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 읽는 것만으로 역사의 흐름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김재원 지음 / 빅피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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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라는 과목은 학창 시절 내내 저를 괴롭혀왔습니다. 주입식으로 외워야 하는 데다가 한자어가 난무하는 탓에 정신이 혼미해지기 일쑤였습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세계사와 함께 흐름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특히 중국사와의 연관성을 강조하셨었는데 머릿속에 남는 거라곤 위 진 남북조 5호 16국, 수당명청 뿐이었으니 나아질 수는 없었죠.



역사는 흐름이기 때문에 굵직한 내용을 알고 그 주변으로 어떻게 되는지 학습하기 위해 커다란 종이에 연표를 그려보기도 했드랬습니다. 지금에야 이러한 방식들이 잘 알려져 있지만 저는 나름대로의 비책을 마련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늘 참담했고 10문제가 나온다 치면 4개를 맞는 수준이었습니다.



대입 때는 그 반대의 결과를 낳았으니 다행히 문제가 연도나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흐름을 아는 사람에게 적합하도록 출제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지뢰와 같았던 과목을 통과하여 진학하였으니 저와는 애증의 관계라고도 하겠습니다. 어렵다고 생각되니 피하고 싶고, 그렇지만 궁금한 점이 많으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이런 우유부단한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는 무척 도움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표지에 '읽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흐름이 머릿속에 들어온다'라고 되어 있는데 그냥 흔한 홍보 글이 아닌 이 도서에 딱 걸맞은 문구였습니다. 어디 한 번 읽어볼까나 하면서 딱 펴들었는데, 재미있는 겁니다.



일부러 재미있게 묘사한다거나 스토리텔링을 구사해서 소설처럼 엮은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읽고만 있는데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근세와 근현대까지 이르는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내 안으로 들어옴이 느껴졌습니다.



저자인 김재원은 '역사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너무 가볍게 다루어지지는 않도록 주의하며 한국사 콘텐츠를 만드는 역사학자입니다. 읽는 사람을 책 속으로 끌어당기는 능력이 무척 탁월한데요, 그 밀당이 보통 아닙니다.



현재는 서울시립대학교와 백석예술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데, 수강하는 학생들은 재미있게 수업을 듣겠구나 싶어 약간 부러움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면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채널을 찾아볼 수도 있고, 팟캐스트 '만인만색 역사공작단'을 찾아보면 될 일이니 슬퍼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한국사의 큰 흐름을 따라간다고 하면 종종 뭉뚱그려 휙 하고 지나가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삼한이나 가야, 부여 같은 내용은 그다지 잘 다루지 않죠.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작은 나라라고 할지라도 교과서에 등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이며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등을 설명합니다. 역사적 사실들을 이야기하면서 중국이나 일본, 동아시아 주변 국들과의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도 다룹니다. 알고 보면 상당히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신기하게 딱 한 권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서 중요했던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며 단 권만으로도 흐름을 알 수 있도록 재미있게 서술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나 흐름에 약한 경우에도 읽을 수 있습니다. 교과서 안에 있는 것과 함께 밖에 있는 내용도 다루니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 책을 한 번 읽었지만 기회가 되면 몇 번 더 읽을 생각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용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취해가면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덧붙여 볼 셈입니다. 이 책은 저처럼 역사는 어렵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학생 이상의 학생의 방학 도서 등으로 추천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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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서 - 자칭 리얼 엠씨 부캐 죽이기 고블 씬 북 시리즈
류연웅 지음 / 고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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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서>는 언뜻 보면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것 같은 제목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실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ㅈ 같네' 아주 잠깐 SNS에 남겼을 뿐인데 정말 ㅈ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한 남자 조헤드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ㅈ이 무엇으로 읽히는지는 독자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다를 텐데요, 아마도 대부분은 저와 같은 단어를 떠올릴 겁니다. 뒤에 '같네'가 오는 이상 '쥐'같네 라거나 '종' 같네 라거나 뭐 이런 걸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지 않나 싶습니다.



힙합 스타 조헤드의 SNS를 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죠. 자신들도 ㅈ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길길이 날뜁니다. 아니, 언제부터 ㅈ이라는 초성이 욕이 되어버렸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만, 잠깐 동안 올린 그 글 때문에 조헤드는 정말 ㅈ 같이 되어버렸어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대스타가 되었지만 언더그라운드 시절을 떠올리며 한국 음악시장에 대한 짜증을 딱 한 줄 남겼던 건데. 실은 비밀 SNS 계정에 올린다는 걸 그만 공식 계정에 올려버렸던 거죠. 이제 네티즌과 연예부 기자들은 매국노 마냥 그를 매도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대표님까지 난리가 났고 이제 그의 인생은 쫑 난 상황.



