록할 수 없는 것일까?

 

여기, 감히 그렇다고 할만한 책이 있다.

바로 고승철의 장편 소설 <소설 서재필>이다.

소설의 형체를 지녔지만, 제대로 된 역사다,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 놓은 기록물이다.

 

서재필!

이 책을 통하여 그를 알게 된 지금, 우리 역사를 앞에 두고 통곡하고픈 심정이다.

왜 그는 무대 밖으로 사라지고, 무대에는 결코 서서는 안될 인물등이 설치는 우리의 역사가 되었는가?

왜 나라의 명운이 달려있는 중차대한 사건 앞에 자기 일신의 영달과 자기 한 몸의 이익만 추구하는 모리배들이 설처대며 역사를 쥐락펴락하게 되었는가?

 

이 문제는 내가 우리 역사상에서 각 왕조의 말기에 발호하는 모리배들의 모습을 살펴보는 가운데, 깊이 천착하고 있는 주제이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특히나 나남출판사를 통하여 이병주의 <정몽주> 그리고 류주현의 <조선 총독부>를 읽어온 터라, 그 맥락에서 이번 고승철의 <소설 서재필>은 그런 역사의 탐구행렬에 한 획을 긋는 것이라 여겨진다. 나남출판사에서도 아마 그런 생각의 흐름을 가지고 책들을 출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비단 서재필이란 인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조선 왕조 말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명멸한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인지를 명확하게 구분짓게 하는 자료성 기록이 많이 보여, 좋았다. 이승만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선교사로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있는 알렌 선교사까지, 그들의 숨은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

 

특히나 고종에 대한 평가는 흔히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고종에 대한 평가를 시종여일하게 해 놓고 있어서, 고종이 어떤 인물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풍전등화 같은 나라 운명 앞에서 자기 - 일신과 일족 - 의 앞가림만을 위하여 줏대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과연 일국의 군주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고종에 관한 저자의 묘사는 도식적인 중립적 묘사가 아니라, 일국을 책임져야 할 군주로서 한참이나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런 책임을 묻는 역사가의 준엄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균형을 잡는다고 이리 저리 재어가며 펜대를 굴리는 현대의 기록자들이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닌가?

 

역사적 인물인 서재필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진면목을 모르거나, 아니면 알았다 할지라도 그저 일부분만 알려진 사람일 것이다. 특히나 그가 몇 차례에 걸쳐 망명아닌 망명을 하게 되는 그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 역사는 왜 이리 박복한가, 하는 한탄을 금할 수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래도 만일 서재필이 역사의 주무대에 등장하여 그의 포부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더라면, 과연 이 나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은 두고 두고 남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의 편집에 있어서 좋은 점 하나 적고 싶다,

다름아니라, 글에서 한자의 병기를 해 준 것이 얼마나 좋은지, 글의 가독성(可讀性)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내가 책들을 읽어오면서 아쉬운 점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분명 아는 단어겠지만, 그 들을 읽는 독자로서는 과연 이 단어가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를 몇 번이나 생각하게끔 하는 편집, 너무 무책임하지 아니한가? 몇 번이나 문맥을 헤아려 보게 하는 전문적이어서 일반독자로서는 도저히 그 뜻을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단어를 남발하는 책들을 보면 참 불친절하다 느꼈는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친절하다. 사람의 이름과 이해하기 어렵다 싶은 단어에는 모두 한자를 병기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으니, 참으로 고맙다.

 

결론하여, 서재필을 주인공으로 하여 다시 한번 우리 역사를 생각하게 해준, 저자와 출판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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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풍전 배비장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김현양 글, 김종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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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할머니 턱밑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 듣던 적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빠져들던 시절, 그 때 할머니의 주머니에는 사탕도 들어있었지만 옛날 이야기도 가득 차 있었다.

이 책 후미에 평자는 작품 해설에서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바라보는 두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두 작품을 평가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이유는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머니자 손자를 앞에 두고 옛날 이야기처럼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화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할머니가 손주들(남매)을 데리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던 중에 이춘풍전과 배비장전을 해 주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들려 준 다음에, 할머니가 먼저 손자에게 물었다. “이야기 재미있지?”

손자가 대답한다. “, 재미있어요, 그런데 왜 이춘풍은 같은 실수를 계속하는 것일까요?”

할머니 왈, “그래 잘 보았다. 그런 실수를 하지 말라고 이런 이야기가 있는 것이란다.”

그 때, 같이 듣고 있던 누나가 동생을 꼬집으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어리석지. 그 이야기를 보면 옛날부터 남자들은 실수하고, 여자들은 실수해서 곤경에 빠진 남자들을 구해주는 것, 분명히 알았지? 너는 그러면 안된다.”

