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내가 꼭 지키는 규칙이 있어." 그런 이야기는 미리 좀 해주지! 치연 누나는 고등학교 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아파트 옥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누군가배달시킨 치킨 냄새가 가득하지 않았다면 정말 그럴 뻔했다. 치연 누나는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에울면서 먹은 그 치킨 덕분에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늦은 밤에, 배고플 때 혼자 내리는 결정이야말로 인생 최악의 결정이라고 했다. "너 지금 배고프지?" 생각해 보니 엄마 아빠를 기다리느라 점심도 먹지 않았다. 만석이 형이 헤어지기 전에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밥이 목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아서 혼자 보냈다. 아침밥을먹고 오후 4시가 넘을 때까지 굶었다는 걸 깨닫자 갑자기 어지러웠다. 나쁜 결정을 내리게 하는 조건이 두 가지나 있었다. "그럼 좋은 결정을 하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치연 누나가 방법을 알려 주었다. 역시 일단은 치킨이었다. - P19
언제부터 엄마와 내가 서로 아픈 말을 주고받게 되었는지모르겠다. 말이 먼저 변한 건지, 마음이 먼저 변한 건지 엄마가 내게 화를 낼수록 엄마가 미웠고 미운 만큼 나도 엄마를 아프게 하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한 달 동안은 전처럼 엄마와 싸우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 싸우게 될까? - P82
"도와주세요.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오기 전에 죽는다면? 경찰에 신고해서 나를 찾았는데 내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면 엄마 아빠의 마음이 어떨까?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거다. 엄마 아빠를 못본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기 싫은 엄마 아빠였는데지금은 아니었다. 보기 싫다는 건 그냥 잠깐 안 보고 싶다는 거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엄마 아빠와 영원히 헤어질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이 뜨거워졌다.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자꾸 후회가 됐다.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다정하게 할 걸 그랬다. 손이라도 한번 잡아 볼걸 그랬다. - P118
혼자 가야 하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여행을 포기하고 자전거에서 내리면 엄마나 아빠 옆에 남아야 한다. 지금까지는엄마 아빠가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은 뭐든지 잘하고 다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달려 보니 엄마 아빠도 나이만많을 뿐 속은 나랑 별로 다르지 않았다. 힘들고 아픈 건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았다. 아이들은 그때그때 아프다고 말하지만 어른들은 병이 날 때까지 꾹 참는 게 다를 뿐이었다. - P143
"엄마, 왜? 어디 아파?" 아직 두 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아프다니 큰일이었다. "어디 아픈데? 자전거 못 타겠어?" 엄마가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엄마의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러넘쳤다. 엄마가 뭐라고 말을 했다. 나한테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잘 들어 보니 혼잣말이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는데………. 서로 도와주고, 칭찬하고, 예쁘다고 하고…………. 손잡고 함께 늙고 싶었는데………. 나도…………. 나도…………!" 엄마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빠와나를 쳐다봤다. 꼭 우리가 엄마를 울린 범인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범인인데 억울했다. 엄마는 몇 년을 참은 것처럼 펑펑 눈물을 흘렸다. 눈물뿐 아니라 콧물까지 코끝에서 길게 늘어졌다. 울다가 한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기도 했다. "여기가 아파 너무 아파." "약사다줄까? 무슨 약사와?"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잠깐 나를 쳐다보고는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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