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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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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현모양처의 대명사며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우상이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 예술가다. 여성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 나는 예술가로서의 그녀를 소설로 그려내고 싶었다. 그녀에게 빙의된 듯 나는 몰아치듯 열정적으로 초고를 마치고 출판사에 넘겼다. 그러나 출판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여타의 의견과 우려의 분위기로 나는 원고를 거둬들이고야 말았다. 어쨌거나 그녀는 우상이니까. 결국 그녀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고 조선의 여성 예술가로 살다간 여인의 이야기로 출판했다. 그것이 그녀에게도 내게도 미안하고 떳떳하지 못했는데, 개정판을 내면서 초고대로 책을 내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도 되찾아주게 되었다. 사임당. 온기와 숨결과 눈물을 가진, 우상이 아닌 한 인간을 나는 호명하고 싶었다. - '개정판을 내며' 중에서

 

 

신사임당, 조선의 여성 예술가

 

밤마다 달을 향해 비는 이 마음 夜夜祈向月
살아생전 한 번 뵐 수 있기를 願得見生前

 

이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친시思親詩다. 하지만 사임당이 지었다는 전문全文이 전하지 않고 두 구만 남은 '낙구落句'라는 불완전한 시를 읽자마자, 작가는 '만약 이 시에서 사임당이 이토록 그리워하는 이가 어머니가 아니라면?' 이라는 상상이 발동하면서 이 소설은 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 완성했던 <붉은 비단보>에는 사임당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상으로서의 사임당을 온기와 숨결과 눈물을 가진 한 인간으로 그려내고 싶다는 의지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그녀의 이름을 되찾아주게 되었다. 현모양처의 대명사 '사임당', 작가는 어긋난 사랑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훌륭한 어머니, 아내, 딸로서의 삶을 온전히 지켜온 조선의 한 여성을 오늘의 시간대로 다시 호출한다.

 

열정과 광기, 그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그려내려던 작가는 작품 안에 조선의 대표적 여성 예술가인 신사임당의 외면적 생의 조건들을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당시엔 '끼'라고 치부되어 인정받지 못했던, 예술가적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사임당은 아들을 낳고 싶은 부모의 염원이 담긴 아명兒名 '개남開男'이란 이름을 거부하고, 자아의 완벽한 주인이 되고자 스스로의 이름을 '항아恒我'라고 작명한다. 

 

작가 권지혜 1997년에 등단,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꽃게 무덤>, <퍼즐>,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전2권), <4월의 물고기>, <유혹>(전5권), 그림소설집 <사랑하거나 미치거나>, <반 고흐, 서른일곱에 별이 된 남자>, 산문집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해피 홀릭> 등의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 <꽃게 무덤>으로 200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여자를, 누구나 안다고 말한다. 근엄하고 현숙한 표정으로 낡은 초상화 속에 들어앉은 여자, 케케묵은 신화 속에 박제된 여자,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 여자. 권지예가 그 여자를 여기, 불러냈다. 그런데 놀랍다. 꽁꽁 처매었던 붉은 비단보를 펼치고 들여다본 그 여자의 속살은 전혀 완벽하지 않다. 사랑하고 욕망하며, 좌절하고 신음한다. 때론 가슴으로 철철 피눈물도 흘린다. 작가는 위무하듯 그녀의 영혼을 가만가만 어루만진다. 이제 누가 물어보면 나는 천천히 말할 수 있다. 그 여자, 나도 조금 알아요. 부족하고 불완전했던 여자, 절박하리만치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었던 여자, 눈물 글썽인 채로 웃고 있던 그 여자, 살아 숨 쉬는 진짜 인간이었어요. - 정이현, 소설가

 

 

소설의 시작은 사임당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수운판관水運判官직을 맡은 아버지를 따라나선  율곡 이와 그의 맏형 선이 한 달이라는 기간의 조운漕運을 마치고 귀가하자 대문은 상중임을 알리고 있었다. 오늘 새벽, 동이 틀 무렵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큰 누이 매창의 말로는 병석에 들어 사흘 째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한편, 율곡 이는 평소 남몰래 어머니가 간직해왔던 붉은 비단 보따리가 떠올랐지만 집 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그는 출타 중인 어머니의 문갑을 열고 비단보를 열어본 적이 있었다. 그 속엔 한번도 본 적이 없던 한 남자의 초상화가 여러 점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집안 인물이 아니었다. 남자의 초상화는 도화서의 화원畵員이 아닌 이상 양반가의 아녀자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리고 두 나무가 엉켜 있는 묘한 산수화 한 점, 두 젊은 남녀가 쌍그네를 타고 있는 그림 등도 있었다. 

 

율곡 이는 졸지에 임종도 보지 못한 채 슬픔 속에서 장사를 치르고 조석으로 영위에 정성을 다해 문안을 올렸다. 지고 난 뒤에 더 깊고 짙은 향기를 남기는 꽃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가 아닐까. 그는 벌써부터 어머니가 그리웠다. 하지만 '그 붉은 비단보가 함부로 펼쳐진다면?' 이란 생각이 문득 들 때면 그는 가슴이 뛰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를 반드시 찾아야 했다. "어머니,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는 어머니의 혼을 애타게 부른다.

