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인문적 건축이야기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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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건물. 낯설게 바라보기

 

  주말마다 전주에 내려간다. 남편이 전주에 살기 때문에. 전주에 갈 때, 책 몇 권을 챙겨 내려간다. 이번 주는, 평소에 거의 읽지 않는 책으로 선택했다.
 
  신기한 건물 싫어하지는 않는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특이하다기에, 일부러 남편과 함께 서울 데이트도 갔었다. 마침 얼굴 있는 장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 순두부 아이스크림 매장에 가, 고구마 맛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맛있었다. 날이 선선해지면 또 가도 좋을 듯하다.
  다만, 미술과 마찬가지로 보는 걸 좋아만 할뿐.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어떤 기법을 이용했는지. 그런 것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까지 파고드는 건 귀찮다. 창덕궁이나 종묘를 가면, 해설사가 동행하며 건물 설명을 해주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이 책은 건축. 특히 한국에 있는 건축물 대상으로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있다. 건물을 짓기 위해 어떤 기법을 사용하는지. 건물에 쓰이는 재료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되는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건축은 어떤 특징을 갖게 되는지. 단순한 건물을 넘어 도시 구조까지 들어가게 되면, 언제나 멀게 느껴졌던 건축이 조금은 가까이 다가온 기분이 든다. 내 바로 옆에 맞닿아 있다는 실감이 들어서.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 건축은, 당시 생활상을 반영한다. 창덕궁에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주거 양식을 보여주는 연경당이 있다. 남녀의 출입문마저 다르다, 지붕과 하마석 유무에서, 남녀의 위상이 뚜렷이 구분된다. 조선시대가 어떤 사회였는지, 건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0
 조선시대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현재 건축에도 주거에서 노동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떼어 놓는다.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른 구성원에게서 등을 돌린 채 일해야 한다. 아파트 베란다의 수도꼭지를 틀기 위해서는 몸을 낮추어야 한다. 주거에서 노동하는 사람의 절대 다수가 여성임을 고려하면, 아직 우리 사회가 남녀평등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게 해 준다. 아울러 현재 건축이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도.
 
  건축 재료에 대해서. 건축에 담겨 있는 시대상에 대해서. 자본과 건축주의 제한 속에서 건축가가 어떻게 역량을 발휘하는지. 건물 하나 짓는데 건축가가 얼마나 고심을 하는지. 저자는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은 뒤, 마무리 삼아, 자신이 감명 깊게 생각하는 몇 건물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인상 깊은 건물이 여럿 있었다. 불편한 입지 조건 속에서, 건축가가 어떻게든 자신의 이상을 풀어낸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하지만 가장 시선을 끌었던 것은, 부석사 무량수전에 대한 이야기.
  단순히 고려시대 목조 건축물로만 알고 있던 부석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전형적인 구조 대신, 살짝 비틀어진 구조를 선택한 부석사의 공간 설계. 그냥 봐서는 단순히 특이하다 싶은, 그 공간 설계는 추분과 춘분 마당 모서리에 섰을 때, 모든 것이 일직선에 서게 함으로서 서 있는 사람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고 한다. 정확한 의도는 이제 와서 알 수 없겠지만, 천 년이 지난 뒤에도 사람에게 같은 기분을 계속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까.
 
  익숙하게 보고 지나쳤던 건물들. 하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에 건축가의 치밀한 계산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보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익숙한 주변을 익숙하지 않게 보고 싶다면, 한 번 정도 읽어보아도 좋을 책이다
     

 

 

자세한 사진은 https://www.instagram.com/p/Blh3NbWgz2o/?utm_source=ig_web_copy_link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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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정원 (리커버)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리처드 W. 브라운 사진 / 윌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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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보는 타샤의 정원 1년

 

현재는 고인이 된 그림동화 작가 타샤가, 생전에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 정원에 대하여, 토바 마틴이 기록을 남긴 책이다.

각 계절마다 타샤의 정원에서는 어떤 꽃이 피고 지는지. 타샤는 이 정원을 꾸미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타샤는 어떤 생각으로 정원에 심을 화초를 결정하는지. 집은 어떻게 꾸미고 타샤는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타샤의 인상을 천천히 그려보았다.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깐깐한 노부인이 떠올랐다.

