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 - 이제는 엄마나 딸이 아닌 오롯한 나로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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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  by 최문희 *

* 닮고 싶은 찐어른을 발견한 순간 *

* 실제 완독한 날 : 20.04.20

 

글에서 세월이 읽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설헌'으로 익히 이름을 알고 있던 작가의 에세이집을 만나고 글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다가 문득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아, 우리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으시구나.

나는 글 속의 하나하나 드러나 있는 저자의 세월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세월속에는 단순히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시간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한, 울분, 차별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저자의 반절의 시간을 보낸 나의 세월에도 붙어 있을 그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우울감이 밀려왔다.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소설의 한 귀퉁이인 것 같아 헷갈리는 글들을.

 

p.83) 어디에선가 읽었다. 나이드는 것은 성장 과정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긍정하든 부정하든 늙음은 남루한 쇠락의 흔적이다.

- '절제의 미학'편을 읽으며 어르신들의 수다가 유쾌하면서도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현실대화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늙음은 서러움이 팔할이다. 자식들이 무슨 말을 해도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둥글둥글 다가오는 법이 없다. 어느 말이든지 가슴에 밝힌다.

정작 본인들께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혼자 감정이입해서 서운해하고 서글퍼한다.

참 방정맞은 중년이다, 난.

'한낮에 침대는 아니올시다. 세상 사람들 모두 땀 흘리며 일하는 대낮에 사지를 뻗고 드러누워 평안을 도모하는 일은 안 된다'(p.91)는 이야기에 뜨금해진다.

입버릇처럼 '반나절체력'이라고 자칭하며 오후시간,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이상 등을 대고 누워 쉬거나 낮잠을 청하는 나는 과연 나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비정상적인 습관으로 해로운 일을 하는 것일까.

남보다 많은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자책을 자주 하는 나를 생각하면 썩 좋은 습관은 아닌 듯 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누구도 집어주지 않았던 것에 따끔한 충고를 받고 나는 어른의 존재를 깨닫는다.

이처럼 건강한 충고를 해주는 어른이 '찐'어른이 아닐까 하고서.

 

p.96) 화채 그릇에 담긴 그 오묘한 향이나 맛의 유혹은 노년을 흔들지 못한다.

p.97) 너무 오그리고 산 것 같다. 이래도 참고 저래도 참는 동안 미간에 가로질린 주름살 골이 깊어졌다. 하지만 누군들 그만한 굽이가 없었을까? 집집마다 방문 열어보면 숨겨둔 한숨 보따리 한두 개는 있지 않을까?

"너무 탓하지 말고 너무 속앓이하지 말고 주어진 만큼 살면 될 것 같아." 누가 누구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다. 내가 나를 타이르고 나를 부추기고 나를 평정하는 말이다. 그래서 평온의 나날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p.107) 내리막길. 자연이 시키는 순리다. 산에 오르면 내려와야 하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

-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한다, 노년에 대해.

노년의 맛은 씁쓸하다고나 할까.

담담히 표현하는 저자의 글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후회, 아쉬움이 남겨져 있는 듯 하다.

저자의 말대로 감정의 퇴적물이 흘러가지 못한 채 쌓이고 쌓여 순화된 글로 나온다해도 한이 있으리라.

이토록 노년을 가까이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중년을 넘어선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감정과 느낌들이 달려든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면 슬픔도 있는 당연함을 알고 인정하면서도 내리막길로 들어서려는 나는 온갖 잡다한 감정들이 쏟아오른다.

이처럼 다양한 감정들을 젊을 때 느꼈었던가?

세월을 앞서 가는 저자의 뒷모습을 보며 서글픔을 지울 수는 없지만, 저자처럼 인생을 깨어 있는 건강한 노년으로 들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p.129) 지금도 꿈속에서 좁고 깊은 골목 끄트머리에 서 있는 작은 계집아이, 호롱불을 높이 들고 자박자박 앞서 걸어가는 뒷모습이 환등처럼 어른댄다. 같은 자궁에서 배태, 세상에 내놓은 자식이라도 그 쓰임새가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쓰임새하고 자정 나눔은 한결같지 않다는 것도 그 무렵 눈치챈 사실이다.

- 3장에는 작가의 어린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어 있다.

글 속 열 살 남짓의 어린 소녀는 짠하다.

그 어린 소녀만 짠할까, 저자의 세월속에 갇힌 다양한 나이대의 소녀들을 넘어 여자는 역시 슬픔이었다.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 그 아이,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의 모습, 저자의 설움, 한 속에 '부모'의 자리 또한 큼이 보인다.

상처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나 상처받는 사람은 있다.

읽으며 내 두 아이를 돌아본다.

나도 저 아이들에게 똑같은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끊임없이 나의 행동, 생각을 단속해야겠다.

 감정에 휩싸여 말과 행동으로 가슴에 빗금을 그어대지 않도록 말이다.