방송국 쇼케이스까지 예정되어 있었던 터라 보통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때 소속사 아트디렉터가 굿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이게 모두 노이즈마케팅이며 감동 반전 메시지를 주기 위한 이벤트라고 말이죠. 덕분에 24시간 정도 남은 쇼케이스 시간까지 뮤직비디오 '한국에서 태어나서'를 만드는 강행군을 시작합니다.



스토리, 콘티 뭐 하나 준비된 거 없는 상황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달려들어야만 합니다.



한편, 평행세계에서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래퍼 릴뚝배기는 1집 '나는 벌레'를 발표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얘는 미국에서 태어났어야 했다."라는 댓글 하나와 '한국에서 태어나서 댓글이 하나도 없네.'라는 댓글 요렇게 두 가지만 존재했죠. 실력은 있지만 미국 래퍼 풍이라서 한국에서 인기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라 좀 짜증이 났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계산하던 그는 '힙합을 그만두어야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때, 자칭 힙합의 신이 나타나 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릴뚝배기야, 넌 이제 뒤졌다."



릴뚝배기가 열일곱 살 때 "제가 만약 힙합을 버리려고 한다면... 가차 없이 저를 뒤지게 해주세요."라고 소원을 빌었었거든요. 그래서 '뒤지게 해주러 왔다.'라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이 끝나기 전에 힙합에 대한 미련을 풀게 해주겠다며 마지막 하루를 살 기회를 주는데요, 릴뚝배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마지막 하루를 위해 원 없이 사는 법을 궁리합니다.



이 소설은 조헤드와 릴뚝배기를 통해서 아티스트란 어떻게 만들어지고 엔터테인먼트는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여줍니다. 둘의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지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는 좌충우돌하는 상황을 보여주지만 비꼬기만 들어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구분하며 그래도 놓지 않아야 하는 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며 다른 길을 가는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블랙코미디와 같은 그들의 길을 따라가면서 웃고 피식거리다가 책을 덮고는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덧) 독립영화나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힙합 스타가 직접 연기한다면 더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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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브루클린
제임스 맥브라이드 저자, 민지현 역자 / 미래지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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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문을 열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책입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유쾌하고 미스터리한 이웃 서사시라길래 코믹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상상과는 달리 시트콤처럼 전개되지는 않더군요. 어쨌든 이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된 부분은 스포츠코트라고 불리는 일흔도 넘은 교회 집사가 광장 한복판에서 38구경 권총으로 20대 마약상을 쏘았다는 부분이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싶은데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변의 해롭게 하는 마약상을 처단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책을 읽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Deacon King Kong으로 말하자면 킹콩 집사라는 의미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 킹콩이 아닙니다. 일명 스포츠코트라고 불리는 주인공 남자가 즐겨 마시는 술이 킹콩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생존했을까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사고나 질환을 겪어왔는데, 이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마시는 거라기보다는 그에게 있어서 알코올은 물과 다름없는 거라고 느꼈어요.



언제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술에 취해있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야구를 가르치기도 했던 소년 딤즈를 총으로 쏘았어요. 그것도 아주 근거리에서요.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귀가 날아가 버렸는데요, 당시 광장에는 열여섯 명이나 되는 목격자가 있었어요. 그런데도 희한하게 사람들은 스포츠코트를 비난하거나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평소 그가 무서운 사람이었다거나 갱단이 입을 막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모두 그를 보호하려고 하죠. 온화한 성격인데다가 주변 사람들과 잘 지냈던 덕분에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어요. 사건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걱정하면서 스포츠코트에게 달아나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는 자기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어요. 총을 소지하고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총알은 한 발뿐이라고 하는데요, 확인해 보니 '당연히' 총알이 없었죠.



그는 아내 헤티가 죽은 후에도 그녀의 환상을 보면서 중얼중얼 대화하고 있었는데요, 정말 살아있는 것과 같이 대하며 지내고 있었어요. 절친인 핫소시지는 그런 그를 늘 이해하면서 다독이며 킹콩을 나누어 마셨죠. 젊은 시절 면허증 하나를 따서 공유하며 한 사람인 체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친한 사이였는지 아시겠죠.



스포츠코트가 아내와 대화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헤티가 모아둔 교회 기금을 어디에 숨겨두었을까 정도만 궁금해했지 그를 대하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친절한 그는 모두의 해결사였으니까요. 그는 소년 시절의 딤즈를 무척 아끼며 우수한 투수가 되도록 코칭 했어요. 하지만 결국 마약 딜러가 되어 뒷골목에서 사람들에게 못된 가루를 파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죠.