 

일곱 남매 중 어느 누구도 성혼成婚하지 못한 처지에 집안의 기둥을 잃었으니 온 식구가 마치 어미 잃은 강아지처럼 비칠댔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눈이 맞은 안주인을 찾아 주막집을 들락거렸다. 어느 날, 삼경도 지난 시각에 율곡 이는 누이 매창을 찾아 어머니의 유품에 대해 물었다. 이때 매창은 열흘 전에 어머니가 푸른 함을 맡겼다는 말과 함께 생전에 어머니가 그린 초충도草蟲圖, 화조도花鳥圖, 화초어죽花草魚竹, 글씨들, 자수 놓은 비단 천 등이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매창은 어머니가 쓰러진 날 붉은 비단보를 보았고, 이를 함구하기로 결심했다. 이는 어머니 생의 그림자였고, 선혈 같은 생생한 고통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규보의 시, <절화행折花行>

 

 

이후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양 정대감의 첩의 자식 준서와 초롱 두 남매를 등장시킨다. 당시 반상과 신분의 차가 분명했던 시절이라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가공해낸다. 즉 사임당과 동갑인 초롱의 오라버니 준서俊瑞는 학문과 서화, 그리고 예藝에 뛰어난 자질을 지녔기에 예술적 소양을 두루 갖춘 사임당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하지만 둘은 신분의 격차를 초월하지 못하고 생이별하고 만다. 작가는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가 바로 이들의 사랑 정표임을 시사한다.   

 

기름 먹인 종이로 만든 까치연. 창공을 날다가 사임당 집 검은 대나무 숲에 와 깃든 까치연은 해가 바뀌어도 아직 그대로 있다. 대나무 우듬지에 실이 엉킨 채로 팔락거리고 있었다. 그걸 볼 때마다 사임당의 가슴도 새가슴처럼 팔락거렸다. 희고 고른 잇속을 보이며 웃던 얼굴이 해맑은 사내아이. 그럼에도, "그럼 그놈 그냥 거기 살게 놔두거라, 내 허락 없이는 내려놓지 말고", 배포도 좋게 어른스레 말하던 아이. 그 사내는 바로 까치연의 주인 준서, 당시 딸만 다섯이던 때라 두 살 많은 그가 사임당에겐 믿음직한 오라버니로 보였다. 그런데, 그가 기생 첩의 자식이라는 거다.

준서의 여동생 초롱은 사임당과 동갑으로 활달한 성격 탓에 금방 사임당과 친해졌다.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탓인지 초롱은 춤을 멋지게 추는 재주를 지녔다. 이에 사임당은 날렵하게 춤을 추는 초롱의 몸에 빠져들면서도 마음이 베인 듯 초롱이 애틋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젠가 "춤추는 게 그렇게 좋니?"라고 묻자 초롱이 꿈꾸듯 말했다. "춤출 때만 내가, 내 몸이 기쁘게 살아 있는 것 같아" 이 답을 듣고 사임당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도 그런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림을 그릴 때면 그런 기분이었다. 


사임당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아련하게 땀 냄새가 났다. 동무 가연의 독선생에게 글을 배우고 동짓달 말미의 차갑고 시린 햇빛을 받으며 홀로 걸어서 겁없이 귀가하던 중 산길에서 한 쌍의 꿩을 발견하고 화폭에 담고자 그 자태와 색에 흠뻑 빠져 관찰하느라 맹수가 다가오는 것조차 몰랐다. 갑자기 두 눈에 파란 불을 이글거리는 산짐승을 만나 위기일발인 상황일 때 준서가 활을 쏘아 그녀를 극적으로 구출해주었다. 굶주린 늑대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사임당에게 준서는 생명의 은인이라면서 자신의 청을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준서의 말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닌 엉뚱한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숲은 이미 너무 어두워 무섭기만 했다. 한 지점에 도착에 말을 세웠다. 그리고는 사임당을 말에서 내렸다. 한 나무를 보라고 가리켰다. 연리지連理枝였다. 그는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사임당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텅 빈 가슴에 무언가 허기처럼 밀려왔다. 그리웠다. 벌써 그리웠다. 뜨거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준서가 잡았던 왼손을 들어 사임당은 왼쪽 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마치 그 손이 준서의 손이라도 되는 양 눈을 감고 볼을 맡겼다. 그 손은 볼을 거쳐 어깨를 쓰다듬었다. 포근하다. 뭔가 힐링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치마를 벗었다. 옥색 비단 치마엔 늑대의 피가 튀어 검붉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치마를 활짝 펼쳤다. 그곳에 붉은 물감을 듬뿍 칠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만발한 모란 꽃송이들이 옥색 치마 위에 붉게 붉게 피어나고 있었다. 준서와의 인연을 오래토록 간직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날은 참으로 음산하고

우르릉 우렛소리 들려오네.

깨어 앉아 잠은 안 오고

생각하자니 그리움 깊어.

 

이는 예전에 준서가 처음으로 자신의 그리움을 담아 사임당에게 보냈던 시다. 이제 그는 이룰 수 없는 사랑임을 깨달은 탓인지 금강산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차가운 가을비 소리가 마치 그의 거문고 연주 소리처럼 들리면서 그녀의 귓속까지 뜨겁게 달구고 간지럽혔다. 준서의 목소리가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아아, 이제 환청까지 들린다.

 

이대로 어찌 평생을 산단 말인가. 이 꽉 막힌 수틀이 웬 말이고, 고상연한 그림은 다 무어고, 금수 같은 마음으로 글은 읽어 무엇하나. 그것들을 하면 내가 행복하다고? 진정 마음을 도려낸 채 그 텅 빈 예藝는 무엇이고, 가증스런 예와 학문은 또 무엇인가. 모두 부질없다. 차라리 짐승처럼 살 거야. 사임당은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거라고 작심하고 왼손에 가위를 들고서 오른손 손등에 힘껏 찍어 눌렀다. 

