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벽이 당신에게 화를 냅니다.]
나는 벽을 마주 보았다. 오랫동안 나는 이 벽이 소설과 현실을 가르는 경계라 생각했다. 벽이 있기에 새로운 세계에 적용할 수 있었고 온갖 끔찍한 상황 앞에서도 비상한 판단력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벽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여전히 확답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벽이 오랫동안 나를 지켜주었다는 것.
몇 번이고 위기를 맞았지만 벽이 있기에 살아남았다.
이 벽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나를 향해 환자를 부풀리는 벽에 손을 가져다댔다.
"미안해."
[제4의 벽‘이 파르르 몸을 엽니다.]
손가락에 감겨드는 활자의 감촉이 낯설었다.
[제4의 벽]은 이런 느낌이었던가. 벽에 적힌 문자들이 손끝으로 몰려들었다. 나를 핥는 것 같기도 했고 깨무는 것 같기도했다. 명료히 나눌 수 없는 느낌이었기에 와닿지 않는 비유만이 가능했다. [제4의 벽은 비에 젖은 강아지 같았고, 버림받은아이 같았으며, 말 안듣는 사춘기 소년 같았다. [제4의 벽 ]은[제4의 벽은 마치 나 같았다.
그리고 벽 위에 문장이 떠올랐다.
[김독자는 멍청 이이다.」한글을 막 배운 어린아이가 시험 삼아 적어본 것 같은 문장.
나에 관한 서술도, 세상에 대한 서술도 아니었다.
그것은 [제4의 벽]의 말이었다. - P250

「내 아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대체 뭐야? 빌어먹을 [운명]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지?」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이수경은 그런 것을물었다. ‘벽 안의 존재는 그런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대답했다.
「[운명을 벗어날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이 모든 상황이 장난스럽다는 듯이 괴이쩍은 미소를 지은채로「김독자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어.」 - P307

쏟아지는 무수한 별들의 시선 속에나를 죽일 이야기가 한 문장씩 다가오고 있었다.
한때는 내 부모였고, 친구였으며, 연인이던 이야기.
더는 내가 아는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이야기였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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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일까. 그토록 바라온 일인데.」니르바나의 전신이 자잘한 균열로 뒤덮였다. 발, 다리, 허벅지, 가슴...... 부서진 조각은 고스란히 [제4의 벽]으로 빨려들었다.
「나는 왜 이것을 두려워할까.」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죽음의 공포. 죽는다는 것. 이후가없다는 것.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고,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조차 없다는 것.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순간 감겼던 니르바나의 눈이 번뜩 떠졌다.
190「싫어.. 싫다!」그러나 입이 흩어진 니르바나는 그 말을 외칠 수 없었다.」앞으로 내뻗은 팔이 허망하게 사라졌다.」「애초에 실존이란 그렇게 아름다운 게 아닌 것이다.」
죽음에 달관한 필멸자는 없다. 모든 존재는 죽음 앞에서 무력하다. - P90

천장을 비롯한 벽 곳곳에서 시나리오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명 속에 죽어가는 화신들, 그걸 보며 낄낄대는 성좌들. 그모습을 보며 나는 여기가 어떤 곳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인간의 모든 비극이 만찬이 되는 곳.
연회 홀 2층을 올려다보았다. 시끌벅적한 1층의 위인급 성좌들과 달리 불길한 침묵으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성좌들이 있었다. - P134

멸악의 심판자
나의 ‘불살‘을 지켜주기 위해서 모든 것을 ‘몰살‘해야 했던사람.
"시나리오에 쫓기듯 살지 않아도 돼요. 누군가를 죽였다는이유로 악몽을 꾸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이제………."
정희원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보았다. 그리고 이내시선을 회피하듯 말을 맺었다.
"누군가를 잃지 않아도 돼요."
가장 단단한 검은 가장 부러지기도 쉽다. 단단하다는 이유로 제일 많이 휘두르게 되니까. 가장 많이 상처받고, 가장 이가 많이 빠진다. 그렇기에 어떤 검보다 빨리 망가진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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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십시오.」
오래도록 시달린 끝에 마침내 자신의 결말에 도달한 얼굴.
부디, 저먼 별들을, 모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즈미는 알고 있었다. 야마타노오로치는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이즈미를 죽이지않으면 그의 영혼은 영원히 꼭두각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칼자루를 꾹 눌러쥐었다.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나의 생명을 죽인다.
이기적인 검이 움직였고, 뭔가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 P183

나는 죽을힘을 다해 이현성의 다리를 다시 움직여 앞으로조금씩 나아갔다.
이제 세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제길, 너무 뜨겁다.
고통에 또 한 번 무릎이 꺾이는 찰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자 씨. 제가 하겠습니다.
이현성이었다.
‘제가 해야 합니다.‘
[강철의 의지가 당신에게 반응합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나는 ‘독자‘다. 그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298

그것을 아는 이현성은 자신을 희생해 정희원을 위한 벽이되고 있었다. 언제까지라도 세상을 대신해 그녀의 분노를 감당하겠다는 듯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언어로는 담지 못하는 정희원의 마음에 이현성의 차가운 금속이 닿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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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내가 바라는 결말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은 불가능을 하나씩 가능으로 바꿔나가다 보면,
언젠가 불가능한 결말도 가능한 결말로 바뀔지 모른다. 그리고 신유승은 그 불가능한 이야기의 초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P19