그런 점이 싫어서 총구를 겨눴던 것도 아니고 어쨌든 뚜벅뚜벅 걸어가 조준하고 팡!


주변에서 그를 감싸고 있으니 딤즈와 스포츠코트 둘이서 해결점을 찾으면 될 것 같겠지만 마약 딜러 뒤에는 당연히 큰 조직이 존재하는 법이죠. 결국 조직간의 이권 문제까지 폭발하여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어버려요. 딤즈를 처리하려는 조직에서는 살인청부업자를 보내기까지 한다니까요.


이 책은 직접 읽어보아야 해요. 작은 마을 커즈하우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조금씩 분산되어 등장하는 초반에는 조금 답답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오바마가 '올해의 책'으로 정했다는 점, 오프라 윈프리 2020 북클럽 선정 도서라는 점, 타임지 선정 올해 최고의 소설 top 10에 들었다는 점 등등등을 떠올리며 중반까지 읽으면 그 뒤로는 놓을 수 없어요.



흩어져있던 것 같은 등장인물들 간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연결되면서 그렇구나 이런 게 인생이지...하는 생각이 들어요. 짜임새가 상당히 좋아서 티 나지 않게 어쩜 이렇게 엮어놓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웃들이 만들어온 커즈하우스의 이야기 그리고 비밀이 드러날 때쯤에는 가슴 한편 이 찡함을 느꼈어요.



<어메이징 브루클린>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멀리서 보면 칙칙하고 어두운 배경인 거 같아 보일 수도 있으며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저 멀리 풍요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는 거 같죠. 복잡하고 우울할 수 있는 배경이지만 그 안에서도 해학을 잃지 않는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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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 모두가 안전한 세상을 위한 권일용의 범죄심리 수업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9
권일용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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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통제하고 자제하고 이런 행동이 도덕적으로 혹은 법률에 비추어 옳은 일인지 어떤지를 생각하며 문화인으로서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악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하게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악하게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출생 시부터 가지고 있던 기질에 어린 시절의 경험, 자라면서 학습하게 되는 모든 삶이 쌓여서 '누군가'가 되는 거라고 여깁니다. 많은 서적에서 성장 과정이 범죄자를 양성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물론 그런 경험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촉발 요인이 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모두 연쇄살인마가 되지는 않습니다. 무엇에 몰두하느냐에 따라 뇌신경 학자가 될 수도 있고 뛰어난 사업가나 정치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저러한 심리나 성장과정을 가진 사람이 '범죄자'가 된다고 낙인찍고 편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 심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 범죄자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통계 혹은 사실을 알아야 심각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북스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교수진의 흥미진진한 강연 내용을 <인생 명강> 시리즈로 담고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아홉 번째 책은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로 권일용 교수님의 강연을 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표창원 님의 강력한 추천이 없다 하더라도 챙겨서 읽었을 책입니다.



이 책에서 권일용 교수는 일상에 스며드는 범죄를 심리학을 통하여 풀어냅니다. 가스라이팅이나 아동 학대나 디지털 범죄, 아동학대들 주변에 만연한 범죄들을 이야기하며 지금까지 흔히 접해왔던 대중 심리학의 내용을 접목시킵니다. 즉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는 범죄의 과정을 심리학을 통해 풀어나가며 범행을 저지르는 과정과 의도를 살피는 범죄 심리 대중서입니다.


집중하여 읽어나가다 보면 이미 우리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사실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범죄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어느새 끌려다니고 만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하지만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그들의 사악한 마음을 스스로 알아채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는 실제 프로파일링 사례와 함께 소개되며 심도 있는 심리학 내용까지 끌어와서 이야기하고 있으나 필력과 서술력이 좋아서 쉽게 읽힙니다. 천천히 읽어나가다 보면 범죄는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스릴러나 범죄소설 혹은 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 나는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이들 보다 안전하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우리는 범죄란 나와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어느 때고 덮쳐올 수 있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범죄에 대해 파악하고 안전지대를 찾아가려는 노력이 우리와 주변을 안전하게 만듭니다. 깨진 유리창이 없도록 보살피는 노력 자체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수법의 범죄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AI, 딥페이크 영상,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금전 갈취나 성적 착취 등 많은 일들을 벌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나쁜 쪽으로 머리를 쓸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나날이 진화해나가는 범죄에 대항하여 제대로 땅을 디디고 서기 위해서는 범죄심리를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범죄자의 심리를 안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하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발견되는 일들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일 수는 있습니다.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하나씩 더해져야만 가능합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외면하면 범죄는 점점 더 넓고 깊게 퍼지고 말 것입니다.