사임당은 댕기머리를 풀었다. 준서가 그녀의 머리칼 속을 뒤져 가는 수실 묶음만큼 잘라냈다. 그녀는 두 사람의 가늘고 긴 머리 타래를 아직 낫지 않은 손으로 매듭을 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복주머니나 노리개 장식을 위해 귀도래 매듭이나 나비 매듭을 지어보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동심결同心結 매듭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동심결이 완성되었다. 머리칼로 만든 동심결이 십자 모양으로 야무지고 단단하게 잘 만들어졌다. 준서의 얼굴에 감동이 서렸다. 먼 길을 떠나는 그에게 전하는 정표인 셈이다.

 

 

 

 


사임당은 고이 간직해둔 열쇠를 꺼내 장롱의 깊은 곳을 열어 붉은 비단 보자기로 싼 함을 꺼냈다. 잠깐 주위를 살폈다. 매창이 동생들을 데리고 외출해서 집 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이 붉은 비단 보자기를 몇 번 열어보지는 않았다. 가슴 아픈 추억들이 보자기를 풀면 독사처럼 튀어나와 물고 놔주질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두려운 세월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독사의 독도 치료할 만큼 내성이 강한 약이었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재주 많고 총명하고 속도 깊은 신씨가의 둘째 딸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지. 남편과 시어머니 거스르지 않고 여자로서의 삶에 순응하며 일곱 자식 키우며 힘든 세월도 보냈지. 최연소 장원급제자의 어머니라며 아들 가진 여자들이 모두 부러워했지.

 

남들은 모를 것이다. 그녀의 삶이 아무런 고통 없이 갈등도 없이 순하게 이어져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의 삶에 치를 떨면서도 유능제강柔能制剛이란 단어를 새기면서 살아왔다. 부드러움이 결국 강함을 이긴다. 그녀는 삶을 껴안기 위해 구부러졌다. 엄나무 연리목처럼 구부러지고 휘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숯 더미에 낡은 옥색 치맛자락을 얹었다. 불꽃은 배고픈 짐승의 혀처럼 날름날름 비단 치마를 잘도 먹었다. 머리카락이 타는 듯, 살이 타는 듯한 비단 타는 냄새가 역하게 풍겨 왔다. 그 냄새가 너무 역하다 싶을 때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솟았다. 불이 붙은 치마를 끌어다 입을 막았다. 선지 같은 붉은 핏덩어리가 치마에 쏟아졌다. 각혈이었다.

 

 

우의정댁 작은 마님, 그녀는 바로 사임당의 친구이자 죽은 준서의 여동생 초롱이다. 오라비의 유품인 누더기를 매수한 옥졸로부터 전달받았는데, 저고리 소매 안 겨드랑이 쪽에 꿰매어 품에 지녔던 물건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바로 동심결 매듭이었다. 이를 사임당에게 전달하면 당연히 눈물을 흘릴 것이고 오히려 복수하는 기분이 들 것으로 여겼다는 게 초롱의 말이었다.   

매창은 초롱이 다녀간 후 어머니 사임당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푸른 비단보에 싸인 그림함은 매창에게 전달되었고, 타다 만 붉은 비단보의 그림은 어머니의 단심丹心이었다. 아니 어머니 이전의 한 여인의 마음이었다. 그 붉은 비단보 안의 그림을 볼 때면 매창은 한없이 자유로움을 느꼈다. 비록 여인으로서 삶이 갇혀 있더라도 화폭에서는 한없이 자신의 삶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위안과 희망이었다. 양식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경을 그린 것도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강릉 선교장 

 

 

마흔여덟 해를 살다 간 항아의 예술적 향취를 찾아서

 

결국 예술가란 작품으로 남는 사람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예술가는 생에 함몰되지 말아야 하며 어떡하든 작품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어쩌면 영원한 예술가의 존재는 자신만의 '붉은 비단보' 안에 갇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소설 속에서 내가 툭, 던져놓은 '붉은 비단보'를 열어 그녀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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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자수 수업, 일상을 수놓다 꽃 자수 수업 시리즈
이연희 지음 / 나무수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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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는 야생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양 꽃을 우리 자수법으로 수놓았답니다. 다채로운 소품 활용 사진과 자수로 꾸민 집 안의 인테리어 모습도 함께 실었지요. 이 책을 보고 예쁜 자수를 수놓고 소품으로 만들어 나만의 소중한 공간을 꾸며보세요. - '프롤로그' 중에서

 

 

망설이지 말고 지금 시작하라

 

<꽃 자수 수업>은 우리나라의 산야山野에서 피어나는 야생화를 전통 자수법으로 수놓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 2014년 출간 이후 자수책 중 가장 많이 판매된 베스트셀러이자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 도서다. 기존 자수책에서 볼 수 없던 실물 크기의 채색 도안을 함께 싣고 자수의 전 과정을 사진으로 상세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미 초보자들에겐 '자수 교과서'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나 쉽게 책으로 자수를 배울 수 있게 되면서, 취미로서의 자수 열풍을 만들었다.

