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어린이/청소년>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길고 길게, 지루하고 지루하게, 빗 속에 잠겨 있는 기분. 잠깐 나온 햇빛이 아까워 이불이며 요커버, 베개커버들을 빨아 널고 나도 팔뚝이며 얼굴이며 발, 겨드랑이, 배, 등, 무릎 등등에 곰팡이가 피었을 거야, 하며 베란다에 나가 햇빛바라기를 하며 앉아 있었다. 그런데 다시 또 비다. 꿉꿉한 기분을 달래줄 책이나 골라보자. 요즘은 책 말고 다른 거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난 내가 다시 책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1.
미야니시 타츠야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 녀석 맛있겠다>를 포함 네 권의 시리즈로 나온 책들 중 <고 녀석 맛있겠다>를 제외한 나머지 세 권이다. 미야니시 타츠야는 일곱살 딸아이의 완소 작가라서 저 세 권의 책들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내 주변에 있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 중에는 미야니시 타츠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승냥이 구의 부끄러운 비밀>같은 책은 뭐랄까, 좀 촌스러운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는 작가라서 관심을 끌 수가 없다. 세 권을 주르륵 늘어놓은 이유는, 세 권이 시리즈로 나왔으니까 하나로 쳐야 해!, 하는 막무가내 심보이기도 하고, 이 중에 하나라도 걸려라!, 하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의 간절함 때문이기도 하고.
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그림책 두 권이다. 이것도 막무가내와 요행을 바라는 간절함, 이 두 가지를 버무려 한꺼번에 올려버린다. 린드그렌의 작품 속에는 에밀이나 미오, 라스무스와 같은 귀여운 남자 아이들도 있지만 삐삐, 로냐, 리사벳, 마디타 같이 씩씩하고 활달하고 명랑하고 밝은 여자 아이들도 많다. 그 중에서 마디타와 로타, 리사벳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그림책이니 두 권 중 한 권만 선택하라는 건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이다.
그러고 보니 미야니시 타츠야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니!!!!! 비가 더 내린다고 해도 이 그림책들과 함께라면 견딜만 하겠군!!!
3.
서정오 선생님의 옛이야기 책이다. 서정오 선생님의 옛이야기 책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 여전히 욕심이 난다. 토토북에서 출간한 저 책은 그림이 지판화란다. 어쩐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표지에 떡하니 앉아 있는 도깨비에게서는 일본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그리고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서정오 선생님의 책들과 겹치는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이야기 다른 느낌'을 확인하는 거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서정오 선생님의 책들은 소장가치가 느껴지기도 하니까.
4.
웅진 주니어 문학상 수상작이다. 신인작가 부문 대상 수상작이라는데 "정형화된 마녀 캐릭터를 요즘 아이들의 감각과 눈높이에 맞게 새롭게 재창조하여 아이들에게 유쾌한 상상력과 재미를 주는 작품" 이라는 책소개 글에 눈이 반짝, 귀가 솔깃해진다. 우리 어린이 문학이나 청소년 문학에서 늘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던 아쉬운 부분들이 극복되어가고 있다는 징후를 확인할 수 있을까? 배경이 프랑스라는 점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하다. 뭐랄까, 우리 나라의 영역 안에서는 상상력의 한계를 느꼈다는 표현인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소리높여 글로벌한 세계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당하는 세상에 살면서 프랑스면 어떻고, 안드로메다라면 어떠랴. 그저 그만큼 우리 작가들의 역량과 상상력과 글빨과 작품성이 범세계적으로 범우주적으로 인정받고 뻗어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러니 이 책부터 확인해 보자구!!
5.
청소년들의 어두운 이야기. 가난, 성폭행, 불화, 학교폭력 기타등등 기타등등.. 을 어둡게 (이게 중요하다. 어두운 이야기를 어둡게 담았다는 거) 담은 이야기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무거워 한숨이 나오고 너무 우울해져서 기운이 쭉 빠지니까.
하지만 작가가 황선미니까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갔을지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고 한숨이 나오고 기운이 쭉 빠져버린다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확인하고 싶은 유혹은 강렬해서 이 책을 결국 이 페이퍼 안에 담는다. 적어도 뻔하지는 않겠지.
후텁지근한 7월을 더 후텁지근하게 만들어버릴 위험이 크지만 때때로 모험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기도 하니까 이 책을 받게 된다면 확 끌어안아버릴 테닷!! 용감하게!!
요즘 나는 바느질을 한다. 그것도 손바느질. (발바느질도 있나? 당연히 손바느질이지!) 딸아이 가방을 하나 만들었고, 코알라로 변신 가능한 토끼 인형을 만들었고, 소파에 깔아둘 매트를 만들었고, 식탁 러너를 만들었고, 큰딸아이 방 창문에 드리울 발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일곱살 딸아이와 아들녀석의 여름이불을 만들 예정이고 소파를 커버링하고 싶어서 자주 소파를 노려보곤 한다. 그래서 책을 거의 못 읽고 있다. 반성. 바느질과 책읽기와 생활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요즘의 내 숙제다. 내가 바느질에 빠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이게 다 도서관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책에 빠지지 않고 생각도 못했던 바느질에 빠지다니~~~ 세상은 요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