 

p.23)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인 밀폐 용기를 꺼내 뚜껑을 열고 접시에 담고 다시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어두는 과정. 일 같지도 않은 일들이 전업주부의 하루를 몰수한다.

p.38) 누구도 내 일과에 걸림돌이 되는 건 편하지 않다. 아무리 귀여운 손자라고 해도 세 시간 지나면 힘들어진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어린아이도 자기 방식이 있게 마련이다.

(...) 멀수록 보고 싶지만, 자주 보면 각자의 일정이 부스러지기 십상이다.

p.49) 훈계나 조언은 금물, 부모 자식 간에는 함부로 위하는 척 입을 놀리면 모자지간 틈새가 더 벌어진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아들도 손님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살아온 만큼의 지혜라는 걸 알았다. 어차피 내 자궁에서 꺼낸 자식이라도 하나의 개체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할 것을. 매달리고 구걸할수록 피차 부담감과 피로만 보태질 뿐이다.

p.238~239) "(...) 나이 들면서 터득한 건, '조금 사이를 두자'에 방점을 찍자는 거예요. 자녀, 친지, 친구까지도 내 곁에서 얼마쯤 일어냈어요. 거기 있겠거니 하면서 그들의 기척을 느껴요. 먼발치에서도 그들이 뿜어내는 고른 숨결을, 은은하게 스미는 체취를 감지할 수 있어요. 듣고, 보고, 만지지 않아도 서로 속내의 문양을 기척으로 알아요."

"난 이제 말랑말랑한 말로 나 자신을 너무 구부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 좋은 자리를 양보하고, 착한 체, 겸손한 체, 순한 양의 얼굴을 하고 돌아서서 입술을 깨무는 따위는 이제 안 하고 싶어요. 그냥 생긴 대로 살래요. 마구잡이로 살자는 건 아니고, 내 방식대로, 80년 동안 눈치코치 보면서 길들여온 그 양보와 겸손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질 거예요."

 

p.212) "전 그냥 상황에 따라 적당히 말하고 적당히 지불하고 적당히 움직일 겁니다."

- 이 얼마나 현명한 삶의 자세인가.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는 '적당히'의 선을 아는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세월을 먹는다고 다 알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을 듣고 '똑똑한 바보'라고 '늘 뒤처지고 미움은 미움대로 받는'거라는 이의 말에 우리는, 저자는 힘들게 살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찌 최소의 손해를 보면서 '적당히 이기적으로 삶'을 사는 것보다 스스로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바보이고 미움받을 일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세상은 이처럼 자기방어적이고 이기적인 이들에게 관대한지 이해할 수 없다.

저자가 신념이 틀린 것이 아닌데 왜 세상은 저자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던 것일까.

단순한 미움일지, 세상의 방식일지, 아마 저자는 모르겠지.

 

'1995년 예순한 살의 문학 지망생은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p.57)

대단하다.

61살에 작가가 되셨다니,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사실 글을 쓰고 싶고, 작가라는 직함을 갖고 싶은 마음 한가득인데 마음에 비해 몸은 열정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이유중 하나가 적지 않은 나이를 어느새 꿰차고 있어서기도 하다.

햇병아리처럼 발랄한 젊은 작가들의 부지런한 활보에 주눅이 든다.

할 수 없는 핑계거리만 자꾸 찾아대는 나에게 작가의 등단 나이는 흥분하게 만든다. 나도 노력을 한다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긍정적 희망.

이러한 끄적거림도 글이라 할 수 있다면 나도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해도 되나, 하며 욕심을 부려 보지만 아직은 부족한 끄적거림을 글이라 하기엔 내 자존감은 그리 강하지 못한 듯 하다.

우선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 보기로 한다.

바닥까지 떨어진 희망이 둥실둥실 떠오르게 힘찬 바람이 불지도 모르니 말이다.

책을 덮기 전 '나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 편이라 죽도록 필사하고 죽도록 읽지 않았다면 소설가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p.286) 라는 문장으로 나는 힘을 얻는다.

나역시 재능이 부족하면 죽도록 따라쓰고 죽도록 읽고 죽도록 써봐야지 않겠는가.

과욕이었다, 재능이 특출나기를 바란 건.

욕심이었다, 특출나지 않은데 그리 되기를 바라기만 한 건.

이상만 가득한 바보였다, 죽을 만큼 간절히 하지 않으면서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건.

노년에 작가가 되어 지금까지 현역 작가로 매일 글을 써 내려가는 것, 참 멋진 작가라 깨닫는다.

그를 닮아 나도 그러하고 싶다.

그의 세월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방식대로 닮고 싶어진다.

그의 신념, 그의 일상, 이렇게 나이 들고 싶어졌다.

진실로 닮고 싶은 진짜어른을 만났다.

중년을 넘어서며 이제는 안다.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는 어른인데, 생각과 행동은 초등학생만도 못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미처 몰랐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판치는 세상에 이렇게 건전하고 깨어있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찐어른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살포시 들이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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