 

이에 힘입어 두 번째 책, <꽃 자수 수업, 일상을 수놓다>를 출간했다. 이번에는 야생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양 꽃을 수록해 자수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고 집 안의 공간별로 어울리는 소품을 만들 수 있도록 다채로운 자수 활용 사진을 실었다. 이번에도 저자가 직접 꽃을 관찰하며 그린 아름다운 채색 도안을 수록하여 꽃의 색감을 보며 수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도안에 원단을 덧댄 후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실물 크기의 선 도안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책의 저자 이연희는 우연한 기회에 만난 전통 자수 책 한 권 때문에 자수의 세계로 입문했다. 꽃이 좋고 자수가 좋아 7년이라는 시간을 야생화 자수에 푹 빠져 지내왔다. 독학으로 자수를 시작했을 때 참고할 자료가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탓에 온라인상에서 수수秀手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자수 알리기에 노력해왔다.

 

초심자의 눈높이에 알맞는 친절한 자수 강의는 큰 인기를 모았고 현재는 그녀의 작업실 수수공방에서 다양한 야생화 자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의 방법으로 우리 꽃을 피워내는 자수 작가로 활동하며 섬세하고 다양한 야생화 자수를 더 많은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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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 탁재형 여행 산문집
탁재형 지음 / 김영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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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비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비를 어딘가에서 오도카니 피할 시간도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신나게 맞고 신발을 철벅이며 깔깔거릴 마음의 여유도 가지기 힘들었던 시간이 싫었던 것이다. 여행 도중에,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비를 맞아도 괜찮은 여행이면 좋겠다.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당신과 만나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 '프롤로그' 중에서

 

 

탁PD의 여행 수다

 

저자는 자신의 여행 수다를 가감 없이 써내려갔다. 아수라가 벌어진 현장에서 혼자 유유히 들이켠 맥주의 진한 맛, 베네수엘라의 골목골목에서 마주한 이방인을 향한 비웃음과 그로 인한 설움, 앞을 향해 집중해서 달리기만 하면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 오토바이의 진정한 자유 등 그의 기억에, 가슴에 차곡차곡 들어찬 그 수많은 성분들은 분명, 아프지만 빛나는 순간들이었다.

 
우리들의 여행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지난 여행의 감회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면서 만들어내는 그리움과 설렘 때문에 우리는 또 다시 길 위에 오른다. 그리고 또 다시 가슴 한켠에 쌓이는 성분들을 지지대 삼아 우리는 또 일상으로 돌아가 아무 일 없든 것처럼 살아간다.

 

저자 탁재형 PD는 2002년 <KBS 월드넷>을 시작으로 <도전! 지구탐험대>, <세계테마기행>, <EBS 다큐프라임 - 안데스> 등 해외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던 여행 저널리스트이다. 2013년 팟캐스트의 백가쟁명기에 <딴지일보 - 나는 딴따라다>의 게스트로 참여해 호응을 얻은 이후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다.

 

 

기록되지 않은 여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같은 나이의 두 사람 중 더 긴 시간을 살아온 사람은 누구일까.
더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닐까.
기억이 사라진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억에 없는 여행이, 거기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첩을 덮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가봤지만 기억나지 않는 장소들을 떠올린다.
만났지만 희미해져버린 사람들을 생각한다.
기록되지 않아 존재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p.40)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 위치한 한 여행자 숙소에서 랄프를 만났다. 그는 멋대로 자란 금발머리와 짧은 수염, 목이 약간 늘어난 티셔츠와 자동차 기름이 묻어 있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말라위는 아프리카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를 품고 있는 나라임에도 <론리 플래닛>영문판에서조차 이 나라에 대한 여행 정보를 찾아보기 힘들다. 1965년, 우리나라와 국교를 체결한 나라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다만 분명했던 것은,

아직 만나지 못한 아프리카를 좀 더 돌아다녀보고 싶다는 사실이었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탁PD는 묘한 부조화를 깨달았다. 그의 말투에만 귀를 기울이면, 안에 담겨 있는 좌절과 오기와 결단과 고난이 절대로 그에 합당한 무게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맥주가 떨어져서 근처 마트로 차를 몰고 갔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의 말투는 시종 차분하고 담담했다.

 

 


이야기가 불러오는 기억과,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에 대해 나라면 그토록 초연할 수 있었을까. 자랑하고 싶은 부분과 강조하고 싶은 부분, 감추고 싶은 부분이 분명 있을 텐데, 그런 기복 없이 지난 일을 그렇게 툭툭 던져놓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랄프를 이해할 수 있다. 본디 그런 것이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어떤 것을 한다는 것은.

그 길을 지나온 사람들의 말투는 대체로 나직하고, 담담하다. 자신이 이룬 말도 안 되는 성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시종일관 무덤덤하다. 그 길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를 생각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겐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고 필연적인 귀결이었기 때문에. 

 

 

크레타 사람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곳 크레타 출신이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그리스인'은 바로 크레타 사람이다. 이들은 그리스 본토인과 달리 곱슬머리와 수염, 풍성한 눈썹과 진한 눈매를 가진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가 그들의 핏속에 함께 교차하고 있다. 삶에 풍파가 많은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크레타 사람들은 이중적이다.

 

우리는 조르바를 희대의 한량, 무대책의 낭만주의자로 기억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는 소설 속의 조건을 제공하는 사람일 뿐,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목재를 하산하는 장치를 개발하고 마는 강력한 추진력의 소유자이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만큼이나,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실현함에 있어서 조르바는 열정적이다.