 

이 책은 사실 글로 설명할 책이 아니다. 책에 수록된 타샤의 정원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며, 이 정원을 가꾸기 위해 타사갸 얼마나 노력했는지 설명해야 책의 내용을 1/10이나마 전달할 수 있다. 아무렇게나 배치된 것 같아도 사실 타샤가 매우 고심해서 결정한 것이라든지. 원하는 정원을 만들기 위해 타샤가 종자 단계부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단순히 글로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고, 백 번 보는 것보다는 한 번 실천하는 것이 낫다. 그 소소한 진리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달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만큼은 책에 수록된 사진 몇 장을 수록하는 것으로 책에 대한 설명을 마쳐볼까 한다. 그 사진들을 보며, 타샤가 정원에 들인 노력의 몇분지 1이나마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다만. 이 책에 나온 정원을 보며, 그렇게까지 감복하지는 못했다. 들인 정성은 분명 대단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나에 애착에 쏟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무어라고 해야 할까. 삐죽삐죽한 감정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고 해야 할까.

보통 사람들 중에, 저렇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먹고 살기도 급급해서, 내 앞가림하기도 힘든데. 아침에 허겁지겁 출근해서 돌아오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그대로 뻗어 잠들고. 그런 일상 반복하다 주말에 겨우 여유 내보려고 해도. 평일에 밀린 잠 자느라고 결국은 정신없는데.

노년이 되면 여유는 생기겠지만. 마음에 드는 종자 찾아 헤매고 다닐 만큼의 여유가 될까. 몇 달 연금 모아 여행 잠깐 다녀오고. 그 정도가 전부 아닐까. 좀 더 욕심내면 독서 모임 등의 소소한 단체 몇 개 가입해서 즐기는 정도.

내가 할 수 없기에 대리만족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는 일에 대리만족만으로 만족하는 건 어쩐지 서글프고. 보다 보면, 돈 많고 여유 있는 사람이나 가능한 취미 생활이구나, 그런 씁쓸한 마음이 들어서 순수하게 즐기는 건 힘들다. 노년에도 지속적인 활동을 한 타샤에게 여유 있다는 말을 쓰는 건 실례이겠지만. 딱히 시간 여유만 여유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타샤의 그림동화를 좋아한 사람이라면. 창작의 원동력이 된 타샤의 정원을 살펴보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일 듯.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 공들인 정원 속에서 잠시 위안을 느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정원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까.

 

 

 

책의 더 자세한 사진은 https://www.instagram.com/p/Blh2XjMgDDl/?utm_source=ig_web_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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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편해지고 싶어서 :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슈테파니 슈탈 지음, 오지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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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그림자 아이를 바라보기

 

  ‘조금 더 편해지고 싶어서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를 처음 보았을 때 당신과 나 사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책인지 알았다. 어떤 식으로 타인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책.
 
  ‘조금 더 편해지고 싶어서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가 타인과 거리를 두는 이야기를 아주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인간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터 직시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인간관계를 힘들게 하는 건, ‘이기에. 정확히는 살아오면서 받은 트라우마가 만든 왜곡된 의식, ‘그림자 아이때문. 이 억압된 그림자 아이를 직시하고 풀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과 제대로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어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그런 점에서 조금 더 편해지고 싶어서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는 자아 성찰에 관한 책이다. 책에서 설명하는 여러 유형의 그림자 아이를 살펴보며 내 그림자 아이에 대해 이해한다. 그림자 아이를 받아들인 뒤, 내가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이상인 태양의 아이를 만들어야 한다.
  태양의 아이가 바로 섰을 때. 비로소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를 제대로 설정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가령 그동안은 타인의 비판에 대해 화부터 냈다면. 이제는 그림자 아이가 왜 화를 내는지 살펴본 뒤, ‘태양의 아이를 통해 인정할 수 있는 건 인정하고, 그 사람이 특이한 건 그 사람 문제로 넘어갈 수 있다. 인간관계가 좀 더 수월해진다.
 
  내 그림자 아이는 분열형에 가깝다. 이 유형은 타인을 신뢰하지 않고 인간 관계에 흥미도 느끼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사교적인 사람이 많지만 실상은 매우 배타적인 사람들. 멀리서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힘든 성격이란다. 이런 성격과 친하게 지내려면, 그 사람이 그어 놓은 선을 인정하면서 천천히 담을 허물 수밖에 없다나.
  뭐,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부모님부터 인간관계에 큰 흥미가 없다. 정작 힘들 때는 떠나버릴 사람들. 자칫하면 오히려 발목 잡을 사람들. 어차피 내가 잘 나가면, 알아서 모일 텐데, 굳이 신경 쓸 것 있나. 이런 쪽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까. 사실 그럴 만한 일이 집에 몇 번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친절해도 진짜 마음은 주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는 담을 쌓는다. 그 담은 절대 함부로 넘지 않는다. 어떻게 치면 예의 바르고, 어떻게 치면 냉담하다. 나는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남편은 아무래도 후자 같은 듯하다.
 