손녀가 이번에는 할머니를 보고 말한다.

이춘풍의 부인이 보여준 지혜로운 행동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남자로 변장하고 문제를 해결한 포샤와 비슷해요.”

 

그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 성적 욕망이 그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기에 손주들과 할머니의 대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 갈 수 있으리라.

 

평자는 성적 욕망이라 표현하지만, 이 작품에서 성은 자극적인 형태로 등장하지 않고 다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속에서 실수의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적 묘사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두 남자가 드러내는 욕망도 요즈음의 성적 묘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성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 해학과 풍자의 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할머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틈틈이 할머니는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 및 사물에 대하여 - 책속에서는 각주로 부가 설명된 것들 - 아이들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예컨대 25쪽에서 등장하는 유비가 제갈량 찾아가듯’, ‘서왕모 요대로 주목왕 찾아가듯’, 등등을 설명하면서 무궁무진한 역사 속의 인물들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런 할머니의 보충 설명을 들으면서, 또한 우리말 사설조로 엮어진 이야기의 구성진 내용을 들으면서 두 손주는 저절로 어깨춤을 추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이것은 어떤가?

86쪽에 등장하는 망망대해의 천리 파도에 대붕이 날다가 지쳐서 앉아 있다.”는 말.

이 때 대붕이 뭐예요?”라는 손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장자의 한 구절을 설명해 주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이라면, 그래서 한자를 공부한 아이들이라면 28쪽에 등장하는 이춘풍과 기생 추월의 이름자를 가지고 희롱하는 부분에 흥미를 느낄만도 하다.

봄바람(春風)도 좋거니와 이슬 내리고 맑은 바람 불고 국화꽃 피는 가을에 가을달(秋月)이 밝았으니 더욱 좋네. 진심이라면 추월과 춘풍, 부부의 인연을 맺어 볼까!”

 

아이들은 이름자를 가지고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이 글을 지은 사람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두 주인공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봐요.”라고 할만도 하다.

 

그런 대꾸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춘향전도 너희들 읽어보았지? 춘향전에는 그런 대목이 많이 나온단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

 

<춘향이와 이도령의 대화중 한토막.

이도령 하는 말이, "네 연세 몇이며, 네 성은 무엇인가?"

춘향이 여짜오되, "연세는 십륙세오, 성은 성가라 하나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그러니 날과 동갑이요, 성짜는 그러니 이성지합이라. 천생연분일시 분명하다.“>

 

()씨 성과 성()씨 성이 합하여 이성지합(李成之合)! 원래의 의미는 이성지합(二姓之合)이다. 서로 성이 달라야 결혼이 가능하기에 이도령이 그런 식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듯이, 이춘풍전에서도 그런 언어 유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들이 재미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언어의 재미에 눈을 뜰 것이다.

 

또한 요즘 세상에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각박하게 평하는 말들이 살벌하기조차 한데, 여기 등장하는 대화들은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말조차도 격조가 있고, 여유가 있다.

 

<회계비장 잘도 났다마는 수염이 없으니 그것이 흠이로다> (42)

<배비장이 그 여인을 한참 바라볼 때 방자가 말했다 저 눈은 일을 낼 눈이로군”> (86)

 

그런 식으로 이 이야기 두 편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꺼리는 무궁무진하다. 여기에서 다 열거하지 못하지만, 우리 고전의 깊은 맛은 그래서 일품이다.

이런 이야기 모처럼 읽으면서 푸근한 할머니 품, 무궁무진했던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를 회상해 보는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이 책으로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면서 가빠진 숨을 조금 누그려 뜨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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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 불안할 때, 심리학
가토 다이조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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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 무언가 다르다.

저자가 말하는 바가 다른 심리학 책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많이 배웠다. 다른 천편일률적인 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군다나, 책의 서술이 아는 체 하거나, 훈계조의 느낌이 들지 않아 좋다.

그래서 편하고, 좋은 느낌이다.

 

책을 읽을 때에 느끼는 기쁨 중 하나는 내가 생각해내려고 하는데, 머리 속을 빙빙 돌기만 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하던, 그런 것들을 눈으로 보는 순간이다. 이 책에서 그러한 것들을 많이 만난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256 -257 쪽이다.

당신이 받은 사랑을 소중히 여겨라. 그것은 당신의 돈이나 건강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이다.”

저자가 번역했다는 미국의 명언집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거기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사랑을 받는 것은 처음에는 신선하지만 점차 당연하게 여겨진다. 때로는 사랑이 돈이나 건강을 함께 가져다준다. 사랑이 에너지를 낳고, 그 결과 건강해지기도 하고 움직일 수 있는 기력도 생긴다. 하지만 돈을 사랑보다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순간부터 사랑을 잃고, 그 결과 돈과 건강을 모두 잃는다.”