 

이곳에서 만난 어부 니키타스는 생계를 이어간다는 것에 대해 도통 흥미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삶을 최대한 밀고 나가는 중이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할 집을 가지고 싶다. 돈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온다. 그래서 집을 천천히 짓는다. 철저하게 자기가 설정한, 자기만의 속도에 맞춰서 그는 앞으로 나아간다.

 

자기의 주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결국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자신을 위해 얼마큼의 시간을 어떤 속도로 쓸 것인지 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집을 짓고 있었던 20년 동안, 그는 미다스 왕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새벽 바다에 나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그물을 드리우는 시간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도약을 꿈꾼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더 높은 곳을 향해 뛰어올라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래를 향한 도약이다.
놓을 수 있는가.
아래를 보지 않을 수 있는가.
한 걸음 앞으로, 허공을 향해 내디딜 수 있는가.

(/ p.94)

 

 

마추픽추

 

 

울루루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 울루루는 넓은 호주 땅에 위치한다. 높이 348미터, ㄷㄹ레는 9,4킬로미터란다. 마추픽추와 쌍벽을 이루는 불가사의한 곳으로 묘사된다. <소년중앙>과 <어깨동무>에 수차례 등장하여 80년대 소년들의 가슴에 이국적인 풍광에 대한 로망의 불을 댕겨준 바위이다.

 

"드.디.어.여.기.에.왔.구.나."

 

해외전문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가진 유일하게 좋은 점은 잡지나 인터넷에서 본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실제로 이곳을 가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점이다. 반면에 나쁜 점은 그 장소가 주는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프로듀서의 존재 이유는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여행하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비는 멈추지 않을 거잖아.
어차피 길은 변하지 않을 거잖아.

오늘 저녁, 온 힘을 다해 한 잔의 무스탕 커피를 마시는 게 왜 간사해.
온 힘을 다해 즐거운 생각을 하는 게 어디야.
온 힘을 다해 지금 이 순간, 내 안의 행복을 끌어 모으는 게 뭐가 어때.

뜨겁고, 진하고, 달콤한,
한 잔의 행복을 마시는 게
뭐가 어디가 어때서 그래.

비 따위, 돌멩이 따위, 엉겅퀴 따위.
거머리 따위.
어차피 없어지지도 않을 거면서

(p.129)

 

 

소금사막

 

 

불량 탈것 예찬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바퀴 두 개 달린 탈것은 저자에게 지혜를 가르쳐준 동시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들을 선사해주었다. 강화도의 굽이치는 산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한 몸이 되어 달린 장소였고, 지리산 오도재의 가파른 코너 길은 겸손과 용기를 배우는 도량이었다. 제주 중산간의 1100도로에서 그는, 바람에도 맛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해남 우수영으로 향하는 새벽의 18번 국도 위에서, 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그는 혼자 소리를 질렀다. 모든 세포는 깨어나 바람을 맞고 있었고,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이렇게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하면, 쓰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멋졌다. 바로 다음 코너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가 코앞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 기쁨을 알게 된 이후로는, 삶의 복잡도가 증가할 때마다 안장 위에 오르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기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아니, 올라야 했다.

 

 

 그저 풍경 속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내딛기만 하면 돼.

 

 

여행이란 그물을 드리우는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결국, 그물을 드리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거기엔 반드시, 무엇이든 걸려 있기 마련이다. 그물을 쳐놓은 걸 잊어버려도 상관없다. 그러나 한 번씩 그 그물 친 곳으로 가서 뭐가 걸렸는지 보는 일은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엔 어디에 그물을 쳐야 하는지 알 수 있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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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오정환 지음 / 호이테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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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가히 설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봐도 설득은 생사와 승 패를 결정짓는 최고의 지략이자 핵심 기술이었다. 시대가 지났다고 설득의 효용성이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설득은 복잡다단해지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삶은 물론 비즈니스를 지배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설득은 일방적이 것이 아니라 쌍방향이다. 내 맘대로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말로 설득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귀담아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마음이 맞고 손발이 맞아야 설득이 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이 책은 사기, 전국책, 한비자 등 동양 고전을 통해 춘추 5패와 전국 7웅이 치열한 약육강식의 각축전을 벌이던 생생한 현장에서 설득이 한 개인과 조직, 국가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역사적 장면을 통해 설득의 원리, 사람의 마음을 얻고 움직이는 원리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신뢰 얻기
신뢰는 설득의 바탕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믿을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그 사람의 평소 행동으로 가늠할 수 있다. 설득을 하려면 반드시 상대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상대의 상황, 문제, 욕구 파악하기
이것은 설득을 위한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문제가 무엇인지 알수 있고, 문제를 알아야 상대의 욕구나 필요 혹은 불만족 등을 찾아낼 수 있다.

위기와 손해 강조하기
행동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익보다 손해에 더 민감하다고 한다. 이익보다 손실을 더 강하게 평가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를 설득할 때 손해나 위기를 강조하면 설득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해결책과 이익(혜택) 제시하기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 보다는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 방법 을 제시한다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책의 저자 오정환은 미래경영연구원 원장으로 세일즈 기법, 영업 조직 관리, 리크루팅, 동기부여, 리더십, 자기계발 분야의 인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다. 저서로는 <영업, 질문으로 승부하라>, <성공, 질문으로 승부하라>, <세일즈 멘토링>, <한 번 더 세일즈>, <내 인생 최고의 버킷 리스트, 책쓰기다>, <세일즈, 심리학에서 답을 찾다> 등이 있다.

 

 

 

설득은 왜 필요한가?