  내가 왜 그런 성격인지. 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날 성찰할 기회는 차고도 넘쳤기에. 다만, 인간관계를 위해 발 벗고 뛸 이유는 딱히 없다 보니.
  요즘은 낯가림 심하다고 하면, 낯가림의 새로운 정의가 생겼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색하면 오히려 말을 많이 해서 어색함을 덮어버리는 성격인데다, 사교적으로 보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다만 진정한 낯가림 없는 성격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걸 고려한다면,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난, 낯가림 심한 게 맞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면. 읽어볼 만한 책. 나를 들여보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한 번 나를 인정하면 그 뒤는 수월해진다. 내 약한 점을, 내 불안정한 점을. 계속 바라보는 건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결국 같이 살아가야 할 소중한 동반자니까.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정 불만스러우면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 내일보다는 나은 모래를 위해 노력하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말 원하는 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걸 보고 공익광고같은 마무리라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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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한 장으로 요약하는 기술 - 토요타에서 배운
아사다 스구루 지음, 서경원 옮김 / 시사일본어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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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에서 배우는 생각정리기술

 

 사장님께서 직원들도 글을 잘 써야 한다고 하셔서, 회사 자료실에 글쓰기 책을 왕창 들여놓았는데, 그 중 한 권. 도요타에 다닌 아사다 스구루가, 도요타에서 배운 종이 한 장으로 요약하는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기 위해 쓴 책이다.

도요타에서는 모든 직원이 한 장 보고서로 일한다. 회의를 할 때도 보고를 할 때도, 전부. 한 장으로 모든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그 뒤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두루뭉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말하는 사람마저 모르게 된다. 왜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걸까. 엉엉. 눈물 좀 닦고.
 한 장 보고서의 위력은 대단하다. 읽는 사람이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으니 보고 시간이 짧아진다. 한 장 보고서에 회의 요점이 다 요약되어 있으니 회의도 빨라진다. 추진 계획을 깔끔하게 정리한 한 장 보고서가 있으면 담당자가 없이도 일이 진행될 수 있다.
 이런 보고서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우선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틀을 짠다. 보고용이라면 취지, 문제점, 원인, 해결방안, 시행계획 이 정도가 아닐까. 다만 많은 내용을 한 장에 압축해야 하므로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을 터. 사실 글을 짧게 쓰는 게 더 어렵다.

여기서 필요한 게 저자가 알려주는 생각정리기술.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이 책에서 정말 챙겨가야 하는 건, 한 장 보고서 작성 기술보다는 생각정리기술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한 장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는 내 생각이 명확해야하고, 생각을 명확하게 하려면 잘 정리해야 하니까.
 저자가 사용하는 방법은 3색 볼펜과 종이 한 장을 이용하는 것. 컴퓨터도 되지만 손이 더 낫다고 한다. 일단 그런가 하자.
 녹색 펜으로 우선 16칸을 그리고 생각해야 할 주제를 표시한다. 가령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그리고 파란색 펜으로 생각나는 점심 메뉴를 쓴다. 다 쓰고 나면 무엇을 먹고 싶은지 정리될 터. 정리되지 않으면 빼야 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가령 어제 동태 무조림을 먹었으니 오늘은 생선은 됐다든지. 어제 회식을 했으니 위에 부담스러운 건 싫다든지. 이유를 기입한 뒤 이유를 기입한 뒤 빨간펜으로 선택할 것을 고른다. 이런 식으로 여러 상황에 응용할 수 있다.
 생각정리기술은 이 외에도 많다. 마인드맵, 브레인스토밍 등을 시작해서. 관련 책도 많으니 읽어보아도 좋을 듯. 다만 이 방법 간단하고 펜과 수첩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 유용하지 않을까. 정작 나부터도 ‘와 유용하네’ 이런 뒤에는 머리 뒤로 날려 버렸지만. 자랑은 아니지만 내 일은 뒤치다꺼리라서 생각할 일이 없단 말이다. 쓰고 나니 갑자기 울컥해졌다. 엉엉엉.
 
 읽었다고 바로 실천해야 하는 것도 아니겠고. 일단 머릿속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시험해본 뒤, 내게 맞는 방법 찾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 있다고 하고 싶다. 읽고 행하지 않으면 죽은 독서랬는데. 쭈볏쭈뼛.
 일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막막한 사람. 장황한 보고 때문에 상사가 질색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도 좋을 듯. 얇고 실천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니, 바쁜 직장 생활에 낭비되는 시간도 그리 크지 않을 터. 아마 그렇지 않을까. 갸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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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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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다시 한 번 돌아보기

 

 여성. 동성애자. 성소수자인 독일인 엠케가, 다시 극우파가 세력을 얻기 시작하는 독일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쓴 책. 우리나라도 혐오가 심해지고 있는 만큼, 시사적인 의미에서 읽으면 좋겠다 싶어 남편 회사 전자도서관에서 빌렸다.

