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당 최남선이 『조선의 상식』에서 조선의 4대 명산으로 금강산과 지리산과 구월산과 묘향산을 꼽으며 서산대사의 의견을 빌어 그 중 최고가 묘향산이라고 한 까닭은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통해서도 에울러 짐작된다. 소설의 한 대목에 작중 인물이 금강산과 묘향산을 비교하다가 "금강산에서는 간혹 사람이 상하기도 하지만 묘향산에서는 그런일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을 덜 다치고 덜 상하게 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덜 상처 주고 덜 상처받는 것이야말로ㆍㆍㆍㆍㆍㆍ좋은 삶이 아닐까?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2년 5월

 

 

며칠째 '김별아'의 '괜찮다, 우리는 꽃 필 수 있다'를 들고 이리저리 떼굴거린다.

난 '김별아'의 소설은 잘 모르겠는데...

지난 번에 읽은 산행에세이와 겹쳐 요번 에세이도 찰기어린 것이 먹고 나서 한참 후까지 든든하고 속을 平하게 해주는 찰밥을 먹는 것 같다.

그림도 예뻐 찾아보니, 일러스트 정윤미라고 되어 있다.

솔직히 홈페이지의 것들은 책만큼은 아닌데,

책의 것들은 은근히 시선을 끄는 것이...화려하지 않지만 정겹다.^^

 

내가 이렇게 주절거리고 앉은 것은 "사람을 덜 다치고 덜 상하게 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덜 상처 주고 덜 상처받는 것이야말로ㆍㆍㆍㆍㆍㆍ좋은 삶이 아닐까?"하는 저 구절 때문이다.

그냥 생각했을때는 사람을 덜 다치게 하고 덜 상하게 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라는 저 말이 그럴듯 한데,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니까, 그렇다.

'사람을 덜 다치게 하고 덜 상하게 한다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인간 중심의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자연은, 산은...명산이라는 수식어 따위는 애초에 관심도 두지않았었는데,

인간들이 그들의 편한대로, 그들의 편리대로, 그들에게 이로운 대로 맘대로 이름붙여 놓은게 아닌가 싶다.

 

사람을 덜 다치고 덜 상하게 한다는 건, 기준이 사람이었을 때에만 '덜과 더'를 구분할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자연이나 산은, 사람이 덜 다치고 덜 상하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자연 그대로인것이다.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사람이 덜 다치고 덜 상한다는 건...

자연이, 산이...잘 품어갖는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너무 깊고 깊어 웬만한 사람이 접근할 수조차 없어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않고,

그래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어 명산이 되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산세가 험해서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상하게 하고 자시고 할 것없이 전혀 품어가질 수 없어서 천형 그대로의 산세를 간직하고 있게 되는 것도...자연이나 산의 입장에서는 명산이 될 수 있는 조건이다.

 

갑자기 언젠가 아침  손석희 방송에서 들었던 산악인 엄홍길님의 말이 생각났다.

 

 

 

 

 

 

 

 내 가슴에 묻은 별
 엄홍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3월

 

 

저는 그 동안 많은 8000미터의 산을 도전하면서 수 없이 많은 생과 사를 넘나들었거든요. 진짜 그 과정에 여려 명의 동료들을 잃고 그런 사고를 경험하고 50대를 경험하면서 좌절도 경험하고, 제 자신도 죽을 고비를 수없이 경험하면서 생각할 때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은 어떤 제가 이런 저런 일에 대해서 더 얘기하자면 8000미터 고도라는 것을 만났을 때는 인간의 능력으로 밟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은 결국 산이 저를 받아 줘야하고 산이 허락해야하고, 신이 저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히말라야 모든 어떤 산이든지 마찬가지기 때문에 저는 모든 산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산에 올라갈 때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산에 올라가야지, 순리를 역행하고 거기에 어떤 욕심을 내고, 사심을 가지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면 절대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세를 가질 때에야 산이 선택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항상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이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진인사대천명을 들먹이는 것도...

너무 나이 들어 진인사대천명을 얘기하는 것도...부족하거나 넘친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러고보면, 어쩜 나는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의 시기가 아니라,

'그대들 맘껏 꽃 피워라. 심도를 충분히 낮춰 배경이 되어주겠다'의 시기인것도 같다.

 

무엇이고 사람 위주의 입장에서 바라봤을때는 '덜과 더' '부족하거나 넘치는'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해야 했던 것들인데,

입장을 조금 바꾸어 자연과 산을 그 자리에 대입시켜 보았을 뿐인데, 참 한없이 넉넉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명산의 자리에 '좋은 사람'을 대입해 보는 것도 재미  않을까?

 

 



 
 
책읽는나무 2012-06-24 22:24   댓글달기 | URL
명산...사람을 덜 다치게 하고,덜 상하게 하는 산이라..
끄덕끄덕~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군요.^^

다비치의 이해리네요? 순간 이해리의 옆모습만 보고서
예전에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께요>의 장혜리라고 생각하면서 들었네요.ㅋㅋ
개인적으로 이해리의 목소리 참 좋더라구요.
책도 책이지만,나뭇꾼님은 노래 선곡도 참 잘하세요.

2012-06-24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6-24 23:02   댓글달기 | URL
야~ 내가 좋아하는 이해리다~ ㅋ 다비치 좋아요~~ ^^

좋은 사람도... 인간의 욕심으로 얻을 수 없는 거군요. ^^ 그렇네요...

함께살기 2012-06-25 05:23   댓글달기 | URL
사랑스레 살아가면 좋은 사람이겠지요..

사랑스레 누릴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으면 좋은 산일 테고요..

cyrus 2012-06-25 21:33   댓글달기 | URL
저는 세월이 변해도 늘푸른 녹음을 유지하는 산이야말로 명산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줄 주는 아는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요.
글 마지막 이해리 노래 잘 듣고 갑니다. ^^

차트랑 2012-06-26 00:36   댓글달기 | URL
높은 산을 오르는 분들께서
자연을 대상으로 도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사적으로는 안타까운 표현이라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자연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
인간 스스를 자연에서 소외시키고 있는 것 같아서요^^
자연과 인간은 괴리되어야 할 관계가 아닌데 말입니다.

자연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용어가
저는 바로 그 도전이라는 용어에서 출발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생각을 할 때가 더러 있답니다.

산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어떤 산을 명산이라 말하는 것 처럼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페이퍼였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