 

사랑을 주는 대상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간단한 진리를 잊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저자의 이 말은 새삼 나로 하여금 내가 받은 사랑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만들었으니, 이 책은 그 하나만으로 벌써 값어치 있는 책이 되었다.

 

이 책에서 다른 심리학 책에서 미처 다루지 않은 여러 가지를 다루고 있어, 배운 바가 많다. 그중의 하나 바로 외재화라는 개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외재화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외재화라는 단어를 명확히 한다면, 이 책은 이해하기 쉬운 책이 된다. 이 개념은 어찌 보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인데, 그래서 '외재화'라는 말의 개념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외재화라는 말이 이 책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쓰임새를 살펴보자.

 

'외재화' 

자신의 기대를 상대에게 외재화 하는 것(28), 즉 상대를 통하여 자신의 바람을 확인하는 것.

자신을 증오하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다른 방법으로) 외재화 하는 것. (78)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현실인 것처럼 여기는 것(98)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바람을 현실 속에 투사하고 있는 것(126)

자신의 바람을 현실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현실 세계를 살지 못하는 것(163-164)

 

그렇게 여러 가지로 외재화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저자는 - 책의 소개문에서 저자는 카렌 호나이의 정신분석 이론을 발전시켜 현대인을 지배하는 불안의 원인을 밝히고,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한다.”고 밝혀 놓은 것처럼  - 카렌 호나이가 사용하고 있는 외재화를 이어 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카렌 호나이가 말한 바 외재화의 개념을 이렇게 정리해 놓고 있다.

 

마음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고 착각하는 것“(133), 즉 안의 있는 문제를 밖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외재화(外在化, externalization)라 하는 것이다.

 

그런 외재화의 위험성을 저자는 누차 강조한다. 그런 외재화가 결국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이런 식으로 현재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자신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은 영원히 자신의 위치를 이해 할 수 없다.” (154)

 

이 책의 취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 하나를 고르라면 바로 위의 것이다.

이 문장은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주장, 두 가지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외재화란 개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위치이다.

 

그래서 그런 외재화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결국 자기의 위치를 찾지 못하게 되고, 그런 사람은 계속해서 노력은 하되, 실패만 하는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안, 그 자체를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불안 - 알랭 드 보통의 저서 <‘불안>을 통하여 불안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처리 방법이 미진하여 안타까웠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처리방법을 알게 되어 기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부제로 덧붙인 것은 이 책의 내용을 서술하는 데 아주 정확하다. <불안할 때, 심리학>

 

혹시 살아가면서 무언가 불안하여 인생에서 방황하고 있다 싶으면, 이 책을 읽고 그 불안을 처리해보는 것,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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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는 참 외롭다
김서령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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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용한 글이 있을까?

이렇게 조용히 조용히 다가오는 글이 있을까?

조용하게 다가와서 내 마음 속 우물에 돌맹이 하나 던져놓고 달아나

오래도록, 그토록 오래도록 휘저어 놓는 글이 있을까?

세상살이 다 살아본 것도 아닌데, 읽고 나니, 세상 일이 티끌만도 못하게 보이는 글.

그런 글이 어디 있을까?

모름지기 글은 그렇게 써야 한다.

 

김서령의 산문집 <참외는 외롭다>를 읽으면서 든 첫 생각이다 

내 살아 오면서, 하나 하나 문장을 되짚어가며 읽어보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

문장이 지나가는 곳곳마다 보여주는 경치를 그냥 흘러보내기 아쉬워

다시 되돌아오고, 다시 되돌아오고 하기를 몇 번이던가?

 

나는 책을 읽으며 군데 군데 음미완상’,이 두 단어로 정리되는 모습으로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행간 사이에 뜨거운 침묵!

그것은 저자의 표현대로, “더 이상 읽기를 계속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속이 뻑뻑하게 격해져 오기 때문”(31)이었다.

 

그래서 음미완상’, 그 두 단어로 이 책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만큼 이 책은 -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 좋다. 읽고 읽고 또 읽어도 좋다.

그런데 저자 김성령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쓴단 말인가?

책이 읽어가는 쪽수가 많아짐에, 읽어가야 할 쪽수가 줄어듬을 아쉬워하기는 독서 인생 몇십년만에 처음이다.

글이란 모름지기 고만고만하고 그럴듯한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가 강조된’(5)

이란 말이 너무나 딱 들어맞는 글이기에, 저자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한 글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 들어봤나? 물어보고 싶어진다.