 

설득이란 남을 속여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설득은 정당한 방법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익이 아니라 설득하는 사람이나 상대방 모두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설득은 예로부터 정치 분야든 비즈니스 분야든 간에 유용한 기술로 인식되어 왔다. 설득할 수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더가 조직원을 설득할 수 없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조직원이 리더를 설득할 수 없다면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리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설득에 관한 지식과 기술은 대대로 전승되어 왔다.

 


설득은 상대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사기를 높여 준다. 또한 비전을 심어 주거나 격려와 영감을 주기도 한다. 상대방을 설득할 때는 일대일로 마주 앉아 차분히 할 경우도 있고, 적게는 몇 명에서부터 많게는 수백, 수천 명을 상대로 연설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세일즈맨은 고객을, 부모는 자녀를 설득할 수 있고, 광고는 소비자를, 성직자는 신도들을 설득할 수 있다.

 

 

신뢰를 얻는 방법

 

선심善心

인정認定

관용寬容

신의信義

겸손謙遜

희생犧牲

공감共感

 

박해용<역사에서 발견한 CEO 언어의 힘>이라는 책에는 유연성이 돋보이는 간디 이야기가 나온다. 비폭력 저항운동을 시도하여 마침내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는 정치적 독립 못지않게 경제적 독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섬유 생산을 자급자족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당시 인도는 대부분 영국에서 들어오는 면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간디는 이러한 경제적 종속이 계속되는 한 진정한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어느 날 간디가 면섬유의 자급자족을 강조하고 있는데,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답답한 소리는 그만 집어치우고 차라리 스스로 목이나 매시오!" 그러자 간디는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자신에 대한 비난을 유머로 받아치는 유연성이 돋보인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선 우리가 목을 매는 데 필요한 끈을 생산한 다음에나 할 일이지요"

 

 

상황과 문제를 파악하라

 

강력한 법을 만들어 진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운 상앙이었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태자뿐 아니라 많은 귀족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혜문왕은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상앙을 처리하는 일이 더 급한 문제였다. 그러니 소진이 말하는 연횡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상앙은 결국 모반을 꾀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게 된다. 그 뒤 장의는 같은 연횡책으로 혜문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상앙을 정리한 후라 국내 정치가 어느 정도 안정됐다고 판단한 혜문왕이 관심을 밖으로 돌릴 만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진은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해 설득에 실패했고, 장의는 상황을 파악하고 시기적절 하게 설득하여 성공한 것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미리 상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홈쇼핑을 본 적이 있는가. 홈쇼핑에서는 상품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모델을 통해 상품을 이용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직접 보여준다. 옷에 대해 설명하기보다는 모델들이 그 옷을 입고 단풍이 든 가로수 길을 걷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그 장면을 보며 자신의 그런 모습을 상상한다. 그 순간 구매 욕구가 생겨나 구매율이 올라간다. 주방기구를 이용하여 요리하는 장면, 운동기구에서 운동하는 장면 등도 모두 시청자들의 뇌를 자극하기 위하여 보여 주는 것이다. 실제로 홈쇼핑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제품을 설명하는 순간보다 모델들이 제품을 직접 시연하는 동안에 주문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 홈쇼핑처럼 모델을 등장시켜 시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생생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는 종종 문학 작품이나 예술 작품에 매료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시시콜콜한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 '머릿속 그림 그리기' 기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장소와 사물에 얽힌 이야기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독립 운동가이자, 장군이었던 로버트 브루스는 영국과 벌인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영국에서 독립하고, 자신은 왕위에 올라 로버트 1세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에드워드 2세가 이끄는 영국군과 치른 전투에서 그만 밀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추격하는 적군을 피해 달아나다가 한 동굴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헐떡거리는 숨을 죽이며 공포와 불안 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때 마침 어디선가 왕거미 한 마리가 나타났다. 거미는 집을 지으려고 했으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거미줄을 원하는 곳에 연결하지 못했다. 그 광경을 계속 지켜보자니 거미는 여섯 번을 시도했지만 여섯 번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로버트는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실패의 괴로움을 맛봐야 하는구나'라며 안쓰럽게 생각했지만, 거미는 여섯 번을 실패해도 전혀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해서 결국 원하는 곳에 거미줄을 연결해 집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본 로버트는 다시 한 번 왕가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로버트 1세는 절망적인 순간에 거미가 여러 번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거미줄을 완성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낸다. 이처럼 산, 바다, 강, 바위 같은 자연물이나 동물, 식물 따위에 얽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정말 많다. 그중에서 설득에 필요한 이야기를 골라 정리해 놓으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동양 고전의 생생한 설득 장면에서 답을 찾다

 

CEO의 능력과 리더십에 기업의 흥망성쇠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EO와 경영진, 관리자들이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다면 그 기업의 앞날은 밝다. 여기서 설득력이라는 것은 말 잘하는 잔재주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설득은 세치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까지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신뢰를 주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신뢰를 받는 CEO 혹은 경영진이라면 굳이 긴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기업은 잘 돌아간다. 잘 안 되는 조직일수록 말만 무성하다. 회의가 길고, 지시 사항과 규제가 많다. 설득이야말로 삶과 비즈니스를 지배하는 핵심기술이다. 영업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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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실천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이야기
김경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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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축적한 모든 지식과 마찬가지로 인문학도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다. 또한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가는 지식체계로서 고체화된 화석이 아니라 액처럼 변화하는 유기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안문적 소양도 기존 지식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현실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해석하는, 유연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입장을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인문학은 인간을 만든다

 

책의 저자 김경준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딜로이트 안진 경영연구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그는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여러 신문과 잡지에 자신의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기존 지식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현실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해석하는 능력 또한 인문적 소양이라고 강조하면서 총 9부에 걸쳐 세상을 살아가며 꼭 필요한 인문적 소양을 강의한다. 1부(인문학은 등대다)에서는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창으로서의 인문학을 이야기하면서 광대한 영역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직업 영역을 바탕으로 우선 분야를 정하라고 조언한다.

