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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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외, 다산, 800 *

* 그때도 지금도 눈이 부실 그녀들의 이야기 *

* 실제 완독한 날 : 20.05.07

 

내 아이들의 할머니인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할머니'와 '엄마'의 연결선이 흐릿했던 오래 전의 기억들을 소환시켜 나왔다.

'할머니'란 단어는 나에게 '엄마'와도 같은 단어였다.

40대의 엄마에게 '할머니'란 호칭이 따라다녔다.

30대후반 낙상사고로 인해 뇌를 다친 엄마는 왼쪽 전체의 마비로 장애판정을 받았다.

마비된 한 쪽 다리를 끌다시피 걷는 엄마의 모양새와 갈라지는 목소리는 아이들에게 '할머니'같았는지 그렇게 불렸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너희 할머니니?" 라는 물음들이 따라왔다.

할머니라는 명칭은 나에게 엄마란 명칭과 비슷했고, 할머니란 단어는 애틋하거나 푸근한 단어가 아니라 창피하고 듣기 싫은 단어였다.

우리 엄마에게도 어린 나에게도.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부터 할머니란 단어에 그리움과 살가움이 느껴지지 않는 나같은 이들도 있을까,하는 생각까지.

두려웠다.

나는 '할머니'란 단어에 꿈쩍하지 않는 인간인데,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하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책을 펼치기 전이었고,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린다.

남에게 할머니라 불렸던 그 시절의 엄마가 소환되어 작년의 엄마까지 이어진다.

그러다 그 모습이 나의 모습에 오버랩되어 펼쳐진다.

엄마의 얼굴이 내 얼굴이 되고, 엄마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가는 과정.

엄마도 할머니가 되었고, 나도 할머니가 되겠구나..

할머니가 된 엄마의 모습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이다.

할머니가 된 나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는 시간이다.

 

p.67)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 이 문장을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진다.

아, 얼마나 어리석고 아둔한 생각으로 살아온 나를 질책했다. 반성했다.

늙어가면 세상에 대한 욕망이나 이성에 대한 갈망 역시 없어질 거라는 선입견이, 사랑은 젊은 사람만의 특권인냥 당연시했던 철없음으로 상처받았을 그들에게 뭐라 사죄를 해야 할까.

이제는 더이상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를 꿰어 차니 이제야 알겠다.

몸이 늙어갈 뿐이지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걸..

몸은 따라갈 수 없지만 마음만으로는 그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걸..

몸은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마음은 둥실둥실 떠다니겠구나..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젊은 이들이 이런 나이든 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기 전에 나는 최선을 다해 마음을 표현하며 살아야지, 생각한다.

주책없어 보이고 철없어 보이고 노망났나, 싶겠지만 남을 위해 나를 숨기고 나를 낮추는 일이 있지 않게 해야지, 생각한다.

세상은 젊어도 힘들고, 나이들어도 힘들다.

p.182) 그건 규옥이 지난 60년을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었다. 근래 규옥의 몸에는 규옥이 생애 처음 겪는 일들이 어느 때보다도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허리에, 어깨에, 손목에, 혈관에, 어떤 기미처럼, 결과처럼, 시작처럼. 그것은 피부 표면으로 기어코 드러날 수밖에 없는 무슨 일인 것 같았다.

- 사실 겁이 난다.

젊었을 때, 나는 체력전에서 지지 않을 만큼 강했다.

날 꼬박 새도 출근에 지장이 없었고, 밤이 되면 아침햇살에 꽃봉우리를 여는 나팔꽃마냥 활기가 넘쳤다.

열정을 불살랐고, 건강하다고 자부했는데..

30대 어느 시점부터 나는 툭, 꺽어졌다.

모든 신체 기능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거기에 따라오는 것은 달고 사는 약들과 잦은 병원행이며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00 아파..'라는 말까지.

신체가 무너지니 마음도 무너졌다. 그렇게 나는 40대를 맞이했고,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나는 여전히 골골댄다.

