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동안 이곳, 알라딘 서재에서 책을 처분하는 차원에서,
다시말하면 '책.탑.타.파'차원에서 읽은 책이나 두권 가지고 있는 책, 또는 같이 읽었으면 싶은 책들을...
알라딘 서재 지인들에게 곧잘 선물했었지만,
정작 나는 그들이 읽고 보내주는 책을 쉽게 받아 읽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들이 책을 보내주겠다고 할 때, 거절하느라 참 힘들고 난감했었다.
그러던 차에 한 친구를 알게 됐고,
그 친구가 너무 좋았던 터라 그 친구가 읽으면서 남겨놓은 흔적과 표시가 참 좋아서 쓸어보고 만져보고 보듬어 안아보고 하였다.
그 친구 덕에, 손 때 묻은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 이제는 지인들이 보내주는 책선물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며칠 전,
이곳에서 모두의 애정을 받는 OO님께서 내게 노란 종이에 눌러쓴 이쁜 손글씨 편지와 함께 책을 한아름 보내주셨다.
어머니가 아프신 뒤라 정신 없으실텐데...
내가 언젠가 이곳에서 '번역가의 꿈을 키운다고 설레발'을 쳤던 걸 기억하고 계신다.
아흑, 창피해라~--;
OO님, 제겐 취미로 설레발을 쳤던 그것들이...누군가에겐 치열한 현실이고 삶이어서...
그리고 그쪽으로 자질이 없는 걸 뒤늦게 깨닫고 접었습니다여~ㅠ.ㅠ
잊지않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여~(__)
(왼쪽 엄지발가락이 찬조 출연했네, ㅋ~.)
2.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을 '농담'이라고 한단다.
이문재의 시<농담>은 한때 좋아 외우기도 했었지만,
그렇게 그렇게 잊혀졌었는데, '카피는 거시기다'라는 책(96쪽)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었다.
농 담
- 이 문 재 -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로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한다
그런데, 이 시의 제목 '농담'의 의미를 놓고 궁금해 했었다.
'카피는 거시기다'라는 책에서 이 시를 인용했을 때는,
이렇게 멋진 시 내용을 읊고나서 쑥스러워서 머리 긁적이며 '농담'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짙지 싶다.
하지만 난 이 시의 '농담'을 반어법으로 해석하고 싶다.
종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종은 지금도 충분히 아픈데,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해 더 아파야 한다는 말은 '반어법'이거나 '농담'이어도 좋겠다.
이건 바꾸어 얘기하면,
아프면 아플수록 지금 더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때문에 지금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사랑하고 있지 않을 확률은 1/2,
사랑하지만 떠올리지 않는 정말로 강한 사람이거나, 진짜 외로운 사람이거나...
진짜 외로운 사람은 차치하고,
여기서 경계하여야 할 것은 정말로 강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제 몸을 더 세게 때려 소리를 더 크게 울려 퍼지게 하거나,
제 자신을 말끔하게 비워내 더 큰 울림을 만들어야 한다.
때리는 것도,
깎고 비워내는 것도,
정말로 강한 사람이 아니면 쉽지 않겠지만...
그 강한 사람도 어쩌면,
한번 무너지면 연달아 무너지는 도미노마냥 속수무책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농담'으로라도...
치열하게 사랑하고,
진짜 외롭고,
더 아파하고 싶지는 않다.
난 아름답지 않고 사소한 풍경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맛을 낸 음식이 아니라 단사표음이라도 좋으니,
치열하게 사랑하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살다가도 좋으니,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저런 삶을 꿈꾸는 시인이나 작가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삶을 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제국호텔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카피는 거시기다
윤제림 지음 / 난다 /
2012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