<생전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 옛적부터 하늘을 날던 개가 한 마리 있는데, 그 개가 달을 꿀꺽 삼키는게 월식이란다. 그 개는 간혹 해도 삼키는데 해는 너무 뜨거워서 뱉어내고 달은 너무 차가워서 뱉어낸단다.“

세상 굼금한 것 투성이던 나는 당연히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그 개는 밥은 안먹고 해하고 달만 먹나?”

대답이 궁했을, 평생 논과 밭만 바라보고 살아온 순진한 우리 엄마, “ 하늘에 뭔 밥이 있을라? 논도 없는데? 논은 본래 땅에 있잖나?”>(99-100)

 

그런 땅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영롱하게 - 이런 표현 진짜 싫지만 사실이니까 쓴다 - 펼쳐진다. 지상에서 그의 관찰력은? 눈과 귀, 심지어 코까지 모든 몸은 그에게는 관찰의 도구다, 해서 저자의 관찰력은 과연 어디까지 일까, 라는 생각에, 다시 묻는다, 이런 말 들어봤나?

  <국화향엔 교태가 없다. 그건 국화향을 따온 향수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쉬이 납득할만하다.>(106)

  그렇다. 무릇 향수는 교태를 품고 숨어있는데, 국화향은 향수가 될 수 없다.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국화향은 교태가 없으므로!

  또 그의 관찰력은? 저자가 묘사한 사과를 먹을 때를 들어 보라!

그에 의해서, 맛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귀를 울릴 때에 비로소 완성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과는 와사삭 소리가 입안에서 비강을 통해 고막으로 바로 전달되고 뿜어진 과즙이 얼굴에 확 튈만큼 싱싱해야 한다”(85)

  저자가 묘사한 그 싱싱함이 바로 이 책의 요체이다. 그의 글은 갓 따낸 사과 같아서, 무엇보다도 싱싱하고, 새롭다, 맛있다. 과연 누가 이런 맛있는 글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인가? 

그의 글 다루는 마음씨를 한번 보자. 

<뭔가를 늘 언어로 설명하고 싶어하는 이 안달과 안타까움은 문장을 배워버린 자의 한계이다. 알량한 문장을 가지지 않았다면 감각의 파장을 굳이 단어로 얽매려 용을 쓰지 않아도 좋으련만.>(80)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모든 사물의 묘사를 책읽는 기쁨으로 정리해 보았다. 

<낯 선 곳이 낯익은 곳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저 숲은, 아니 저기 선 각각의 나무들은 내게 말없는 위안이었다.>(79)

- 책의 페이지가 줄어들면서 나에게 익숙한 것이 되어가면서, 그런 글들은 나에게 위안이었다.

  <저 숲은 전혀 고요하지 않다. ,......그때마다 숲 전체의 공기가 파도치듯 화르륵 뒤집어진다.>(89)

- (책을 읽은 후) 나의 마음은 고요하지 않다. 읽을 때에 내 안의 공기가 파도치듯 화르륵 뒤집어진다.

  <사과의 물리적 형태가 점점 눈 앞에서 사라진다. 스미는 과즙에 몸이 환호한다.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님을 감지하다.>(86)

  - 책의 읽은 페이지가 점차 늘어나고 읽어야 할 페이지가 점점 사라진다. 스미는 책의 과즙에 내 몸이 환호한다. 책과 내가 둘이 아님을 감지하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지만 언제나 똑같은 뉘앙스로 행복한 건 아니다.>(85)

- 책을 읽으면 행복하지만, 어느 책이나 똑같은 뉘앙스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그는 나에게 책 읽는 기쁨을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정치적 감각을 보라.

 <대통령 선거가 코 앞에 다가왔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는다. 마음 편하게 가을무의 단맛을 느끼게 해달라!>(97)

<우리 일상은 목수정의 말대로 치마 속까지 정치적이다. 우리가 내릴 판단은 의외로 간단하다. 여러 사람의 희생으로 몇 사람의 배를 불릴 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하면 된다.> (98)

<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감각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됨의 기본조건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게 없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다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통불능인 이를 무리의 리더로 뽑아서는 절대 안된다.>(73)

 

  너무나 상식적인, 너무 인간적인 소신이 아닌가? 물론 그의 말이 유권자들에게 먹히느냐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이 책은 마냥 머리맡에 두고, 저자가 말한 것처럼 - 사과를 베어 물고 그 단맛을 음미하듯이 - 음미하고 그 책이 보여주는 신기한 경치를 완상해 볼만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에게 보내는 감사와 찬사는 그의 말로 대신하련다.

<단물이 입안에 가득 차면서 눈물이 핑 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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