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끌리다 - 나를 위한 특별한 명화 감상
이윤서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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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어우러진 한 권의 에세이

기대평 이벤트로 받은 책이므로 평소와 논조 문투 등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서평단 이벤트로 받은 책이라고 특별히 다르지는 않았지만.

 그림은 어렵다. 그리는 것도 보는 것도 전부. 전시회는 몇 번 가봤다. 아름답다. 그뿐. 스치듯 바라보다 10분도 안 되어 전시회장을 나온다. 알지 못하면서 왜 온 거야. 이런 말이 뒤에서 들리는 것 같다. 열등감 때문이다.
 하루 두 권의 프로젝트에는 다양한 책을 읽자는 소규모 프로젝트가 포함되어 있다. 한 달에 한두 권은 예술 관련 책을 읽는다. 7월 중순 휘몰아치듯 미술과 건축 책을 읽어댄 것도, 8월 1일 이 책을 집어든 것도 그 때문.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2’도 사두었다. 8월 말에 읽지 않을까.
 초심도 열정도 없다. 무언가에 미치는 성격은 아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실패할 경우 어떤 타격을 받는지, 이런 것부터 분석하는 재미없는 인간이다. 초심 굳건하고 열정 넘치는 사람이 부럽다. 내 인생에는 없는 단어다. 대신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다. 그마저도 안 하면 인생이 너무 심심하다.
 
 서정적이고 여성스러운 문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늘어놓는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직장인이다. 아이가 있다. 그림을 좋아한다. 단서만 곳곳에 뿌려 놓을 뿐.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저자에 대한 인상은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행간 곳곳에서 느껴지는 씁쓸하면서도 서글픈 감성이, 마음을 뒤흔든다. 산문시 비슷하다.

그림 이야기지만, 그림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중심 소재는 그림이지만, 그림이 주인공은 아니다. 주인공은 화가의 인생. 그리고 저자의 인생. 하나만 꼽는다면 저자의 인생이다. 그림과 그림에 녹아든 화가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천천히 인생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책 초반 아련하고 씁쓸한 감정은, 책 후반이 되면 천천히 사라진다. 대신 밝고 희망찬 감정이 빈자리를 채운다. 망설임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도 저자의 태도가 밝아지면서 책도 밝아진다. 노린 구성이 아닐까. 여러 일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독자 역시, 책을 읽다보면 위로받고 긍정적이 될 수 있도록.

그림에 대해 전문적으로 분석한 책은 아니다. 이 그림은 어떤 구도이고, 어떤 상징을 사용했으며, 이 그림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책은 그림을 그릴 때 화가는 어떤 상황이었고, 어떤 심경이었고, 화가의 인생은 어떠했는지, 그림 밖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양화 위주지만, 한국 그림도 다룬다. 조선시대 그림도 있지만 광복 이후 그림도 있다. 미인도 위작으로 논란이 된 천경자도 스치듯 언급하고 있다. 미인도 위작 논란에 대해서도.
 익숙한 그림이 많지만, 지겹지는 않다. 한 그림을 이토록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구나. 신선한 기분마저 든다.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같은 것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누구도 같지 않다. 새삼스레 곱씹어 보는 작은 진리.

어제 멋 부리느라 오히려 문장을 망가뜨렸다는 감상을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지금 내 글을 읽어보니, 나도 만만치 않다. 반성 중.
 그림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그림을 취미삼아 즐기고 싶은 사람.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그림과 관련된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듯. 아울러 서정적인 문체를 좋아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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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반전 - 착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
이내화.김종수 지음 / 모아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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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없어서 반전

 

 

 눈이 뜨였다. 시계를 확인하니 3시 20분.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액정이 새까맣다. 폰이 꺼져있다. 충전기에 꽂아두고 잤다고 생각했는데, 충전기와 충전선이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았다. 눈이 갑자기 뜨여 다행이다.
 별일 없으면 10시에 자서 4시에 일어난다. 내 시간을 언제 확보할지 고민했는데, 밤보다는 새벽이 방해가 적을 것 같았다. 다행히 아침형 인간이라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지 않다.
 처음 목표는 5시였다. ‘아침 5시의 기적’을 읽고.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한참 욕한 뒤, 알람을 5시로 바꾸었다. 문제는 출근 준비하는데 한 시간 쓰고 회사 도착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순수한 내 시간은 정작 얼마 되지 않는 거다. 4시로 기상 시간 바꾸어 버렸다. 지금은 외국어 공부하고 서평 쓰고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즐기고 있다. 대신 근무 시간에 졸리다.