유중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신유승의 얼굴이 점차 의구심으로 물들어갔다. 한참을 침묵하던 유중혁이 짓씹듯 말을 이었다.
"나의 동료다." - P108

「...... 정말, 그래도 된단 말인가?」「그런 이유로, 내가 계속.」「이 세계를, 포기하지 않아도…어떤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어떤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언젠가 구원받는 날은 온다.
나는 신유승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신유승, 이제 이곳이 너의 새로운 ‘회사‘야."
독자였기에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고, 독자이기에 이제 바꿀 수 있었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 P148

나는 재앙 신유승을 바라보았다. 악인화가 진행되어 육체통제력을 잃었음에도 눈에는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 괜찮아. 나를 죽여줘.」누가 그 눈을 보며 검을 휘두를 수 있을까.
천 년의 세월을 헤매고 또 고통받은 존재.
나는 이제 그녀를 베어야 했다.
이것이 이야기를 바꾸는 데 실패한 대가……….
나는 처음으로 멸살법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워졌다.
"두눈 똑똑히 뜨고 지켜봐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너희가 원한 시나리오니까."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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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독자씨랑 똑같아. 우리 같은 QA팀이었잖아. 다른 부서에서 우리 어떻게 봤는지 기억하지? 겨우 게임 테스트나 하는 스펙도 없는 싸구려 인력이라고."
"독자 씨. 지금 저기 갇혀 있는 놈들 정말 누군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잘 봐 우리 무시하던 그 새끼들이야."
철창 안, 미노 소프트 직원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내가잘 모르던 사람들. 마찬가지로 나를 잘 모르던, 혹은 몰라도상관없던 사람들.
"이제 다 끝났다고 재무팀이든 기획팀이든 뭐든 간에 지금 이 세계에서 가장 유리한 건 우리 QA팀이야. 하하. 독자 씨도 버그 테스팅 오래 했으니 잘 알잖아? 이 세계는 게임이야.
버그투성이인 게임. 너무 허점이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거든."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무수한 성좌들의 메시지. 못하더욱 자극적인, 더욱 음탕한, 더욱 잔인한 이야기를 원하는메시지가 윤 대리의 얼굴 위에 조용히 겹쳐졌다.
P어떤 열등감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 P30

희미한 절망이 그들의 동공을 스쳤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냉정한 처사 같아도 결국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

사람들이 허겁지겁 떨어진 아이템을 줍기 시작했다. 오직 살아남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들의 눈이 다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순간 도깨비가 왜 나를 이곳에 데려다는지 이해했다.

조금 전까지 피해자이던 사람들이 서로 병장기를 겨눴다.
어느새 가해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이 왕이 없는 세계다. - P39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난 어디까지나 사람이란 한 면만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뜻밖의 이야기여서 잠시 한수영을 올려다보았다. 한수영이쿨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아무리 내 작품을 표절이라고 우겨도 사실 내 작품이멸살법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처럼 말이야."
"...... 그 말만 안 했어도 거의 설득될 뻔했는데, 아깝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뜻밖의 화두에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TAM유중혁은 어떤 인간인가 나는 정말 유중혁‘이라는 존재를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는 자신 있게 대답할수 있었다. 나는 멸살법을 다 읽은 유일한 독자니까.
그런데 익어가는 재료를 보는 동안, 어쩐지 내가 갖고 있던대답의 일부가 수프 속에 섞여 희석돼버린 느낌이었다.
정말 내가 아는 ‘유중혁‘이 ‘유중혁의 전부일까? - P132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였다면 이 모든 여정을 시작하지도 않았겠지.
40정말 오랜만에, 멸살법을 처음으로 본 그때의 감정이 떠올랐다. 어쩌면 한수영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줄곧 잘 안다고 믿은 건 쉽게 포기하고 쉽게 사람을 죽이는 숱하게 비극을 반복하며 정신이 닳아버린 상태의 유중혁이었다.
하지만 3회차의 유중혁은 아직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3회차의 유중혁에 대해 잘 모르는지도 모른다. - P144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다. 이설화를 죽였더라면, 혹은 리카온과 합세해 앤티누스를 죽였더라면, 네놈은 재앙을 막을수 있었어.
변명을 하려면 못 할 것은 없었다. 이설화를 죽이지 않은 것은 유중혁 때문이었고, 리카온과 합세하지 않은 것은 끼어들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난 너 같은 회귀자가 아니야. 실패하면 끝이니까 신중할수밖에 없다고, 끝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않으면・・・・・・.
-신중? 건방 떨지 마라. 네놈이 성좌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미래를 좀 안다고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 명치를 세게 때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 P221

나는 스킬을 선택했다. 다음 순간, 내 몸속에 은빛 폭풍이불어닥쳤다. 웅흔한 늑대의 용맹이 몸 안에 깃드는 것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나는 바보였다.
왜 지금까지 이걸 배우려고 했지?
나는 회귀자도 귀환자도 아닌데.
[등장인물 ‘이뮨타르의 왕자 리카온이 4번 책갈피에 등록됐습니다.][4번 책갈피가 활성화됐습니다.]
나는 독자다.
[‘바람의 길 Lv.8‘이 활성화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싸우는 방식이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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