 
2부(모든 것은 인간에서 시작되었다)에서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3부(야만과 문명, 인간과 도구)에서는 문명 발달에 대해 이야기하며, 4부(개인과 집단의 상호관계)에서는 집단을 이루고 국가가 수립되는 과정과 집단 안에서의 개인의 삶을 말한다. 5부 (생산과 교환을 통한 분업과 시장의 형성)에서는 시장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분업이 일어나고 전문화되어 사회가 발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6부(경쟁과 혁신의 구조)에서는 생태계와 산업계를 비교해 경쟁과 혁신을 알려주며, 7부(신화와 종교의 출현과 의의)에서는 집단이 형성되며 발생하는 공동체 차원의 신념 체계를 설명한다. 8부(문명의 태동과 정치체제의 형성)에서는 고대 그리스 민주정과 로마의 공화정, 중국의 제국 등을 비교하며 개방과 관용을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9부(과거 화석이 아닌 미래 에너지로서의 인문적 소양)에서는 과거의 시각이 아닌 오늘의 관점에서 인문학을 재해석해 미래의 에너지로 발전시키는 기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금술과 불로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오래 전부터 연금술과 불로초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연금술이란 물질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고, 불로초는 정신과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희망이었다. 이를 가진다면 인간은 영생불사永生不死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 최초의 통일 제국을 창업한 진시황도 방사方士를 동원해 불로초를 구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튼 연금술은 과학 기술로 연결되었고, 불로초는 인문학으로 추구되었다.

 

기업 경영에 인문학을 접목, 경영의 귀재로 불렸던 고고 스티브 잡스, 그는 시리아 출신의 미국 유학생과 미국인 여대생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였다. 결국 입양된 그는 전형적인 미국인 양부모를 만나 성장하면서 자립심과 정직에 대해 교육받았지만 그의 괴팍한 성격으로 인해 삶이 순탄하지 못했다.

 

1970년대 초반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중퇴를 한 후 환각제인 LSD를 접하고, 동양의 선불교에 심취해 7개월간의 인도 여행을 떠나는 히피 생활을 하는 등 일종의 일탈 기간을 거친다. 이후 1976년 애플을 설립하고 1984년 매킨토시로 대성공했으나 1985년 애플에서 축출된다. 하지만 곧 넥스트를 설립하고 1986년에 픽사를 인수했으나 실적 저조로 위기에 몰리다가 1995년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성공에 힘입어 1996년에는 애플로 복귀한다.

 

2000년대에 들어 아이팟, 아이튠스, 아이폰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정점에 올랐던 2011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전형적인 영웅담의 서사 구조를 담고 있다. 즉 출생의 비밀, 어린 시절의 방황과 고난, 성공과 실패, 재기와 영광에 이은 절정에서의 죽음이다. 고전적 서사에서 흔히 그려지는 영웅의 스토리와 유사한 스티브의 생애는 이제 신화가 되어가고 있다.

 

 

 

 

가깝고도 먼 고전

 

 

지금은 과거처럼 콘텐츠의 절대량이 부족하고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시대가 아니라,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누구나 정보 접근이 용이한 시대다. 그런 시대이다 보니 전문가와 일반인의 지식과 정보의 격차는 크게 축소되었다. 하지만 전공자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읽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반인은 전공자들이 확보한 지식의 우위를 인정하고 이를 참고할 만한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학습을 도와주는 안내자로 받아들이면 된다.

 

 

인문 교양 차원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원전을 접하면 바람직하겠지만 굳이 원전을 고집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안내자 역할을 하는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펴내는 다양한 콘텐츠를 적절히 소화하는 것으로 1차적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 다만 해석자이자 안내자인 전공자들 역시 각자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의식해야 한다.

 

 

 

 

경험이 지식보다 강하다

 

중국의 삼국시대 위나라를 창업한 조조는 장만 조비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아버지 조조가 죽자 그는 한한왕조를 폐하고 황제가 되어 위나라 문제로 등극했다. 그는 "가문이 3대에 이르러야 제대로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법을 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버지 조조 덕분에 그는 젊어서부터 좋은 술과 음식, 의복 등을 접하면서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입맛에서만큼은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세상을 보는 관점, 즉 세계관도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 10여 년간 접했던 학문 분야, 사고방식, 가치관 및 시대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에 더해서 나름대로 문제의식도 생겨나면서 정의감에 불타는 20대 초반에 읽고 접하는 정치 사회적 사조와 유행이 특정세대의 가치관을 형성시킨다. 이때 형성된 가치관은 사실상 30대 이후 평생을 관통한다. 세상을 100% 해석할 수 있는 세계관은 없고, 어떤 입장도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확립한 프레임으로 세상을 반복-재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입맛, 사춘기에 형성되는 노래 취향과 취미처럼, 청년기에 확립되는 세계관과 인간관도 환경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아랍 지역에서 즐겨 듣는 독특한 음악을 서양 음계에 익숙한 우리가 듣고 공감하기 어렵듯이, 성장기를 기독교 문명권에서 보낸 사람과 이슬람 문명권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세계관과 인간관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인간과 동물

 

문명이 시작되고 인간의 삶의 조건이 동물과 구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이런 배경에서 고대부터 18세기까지 세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강력한 프레임이었던 대부분의 종교는 공통적으로 인간과 초월자의 관계를 설정하고, 이 설정에 따라 인간을 비록 부족하지만 신과 같은 속성을 지니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2천 년 전에 시작되어 서양 세계의 지배적 종교이자 세계관이나 다름없었던 기독교에서는 <창세기>의 기록에 따라 우주만물과 모든 생명체는 유일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인간은 유일신이 만드신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다.