자기계발서다. 어떤 시대든, 손해 보더라도 성실하고 우직한 사람이 결국은 성공한다는 책. ‘현실적인 반전 메뉴얼’ 공개한다며?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운 이야기를 뭘 새삼스레 반전이라고 공개하는 거냐. 이런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표지의 낚시만 무시하면 책은 괜찮게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예시가 풍부하다. 각지의 성공한 사람들의 예시를 상자 처리해 수록해 두었는데, 저자의 핵심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사례들이어서 저자의 주장을 더욱 강화해준다. 덧붙여 가독성도 높아진다.
 두 번째. 이 책은 모든 것을 숫자로 표기하고 있다. 가령. 지혜를 얻는 5가지 방법. 전문성을 얻는 8가지 프레임 등. 딱딱 숫자로 표시되기 때문에 이후 어떤 내용이 얼마만큼 나올지 짐작할 수 있고, 이 덕에 몰입이 쉬워진다. 책보다는 강연에서 더 빛을 발할 듯하다.
 세 번째. 어휘가 재미있다. ‘적자성공’. 적자성공(適者成功)이 아니다. ‘적어야 성공한다’의 줄임말이다. ‘직장팔경’. 직장인만이 누리는 호사 8가지. 강연할 때 청중의 시선을 확 끌어야 하는 만큼, 재미있는 조어로 시선을 모으는 수단을 쓰는 듯하다. 곳곳에서 ‘이거 기발한데’, 이러며 웃었다.

 다만.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건 별로 안 좋아한다. 지금 취직 못 한 사람들 많다. 이 모두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작년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정말 열심히 하는 한 여학생을 보았다. 난 20분마다 사라지는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그 여학생은 진짜 종일 자리를 지켰다. 대체 언제 사라지나 관찰해보다, 포기했다.
 혹시 자리만 지킬 뿐 딴 짓하나 싶어서 몰래 감시까지 했는데 열심히 책 보고 있더라.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슬쩍 물어보니, 전부 매우 성실한 여학생이었다고 칭찬했다.

원하는 것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씁쓸하게도. 경제 불황. 부족한 일자리. 계속 늘어나는 구직인구. 이 모든 것이 합해져, 그녀 자리는 없었다. 개인 노력이 전부는 아니다. 사회에도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사회는, 그다지 좋은 사회는 아니다. 주저앉고 자책하게 놔둔다면, 일본처럼 사회에서 사라져버리는 사람들만 양성할 뿐. 그렇게 낙오되고 뒤처진 사람이 많아진 사회, 상상만으로도 서글프지 않나.
 네가 원하면 네가 노력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 과정이 가시밭길이라면, 가시밭길을 밟지 못했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가시를 제거할 수 있는 도구라도 준 뒤 말하는 게 맞다. 피투성이가 된 채 헤쳐 나온 사람이 있다고, 너도 피투성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잔혹하다.

약간 길게 반박하기는 했지만 얻어갈 건 꽤 있는 책. 천천히 읽으며, 괜찮은 조언은 메모해가며, 마음에 든 조언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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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밑의 세계사 창비청소년문고 18
이영숙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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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세계사를 소재로 짓다

 

 월요일. 간만에 도서관에 갔다. 일본어 회화 수업 듣는 동안, 도서관은 거의 가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주로 다녀오는데, 일본어 회화 수업도 점심에 있다 보니.
 이번에는 소설, 무조건 소설, 하늘이 두 쪽 나도 소설. 소설을 읽겠다는 포부로 방문했다. 이왕이면 전에 읽다 만 스티븐 킹의 소설들 더 찾아 읽을 마음으로. 반납하고 반납대에 책을 올려놓는데, 이 책이 눈에 뜨였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더는 고민 없이 빌렸다.
 그리고 읽기 위해 책을 편 뒤, 알아차렸다. 이거 청소년용. 뻔히 표지에 ‘청소년용’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걸 눈치 채지 못한 난 뭘까. 왜 내가 작성한 문서가 오타투성이인지 알 것 같다. 
 서문에서 성인도 많이 읽는다는 말이 없었다면, 아마 울어버릴지도. 사실 청소년용은 이전에도 빌린 적이 있어서 이 정도로는 이제 울지 않을 것 같지만. 어째 쓰고 나니 더 서글퍼졌다.

