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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에서 <빌린책,산책,버린책>을 봤습니다. 보통 신간은 개가식 자료실에 배치하는데 이 책은 희한하게 서고에 벌써 들어가 있더군요. 나온지 1년도 안 된 책인데요. 근데 맨 뒤에 쓴 글을 봤더니 장정일씨가 국립중앙도서관 사서들이 추천한 책 리스트를 열라 씹었더군요. 국방부 금서 목록보다 못하다란 식으루요.  그래서 이 책을 벌써 서고에 집어넣는 건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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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영지주의를 만났을 때가 아마 중학생이었던 거 같은데,정신세계사에서 나온 <성서밖의 예수> 라는 책이었습니다. 지은이가 일레인 페이절이었지요. 어린 마음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영지주의를 최근 다시 만났습니다. 티모시프리크,피터갠디의 <예수는 신화다> 입니다. 전 몰랐는데 이 책, 상당히 유명한 책이더군요. <신 벗어던지기>,<종교는 구라다>에서 한결같이 2002년 한기총이 이 책을 절판시킨 사건을 예로 들더군요, 이후 티모시 프리크는 무슨 운동을 하는 거 같기도 하구요(웃고 있는 예수라는 책에 나옵니다, 리처드 도킨스도 자기 이름으로 사이트 운영하면서 뭘 하는 거 같은데 이런 것도 무슨 유행이 있는 걸까요?)   

영지주의는 분파가 엄청 많았다는데 집단 성교의식을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맹성렬,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 이들의 특징은 성서를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개인의 해탈 이런건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불교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교회라는 조직에 반대하고 표층과 심층의 미스테리아로 나누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신에 대해 공격이 이루어지는 지금 "영지주의적"인 경향은 종교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적 논증"이라는 칼을 들이댄다면 아무래도 유신론 쪽이 밀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겠죠. 카렌 암스트롱의 "신을 위한 변론" 에 오강남교수님이 심층의 종교와 표층의 종교라는 말을 쓰는 데요 묘하게도 예수는 신화다의 미스테리아 분류와 비스끄레 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법정스님말씀 중에 무엇을 숭배하는게 종교인이 아니라 매순간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사람이 종교인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정확한 원문이 아니라 죄송) 절이나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마음 속에 있는 절이나 교회에 가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도 나오죠.. 이것도 티모시프리크가 보면 "영지주의적" 이라고 했을 겁니다.... 

이런 흐름과 동류라고 느낌이 드는 사람이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입니다. 캠벨은 수녀 한명을 환속시키면서 저 위의 "노인네 한테 한 방 먹인적" 도 있지요...캠벨에게는 아마 창세기가 신화로 보일 테죠...  

여기서 한번 더 보아야 할 부분은 종교와 심리학과의 관계입니다. 물론 "영지주의적 경향"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영지주의가 외부적인 신보다는 내부적인 침잠으로 기울어진다고 가정한다면 그런 면에서 심리학과의 접점이 있을 수 있겠지요. 여기서 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아마도 칼 융 정도일 거 같습니다.  

사실 "예수는 신화다"의 주장은 뿌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는지 지극히 의심스러운.."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예수는 훌륭하지만, 그건 소크라테스나 부처가 다 한 말이라는 주장도 묘하게 "웃고 있는 예수"에 비슷하게 나옵니다. 

9.11테러 이후 미국엔 근본주의가 퍼지고 영국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무신론의 뿌리는 영국의 옥스브리지인지도 모릅니다. 도킨스도 옥스포드 출신이죠. 버트런드 러셀은 케임브리지 출신입니다. 거기서 도킨스는 옛날 마광수 교수처럼 그냥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죠... 

"모든 건 사탄의 음모야"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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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어만의 책 "성경 왜곡의 역사","예수 왜곡의 역사" 를 한마디로 줄인다면 성경은 인간의 책이고. 기독교는 인간이 만든 종교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 예수에 대한 종교라는 것이죠. 본인은 골수 기독교 신자에서 불가지론자로 선회했다고 합니다. 성경왜곡의 역사나 예수 왜곡의 역사에서 역사비평을 옹호하고, 성서필사에 관한 사실이 기독교 신앙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애기하지만, 역시 신앙을 버릴 수 있는 조건은 마련해 주는 것이겠죠. 에타린네만이라는 분이 역사비평에 한마디 하셨더군요, 축자영감설을 믿는 분이십니다. 학자들이 학문이 아니라 설교를 했다고 평했다는데 저도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신을 옹호하는 분들을 보면 결론이 전제로 가 있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바트 어만의 책 중에 자신이 왜 신앙을 버렸는 가에 대한 god's problem 이란 책도 있는데 아직 국내출판이 되질 않았군요. 로자도 이책을 언급했는데 2009년 출간 예정이었던거 같은데 아직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꼭 보고 싶은 책 중 하나인데요.  

