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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 - 터키를 만나면 세상의 절반이 보인다
이호준 지음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터키 문명전이 열리고 있다. 터키에는 원래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곳에 갔다가 터키가 얼마나 매력적인
나라인지를 깨닫고 언젠가 꼭 터키를 여행할 거라는 다짐을 했다. 벌써 터키사 책도 찾아 읽고 하는 중인데 이 책을 만났고 반가워서
읽어봤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역량있는 작가의 글솜씨가 어우러진 양서일 거라는 기대와 함께.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건 고만고만한 겉핥기 관광이 아닌 날것같은 느낌이 난다는 점이다. 여정 자체가 보여주듯 일반적인 터키 관광
코스와는 다른, 우리가 몰랐던 터키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안 그래도 터키가 우리에게 낯익고 익숙한 나라는 아닌데, 알면 알수록
터키란 나라는 정말 매력적인 나라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가 터키 땅을 밟은 계기부터가 특이하다. 방송사 다큐멘터리 제작팀에 얹혀 상당히 편하게 다녀왔다. 부럽다... 그 덕인지 아니면
기자라는 본분에 맞게 꼼꼼히 이것저것 조사한 덕인지 갖가지 정보와 감상을 책 내내 꾹꾹 눌러담아놓았다. 글솜씨가 상당해서 텍스트가
적지 않은데 지루하지 않게 흡입력이 있다. 문광부 추천교양도서를 쓰고 교과서에도 글이 실린 저력이 드러난다.
여정은 헤로도토스의 고향 보드룸에서 시작된다. 당연히 그리스 어딘가에서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한 헤로도토스가 터키 태생이라니.
터키는 알면 알수록 어딘가 저평가된 비운의 국가라는 생각을 했다. 낯선 '보드룸'이란 도시는 상당한 역사적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고대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어딘가 맘에 들진 않지만 왠지 돌아보게 만드는 타이틀을 지닌 건축물 중 하나인 '마우솔레움'이 그곳에
있었다. 불가사의란 게 그 곳 사람들 기준으로 꼽은 것이긴 하지만 바로 그 근처엔 로도스 섬도 있고 바빌론 공중정원도 멀지 않은 것 등을
보면 터키는 분명 당시 세계문명을 선도하는 리더였음이 틀림없다.
어쨌든 마우솔로스의 영묘라 마우솔레움이란 이름이 생겼는데 이제는 그 자체가 영묘를 뜻하는 단어가 되어 버린 걸 보면 마우솔레움이
얼마나 대단한 건축물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마우솔로스는 왕에 버금가는 봉후로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완성된
그 영묘는 3t짜리 돌 16만 개를 삼킨 높이 46m, 가로 36m, 세로 37m의 거대한 건축물이 되었다.
이런 멋진 건축물과 그것을 품고 있는 도시가 대체 왜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라고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다른 고대 불가사의들처럼
이것 역시 망가져서 현존하지 않는다. 얘는 지진에 의해 무너졌다고. 지진만이라면 후세에 복구가 가능했을 지도 모르는데 이 영묘는
기구한 팔자를 타고났다.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던 기사단이 무너진 잔해를 가져다가 자신들의 성을 쌓는 데 써버렸다. 무덤 주인의
영면을 위해 모였던 돌들은 보드룸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적 가치는 확 떨어지지만 애초에 한 인간의 욕심에 의해 만들어졌던 건축물이
수천 년의 세월을 버티고 서있었을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떤 편이 더 나을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힘들다. 기사단은 관대한
술레이만의 파격적인 조건을 받아들여 그 성을 떠났다고 한다.
다음 행선지는 페티예. 정치외교적 타협 때문에 한순간에 난민이 된 사람들이 살던 유령도시 카야쾨이, 고대 리키아인들의 절벽무덤군
(아민타스 석굴무덤) 등이 위치한 곳이다. 저자는 터키 사람들의 생활과 가이드와의 대화 등도 야무지게 담아놨는데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을 적어놓도록 하겠다.
카쉬로 가면서 마신 에페스 맥주는 저자가 에페스에 대해 소개하게 만든다. 낯선 그 도시에서 성모 마리아가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계시를 통해 발견된 성모마리아의 집도 만날 수가 있다는데 저자가 직접 가보고 소개하는 글은 아니다. 트로이와 에페스가 없는 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다. 어쨌든 터키는 알면알수록 뭔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BC10세기 이오니아인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철학과 문학의 중심지로 한때 인구가 25만에 달했으며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이곳에서 보석과 화장품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서기 53년에는 바울이 우상숭배를 비난하다 쫓겨나기도 했고.
여정은 원조 산타의 고향 뎀레로 이어진다. 터키의 산타는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핀란드와 코카콜라의 산타야말로
남의 것을 베끼고 왜곡한 도적산타다. 어렴풋이만 알고 있던 원조산타 이야기를 책에서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착한 일을 하며
수많은 기적을 행했던 성 니콜라스. 결혼지참금 때문에 고민하는 이웃집 창문과 굴뚝에 금주머니를 던져 넣은 일이나 인육저장고에서
소년들을 되살려낸 기적에서 오늘날 산타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리우스파 성직자를 구타했다 투옥된 중에도 기적을 행했던
그의 영험함은 성 니콜라스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 유해는 도둑맞았지만 제대로 올라가는 계단 뒤의 공간을
한 바퀴 돌며 참회하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전설은 남아있다. 지진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러시아 황제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이후 안탈리아의 박물관 등을 거쳐 아스펜도스의 아폴론신전에서 달랑 5개 서있는 기둥에 물드는 황혼을 감상하며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흔적을 찾아보는 장면이 이 책의 제목이 된 것 같은데 그 제목붙임은 절반의 성공 정도로 평해야할 듯하다. 클레오파트라는
무한한 매력을 지닌 터키와 비교하면 한 가닥의 터럭에 불과하다. 클레오파트라의 발자국을 뒤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 제목은
내용의 매력을 십분 쥐고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녀는 잠시 쉬다 날아갔을 뿐인데.
터키 기행문인데 이스탄불이 없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역시 저자는 다큐멘터리 팀과 떨어져 이스탄불을 방문하는 일탈을 감행한다.
사실 이스탄불에 대한 정보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지만 화려한 샹들리에와 아랍글씨판, 기독교 성화들이 어우러진 성 소피아 성당의
사진은 이 책에서 처음 봤다. 정말 멋있었다. 나도 언젠간 2층 입구의 땀 흘리는 기둥 구멍에 엄지를 넣고 한 바퀴 돌려봐야겠다.
성당 건너편의 예레바탄 지하저수조에서 메두사의 머리도 만나보고 톱카프 궁전을 본 이후엔 그랜드 바자에도 가보고.
터키, 언제쯤 가볼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보며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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