 

 이 책 구성이 참 독특하다. 지붕. 서재. 욕실. 방부터 시작해서 정원까지. 집의 구성 부분마다 세계사 한 꼭지를 배치했다. 지붕에는 르네상스를. 서재에는 종교개혁을. 욕실에는 프랑스 혁명, 방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 정원에는 청나라 말기까지.

 시대 순으로 연결되지도, 지역 순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각 역사는 독립적으로 소개된다. 다만 중학생이면 기본적인 세계사 지식은 있을 테니, 이런 구성이 특별히 혼란스러울 것 같지는 않다.
 어머니가 딸에게 말하듯, 조곤조곤 설명하고 있어 따뜻한 느낌을 준다. 다양한 사진 자료 덕에 책을 더 쉽게 읽을 수 있다. 중학생이 읽어도 좋지만, 성인이 읽어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하다. 책이 쉽기에 오히려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듯.

 

 청자를 딸로 상정했기 때문인 듯, 곳곳에 여성주의 색채가 묻어난다. 가령 책 209쪽. 서 태후가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 정치가보다 더 인색한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닐까? 청나라 역사는 교과서 이상은 잘 모른다. ‘서 태후와 궁녀들’은 읽어보았지만, 거기 나오는 서 태후는, 인간적인 면모 위주로 묘사되기에, 역시 서 태후의 정치적 능력까지 아는 건 무리다.
 다만. 저자의 지적이 딱히 틀린 건 아니리라 생각한다. 경국지색. 나라를 흔들 만한 미인. 하지만 왕의 여자에 지나지 않는 그녀들에게 무슨 힘이 얼마나 있었을까. 왕이 받아야 할 비난을 뒤집어쓴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조선 시대 장희빈만 해도, 숙종의 정권유지에 이용당했을 뿐, 우리가 아는 만큼 악녀는 아니었다는 연구도 있다.
 생각해볼 주제다. 사실 이런 식으로 비트는 질문 좋아한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오히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단지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가볍게 역사를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 볼만한 책. 주변에 여자 중학생이 있다면 권해도 좋지 않을까. 공부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머리 식힐 시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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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소음을 줄여라 - 걱정과 집착에서 벗어나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법
크리스 헬더 지음, 김은지 옮김 / 이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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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고삐는 당신이 잡아라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내가 돈 주고 산 책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쩐지, 분명 책을 읽고 또 읽고 있는데, 정작 쌓아둔 내 책 높이는 낮아지지 않더라. 안 되겠다. 이 마음으로 펼쳐 든 책. 사실 ’마션‘ 한 권만으로도 이틀은 책 안 읽어도 될 것 같은데.

‘내 안의 소음을 줄여라’ 명상 책인지 알았다. 내 안에 휘몰아치는 온갖 잡념들을 전부 제압해서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 마침 이 책 샀을 때가, ’고요 속의 힘‘을 읽었을 때기도 하고.
 맞지만 틀렸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다. 다만 이 책에서 요구하는 건,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니만큼, 내 짐작이 아주 많이 틀린 건 아니다. 그보다 자기 계발서 제목이 ’내 안의 소음을 줄여라‘라니. 나쁘지는 않지만, 어딘지 자기 계발서 같지 않다.

우리 모두는 ’완벽‘을 꿈꾼다. 직장인으로서도. 부모로서도. 자녀로서도. 친구로서도. 하지만 그 모든 기대를 충족할 수 없다. 나는 왜 이럴까. 직장 동료 보기 미안하고, 부모님 보기 죄송하고.
 저자는, 이런 무의미한 죄책감을 던져 버리라고 요구한다. 오히려 그 때문에, 정말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다고. 유치원 때. 어머니가 날 붙잡고, 유치원 다녀와서 매번 집에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날 붙잡고 그렇게 계속 말했다면, 난 오히려 짜증을 내지 않았을까.
 미안해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놀아주고,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주고, 혼자 잘 있어 장하다고 칭찬해주는 쪽이 더 좋다.
 죄책감은 전혀 건설적이지 않다. 내게도. 상대에게도. 죄책감 느낄 시간에, 부족함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게 더 현명하다. 그렇다고 뻔뻔하게 얼굴에 철판 깔라는 건 아니지만.