 

동물과 같은 위치에서 출발해 문명과 지능이 발달하면서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규정한 인간은 자연과학적 지식이 확장되면서 인간이 동물과 공유하는 다양한 속성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1859년 찰스 다윈<종의 기원>에서 인간이 미생물로부터 진화한 결과물이라고 발표하면서 인간과 동물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공상이지만 빌 게이츠의 딸과 부시먼 족의 아들이 결혼한다면 당연히 자식을 낳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로서 동일한 DNA를 가졌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는 두 사람이 결혼할지라도 후손을 생산함에 있어서는 아무런 장벽이 없다. 그런데, 빌 게이츠의 딸이 태어나자마자 부시먼 족의 가정에 입양된다면 생물학적으로 빌 게이츠의 딸이지만 사회 문화적으로는 부시먼 족의 딸이 되는 셈이다.

 

빌 게이츠와 부시먼 족의 비유는 비록 극단적 예시이기는 하지만 신석기 시대 농경을 시작하고 문명이 만들어지면서, 특히 산업혁명 이후 세계적 차원에서 기술적, 물질적 격차가 커지면서 나타난 인간이 지니는 특성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즉 1만 년 전을 기준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호모사피엔스들 간의 사회 문화적 격차는 크지 않았지만 문명시대를 거치면서 기술적, 사회 문화적 차이는 벌어졌다. 불과 150년 전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 다윈도 원시부족과 자신이 동일한 인간이라는 점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정도이니, 문명사회에서 원시부족을 다른 종으로 간주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러한 격차는 20세기의 기술 발전으로 문명사회 간에도 더욱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진화론과 인류학이 발달하면서 원시부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초기 형태의 사회 구성과 분업구조, 가족관계와 문화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는 점도 밝혀지게 되었다. 인간사회를 문명과 야만으로 구분 짓는 시각은 그 뿌리가 깊다. 로마인들은 세계를 문명의 로마와 야만의 게르만으로 분리했었다. 마찬가지로 고대 중국도 한족 이외의 동서남북은 모두 야만인 오랑캐로 분리했었다.

 

 

문명의 시작

 

역사적으로 문명은 다양한 요소들에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왔다. 과거 대륙별, 지역별로 단절된 시대에는 권역별로 문명이 발전하면서 나름대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고,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출발해 이집트 문명과 만나고 그리스,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문명의 발전을 이어왔다. 또한 고대 중국과 인도에서 출발한 아시아 문명권은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고, 대항해 시대에 유럽인들에 의해 파괴되어 단절되거나 변형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문명도 높은 수준의 기술적, 사상적 기반을 구축했다.

 

고대 국가에서도 문명을 이끌어가는 주도권이 계속 이전되고 있다. 예를 들면 메소포타미아의 페르시아 제국, 이집트의 파라오 왕국,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고대 로마에서 근대의 스페인과 네덜란드로 이어지는 흐름, 영국에서 오늘날 미국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그렇다. 동양의 중국에서도 왕조교체를 통한 한족과 유목민족의 세력교체가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약자가 강자가 되어 중심으로 부상하고, 다시 강자는 약자로 쇠퇴하고 다른 강자가 탄생하는 변화의 패턴을 보인다.

 

 

액체로서의 인문학

 

기상학자는 날씨를 예측하고 경제학자는 경기를 예측하지만 대개 틀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기상학자는 최소한 현재 날씨만큼은 맑음?흐림으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경제학자는 현재가 호황의 마지막인지, 불황의 끝자락인지 정확히 모른다. 이러한 인식의 한계로 경제학자들마다 현상의 진단과 처방이 다양하며, 소위 가장 권위 있다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들끼리도 동일한 경제정책을 두고 불꽃 튀는 설전을 벌인다. 시간이 지나서도 명확하게 판가름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상학과 경제학이 인간행동과 예측결과의 독립성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날씨라는 자연현상은 인간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반면, 경기변동은 경제주체의 행동과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어 기상학자가 내일의 날씨가 추울 것이라고 예보하면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장갑을 끼는 것으로 대응해 몸을 따뜻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날씨가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유연성을 가져라

 

인간이 완벽하지 않듯이 인간의 문명도 나름대로의 문제를 내포하고 발생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과 기술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온 것이 문명의 역사다. 이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은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이었다. 인문학도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을 확장시킨다는 의미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나 인문학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는 과거로부터 던져진 화석이 되어 오히려 현재를 구속하는 기제가 된다. 인문학을 포함한 모든 지식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도구라는 관점에서 인문적 소양도 미래적 관점에서 흡수할 필요가 있다.

 

미래 관점의 인문적 소양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요소는 유연성이다. 과학발전도 단편적 지식의 집적이 아니라 기존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의 상호 관계에서 진행된다. 인문학적 지식의 축적과 발전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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