경찰이 흑인을 죽여 버린 사건에 대한 고찰이 인상적이었다. 키가 크고 덩치도 큰 그는, 싸움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 도착한 경찰은 그에게 다가와 그를 제압한다. 억울한 그가 벗어나기 위해 반항하자, 경찰은 그를 구속하고 목을 조른다.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하지만 경찰은 손을 풀지 않는다. 결국 그는 사망한다. 모든 과정은 어떤 사람이 영상으로 전부 기록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경찰이 공포에 질렸기 때문일까. 영상에 따르면 경찰은 매우 평온했다고. 단지 덩치 큰 흑인은 위험하다는 의식이 있고, 흑인은 목을 조르는 방식으로 제압해도 상관없기에 위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흑인에게만 저런 일이 계속되는 건 역시 밑바닥에 깔린 차별의식 때문일 터.
 하지만 저자가 가장 감명 깊어한 건 흑인이 체포되기 전 남긴 말. 오늘로 이런 일은 그만 되어야 해. 계속되는 차별, 계속되는 폭력에 대한, 저항의 말.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난민에 대해서도. 트렌스젠더에 대해서도. 그들이 겪고 있는 차별을 보여주고, 그들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왜 그런 식의 차별이 발생하는지 원인을 분석한다. 다양한 면모를 통해 현재 혐오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지, 그리고 혐오는 당하는 사람의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침해하기에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혐오는 언제 어디로 튈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이 책은 분명 좋은 책이다. 소수자 입장에서 어째서 혐오가 나쁜지 어째서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득한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존재한다.
 
 특히 난민에 대한 부분.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난민 캠프에 찾아가 피켓을 들고 시위하며,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갈 생각은 없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그들에 불행에는 공감한다.
 거기까지. 그들이 정말로 조국을 포기하고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에 평생 충성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다면. 정말로 한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이 정말 좋아서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데, 막을 이유도 없고. 국민의 조건이 인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난민들 국가가 안정되면 돌아갈 사람들이잖나. 한국에 온 건 단순히 한국에서 일하면 한 몫 단단히 벌 수 있기 때문이고.

난민 복지, 국민 세금으로 이루어진다. 원래라면 다른데 써야 할 돈, 난민에게 쓰는 거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르지만. 최소한 사람이 안전한 곳에서 살아야 하지는 않겠냐는 인도적인 이유로.
 우리 지금 그럴 여유 있나. 북한 국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말도 달라졌고 문화도 다르고, 심지어 견디다 못해 마약 중독까지 되어버린 북한 국민.  결국 거둬 먹여야 하는 것 우리다. 그 돈 마련할 여유는 있나. 조만간 세계에서 가장 난민 많이 거둬 먹이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인권을 위해 국민에게 참으라고 할 건가. 현재 우리도 소년소녀가정 많고,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있지만, 그렇더라도 인도적인 지원이 필요한 난민을 위해 국민 여러분은 희생하십시오.
 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미국사람이 인권의식이 전부 날아가서, 세계는 어찌 되었든 좋다고 생각하는 괴팍한 괴물이어서? 생활은 힘든데, 국가가 타국을 위해 내 세금 날리고 있으니 울컥해서다.
 돈은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직장도 없고 돈도 없는 상태로 한 바퀴 돌아보면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전면적인 난민 지원에 반대하는 이유다.
 
 다르니까 싫어. 약하니까 싫어. 잘 모르니까 싫어. 이렇게 딱 자르고 무조건 혐오하지는 말자. 어떤 정책에는 반대할지언정, 사람 자체에는 반대하지 말자. 다른 건 다른 거지, 틀린 건 아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책은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는 있다.
 다만 이런 책을 읽다보면, 어쩐지 반박하고 싶어진다. 책 행간에서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너는 인권의식이 없는 사람이야’ 이런 주장이 들리는 듯하여. 모든 문제는 복합적이다.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반대하는 사람 나름의 이유는 있다. 그런 상황에서 윤리 잣대만 들이대고 비판하면 불쾌하다.
 일전에 말한 불편하게 하는 책이 있고 불쾌하게 하는 책이 있는데. 트랜스젠더와 성소수자 외국인 문제는 전자였지만, 난민 문제만큼은 절대적인 후자였다. 난민 반대에 대한 이유를 길게 쓴 것도 그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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