이 외에도 좋은 조언이 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만들고, 카테고리에 맞게 행동할 것.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어제 직장에서 문서 대장 뒤지며 5년 치 문서 목록 작성했다. 전혀 즐겁지 않다. 보람도 전혀 없다.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때 카테고리가 필요하다. 직장일. 직장인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상황에서, 굳이 즐거움까지 찾으려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성실하고 우직하게 일을 해결하면 충분하다. 즐거움은 퇴근해서 찾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런 식이다.

그 외, SNS의 좋아요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찾지 말라든지. 전략을 세울 때 장애물 위주로 세우라든지. 가령 난 운동 진짜 싫어한다. 운동을 하기 싫은 이유를 1000가지라도 댈 수 있다. 이 운동을 하기 싫은 이유가, 장애물이다.
 내가 왜 운동을 피하는지, 운동을 피하는 상황을 조목조목 나열한 다음, 그 상황을 회피할 방도를 찾아보다 보면 분명 운동하지 않을까. 다만 지금은 발목이 시큰해서 운동을 피하고 있다. 이걸 피할 핑계는 없어 보이는데. 두둥.

다만 나는 원래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도 가급적 하지 않는다. 나태함의 극치 인생이다. 이 책의 핵심 조언은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나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올 것 같다. 괜찮아. 쓸데없이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는 낫잖아.
 불필요한 죄책감과 무의미한 사회의 강요 속에서, 대체 난 어떻게 해야 하나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저자의 명쾌한 말에 위안을 받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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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마션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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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에서 1년 반 살아남기

 감자가 먹고 싶어지는 영화, 마션. 그 이야기를 들은 뒤, 원작 소설인 마션에 흥미를 팍팍 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감자가 먹고 싶다. 햇감자. 결이 부슬부슬 일어나는 좋은 감자. 찜기에 넣고 푹푹 찐 다음, 따끈따끈 뜨거울 때, 숟가락으로 부드럽게 퍼먹는 거다. 약간의 버터와 치즈를 허락해도 좋겠다. 스프에 넣어 먹어도 맛있다.
 고로 이번 주말, 감자 파티다. 요리는 먹어줄 사람이 있을 때 해야 즐거운데, 주말부부여서 주중에는 혼자 지내다 보니 의욕이 안 난다. 심지어 회사 가면 아침점심저녁 세 끼 다 차려준다, 회사 만세. 고로 남편 만나면 감자 파티를 하자. 감자는 남편이 삶는 거로. 땅땅. 가끔은 남편에게도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절대 귀찮아서 맞다. 헷.

이 소설 재난물이다. 주인공 혼자 화성에 남았다. 식량도 제한되어 있다. 구하러 온다는 보장도 없다. 심지어 몇 번이고 죽음의 고비까지 넘긴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정말 스릴러도 보통 스릴러가 아닌데, 이 책을 읽으며 단 한 번도 주인공을 걱정하지 않았다.
 이 주인공 너무 유쾌하다. 지나칠 정도로 낙천적이다. 혼자 고립되어 있는데, 정신적으로도 무너지지 않고, 앞에 닥친 모든 문제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몇 번이고 주인공이 굴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을 보다 보면, 위기가 닥쳐도 주인공이 이번에는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까. 기대만 될뿐, 주인공 죽으면 어쩌지, 이 생각은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 버린다.

이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과, 3인칭 전지적 시점을 교차해가며 진행한다.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서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초조하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주인공이 너무 태연하다 보니,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마저, 코미디로 느껴진다. 작가가 바란 건, 제3자 입장에서 주인공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확인하고,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었을 텐데.

사이언스 픽션. 하지만 딱히 과학 상식 없어도 된다. 이 유쾌 발랄한 생물학자가 닥친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며 살아남는지, 그 부분에만 집중해서 읽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전자책으로 900쪽이 약간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그 두께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어제 정신 차리니 마지막 장이 날 손짓하고 있었다. 반갑다. 마지막 장. 그런데 내 시간 어디로 사라졌니. 시계 바늘이 어째서 고속 이동을 해버린 거지.
 
 이미 출간된 지 꽤 된 책이고, 영화도 흥행했던 터라 읽은 사람 많을 것 같지만. 혹시 영화만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분명 이 책, 재미있지 않을까. 영화 등장인물을 떠올리며, 영화를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 될지도.
 다만 소소한 아쉬움이 있다면. 후일담이 전혀 없이 이야기가 끝나버린 것. 그 덕분에 이런저런 상상할 여지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 한 마디라도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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