여튼 재미있는 것은 바트 어만이 브루스 메츠거라는 분의 제자라는 겁니다. 사본학의 거장이라고 하는데 제가 이 이름을 본게 "예수는 역사다"라는 기독교 책이었습니다. 거기서 브루스 메츠거 박사는 성서의 확실성을 들면서 믿음의 확고함에 대해서 애기합니다. 스승님은 독실한 신앙인인데 그 제자는 불가지론자로 선행한다는 것도 재밌네요. 물론 제자가 그 한 명 뿐이냐고 할 말은 없지 만요.  재미있는 것은 같은 사실이나 현상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메츠거 박사는 성서가 기타의 고대문서에 비해 필사본도 많고 거의 동시대에 기록되었다는 점에 대해 강조합니다. 반면 바트 어만에게는 성서가 예수 이후 몇십년내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구전되던 성서가 기록되는 과정을 고찰하면서 오히려 불확실성을 고찰합니다. 필사본이 많다는 것이 브루스 메츠거박사에게는 성서의 권위를 보장해주는 것임에 반면 바트 어만은  필사본의 숫자보다는 필사자들이 성경에 덧붙이는 이문에 대해 고찰합니다. 성서가 확정되는데 300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메츠거에게는 초기 교회의 신중함을 의미하는 반면 바트어만에게는 성경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반증입니다. 결국 "스텐스" 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지도 모릅니다. "종교는 구라다" 는 책에서는 "확증편향"이라는 말을 쓰더군요... 

 어쨌든  이어령씨가 최근에 신앙인이 되었더군요.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책을 보면 결국 인간은 한계를 느낄 때 신앙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항해서 바트어만의 god's problem 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누가 출간 안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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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 2017-03-17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god‘s problem 은 이화인 선생님이 2016년 12월에 번역해 갈라파고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공통점은?  아마도 "인과율 찾기"가 아닐까요?   과학은 "모형"을 만들고 "합리성"을 바탕으로 인과율을 찾는 것이고 종교는 절대자나 "보이지 않는 것" 을 통해서 인과율을 찾으려고 하구요... 이런 인과율 찾기는 결국엔 "의미찾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의미와 원인찾기의 3종세트 영화가 있습니다.. 

  

먼저... 싸인..(멜 깁슨, 나이트 샤말란 감독) 입니다... 영화에서 멜 깁슨은 목사였다가 아내가 죽은 후 목사를 그만 둔 사람으로 나옵니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남긴 말이 죽기 전의 아내의 헛소리로 생각하고 의미없음을 느끼고 목사를 그 만 둔 거지요.. 하지만, 외계인이 등장하고 외계인과의 대결에서 아내의 말에서 힌트를 찾아냅니다. 죽기 전에 한 말은 헛소리가 아니라 외계인을 퇴치하는 방법이었던 것이죠.. 영화의 마지막은 멜 깁슨이 다시 목사가 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스타를 쓴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보고 나면 묘한 느낌이 드는 영화입니다. 무의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그것은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더 큰 계획의 일부였던 것이죠...   

둘째는... 시리어스맨(코언형제 감독)입니다... 영화 속에서 갑자기 곤란에 빠진 주인공이 이 고난의 의미와 원인을 몰라 머릴 쥐어 뜯습니다. "지혜의 샘" 랍비를 찾아가 상담을 하지만 랍비들은 그야말로 선문답을 늘어 놓습니다.(주차장을 봐요 래리~~)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아무도 알 수없다"라는 말은 영화 내내 화두처럼 등장합니다.하지만, 랍비가 결국 할 수있는 말도 "착하게 살아라" 정도 입니다. 의미를 알지 못해 끙끙대던 래리는 마지막으로 악행을 행하는 순간 "신의 철퇴"를  맞습니다. 혼돈 속에서도 갑자기 신의 뜻이 내린 거라고나 할까요.. 영화를 보다 보면 혹시 코언 형제가 유대인에게 반감을 가진 게 아닐까 하는 장면도 있어요.. 성조기가 태풍에 흔들리는 장면입니다..여튼 의미없는 고통에 래리가 괴로와 하다가 결국 한 방을 맞는 마지막은 연극의 대단원하고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신의 뜻이 대체 있다는 것인지,없다는 것인지?...더불어 유대 경전에 백그라운드로 흐르는 음악이 인상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계보의 영화의 백미는 밀양(이창동 감독) 입니다. "햇빛 한조각에도 신의 뜻이 있는가" 라고 묻는 영화이죠.. 신애가 "살려주세요"하고 흐느끼는 장면은 구원을 바라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한없이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인거죠... 그래도 적어도 신애는 신에게 대항을 했으니 신을 부정한 건 아니군요.. 어쨌든 인간은 신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존재인 거 같습니다. 마지막 신애의 옆자릴 비추던 햇살처럼 말이죠..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도킨스 부터 카렌 암스트롱까지 여전히 이 부문은 백가쟁명 같습니다. 신은 없으니 "두려움없이 직시하겠다"(버트랜드 러셀,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라는 사람도 있고  "신을 왜 존재차원에서만 사유하느냐,도킨스는 종교의 일부만 보고 있다"(카렌 암스트롱,신을 위한 변론) 같은 주장도 있습니다-그러고 보니 러셀의 주장은 불교의 주장과 비슷하네요- "차라리 어둠을 보고 어른이 되자"(줄리언 바기니,무신론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장도 있고 "무신론자는 있어도 비종교인은 없다"(종교는 구라다, 송상호) 애기도 있습니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누구도 확신하지는 못하지 않을까요.. 물론 종교인은 제외입니다.. "논증"이란 차원에서 말이지요...  

결국 종교도 과학도 의미찾기일텐데...  어떻습니까.. 의미찾기 3종세트 영화... 

사족: 근데 인과율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결국 아무도 인과율을 모르는 거 아닐까요?  과학도 역시 "신앙"이라고 애기 되고 있고, 종교는 도킨스 이하 등등에 의해 공격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인과율을 모른다고 하면(어떤 의미에서의 불가지론)... 인간은 살아가기가 매우 곤란해 질 겁니다. 하루키의 일큐팔사에서 다마루가 말했듯이 인간은 패턴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이럴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 펼쳐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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