무릎이 쑤시고, 어깨가 결리고, 담이 오고, 눈이 퍽퍽해지고.....

두려워졌다. 아직 반평생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아파대면 그때는 어떨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자꾸만 찾아오는 것이 적용이 되지 않는 날들이지만, 두려워 죽을 것 같지만, 오늘은 내 인생의 제일 좋은 날이니까 힘을 낸다, 처지는 몸과 마음을 달래가며..

 

'흑설탕 캔디' 할머니의 놓쳐버린 꿈, 잊고 있던 꿈에 대한 아련함.

내 것을 공유했어야만 했던 긴 세월이 회한으로 밀려와도 혼자 지키고만 싶었던 사랑 혹은 우정.

손녀의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을 항상 걱정하며 선을 지키라고 당부를 해주던 애틋함이 가득한 '선베드' 할머니.

엄마와 딸과 템플스테이를 떠난 여자, 그녀와 같은 사람일 수 없는 엄마와의 여행기.

그들의 이야기는 삶에서 놓쳤던 것들을 회상하고 얽혔던 것들을 풀어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아련함이 묻어나고, 쓸쓸함이 묻어난다.

지나간 것들은 후회를 남기는 것들이 많다.

죽음으로 향해 걸어가는 노년의 이야기가 즐거울 수는 없을 테지.

그럼에도 조금 더 밝은 이야기를 기다렸다. 무의식적으로.

 

'할머니'란 단어 속에서 나는 과거를 뒤적이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에서 들었을 '할머니'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들을 단어,' 할머니'를 그린다.

그래서 6명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6편의 다양한 이야깃속에서 나는 '할머니'란 단어가 주는 과거적 모습보다 내가 살아낼 현재의 모습과 다가올 미래적 모습에 더 끌렸다.

그래서, 나는 앞의 이야기들의 그 어떤 이야기들보다 '손원평'의 「아리아드네 정원」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미래를 향해 갈 것인지, 어떤 후회가 남을 것인지, 어떤 바램이 남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조슴스럽게 하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p.204) 민아는 반평생 자신이 가보지 않은 삶이 혹시 정답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과 회한에 시달렸었다. 지윤을 만나 다행한 점은 인생에 정답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p.215) "늙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몰라. 변한다는 걸 빼곤 확실한 게 없으니까. 너희가 본 할머니도 마찬가지야. 이름은 지윤이지만 누구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지. 지윤인 가진 게 참 많았었어. 그런데 이제는 그것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단다. 자기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이름처럼 말이야."

p.216) 잠이 많아진다는 건, 죽음과 가까워졌다는 뜻이 아닐까. 죽음. 완전한 끝. 사실 죽음이야말로 민아의 비밀스러운 꿈이다.

p.227) 젊었을 때 짊어졌던 고민들, 절망이 낳은 수많은 포기들, 그때의 사회가, 그때의 선배 세대가 남긴 자국과 굴레에 대해 얘기하며 해명하고 싶었다.

과거의 자신이 앞선 세대의 얘기에 전혀 동의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민아는 알고 있었다.

 

책은 이야기에 담긴 현실적 조언과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노년- 콕 짚어 '할머니'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는 노년의 여성-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흔하게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들의 이야기들이 세월이 흘러 아무 것도 아니지 않게 잡아채 준 이 책은 존재만으로도 멋진 책이다., 그들의 이야기들이 세월이 흘러 아무 것도 아니지 않게 잡아채 준 이 책은 존재만으로도 멋진 책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찬란하다.

그들의 인생도 찬란했고 지금 현재도 그렇다,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 빛일뿐.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 빛일뿐.

보이지 않는 빛이라고 눈이 부시지 않으란 법은 없다.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고달펐던 인생을 살아낸 분들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남겨드린다.

수고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점점 빛이 사라지는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리라 마음먹는다. 살아가는내내 나는 눈이 부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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