완전한 범죄는 없지만

완벽한 보호는 있다!



얼마 전 종영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프로파일러가 정착하기까지는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는지 느꼈습니다. 제가 보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습니다. 자칫하면 면담자의 마음까지 파괴할 만한 범죄자와 대화하는 과정의 힘듦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권일용 교수님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서가명강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통해 유성호 교수님의 글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렵지는 않으나 누구든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 생각하여 권하고 싶습니다.

* 본 리뷰는 21세기북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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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호텔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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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호텔>을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폰지 사기'인데요, 이 수법은 상당히 오래되었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며 피해자를 낳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기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요.



외부에서 보면 어떻게 저런 방식에 속는 건가 의아하기도 하고 욕심이 지나치니 어리숙하게 넘어가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테두리 안에 있다면 눈치채지도 못하고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폰지사기가 얼마나 오래된 수법이냐 하면 1920년대에 시작했으니 100년도 넘었군요.



당시 이탈리아 출신의 금융인인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저지른 사기 수법이에요. 그가 다니던 은행에서 이자수익인 척하면서 신규 가입자 예금을 헐어 먼저 가입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사건이 벌어졌었죠. 결국 은행은 망했고 찰스 폰지는 망하기 전에 돈을 가지고 튀면 된다는 교훈을 얻고 말았습니다.



폰지는 국제반신우표권을 가지고 차익거래를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짜요. 그리고 투자자들의 수익을 배분하는 척하면서 뒤늦게 가입한 사람들의 돈을 분배했죠. 이런 폰지 사기 방식에 누가 속나 싶지만 우리나라 영화 '마스터'의 모티브가 된 조희팔 사건만 해도 집계상 5조 원대의 사기를 쳤어요.



최근으로 따지면 모 유튜버 사건도 있었고 루나 대폭락 사건도 있었죠. 아니 이건 현재 진행형일까요? 분명하게 폰지 사기라고 밝혀진 건 아니지만 이와 관련된 작전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그러니 폰지가 기획한 이 방식은 10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으니 제법 역사가 깊네요.



이번에 읽은 <글래스 호텔>은 1970년대 초부터 2008년 12월까지 진행되었던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을 모티브로 했어요. 한화로 약 73조 원 규모이니 어마어마하죠. 메이도프는 일반인을 상대로 하지 않고 국가 펀드나 대형 금융사 등 굵직굵직한 곳을 대상으로 했어요.



증권사를 설립하고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가 나중에 사기를 치기 시작했던 거라서 모두 감쪽같이 속았나 봐요.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경험도 있고 수익률도 10%를 보장하니까 은행도 여기에 투자를 해버렸죠. 그래서 메이도프는 점점 성장세를 탔어요.



하지만 알고 보면 투자금만 받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의 명성과 규모를 믿고 투자하려는 사람이 줄을 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오랜 시간 동안 사기 행각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도래하자 사람들이 원금 상환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결국 탕진했음이 드러났고 자수했죠.



스티븐 스필버그, 존 말코비치, 케빈 베이컨 등 유명인들도 피해를 입었어요. 많은 투자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기도 했고요. 메이도프는 150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갇혔는데 작년에 옥사했다고 해요. 이 사건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라 전체적인 맥락은 폰지 사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주인공인 빈센트는 조너선 알카이티스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트로피 와이프로 - 실제로 혼인 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 지냈어요. 그가 폰지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건 몰랐죠. 다만 돈의 왕국에 들어가 살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고 지냈어요. 알카이티스의 재력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빈센트 역시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도 그러하다고 생각했죠.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제법 많은 편이에요. 마치 바닥에 흩뿌려 놓은 퍼즐이나 유리조각처럼 낱낱이 흩어져 있는데 그것들을 주워모으는 시점도 각기 달라요. 전체적인 흐름 속에 가끔 과거나 미래가 침입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요. 뿌려놓은 떡밥을 회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자 자신이 물고기가 되어서 떡밥과 미끼를 모두 물어와야 해요.



마치 조너선 알카이티스가 뿌려놓은 사기의 씨앗 같은 거랄까요. 그가 세운 거대한 돈의 왕국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가며 그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어요. 빈센트처럼 방관하며 돈의 맛만 익혀가는 사람도 있었고, 측근은 종말을 알지 못한 채 함께 진행하기도 했죠.



지금까지 실제하고 있다고 여겼던 돈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그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충격과 슬픔을 달랬어요. 빈센트는 원래의 자신을 찾기 위해 바로 사라져버리고요. 이 소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면에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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